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 총파업 과정에서
정부?자본의 동향과 대응 |
김 영 선/노동자의 힘 |
1. 들어가며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이하 발전노조)은 2001년 4월 2일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분리된 6개의 발전회사 중 수력과 원자력을 제외한 5개 화력 발전회사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2001년 7월 선거를 통해 출범하였다.
발전노동자들은 2년 전 전력노조 시절 오경호 현 전력노조 위원장의 직권조인 등 몇 차례 지도부가 자행한 무력한 파업의 경험이 있었으며 이는 노동조합 지도부에 대한 조합원의 깊은 불신을 형성하는 주된 요소가 되었다. 또한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발전조합원 사이에 팽배해 있는 고용불안, 생존권 위협의 요소들도 노동조합 지도부의 배신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불만요소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즉, 발전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힘에 의하여 건설된 발전노조는 출발의 첫걸음부터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총파업 투쟁을 완수하는 노동조합’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시작된 것이다.
2. 정부-자본의 대응 동향
1) 파업 돌입 이전~서울대 거점농성 및 1차 산개투쟁 돌입(2.26)까지: 언론플레이를 통한 불법매도, 대체인력 투입, 3사공동 총파업의 파괴와 조합원 협박의 시기
2001년 10월 31일 출범한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저지 공동투쟁본부(공투본)’은 2001년 11월, 2002년 2월 두 차례의 공투본 결의대회를 통해 2말 3초 총파업 투쟁의 파고를 높여가고 있었으며 2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투쟁일정을 공식화하였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전국철도노조 김재길 위원장, 발전노조 이호동 위원장, 한국가스공사노조 박상욱 위원장은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철회 등 노조측 요구에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예정대로 25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는 총파업 일정을 확정하였다.1)
정부 및 사용자측의 대응이 마련되고 있음이 공식화된 것은 19일 공투본 기자회견 이후 언론에 의해 기간산업 3사의 ‘25일 파업돌입’이 공포된 직후였다. 김대중 정부는 2월 22일 이한동 국무총리 주재의 법무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노동부 등이 참여하는 노동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대응방침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발전․가스 등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은 명백히 불법”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확정한 이후 철도․발전․가스부문의 대체인력 확보를 통해 파업 충격을 흡수한다는 방침을 수립하였다. 철도 파업에 대비해서는 건설교통부 산하에 ‘정부합동특별수송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비조합원과 군 인력 등 가용인력 활용, 대체수단 증편을 확정하였으며 산업자원부도 ‘합동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하기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산업자원부는 ‘예비율이 전력사용량이 최대치를 기록하는 피크 때에도 20~30%에 달하는 데다 전체 발전의 40% 가량을 원자력이 담당하고 있는 만큼 파업이 시작되더라도 전력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으며 5개 발전회사는 임원들로 구성된 ‘공동비상대책기구’를 통해 퇴직자와 협력회사를 중심으로 한 대체인력 확보작업에 돌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2일 노동관계장관회의와 22, 23일 3사별 노사교섭 이후에도 25일 파업방침이 흔들리지 않자 철도청은 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파업 강행은 철도발전에 역행되는 것은 물론 개인적 신분에도 치명적인 타격이 우려된다”고 호소했다. 특히 발전노조의 경우 22일 끝난 파업 찬반투표에서 재적 조합원 81.3%의 찬성으로 파업안을 가결시키자 23일 5개 발전회사 사장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는 “국내 전력수요는 향후 계속 증가할 전망인 만큼 민영화가 이뤄지더라도 고용이 흔들리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민영화가 이뤄지더라도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는 발표를 통해 발전조합원들의 파업 의지를 무력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산업자원부 장관은 “23일 오전 8시부터 적색비상령을 발령하였으나 비상근무체제 돌입에도 불구, 현장의 응소율이 저조하다. 발전회사 경영평가에 이번 파업의 대응태도를 반영할 계획”이라며 5개 발전회사를 압박함과 동시에 현장 조합원을 향해 파업 돌입시 불이익이 있으리라는 협박을 하였다.
2월 24일 노동자대회 이후 건국대와 서울대 조합원거점, 명동성당 지도부거점을 형성한 이후 정부와 언론은 가스공사 노조 조기매듭과 철도노조의 파업돌입으로 인한 교통대란 등의 두 가지 입장을 집중적으로 나타냈다. 동시에 발전노조의 경우 민주노총 사업장이고 단협 143개 조항 가운데 아직 23개가 합의되지 않아 합의가 어렵다는 입장을 취해 파업돌입 가능성이 높은 발전노조를 고사시켜 파업을 무력화하려는 입장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25일 파업이 확정된 이후 정부가 보인 태도는 ‘필수공익 사업장 파업=불법’이라는 것과 ‘파업에 돌입해도 국민생활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두 가지이다. 이는 파업 돌입 직후 정부-자본-언론이 보인 ‘국민생활을 볼모로’ 라는 식상한 파업매도 이데올로기를 가능하게 하는 사전정지작업적 성격과 동시에 ‘불법필벌(不法必罰)’이라는 ‘합법이데올로기’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른바 ‘국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철도노조의 파업을 파업 돌입 직전과 직후 대서특필하여 3사의 공동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했다. 이는 정부가 ‘공동파업을 선언한 3사 중 한 곳의 파업투쟁을 무력화시킨다면 공동파업 자체가 불가능해지거나 파업동력이 느슨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철도노조의 ‘교통대란’, ‘서민의 발’ 등을 주제로 한 매도와 가스노조의 조기타결 등에 대해 집중 보도함으로써 파업참가 조합원들에 대한 심리적 공격과 동력 완화를 목적했음을 알 수 있다.2)
2) 1차 산개 투쟁(2.26~3.10): 발전노조로 집중되며 회유와 협박책 동시 병행. 공권력 개입 시작 시기
2월 26일 11시를 기해 노사합의에 의한 가스노조의 파업철회, 2월 26일~27일 밤샘교섭 진행 및 노사합의에 의한 철도노조의 전격적인 파업철회 국면 과정에서 발전노조의 파업은 정부 및 언론의 관심이 되지 못했다. 26일 저녁부터 산개투쟁에 돌입한 발전조합원들의 동향에 대해 ‘건국대로 이동하고 있다’, ‘어디론가 이동 중이다’ 등의 추측성 기사만이 남발하였으며 방용석 노동부장관도 27일 표준협회 주최의 조찬강연회에서 “가스, 철도부문의 협상 타결에 이어 오늘 발전 부문의 노사협상 타결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공공연맹과의 공식협상과 별도로 사측 대표단을 구성하여 발전노조와 직접협상을 병행하도록 지침을 내려 27일 사측 대표단의 명동성당 방문이 있었으나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 재개된 노사협상에서는 민영화 철회 등의 핵심쟁점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자원부, 노동부 등의 정부관계기관은 28일까지는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뇌었으며 언론 또한 노동일보를 포함하여 ‘함께 파업에 돌입한 철도와 가스노조가 파업을 종료함에 따라 28일 새벽까지는 타결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보도로 일관하였다. 조선일보의 경우 철도 노사합의 이후 발전파업 관련 기사는 3월 4일 ‘발전노조 52명 해임(사회 30면)’ 제하의 기사까지 독립된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26일 저녁부터 서울대 거점에서 이동을 시작한 발전조합원들이 ‘산개투쟁’에 돌입하였음이 확인된 27일 이후 발전회사 5개 사장단은 2월 28일 업무복귀명령을 내렸다. ‘불법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발전산업 노조원은 지금 즉시 현업에 복귀할 것을 재차 명령합니다’는 제목의 업무복귀명령은 발전조합원이 ‘산개투쟁’ 중임을 감안하여 5대 일간지의 광고형식을 취하였다. 업무복귀명령은 ‘경력․신입 등의 특채 모집을 포함한 대체인력 특별 확보방안을 마련중’, ‘정부와 회사는 민영화에 따른 고용승계와 고용보장을 약속하였으며 대부분의 단협은 타결되었음’, ‘교대근무자는 3월 1일 밤 10시까지 통상 및 기타 교대 근무자는 3월 20일 오전 9시까지 복귀할 것’을 담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산개투쟁이 시작된 26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공권력 투입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주문하였으며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등 5개 경제단체는 성명을 통해 노동계에 대해서는 ‘불법총파업 중단,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경제를 위한 대세, 투쟁만능주의는 근로자를 보호할 수 없으니 협력적 노사관계로 노선을 재수정할 것’을 주문하였으며 정부에 대해서는 ‘금번 불법파업이 금년 한해의 노사관계 안정만이 아니라 경제회생 여부를 결정할 사안, 불법필법의 원칙에 따라 강력하게 대응해야 할 것’을 주문하였다.
‘산개투쟁’은 26일, 27일 가스노조와 철도노조의 연이은 노사합의 선언 이후 축제감에 몰입해 있던 정부․자본에게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으며 예상치 못한 전술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하였다. 특히 철도노조의 직접사용자인 철도청에 비해 여유를 가지며 파업대처를 해오던 산업자원부와 발전회사의 당혹스러워 하는 기색은 역력하게 드러났는데 상술한 ‘업무복귀명령’을 통해 설득과 복귀종용을 함과 동시에 28일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호동 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발전소가 매각돼도 고용불안은 없을 것이며 이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회유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산자부 장관은 ‘예비율로 보아 1개월은 문제없다’는 상황을 설명하며 민영화는 일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발전회사 매각의 문제에서 발전 노동자들의 불안요소가 고용불안이었음에 착목한 산자부와 사측은 ‘고용승계 약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통해 산개 대오를 흔들면서 예비율 운운을 통해 장기전으로 가더라도 발전소 매각이라는 방침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책을 함께 밝힌 것이다. 이는 고용안정이라는 ‘구두약속’을 통해 실리를 챙기고 현장으로 복귀할 것을 종용하는 것인데 이 시점부터 산업자원부 및 발전회사 대책본부에서 복귀율이 높아지고 있음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는 산개투쟁 중인 조합원들을 심리적으로 흔들어 파업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업무복귀명령시한이 지난 3월 2일부터 정부와 발전회사의 반응은 매우 거칠게 드러난다. 사장단은 3월 2일 파업주동자 52명에 대한 해임조치를 밝힌 데 이어 인사위원회를 계속 개최하여 단계적으로 추가해임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며 3월 3일 산자부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발전소 가동에만 문제가 없다면 2천명이든 3천명이든 해고할 것’이라는 강성발언을 하였다.
이것은 업무복귀명령에도 불구하고 복귀율이 예상보다 낮은 것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3월 3일 산자부장관의 연이은 발언을 통해 정부의 당혹감과 파업대처 무력감이 극에 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자부장관은 “앞으로 조합원이 회사로 돌아오더라도 향후 불법쟁의행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합법을 주장하는 정부의 입장이 ‘노사관계에서 초법적 권한 남용도 불사할 것’임을 밝힌 것과 다름 아니며 “이번 파업을 계기로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비상상황에 대비해 퇴직자를 중심으로 한 대체인력 모임인‘전기사랑회’를 만들 방침”이라고 말한 부분에서는 향후 발전노조의 파업 자체를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키겠다는 강경 대응의 입장을 확인하게 해준다.3)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은 발전지도부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을 위해 4일 명동성당을 찾았으나 실제 집행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 이는 2월 26일 김대중 대통령이 밝힌 ‘공권력 투입 자제’ 입장이 확인되는 것인데 연이은 각종 게이트사건에서의 청와대 연루와 임기말 레임덕 현상 등을 통해 김대중 정부의 공권력 투입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영장 집행을 목적으로 명동성당을 찾아 명동성당 지도부에게 물리력 동원도 가능하다는 위협감을 주려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3월 5일 경찰은 오전 5시부터 2시간동안 서울, 수도권, 강원 등의 숙박업소 1만 204곳에 경찰관 1만 352명을 동원하여 일제검색을 하였다. 경찰은 ‘산개투쟁’ 중인 발전 조합원들을 붙잡기 위해 불시 검색을 실시했다고 밝혔으며 이 과정에서 가스노조 위원장이 검거되기도 하였다.
또한 강남경찰서는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발전노조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한 폐쇄명령을 요청했다. 일련의 이러한 대응은 산개투쟁 대오가 인터넷 발전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투쟁명령을 하달받고 있으며 개편된 홈페이지의 가족게시판, 투쟁게시판 등을 통해 산개투쟁 대오의 강고함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앙노동위의 중재재정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의 상황은 정부측의 강경 대응 방침이 반복되었다. 이는 복귀명령 이후 복귀율 저조, 3월 4일 징검다리 연휴 이후 전력공급 안정, 3월 6일 산업자원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민영화 해결’ 주문을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 등의 상황이 입체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특히 3월 5일에는 발전회사 사장단의 협상 중단 선언까지 발표되었는데 7일 예정된 중노위 2차 중재회의를 전후로 노동조합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산개투쟁 대오를 쉼 없이 동요시키려는 의도로 정리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부터는 인터넷 연합뉴스 사회면을 통해 5개 발전회사의 업무복귀명령이 플래쉬 영상으로 전달되어 조합원이든 일반 국민이든 인터넷 연합뉴스를 방문하면 싫든 좋든 업무복귀명령을 읽어야 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연출되었으며 경찰청은 자체 홈페이지 알림방에 체포영장 발부자 24명의 수배전단을 게재하고, 체포영장 발부자에 대한 신고보상금 500만원을 내걸었다. 이 시기 즈음 발전노조 홈페이지의 투쟁게시판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조합원임을 전제한 채 ‘복귀’를 종용하는 글들도 자주 올라오게 되었다.
중노위의 직권중재안이 떨어진 8일 이후 발전회사는 중노위 중재안을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총도 ‘중재재정은 노동계의 요구사항이 대부분 반영되어 불법파업의 명분이 없고 현행법 절차에 의해 중노위 중재재정 효력이 발생하였으므로 이후 파업을 계속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발전노조는 중재안을 거부하고 ‘민영화 철회요구 수용까지 파업’을 선언하였으며 10일에는 정부의 강경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국 5개 권역별 번개집회를 이끌어냈다. 2차 거점을 구성하려던 조계사 진입과정에서는 경찰의 대웅전 난입과 가족들에 대한 폭력대응이 불씨가 되어 오히려 정부․경찰이 전체 상황에서 밀리게 되었다. 불교계의 대웅전 난입에 대한 사과요청과 집회, 번개집회를 통한 파업대오의 강고함의 확인과 강화, 산개대오의 선전전 등 일상활동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3) 2차 산개투쟁(3.10~3.24): 공권력(경찰력)의 본격적 동원 시기. 사법부 동원 및 산개 대오 파괴가 주목적이던 시기
5개 권역별 기습번개집회와 조계사 침탈 이후 경찰에 의한 불법검문과 연행, 지역별 사택 난입 등의 파업대오와 가족 등에 대한 대응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또한 10일을 기점으로 발전회사와 발전노조의 파업참가자 집계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4)
10일 5개 권역별 기습 집회의 사수는 3월 10일 이전까지 소극적인 산개투쟁에 임하던 파업 대오에게 적극적인 산개투쟁에 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지부별 파업대오의 지역별 선전전이 시작되었으며 지부별 산개 대오의 교육활동을 포함한 선전전이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10일의 기습집회 이후 산개파업대오의 강고함을 확인한 발전 회사는 11일 사별 인사위원회를 개최하여 1차로 고소했던 52명 가운데 49명에 대해 해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2차로 고소한 197명 가운데 복귀하지 않은 193명을 대상으로 인사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소명기회를 위해 심의를 연기하여 해임 여부의 최종결정을 15일로 연기하였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3월 12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발전노조 파업 장기화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되었다.5) 파업 사태가 조기 해결되고 있지 못해 ‘대통령의 불만’이 확인된 것이었는데 결국 이날 최수병 한국전력 사장이 ‘파업 장기화에 따른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하였으며 전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질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계기로 명동성당 근처에서는 정부측의 전향적인 입장변화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마침 산업자원부 차관은 중재결정 단협조항에서 ‘기업의 합병분할 등’을 삭제하고 ‘신분변동시 조합과 사전합의한다’는 안으로 교섭을 요청해 왔고 13일 명동성당 지도부와의 교섭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사측은 실무진을 교섭대표로 내세워 노조는 교섭을 철수하였으며 후에 산업자원부 차관의 수정안은 차관 개인과 정부측 일부의 입장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어 14일 재개된 교섭에서 정부는 수정안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노동부는 “발전민영화는 국민적 공감대를 거친 후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노조와 성실히 협의한다”는 수정안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해 왔다.
정부는 13일 오후 2시를 기해 한국수력원자력에 ‘적색비상‘을 발령하였다. 노동조합이 18~19일 연대파업을 위한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는 것이 큰 원인이 되었으며 발전자회사에 의한 고소와 해임, 조합원 동산 가압류 등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었다.
산업자원부는 13일 “발전회사 민영화와 노조파업,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설명자료를 배포하였다. 설명자료는 발전조합원 및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설명자료에서 산자부장관은 ‘민영화를 하더라도 발전산업 종사자 9,000여 명은 전문인력들이고 민영화된 기업으로서도 꼭 필요한 사람들로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발전 조합원 내 팽배해 있는 고용불안의 문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 하였다. 오히려 민영화 이후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고 이를 가동할 전문인력의 수요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민영화 이후 대량해고와 전직사태는 없을 것’이라며 기우에 불과한 우려라는 인식을 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산자부장관은 3월 3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2천명이든, 3천명이든 얼마든지 해고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고 따라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장관 본인의 표현은 이미 ‘대체인력 투입’과 ‘신규채용 공고’ 및 ‘얼마든지 해고’라는 표현을 통해 대량해고와 고용불안이 가능한 일임을 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산자부장관은 ‘국민들께 드리는 글’을 통해 ‘불요불급한 전기소비를 줄이고 한 집 한 등 끄기 등 기왕의 전력소비 절약을 강화해 줄 것’을 발표하였으며 16일부터는 산업자원부 전직원을 끌고 종묘 등의 도심으로 나와 ‘발전노조 파업의 불법성과 민영화의 당위성, 파업철회 타당성 및 에너지 절약’에 대한 대국민 캠페인 운동까지 전개하였다.
이 시점에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 등 국회의원 26명은 ‘발전산업 정상화를 위한 권고안’을 노조와 정부측에 전달하였다. 노조는 권고안을 수용하였지만 경총은 즉각 성명을 내어 ‘국회에서 통과된 안을 재논의한다는 것은 입법기구 스스로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 등의 압박을 통해 ‘민영화 재논의’ 흐름에 일침을 놓았다. 산업자원부도 ‘민영화 관련, 노조와 대화 할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였으며 18일에는 군 전력기술인력 200명을 발전회사에 투입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19일 국무회의를 통해 “노조가 불법파업을 계속하면서 일하려는 노동자까지 견제하는 상황을 방치하거나 노조의 부당한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올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면서 “(노조가) 법을 지키지 않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힘으로써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경제를 좌절시킬 위험이 있으며, 건전한 노조까지 강성으로 이끌어가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발언하면서 파업사태의 조기해결을 당부하였다.
결국 23일 재개된 교섭에서 사측은 민영화를 인정하고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미 노동부는 비공식적으로 내놓은 수정안을 철회한 상황이었고 나머지 징계 등 수습과 현안문제를 정리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안영근 의원 등이 주도한 권고안은 발전노조만이 동의한 채 유실된 상황이었다.
5개 발전회사 사장단도 “25일 오전 9시까지 복귀하지 않는 노조원은 발전회사 직원임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해 예외 없이 전원 해임할 것과 이번에 징계 해임된 노조원은 복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또한 손해배상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조합 예금과 파업주동자의 임금 및 퇴직금을 이미 가압류한 데 이어 미복귀자 전원의 급여와 퇴직금을 압류하고 해임자 중 고소 대상자에 대해선 개인 부동산 가압류도 신청할 계획과 함께 ‘무노동 무임금 원칙’, ‘군(軍) 기술인력을 투입 이어 포철 등 국내 주요업체에서 발전 관련 업무에 경험이 있는 인력을 뽑아 대체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발전소 정비와 운영업무의 아웃소싱(외주)을 추진할 방침’ 등의 실질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고 25일 복귀시한 발표 이후 복귀자가 늘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6)
4) 3차 산개 투쟁(3.25~4.2): 파업대오 압박과 공권력 투입 가늠 시기. 노조는 민영화를 인정하라!
발전자회사가 3월 25일 오전 9시를 기해 최종복귀시한을 확정 발표한 한편 발전노조는 3월 24일 전원 결집하여 거점 투쟁에 들어간다는 입장을 제출하였다. 물론 이 전술은 비공개적이고 기습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결집 당일 연세대에는 2,500명 가량의 조합원이 결집하였다.
조합원이 모인 24일 연세대는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그 동안 수 차례 진행된 발전 사측과 경찰력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파업대오가 건재함이 확인됨과 동시에 ‘발전소 매각 철회 이전까지 산개투쟁을 지속한다’는 산개대오의 결의가 다시 모아진 것이었다.
경찰은 자정을 기해 연세대를 침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공권력에게 학원침탈이라는 정치적 부담감은 이미 전날 전국공무원노조 출범식이 열리던 고려대 침탈을 통해 훌훌 날려버린 이후였기 때문에 연세대 침탈은 기정사실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침탈 예정시간 30분전에 연세대 2선 지도부는 재산개 결정을 내렸으나 동시에 공권력에 의한 침탈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300여명의 조합원이 연행되었다.
경찰은 침탈과정에서 ‘해산’에 주안점을 두었다. 무리한 연행은 다음날로 예정된 복귀시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연행된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수배자나 고소고발자가 아닌 이상 업무에 복귀한다는 의사를 나타내면 자술서 등을 받은 후 발전회사에 신병을 인도하는 이례적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결국 연세대에 결집한 투쟁대오에게 휘두른 공권력은 ‘불법파업을 한 조합원들이기에 벌을 주어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복귀를 우선시한 정세적 상황이 고려된 공권력의 얼굴을 드러내 준 것이었다. 총자본에게 있어 ‘불법필벌’의 원칙보다 노동자의 현장복귀를 통한 ‘생산의 안정적 가동’이 더욱 중요함은 두 번 말해 입만 아플 소리이기 때문이다.
24일 연세대 침탈과 재산개를 거쳐 25일 복귀시한이 지나도 복귀율이 높아지지 않자 발전회사 사장단은 산업자원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고조치된 197명과 해고절차를 진행중인 404명뿐 아니라 오늘 오전 9시까지 복귀하지 않은 3,912명도 예외 없이 사규에 따라 해고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는 한편 산자부 합동비상대책본부는 ‘발전산업노조 파업에 대비한 월드컵 및 하절기 전력수급 안정대책’(이하 안정대책)을 발표하였다. 안정대책에 따르면 ‘전력수요가 증가하는 월드컵 기간 등 6~8월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최소한 900여명의 추가인력이 필요하다’, ‘필요할 경우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에 따라 유흥업소의 전기사용 제한을 검토하는 한편 예비전력이 100만 kW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송전 차단도 고려중’, ‘절전운동 당부’ 등이다. 정부도 총리 주재의 노동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발전노조 파업 미복귀자에 대한 해임 등 법에 따른 엄중조치방침을 재확인하고 파업 참가자들의 즉각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정부는 회의 뒤 산업자원부, 행정자치부, 노동부 3부장관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미복귀자 해임방침을 확인하며 “정부는 안타깝지만 그동안 수차 공언해온 대로 이번 불법파업에 대해 법에 따라 엄중 조치해 나갈 것ꡓ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26일 미복귀자는 전원해고한다는 당초 방침에서 선회, ‘선별처리’ 입장을 밝혔다. 최종시한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전원 해고한다는 강경입장 방침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선회된 배경에는 산개투쟁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 3,900여 명을 전원 해고할 경우 전문기술인력의 손실과 함께 발전소 정상가동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을 감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파업 참가자 전원해고’라는 것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상 전무후무한 것으로 ‘전원해고’ 이후의 후유증에 대한 정부측 부담에서 자신이 없음을 드러내 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밝힌 대로 올해는 ‘선거의 해’가 아닌가!
결국 ‘전원해고’ 협박은 정부가 주도한 해프닝으로 판명났고 25일 복귀시한 협박에 다소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산개 조합원에게 자신감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편 대화촉구 국회의원 권고안을 주도한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은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가 노조 와해를 위해 의도적으로 협상을 결렬시켰다”라고 폭로하였으나7) 이미 한 차례의 권고안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안 의원의 폭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시민단체, 문화예술인, 종교계 등의 발전소 매각 유보와 파업사태 대화해결을 촉구하는 입장과 기자회견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으며 민주노총은 24차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4월 2일 1시부로 총파업 투쟁에 돌입한다’는 결의를 모았다. 이어 민주노총은 27일 명동성당 기자회견을 통해 ‘발전노조원들에 대한 집단해고방침 철회와 주내 협상타결을 위한 조건 없는 대화’를 정부측에 제안했다. 또한 “노조가 파업의 핵심요구였던 ‘민영화 철회’와 정부의 공식입장인 ‘민영화 강행’을 언급하지 않고 현안해결을 전제로 타결할 수 있다는 양보안을 냈는데도 정부가 대화중단을 선언했다”며 “만일 대화제의를 거부하고 끝내 초강경방침을 밀고 나간다면 4월 2일 오후 1시로 예정된 총파업을 불가피하게 실행할 수밖에 없다”는 대의원대회 결의안을 밝혔다.
민주노총의 연대총파업 이후 경영계의 발길도 빨라졌다. 경제5단체는 2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협중앙회관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민주노총 총파업결의에 대한 경제계 입장’을 발표했다. 경제5단체는 “민주노총이 발전노조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연대 파업을 강행키로 결정한 것은 최근 회복기미를 보이는 우리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면서 “민간기업 노조원들이 민주노총의 불법 연대 파업에 참여할 경우 기업차원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등 강력히 대처할 방침”을 밝혔다. 그들은 성명서 말미에 ‘우리 경제계는 온 국민과 함께 금번 발전노조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함을 밝혀 둔다’라고 못을 박아 정부의 민영화 방침과 불법필벌의 원칙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기존의 방침을 공고히 하였다. 경영계는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을 하루 앞둔 4월 1일 ‘민주노총 불법총파업에 대한 경제계 입장을 재천명합니다’는 성명을 재차 발표하여 “정부는 금번 연대총파업은 민주노총이 정부를 압박하여 유리한 협상결과를 도출해내고 금년도 노사관계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주의 깊게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발전노조의 파업을 정리해내는 실력이 올 한해 노사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내었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는 노동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부처에 건의서를 제출하여 “정부가 국가기간산업의 불법파업에 강력하게 대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경영계의 강경 입장을 반영한 것처럼 정부는 27일 민주노총의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일축하였으며 나아가 “발전노조가 민영화 방침을 수용한다면 노조측의 대화제의에도 원칙적으로 응할 것”이라면서 “노조는 불법파업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민영화 철회를 이유로 단체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며 노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심지어 전윤철 청와대 비서실장은 29일 취임 2개월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조정 방침을 확인하는 한편 발전노조 파업에 대해서는 “파업 전 5,000여 명이 일하던 것을 현재 2,300~2,400명이 일해도 발전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은 거품이 있다는 증거”라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하였다.
한편 중노위는 29일 청와대 비서실과 조율 하에 정부측과의 조율을 통해 중노위 중재형식으로 협상재개할 것을 제의하면서 중재안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8) 발전노조는 중노위의 중재안에 동의하였으나 정부측이 다시 권고안을 부정하여 교섭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중노위 중재 교섭이 진행되던 29일은 5개 발전회사가 3차 징계대상자 233명을 대상으로 3차 인사위원회를 열어 미복귀자에 해임안을 심의․확정하는 날이었다.
발전회사는 “복귀자에 대해서는 심의를 유보할 방침”이라며 “그러나 3차례의 소명기회를 준 만큼 미복귀자는 최종 해임조치할 예정”임을 밝혔다.
30일에는 노동부와의 비공식 협의가 진행되었다. 새로운 안을 제시한다던 노동부는 “노조는 발전소 민영화 문제가 비교섭대상임을 확인하고 향후 재론하지 않는다”는 결코 새롭지 않은 안을 던져 노조측 협상팀은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와 가스노조는 31일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기간산업 민영화방침 등을 저지하기 위해 발전노조와 연대해 2차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면서 “조만간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세부 투쟁 일정을 확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아시아나항공노조, 한국공항공단노조 등 항공 관련 6개 노조도 연대투쟁을 선언하였다.
발전회사 비상대책 종합상황실은 31일자 ‘상황속보’를 통해 ‘공급예비율은 64.4%로 안정적’, ‘총 노조원 5,591명중 2,057명 복귀로 36.8%’, ‘본사 및 발전소에 경비인력 2,266명 배치로 방호에 이상 없음’ 등을 발표하였다.9) 또한 이날 검찰은 파업 돌입 이후 처음으로 동료 조합원이 회사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저지한 혐의로 발전노조 평택지부 부지부장을 구속하였다.
민주노총 연대파업을 하루 앞둔 4월 1일 노동부와의 교섭이 개시되었다. 노조측 교섭팀은 발전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3월 29일 중노위 중재권고안(2)를 최종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민영화가 비교섭대상임을 인정하고 명문화할 것과 이후에 재론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는 안을 최종안으로 제시하였다. 산업자원부 장관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75개 주요사업장의 동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 2월 26일 연대파업 때에 비해 파업이 약할 것으로 보이고 연대파업이 약할 경우 명분도 없어지는 만큼 발전노조도 생각을 바꾸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내일(2일)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한다”면서 “정부 원칙에는 변화가 없는 만큼 향후 신노사문화와 산업평화로 가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공권력 투입 여부에 대해서는 “경찰청 소관”이라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뒤 “없어야 하겠지만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해 정부로서도 남은 방법은 공권력 투입밖에 없음을 시사하였다.
전날 산업자원부 장관의 발언이 예언이라도 되었다는 듯이 2일 재개된 교섭은 의견접근과 교섭중단, 문구 수정 등의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후 민주노총 연대파업 돌입 시간을 20분 앞둔 12시 40분 경 “발전소 민영화에 대한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로 문구에 대한 의견접근이 이루어졌다. 발전노조는 잠정합의(안) 설명과 복귀선언을 위해 ‘조합원은 명동성당으로 결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대오의 상태가 복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을 판단한 명동성당 지도부는 ‘3일 총회를 통한 논의’ 선언과 ‘3일 모처에서의 재결집’을 하달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명동성당 지도부 일부의 복귀명령과 3일 총회명령을 둘러싼 혼선이 존재하였으며 결국 총회를 위해 3일 동국대에 모인 조합원은 800여명에 불과하였다.
2일 의견접근에 의한 잠정합의(안)이 확정된 직후 경총 등 경영계와 여야 정당, 보수언론의 ‘발전파업 협상타결 다행’, ‘협상타결을 환영하며’ 등의 입장이 쏟아져 나왔다. 한나라당의 경우 “경직적인 협상태도와 노동계의 협상여지조차 봉쇄하는 극단적인 자세의 정부책임이 크다”는 지적과 동시에 “노조도 국민적 동의와 명분 없는 파업을 위한 파업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할 것”을 지적하여 발전투쟁 과정 내내 견지했던 ‘무능한 정부책임론에 무게를 실으면서도 노동계의 입장에는 결코 동의하는 않는’ 양비론적 시각을 되풀이하였다. 경총의 경우 “이번 사태수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앞으로 노사협상에서 교섭사항이 아닌 문제로 불필요한 분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노동계에 주문하였다.
조선일보도 4월 3일자 사설을 통해 배일도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의 “이제는 노동계도 서구식 계급갈등노선의 직수입이 아닌 국가운영의 큰 틀에서 여러 문제를 봐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합리적 노동운동으로 거듭나야”함을 주장하였다.
5) 현장복귀 선언 이후 현재까지(4.3~): 서약서, 근무투입자원서 등 조합원에 대한 개별적 현장 탄압 시기
발전노조는 3일, ‘4월 6일 9시를 기해 현장에 복귀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발전회사는 협상타결 및 노조의 복귀지침과 무관하게 예정되어 있던 3일 인사위원회와 발전회사별 인력구조조정을 포함한 경영혁신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발전회사 및 검찰은 파업가담자들에 대해 선별 (사법)처리 방침을 정했으나 이미 해고된 342명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파업주도자여서 해고 조치가 뒤바뀌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항고장을 낸 122명의 재심에 반영할 것임을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이 4일 투쟁본부 대표자회의를 통해 결정한 것 중 하나인 ‘합의(안) 폐기’ 결의에 대해 노동부는 “이미 3월 8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중재결정이 내렸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노동부장관은 3일 오후 열린 외신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보편적이었던 불법적 파업 관행을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6일 발전 조합원의 복귀 이후 발전 자회사별 복귀 조합원에 대한 ‘길들이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복귀조합원 3,400여명에 대해 4차 징계대상자로 올려 징계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5개 발전 자회사마다 임시감사팀을 구성, 복귀자 일대일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약서 작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서약서가 선별징계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약서의 내용은 ‘잘못을 범하였으며 …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한다’, ‘회사가 가중징계를 결정하더라도 아무런 이의 없이 감수할 것’, ‘향후 어떠한 경우에도 회사의 정상조업을 방해하는 일체의 불법행위를 하지 않겠다’, ‘회사의 제반 사규를 준수하고 상사의 업무상 명령에 복종하겠다’ 등으로 굴욕적인 내용을 담은 ‘항복문서’에 다름 아니다. 한국동서발전회사의 경우는 ‘근무투입자원서’까지 받고 있다. 여기에는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노동자는 무보직상태로 둔 뒤 해임한다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10)
이에 발전노조는 양심의 문제임을 상기시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발전 자회사별 복귀 조합원에 대한 길들이기와 파업투쟁 경험 무력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한편 정부는 4월 9일 ‘공기업 민영화 추진위원회’를 열고 올해 예정된 5대 공기업 민영화를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한 방침을 확정했다. 발전자회사의 경우 화력발전회사 1곳을 선정하여 경영권 매각과 기업공개를 통한 증시 공모 방식을 병행 추진해 연내 민영화하기로 하였다. 이에 산자부 장관은 1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9일 확정된 민영화 방침을 브리핑하였으며 발전파업 후속대책에 대해 “이미 해임된 조합원의 경우 납득할 만한 소명이 있을 때는 구제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원칙대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혀 현재 5개 발전회사별로 진행중에 있는 서약서 강요와 근무투입자원서 작성, 노사화합 교육참여 등의 회사방침이 ‘납득할 만한 소명’임을 피력하였다. 결국 이같은 산자부장관의 말은 ‘회사의 방침에 따른다면 고용은 유지될 것이나 회사의 방침을 거스른다면 해고 내지 중징계를 피할 수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3. 정부-자본의 대응에서 특징 및 목적
2월 파업 돌입 이전 공투본 투쟁과정에서부터 현장복귀 후 지금까지 정부 및 자본의 대응양상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기간 3사의 공동파업이 2월 19일 공투본 기자회견 이전에도 이미 확정된 사안이었다. 이는 발전노조가 1월 27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조의 일상체계를 파업체계로 전환 결의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자본은 마치 갑자기 기간 3사의 공동파업이 결정된 것인 양 호들갑을 떨면서 대응해 나갔다. 이것은 기간 3사의 파업준비 및 돌입 일정을 몰랐다기보다는 오히려 모른 척 하고 있다가 기간 3사 노조가 정부나 사측과의 논의와는 무관하게 파업 돌입을 확정한 것인 양 비춤으로서 여론을 선점해 들어가겠다는 것,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은 불법이라는 정부와 자본의 입장을 설득함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② 정부나 자본 모두 공권력 투입을 통한 파업사태의 조기해결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파업 38일 내내 ‘공권력 투입은 자제할 것’이라는 기존입장을 되풀이하였으며 ‘대화로 사태를 풀되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경영계도 ‘공권력 투입 등의 엄정 대처’라는 직접적 말 대신 ‘불법필법’, ‘공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여 투쟁 지도부에 대한 직접적인 공권력 투입에 대해선 그리 명확한 입장을 내지 못했다.
이미 정부와 자본의 시야는 ‘38일 동안의 파업상황’ 자체에 매몰되어 있지 않았다. 현재의 한 국면 한 국면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만 파업 중단 이후 노사관계의 상태와 파업 후유증이 전사회적으로 가져올 파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급하게 공권력을 투입할 경우 그 반사여론이 임기 말 레임덕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김대중 정부에게 올 것은 자명했으며 그 부담은 양대 선거와 2개의 국제행사를 온전한 정치력 하에 수행하겠다는 2002년 지표를 상실케 만들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③ 정부와 발전회사는 두 차례의 결정적인 업무복귀시한이었던 3월 10일, 3월 25일 전후로 강경책과 회유책을 두드러지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 시점에는 잔인할 정도로 포악했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모습의 차이는 불과 하루 이틀 사이였다. 정신이상자를 보는 듯한 이러한 모습은 정부-자본측에서 나름대로 택한 전술인 ‘지구전’에 산개대오가 예상외로 강고하게 견디고 있는 것에 대한 반영이었으며 이른바 ‘종업원에 대한 사용자의 권위’가 추락할 대로 추락해버린 상황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발악으로 다가왔다.
④ 교섭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모습은 스스로가 정한 원칙을 바꾸기도 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리기도 하는 등 도무지 원칙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민영화 문제 재론 가능’이라는 비공식적 입장도 있었으며 ‘민영화시 조합과 사전 합의’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스스로 정부 입장이 일관되지 것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23일 ‘민영화 노조 동의 및 명문화’라는 통일된 안(?)이 나오기까지는 교섭이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경영계의 경우 파업 돌입 직후부터 복귀선언 시기까지 동일한 입장을 반복하며 강도를 높여갔다. 정부의 갈짓 자 행보를 뒤에 있는 경영계가 훈수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1) 산개대오의 투쟁력을 근저로부터 흔들어 실질적인 파업투쟁을 무력화시키려 하였다
(1) 복귀율 조작
발전노조는 서울대 2박 3일 거점농성 이후 산개투쟁을 시작하여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파업투쟁을 지속하였다. 공공부문 파업투쟁시 정부 당국의 초점이 ‘조합원이 현장으로 얼마나 복귀하는가’, 즉 ‘파업대오를 이탈하여 생산의 재가동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에 놓여진다고 보았을 때 이번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을 바라보는 정부와 발전회사의 초점도 복귀율을 높여내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산개대오의 경우 기간 있었던 공공부문 파업대오와 달리 ‘산개투쟁’이라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었기에 기존의 이데올로기전, 복귀율 조작 등의 파업대오 무력화 방식이 조별, 개인별 타격까지 동시에 병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사실 산개투쟁에 돌입한 발전 조합원은 복귀를 조건에 내걸고 당근과 채찍을 들이미는 보이는 ‘적’과의 대적투쟁을 전개하는 것과 동시에 총파업 운명을 내걸고 발전소 매각과 생존권 사수를 위해 싸우는 보이지 않는 ‘동지(산개대오)’와의 연대투쟁이라는 두 가지 전투를 수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
따라서 ‘현장복귀’의 여부는 ‘대적투쟁’과 ‘연대투쟁’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전취하느냐, 모두 포기하느냐의 문제였다.
정부와 발전자회사가 자행한 복귀율 조작은 2월 24일 서울대 거점투쟁 현장에 있지 않았던 ‘초기파업불참자’를 복귀자로 계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부와 발전자회사의 주장대로라면 2월 24일 이후 복귀율 집계가 시작되기 전까지 전국 각지의 발전소에는 단 한 명의 조합원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져와 2월 24일 파업 참가자는 100%였다는 기록적인 계산을 낳는다. 또한 정부와 발전자회사는 발전자회사별 인터넷사이트에 복귀신고센타를 개설하여 복귀신고를 받거나 전화 및 상사면담을 통한 복귀신고의 경우도 복귀율 집계에 포함하였다. 심지어 경찰의 불법검문 과정에서 경찰서로 연행되어 자술서 등 문서 한 장을 작성해도 복귀한 것으로 간주하여 복귀율 조작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3월 17일자 서부발전회사 홍문선 사장 명의의 ‘최종 복귀명령에 관한 사장 특별지시’의 내용이다. 이를 보면 “… 복귀독려 방법은 개별 가정방문, 본인 직접접촉, 전자메일, 서신, 음성메세지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본인에게 알리도록 하여 주시고 … 복귀노력 실적을 기록 유지 관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귀를 종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공문에 담고 있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지만 ‘복귀노력 실적 유지, 관리’ 운운하는 부분에서는 파업 조합원 복귀를 둘러싸고 복귀노력 실적 유지 및 관리가 이루어지는 장면이 상상된다. 산업자원부는 5개 발전 자회사끼리 경쟁시키고 한 발전회사에서는 총무팀, 자금팀, 회계팀, 노사업무팀끼리 경쟁시키고 또 각 팀에서는 팀원끼리 경쟁을 부치는 피비린내나는 장면 말이다.
복귀신고를 조직을 통해 ‘그들만의’ 복귀율을 높여간 정부와 발전자회사는 비상대책 종합상황실에서 발행하는 상황속보를 통해 ‘복귀율 조작’의 성과를 과시하였다. 상황속보는 언론을 통해 아무런 여과 없이 산개대오에게 전달되었으나 발전노조 자체 파업불참자 집계와 상황을 공유받던 산개대오에게 정부와 발전자회사의 복귀율 조작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 ‘고용’ 자체를 무기로: 고용불안 구두약속 및 신규채용인력 공고
산업자원부 장관은 파업 돌입 이후 이호동 위원장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발전소가 매각돼도 고용불안은 없을 것이며 이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파업이 20여 일차에 달하자 민영화를 하더라도 발전산업 종사자들은 전문인력이기 때문에 쉽게 대체할 수 없고 따라서 발전소 매각시 고용불안이 우려된다는 노조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그러나 산업자원부 장관 본인이 구두로, 지면으로 거듭 밝혔음에도 이 문제는 정부측 교섭안으로 성안(成案)조차 되지 않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발전소 매각 이전에 산업자원부 장관이 공언하고 있는 ‘고용의 형태 및 내용’에 대한 것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은 고용불안은 없을 것이라 하였지 이들 모두 현재의 고용형태를 유지하고 노동조건을 한층 더 개선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며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고 이를 가동할 인력수요도 늘어나기에 대량해고는 없을 것이라 하면서도 비정규직으로 고용이 안정된다는 것인지 아웃소싱된 발전소 정비를 하게 될 지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즉 정부는 발전 조합원들의 가지고 있는 고용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고용불안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낸 것이지만 함께 진행된 0,000명의 신규채용인력 방침과 이들 전원을 임시직으로 채용한다는 공고문의 내용은 정부와 자본이 말하는 ‘고용불안 없을 것’의 실내용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3) 공권력(경찰력) 직접 동원을 통한 산개대오 연행과 발전회사로의 신병 인계
경찰은 3월 5일 새벽 경찰관 10,352명을 동원하여 서울, 인천, 경기, 강원, 충북 등지의 숙박업소 10,204곳에 대한 일제검색을 실시하였다. 경찰은 산개투쟁중인 발전조합원을 붙잡기 위해 불시검색을 실시하였다고 밝혔으나 경찰이 밝힌 불시 검색의 이유는 그야말로 초법적인 권한을 남용한 처사였다. 산개투쟁중인 조합원 전원이 수배된 상황도 아니었고 중죄를 저지른 상황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붙잡겠다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불시검색은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자행되었다. 심지어 발전조합원을 재워준 시민을 경찰에 연행하기도 하였으며 불법검문을 통해 조합원이 밝혀지면 발전회사로 인계되어 복귀 종용을 받는 일이 허다하였다. 산개대오는 경찰력을 통해 산으로 들어가기도 하였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하는 등 대응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산개투쟁력을 높여갔다.
3월 10일 조계사 2차 거점상정 투쟁과정에서는 경찰의 대웅전 난입사태가 발생하였다. 경찰은 조계사에 발전조합원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종교의 성지를 침탈한 것이며 그것으로도 모자라 유사이래 법회중인 대웅전에 난입한 첫 경찰로 종로경찰서가 기록되었다.
2차 거점 상정이 투쟁을 더욱 장기화시키고 강고화시킬 것이라 판단한 경찰은 이러한 과잉대응을 하였으나 이후 산개대오가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경찰의 전형을 만들어 주었다.
(4) 인터넷을 통한 산개대오와의 간접 접촉
산개투쟁대오는 발전산업 홈페이지를 통해 투쟁 지침과 분임조 토론 주제 등을 하달받고 총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산개투쟁 중에도 매일 피씨방에 들리는 일은 산개대오의 일상이 되었고 가족게시판을 통해 가족을 만나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다. 이에 3월 5일 강남경찰서는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발전노조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한 폐쇄명령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발전노조 홈페이지 서버 담당자인 진보네트워크의 거센 항의와 사회, 진보진영의 대응으로 이도 여의치 않자 정부와 발전자회사도 인터넷을 통한 대응으로 선회한다.
산업자원부는 파업복귀명령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조회수가 높은 인터넷 연합뉴스 사회면을 통해 24시간 흘려 보냈다. 발전자회사 또한 각 회사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복귀신고를 접수하였다. 발전노조 홈페이지 중 익명 게재가 가능한 투쟁게시판과 가족게시판은 복귀를 종용하고 파업지도부를 비난하는 글이 자주 올라왔다.
2) 명동성당 투쟁지도부에 대한 투쟁의지를 무력화시키고 산개 대오에 대한 지도력을 유실시키려 하였다
(1) 공권력과의 대립
2월 24일 여의도에서 민주노총 주최의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던 시각 기간 3사 노조 지도부는 명동성당 농성장에 안착하였다. 가스와 철도가 차례대로 노사합의를 통한 협상타결 및 파업 철회를 선언한 이후 단독 파업을 진행한 발전 노조 지도부에게서 3사 공동파업 무산에 따른 영향은 별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이 즈음 명동성당 지도부의 파업 투쟁에 대한 의지는 강고하였다. 3월 4일 경찰이 발전노조 지도부에 대한 구속 영장 집행을 이유로 명동성당을 찾았을 때도 의연하게 대처했고 경찰은 김대중 정부가 발표한 ‘공권력 투입 자제’방침에 따라 무리한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업 돌입 이후 복귀선언의 시기까지 경찰은 명동성당 주변을 원천봉쇄하여 조합원의 출입을 엄금하였다. 공권력은 비록 명동성당 지도부와 직접적으로 대립한 것은 아니지만 공권력에 의해 명동성당 지도부가 외부 동력 및 발전 조합원에 의해 철저히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부분적으로 출입이 가능하여 연대단위들의 지지농성과 투쟁기금 전달 등 파업 투쟁에 대한 연대의 움직임이 계속 되었으나 1차 해임대상자 및 1차 수배자들이었던 관계로 명동성당은 철옹성을 연상케 하였다.
전력노조 당시 조합활동을 포함하여 농성투쟁 경험이 처음이었던 명동성당 지도부에게 있어 38일간 지속되었던 공권력에 의한 원천봉쇄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물리적인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산개대오와의 연결선을 가지면서 공개 상황실과 긴밀한 대응체계를 구성한 점 등은 산개투쟁이 장기적으로 그리고 강고하게 유지될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2) 정부, 자본의 이데올로기 대응과 경찰청 알림방 수배자 게재
명동성당에 물리적으로 고립된 지도부가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첫째, 신문․잡지 등의 언론. 둘째, 인터넷. 셋째, 연대단위의 방문 등이었다. 파업투쟁 기간 2차례 있었던 공식적인 번개집회․집결과 지부별 선전전 등을 경험하고 체현할 수 있는 길은 차단되어 있었으며 외부에서 전해져 오는 메시지와 지부별 상황총화 이외의 외부상황은 상술한 세 가지 방법 외에는 뾰족한 길이 없었다.
(3) 교섭을 둘러싼 전술과 정부의 대응
명동성당 농성지도부는 교섭지도부였다. 교섭에 대해서는 상급단체에 위임하였으나 체결권은 여전히 명동성당 농성지도부에 있었고 노․자 모두 민감한 사안인 발전소 매각건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쉽게 교섭을 처리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으며 3월 23일 정부측 입장이 돌변한 이후에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3월 7일 기존 입장에서 일정 정도 양보한 안을 제출한 것은 명동성당 지도부였으며 이는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파업사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려 하였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좌충우돌격 교섭방침이 남발하는 가운데 명동성당 지도부는 산개투쟁의 파고를 높이는 것과 동일한 노력을 교섭부분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3) ‘발전소 매각 반대’라는 국민적 여론을 반전시켜내려 함
발전소 매각을 화두로 한 민영화 방침은 발전노조가 계속 고수한 안은 아니었다. 이미 3월 7일 2차 중재회의에서 발전노조측은 “민영화 철회 문구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단협 미타결 조항중 ‘신분변동시 조합과 사전 합의한다’조항과 현안문제를 일괄타결한다”는 수정안을 제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중노위는 “다만 노조는 합의권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재수정안을 내놓자마자 철회하였고 노조도 수정안을 거부하였다. 결국 미타결 조항 2개에 대해 중노위 중재결정이 8일 내려졌으며 이후 민영화를 둘러싼 첨예한 쟁점대립이 계속되었다. 단협의 경우 논의테이블은 주된 메뉴가 되지 못했으며 노조측과 사측의 밀고 당기는 교섭의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3월 23일 재개된 교섭자리에서 정부측 입장은 180도로 선회하여 ‘민영화를 인정하고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발전회사가 최종 복귀 시한을 발표하고 산자부, 노동부 등의 정부 방침이 ‘민영화 문제에 언급하지 않는다’는 기존입장을 뛰어 넘어 ‘민영화 문제에 대해 반드시 노조가 인정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돌변한 것은 이 시기 즈음 형성된 ‘발전소 매각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정부측 입장에 유리하지 않다’는 정부의 판단을 반영한 것이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애초의 고사작전과는 달리 산개투쟁대오의 강고함이 연일 확인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월 13일~15일에 걸쳐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발전소 매각을 미뤄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확인된 것이다.11) 극우보수언론 일부를 제외한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적은 지면을 할애해서라도 보도하였으며 때마침 진행된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 등의 권고안과 대화해결 촉구선언은 이러한 국민적 여론을 반영한 듯한 모양새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16일 진행된 박형규 목사 등 사회원로 5인의 대화촉구 기자회견, 19~21일 동안 계속된 김수행 교수․김진균 교수 등 145인 교수들의 발전소 매각유보 촉구선언과 교육의료 13개 단체 발전소 매각유보 촉구선언 등은 발전소 매각 등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행하려는 정부측 입지를 매우 협소하게 만들었으며 실제 그러하였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연내 완수하려던 정부측 입장은 사실 그 설 길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김대중 정부는 출범 이후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칼날을 거침없이 휘두르던 과정에서 ‘발전투쟁대오’라는 강적을 만나 칼을 뽑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 강적을 옹호하는 분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결국 정부측 입장에서는 결단이 필요하였고 ‘발전소 매각 반대’로 형성되는 일정 국면을 전환할 카드로 ‘민영화 문제에 대해 노조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 이러한 정부측의 위기감은 “‘이번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심리가 청와대로부터 산자부․노동부 등 관계 부처에 팽배해 있다”는 보도를 통해 확인되었다.12)
4. 나가며
38일간의 파업은 4월 3일 복귀선언으로 마무리되었고 현재 발전 조합원은 전국 해변 각지의 발전소에서 ‘산개투쟁’을 통해 현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겨울과 봄에 걸쳐 진행된 산개투쟁에서 투쟁대오간, 투쟁대오와 지도부간의 굳건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다면 현재 진행중인 현장투쟁에서는 2002년 상반기에 보여주었던 38일간의 파업투쟁을 언제라도 가능하게 할 노동조합 전체의 실력과 신뢰를 형성해야만 하는 것이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총자본의 대응은 요동을 칠 뿐 기본적인 방향은 변하지 않는 듯 싶다. 과연 총노동의 대응은 변함 없는 대적상대를 굴복시킬만한 힘이 있는가 의문스럽다. 하지만 38일간의 투쟁을 통해 확인한 것은 총자본의 그러한 요동조차도 총노동이 만들어낸 것일 뿐 총자본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 공투본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노총 이남순위원장, 민주노총 허영구 위원장 직무대행을 대정부 교섭대표로 선정하고, ‘민영화 및 해외매각 방침 철회․공공부문 인력 감축 중단․국가기간산업 민영화에 대한 TV 토론 실시’ 등을 요구했다. 또한 전국의료보험노조도 ‘민간의료보험 도입 저지․해고자 복직․2001년 임금 삭감 철회’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25일부터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2) 조선일보의 경우 2월 23일 ‘정부, 비조합원 군병력 투입’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국민생활에의 영향’이라는 부분에서 ‘철도노조 - 철도운행 중단, 가스노조 - 큰 영향 없음, 발전노조 - 큰 영향 없음’이라는 노동부 자료 인용 기사를 내보냈으며 이러한 논조는 2월 27일 철도 파업 중단 이후 ‘출퇴근 정상화’, ‘기간산업 노조 파업 한 숨 넘겨’ 등의 내용으로 반영되었다.
3) 인터넷 연합뉴스, “辛산자 ‘노조원 파업불참 각서 징수도 검토’”, 3월 3일.
4) 5개 발전회사는 11일 복귀율 집계에서 전체 5,609명 중 1,013명 복귀(18.1%)하여1천명을 돌파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날 발전노조 공개 상황실 집계를 보면 전체 조합원 5,567명중 5,283명이 파업에 참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94.89%의 파업참가율). 초기의 파업 미참가자 인원을 고려한다면 실제 복귀율은 0%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5) 국무회의에서 ‘할 말 없다’ … 김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는 지난해 3월 21일 국무회의에서 마무리 발언을 생략한 채 싸늘하게 회의장을 떠나더니, 그 날 오후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을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책임을 물어 전격 경질했다. 이번에도 최근 국정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데 대한 불편한 심기가 ‘침묵’이란 형태로 나타났다고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발전노조 파업이 장기화하고, 조계사 경찰투입에 대한 불교계 여론이 악화된 점을 김 대통령이 못마땅해하는 것 같다”며 “여기에 아태재단 문제와 이에 따른 야당 공세도 한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인터넷 한겨레, 3월 12일).
6) 5개 발전회사는 22일 오후 2시에 회사로 돌아왔거나 복귀의사를 표시한 조합원이 전체의 29%인 1,626명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남동, 남부, 서부, 동서 등 4개 발전회사의 소속 조합원은 대부분 복귀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발전노조 공개상황실의 ‘파업 26일차: 3월 22일 파업 대오 집계’에 의하면 전체 조합원 5,565명중 4,918명이 파업에 참여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파업참가율 88.37%).
7) 안영근 의원은 “정부가 발전파업과 관련 의도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택했다”는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의 협상과정을 공개하였다. 이에 따르면 지난 23일 노조는 한 발 양보해 민영화를 언급하지 않고 징계 최소화 등 현안 문제 타결을 중심으로 협상하기로 하고 대화를 재개했으나 회사측이 갑자기 민영화를 인정하라고 해 협상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안 의원은 “정부가 파업의 장기화가 노조 때문이라는 정부와 회사의 주장에 분노마저 느낀다”며 “전력대란이라는 국민불편을 볼모로 이번 기회에 노조를 파괴시키겠다는 정부의 잘못된 의지가 작금의 사태를 부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8) 중재안(1): 발전산업 5개사 노와 사는 2002년 3월 8일자 중앙노동위원회 중재결정을 존중하여 시행한다(3.29). 중재안(2): 발전산업 5개사 노와 사는 2002년 3월 8일자 중앙노동위원회 중재결정을 존중하여 시행하며, 향후 더 이상의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와 성실의 원칙 하에 발전적 노사관계를 건설하도록 최선을 다한다(3.29).
9) 그러나 이 날 발전노조 공개상황실에서 집계한 바에 의하면 총원 5,567명중 3,905명이 파업에 참가하여 70.14%의 파업참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10) ꡔ한겨레21ꡕ, 405호.
11) 민주노총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에 의뢰하여 진행된 여론조사는 13일부터 15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설문조사 결과 ‘발전소 매각을 미루고 국민적 합의를 해야한다’는 입장이 전체의 86%에 달했으며 반면, ‘발전소 매각 문제는 충분히 논의된 만큼 현 정부 임기 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정부측 입장에 동의한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또한 ‘민영화 반대’는 81%, ‘파업은 노조와 정부의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비율은 84%였다. 또 ‘발전소를 외국자본이나 국내 대기업에 팔고 그들로부터 전기를 사서 쓰는 것’에 대해 81.0%가 반대한 반면, 찬성은 14.6%에 불과했고, 4.4%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조사대상자의 63.6%는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자본이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반면, 기업간 경쟁으로 경영의 효율성을 이뤄 요금이 내릴 것이라는 데는 13.9%에 그쳤다. 또 지금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은 19.6%였다.
11) 민주노총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에 의뢰하여 진행된 여론조사는 13일부터 15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설문조사 결과 ‘발전소 매각을 미루고 국민적 합의를 해야한다’는 입장이 전체의 86%에 달했으며 반면, ‘발전소 매각 문제는 충분히 논의된 만큼 현 정부 임기 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정부측 입장에 동의한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또한 ‘민영화 반대’는 81%, ‘파업은 노조와 정부의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비율은 84%였다. 또 ‘발전소를 외국자본이나 국내 대기업에 팔고 그들로부터 전기를 사서 쓰는 것’에 대해 81.0%가 반대한 반면, 찬성은 14.6%에 불과했고, 4.4%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조사대상자의 63.6%는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자본이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반면, 기업간 경쟁으로 경영의 효율성을 이뤄 요금이 내릴 것이라는 데는 13.9%에 그쳤다. 또 지금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은 19.6%였다.
무엇보다 발전소 매각은 산업용․농촌․낙도의 전기요금 할인 등 공익적 기능이 줄어들 것이라는 데 60.1%가 동의했으며 투자를 꺼려 전력부족 사태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40.8%에 달했다.
12) ꡔ조선일보ꡕ, 3월 26일자, 종합판,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