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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투쟁의 역동성과 지도력의 부재

현장에서 미래를  제77호
남구현

대중투쟁의 역동성과 지도력의 부재


남 구 현
부소장





지난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3월호에 실린 최형록의 글 「고종의 목? 꿈에의 용기」에서 녹두장군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읽었다. “일신의 피해 때문에 봉기한다면 어찌 남아대장부다운 일이겠는가. 민중이 한탄스런 상황에 처한 까닭에 민중을 위해서 해를 제거하겠다”고 재판에서 밝혔다는 것이다. 자기 일신상의 문제로 봉기한 것이 아니라는 전봉준의 진술을 읽으며 발전 노동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여러 곳에서 발전노조의 일반노조원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해고당하지 않고 일자리나 지키려고 이 싸움에 나선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근대가 열리던 때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지도했던 혁명가 전봉준이 자신의 사소한 피해를 면해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 민중을 도탄에 빠지게 한 관리들의 탐학을 보고 이를 이기지 못해 거사를 했듯이, 지금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신상의 피해나 면해보려고 투쟁에 나선 것이 아니라 국내외 독점자본에게 공기업을 팔아 치우고 노동자 대중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에 반대해 투쟁에 앞장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시작하면서 전봉준의 이야기부터 한 이유는 사실 지금의 노동자 투쟁에서도 일신의 안일을 위해서와 도탄에 빠진 민중을 위해서 봉기하는 것은 충돌을 일으키며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민영화, 매각반대 구호는 발전노조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 자체가 지난 수년 간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지금 시기 지구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축적전략에 대한 도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투쟁의 전개 여하에 따라 김대중 정권의 지난 몇 년간의 정책기조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어있었던 것이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온 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민영화, 효율성 논리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에서도 이 사안에 대해 쉽게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며, 대통령이 친히 나서서 민영화는 절대로 노사분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발언을 몇 차례 한 것 이외에 뾰족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국가의 정책기조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대중이 이를 인식하고 정치적, 계급적인 차원에서 대응했다는 점을 볼 때 우리는 올해 와서 진행되고 있는 발전파업을 대중정치파업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철밥통을 확보하고(고용안정) 밥줄을 지키는 것(임금)을 우리 운동의 목표로 생각하는 경제주의, 실리주의적 경향은 시대착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은 보다 많은 이윤확보를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저하시키는 경향을 내적필연성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윤율 저하에 따른 축적조건의 악화에 따라 노동자의 생활 및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지금 임금 및 노동조건을 둘러싼 투쟁은 모든 투쟁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경제투쟁은 바로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투쟁의 진전에 따라 정치투쟁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경제투쟁은 운동의 출발점일 뿐으로 여기에만 머무르면 노동권과 생활권을 악화시키는 모순 자체를 지양할 수는 없어서, 경제적 요구가 그 자체로서 운동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이미 현실 모순의 진전은 고용안정과 임금 확보를 위해서도 경제투쟁에 머무를 수는 없으며 전 사회적 계급적 운동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민영화 반대투쟁이 가지는 정치적 성격은 나아가서 교섭에 대한 관점도 다시 세워야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대중투쟁의 동력에 걸맞지 않는 교섭내용은 투쟁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투쟁에 참여했던 대중들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38일간의 파업투쟁을 산개투쟁이라는 역동적인 전술구사를 하며 간고하게 끌어가던 대중들에게 민영화와 관련된 교섭은 논의하지 않는다든지 처벌은 적정한 수준에서 한다든지 하는 교섭내용은 정말로 아니올시다였다. 상급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교섭주의적 관행과 투쟁을 통해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대중의 성장 사이의 균열은 조합원 대중 사이에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그 균열의 벌어진 틈새를 채울 방도를 찾지 못해 급기야는 지도부 사퇴로 이어졌다.
주지하다시피 민주노총이 건설된 이후 지도부가 사퇴하는 일종의 스캔들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98년의 정리해고제 합의를 중심으로 한 노사정합의 당시 지도부의 직권조인을 둘러싼 논란 속에 1기 지도부가 불명예스럽게 중도하차한 바가 있다. 당시 지도부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으로 일컬어지던 경향을 대변하였는데, 96, 97 총파업 이래의 노동법 개악의 주된 내용인 자본의 유연화전략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3제의 도입을 용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이후 광범위하게 진행된 반노동자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문을 활짝 열어준 셈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우리 사회의 최대의 현안이 되어 있는 대량실업, 비정규직의 증대 등이 그 결과이다. 올 들어서 일어난 파란 역시 그간 간간이 나타났던 교섭주의, 산별주의의 문제가 대중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노사정위원회가 노정테이블로 바뀌었을 뿐, 협상에 주로 의지하는 경향, 즉 투쟁을 회피하거나 투쟁의 확산을 막으려는 경향, 적어도 투쟁을 회피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중투쟁을 통제하고 조율하여 협상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수단으로나 활용하려는 경향은 그것의 반대 편향, 즉 교섭전술이 부재한 상태에서 무조건 투쟁만을 외치는 경향과 함께 여러 차례 역동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대중투쟁의 발목을 잡는 한편 투쟁의 성과가 유실되게 하는 데 역할을 해 왔다. 이와 같은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2002년의 노정합의이다.
번번이 지도부 사퇴로 이어지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노선과 지도력의 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한다. 잘못된 운동의 전개를 막아내지 못했으므로 모두가 다 책임이라든지, 무분별한 노선투쟁이 문제였다고 하면서 앞으로나 모두가 잘해보자고 얼버무려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불가능해짐으로써 해법을 구해 낼 수 없다. 지난 몇 년간의 과정은 적어도 경제주의, 실리주의, 교섭주의적 관점은 항시 현실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것은 매 시기마다 문제는 이미 알려졌는데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무엇보다도 역사적 평가를 엄밀하게 진행하고 이를 근거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운동이 지니고 있는 오류와 한계가 아니라 역사적 실천 속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지도력과 관련하여서는 지도노선의 문제와 함께 노동조합운동이 가지는 형식이 주는 한계지점도 역시 검토되어져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은 노자의 대립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전개되는 지점에서 애초에 조합원 권익 옹호와 단체교섭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어서 지금과 같이 노동자 대중투쟁이 지배권력과 직접 충돌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디까지 지도력을 담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열려 있는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노조의 대표부는 협상과 투쟁의 지도를 하도록 선출되어 협상테이블에 나가고 파업을 지도하는 일을 담당하기는 하나 투쟁의 전개에 따라 노조에서 담당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서야 할 경우는 이를 감당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노조 대표는 애초에 전국적 계급정치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며 혁명지도자는 더욱 더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 민주노총은 대의원회의에서 지도부가 선출되고 있어 직접적인 대표성도 미약하며, 노동자 대중의 직접 투쟁과의 연계성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노동자 대중의 투쟁이 직접적으로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 기존의 노조대표부가 이를 담당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지난 시기 노동자 투쟁의 결정적 계기마다 지도부가 동요해온 것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대표부가 투쟁의 지도력을 감당할 수 없을 때,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지도력은 다른 형태로 구축되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운동사에서 지도부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학 농민혁명에서 시작하여 3․1 민족해방운동, 4․19 학생혁명, 광주 민중항쟁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으로 진출하는 대중투쟁을 지도부가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 우리 운동의 역사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중투쟁을 책임질 수 있는 지도력을 형성하는 문제는 역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지도력의 문제는 민주노총만의 문제도 아니며, 그나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지도부가 사퇴했다는 사실은 그만큼의 건강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점에서는 일하는 자 다르고 챙기는 자 다르며, 피보는 자 다르고 빛보는 자가 다른 그러한 사회의 모순은 우리의 운동권 전반에 그 잔영을 드리우고 있다. 혹시 우리의 지도부 가운데에는 대중 가운데 어느 누구도 위임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지도자를 자임하면서, 힘들고 성과가 잘 안 보이는 일에는 빠지고 이름나고 눈에 띄는 일에는 발 빠른 그러한 지도자는 없는지, 남의 투쟁의 결과물을 챙기기 바쁘고, 여기 저기 기웃대면서 대중 투쟁을 조율하는 것을 담보로 거래하고 다니는 거간꾼 역할을 하는 지도자, 그리하여 전체 운동의 진전이 아니라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동을 좌지우지하며 나아가서는 자신의 모습에 따라 대중도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추구할 것을 설파하는 그러한 지도자는 없는지 살필 일이다.
대중에 의해 선출되고,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특권을 부정하는 그러한 지도부, 투쟁 속에 검증 받는 그러한 지도력을 만들어 나가는 과제는 지금 시기 우리의 운동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요한 사안들 중의 하나이다. (2002년 6월 6일) 한/노/정/연

2002-06-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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