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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의 축구

현장에서 미래를  제78호
김진균

‘붉은 악마’의 축구

권두언


* 이 글은 진보넷 참세상 “불나비”에 지난 6월 19일에 동일한 제목으로 올린 글을 수정확대한 것이다.


김 진 균
자문위원, 서울대학교 교수





아무래도 2002년의 6월은 월드컵축구의 그 붉은 색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나 보다.
한국축구팀이 16강을 지나 8강에 오르고 4강에 올랐다. 그 오르는 과정에 상승해서 응원하는 분위기도 더욱 고조되어 ‘붉은 색’이 한국축구팀의 유니폼 색깔로부터 한국팀이 출전하는 축구장과 서울시청 앞 공터(광장이라 하기에는 평소에 사람들의 자유로운 접근이 불가능하다)와 광화문 네거리 및 전국의 곳곳에 응원하고 관람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에까지, 그리하여 이를 보도하는 텔레비전의 화면 색깔마저 물들어 놓고, 전국이 붉은 색으로 채색된 듯 하였다. 이제 월드컵 경기도 끝났고 ‘태극전사’들은 국가의 훈장을 받고 축구팀이 해산하였지만 구태여 여기서 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 관해 전반적인 평가를 할 수도 없으려니와 신문에 월드컵경기를 신명나는 민족의 도약과 같은 맥락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의 기분에도 따라 갈 수도 없거니와 ‘대~한민국’ 소리 외쳐 온 국민이, 온 민족이 ‘하나로’ 되었다는 말에도 기꺼이 동참할 수 없는 기분이어서 나는 평소 공부하는 방식으로 단면만 살펴서 몇 마디 해 보고자 한다. 한국팀의 구성과 훈련방법 및 전략 전술 등등을 자세한 자료로 알 수 없고 다만 텔레비전에서 훈련과정을 소개한 면면만을 보고 추측하여 쓸 뿐이다.
한국팀 감독으로 네덜란드 사람을 특별히 초청하였다(거금을 지출하고). 그는 세계축구의 정세와 기술 그리고 축구현장에 대한 체험이 아주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약 일년 반 동안 한국팀을 맡아 선수를 선발해 가면서 훈련하였다. 그가 채택한 훈련방법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학적 관리방법을 적극 도입하여 훈련강도를 높힌 프로그램이 지목될 수 있다. 과학적 관리방법의 요체는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하고 필요한 동작은 가장 효과적인 것만 채택하여 되풀이하는 훈련이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동작과 비효율적인 동작을 일삼는 선수를 일단 제거해 나간다. 그리고 훈련중인 선수도 그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동작을 극도로 제거하도록 반복 훈련한다. 이 과학적 관리방법이 공장에서 도입되었을 때 작업이 강화되는 속도에 견디어 낼 체력이 필요하였던 것에 따라, 선발된 선수도 체력을 강화하는 훈련을 일정한 프로그램에 수행하였다. 일단 이 훈련과정에서 일정한 수준의 성과를 낸 선수만 최종 팀에 선발된다(과학적 관리방법이 처음 노동현장에 도입할 당시 숙련공을 상대로 하여 선발한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한국팀 후보자들은 이미 국내 감독과 코치로부터 일정한 수준이상으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축구 발전사에서 그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어느 축구평론가가 말한 바 있다).
이 과학적 관리방법적 훈련과정에서는 피로의 발생시간과 회복시간과 방법에 대한 배려를 적극적으로 한 것이 보였다. 축구선수는 사실 100미터 단거리 선수와 같이 100미터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중계방송 해설자가 어느 선수가 100미터를 굉장히 빠르게 뛴다고 소개하는 것은 단순한 인식이다. 오히려 20, 30, 50 미터와 같이 축구선수들이 한번의 동작에서 뛰는 거리는 길지 않기 때문에 짧은 거리를 반복해서 느리고 빠르게 혹은 순발적으로 속도를 내는 그런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이 점이 이번 훈련에서 기본 체력에 보태어서 적극 훈련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공격수가 기껏 저만치 빠르게 굴러가는 공의 속도를 붙잡아 가는 경우도 기껏 50미터를 넘지 않을 것인데 그 만한 범위에서 질주하는 연습을 거듭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피로가 언제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유의하고 온 경기시간 내내 공에 따라 어디를 뛰어야 할지를 용의주도하게 주의하고 긴장하고 몸을 유연히 움직이어야 하지만 그 순간 순간마다 피로를 푸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처음 1920년대 과학적 관리방법이 공장에 도입되고 난 뒤 노동자를 생물학적 기계로 바라 본 맥락에서 엔지니어들은 곧 동작과 피로와의 관계문제를 연구하는 분야를 개척하였다. 그리하여 작업시간을 일정한 시간표에 따라 작성하는데 반드시 휴식시간의 배치와 일과후의 피로회복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유럽축구에서는 이 훈련방법이 일찍이 도입되어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체력강화훈련과 동작연습을 거듭하는 중에 동작을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와 다투게 되는 상황을 전형적으로 설정하여 거듭 연습시킨다. 공격과 수비를 두고 수시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가장 강하고 효율적인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한편 이 과학적 관리방법은 도입 당시 한편으로 유인책으로 성과급을 포함한 약간 높은 경제적 보상을 내세웠다. 이번 축구팀에도 무시할 수 없는 유인책이 곧 경제적 보상이다. 한국팀이 기본급 외에 이번 16강 진입으로 선수들이 1억원씩 받는 것도 설정되어 있었고 8강으로 올라서 1억원이 추가되었다. 16강으로 진입하자 외국의 보도에 한국팀이 우승후보라고 지목하는데 결승에서 우승하면 5억원이 배당된다고 한다. 8강으로 가니 4강으로 가자고 했고 4강으로 가니 결승에 가자고 부추겼다. 4강에 올라도 우리나라 축구선수로서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포상금 3억을 받았으니. 대표팀 23명은 이제 4년후의 월드컵경기를 겨냥하기 이전에 이미 프로선수로서 ‘몸값’을 올린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23명을 본받아 무수한 선수들이 질주할 것이다.
둘째는 한국팀이 훈련한 전략 전술 중에는 모택동 게릴라전술/초국적 기업의 현지전술을 도입한 것이 지목되어야 한다. 모택동이 내전을 통해 혁명을 성공하는 전술이 곧 공산군이 게릴라로서 고을마다 사정이 다른 곳에서 인심을 얻고 적응하는 전술이었듯이, 초국적기업이 지구촌 곳곳에 생산공장이나 판매영업소를 설치해서 현지에 알맞은 비즈니스를 하듯이. 필승이라는 기본적 전략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경기가 끝난 지금 요약하건데 탄탄한 수비를 뒷받침한 공격 전략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정세와 전략을 파악하여 그것에 적극 대응하는 전술을 개발해서 강력하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전략전술을 상대하는 모든 팀에게 동일하게 구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상대에 대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자세히 수집해야 한다. 이러한 게릴라/현지 전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멀티’ 개념이 도입되었다. 말하자면 고정적인 역할을 폐기하고 다기능으로 상황에 따라 역할을 수행케 하는 것이다(선수들의 고정적 위치를 일단 해체하고 다기능 선수로 전환하는 것―이것을 극소전자기술, 즉 IT가 적용되는 노동과정에서 적나라하게 적용되었듯이 많은 노동력을 배제하면서도 소수 다기능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일차적 과학적 관리방법에 따른 부가적 구조조정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것은 필수적이다). 이렇게 다기능공이 되어서 대표선수로 뽑힐 때까지 그리고 뽑힌 선수들 사이에서도 경쟁을 유발하고 선수들로 하여금 이를 조련하고 선발하고 역할 부여하는 감독의 권위에 적극 복종케 한다.
이 멀티개념에 따는 전술을 훈련하기 위하여 축구팀은 이미 고수급수준에 올라 있는 강팀을 상대로 연습경기를 하였다. 월드컵축구대회 개막 직전 한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연습경기를 했는데 여기서 보충되어야 할 점을 잘 파악하면서 선수들로 하여금 훈련된 모든 것의 실제적 효능을 체감케 한 것이다. 이로서 과학적 관리방법과 모택동 게릴라 전술을 체내화하는 데 일단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본선 경기에 폴란드를 격파함으로서 전진의 기치를 올린 것이다.
“월드컵 축구”가 세계화의 일환이듯이 월드컵 축구의 선수들은 현재 경제를 필두로 하는 세계화추세에서 사람들이 다기능으로 무장하고 현지 상황에 언제나 적극 적응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 안의 전래적인 결속성(혈연, 지연, 학연 혹은 장기근속우대, 효도 등등)이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힘을 제거해야 한다. 옛날 노동현장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혹을 노동자들끼리 그러한 결속성을 인간다움으로 인식했던 사람은 과학적 관리방법이 첨단기술의 도입과 함께 채택했던 대공장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했던 것이다. 이 과학적 관리방법과 초국적 기업의 현지전술 방법의 전도사는 역시 자본주의 선도주자였으며 제국주의 역사경험을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이면서 ‘월드컵’의 세계화된 차원에서 감독의 경력을 쌓은 사람으로 내세웠으며, 한국팀 감독을 맡지 못한 한국 축구인 출신의 감독과 선수는 그런 핑계로 밀려나는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월드컵축구대회가 끝났다. 문제는 ‘세계화’의 선두그룹에 들어선 축구를 그 수준으로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선수를 어릴 때부터 개발하여 이번 훈련과정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 장기적으로 적용해 가는데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제안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조차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번 태극전사는 세계화된 스타이다. 한국영화가 스크린쿼터제와 새로운 감독들의 상상력에 의해 급부상했지만 세계적 배급망과 상영관에서 인기를 누리는 세계적 스타는 아직 발현되지 않았다. 아마도 태극전사는 이제 세계적 스타로 전진해 갈 것이다. 그런데 이점은 지적해 놓고 지나가자. 한국 영화에도 무수한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배우가 밑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축구가 세계화되었다고 손치더라도, 그리고 저변을 확대해 어릴 때부터 훈련을 한다한들 스타는 몇 사람만으로 충분한 것이고 대다수는 ‘저임금-비정규’층으로 두께를 두텁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해본다한들 한국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안에 집단적으로 ‘붉은 악마’로 돌변하는 현상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이라는 축구시장도 그 판매고를 올리자면 시장은 가능한 넓게 개척해서 편입해야하는 것이다. 이제 월드컵축구는 오대양 육대륙 모든 나라가 선수를 낼 정도로 넓어졌다. 자본주의가 세계화됨으로서 태생적인 유럽지향성을 벗어나서 지구촌 지역블럭별 특성을 갖게 한다고 흔히 지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촌을 한 시장 안으로 묶었다고 하더라고 욕망을 유발하고 경쟁시키는 것은 ‘민족문화’라는 요소가 아직도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축구가 시작된 이래 그 역사에는 제국주의도 있었고 식민지도 있었고 일차대전과 이차대전도 있었고 나치도 있었고 사회주의 소련의 건설도 있었다. 지금 자본주의의 지구화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살육과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국민국가형태의 독립과 해방도 있었다. 이 역사적 찌꺼기가 아직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축구도 이기고 지고 하는 경기이다. 기본적으로 국가대항으로 벌어지는 이 월드컵축구대회에는 선수들이 살육을 대행하는 투사들처럼 보인다. 그러니 응원과 홍보, 해설에도 이 온갖 제국주의 흔적과 상혼을 들먹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다.
월드컵 축구선상에서 우리나라는 국내의 완고하고 비정한 이데올로기 정서와는 달리 우연찮게 ‘붉은 색’ 코드가 선택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치게 되었다. 나라마다 월드컵이라는 시장의 지역적 깃발을 서로 다르게 코드화하고 시키고 있다. 붉은 색, 빨강색, 파랑색, 노랑색, 흰색, 초록색, 연두색, 적갈색 등등.
따라서 세계화=월드컵축구는 인간의 관계를 한 나라차원의 역사와 문화를 뛰어 넘게 하면서도 동시에 국민국가형태의 감성을 채색하였다. 우리나라는 두 가지 인간관계 코드가 동시에 합쳐지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화의 코드가 먼저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인간관계를 추구하게 할 것인지? 이것이 과제일 것이다. 붉은 색깔로 치장한, 붉은 마음의 단심을 지닌 남녀 젊은이들이 밤새껏 열광하는 그 분위기를, 그 기분만으로 충분하다고만 할 것인지 모를, 그 다음의 것은 무엇이 될런지.
서울의 시청 앞과 광화문네거리, 80년 5월 그리고 87년 6월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경찰의 저지선을 물리치면서 모여서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독재타도’의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오늘 2002년 6월 붉은 옷으로 치장한 젊은이들의 붉은 색 열광은 스스로 기꺼이 어떤 세계화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깨닫게 될런지, 혹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인공으로 자임하게 될는지, 선택의 문제로 다가져 갈 수 있기를 생각해 본다. 한/노/정/연

2002-07-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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