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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양극화: 투표함과 거리

현장에서 미래를  제76호
제임스 페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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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번역




좌우양극화: 투표함과 거리*
* James Petras, “Right/left polarization: The ballot box and the street”, 2002.5.10.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rebelion.org/petras/english/petra s190502.htm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




서론
언론과 학계, 보수정치인들이 최근 선거에서 우익과 극우세력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극우세력이 총계 20퍼센트를 득표한 최근 프랑스대선 1차 투표는 극우선회의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며칠 사이 50만명 이상이 르펭에 맞서 파리와 여러 도시의 거리로 나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전면적인 우경화라기보다는 좌파와 우파간의 첨예한 양극화이며, 후자는 투표함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전자는 거리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양극화는 다양한 복잡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며,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좌파”와 “우파”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을 고려하여 좌우양극화 개념 자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논의주제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다음, 양극화의 분석과 기술로 나아갈 것이며, 그 이론적-정치적 함의에 초점을 맞추면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현재의 좌파와 우파
학자와 언론인, 정치평론가들은 정치체제에 무분별한 명칭을 남발함으로써 커다란 정치적 혼란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정치지도자 르펭에 대해서는 그의 인종주의적, 외국인혐오주의적 언사로 “극우”라는 정확한 명칭이 붙여졌다. 하지만 전쟁(아프가니스탄과 콜롬비아), 쿠데타(베네주엘라)과 전쟁계획(이라크)을 획책하는 부시정권에 대해서는 “극우체제”라는 표현대신에 “보수”라는 잘못된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프랑스의 조스팽, 클린턴 전(前)행정부는 복지프로그램을 삭감하고 금융투기와 발칸의 정복전쟁을 조장하고, 조스팽의 경우 보수적 전임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공부문 기업들을 민영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도좌파”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적절한 명칭은 “보수” 또는 “중도우파”라는 것은 명백하다.
실제로, 수많은 중도우파 정치인들은 현행헌법을 지지한다는 태생적 의미에서 “보수”가 아니다. 블레어와 클린턴은 발칸전쟁을 악용함에 있어 헌법적 제한을 초월하였으며, 조스팽은 의회의 동의없이 에어프랑스와 프랑스 텔레콤, 방위산업체들을 민영화하였다. “중도우파”에서 우파 및 극우파로의 이행은 그들의 사회경제적 정책이 자신들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오늘날 진정한 좌파의 중요하고 역동적인 세력은 거리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선거과정이 아니라 대중투쟁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자본에 맞서 30만명이 시위를 벌였고, 2백만명이 베를루스코니에 맞서 투쟁했다. 스페인에서는 대부분이 반자본주의 시위대인 40만명이 유럽정상회담과 아스나르 스페인 대통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과거에 중도좌파로 간주되었던 세력은 중도우파 또는 우익으로 선회하였다. 우익으로 간주되었던 세력은 극우파가 되었다.
오늘날 중도좌파는 약화되었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에서 논쟁은 중도우파와 우파, 극우파간의 논쟁이다. 좌파와는 달리, 우파정당들은 권력기구를 통해 작동하며, 선거운동 기간을 제외하면 거리의 대중투쟁에 거의 관심도 없고 대처할 역량도 없다.
모든 종류의 우파를 정의하는 정책들에는 공기업의 민영화, 공공서비스의 삭감, 경제의 탈규제화, 노동조합의 약화, 고용안정과 사회복지를 침해하는 법률의 집행, 과거와 미래의 제국주의전쟁에 대한 지지 등을 포함한다.
다양한 우파정당들 간의 차이는 보호주의―부시와 르펭이 가장 보수적이고 블레어와 아스나르(Aznar)는 더 “자유적”이다―이민(대다수 유럽 우파는 제한적이고, 르펭, 하이더는 배제적이다), 중동문제(미국과 르펭은 샤론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이지만, 나머지 유럽은 온건적 비판이다)의 수준(degrees)을 포함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우파와 극우파는 미국의 전쟁과 간섭을 지지하고, 라틴 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Latin American Free Trade Area)를 용인하며, IMF와 같은 이유로―아메리카 금융기구들의 처방을 따르는 거의 모든 정권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 여기에는 쿠바와 베네주엘라를 제외한 모든 정권이 포함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거 좌파(the electoral left), 즉 중도 좌파는 중도 우파화 되거나, 혹은 이를 훨씬 넘어서고 소수이다. 실제 존재하고 있는 좌파의 주된 목소리는 에콰도르에서 두 명, 아르헨티나에서 네 명 볼리비아에서 한 대통령을 사퇴시켰던 것처럼, 사회정치 운동이나 조직된 대중 봉기에서 찾을 수 있다. 좌파는 많은 다양한 표현, 요구,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공통된 맥락이 있다. 좌파는 대규모 거리 시위―직접행동―에 기초하며, 미 제국주의(플랜 콜롬비아, ALCA 등), 부채지급, 구조조정 정책 및 여타의 IMF처방에 반대한다. 대부분의 경우 좌파는 농업개혁, 은행 국유화, 사회 서비스의 공적 투자를 통한 경제 내 국가 역할의 증대, 국내시장의 보호와 촉진, 새로운 직접대표제의 형태, 진보적인 세법제정을 통한 사회평등, 독과점의 몰수, 불법재산에 대한 몰수를 지지한다.
유럽(대부분 프랑스와 이탈리아)과 라틴 아메리카(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에콰도르)에서는 여전히 선거좌파가 남아있지만, 그 제도적인 역할에서는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해왔다. 단지 선거좌파의 활동가들과 지도자들이 직접적인 행동을 했을 때에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중도좌파와 우파간의 오랜 선거 분할은 부적절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은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 전쟁을 찬성하며, 복지국가의 법률을 축소하면서, 중도우파와 우파정책을 채택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의 주인공들을 성장하고 있는 좌파 대중운동 대 우파의 선거-제도 세력으로 본다면 우파/좌파의 구분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적절할 것이다.


우선회: 제도적 기구를 통한 진출
프랑스(르펭), 오스트리아(하이더), 이스라엘(샤론)에서 극우파 정당의 선거승리는 전(前) ‘중도좌파’연합이 우선회 한 것과 직접적 연관을 가진다. 이른 바 “중도좌파”정권은 국가 지출을 삭감하고 노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안전 시스템을 위협하고 소농을 약화시키는 무역장벽을 낮추는 것, 선별적 이민 등을 찬성해왔다. 반면, (비용을 낮추고 나이든 노동자들의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노동유연화”를 도입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을 증가시켰고, 청소년 범죄와 싸우기 위해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치안대책만을 강조했다. 우선회의 결과는 대다수의 민중들이 정통 좌파와 우파정당에게 사기당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전 “중도좌파”는 공기업의 사유화를 확장시키고 심화시켰으며, 따라서 거대한 실리연합으로 대중의식속에 확고히 자리잡고 기존 우파와 변별력이 없어져 버렸다.
중도좌파의 사회경제적 이해에 대한 변별력이 흐려지면서, 우파에게 이중의 효과가 발생했는데, 경찰의 진압(법질서), 이민(더 심해진 규제)과 관련해 우파가 극우파와 더욱 가까워 진 것, 대기업에 대한 대중의 일체감을 높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극우파의 외국인 혐오자와 광신적 애국주의자들의 항소는 합법화되었고, 보호무역론자와 자유주의적 정책은 전 중도좌파의 자유주의적 정책에 의해 위협받은 소규모 사업자, 농민, 상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국제적인 영역에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워싱턴에서부터 번지고 있는 극단적 군국주의, 제국주의 정책이 우파를 강화시켜왔다는 것이다. 부시정권이 극우 이스라엘 지도자, 아리엘 샤론과 아프간, 팔레스타인, 유사하게는 이라크의 대량학살을 지지한 것은 극우파의 “반 아랍”, “반 이슬람”적인 태도를 강화시키고 합법화시켰다.
게다가, 미국의 독단주의, 미 제국의 1인자의 위치, 반 테러리즘 수사에 의해 더 가열된 미국내의 광신적 애국주의 캠페인은 르펭, 하이더 그리고 그 외 유럽 극우파가 선택한 위치와 잘 부합하고 있다.
우파의 주요한 진전과 그 기세는 선거 및 부시-럼스펠드-체니 등 어느 정권의 통치에서도 잘 알 수 있다는 강력한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유럽의 극우파의 프로그램은 미국 정부를 모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외선전의 문제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또한 명백한 반유태주의(anti-semitism)와 공개적으로 표현된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옮기고 있다.
언론이 “보수적인” 부시 정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쓰지만, 실제로 부시 정권은 그 정책의 형식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나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부시 정부는 독단적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교토협약, 러시아와의 탄도탄 요격 미사일 협정, 생화학전에 대한 협정 등 기본적인 국제 협약 전체를 거부해왔다. 부시 정부는 인권에 반하는 범죄를 관할하는 국제 법정을 여는 것도 거부했다. 부시 정부는 GATT와 WTO의 규약을 위반하고, 경쟁력이 없는 목재, 직물, 설탕, 자동차, 철강 산업과 그 외 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설치하고 쿼터제를 도입했다. 부시정권은 미국경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 않다. 부시정권의 정책은 급진적인 파괴와 극우정치를 향한 움직임을 대표하고 있다.
대외관계에서 부시정권은 영구적 전쟁전략을 제도화함으로써 군국주의적 정복이라는 클린턴의 정책을 심화시키고 확장시켜왔다. 부시 정부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및 그 외 지역에 대한 전쟁준비, 중앙아시아, 필리핀, 발칸반도의 군사기지의 확대, 실패한 베네주엘라 쿠데타의 조직은 제국주의적 확장이 새로운 악성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스타일에 있어서도, (독단적인 군사적 확장 형태에 있어) 미국 최고 정책 입안자들은 공공연히 아프가니스탄의 파괴를 옹호하고, 어떤 유럽의 영향도 거부했으며, 공개적으로 다른 나라를 간섭했다. 샤론의 무장군인이 수천 수만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 감금, 고문하고 쫓아낼 때, 부시는 그를 “평화적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미국 연방 경찰은 수 백 명의 이슬람교도의 집, 사무실, 기업들을 습격하고, 거의 2000명의 유대인을 독방에 감금시켰다.
부시 정부의 전쟁과 이슬람 교도에 대한 기록은 르펭과 하이더의 어떤 수사보다도 훨씬 더 우익적이다. 그리고 베를루스코니와 아스나르같은 유럽의 기존 우파정책을 훨씬 능가한다. 르펭은 프랑스 기업을 “세계화”로 부터 보호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부시는 수많은 장벽을 제도화했다. 르펭은 주로 아랍 이민자를 협박하고 있으며, 부시는 수십만명의 아랍 이민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괴롭히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있는 이스라엘에 전략무기, 외교적 지지, 경제원조 등을 제공하고 있다. 르펭은 세계에서 프랑스 제국주의의 힘을 드러낼 것을 제안하고 있으며, 부시 제국의 건설은 르펭의 제국의 꿈을 몇 배 능가하고 있다. 르펭은 범죄와 테러활동을 줄이기 위해 경찰력을 증강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부시는 애국법과 270억 달러의 예산을 이용해 이미 헌법을 위반하는 군사 재판과 경찰법을 통과시켰다. 르펭은 샤론의 반팔레스타인 전쟁을 말로써 지지하지만, 부시는 무기와 돈으로 지지한다.
주요한 차이는 르펭이 사용하는 반유태적 수사이다. 부시는 이 수사를 회피하고 있다. 모든 시사 평론가들처럼 만약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정확히 믿고 있다면, 르펭이 극우파를 대변한다면, 부시정권은 극우파를 대변한다.
실제 전쟁, 경제, 정치, 지배권, 아랍 이민자, 국제 협정 등과 관련해 르펭을 극우주의자로 규정하는 사안에 대해서 부시는 훨씬 더 강력하고 직접적이며 필연적인 당사자이다. 게다가 부시의 선거 지지와 그의 권력집권은 르펭의 태도와 같은 맥락에 있거나 훨씬 능가한다. 부시는 24%의 선거구(투표한 사람들 중 49%)로 전체 투표 중 소수를 차지했고 권력을 얻기위해 플로리다에서 불법적인 과정에 의지했다. 르펭과 극우파들은 대략 18%를 얻었고 불법적 수단을 통해 권력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극우파의 상승”이 가지는 중요성은 다수결의 선거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에 제도화되는 정책에 있다. 한번 정권을 잡게되면 극우파 소수 부시 정권은 전쟁과 세계적으로는 정치적 의제를 결정하고 국내에서는 다수의 지위를 얻기 위해 테러공포라는 대중조작을 하기 위한 구실을 잡았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쉬라크, 아스나르, 베를루스코니 같은 기존의 우파와 이전의 중도 좌파는 블레어, 죠스팽, 슈뢰더 등과 같이 보수적화되어 어디에서나 미국의 극우 전쟁정책과 연합하거나 미약하고 불합리한 반대를 할 뿐이다. 강철에 대한 미국의 보호주의적 법안이 유럽과 일본의 이익을 침해했을 때서야 봉쇄의 위협으로 대응했다.
유럽의 보수주의적 정권 중에서 단지 영국의 토니 블레어만이 부시의 미래의 걸프전 계획을지지하면서, 미국의 극우 제국주의적 의제를 따랐다.
유럽의 극우가 더 큰 중요성을 얻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혹은 기본적으로 국내적 사안 때문만이 아니라 유럽의 극우파들이 부시 정권 내에서 역할 모델과 경쟁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극우파의 성장”을 사실이 아닌 가설로써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상대적인 르펭의 득표가 극우파의 급부상이라는 명제를 뒷받침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2차 투표에서 르펭의 득표는 7년전의 복사판이었다. 1차 투표에서 좌파(트로츠키스트, 공산주의자, 좌파 사회주의자, 그린)의 총 득표수는 르펭의 득표수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
극우파의 득표가 가지는 중요성은 국내 지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우파가 부시정권의 국제․국내 정책을 모방하는 데 있다. 부시와 블레어 정권의 존경스러운 극우파들이 강제로 르펭과 유럽의 극우파를 수사적 과잉으로 비난하면서, 그들은 의식적으로 세계적 시야에서 더 많은 유사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부시 정부가 이슬람 그룹에 대한 공격과 반테러 캠페인에 대한 지지를 얻음으로써 유럽우파 정치인의 상상력을 통제해왔다. 또 중요한 것은 워싱턴의 경제적 협박, 독단주의적 태도, 보호무역수의는 유럽의 통치권과 확장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전 세계적 괴롭힘에 대해 유럽의 권리(the European Right: 이전의 중도 좌파와 전통적인 보수주의 모두)가 미약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미국의 실천의 거울 이미지인 극우파의 “프랑스 최우선”정책에 대한 풍부한 토양을 제공해주고 있다.
만약 “우경화”가 극단으로 진전되어 미국에서 가장 극단적인 표현을 취하게 된다면, 그래도 역시 유사한 우경화 움직임이 유럽의 선거정치에서도 관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과거 전통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딱지를 고려한다면, 과거 10년간 유럽 정권의 실제 정책은 가차없는 반노동 친자본 전략과 집행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우경화는 그 속도나 범위, 그리고 그 특수성, 특히 대중 운동과 노동조합의 힘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유럽의 국가도 전 사회민주주의, 기독 민주주의, 보수 아니면 다른 전통적인 정당이냐에 관계없이 노동자 계급을 위한 복지를 증진시켜왔다. 반대로, 모든 정권은 일자리, 노동자의 안전, 노동조합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을 약화시켜왔고, 사회, 보건, 교육 혜택은 다양한 수준에서 사라져버렸다. 프랑스의 있을 수 있는 예외를 제외하고―왜냐하면 정권이 거의 책임성이 없기 때문에―노동시간은 단축되지 않았고, 불확실하고 저임금 고용은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가져야만 하는 상황과 장시간 노동을 결과했다. 유럽의 정권들은 마케도니아, 코소보, 알바니아, 아프가니스탄에 영구기지와 이라크 전역에 걸친 제공권(制空權)을 가지고 이라크와 유고슬라비아에 폭탄을 투하하고 침략하면서 미국 주도의 전쟁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냈다.
유럽 정권은 유럽의 은행과 다국적 기업에 의해 촉진된 “군국주의적 신자유주의”의제를 채택해 왔다. 그리고 미국과의 경쟁/협력 하에서 서유럽, 러시아, 중동, 라틴 아메리카로 확장하는 것에 자금을 지원해왔다. 군국주의적 신자유주의 의제에 주요 유럽 정치 정당들이 집중한 것은 선거좌파에 완전한 정치적 공백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어떤 정당도 신자유주의 정책, 군사적 확장, 대기업 및 은행에 대한 종속에 의해 역으로 영향을 받은 자들을 대변할 수는 없다. 유럽의 다당제 시스템은 미국의 일당 이당파 시스템(one party two-faction system)으로 전환되어 왔다.
선거정당의 만장일치, 대중적 역경과 불만이라는 맥락에서 두 극단의 세력이 등장했다. 선거극우파와 의회밖좌파(extra parliamentary left)가 등장해왔고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극우파는 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수동적인 반대자’로부터 득표를 했다. 이들은 사회부패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특히 젊은 이민자들에 의한) 범죄의 증가에 겁먹은 노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극우파는 또한 수입과 대기업에 의한 경쟁에 위협을 받고 있는 소규모 사업가들과 농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극우파는 국외생산자들과 관련해 “보호주의적” 정책, 국내 독점업체들과 관련해서는 “자유주의적 정책”을 결합시키고 있다. 극우파는 식민지 전쟁의 퇴역군인, 기독정통주의자, 오래된 파시스트 및 파시스트 운동의 지지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것은 “민족주의 정서”―비민주적 대기업에 의해 통제되는 EU에 대항해 국가주권에 대한 확인, 미국 문화의 영향력에 대한 저항, 미국의 정치적 지배로부터의 독립―에 호소하는 것이다. 극우파는 노조의 이데올로기 기반(“공산주의자”들에 운영되므로)과 경제 기반(그들은 생산성을 억제하므로) 모두에 대해 적대적이다. 극우파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을 해고하는 다국적 기업보다는 “외국인으로부터 일자리를 보호하는 데” 협력하자고 호소한다. 결국, 극우파는 기존 우파들을 유인하기 위해 반이민 반좌파 정책을 반테러 전선과 결합시키면서 강력한 경찰 국가적 호소를 강화시키기 위해 반테러 정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반체제 수사와 친체제 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의 혼합은 기존 “구 좌파”의 신, 국가, 대기업에 대한 호소와 교차한다. 극우파의 신랄한 수사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인한 계급 양분화의 심화를 감추려 하면서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양극화 감정을 고양시키고 있다.
극우파는 선거전에서 진전을 보았고 제도정치의 영역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리에서 어떤 힘도 과시하지 못했다. 수백만명의 극우파 지지자들은 인구통계학상 대부분이 유권자들인데 왜냐하면 극우파의 정책이 직접적으로 자본주의 국가 장치를 강화시키는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국내의 자유주의적 정책을 강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당선이 되면 심지어는 ‘세계적 자유주의’를 추구할 지도 모른다. 극우파의 공격은 경찰이나 군대가 아니라 정당에 대한 것이다. 사유재산이 아니라 개인재산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자유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정책의 특정측면을 향한 것이다. 비유럽인들에 대한 “배타주의적”태도와 “보다 큰 경찰의 진압(“법질서”와 무포용정책)에 대한 명백한 수용으로 집권 신․구 우파에 의해 승인된 제한적 이민법 제정, 워싱턴과의 합작품인 반테러 캠페인, “무포용”의 루돌프 쥴리아니 전 뉴욕시장에 의해 촉진된 가혹한 경찰 권력 등이 나타났다. 극우파의 제도-선거적 태도는 특정 “헌법적 합법성”을 부여해 왔다. 극우파는 기존 신자유주의 좌파와 꼭 같은 법칙에 의해 움직였으며 체제 내에서서 작동하는 근거인 몇가지 기본적인 사안에 대해 형식적인 응집성을 부여해왔다.
“제도적 양극화”와 유럽 자본가들의 이해(소자본 VS 대자본, 국제 VS 국내 생산자들)를 가장 잘 대변할 사람이 누군가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성장하고 있는 있는 의회밖 좌파에 대한 우파 및 극우파의 공통된 적대감을 흐리고 있다.


좌선회: 거리는 우리의 것
국제 자본, 제국주의 전쟁, 반 노동법 제정을 지지하면서 전(前)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전(前) 공산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 혹은 보수주의적 정당과 결집함으로써 수만명의 노동자, 공공부문 노동자, 특히 젊은 사람들이 “거리의 정치”에 나서게 되었다. 시애틀에서 오타와, 맬버른까지, 지노아와 바르셀로나까지 수천 수만명이 처음에는 “세계화”에 반대해서, 더 최근에는 자본주의에 반대해서 조직되었다. 시위는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지지가, 조직가, 국제 그룹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시켰다. 라틴 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 협정(ALCA)에 반대하는 지역 운동은 규모 면에서나 강도 면에서나 성장해왔다. 언론에 대한 부르주아 정당의 독점, 투표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제한 등의 무거운 제도적 봉쇄로 인해, 그리고 선출된 입법기관이 실무기관, 중앙은행, 비 선출 기구 내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 무능하기 때문에 선거 무대는 개입하지 않았다. 선거 대의 기구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노동자, 농민, 실업자, 반체제 인사, 좌파는 의회밖 투쟁 형태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의회밖 투쟁은 이슈를 제기하는데 있어서나 변화를 획득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판명되어왔다.
시애틀, 런던, 지노아, 맬버른, 바르셀로나에서의 대규모 시위는 어떤 “좌파”, “중도좌파”의 선거 캠페인보다도 젊은 세대를 정치화, 활성화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반세계화, 반자본을 내용으로 한 시위는 그 어떤 의회 내 비판보다도 신 제국주의질서와 국제 금융기구(IMF, 세계은행, IDF 등)의 부당함을 환기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대중적 국제 포럼에서 외채, 사유화,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미 의회의 침묵과 유럽의회에서 홀로 비판을 하는 것보다 가난하고 착취받는 제3세계의 민중들과의 연대를 창출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IMF, 다국적 기업, WTO에 반대하는 국회를 넘어선 조직화는 그들을 수세적인 위치로 몰았고, 회의가 열리는 곳은 철조망과 헬리콥터와 장갑차를 대동한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수천 수만의 활동가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계급양극화는 젊은이, 노동자, 농민, 전문가가 금융, 산업자본가와 갈등을 빚게 반들었다. 전(前)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중도좌파로 이동하고, 우파의 신자유주의적 의제들을 받아들이면서, 의회밖 운동이 좌파 내에 자리잡게 되었고, 극우파가 신․구 우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개입하는 것이 촉진되고 있다.
1995~96년 프랑스의 대규모 노동자 투쟁은 우파 정부의 몰락을 촉진시켰다. 이와 동일한 대중의 압력이 에어프랑스, 국방산업, 통신산업을 사유화하고 “유연한”노동조건을 추구하기 이전, 신자유주의적 죠스팽 정권이 고용주를 옹호하는 35시간 노동을 도입하기 위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WTO가 페르시아만의 버림받은 땅에서 회의를 열도록 강제했던 세계은행에 대한 비난은 유럽의회의 맥빠진 결의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더 대규모의 더 전투적인 “지노아”의 협박이었다.
우파 선거 정권―기존의 우파뿐만 아니라 전(前) “중도좌파”를 포함해서―과 의회밖좌파들 사이의 양극화는 라틴 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제3세계 및 아시아에서 그 표현을 찾을 수 있다. 제3세계에서 유럽-미국의 우경화―워싱턴에서의 극우파의 권력집권과 유럽에 의한 조정―는 좌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급진화시켰다.


라틴 아메리카: 양극화의 심화
라틴아메리카에도 극우화의 신호를 많이 찾을 수 있다. 멕시코에서 팍스 정권은 이전의 모든 외교관행을 파기하고 공개적으로 미국의 개입주의적 태도를 용인했으며, 멕시코 경제를 엄청난 마퀼라도라로 전환시키는 플랜 퓨에블로-파나마 계획을 제안했으며, 쿠바와의 거의 관계가 파괴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조지 카스타네다를 통해서 독립적인 외교정책의 구실들을 모두 버렸다. 국내정책에 있어 팍스정권은 부유한 원유산업의 점차적인 민영화를 촉진시키고 대량소비품목에 대한 세금을 증가시켰다. 팍스정권은 우경화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명확한 사례이다. 독단적 제국건설이라는 미국의 프로젝트에 전적으로 복속되었고 경제의 전략적 자원에 대한 미국의 통제를 무제한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미국이 지원하는 “자유무역”협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팍스정권이 더욱 우경화됨에 따라, 대중적 반대의 수준이 상승되었다. 대규모, 소규모 노조, 농민, 토착민 조직들을 포함된 멕시코전역에 걸친 노동절 행진을 통해, 팍스가 쿠바에 대해 지닌 적대감과 미국에 대한 비굴한 노예정신에 항의했다. 중도좌파(PRD)와 우파(PRI)인 의회반대파들은 팍스를 비판하고 그의 정책을 완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팍스의 의제는 의사당의 외부에 있는 멕시코인들―거리의 노동절 시위대와 같이―에 의해 패배 당할 것이다.
베네주엘라는 최근 역사를 통해 고도의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경험했다. 친 제국주의적 우파는 미국에 의해 자금지원과 지지를 얻었고, 전체 부르주아지의 지지를 얻었으며, 도시와 시골의 빈민과 일부 군에게 패배당한 실패한 군사 쿠데타의 지원을 얻었다. 심지어는 제도적 권력도 나뉘어 있었다. 소수는 미-부르주아지 쿠데타의 편을 들었고, 다수는 자유적 민주주의 성공과 대중을 지지했었다.
워싱턴의 극우파는 베네주엘라 극우파에서 그 표현을 발견했다. 이것은 2002년 4월 실패한 쿠데타에서도 명확하다. 쿠데타의 수부인 경제 지도자 카르모나의 첫 번째 수단은 워싱턴의 의제와 철저히 같은 맥락에 있었다: 쿠바에 대한 석유공급 중단. OPEC의 쿼터제 거부, 부시의 외교정책 포용, 챠베즈 다수파와 함께 선출된 기관의 해산. 베네주엘라의 이번 대통령도 전적으로 미국이 시키는대로 요구에 부응해서 모든 볼리바리안 운동의 모든 대표(챠베즈 대통령의 지지자들)를 숙청할 준비가 되어있는 권위적인 괴뢰 정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세력은 당선된 대표자들, 의회나 군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직되었건 조직되지 않았던 간에 수천 수만의 빈민이었고, 이들은 챠베즈를 권력에 올려놓기 위해 카라카스 및 다른 주요 도시의 거리를 점거했다. 대중 권력의 등장은 “충성스러운”군 일부가 쿠데타를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우유부단한 장군들이 “충성스러운”군인과 함께 하도록 만들었다. 애초 군부 쿠데타를 지지했던 몇몇 사람들도 이 아슬아슬한 정치적 기행에 참여했다. 쿠데타가 실패할 것을 예견하면서 민주주의의 복원에 참여했다.
군부의 지배적인 역할을 언론이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챠베즈의 민주주의 복원에서 전환점은 카라카스를 재점거하고 대통령관저를 습격하겠다고 협박했던 수천수만의 민중들이었다. 군부에 있던 엄청난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쿠데타의 편에 서서 유혈이 낭자한 시민전쟁을 일으킬 것인가 아니면 민중이 정부를 틀어쥐고 정치적 과정을 급진화 시키는 것을 막는 과정에 개입할 것인가라는 선택에 직면했다. 군부는 챠베즈와 자유민주주의를 복원시키기 위한 대중의 급진화를 봉쇄할 수 있을 정도로 개입했다. 민족주의적 외교정책과 신자유주의 국내정책의 혼합으로 대표되는 챠베즈가 미국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국내 부르주아지와 부패한 노동조합 우두머리들과 갈등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양극화의 복잡성은 실제 계급 양분화와 교차한다. 오랜 기간 동안 지속 되어온 상류계급의 특혜, 인종주의, 부패, 약탈은 60%의 실업자들과 불안정 고용에 시달리고 있으며 80%가 빈곤층인 베네주엘라에서 화난 빈민 및 계급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중하층 계급들과 충돌했다.
마이애미의 콘도 거주자들과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카라카스가 내려보이는 언덕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빈민은 대비된다. 챠베즈는 그를 지지하는 빈민대중의 기본적인 요구를 조직하지 못하고 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부유층과 권력층에 대한 적개심에 대한 형태를 정치화시켜 부여하고 아프리카 출신인 것을 자랑스러워 하도록 가르쳤으며 그의 자주적인 외교정책을 통해 베네주엘라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신시켜왔다. 대중적인 참여와 자주성은 워싱턴과 국내 지배계급을 분노케했고 제2의 쿠데타를 준비하도록 했다.
미국에서 극우파의 집권은 쿠데타메이커에게 푸른 신호등이었고, 지속적인 외국경제의 약탈을 계속시키기 위한 더 큰 억압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열었다. 콜롬비아는 선거정치에서 극우파가 등장한 세 번째 사례이다. 유력한 대통령 당선 후보인 우라이브는 대중봉기에 대한 전면전을 주장하는 워싱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동시에 부시 정부는 부가적으로 여러 해에 걸친 수백만 달러의 군사원조 프로그램, 특히 농민을 기반으로 둔 게릴라들을 공격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는 파스트라나 정권은 평화협정을 파기하고 게릴라대한 실패한 군사폭력을 감행했다. 이것은 갈등을 격화시키고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군사적-준(準)군사적으로 살해하는 일을 증가시켰다.
콜럼비아에서 민중봉기의 진전을 막기 위한 클린턴의 초기 군사원조 프로그램인 플랜 콜럼비아는 부시정권의 플랜 안디나, 에콰도르와 페루의 군사화, 산 살바도르, 만타(에콰도르), 북 센트럴 페루의 신 군사기지 획득, 미 군 간부, 특수부대, 용병의 직접개입을 통해 확장되어왔다.
콜럼비아 정치를 미국이 군사화 시키면서 과두정치와 군부, 게릴라와 농민사이에 시민전쟁의 균형이 더욱 양극화가 되어왔다. 정치는 완전히 의회정치의 밖에 있다. 정치는 군사령부와 의회밖 대중 봉기 사이에 있다.
아르헨티나 정치는 선출되지 않은(두할데 대통은 투표를 통해 당선되지 않았다.) 선거정권과 주요 슬로건이 “모든 정치인은 물러가라.”라는 대다수 유권자들 사이의 극단적 사회적 정치적 양극화를 강조하고 있다. 2001년 12월 19~20일 에 벌어진 대중봉기는 분노, 적개심, 주요 정당, 지방 자치정부, 의회 지도자에 대한 거부와 특히 수천 수만의 전 중산층과 실업자들의 시위를 피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대통령궁을 탈출한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한꺼번에 분출한 것이다.
사회 양극화는 이보다 더 명확할 수는 없다. 대부분 외국인에게 소유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은행은 중산층의 모든 저축을 압류했다. 은행계좌를 압류하기 바로 직전 외국으로 도망간 엘리트의 저축이 300억~400억 달러에 이르렀으나 중산층의 저축액은 450달러 이상이었다. 스스로 당선된 두할데 정권을 통해,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에 의해 지원을 받고 있는 (한해의 이윤이 30%이상인) 금융계급은 은행이 감당할 수 없는 저축에 대해 2%이자의 1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해서 예금주들에게 환불해 줄 것을 제안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채는 본사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정치적 양극화는 노동자, 실업자뿐만 아니라 빈곤한 중산층, 연금수혜자, 공무원들 포괄하는 지역의 ‘민중의회’와 같은 병렬적인 정치 기구의 등장으로 나타났다. 민중의회는 아르헨티나 주류의 정치화 및 참여의 증가를 반영하고 있으며 완전히 합법성과 대표성을 상실한 공식기구와 대치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치엘리트와 지배계급의 주류와의 거리는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벌어지고 심화되었다. 한편에서는 해외에 1500억 달러 이상을 예치하고 있으며, 모든 아르헨티나의 예치금을 압류하고 있는 국내외 은행가들과 강력한 ‘경제 단체’는 지배계급을 구성하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30%가 실업상태에 있으며 50%이상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어서 아무런 저축도 없이 살아야하는 사람들과 연금지금이 지연되고 50달러의 연금에 의존해 살아야하는 연금수혜자들, 몇 달 동안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지급 받는다고 해도,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로 지급 받는다) 지방의 수만명의 공공부문 노동자들(보건노동자, 교사, 공무원, 지자체 공무원 등)이 거대한 대중을 이루고 있다.
이런 대중의 빈곤과 5년의 경제후퇴(산업은 2001년과 2002년 사이 20%하락했다)의 과정에서 유럽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는 IMF, 세계 은행, 부시정권은 더 많은 예산삭감, 지방부채와 통화의 해소, 더 많은 인원의 해고 등을 신규대출의 조건으로 요구했다. 사회 양극화와 정권이 고립된 조건에서 워싱턴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법적으로 군사독재나 대통령의 독재권력 등의 권력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시 정부와 IMF는 외채 의무에 부응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대다수를 내핍으로 몰고가며, 아르헨티나 은행 예금자들에 대한 외국은행의 재정의무를 경감시켜 주는 경제정책을 실행할 “의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집단적인 민족적 생존이냐 아니면 제국주의자가 초래한 궁핍과 분열이냐의 시점에서 다수의 대중은 좌파의 살육적인 갈등과 저항의 분산으로 인해 분절화되어 있고, 사회-정치적 양극화는 아직 국가권력에 도전할 만한 통일된 조직적 지도력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우파 쿠데타 또한 쿠데타를 유지할만한 최소한의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집권당의 우경화와 극우화는 라틴 아메리카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었다. 첫째, 미국과 유럽의 우경화는 경제위기를 심화시키면서 경제약탈을 낳았다. 둘째, 부를 집중시키고 은행예금자들과 납세자들의 돈으로 수십억달러의 대규모적인 사기를 부채질함으로써 사회-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셋째, 유럽-미국 우파는 경제회복을 저해하고 더 많은 부가 외국으로 상류계층으로 빠져나가게 만드는 요구를 통해 궁핍한 대중과 침체된 경제를 더 약탈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넷째, 종속국가(client regimes)가 완전히 고립되어 있고 새로운 조치들이 거부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군사개입, 권위적, 독재 정권(선거의 허울을 썼던 아니던)에 대해 공개적 수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어떤 것도 라틴아메리카의 극단적 경제조치와 사회․정치적 양극화 만큼 미국의 극우파 상승을 따라 잡지는 못한다.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정치계급은 생활조건의 붕괴, 중간계급의 빈곤, 노동력의 50~80%를 대표하고 있는 실업자와 불안정노동자의 숫자의 증가를 막는데 실패했다. 반대로, (전 “중도좌파”인) 우파는 공공 서비스를 축소하고 부채의무에 부응하고, 이윤이 남는 공기업을 사유화하는 후퇴적인 법 제정을 승인하는 과정에 한패가 되어있다. 좌파선거정당은 목소리를 냈지만 무능력한 비판자였고, 유럽과 미국 은행가들 및 IMF, 세계 은행 그리고 IDF의 공무원들의 집행력과 지배적인 역할의 증가로 인해 퇴장 당했다. 많은 경우 좌파는 중도로 움직여 왔고 심지어는 제국주의 권력을 수용하기 위해 우경화 되었다. 그 결과는 의회밖 운동과 국내의 정치엘리트 및 지배계급과 연결된 미-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사회/정치적 양극화이다.
브라질이 그 좋은 사례이다. 1990년 파르도소의 브라질 사회민주당은 우경화되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고 극우파인 지주당(PFL) 및 우익(PMDB)과 동맹을 맺고 월스트리트를 포용했으며 미국의 지지를 받았다. 2002년 선거에서 소위 노동자당(Workers Party)은 중도좌파에서 우파로 옮겨와서 신자유주의 의제를 수용하고 땅 없는 노동자 운동(the Landless Workers Movement)을 공격했으며, 미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극우파 자유당과 동맹을 맺었다.
단지 땅 없는 노동자들의 운동(MST)과 같은 사회운동 만이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표현하고 옹호해오고 있다.
투표함이 아닌 “거리”만이 부패하고 무능하며 결탁되어 있는 공식 정치 기구에 대항해 민주주의적 대표의 완벽한 형태를 창조할 수 있는 길이다. 단지 대중적인 사회운동만이 대중을 빈곤화시키고 경제를 약탈하는 제국주의적 기구에 순응하는 대통령을 타도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대중운동에 의해 쫓겨난 대통령의 목록은 대단히 길고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한달 동안 네 명의 대통령이, 에콰도르에서는 두 명의 대통령이, 베네주엘라, 브라질, 볼리비아에서도 대통령이 물러났다. 대중운동의 사회 권력은 브라질에서 30만 명의 농민들에게 정착되었고, 볼리비아와 콜롬비아에서 수 천명의 코카재배 농민의 생활을 지켰고, 베네주엘라에서 미국의 공동작품인 쿠데타를 패배시키고 민주주의를 복구시켰다.
대중적 좌파 사회정치 운동의 세력, 진실성, 효율성은 좌파선거정당의 무능함, 기회주의, 주변성과 큰 대조를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우익극단주의는 중도좌파의 선거 선택권을 약화시켰고, 노동조합과 전중산층의 기반을 잃었으며, 독재적 반응과 혁명 사이의 고전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중동의 양극화
미국에서 극우화는 세계 전역에서 극우파를 고무시키고 활성화시켰다. 이스라엘의 침략과 팔레스타인 영토의 파괴에 대한 미국의 지지에서 파키스탄 내 군부독재의 무샤리프 공고화, 인디아에서 반-이슬람 힌두 극단주의인 자유시장주의 BJP정권과 더 가까운 관계를 형성한 것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는 사례들이 있다. 중앙 아시아에서 전 소비에트 공화국의 지도자들은 사실상 미 제국의 종속국이 되면서, 미국 군사기지에 문을 열어주었다. 인디아에서 미국의 반테러 캠페인을 따르는 BJP정권은 15만 명을 학살하고 불구로 만든 반-이슬람 프로그램 조직한 구자라트의 힌두 파시스트와 동맹을 맺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무샤라프 장군이 그의 지배를 늘리기 위해 기만적인 국민투표(그는 98%의 득표를 했으며 서 제국주의 언론은 어떤 비판도 없이 보도를 했다)를 하면서, 미국의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의 종족부락을 간섭하고 공격하는 것을 승인했다. 필리핀에서 마카파갈-아로요 정권은 모든 헌법적 제한을 위한해왔고, 미국이 군사기지를 재건립하는 것을 승인했으며 이슬람 분리주의자에 대항하는 군사작전에 미군을 직접 개입시켰다. 중앙아시아/파키스탄, 인디아, 필리핀(증가한 영토의 재식민지화, 제국주의적 군부의 침투, 가혹한 소수자와 반체제인사에 대한 탄압으로 보면)에서의 극우화는 미국의 극우파가 권력을 잡은 것, 제국주의가 지배를 행사할 수 있는 국내 권력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상호 이해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부시-샤론의 동맹은 집권한 극우파가 집결한 좋은 예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침략, 수천 수만명을 홈리스로 만들고 중앙 캠프에서 수만명이 죽거나 부상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만든 시들어 빠진 지구 정책은 군사적으로 미국 정부에 의해서 지원을 받았고 상원 투표에서 94-2, 하원에서 352-21로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 제닌의 대학살 와중에, 부시 대통령은 샤론을 “평화적인 사람”으로 칭송했고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테러”라고 비난했다. 상원의 리버만이 주도하고 있는 의회 내 유태계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쟁을 미국의 세계적인 군사력 공세와 연결시키는 고리를 만들었다. 팔레스타인의 경제, 사회, 정치 제도를 황폐화시키는, 이스라엘 작가 우리 아브네리가 이야기 하듯이. 이스라엘의 극우파 정책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영토에서 추방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것은 점령된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적으로 제거하라고 촉구했던 하원 다수파 라차드 아미에 의해서 지지받고 있다. 이런 파시스트같은 마지막 결론은 미 정부내의 세 번째 권력자이자, 부시와 부통령 체니이 뒤를 이어 대통령 서열에서 세 번째인 정치인에게서 나온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극단주의는 팔레스타인인과 아랍의 여론을 무장항쟁을 옹호하는 것과 엄청난 압력을 이집트, 사우디 아랍아와 야세르 아라파트에 있는 미 정치인들의 하수인에게 가하자는 것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걸프에 있는 세 아랍 수장국을 제외하고, 이스라엘-미국의 축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고, 이라크에 대항하는 그들의 프로젝트는 거의 만장일치로 거부되었다.
중동에서 미국의 극단주의를 수용한 것의 역동성은 미국내 강력한 유태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 지는 140명을 고용하고 있는 미-이스라엘 공무위원회(the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를 “최고 다섯 로비 그룹중의 하나로 보도했다. (FT, 2002년 5월 2일 p.4) 이스라엘의 국가 정책을 선전하고 정치적 군사적 지지를 얻는 데 있어 AIPAC는 의회 내 37명의 유태계 의원, 미유태계위원회, 주요 유태계 조직들의 회장 및 영향력 있는 극우 근본주의 기독교 정치 지도자들, 특히 의회의 지도자들, 토머스 딜레이와 하원 지도다 리차드(“나는 이스라엘이 웨스트 뱅크 전체를 차지한 것이 기쁘다.”)와 긴밀하게 일했다. 부시정권 내에서 샤론에 대한 극우파의 무조건적인 지지자는 유대인(펜타곤의 펄과 월프비츠)과 비 유대인(부통령 체니와 국방장관 럼스펠트) 모두를 포함한다. 미국의 대 중동정책을 만드는 데 있어 이데올로기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기라성 같은 사람들은 아랍 원유생산자들과 동맹을 맺고 있는 원유회사들을 주변화 시켰다. 결과는 협소한 군의 이해에 입각한 극도로 불균형한 친-이스라엘 정책과 알려진 바에 의하면 콜럼비아. 베네주엘라, 페루, 에콰도르 그 외의 지역에 대 폭동 공작원을 대리로 공급하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할이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이스라엘 전쟁을 통해 중동분쟁의 핵심 쟁점인 반-식민지주의와 반-제국주의라는 이슈를 만들어왔고, 유럽과 중동에서 의회내 비평은 약화되었다. 샤론과 미국내의 그 지지자들은 군사적 힘 또는 무장 저항에 대한 무조건적인 굴종이라는 이해관계를 높여왔다. 극우파는 중심으로써의 역할이 약화되었다. 샤론에 대한 지지는 급격히 증가해서 이스라엘 내 유태인 75%의 지지를 획득했고, 미국의 유태인들은 샤론을 지지하는 행진을 벌였다. 반면 AIPAC와 동맹을 맺고 있는 유태계 조직들은 긴급 이스라엘 채권을 내는데 수억의 성과를 거두었고, 미 의회와 언론의 지지를 얻었다. 반대로 수백만의 유럽인들과 수천만의 아랍 및 이슬람계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지지 해왔다. 샤론과 그의 노동 동맹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면서, 그들은 UN, 적십자 및 다른 모든 조직의 비판을 거부하고 부시의 “우리 편에 서든가 적이 되라,”는 부시의 슬로건을 채택했다. 미국의 지지를 얻은 이스라엘은 예닌의 대학살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다.
전 세계의 대중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오만함은 워싱턴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확신과 유태계 로비 및 미 의회 정치인의 영향력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나온다.


유럽과 미국: 양극화?
제국주의와 사회정치 운동 사이의 양극화는 유럽정치에 있서 성장하고 있는 요인이다. 반-세계화 운동은 미국의 군사공세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도 불구하고, 최근 반-자본, 반-제국주의와 반-이스라엘의 태도를 취하면서 급진화되어 왔다. 런던에서 프라하까지, 지노아까지, 그리고 바르셀로나까지 시위는 규모면에서 성장해왔고 형식적으로 급진화되어왔다. 사회-정치 운동은 전 사회민주당의 우경화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성장해왔다 영국 노동당은 런던시의 당이며 영국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 임금을 인상하는 것에 반대하는 당이다. 사회주의자 죠스행과 그린당과 공산주의 위성 파트너들은 기존 우파들보다 더 많은 공기업을 사유화 해왔다. 스페인 아스나르는 부시의 세계적 극우 군사 의제를 지지해왔고 베네주엘라의 실패한 쿠데타를 지지하는 미국을 따랐다. 그리고 스폐인계 은행, 석유, 통신 독점자본을 구하기 위해 IMF가 아르헨티나의 노동자 계급에게 가혹한 조치를 하는데 앞장섰다. 부시와 블레어의 연장선에서 아스나르는 반체제 정당을 불법화하고 평화로운 시민의 저항을 제한하는 일련의 반테러 법안을 통해 민주주의적 자유를 심각하게 축소시켰다.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EU정상회담(March)에 반대하는 행진 때, 아스나르는 시위대를 협박하기 위해 2만명이 넘는 경찰과 무장병력 헬리콥터와 군함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40만명 이상이 거리를 메우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태리에서,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선거 정치는 우파에게로 넘어갔고, 사회운동은 주요 반대자로써의 특권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프랑스 대선 1차전에서 죠스팽의 연대는 확연히 패배했고 미투표자는 30%에 다다랐으며, 극우파 르펭은 거의 20%를 득표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거의 백만의 시위대들이 파시스트 우파에 대항해 조직되었고, 그에 대한 지지를 감소시켰다. 불행히도 의회밖 좌파는 유권자들이 좌파우승자 쉬라크에 대한 반대를 설득할 수 없었다.
이태리에서는 200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베를루스코니의 반-노동법안에 대항해 시위를 벌였고, 이것은 2차대전 이후 가장 대규모의 시위였다. 이를 통해, 선거주의 중도좌파와 좌파들이 막을 수 없었던 법률제정을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미 제국주의의 압력이 강화되고 아래로부터의 대중적인 불만이 증가하면서 유럽의 지배계급은 미국에 대한 비판과 미국정책에 대한 굴종과 지지 사이에서 우와좌왕했다.
유럽의 사회-정치 운동은 유럽 정부가 교토 협약을 받아들일 것과, 샤론의 팔레스타인인 대학살을 비난하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국제법정, ABM협정을 지지하고 워싱턴의 패권적인 거부를 반대하도록 강제했다. 반대로 유럽의 지배계급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초기부터 미국의 군사공세를 지지해왔다. EU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IMF와 미국의 태도를 지지하고 국내에서 보호주의라는 미국의 무역정책을, 국외에서는 자유화를 따랐다.
후자로 인해 몇몇 무역분쟁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경쟁하는 제국주의는 세계 시장을 놓고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EU철강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부과와 미국 수출품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유럽이 보복을 하도록 했다. 미국이 제안한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자유무역협정지대는 유럽을 희생해서 시장을 독점화하려는 시도였다. 환경에 대한 미국의 독단적인 결정은 경쟁력강화를 위해 미국 산업 비용을 줄이려고 고안되었다. 미국 세계 최고의 우월성을 위한 오늘날의 공세가 가지는 역동성은 유럽의 제국주의 파트너와 나누어 가진 부와 시장을 포함하지 않는다. 부시가 한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 해보자. “우리 아래에 있지 않으면 적이다.”
집권 극우파의 “초 제국주의”는 EU와 미국사이에서 미국은 더 강력한 군사력, EU는 더 강력한 경제력이라는 어떤 제한된 양극화를 초래했다. 오늘날까지 모든 주된 이슈와 관련해 유럽은 우려, 유보나 심지어는 비판을 표명한 뒤, 미국에 항복해왔다. 영국,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에서이 좌파의 성장과 함께 EU는 전략적 이해, 예를 들어, 석유흐름을 막고 경제를 해칠 수도 있는 이라크의 전쟁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워싱턴의 군사주의-간섭주의적 정책을 추구해왔다. 이런 무역분쟁은 무역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주되게는 유럽이 미국과 맞설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의 증가하는 힘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군사력 하에서 그리고 더 낮은 수위에서는 독일의 노동조합 등에게도 유럽의 우파는 그들이 소유한 다국적 기업을 공격하지 않고, 그리고 대중적인 반대를 불러일으키지 않고서는 미국의 주장하는 의제를 수용할 수 없다. 유럽과 미국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핵심은 우파 정권의 자본주의적 계산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회밖 운동에 달려 있다.


결론
전세계적 차원의 양극화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우익과 극우세력 대 거리와 사회정치적 대중운동에 기반한 좌파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21세기초의 정치현실을 규정하고 있다. 전쟁의 항상화와 전면적 지배의 논리로 가진 워싱턴의 극우권력의 부상은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양극화를 심화시켜 왔다. 중도좌파의 우선회와 우익으로의 흡수는 좌파 사회-정치운동이 미국의 제국건설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 되는 상황을 낳았다.
우익-극우의 힘은 탄압수단과 기본적 경제기구들을 포함한 국가권력의 통제에 있다. 이 권력의 토대는 언론에 대한 공작과 통제의 연속성을 제공한다.
좌파의 힘은 대중동원을 조직할 수 있는 역량, 때때로 정치지도자들을 축출하고, 경제활동을 마비시키며, 제국권력들의 정상회담과 대결할 수 있는 역량에 있다.
우익-극우의 약점은 세계의 곤경, 착취와 환경파괴의 근본원인이라는 그들의 구조적 지위에 있다. 그들은 수십억의 민중에게 피해를 주면서 극소수에게만 혜택을 주고 있다.
좌파의 약점은 투쟁의 연속성 결여, 그리고 국가권력을 장악할 명확한 전략의 결여에 있다. 좌파의 사회정치운동은 강력한 반대세력이지만, 우익이 가진 국가권력에 대한 집착과 지배력 결여에 있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양극화에 내재한 투쟁의 강도는 심화된다. 워싱턴의 극우세력은 전세계적으로 군사개입을 하고 있으며, 예속국가들에게 사회프로그램을 가혹하게 축소할 것을 강제하고 있으며 군사행동을 증가시키고 있다. 군부 쿠데타, 파키스탄의 군부독재의 확립,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샤론의 대학살은 전형이 되고 있다. 좌파에게 대중운동은 거리를 장악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은 저항하고 있으며, 콜롬비아의 게릴라는 반격을 하고 있고 유럽에서 반-자본 시위는 규모와 범위에서 성장하고 있다. 선거좌파는 주변화되고 있으며 중도좌파는 우파와 협력하고 있다.
이론적인 점은 오늘날의 양극화가 좌파정당과 국가간의 단순한 대결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주된 전쟁은 의회밖 좌파 운동과 지역의 고객들과 협력하게 일하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또 선거정치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제국주의 집행자들을 통한 우파의 통치는 포고되고 있고 좌파는 거리에서 대응한다.
우파는 선거과정을 독점화함으로써 권력을 잡고 대기업의 이해 안에서 통치한다. 좌파는 국제, 국내 네트워크,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소위 “선출기구”에 의해 무시된 대중의 불만을 명확히 함으로써 조직한다. 우리는 전쟁, 권위적인 우익 정권 통치의 고양, 사회양극화의 심화, 효과적인 의회 밖의 행동의 강화 가운데 있다. 이것은 영속적인 전쟁과 쿠데타, 끊임없는 제국건설의 시기이다. 이런 “강요된 상황”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대중 조직화가 되살아 날수 있는 동력이다.
양극화의 정치적인 결과는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대하고 있는 계급의 정치적 개입에 달려있다. 최소 네 개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시나리오1: 양극화와 대립이 사회민주주의의 복원으로 인해 해결된다. 의회밖 좌파는 성장해서 자본주의의 통치를 위협하지만 권력을 대체할 능력을 부족하다. 권력, 부와 재산을 잃을 것이 두려운 지배계급은 되살아난 “차악”인 중도좌파와 사회적 협약으로 부를 분배하면서 협상한다.

시나리오2: 양극화는 미제3세계의 억압적인 정권과 유럽 내 미국식의 단일정당 통치를 기반으로 한 미 제국에게 문호를 열면서 우파와 극우파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

시나리오3: 좌파 조직화와 운동이 제국주의 내부의 갈등과 결합되고 무역전쟁과 경제위기가 좌파가 정권을 잡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끝난다.

시나리오4: 계속되고 완화되지 않는 어떤 해답도 없는 양극화. 미 제국은 경제비용과 예속된 정권의 약화로 인해 유지되지 않고, 사회정치 운동은 독재자들을 반대하고 예속정권은 권력을 잡을 수 없게 된다. 유럽연합은 미완의 계급과 이민 갈등에 의해 끌려온다.

이런 가능한 시나리오들이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세 번째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의회밖 좌파가 선거좌파에 대한 모든 관계를 단호히 끊고 선거구를 넘어서 대중적인 기반을 넓히는 데 주목하고 국가 권력을 위한 전략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는 분파주의적 좌파 및 운동을 분리시키고 강력한 운동을 압력단체로 전화시키는 “자생성”이데올로기와 결별하는 것이다.
둘째, 의회밖 좌파는 매일 매일의 지역, 노동조합, 시골 노동자투쟁에 직접 결합함으로써 반드시 행동의 지속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국제적인 행사의 대중조직화는 국내 노동운동을 이끄는 연속성 있는 조직의 건설에 복무해야 한다.
셋째, 의회밖 좌파 운동은 그 주요한 적이 세계화와 제국이라는 모호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라는 사실을 마주해야 한다. 이데올로기적 선명성은 대안적인 프로그램을 형성하는 데 있어 핵심이다. 중도좌파 선거세력이 부활할 가능성은 우경화된 상황에서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심지어는 대중의 압력 아래서 자본가 계급이 복지국가의 재등장을 용인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거의 확실히 중도 좌파는 극우파의 해답을 받아들일 것이다. 만일에 심지어 가능한 중도좌파가 재등장한다고 해도 양극화된 정치적 상황에서 안정적인 형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파/극우파는 어떤 엄청난 대중적인 기초도 없이 여러 지역에서 명확히 승리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이 합작한 결과인 군사독재는 경제적인 원천(외채를 반환한다는 이유로)도 없이, 노동자들의 암묵적인 승인도 없이 지배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좌파는 극우파가 권력을 잡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반면 어떤 형태로라도 타협해서는 안된다. 단지 정치적인 독립,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권력의 형성, 그리고 국가 권력에 대한 사명만이 역사적 진보의 방향에서 오늘날의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 한/노/정/연


번역: 변정필(교육기획실)

2002-06-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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