광우병? ‘으악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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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목? 꿈에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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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목? 꿈에의 용기
최 형 록
ꡔ진보평론ꡕ 편집위원
1. 걸어다니는 기념관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험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見利思義 見危授命” 논어 제14편 헌문편의 글귀.
남산 안 의사의 기념관에 가면 붓으로 쓴 이 글귀를 볼 수
있다.
필자가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로 생각하는 의사(義士) 안중근이
여순감옥에서 쓴 글귀이다. 그는 1909년 10월 26일 하르빈에서
일제의 괴수 이등박문을 죽음으로 응징했다(당시 나이 31세).
그로부터 수십년 후 식민지 조선의 어떤 청년은 일제의 괴뢰국
만주의 군관학교 졸업식에서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한 이
성전에 벚꽃처럼 질 제 목숨을 바칠 것을 결의합니다”라고
선서한다. 급우들로부터 “일본인 뺨치는 일본인”이라는
정경모, 「오늘의 한국, 내일의 한국」, J.
설리반과 R. 포스 편집, ꡔ두개의 한국: 하나의
미래ꡕ, 1987년, 146쪽.
평을 받은 이 청년은 권력의 오르가즘의 순간, 1980년 10월
26일, ‘죄 없는 몸’을 벗어났다. 심복이라고 믿었던 자에
의해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절규를 유언으로 남긴 청년의
기념비는 쓰레기더미 아래서 질식당하고 있는 반면에 일제에
충성을 다해서 출세할 꿈을 꿨던 청년은 이른바 국민의 정부의
국고보조금을 받아 기념관을 선물받을 수 있는 운명에
처해있다.
제국주의의 잔재를 이렇게 청산하지 못한 사회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정치적 보복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언어도단으로 역사적
불의를 살려둔 사회에서 과연 ‘민주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인 뺨치는 일본인”의 기념관 건립에 민중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은 막아야 하며 나아가 그 건립계략 자체를
무산시켜야한다. 그런데 현실을 직시하면 이미 기념관은
존재한다. ‘가짜 조선인이면서 반쪽바리’가 영도하던
유신시대의 헌법정신은 ‘국론통일과 능률의 극대화’였다.
군부파시즘이 남한 자본주의의 야수적인 원시적 축적을
정당화하는, 민중의 ‘어리석은 면’을 자극하는 단순논리는
‘우선 떡을 크게 만들어야 나중에 나눠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남한 자본의 단순명쾌(?)한 논리를 민주당의
대선주자들 7인이 각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있는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죄 없는 몸’에서
자유스러워진 ‘가짜 조선인이자 반쪽바리’의 ‘정신적
화신’들이 아닌가? 굳이 신중히 말하자면 징그럽게 닮은
화신들과 꼴사납게 닮은 화신들.
이런 도태시켜야할 ‘불의의 화신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암담한
미래 그리고 현재를 책임져야 할 중요한 구성원들이 청년과
청소년이다. 이른바 신세대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결코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한국사회의 도덕성 지표개발 연구’에
따르면 중․고생의 도덕의식이 성인보다 낫다가 아니라
‘낮다’고 한다. 원칙대로 살면 손해라는 항목을 제외하면 특히
‘돈이면 모든 것 해결 가능’ 그리고 ‘자기 돈을 마음대로
쓰는 것에 남이 상관할 일 아니다’라는 항목에서 그렇다.
ꡔ문화일보ꡕ, 2002년 2월 22일자, 28면.
이 연구의 정확성을 굳이 검토하지 않더라도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청소년의 가치체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은 틀림없다. 점증하는 남한 부르주아의
지배적 가치체계, 그것도 서구의 부르주아처럼 민중의 요구를
수렴해서 봉건적 절대왕정을 타도한 경험이 전혀 없는,
군부파시즘을 타도할 용기를 발휘한 적도 없는, ‘순도 100%
기생충’인 남한 부르주아의 타락한 가치체계의 사회화의 업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통시적(通時的)
인간관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공시적(共時的) 인간관계의
새로운 설정이 불가한 것은 분명 아니다. 즉 오늘날 21세기의
벽두부터 남한의 청소년․청년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논리에
갇혀있으나 그 ‘인식의 감옥’을 파괴할 수 있으며 새로운,
진정 인간다운 논리와 정서의 수평선에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2. 짐승들 보다 못한 전망
기본적으로 진보적이나 종종 의아스러운 논조를 펴는 일간
ꡔ한겨레ꡕ의 경우 남한 부르주아의 전망,
국가경쟁력 높이기의 수단으로서의 교육이라는 논조를
펴고있는데 과연 남한의 ‘국가 경쟁력’이 민중의 삶의 양이
아니라 질, 인간간의 소외의 극복 즉 상호신뢰,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易地思之)와 연대의식, 정의를 생명처럼 존중하기,
그리고 ‘생각하는 갈대’의 원천으로서 자연에 대한 지혜로운
자세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계급으로 분열된 각각의
국민(혹은 민족)국가 사이의 경쟁은 원천에 있어서 각국의
부르주아계급 간의 경쟁일 뿐이다. 즉 삶의 지혜로운 조건을
형성해나가려고 결의할 때 ‘국가경쟁력’은 결코 민중의 전망에
있어서 핵심개념이 아니며 타파해야할 대상이다.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핵심국가들의 자본가계급이 추진하고있는
‘세계화’에 남한 자본가계급이 적응하는 방안이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이 작성한 「비전 2011」
ꡔ한겨레ꡕ, 2002년 2월 15일자, 6면.
이다. 이것은 ‘선성장 후분배’라는 관점에 있어서는 박정희
시대와 연속성을 가지는 한편, 국가의 규제와 육성보다는
‘시장을 통한 자율경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군부파쇼적
‘개발독재’시대와 불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국가 권력의 계급성’이다. ‘개발독재’
시대에는 국가권력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므로써 남한
자본가계급이 본원적 축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상품시장-자본시장-노동력시장의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시장을 ‘자율’이라는 허울 아래
자본가계급이 구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가권력의 계급성’과 관련해서 명확히 인식해야할 것이
‘정치와 경제의 불가분성’이다. ꡔ한겨레ꡕ의
논조를 보면 주로 행정의 고위관료나 국회의원의 뇌물수수
그리고 기업체의 비자금조성과 이권 청탁에 따른 부정부패를
‘정경유착’이라고 부르며 경제논리에 정치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별천지(別天地)의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우스운
논리전개는 부정부패가 일어나는 민․형사적 사법의 관할권
내에 있는 차원의 정치․경제와 ‘일상적’으로 온갖
종류의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잉여노동력의
착취-피착취’라는, 지극히 협소한 사법의 관할권 밖에 있는
차원의 정치․경제를 혼동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더욱이
민․형사적 사법권이 충분히 관할 가능한 따라서
관할해야할 영역을 포괄하고있는 지도 대단히
의문스럽거니와(합법의 영역을 넓히는 문제)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 판사 ‘개인의 양심’이 과연 그 개인 자체를
구성하고있는 사회체제 중에서 특히 지배계급의
가치체계(공공복리에 사유재산권을 우선시하기, 냉전적 사고,
군국주의, 개인주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근대 서구적
합리주의와 환원주의 등)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독립적이며
비판적인가 라는 문제 역시 결부되어있다. 「비젼
2011」은 우리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전망이
결코 아니다. 미-일에 종속적인 그들,
파시스트적․자유주의적 남한 부르주아의 전망을 왜 민족의
다수 구성원인 민중이 받아들여야하는가?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의 이름으로 제시되는 사이비 비전을 우리의 전망으로
대체해나가야 한다.
3. 녹두장군과 고종의 목
민중적 전망을 수립하고 실현시켜나가는 시대적 과제에는
역사의식에 기초한 과학적 이성과 ‘이익을 보거든 정의’감을
발휘하는 용기가 필수적이다. 21세기의 벽두 남한의 적지 않은
청년․청소년이 삶의 의미와 목표와 관련해서 혼미상태에
있는 것 같다. 이런 통탄스런 현실은 ‘선택의 여지없이
던져진’ 대한민국이라는 역사적 사회구조에서 비롯하는 한편
우리 청년․청소년 스스로의 소극성, 정의감에서 비롯된
용기의 부족과 아울러 기껏 ‘자본주의적으로 조작되어진’
과학적 이성, 기능주의적 도구적 이성에의 매몰에 비롯된 점
역시 주목해야한다. 「비전 2011」에서 특히
‘짐승같은 생각’은 인력자원 양성체계(아마 제도교육을 비롯한
각종 연수제도)를 산업현장의 인력수요에 맞추도록 해야한다는
부분이다. 이런 생각은 청년과 청소년을 남한 자본가계급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실상의 불행을 위해서 ‘살아있는
기계’로 만들겠다는 무자비한 것이다. 이 반동성을 반드시
좌절시켜야한다. ‘부자가 되는 개꿈’을 단호히 버리고 이
‘지옥을 개조하는 꿈’을 키워나갈 수 없는 것일까? 굳이
한국개발연구원의 「1월 경제동향」 보고서를
인용하자면 청년실업이 ‘구조적 실업’임을 지적하고 있다.
ꡔ한겨레ꡕ, 2002년 2월 23일자, 7면.
부자가 될 가능성 역시 ‘계급구조적’으로 대략
결정되어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삼아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五老峰爲筆
靑天一丈紙
三湘作硯池 寫我腹中詩
이것은 이백의 5언 절구로 의사 안중근이 여순감옥에서 쓴
붓글들 가운데 한 가지인데 ‘젊은 패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오늘날 청소년 청년들이
혼미스러움에서 벗어나려면 객기가 아닌 이런 ‘패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의 모순으로부터 솟구치는 ‘절실함의
맥박이 뛰는 앎’이 있어야한다.
19세기 후반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동양으로 침략해오는 시대에
봉건적 조선왕조 내에서는 세 가지 대응이 있었다.
위정척사운동, 개화운동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이다. 이 가운데
당대의 민중에게 가장 부합되는 것이 반봉건 반제의 기치를 든
동학농민운동이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그렇다는 입장은
비판적으로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연이라는 교과서’라는
입장에 대해서 비판이 있는 자연과학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무의식까지도 의식하려는 능력을 지닌 인간들의 투쟁으로서의
역사과정에 현실의 문제의식으로서 가정은 오히려 적극적
탐구자세 이다. ‘동학농민전쟁’의 지도자 녹두장군은 “일신의
피해 때문에 봉기한다면 어찌 남아대장부다운 일이겠는가.
민중이 한탄스런 상황에 처한 까닭에 민중을 위해서 해를
제거하고자했다” “전봉준 공초”(재판기록), 역사학회편,
ꡔ한국사자료선집ꡕ, 일조각, 1978, 168쪽.
爲一身之害 而起包 豈可爲男子之事
衆民寃歎 故慾爲民除害
고 재판에서 밝혔다. 자신의 피해 혹은 자신의 출세욕에서는
진정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회운동을 할 수 없다. “민중의
삶의 안정에만 마음이 있었다. 관리들의 탐학을 보고 분노감과
한탄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이런 거사를 했” “本心切於安民
見貪虐不勝憤歎 而行此事”, 앞의 책, 172쪽. 이 공초를 보면
처음부터 일제의 영사가 심문에 참여하였고, 직접 심문까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의 반봉건적 전망은
‘충군애국지심’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가
반봉건국가의 타도를 전망으로 가지고 ‘고종의 목’을 벨 수
있었다면?
‘고종의 목’이 아니라 ‘녹두장군’의 목이 베였기에
일제시대-한국전쟁-‘반양키’ 이승만의 독재-군부파시즘-본격적
부르주아 자유주의 시대의 전조로서 국민의 정부로 흐르는
역사가 전개된 것이 아닐까? 향후 남한 자본가계급의 민중에
대한 공세는 강화되고 잘못 인식된 ‘합법투쟁’을 할 경우
부르주아 패권의 강화와 함께 민중의 생활은 그 질에 있어서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 이제까지 모든 일이 불법적인
것이었다. 혁명이, 왕권의 몰락이, 바스티유의 함락이 그랬고,
‘자유 그 자체가 불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고있는 것입니까?” 조르주
라비카, 「M. 로베스피에르: 민중의 대의」,
ꡔ맑스의 현존ꡕ, 프랑스대학 출판사, 1999년 10월,
제8권, 152쪽.
라고 1792년 11월 5일 로베스피에르는 역사의식에 전광석화를
가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프랑스대혁명이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승리로 중단되는 것을 막고 대혁명을 민중주의적 국면으로까지
전진시켰다. 서울역 앞에는 이전에는 없던 화단이 들어섰다.
꽃들만 보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일이다. 화단이 들어서면서 그 공간은 민주적 시위의
광장으로부터 통제 아래 있는 화단의 공간으로 전락되었다.
이른바 국민의 정부 이후 민주화투쟁은 각막(눈의 가장
바깥막)차원의 투쟁에서 ‘대뇌전두엽’(인간의 의식현상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차원의 투쟁으로 질적 수준을
높여야함을 이것은 상징한다. 이런 현상은 대학로에
중앙분리대를 설치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망이란
천둥번개처럼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유동적인 현실에
대한 도전의 용기를 발휘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한 절실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의문을 던지는 가운데 형성된다. 꿈의 구상과
실현에는 불굴의 용기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2002.2.24.)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