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투쟁의 정치적 진전으로써
선거의 의미를 세우자!
최 경 희/연구위원
1. 또 다시 대중투쟁이
2002년 2월 공기업 3사 공동파업투쟁은 2001년 하반기
노동자투쟁의 하향국면을 극복하고 다시 고양되는 노동자
대중투쟁의 신호탄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시대,
‘민영화 반대’를 걸고 진행되는 이 파업투쟁은 대단한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을 엄호, 지지, 지원할 수
없는 정치운동의 빈곤함은 여전하다.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운동은 중요한 시기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도(?) 촉발되었다. 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제조업 중심의 남성노동자, 대공장
남성노동자의 투쟁으로 확산되었고,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이후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물론 2002년
공공부문노동자들의 투쟁까지 대중투쟁의 주체들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자 대중운동의 발전에 맞게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목표를 설정하였던 것도 10년 이상의
구호이다. 그러나 오늘 2002년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을
정치적으로 엄호하고 발전시키고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는 변변한 정치세력이 없는 것이 작금의 한국 노동자
정치운동의 현주소인 것이다. 왜 이러한 비극적인 정치운동
상황이 극복되지 않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은 진보진영에게 중요하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라는 양대 선거가 있고,
월드컵, 부산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행사 등이 있기에
세계적, 지역적 주목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월드컵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월드컵을 즐길 만큼
삶이 녹녹하지 않다는 것이 그 진정한 원인일진데 정부는 이것을
외면한 채 국제행사에 즐거워하라고만 한다. 친절하고 성실한
시민이 되라고 한다.
진보진영은 양대 선거가 있는 2002년을 중요한 시기라고 말하여
왔다. 내 기억 속에도 2002년을 ‘권력재편기’로서 준비했던
때도 있었다. 과연 중요한 2002년을 얼마만큼 잘 준비하고
있는가? 노동자계급에게 2002년이 중요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대 선거가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중요하다고 하는가?
2. 권력재편기로 기록했던 ‘2002’
2002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옛 일을 떠올리며 고백을 하나
하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여 년 전 2002년은
‘권력재편기’가 될 것이라고 당시 나의 근접한 운동지형에서는
선언하였다. 물론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과정을 반성적으로 고찰해 볼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 당시도 지금도 운동판을 바꿀 수
있는 대단한 활동가는 아니지만 그때도 지금도 변함 없는 것은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정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역사적 과제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 들어가 좌파학생운동을 시작할
무렵, ‘전노협’이 결성되었다. 이 땅의 노동자가 전국적인
조직을 건설하여 자기의 이해와 요구를 한 목소리로 제출할 수
있는 조직이 이 땅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고, 선배들도 대단한 진전이라고 했다. 전노협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발전한 노동운동의 결과라고 평가하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조직이 없던 노동자계급에게
대중조직으로 전국적인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를 갖게 된 것은
꿈만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전노협 진군가’는 ‘혁명의
노래’요, ‘투쟁의 노래’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한 전노협은
결성되자마자 국가의 탄압을 받았다. 89부터 이어진 공안정국의
연속일 수도 있고,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조직을 건설하였다는 것
자체가 국가와 자본에게 위협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하였다.
노동자들이 전노협을 중심으로 결성되어질 때, 분열된
지배연합은 그 위기를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을 결성하면서
돌파하였다. 민자당을 결성한 지배연합은 1987년 이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요구투쟁을 막고, 기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보수대연합의 구축이다. 이러한 보수대연합과
전노협의 대결은 불가결한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90년과 91년
전노협은 ‘총파업’을 불사르면서도 노동운동 탄압에 대한
저항을 하였다. 그러나 탄압에 대한 저항으로서 ‘총파업’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중대한 것이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연속이자 새로운 노동자 계급운동의 출발이라는 역사적
의미에서 탄압에 대한 무저항적 후퇴는 심각한 조직적 정치적
의미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는 지배계급은
수서비리, 페놀 방류 등 권력형 비리들이 폭로되고, 전세값 폭등
등 민중의 삶이 위기에 몰리자 민중운동, 학생운동도 들불처럼
타올랐던 때이다. 학생운동은 ‘민자당 3당 합당 반대’를 위한
동맹휴업을 시작으로 연일 거리에서 시위를 하였고, 그때 당시
강경대 열사를 시작으로 김귀정 열사, 박창수 열사 등 열사들이
쓰러져 갔던 때도 그 때이다.
그때 난 이러한 정세 속에서 한국에서 변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했던 것이었을까?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순진했던 정치적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1년 소련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한국에서는
수만의 대중들이 ‘임시정부 수립’ 또는 ‘민중권력 쟁취’를
외치면 거리로 몰려나왔을 때,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의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변혁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볼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이 ‘한국노동당’을 만들면서
나의 기대와 꿈은 더 구체적으로 되어갔었다. 이 땅에
노동자계급이 정치의 주체로 전면적으로 등장해야 할 때이고,
그것이 ‘한국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내가 속한
조직이 시작한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한국노동당’ 출범 당시 다른 정파와 뜨거운 정치적 논쟁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를 보면서 ‘의회주의’,
‘합법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비판하였을 때도 나는 그들이
좌익소아병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역으로 논박하였다. 그리고
90년과 91년 고양된 대중투쟁을 기반으로 정치조직을 형성하고
발전시킨다면 92년 대선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역사에서
중요하게 기록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합법진보정당’ 운동을 10여 년 동안 꾸준히 활동한다면 의회
내에 노동자 대표도 세우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는 ‘권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푼 꿈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노동당의 운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기존
민중당과 통합하면서 통합민중당의 길을 걷게 되었고,
통합민중당으로 92년 총선을 경험했지만 그렇게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2년 대선은 유례 없이
좌파정치조직이 모여 ‘백기완 선대본’을 결성하여 공동활동을
하였다. 물론 당시 결합한 조직들은 각각의 조직적 목적을 다
달리하고 있었을지라도―‘조직유지’를 위해서이든 ‘조직의
확장’을 위해서이든―결합한 모든 조직은 92년 대선에서
노동자․민중 후보인 백기완 선생님이 결정적인 의미를
획득하기를 바랬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92년 대선은
참혹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대단한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들은 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밖에 안되었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나는 그 이후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92년 대선 이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운동권 내에는 극심한 청산주의, 해체주의가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판단이었는가? 무엇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 등등.
그 이후로 10여 년이 흘렀는데, 똑같은 역사적인 반복을 할
위험에 처하고 있는 것 같다. 2002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부정적 결과들로 인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요구가 증가하고 있고, 김대중 정부의 실패한 개혁, 실패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대중들의 불만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고
있다. 또한 서서히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요구투쟁들이
증가하고 있는 정세이다. 역사적인 반복을 할 위험이라고 하는
것은 이 정세가 급박한 정세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세 속에서
선거가 차지하는 의미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일정
중심적인 사고가 여전히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의 약진을 위한 2002년 양대 선거는 중요한
발판임으로 100만 표에 달하는 지지를 획득해야 하고, 2008년,
2012년에 교섭단체로서 진보정당이 성공하고, 2016년에 권력을
획득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목적이 없이는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이 제기될 수 없다고 한다. 만약 십분 이러한
정치적 일정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치일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현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들에 대해서는 너무 곤궁한 것이 아닌가? 표는 그냥
얻어지는가? 소위 돈도 조직력도 정책도 없는 정당에게 누가
투표할 것인가?
3. 과거 대선 국면에 대한 간단한 조망
좌파정치조직들은 과거 87년 92년 97년 대선의 경험을 각기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92년 ‘백기완
선대본’의 경험 이후 한국에서 좌파조직은 크게 4가지 흐름으로
형성되었다. 민노당으로 대변되는 합법진보정당노선,
민중후보론으로 대변되는 사회당, 독자적인
노동자계급정당노선으로서 노동자의 힘, 그리고
비합전위전당노선으로서 비합정치세력이다. 이러한 4가지 흐름이
뚜렷이 존재하기 전에 97년 ‘국민승리 21’은 또 한번 좌파의
연대적인 정치활동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성공보다는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실패라고 평가하는
것은 좌파의 연대적인 정치활동에 대한 또 한번의 불신을 남겼기
때문이다. 97년 이후 각자의 노선에 따라 움직였고,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2002년 대선을 맞이하여 ‘연대 또는
통합’ 논의를 또 습관처럼 진행하고 있다.
과거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관한
논의가 10여 년 이상 존재했었고, 그 구체적인 형태가
한국사회에서 각각 조직적 흐름으로 형성된 이상, 우리는 다시
한 번 반복된 실패의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역사적으로 대선을 둘러싼 정치적 공간 활용의 결과가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진전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활동하였는가이다.
일례로 97년 대선을 보자. 97년 대선은 노동운동이 오랜
퇴조기를 거쳐 96~97년 총파업을 시작으로 대중투쟁이 다시
고양된 시기에서 치뤄졌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해고제가
입법화되고 파견제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정치적 이슈로 등장하는 시기에 노동자 대중투쟁이
다시 고양되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경제위기에 따른
지배계급의 정치적 위기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민중이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여 정치세력을
진전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97년 대선은 다시 한 번 이
투쟁의 과정들을 정치적으로 진전시키기보다는 정치적 퇴보를
다시 걷게 되었다. 물론 이것을 퇴보가 아닌 단지 미흡함, 경험
미숙으로 판단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투쟁의 고양을 정치적으로 진전시키지 못한 좌파 정치조직의
무능력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87년 대선도
92년 대선도 97년 대선도 선거를 둘러싼 과정 내에서 대중투쟁이
폭발하였고, 운동이 고양되었지만 이러한 투쟁의 과정들을
유의미한 정치적 진전으로 수렴시키지 못하였다. 물론 조금씩
조직화된 결과, 그 결과가 산개해 있고, 분열되어 있는 그 상태
자체가 진전이자 발전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
상태에 만족하는가?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4. 2002년 선거국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관문들을 통과해야 한다. 분단모순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급모순은 제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균열에 기반 한 현재의 정당구도도 노동자 계급정치를
실현하는데 있어 어려운 난점들을 제공하고 있다. 분단모순은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냉전적 사고와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시켜
놓았고, 이러한 분단모순을 근거로 자기의 물질적 이해를
유지하는 세력들이 한국사회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분단모순은 한국사회의 운동
지형에서도 복잡한 지형을 만들어 놓았다. 지역균열은 또
어떠한가, 한국 정치가 좀 더 낳아지는데 지배적인 걸림돌로
지역균열이 작용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지역균열에 기반 한 정당구도는 보스 1인 중심의 정치로서
정책과 이념이 아닌 인물과 인맥을 중심으로 퇴행적인 정치를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다수의 노동자계급도 이러한 지역균열에
기반한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러한 현실적인 장애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현실을 노동자계급이 노동자계급적 인식과 판단으로 실천적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의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의식이 전반적으로 기대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평가이지
않는가, 사실 노동자계급의 주체형성과정 자체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과제인 한, 복잡한 자본주의적
관계에서 노동자계급을 독자적으로 주체형성 할 수 있는 것만큼
어렵지만 그 이상 중요한 과제는 없다. 60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의 노동자들, 그리고 조직되지 않은 수많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정치적 조직화 대상의 일차적인 대상이 아닌가.
이러한 목표를 명확히 하지 않을 때에는 계급연합당마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2016년 집권을 너무나도 관념적인
기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좌파정치조직에게 유리한 정치적 계기들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92년 97년 그러한 최소한의 지지를 얻은 것은 그만큼의
정치활동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만큼 대중투쟁과 결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수준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전면적으로 대중투쟁과 호흡하고 대중투쟁 속에서 성장하는
노동자계급의 역량을 발판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지금 현재 발생하는 모든 대중투쟁의 이슈들은 상호복합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민영화 반대’를 요구하는 발전노조의
파업도 그렇고, 월드컵을 매개로 전국 노점상들과 국가와의
싸움이 진행되는 상황도 그렇고, 매일 매일 피곤한 삶에
엽기적인 사회적 범죄들이 증폭되는 현실, 그 사람들 …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정치적
지지를 구걸할 것인가? 그들을 정치적 주체로 등장시키는 것
자체가 진보적인 정당이 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진보정당이
살아 있어야할 이유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거국면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대중들의 요구투쟁이
증가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며,
정치적 투쟁이 제한적으로나마 제도적으로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2년이 2004년의 선거를 위해서 교두보 역할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하는 그 판단을 위해서 조차도 2002년 대선의
정치적 결과는 2002년 대중투쟁의 성과와 진전과 직결된다는
지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과거 지자체 선거가 지역을 민주적으로 재편하기를 기대했던
것마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지방정치는 퇴행적인 중앙정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보수적인 지방토호세력의 이해로만 점철되게 만들었다. 물론
전혀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노동자․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지자체가 서민들과 공간적인 밀착감이
있다고 하는 장점을 기반으로 더 ‘계급적’일수록 더 정치적
의미를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보다 지역을 장악하려고 하는 전략이 승리하기 위해서
정치적 주체 명확한 설정과 지역정치를 바꾸어낸다고 하는 전망
속에서 배치하여야 할 것이다.
5. 마치며
신자유주의가 일상적으로 관철된다고 하는 것은 다수의
근로대중들이 먹고살기가 더 어렵고, 하루하루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 것인가를 암담하게 만들어 놓는다는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먹고살기조차 어렵기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어 놓기도 한다. 이미 노동자․민중의 삶과 대의제
정치공간은 공간적 거리가 있다. 아무리 정치가 현실의 자기
삶을 억누르는 거대한 구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치라는
영역이 대리정치로 고착되면 될수록 ‘그들만의 리그’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가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중요할 수 있는 것은
다수의 노동자 민중이 개별적으로 아무리 잘먹고 잘살려고
발버둥쳐도 이러한 정치․경제적 조건에서도 별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 지점 때문이다. 자본주의 구조에서
먹고살아야 하는 이 구조적 종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위해서조차도 한국에서의 노동자계급은 집단적으로 계급적으로
조직되고 정치적으로 진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국가의 거대한 구조적 횡포 속에서 오늘도 자기 삶의
피폐함과 피곤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좌파정치조직은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민중에게
진정한 희망을 주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들에게 의석을 줄 것인가?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줄 것인가? 특정한 국면이 되면 두 가지가 위배되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2002년 선거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2002년 대중투쟁과 전면적으로 결합하고 그
투쟁의 성과,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발전을 정치적으로 묶어낼 수
있도록 자리매김시켜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