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단계 노동운동:
진단과 모색 I
김 혁
대중투쟁동력에 대하여 생각한다
이철의
노동조합의 투쟁전술을 생각한다
유경순
대중투쟁, 노동자의 투쟁평가를 조직하자
연초 있었던 공공3사 파업과 이후 장기간 진행되었던 발전노조의
파업, 그리고 그것이 4․2 민주노총 총파업 철회로
마무리된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라고 하는 것들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위기라면 그것을 가져온 원인들은 어떠한
것들인지에 대한 보다 깊은 고찰이 요구된다는 판단 하에 “현
단계 노동운동: 진단과 모색”이라는 제하의 특집을
기획하였습니다. 이번 호에는 투쟁동력, 투쟁전술 그리고
투쟁평가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다음 호에는 노동운동 내의
경제주의적 편향, 관료주의,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로,
조직형태 등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면서 지금의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차분히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려고 합니다.
특집 : 현 단계 노동운동, 진단과 모색 I
대중투쟁동력에 대하여 생각한다
김 혁/노동자의 힘 회원
1. 대중투쟁동력을 생각하는 이유
나는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서 화염병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로 수배되어 1년여 동안 산곡성당에서
대우자동차노조 집행부와 공동으로 농성투쟁을 했던 바 있다.
결국 그 끝을 다 보지 못한 채 노조 집행부와 출두하였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출소한지 별로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성당에서 감옥에서 그리고 다시 사회로 복귀해서까지도
대우자동차 투쟁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게 되면 또 그만큼 극단의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드물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하나의 평가는 이것이다.
“노조 집행부가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를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투쟁을 한 결과 현장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조기에 희망퇴직을
수용했더라도 정리해고로 가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고 대우자동차가 이토록 어렵게 되는 국면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견해는 현재 정리해고되지 않고 현장에 남아있는
대의원들중 다수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반면에 또 하나의 반대편에 선 입장은 이러하다.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하여 더 이상 물러날 곳조차 없는
생존의 벼랑에 선 투쟁이었다. 우리들이 투쟁함으로써 이후에
급격한 구조조정이 예고되었던 공공부문, 공무원, 은행권 등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일정정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현재 집행부와 정리해고자들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견해이다.
이런 극단적인 평가에 대하여 하나는 완전히 어용이고 또 하나는
민주다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재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에 오랜 뿌리를 갖고 있었던 어용세력뿐만
아니라 민주노조를 위해서 싸워왔던 많은 활동가까지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더 이상 민주와 어용으로 양단해버릴
수 없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적 요소가 내재해있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한편에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정치적 지향이
불투명해지면서 현장에서부터 신경영전략을 동반한 자본의
유연화공세 속에서 대공장을 중심으로 실리주의적 운동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단위노조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 운동에 이르기까지 임단투 이외의 구조조정투쟁에
대하여서는 대중투쟁동력의 미약함이라는 명제 속에서 점차로
후퇴와 양보를 거듭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운동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기까지 하면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관성적 대응의 양상으로―극단적으로 말하여
개량주의적 운동의 흐름으로―발아하고 있는 현실이 있는
것이다.
2. 발전산업 투쟁에서 접했던 놀라움
이와 관련하여 나는 감옥 안에서 올해 상반기에 벌어진
발전산업노조의 투쟁을 신문 등의 지면을 통해서 그리고 면회온
동지들의 입을 통하여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의
사실에는 경악을 금하지 못하였다.
하나는 발전산업노조 조합원들이 갖는 투쟁성과 그 완강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생노조의 건강성이라고 하는 측면이
고려된다 할지라도 거의 이탈하는 조합원조차 없이 한 달이 넘게
파업투쟁을 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경이
그 자체였었다.
또 하나는 4․2 총파업 철회 자체에 대한 당혹감이었다.
나는 솔직히 대우자동차공투본 활동을 하면서 민주노총 간부들과
투쟁전술에 대하여 많은 토론을 했던 바 있으므로 여느
활동가들처럼 당장 그것을 ‘배신’이라거나 ‘노동자의 대의를
져버린 과오’라는 것과 같은 평가를 하지는 못하였고 단지
합의문에서 ‘이후 민형사상 처벌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한다’는
애매한 항목에 더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4․2 총파업이 철회되었던 당일날 면회를 가는 길에 화염병
시위로 같이 수감되어있었던 기아자동차의 어느 활동가를 만났던
바 있다. 그 활동가가 하는 말,
“민주노총이 또다시 우리를 배신했어요. 우리 기아차는
내부에서 많은 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결의하고
오늘 실제 파업에 돌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에서는
총파업을 철회한다는 소식조차 알려주지 않아 조합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대요.”
한마디로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충천해있는 분노가 거의 폭발할
것같은 분위기였다.
면회갔다 온 이후 신문을 보고 난 이후에도 나는 즉각적인
분노에 몸을 떨기보다 오히려 이후 닥칠 문제에 대하여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당일날 대우자동차에 근무하다 지금은
쌍용자동차로 소속이 변해 있는 한 간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던 것을 기억한다.
“… 민주노총이 파업을 접은 것에 대하여 그 상황에서 또
그렇게 결단할 수밖에 없던 지도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민주노총의 뚝심이 물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지요.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후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이 받아야 할 온갖 불이익과
탄압들입니다. 형사고발이나 손배청구, 해고를 포함한 각종
징계들을 무기로 다시 현장을 조이려 할텐데 그에 대한 확실한
확답도 받지 않고 복귀를 결정했다는 것은 그동안 투쟁해왔던
것이 무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그 점은 정말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3. 대중투쟁의 역동성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활동가들중 일부는 몇 번씩이나 감옥에 갖다온 소위
‘선수’들도 있다. 그런 선수들이기에 이들을 무조건
어용이라고 핍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활동가들이야말로 실리주의와 단사 이기주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말하고 싶다.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가 되어 현장이 무너져 나가는 순간에도
불과 500여 명밖에 모이지 않는 것은 대중투쟁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도하게 싸웠던 17대 집행부의 책임이 아니라 오랫동안
제대로 된 현장활동을 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현장을 자본에게
빼앗겨온 모든 활동가들의 책임인 것이다.
분명 17대 집행부가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통해 죽어있는 현장을
살려내지는 못하였다. 또한 단기적이기는 하지만 정리해고자와
현장조합원의 괴리가 더욱 커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정리해고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정권과 자본에게 분명히 각인시킨 성과를
낳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정리해고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는
전국의 노동자들이 그토록 빨리 그리고 대규모적으로 부평역으로
집결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부평
거리를 불바다로 만들고 이후의 상황을 준계엄상태로까지 몰고
간 것은 전적으로 정리해고 그 자체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전국노동자들의 결의였고 행동이었다. 이들의
결의나 행동이 민주노총으로 하여금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도록 강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2001년에도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계획적인 투쟁 배치의 부재, 이와 맞물린 일부 단위사업장
집행부의 결단력 부족으로 인하여 결국 7․5 총파업의
무산과 함께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의 희석화를 낳았던 바
있다.
그런데도 대우자동차 투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일부 활동가들은 전국노동자들이 부평에 결집한 것조차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투쟁성이 발현되는 것이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부 민주노총간부들의 명예욕
속에서 대중들이 동원되었다고 치부하고 있기조차 한 것이다.
발전산업노조의 투쟁은 대우자동차 투쟁보다도 한층 발전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대우자동차와 비교하여 현장투쟁동력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대우자동차의 경우 포드매각에서부터 시작되어 몇 년을 끌어온
투쟁 속에서 조합원과 간부들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정리해고라는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힘있는
현장투쟁으로 결집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정리해고 자체가 이미
전국 노동자들의 당면한 문제였기 때문에 지도부와 일부
정리해고자들 중심으로 시작된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노동자들과 단체들이 총망라된 투쟁전선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조의 전통이 약했고 이제까지 이렇다할 투쟁을
조직해본 경험이 없던 발전산업노조의 경우 오히려 역설적으로
투쟁으로의 결집은 용이하기조차 하였다. 공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초래될 수밖에 없는 고용불안은 현장노동자들에게 모든
것을 넘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발전산업노조 투쟁에 긴밀히 결합하였던
대우자동차 상집 간부의 말을 인용해본다.
“이들은 고용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의식이외에 노동자적
의식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보였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활동가는 극히 드문
정도였다.”
그렇다. 대다수 조합원들은 노동자적 의식을 갖고서 투쟁에
참여하기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생존적 이해관계 속에서 투쟁에
참여한다는 것임을 대우자동차나 발전산업노조에서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힘과 결집력은 많은 사람들의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예측을 뛰어넘는 투쟁으로 나가는
것이야말로 바로 대중운동이 갖는 역동적 측면이다. 하지만 많은
활동가들은 그 역동적 측면을 잘 보지 못한다. 아니 잘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투쟁은 계획적이지 못한 투쟁이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재단하기조차 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대중
투쟁은 이런 활동가들의 편협한 시야와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저만치 달려가 있다. 그런 순간에도 다수의 활동가들은
투쟁을 역동적으로 밀고나가기보다 오히려 그런 투쟁을 담보로
협상에만 매몰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바로 발전산업노조에서 그
전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협상의 결과 대중들은 투쟁을
통해 무엇하나 남기지 못한채 완전히 대상화되었고 다시금
무참한 현장탄압의 도가니 속으로 내던져지고 말았던 것이다.
4.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
첫째, 노동조합주의적 유산과 전통으로부터 과감하게 단절해야
한다. 노동조합주의란 노동조합운동 하나만을 완결적인 운동으로
생각하여 거기에 갇혀있는 협소한 시야와 관점, 태도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리주의적 경향, 대공장 이기주의, 노동조합과
단체 등을 극단적으로 분리시켜 ‘투쟁은 노동조합이 하고
정치는 정당이 한다’는 경향들 모두가 노동조합주의에
물들어있는 한 표상에 다름 아니다. 이런 경향들이 더욱
고착화될 때 한국의 노동운동은 소위 잘나간다는 일부 대공장과
중소공장 및 비정규직간의 괴리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전국적 투쟁으로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리 포섭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둘째, 새로운 현장투쟁의 전통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오랫동안 임단투로 훈련되어왔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임단투를 벗어난 투쟁에 대해서는 현장에서도 그렇고
전국적으로도 쉽사리 감당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임단투를 기본으로 한다 할지라도 현장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다양한 투쟁들을 입체적으로 배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우조선 등에서 쟁점화되고 있는 근골격계
투쟁은 현장권력을 세워나가는 새로운 투쟁의 전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소위 잘 나간다고 하는 현대자동차에서
연봉 5천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과로사로 사망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땀 위에 세워지는
인골탑에 다름 아님을 근골격계 투쟁이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계급적 노동운동에 대한 이념 정립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운동이 변화 발전하면서 점점 더 민주와 어용의
기준점은 모호해지고 있다. 그래서 어느 활동가는 누가 민주이고
누가 어용인지 구분하기가 헷갈린다는 말을 하고 있기조차 하다.
그만큼 민주적인 활동가나 그룹조차도 자본에 대한 전선을
확고히 세워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의 포섭전략에 농락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장이나 상급단체
등의 대중운동은 그 정확한 방향타를 찾지 못한 채 혼미의
나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새로운 대중운동과 투쟁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랬을 때 변화하는 상황에 걸맞는 힘있는
대중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