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부도, 파산기업에서의 노동자 투쟁과 그 교훈
김 인 식
안양노동정책교육실
1. 들어가며
경제신문을 보다보면 한 귀퉁이에 잊지 않고 날마다 나오는
기사란이 있다. 어제 어느 사업장이 부도났는지, 어느 사업장이
파산됐는지 알리는 기사이다. 자본과 언론은 부도, 파산에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부도, 파산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다.
노동운동에서도 대공장이 아니면 이러한 문제는 해답이 없는
갑갑한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다가 사장
잘못 만나 힘들게 되었구나?” 하는 동정의 눈길로 바라본다.
지금까지 파산사업장의 문제는 갈 때까지 간 사업장의 문제
내지는 부도사업장의 문제로 제한되어 바라 보아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만이 아닌 개인 파산의 증가, 기업내부의
경쟁시스템에 의한 경쟁력이 없는 사업부의 퇴출 실시제 도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작년부터 도입된
금융권에 의한 ‘상시퇴출제도’의 시행은 이제 적정한 이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는 사업장은 언제든지 퇴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운영되고 있다. 이제 파산에서 자유로울 기업,
개인은 없다.
과거의 부도→파산, 청산이라는 구도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IMF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이 맞물리면서 퇴출, P&A이전,
폐업, 파산, 청산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기존의 파산법의 재정비, 신속한 구조조정의
진행, 금융구조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의 결합, 재벌개혁이라는
측면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고, 이제는 상시적 퇴출제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시장의 힘으로 금융권이 분기별로
정기적으로 사업장을 점검하고 구조조정을 강제하며 그래도
성과가 없다면 시장에서 퇴출(파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제 파산은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급증하는 개인파산의
신청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격체인 사람마저도 파산시키는
세상이다. 개인파산은 같은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잊혀져 없는
존재와도 같은 처지이다. 개인파산은 개인의 인격마저도
파괴한다.
2. 부도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미치는 영향
IMF 경제위기 이후 언론에 가끔씩 잊을만하면 하나씩 나오는
기사가 있다. “어느 사업장 노사의 단합된 힘으로 법정관리
조기 졸업, 성공적 구조조정으로 기업회생”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사 뒤에는 반드시(!) ‘기업이 있어야 일자리도, 임금도 있다.
강성노조는 고용과 임금의 대안이 아니다.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협력만이 그 대안임을 00사업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한때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보루네오의
법정관리 조기 졸업을 한번 보자.
4번에 걸친 임금동결과 반납, ‘노사화합선언’, ‘과감한
구조조정’만이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뿐이지,
노동자의 겪어야 했던 참혹한 현실과 고통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92년 법정관리 개시 당시 3,000명이 넘던 조합원 중 2001년
조기졸업 당시 살아남은 조합원은 700명에 불과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에 만족하며 저임금과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했다. 5년차 생산직 노동자가 매월 60시간
이상 초과근로를 하고, 상여금을 포함해도 고작(!)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저임금에 대해서도, 살을 도려내는 고통도,
턱없이 강화된 노동강도도 모두 노동자의 몫이다.
“왜 이렇게 노동자들에게 참을 수 없는 일방적인 고통을
강요하냐”는 절규에 대해 자본과 언론은 “그것은 너희
사업장이 부도났기 때문이다”고 친절히 설명한다. 그리고 한
마디 충고한다. “싫으면 나가라”고.
부도, 파산사업장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자본의
무한경쟁이 그치지 않는 한,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부도, 파산사업장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도, 미래의
문제도 아닌 바로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다. 자본과 DJ 정권은
한보, 기아자동차의 부도를 계기로,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파산법의 재정비, 부도유예협정, 워크아웃,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거쳐 이제는 금융권에 의한 일상적인
퇴출을 제도화하려하고 있다.
자본의 이러한 대응에 대해 노동운동은 자본의 변화를
쫓아가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다양한
파산사업장의 투쟁이 있었고, 다양한 방식들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에 맞서 작지만 치열한 부도, 파산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3. 부도, 파산의 유형과 자본의 공격
파산의 유형은 크게 청산, 폐업과 퇴출, 파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형식적으로 청산, 폐업이 기업 내에서 자체적으로
기업활동을 정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퇴출, 파산은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금융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30대
그룹 중 16개가 퇴출되거나 구조조정을 겪고 있고, 은행부문의
하나의 예를 보더라도 퇴출, 청산 등을 통해 전체직원의 3분의
1인 10만명을 감원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형식적인 구분에 불과할 뿐이다.
파산은 개별사업장의 문제이지만 절대로 개별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다. 경영의 위기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개별사업장의
문제이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자본의 과잉문제, 경쟁의
격화와 이윤의 저하에 근본원인이 있다. 파산은 과잉자본의
폭력적 파괴로 이해한다면 정상적인 기업내부에서도 나타나는
부분적 공장폐쇄와 같은 경우는 부분적인 파산의 범위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성은 그룹 60주년
기념식에서 “구조조정에 성공하지 못한 계열기업은 퇴출밖에
없다”며 그룹 총수가 비장한 각오로 결의하지 않는가?
결국 파산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그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노동운동의 대응은 그동안 체불임금,
퇴직금 지급이라는 요구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었다. 지금도
파산사업장의 경우 체불임금과 퇴직금은 가장 중요한
투쟁과제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수많은 사업장이 파산되었고,
그 중 대다수의 중소사업장에서 자본의 지불능력을 얘기하며
임금과 퇴직금을 떼먹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파산이 있었고 파산에 항의하는 투쟁이 있었다. 이런
파산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비록 퇴직금 3년치, 체불임금
3개월치이지만 사회적 책임으로 만들어내는 성과를 만들었다.
한편으로 노동운동 내에서는 경제위기 속에서 다양한 투쟁의
사례를 조직하고 만들었다. 건설산업에서 산업별 대응으로서
실업운동 조직화, 그룹 퇴출계열사의 경우 그룹 내지는
타계열사로의 고용승계투쟁, 파산투쟁 후 지역노조 가입, 산별
가입을 경의하며 운동의 경험과 성과 계승, 키친아트와
조흥시스템 등에서 진행되었던 노동자 기업인수방식 등 다양한
형식들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형식에 대해서 구체적인 평가와 진단이 뒤따라야
하나, 필자의 한계로 이후 과제로 넘기고자 한다.
파산의 문제는 퇴출과 같은 충격적인 해소방식이 아닌 경우
일반적으로 부도→파산의 길을 걷는 경우가 여전히 다수이다.
부도라는 사실은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객관적으로 경영이
계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부도도 넓은
의미의 파산의 범주이다. 파산3법(회사정리법, 화의법,
파산법)를 대표하는 것이 파산법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부도사업장에 대한 이해와 대응이 넓은 의미의 파산에 대한
대응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4. 파산사업장에서 나타나는 제 문제
퇴출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파산사업장의 경우 경영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 후 일정기간 동안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파산으로 나타난다.
부도사업장의 경우는 자본의 재생산이 유지되는 경우에는 매각
문제, 현장통제문제부터 노동강도 강화, 정리해고, 노조파괴 등
자본 재생산 유지를 위한 노동조건에 대한 제반의 공격이
쟁점으로 떠오른다. 그나마 규모가 크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업장의 경우에는 투쟁의 대상과 목표가 명확할 수 있으나,
중소사업장의 파산과 같은 경우에는 재생산이 중단되면서
근로관계가 일방적으로 해지되고 체불임금, 퇴직금조차도 한푼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도사업장의 문제는 97년 기아자동차로부터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IMF 경제위기와 대량의 부도에 따른 부도사업장 투쟁에 대해
노동운동의 대응은 고용과 임금 어느 것 하나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인 대응에서부터 고용을 위해서라면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임금삭감, 희망퇴직 등
노동의 유연화를 일정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
고통분담을 전제로 한 노동조합 경영참가론, 기업별 부도와
실업의 문제보다는 산별 차원의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력 확대,
노동시간 단축 등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대응은
단위사업장을 떠나, 일률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부도사업장이 자본의 과잉과 경쟁의 격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부도의 원인은
사업장에 따라, 산업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도라는 현실이 곧바로 고용과 생존권의 위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부도라는 현실은 분명 ‘고용과 생존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부도 후 파산을 앞둔 사업장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한다.
첫째는 조금만 노력하면 회사가 정상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바램이다. 그리고 사실상 회사의 대표인 채권단은
“적정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한다. 바램과 협박의 타협점이 회사살리기운동으로 종종
나타나곤 한다. 이는 파산의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판단
속에서 그래도 기업이 유지되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는 소박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파산을 앞둔 사업장 노동자들은 “지금 일터에서 나가면,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뿐더러 내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이제는
40대 중반은 경비로도 채용되기 힘들다고 한다. 먼저 나간
동료들을 만나면 대부분 실업급여로 생활하고 그나마 취직한
동료들의 경우를 보면 예전의 임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동료들은 임금을 줄어서라도 계속 다니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고 얘기한다고 현실을 한탄한다.
노동조합 간부들은, “채권단은 이익을 내지 못하면 파산시킬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공장을 책임지겠다는 경영진도 없다.
노동조합에게 모든 요구가 집중된다. 채권단은 임금을 삭감하고,
인원을 줄이라고 한다. 조합원들은 회사를 계속 다니게 해달라고
한다. 노동조합에게 요구는 많으나, 선택할 권한은 없다.
지금이라도 파업을 포함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파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채권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장폐쇄와 파산을 신청할 태세이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임금을
나누는 한이 있더라도 같이 가고 싶으나, 채권단은 무조건
인원을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라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손해보면서 공장을 돌릴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싸워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 죽는 길이
분명한 것을 알면서 그 길을 선택할 수는 없다.
‘싸워라’라고만 하지말고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호소한다.
파산사업장 노동자들의 경험에서 ‘회사살리기운동’, 임금반납,
노사화합선언 등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회사가 있어야 고용도 있다’는 이데올로기 공세와
고통분담은 결론적으로 일부에서 파산을 조금 지연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파산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채 대부분
파산으로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살리기가
실패했다고 얘기한다고 파산사업장 노동자들의 대안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5. 투쟁사례
파산, 퇴출, 폐업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파산사업장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1) 첫번째 사례, 하청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금성기공투쟁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동차업계의 불황과 기아자동차의
부도는 자동차산업 부품업체들에 있어서 줄 이은 부도와 파산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부품산업의 부도와 파산, 폐업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아자동차에 전량 납품하던 자동차 부품회사였던 금성기공은
기아자동차의 부도의 직접적인 충격 속에서 회사폐업 되었다.
결론적으로 금성기공은 회사폐업으로 인하여 고용도, 생존권도
지켜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투쟁의 과정을 통해
노동자가 싸우는 이유가 고용과 생존권만을 위해서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투쟁의 결론은 전 조합원 앞에 사장이 무릎
꿇고 공개사과하고 이후 지역노조 가입을 통해 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금성기공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투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금성기공도 한때 많은 사업장에서 나타났던 회사의 계속적인
운영, 그리고 고용보장을 위해 상여금을 반납하기도 하였다.
이른바 ‘고용’과 ‘임금’의 맞바꾸기가 진행됐었다. 98년 6월
노사협의를 진행하여 아래와 같은 합의문을 도출했다.
‘… 외부의 요인으로 인한 기업 도산이 아닌 한 … 고용을
보장하며, 제3자 인수시 … 고용승계, 폐업할 경우에는 계열사로
이전배치를 한다.’
‘노동조합은 회사의 경영상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상여금 300%를
반납한다’ 등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곧 회사의 정리작업(금형반출, 폐업)으로
인하여 그 의도가 명확히 드러났다. 이 가운데 일부에서는
임금과 퇴직금을 받기로 하고 금형반출에 합의해주고, 회사를
정리하기도 하였다(금성기공은 금성계열사 4개 중 하나임).
금성기공 노동조합은 금형반출과 폐업에 맞서 계속해서 현장을
사수하고 조합원 교육,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8월 사측은
포크레인을 동원해 노동조합 사무실을 부수고 집기를 모두
가져가 버렸다. 이때부터 금성기공 노동조합은 ‘폭력적 금형
반출에 대한 공개사과, 부당노동행위 처벌, 고용승계’ 요구
투쟁을 회사에서 나와 명동성당에 11월 26일까지 110일에 걸친
‘농성’이라는 새로운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투쟁과정에서
32명의 조합원 중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투쟁을 함께 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 잘 알기에 금성기공의 투쟁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면에는 전 조합원
현장소모임활동, 교육을 비롯한 노동조합 활동 10년의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해산하고 지역노조 가입을
결의하고, 2주 1회 조합원 만남시간, 월 1회의 친목회를 열어갈
것을 결의하고 투쟁을 정리하였다.
이 투쟁을 통해 우리는 파산, 폐업이라는 자본의 공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고 먼저 자포자기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함과 투쟁의 정신, 노동운동의 소중한
경험과 성과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파산은 노동자에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함을 보여준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마무리를 얘기하는 것은 조직력이 하강국면에
있을 때 마무리하게 되면 그동안 싸워온 성과와 보람이 일시에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이구요, 지금처럼 조직력이
살아 있을 때 전망을 모색하면서 다른 활동을 찾아나가야
하겠지요.”(인터뷰 내용 중에서 재인용)
그리고 노동조합이란 임단협, 조합원의 권익에 머물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소중한 기지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처음부터 금성기공 조합원들이 투쟁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깨달았다.
“현재는 모든 투쟁이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어느 곳 하나
쉬운 곳이 없지요. 이럴 때일수록 최선을 다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투쟁이 비록 ‘나’ 혹은 ‘우리
노동조합’의 이익이 되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전체의
성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를 위해서는 전체가 믿음과 신뢰 속에서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먼저 깨달은 이들, 혹은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선도적으로 열심히 투쟁해 간다면 우리 조합원들은 믿고 따라올
것입니다. 폐업사업장이나 부도사업장도 마찬가지지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렵다해도
투쟁해 가야지요. 투쟁의 필요성을 깨달은 이들이 모범적으로
투쟁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투쟁력은 그곳에서 살아날
것입니다.”(인터뷰 내용 중에서 재인용)
98년 6월 18일 55개 퇴출기업(3만여명) 발표.
6월 29일 5개 퇴출은행(9천명) 발표.
6월 30일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신고.
7월 3일 11개 공기업 민영화 계획 발표.
98년 6월 실업자 152만 9천명 이중 실업자 100명 당 85명이 소위
‘IMF형 실직’에 해당한다. 이들의 주된 실직 사유는, 일자리가
없거나 사업경영 악화 때문이 41.4%로 가장 높고,
명예․조기퇴직, 정리해고가 18.1%, 직장의
휴․폐업으로 인한 실직이 14.1% 등 비자발적 사유가
73.6%이다.
5개 은행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고 55개 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98년 한해에만 사무금융연맹
산하 사업장의 퇴출노동자만도 18,000여명에 육박했다. 생보사
4개사 2,000여명의 퇴출, 금융위기의 시작이었던 종금사는
23개사 중 14개사가 퇴출되었다.
이러한 퇴출의 바람은 남아있는 사업장에게 점포 축소, 통폐합을
포함한 대규모 인원삭감, 희망퇴직, 비정규직의 확산,
인원삭감으로 인한 노동강도의 강화, 연봉제를 통한 집단적
노사관계의 파괴 등 직격탄의 형태로 날아왔다.
이러한 현상은 IMF 경제위기 이후 한보, 기아를 시작으로
진행중인 대우를 포함해서 부도, 파산의 문제는 30대 재벌 중
16개의 재벌이 공중 분해되고 수많은 계열사들이 하루아침에
해체됐다.
이러한 퇴출과 파산의 압박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과 상시적
퇴출시스템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어떻게 죽을 것이냐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동의서 요구, 채권단의
구조조정방안과 노동자가 추가로 분담할 고통방안 확정 등이
그것이다. 채권단은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지 못하면 임금과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오리온전기의 일부 공장폐쇄,
쌍용자동차의 출자전환과 구조조정 동의서(적정이윤을 보장하지
못할시 추가 임금삭감) 강요가 그 사례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강요를 수용하는 순간, 내가 살기 위해
남이 죽는 모습에 고개를 돌리게 되고 임금과 고용이 회사의
경영성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회사가 망하면 임금도, 고용도, 노동조합도 다 한순간에
무너진다. 정상적인 회사의 운영(적정 이윤의 보장)만이 고용과
임금과 노조활동을 보장한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임금삭감, 희망퇴직, 비정규직의 확대가 고용, 임금,
노조활동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파산사업장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파산의 문제는 결국 자본주의의 내재화된 문제이다. 그러나
파산에 대한 대응에 있어 단위사업장 차원에서의 어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명확하다.
2) 두번째 사례,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현대중기산업
노동조합의 투쟁’
현대중기산업은 98년 55개 퇴출사업장 중 하나였다.
현대중기산업 노동조합은 1998년 6월 18일부터 99년 9월 30일
노동조합 청산위원회를 구성한 날까지 450일에 걸친 투쟁을
전개하였다. 퇴출에 맞서 노동조합은 7월 7일 총파업에 돌입했고
본격적인 상경투쟁이 시작되었다. 고소고발, 수배,
투쟁과정에서의 조합원의 사망, 19일에 걸친 노숙투쟁 등.
이들이 450일에 걸친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가들이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당한 사유도 없이
퇴출시킨 점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분노만으로
기나긴 장기투쟁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투쟁의
동력에는 조합원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못 받다가 87년 8월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 ‘노동조합이 이래서 필요하구나’,
‘노동조합이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있었다.
현대중기노조의 목표는 ‘고용승계’였다. 그러나 투쟁은
1,500만원의 위로금으로 정리되었다. 투쟁의 기간과 요구에
비하면 작을 수 있다. 또 한편에서는 조합원 평균 연령이 40대
말, 50대라는 객관적인 조건 속에서 고용승계가 되어도
‘정년’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조합원들은 싸워서
고용승계를 이뤄내어 단 하루를 일하고 내 손으로 사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쟁취해냈으면 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투쟁을 통하면서 투쟁의 목표보다도 투쟁의 과정이 더
중요하고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꼈기에
위로금으로 투쟁을 다 함께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투쟁의 성과를
노동조합 청산위원회 활동을 통해 계승하려고 하였다.
‘투쟁하는 건 당연히 힘들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해야 한다’는
위원장의 말속에서 투쟁은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다는 말이
연상된다. 이 세상을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이 아닌가?
퇴출사업장의 투쟁은 비단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5개 은행 퇴출에 맞선 삼동은행 노동자들의 투쟁 등 많은 투쟁이
있었다. 이 투쟁을 결과만 놓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결과가 너무 미약하고, 과연 퇴출, 청산, 파산의 현실(!)은
너무나 크게만 느껴질 것이다. 되지 않을 투쟁이 아니라 무언가
될 뜻한 투쟁이 낫지 않겠냐고 하면서 사회개혁투쟁,
제도개선투쟁, 사회보장투쟁 등을 얘기하며 그것이 마치 파산,
부도사업장의 대안인 양 얘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파산, 부도, 청산사업장
노동자들의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로 넘기고, 그들의 투쟁의
의미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고 있다. 부도, 파산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문제이고 현재의 문제이다. 이들의 투쟁에
대안사회의 전망의 실마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6. 파산투쟁의 교훈과 방향
앞서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첫째는 파산에 대한 대응은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보다는 노동조합이 어떻게 활동해 왔는가에 따라 파산이라는
현실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단초가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의 민주적 운영과 단사 위주의 활동을
넘어서고자 하는 활동이 밑받침이 될 때 파산에 대한 노동자의
투쟁도, 대안도 가능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파산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속에서 새로운 모색을 찾아내는 것이
파산사업장 노동자와 노동운동의 과제이다.
둘째는 크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산의 원인을 자본의
부도덕성과 경영자의 무능력을 주요하게 공격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다. 부도와 파산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생산의
무정부성과 이윤을 추구하는 속성에서 비롯되는데, 인격적인
문제와 능력은 효율적인 착취와 경쟁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위기의 원인에 있어 자본의 위기에 대한 협상에서
공세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경영상 위기가 나타났을 때 조합원들은 고용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한편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디에 줄을 설
것인가?’를 고민한다. 결국 회사와 노조간의 주도권 싸움에서,
힘의 관계에서 조합원들은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부도 초기의 협상주도력은 이후 투쟁에서
노동조합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번 한번만 어떻게 넘어가야지 하는 식의 노동조합의 대응은
그나마 쌓아온 성과를 무로 돌릴 뿐만 아니라, 파산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어쩔 수 없구나하는 패배감만을 줄
뿐이다.
셋째는 계급적 산별건설투쟁이다. 파산사업장 문제는 자본의
경쟁이 격화될수록 노동자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상적인
문제이다. 파산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기업별노조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산별노조의
건설과정에서 이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넷째는 파산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바꿔내는 투쟁이 필요하다.
파산은 개별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파산사업장의 문제를 실업자 조직
내지는 퇴직금, 체불임금 확보, 법률적 지원의 수준을 넘지
못해왔다. 이제 파산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노동운동이
최소한의 생존권의 확보라는 사회적 보장제도 마련으로
발전시켜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파산사업장 노동자들은 현재의 사회에서는 대안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고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제반의 투쟁이 있을 때 파산사업장
노동자들이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안사회의
주체로 나설 수 있지 않을까?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