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컬럼 > 목록보기 > 글읽기

 
민주노총 시대의 노동자 역할

현장에서 미래를  제7호
김명희

시 ◦◦ 평



민주노총 시대의 노동자 역할


김 명 희 (철도지원연대 운영위원장)


어느 시대나 노동자가 갖는 사회적 역할은 진보와 변혁의 방향에 서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특히 민주노총 시대를 전제로 하여 노동자의 역할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최근의 노동운동과 관련된 모든 논의 속에는 늘 민주노총을 거론하고 있고, 그만큼 현 사회에서 노동자의 역할을 다루는데 민주노총이 갖는 막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런 분위기와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고 어차피 우리의 고민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에 두지 않고는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조건 속에서 가능한 사업을 상정해보고 제 여건을 검토하여 구체적 실천계획을 세워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이와 같은 작업은 직책을 가진 몇 몇 간부만의 몫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우선 수많은 고민과제 중 현시기에 집중해야 할 총선방침과 관련된 우리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화두로 던져보고자 한다.

무엇이 우리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막았나?

민주노조운동이 조직적 진출을 시작한 87년은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정치운동사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있는 한 해였다. 87년 대선 당시 나의 순진한 경험과 느낌을 소개하면 무엇보다 큰 관심은 단연 민주투사인 양김씨에게 모아져 있었고, 내가 속한 서울지하철 노조간부의 상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양김씨의 유세장에서 만나는 조합간부의 모습은 정확히 구분되어 있었는데, 민주노조 활동을 한다는 우리 동지들을 갈라놓는 잣대를 유심히 파악해 보니 별것 아닌 지역정서의 더러운 찌꺼기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활동 영역에서 보여진 현상적 결과일지 모르지만 심지어 “김대중을 찍느니 차라리 노태우를 찍겠다”라든가 “김영삼을 찍느니 노태우를” 하며 지역감정의 극치를 보여준 지난 일을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폭발적 투쟁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비록 투쟁의 전선에서 많은 동지들이 구속되고, 해고의 희생을 거듭했지만 임금이 오르고, 작업장내 근로조건이 개선되고, 보다 인간다운 삶의 질로 변화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살맛나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정치적 진출은 큰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진출이 더딘 것을 지역감정의 결과로만 규정지을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군부독재정권의 유지․강화는 계속되었고, 민족민주진영의 싸움은 늘 우리의 큰 희생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결과도 초기 노동운동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민주노조 진영의 시행착오적 투쟁의 부산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수 년간의 치열한 투쟁을 토대로 어렵게 조직을 결성해낸 전노협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자의 대응 역시 자족할 일만은 아니다. 울산지역은 권력과 자본을 상대로 결사투쟁을 실천해 온 역사 때문에 노동운동의 성지(聖地)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울산지역에서 보여준 총선과 92년 대선의 결과는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많은 시사점과 과제를 던져 주었다. 울산에서의 정몽준의 국회진출, 정주영에 대한 울산 동구지역의 높은 득표율 등은 ‘노동자는 왜 싸우는가?’,‘누구를 상대로 싸우는 것인가?’,‘우리가 투쟁의 현장에서 늘 외치는 노동해방은 무엇이고 권력과 자본은 우리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등의 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하고 있다. 만약 울산의 이러한 모습조차 운동의 발전과정에서 겪어야 할 아픔이라면 극복의 과제로 남겨놓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전노협의 무책임한 대선방침까지 역사속에 묻어둘 수는 없다.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노동자의 올바른 정치적 관점을 모아내기 위해 주어진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으며, 전노협의 의견이 민족민주진영의 선거방침으로 제기되는데 필요한 절차와 과정은 어떠했고, 최종결정된 방침을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뒤돌아 보아야 한다.

전지협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확인케 했는가?

수 십년에 걸친 폭력군인의 탄압이 온존하고 그래서 늘 결사항전을 이야기하면서도, 권력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품에 온 몸을 맡긴 김영삼을 지지한다거나, 대통령이 되는 데 필요하다면 이 나라 역사발전을 뿌리채 흔들어 놓은 박정희의 묘소까지 참배하는 김대중을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지지하자는 등. 참으로 한심스러운 모험들을 해온 것이 민주노조진영의 모습은 아니었던가? 그것에 비하면 92년 「민중후보 백기완선거대책본부」로 대표되는 민중진영의 선거전술은 분명 87년 양김통합을 의도한 것과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변화․발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최근에 확인 발표된 바와 같이 이들 양김은 자신의 권력승계 이후를 대비하고자 양김 모두에게 대선자금을 제공한 노태우와 크게 다를게 없지 않은가? 물론 그들에게서 차이를 발견할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고향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체중이 다르고, 얼굴 모습이 다르고, 이외에도 수만 가지의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노동자의 삶을 바꿔내는데 진정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로 현실적 제조건을 무시한 채 지지,지원 가능한 모든 세력을 모두 차단하거나 적으로 규정하자는 극단적 요구는 아니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대중과 함께 가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안은 무엇이고, 어떠한 과정을 통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보다 분명한 방침이 절실하다. 나는 94년 철도, 지하철 노동자의 전지협 공동투쟁에서 확인된 보수야당 내의 진보블럭 의원들의 태도를 반추해보는 것이 이후 노동자의 정치활동을 고민하는 데 어느 정도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업종별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지도부의 입장에선 파업투쟁을 준비하는 것과 함께 다양한 대화전술을 시도해 보았다. 예상대로 정부와 여당은 물론 노동부의 태도는 기대조차 하지 않은 요식행위에 불과하였지만, 수권정당과 정통야당임을 부르짖은 당시 민주당의 자세 역시 기대할 만한 가치가 없음을 우리는 확인하였다.
물론 이러한 지적조차 보수야당 활용론자들에겐 비위에 맞지 않을런지 모르겠지만 이제 객관적 사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조차 미루어선 안된다. 당시 전지협 지도부는 민주당 내의 노동위 소속 의원들에게 간담회를 요구하여 회합을 가졌으나 우리가 만난 의원은 평소 자주 뵙는 연로하신 한 분에 불과하였고, 그 잘났다는 소위 운동에 맛을 보았다는 젊은 의원나리들은 보좌관 또는 비서를 대리 참석시키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였다. 지루한 간담회 이후 돌아오는 길에 석간신문을 통해 확인된 민주당 대변인의 철도,지하철 노동자에 대한 자제 요구는 우리들의 분노만을 일으켰다. 특히 총파업에 돌입하자 야당으로서의 명분상 대책위를 구성했다는 소식은 들려왔지만 파업지도부가 구속되기까지 두 달 이상의 농성기간 동안 대책위원장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회에서 최저 근로조건의 기준으로 자신들이 제정한 현행 노동관계법에도 없는 변형근로제를 철폐하고, 자율교섭을 통해 임금가이드라인을 철폐하고자 하는 노동자에게 투쟁을 자제해 달라는 요구를 과연 그들이 할 자격이 있는가. 투쟁의 요구가 지극히 소박한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달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가능한 대응조차 회피하는 그들에게 노동자의 삶을 맡길수 있는가 말이다.
또한 총파업 기간중 노동자에겐 현장복귀를, 정권에겐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대처를 요구하며 양비론적 자세로 흥정의 마술을 부린 모신문사 사장과 모사무총장은 노동자 투쟁을 무기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온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원로들을 활용해 폼나는 기자회견을 갖고, 그것을 자신들의 실적으로 만든 후 노조내부의 현안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과 역할도 하지 않으며, 한 사람은 정개련이라는 정치조직의 핵심으로, 또 한 사람은 김영삼정권에 추파를 던지다 바람맞은 위기에 처해있지 않은가? 민중진영을 기만한 채 이미 오래 전에 변절한 자들은 절대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투쟁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전지협투쟁 과정에서 분명히 확인했다.

노동자 삶의 본질을 바꿔내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해야!

나는 이제야말로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진영이 보다 적극적이고 분명한 정치적 입장과 실천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와 같은 요구가 늘 탄압속에서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도 힘겹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현장의 조건을 이유로 또다시 유보된다면, 민주노조운동의 값진 성과는 결국 기만적인 보수정당과 개혁으로 위장한 일부 권력지향적 세력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돌이킬 수 없는 큰 과오로 남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동지들! 우리는 이제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은 민주노총이라는 희망속에 그 내용을 채워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안고 있다. 10여 년에 걸친 우리의 투쟁 성과가 온전히 계승되기 위해서는 작업장의 현안문제 못지 않게 노동자 삶의 본질을 바꿔내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늘 해왔듯이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조차 노동자적 전망이 분명치 않은 단기적 선거전술의 배치로 임해서는 실패의 경험을 또하나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금년은 특히 민주노총 건설 원년으로서 우리의 운동방향을 정립시키는데 매우 중차대한 한 해가 될 것이다. 물론 정치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견해와 요구들이 조직적으로 모아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반드시 돌파해야 할 과제가 현행 선거관련 악법이나 노동악법으로 인해 장애가 된다거나, 또는 공식조직에서의 통일된 견해로 모아낼수 없다면, 동일한 입장으로 담아낼수 있는 정치활동 실천가조직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노동자 후보의 진출, 그리고 민주후보의 당선이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치열한 고민과 새로운 출발로 민주노조진영의 힘을 모아내자.
한/노/정/연

1996-01-20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