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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투쟁,노동자의 투쟁평가를 조직하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78호
유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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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투쟁, 노동자의 투쟁평가를 조직하자

유 경 순/연구위원, 노동운동사연구팀




1. 투쟁의 역사, 노동자 대중의 역사로 복원하기 위한 투쟁평가

한국 노동자들은 100여 년에 걸친 긴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 노동자 투쟁은 당시 신문기사, 관 자료, 선전물, 지도부 문건 등에 기초하여 재구성되어졌다. 투쟁의 역사적 의미나 그 위치는 노동운동의 진전에 의해 조명되고, 보다 직접적인 투쟁 정신은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 계승되고 있다.

노동자 대중은 스스로 결의하여 투쟁을 만들고, 투쟁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킨다. 투쟁공간은 자본과 정권에 대한 분노와 단결의 힘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찬 곳이다. 노동자들은 투쟁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가슴이 벅차 오기도 하고, 지도부나 동료들과 갈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요구 관철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의사소통과정도 좀더 직접적이며 격렬한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공동 목표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일상시기에 겪지 못하는 집단적, 계급적 경험들을 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투쟁공동체를 노동해방을 향한 배움의 공간, 계급적 삶의 지표를 만들어 가는 학교로 받아들인다.

투쟁의 다양한 경험과 의식들이 노동자 자신들의 발언과 평가를 통해 제기되고 전 노동자계급이 공유할 수 있을 때, 투쟁의 대오는 보다 강해지고,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의 ‘목소리’로 한 단계 진전될 것이다. 노동운동의 역사란 바로 이런 대중투쟁공간에 집약되어 나타난 계급적 갈등과 성과를 노동자의 목소리로 불어넣어 진전시킬 때, 투쟁의 역사로서 그 역동성이 살아날 것이다.


투쟁의 성과를 대중의 것으로

투쟁평가는 투쟁을 통한 대중의 계급적 경험을 조직하는 출발이다. 일부 노동자의 계급적 경험을 전체 노동자대중에게 확산시키는 과정이다. 투쟁을 통해 무엇보다도 변화한 것은 노동자 대중 자신이다. 투쟁을 통해 경험한 다양한 의식변화의 계기들을 계급적 의식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파업투쟁의 과정을 통해 인식된 다기한 대중의 경험은 일상의 시기로 돌아가면 하나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 어떤 교육보다 노동자 스스로가 투쟁을 통해 경험한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의 위력, 연대의식, 공동체의식은 가장 소중한 계급적 의식으로 발전하는 자산이다. 또한, 자본과 정권의 다양한 탄압을 통한 적의 본질에 대한 인식은 어떤 교재보다 노동자대중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투쟁직후 노동자의 것으로 분명히 조직되지 않는다면, 계급적 경험은 일상시기로 접어들어 노동자들의 의식 내면으로 침전된다. 이후 조직강화와 일상활동으로, 그리고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는데 올바로 발전시켜나가기 어렵다. 그러므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평가는 노동자 대중의 계급의식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목적의식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지난 십 수년간 노동자들은 파업투쟁을 통해 억압되고 척박한 민주주의의 토양 위에서도 대중 자신이 주체가 되어 밑으로부터 새로운 민주주의의 싹을 잉태하고 발전시켜왔다. 또한 생산현장의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요소를 청산하고, 노동조합을 민주적으로 개혁하여, 이런 토대를 바탕으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해 가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평가를 조직하는 것은 투쟁의 시작과 끝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를 스스로 자각하여 이후 실천과제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노동자들이 요구를 보다 ‘정식화’시키면서 자신과 조합지도부의 실천을 강제하고 책임져 나가는 직접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평가는 현재 투쟁역량을 가늠하면서 새로운 투쟁을 조직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은 일상활동, 투쟁준비와 투쟁과정, 투쟁평가 등 제반 실천과정에서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의 요구가 제기되고, 이를 기반으로 할 때만이 올바른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으로서 민주성을 지속시킬 수 있다.



2. 투쟁평가의 현실

노동자에 의한 직접적인 투쟁평가의 부재는 투쟁주체를 대상화시킨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민주노조운동이 일반화되고, 90년 전노협건설과 95년 민주노총건설을 통해 노동자 투쟁은 전국적 수준의 투쟁으로 발전되어왔다.

특히 98년 IMF이후 총자본의 구조조정공세에 의해 단위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도 사업장내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성격을 뛰어넘어 총자본 대 총노동이라는 성격으로 발전되어왔다. 1998년 현대자동차투쟁, 1999년 한라중공업노동자투쟁, 2001년 대우자동차투쟁, 2002년 발전노동자투쟁에 이르기까지 투쟁의 전선은 총자본 대 총노동의 대립이라는 성격을 띄어왔다.

투쟁 이후 노동운동진영에서 그 투쟁평가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논쟁이 무성했다. 평가를 제출하는 주체들은 노조지도부, 현장조직들, 민주노총을 비롯한 상급단체, 노동운동단체 등이다. 노조지도부 및 노동운동에서 진행되는 투쟁평가는 다각도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고, 보다 총체적 평가가 제기되어 노동자대중과 같이 공유돼야 한다.

기존에 제기된 몇 투쟁평가서를 통해 그 평가의 쟁점과 주체들을 확인해 보자. 정리해고 문제를 첨예한 사회적 쟁점으로 연일 부각시키면서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표․대리전적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던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1)은 이후 다양한 평가들이 제출되었다.

우선 ‘대중의 생계문제, 조합의 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상집 평가서」 현자노조신문 12-7.1998.12)2)에서부터, ‘대책있는 차선’으로 정리해고 최소화를 주장(「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남긴 과제」 천창수, 「연대와 실천」 1998.9),3) 반 IMF전선으로의 ‘확전’을 주장( 「98년 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평가」 현자 실노회, 1998.12),4) 상층 지도부의 무능력과 기회주의를 성토하고 파업 현장에서 평조합원과 지도부의 의사소통의 부재를 개탄하는 주장(「누가 밀실협상, 직권조인을 아름다운 투쟁이라고 하는가?」하수봉, 1998.12),5) 싸워서 깨지더라도 조합원을 믿고 공권력과 일전을 불사했어야 한다는 주장(「현대자동차 생존권사수투쟁평가서」5기민투위, 1998.9)6), 대중의 투쟁동력과 의지를 교섭이라는 제한된 틀로 가두는 지도부의 문제(「결코 꺽이지 않는 미완의 투쟁」 노동자의 힘,1999.11)7) 등 다양한 주장이 제출되었다.

다른 예로 1999년 서울지하철노동조합 4․19투쟁8)에 대한 평가 글을 살펴보면, 「4․19총파업평가-직무대행 집행부 중앙평가서」, 「4․19총파업-파업지도부 평가서」, 「4․19총파업투쟁 현장평가토론회자료집」, 「99년 서울지하철노동조합, 4․19파업에 관한 보고서」(한노정연) 등이 있다. 평가과정에서 주요한 쟁점은 돌입시기, 복귀시점, 거점전술, 재파업선언의 타당성, 대중의 투쟁동력과 지도부의 인식 등이었다. 이런 사안의 경우 대부분 그 자체만의 문제로 쟁점이 되었다기보다는 파업지도부의 지도력, 현재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 등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위에 살펴본 평가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가과정 속에 견해 차이와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설혹 그것이 분열로 보일지라도 평가를 조직하는 것 자체는 매우 중요하다. 두 개의 투쟁평가를 통해 공통된 문제는 대중의 투쟁동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 투쟁성립과 승패의 일차적 관건은 투쟁주체인 노동자들의 결의수준에 있다. 위 평가들은 일정 대중의 요구와 투쟁결의 수준에 대한 직접적인 소리를 끌어안고 있지 못하다. 투쟁을 통해 표출된 노동자들의 세세하고 역동적인 숨결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하고 있다.

이는 투쟁 주체인 노동자대중을 평가주체로 한, 직접적 평가과정이 조직되지 못하고 있거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중의 목소리를 직접적인 형태로 외화시켜야 할 필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합지도부가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자임하면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결국 투쟁은 투쟁한 노동자 개별의 ‘경험’ 수준으로 머물고 전체 노동자대중에게 널리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대중에 의한 투쟁평가의 필요성을 고민하고 그를 위한 시도가 현장에서 일부 진행되고 있다. 서울지하철의 경우 99년 투쟁을 거치면서 많은 숫자의 조합원은 아니나 설문조사, 지부별 평가, 대중평가토론회 등을 조직하면서 다른 조직에서 보기 드문 평가작업이 행해졌다. 이를 조직하려 했던 주체들의 소리를 들어보자.

“지난 민주노조운동 12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3․16, 6․24, 4․19총파업 등 굵직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투쟁 끝난 후 투쟁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이것은 다시 순환되는 투쟁에 교훈으로 남지 못하였다. 우리의 투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지금, 현장평가토론회라고 하는 이 시도가 비록 오류   가 있고, 한계를 노정한다 하더라도 젊은 활동가들의 고민 속에서 시작하였음을, 민주노조 사수의 의지와 총자본과의 또 다른 한판 승부에서 승리의 전망을 일구어 가고자 함임을 밝힌다 ....” 9)


위 글은 투쟁평가를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시켜준다. 평가의 필요는 ‘민주노조 사수의 의지와 총자본과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이는 조합간부들만의 몫이 아니고, 활동가들만의 몫이 아닌, 투쟁 주체인 대중의 몫이기도 하다고.


노동자 대중의 방치와 개별화는 현장에 기회주의 노선의 득세를 초래한다

투쟁의 마무리, 특히 투쟁직후 노동자들에 의한 평가가 바로 조직되어야 할 필요는 어디에 있는가. 앞서 말한 바처럼 내적으로 투쟁성과를 대중의 것으로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대중의 투쟁경험을 조직강화로 귀결시키기 위한 것이며, 투쟁직후 적의 탄압을 막아내고 기회주의 경향이 대중에게 침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투쟁에서 일상활동으로 전환의 과도기에 노동자대중의 평가가 위치한다. 투쟁직후 현장에는 여러 상황들이 벌어진다. 정권과 자본에 의한 조직적․개별적 탄압과 투쟁이 큰 성과없이 끝난 경우 노동자 대중의 패배적 분위기와 맞물려 대중의 분위기는 위축되어 진다. 심지어 투쟁의 대세가 무너진 뒤 지도부의 방기로 인해 현장복귀를 조합원에게 맡겨두는 경우, 노동자들은 ‘단결된 집단’에서 개인으로 돌아감으로써 무자비한 탄압 앞에 무력해진다. 서울지하철 99년 투쟁직후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서울지하철 4․19 투쟁은 4월 26일 현장복귀가 결정되고,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된 파업지도부는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지속했다. 현장복귀이후 공사 측의 노골적인 탄압이 자행되기 시작됐다. 직권면직 65명, 직위해제 159명에 이어 수 백 명의 징계자가 속출하고, 39억에 이르는 손해배상청구, 조합비 가압류 등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조합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현장의 역관계가 크게 위축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다음 글이 잘 보여주고 있다.


....파업이후 사후 어떻게 전개하고 조직화해낼 것인가 하는 것에 서울지하철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파업 자체의 성사에 굉장히 집중하다보니 그렇고...또 위원장이 감옥에 가 지도력은 공백상태에 있고, 다시 기존 지배력이 나오고 원래 있었던 직무대행 집행부가 있고, 이러한 지도력간의 충돌 등..... 민주적인 풍토가 원활히 작동되지 않다. 투쟁시기에는 지도부가 목적의식성이 있고 그게 문제가 없는 것처럼 나타나지만, 그 지도부가 깨지거나 다른 대안체제가 무너질 때에는 그게 다 문제점으로 나타나는 거잖아요.....10)


지도력 공백과 조합원대중의 방치, 이 과정에 투쟁을 왜곡하는 기회주의 조류들이 혼란한 조합원 의식을 파고든다. 99년 서울지하철노조는 투쟁이후 적의 탄압과 지도력의 공백상태를 틈타 ‘무쟁의 선언’ 기수 배일도 집행부가 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졌다.

3. 투쟁평가의 관점

투쟁평가를 조직하는 것은 또 하나의 ’투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 투쟁현장에서 손을 털고 나오는 것이 투쟁의 끝이 아니다. 투쟁과정의 문제와 성과를 우리가 곱씹어 삼킬 때, 그 때야 비로소 하나의 투쟁이 끝이 나는 것이며, 새로운  투쟁을 준비할 수 있다. 이는 임금인상 몇 천 원에 비교할 수 없는 노동자투쟁의 성과이자 이후 투쟁의 무기로 발전시킬 수 있는 맹아들을 키우는 과정이다. 따라서 투쟁에서 느낀 것과 발견한 것들을 모아 발전의 씨앗으로 삼고, 잘못된 것이나 극복되어야 할 것은 정확하게 비판해서 개선해나가는 작업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투쟁이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가과정을 형식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마무리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투쟁이 어떤 형태로 종결되든, ‘조합원들에 의한 직접적 평가’를 조직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투쟁이 패배한 경우 조합원들이 투쟁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계급적 내용들이 회손되고 희석될 여지가 많다. 승리한 경우 역시 결과에 도취되어, 과정에서 비판되고 지적되어야 중요한 내용들을 간과될 수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평가를 조직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분임조 및 소위원회를 통한 평가, 투쟁평가총회, 평가와 교육을 결합하는 방식 등을 통해 조합내의 의사소통구조를 적극 활용할 수 있겠다. 간접적인 형태이나 ‘설문조사’, 조합원 개인 또는 집단과 같이 수행하는 밀착토론, 대자보평가, 홈페이지를 통한 사이버 평가 등도 적극 활용해 볼 수 있다. 이외에 직․간접방식을 통해 노동자들이 투쟁평가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이를 정식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투쟁평가의 관점

평가를 대중적으로 조직하는데 있어 관건은 평가관점이다. 투쟁성과 여부는 ‘요구안 그 자체 100% 달성여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요구사항의 획득여부에 준한 평가는 물론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요구를 ‘투쟁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노동조건과 제 권리를 향상시킬 수 있다. 노동자들은 투쟁의 힘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 제한된 평가를 한다면 일정 투쟁의 의미를 반감시키고, 노동자의식을 사업장문제로 가두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투쟁평가는 총자본 대 총노동의 계급적 관점, 노동자 민주주의의 관점, 나아가 노동운동의 발전전망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역사적 관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계급적 관점’에 입각한 평가는 조합원의 이해 속에 내재하는 계급간의 문제를 포착하여 이를 노동자계급 일반 문제로 확대시키기 위해, 매 계기를 활용하고 발전시켰는가가 핵심이다. 또한 개별 사업장의 투쟁이 노동자 연대성을 발전시키고 전국적 투쟁전선을 강화시키는데 복무했는가가 주요하다. 이는 실제 투쟁과정에서는 물론 평가과정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투쟁과정에서 ‘노동자 민주주의의 실현’여부가 평가 잣대이다. 투쟁전술 평가는 조합원들의 요구와 지도부의 투쟁방침이 어떻게 결합되고 분리되었는가, 투쟁지도부와 조합원들의 민주적 의사소통구조가 원활히 작동되었는가 하는 문제로 결부된다. 대중투쟁동력이 올바른 투쟁방향 속에서 투쟁방침으로 현실화되었는가를 판단하는 중요 내용이다. 1992년 현대자동차 성과분배투쟁이 위원장 직권조인으로 와해된 이후 조합내 민주주의 문제는 민주노조운동의 사활문제로 부각되었다. 98년 현대자동차투쟁은 투쟁과정에서 조합원의 요구를 짓밟고 지도부의 일방적 협상이 갖는 비민주성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자주성 상실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텐트농성을 시작한 7월20일부터 8월24일 잠정합의 때까지 노조의 임금삭감안이나 추가양보안 그리고 정부중재안 등에 대해서는 사업부별로 간담회나 토론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또한 협상결과도 집회때 결과만 보고 받는 수준이었다. 무엇이 논의되었고 쟁점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몰랐다...민주노조의 ‘민주성’은 철저하게 붕괴되어갔다. 투쟁이 경과하면 할수록 위원장 개인의 판단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갔다....대의원대회나 비상대책위나 상집은 여름휴가이후 위원장에게 전권위임을 함으로 철저하게 무력화되어 있었다.....또한 텐트농성노동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부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이나 정부중재에 매달린 꼴은 노조의 ‘자주성’까지 무너뜨렸다.”11)


대중의 투쟁열기와 동력을 외면한 지도부협상에 대해 노동자들은 행동으로 대답했다. “노조에서 기만적인 정부중재안을 수용해 버렸다. 8월21일 협상보고대회에서 분노한 조합원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협상보고가 끝나자마자 조합 앞으로 달려가 항의집회를 열어 노동자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분노를 행동으로 조직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일보 진전된 행동을 보임으로써, 이후 직접적 실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노동자 민주주의 문제는 자주성 문제와 결부되어 투쟁성패를 결정짓는 주요한 평가 요소이다.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은 개별 사업장 투쟁을 전국적 투쟁전선에서 위치 지으며, 십 수년간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위치 지워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투쟁을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며, 투쟁의 역사를 변혁의 역사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노동자 대중에게 자신들의 투쟁이 역사를 변화시켰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들의 투쟁이 역사의 진보과정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의식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투쟁평가는 경험을 둘러싼 계급의식간의 투쟁이며, 노동자들이 일궈온 투쟁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복원하는 과정이다. 역사는 기억을 둘러 싼 계급투쟁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자만이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한/노/정/연


1) 1998년 현대자동차투쟁은 7월 20일 ‘정리해고반대’를 내걸고 노조에서 무기한 전면파업을 선언하면서 파업에 돌입했다. 36일간의 파업은 조합원 의사와 무관하게 8월 24일 김광식 집행부가 정리해고를 수용함으로써 끝이 났다. 그러나 곧바로 9월 1일 조합원 총회에서 63.6%의 반대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고 이후 ‘정리해고․무급휴직자 원상회복 투쟁위원회’, ‘정리해고자 생계대책위원회’, 식당 여성조합원들의 투쟁으로 이어지면서 ‘미완의 소규모 장기전’으로 지속되었다.


2)김광식 위원장은 ‘정리해고 최소화로 접근하게 된 단 한가지 이유는 바로 공권력에 의한 대량살상을 막고 수백 건에 이르는 고소․고발이 불러올 가정 생계문제를 막아 노조 파괴를 막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한다.


3) “우리는 정리해고 철회에만 매달려 왔다. 정리해고가 최선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이라면 집행부, 대의원, 소위원, 열성조합원들이 힘을 모아 차선을 위한 논의를 준비했더라면 8․24 잠정합의안보다 훨씬 명확한 안을 쟁취했을텐데 …”


4) “정리해고를 둘러싼 정세를 재벌의 문제로 협소하게 봄으로써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을 정확히 설정 못하였고, IMF와의 투쟁을 확전시키지 못했다.”


5) “이번 투쟁은 조합원들의 분노를 전혀 조직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집행부가 보여준 최악의 상황이었다 … 상층부 운동가들의 기회주의적 모습으로 인해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 단위사업장의 투쟁으로 매몰되었다.”


6) “한치의 물러섬도 없었던 조합원 동력을 보았다면 싸워서 깨지더라도 ‘이긴’ 싸움이었다. 공권력에 맞서 장렬하게 투쟁했더라면 … 지금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7) “98년 현대자동차 투쟁은 객관적으로 전계급적 관심과 파급력이라는 측면에서 긴장도가 높았다. 그러나 현자 지도부는 대중의 투쟁의지를 끊임없이 교섭이라는 제한된 틀 내로 가두었다. 다시 말해 현대자동자 지도부는 대중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투쟁의지를 강화하는 방향에서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동력을 소진하고 갉아먹는 형태로 투쟁을 이끌어갔다.”


8)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은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고용안정 및 고용창출, 지하철 개혁의 요구’를 걸고 4월 19일 새벽 4시 파업에 돌입했다. 장기파업의 각오 속에 명동성당과 서울대를 거점으로 8일간 투쟁을 벌이다 4월 26일 저녁 8시에 현장에 복귀하기까지 이 투쟁은 99년 상반기 투쟁의 중심이었다.


9) 「4․19총파업투쟁 현장토론회자료집」, 4쪽.


10) 한노정연 교육기획실 제1차 파업세미나 종합토론 녹취문에서 재인용.


11) 「현대자동차 생존권사수투쟁 평가서」, 현대자동차민투위 정책부, 1998.7.


2002-07-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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