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월드컵인가
안 윤 길
현대중공업노동조합 편집차장
월드컵이 밥멕여주능교?
요즘 매스컴을 보면 거의 월드컵 일색이다. 월드컵을 치르고
나면 나라가 마치 선진국이 될 것처럼 떠벌린다. 하지만 실제
내가 사는 울산동구지역이나 현대중공업 현장분위기는 그저
시큰둥이다.
“곧 월드컵대회가 열린다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월드컵이요? 월드컵이 우리하고 무신 상관있능교? 월드컵이
밥멕여 주능교?”
“일하기도 바쁘고 심들어죽겠는데 무신 월드컵인교? 그렁거
모르겠시다.”
월드컵에 대해 현장분위길 알아보기 물어본 결과, 하청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불쾌한 얼굴로 불쑥 내뱉는 말이다. 현중
조합원 몇 명에게 물어보았다.
“울산에서 경기하면 보러갈 겁니까? 표는 예매해
놨습니까?”
“몽주이 그 인간 회사경영이나 잘 하라카소. 주식 사기당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열 바쳐 죽겠구만.”
“그 쓰잘떼기 없는 소리말고 다른데 가보쇼. 짬나면 TV나 보면
되지.”
이것이 현대중공업 현장분위기다. 월드컵에 대해 더 물었다간
조합원들한테 귀싸대기 얻어맞을 것 같았다. 이해가 된다. 수년
전, 5만 2천원에 산 ‘우리사주’가 몇 년째 3만원대에서
제자리걸음이다(주식상장으로 정몽준 고문은 수백억 챙겼음).
현대중공업엔 호랑이축구단이 있다. 언젠가는 울산경기에 관객이
없어 직, 반장들을 통해 조합원에게 프로축구관람권을
강매하다가 크게 원성을 산 일이 불과 2년 전이다.
얼마 전, 노점상을 하는 친구에게 기막힌 소리를 들었다. 서울은
벌써 노점상단속 비상이 걸렸단다.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도시미관을 해치니 뭐니 하면서 싹쓸이 단속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다행히 전노련(전국노점상연합)
소속이라 지역 회원들이 단결하여 싸운 덕분에 무사했지만, 서울
도심 곳곳엔 많은 노점상들이 싹쓸이당해 생계의 터전을 잃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단속중이라고 한다.
이런 일들이 월드컵 때문에 생겨났는데도 텔레비전에선 이런
장면을 일체 볼 수 없다. 16강에 드니, 못 드니 따위, 월드컵만
치르면 나라가 금방 부자가 될 것처럼 떠벌리는 얘기들, 화려한
축구장면들만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메운다.
‘월드컵’이 사람잡는다
이 나라에서 이제 곧 국제행사인 월드컵대회를 치른다니 왠지
섬찟하다. 지난 88올림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88년 한
해 전엔 반세기 가까운 독재와 착취의 억압을 떨치고 노동자들이
대거 일어났다. 이른바 87년 노동자대투쟁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바람(요구)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88올림픽에
휩쓸렸다.
당시 노태우 정권과 자본가들은 올림픽만 치르고 나면 금방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것처럼 떠벌리면서 이 시기에
노사분규(?)를 일으킨 놈 있다면 때려쥑일 놈들로 매도했다.
실제로 올림픽시기에 때맞춰 파업을 일으킨 노동조합이 있었는데
그 노동조합은 매스컴을 타자마자 지배층은 물론 같은 노동자
민중들에게도 직싸게 욕을 얻어먹고 파업을 멈추고 말았다.
헌데 그 88올림픽은 끝나고 한 1년 쯤 지나서야 ‘소문 난 잔치
먹을 것 없다’라고 매스컴을 타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잘은
모르지만 한국에서 올림픽 치르는 동안 이웃나라인 일본은, 싸고
친절한 숙박시설, 관광 따위로 짭잘한 재미를 봤다는 것이다.
그러자 각계각층에서 88올림픽에 대한 비리와 불만이 터져
나오고 국회에서는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둥, 여당야당 정쟁이
벌어지고 그때서야 국민들은 쥑일 놈 살릴 놈 와와 하며 뒷북을
쳐댔다. 올림픽 때 파업한 노동조합을 매국노 취급하던 그
국민들이 말이다. 어디 올림픽뿐이랴. 나라에 국제행사가 있을
때마다 노동자 민중들의 피울음소리는 철저히 그 행사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우리 국민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맨날 속으면서도
지배자들 손길에 잘도 이끌려 다닌다. 덕분에 노동자들 투쟁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또 올림픽 그 당시 서울을 비롯한 노점상들은 또 얼마나 수난을
겪었던가. 이제 월드컵을 한달 남짓 두고 서울에서부터
노점상들이 싹쓸이 수난당하는 것을 보니 마치 88올림픽이
되풀이되는 것 같다.
그뿐인가. 몇 년 전부터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쫓겨난 수많은
해고자들, 실업자들, 노숙자들! 발전노조 파업으로 쫓겨난
해고자들, 해외매각에 구조조정을 앞둔 공공연맹 노동자들,
이렇듯 수많은 노동자들이 또 거리로 내몰릴 지경에 이르렀는데,
해결하기는커녕 이 모든 불씨를 슬그머니 감추며 월드컵을
치르겠단다. 월드컵을 빙자해서 민중을 거리로 내몰아놓고선
월드컵을 치르면 고용이 창출되고 나라가 발전한다니 이 무슨
개방귀같은 논리인지 모르겠다.
지배이데올로기로 둔갑한 월드컵
축구가 누구나 즐기는 국민스포츠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면, 프로축구를 비롯해 무슨 ‘컵’ 대회니 하는
국제행사들이 민중들의 삶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어디 축구만 그런가. 매스컴을 타고 행해지는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다. 골프선수 박아무개 선수 연봉과
수입이 00억이고, 메이저에 진출한 박아무개 선수 연봉이
000억이 넘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헤아리고 있지만 산술적으로
사는 민중들에게 무슨 상관 있으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내가 볼 때, 오늘날 스포츠란 철저히 상품이고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매개체일 뿐이다. 즉 자본주의가 착취의 사회로 이끌어
가는데 없어선 안될 도구이며 수단이고 민중을 탄압하는 무기일
뿐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축구, 야구, 농구 골프
따위 각종 프로경기들을 보자.
오늘의 기업풍토는 품질 좋고 값싼 물건을 만들어 팔기보다는
오로지 매스컴을 통한 선전에 치중하고 그 매개체로 스포츠가
이용된다. 경기에서 우승하면 그 기업의 제품이 무조건 잘
팔린다는 발상이다. 막말로 기업의 기술이나 경영실력은 없어도
돈 있고 정치적 빽만 있으면 프로구단 하나사서 우수선수 대거
스카웃해 우승하면 그 기업의 상품은 날개돋힌 듯이 팔린다.
바로 이러한 정서와 분위기를 창출해내는 것이 바로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다. 그래놓고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떠벌리는 자본가들! 이런 사회에서 순수하게 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겠으며 민중의 스포츠라 할 수 있을까.
축구는 무식한 운동이라 우린 신사적인 ‘미식축구’를 한다는
미국을 보자. 한 스포츠 종목이 순수하게 출발해 국제수준에
이르자면 적어도 십수 년은 걸린다. 그런데 미국축구는 불과 몇
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준에 이른 것이다.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데 축구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들은
초강국답게 자본의 축적된 힘으로 빠른 시일에 축구강국이
되었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월드컵은 초국적 자본에서 그 똘마니 역할을
하는 국내자본까지 오로지 자본가들이 민중착취를 위한
지배이데올로기의 흉악한 무기로 쓰여질 뿐이다.
월드컵, 민중투쟁의 기회다
근래에 진보지식인들이 한겨레신문에 신문에 릴레이기고한
‘월드컵포럼’이라는 글을 읽어보았다. 한 마디로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명색이 민중을 위한다는 각 계층의 지식인들이
쓴 글이란 게 하나같이 16강 진출에 강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되느니, 한국의 스포츠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느니 따위, 민중의 삶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만 잔뜩
실려있다.
오늘날 월드컵이 민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지적은 전혀 없고 오로지 축구를 통해서 세계평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논리의 글 따위, 자본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덩달아
놀아나는 글들뿐이다. 또 서구, 동국, 아랍권,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이 참석하기에 유일하게 미국이 간섭할 수
없는 대회라는 따위, 심지어 민중의 반미감정을 겨냥해 실은
글도 있다.
축구는 만인이 즐기고 좋아하는 스포츠지만 그것이 행사로
치러질 땐 민중은 늘 들러리이고 이용물일 뿐이다. 스포츠가
순수하게 발전되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세계전체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점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거대한 괴물로 미친 듯이 굴러가는 자본주의에 스포츠란
한낱 지배자들의 민중탄압의 무기로 쓰여질 뿐이다.
월드컵이라고 별다를까? 정 아무개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면 그
붐을 타고 대통령에 나온다는 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삶과 상관없이 이미 결정난 이상 어떤 형태로든
월드컵은 치러질 것이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노동자
민중들이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지금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지옥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다.
저들은 틀림없이 월드컵 기간 중에 파업을 할라치면 온갖 언론과
매스컴을 동원해 매도해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월드컵과
상관없이 노동자 민중들 삶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오히려
월드컵 기간 중에 최대한 파업과 집회를 일구어 내서 한국
민중의 실정을 세계만방에 폭로해야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할 일이고 민중이 사는 길이고 지배층에
경종을 울려주는 일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