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 구 ◦ 논 ◦ 문
팀작업의 또 다른 얼굴
- 독일 자동차산업 사례에서 배우기
강 수 돌 (서울대 강사, 경영학)
1. 머리말
범지구적인 경쟁의 격화는 각 나라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생산성과 가격 등의 여러 측면에서 살인적인 경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기업들은
경영관리 및 생산과정의 혁신, 그리고 노사관계와 조직문화의
혁신을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쉽게
접하는 언론매체나 학자들이 쓴 교과서적 이야기들은 우리가
이러한 경쟁과 변화의 시대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우리의 장래가 없는 것처럼 강조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제전쟁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 경영자와 노동자가 모두 합심해서 생산성을 올리고 품질을
향상시키며,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보면 이러한
논리는 앞뒤가 잘 맞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논리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3차원의 전도현상(앞뒤가 바뀐 모습)’이라 부르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가 날마다 열심히 일하러 가는 이유는 쉽게 말해서
‘좀 잘 먹고 잘 살아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적으로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가족이나 이웃과
더불어 희로애락 등 인간다운 정을 나누며,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갈고 닦아 이 사회에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가 위와 같은 무한 경쟁의 논리에 휩싸일 때 과연 이러한
인간다운 생활을 언제 누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학대해야 하고, 인간적 욕구를
억압해야 한다. 또 경쟁에서 이기고 나서도 다른 추격자를
물리치기 위해 더욱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고, 따라서 더 한층
스스로를 학대, 억압해야 한다. 나아가 경쟁에서 진 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과연 그들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가? 이것이 바로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모습,
즉 수단/목표의 전도현상이다. 원래는 우리 모두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일하러 가는 것인데, 이제는
경쟁력있게 일을 하기 위해서 ‘삶의 질’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무한정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과정과 결과가 과연 우리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결실을 갖다 주는가 하는 물음을 떠나서,
이 과정이 과연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되물어야 한다. 즉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쟁은 경제 주체인 우리들에게
경제와 경영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를 강제하고 있다. 경쟁력
강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창조와 진보의 주체가
아니라, 경영혁신과 생산합리화의 객체로 뒤바뀐다. 바로 이것이
‘주체와 객체의 전도현상’이다. 경쟁력없는 노동자들은 그
조직으로부터 쫓겨 난다.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윗사람의
눈치만 보고 거슬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주어진 틀에
적응하고 순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경쟁의 결과 일정한 성공을
거두어도 그 대부분은 우리 자신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예컨대
우리의 삶은 얼마나 여유있는가를 물어 보자. 아직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고
있지 않는가? 가족 사이에 건전한 대화를 나누고 인간적 관계를
만들 시간은 회사나 공장의 조직생활로 인하여 너무나 여유가
없다. 교육비나 주거비, 병원비 등 일상생활에 드는 돈은 너무나
많아, 우리들로 하여금 잔업과 특근, 부업이나 맞벌이부부를
예사로 강제하고 있다. 설사 주부가 취업하여 맞벌이 부부가
되더라도 좋은 고용조건에서 짧은 노동시간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못한 조건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진정 스스로 원해서 특정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강요된, 그리하여 일개의 ‘생산요소화’되고
‘객체화’되고 ‘대상화’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로, 무한정의 범지구적 경쟁은 우리들로 하여금
‘생존경쟁’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파괴경쟁’을 시키고
있다. 경쟁력있는 상품을 만들어 살아남기 위하여, 값싼 원료와
값싼 생산입지를 찾아 자본은 범지구적 운동을 한다. 이
과정에서 원시림이나 원주민들이 평화로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마을들은 일거에 파괴되고, 동시에, 건강하고 정이
넘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의 삶도 파괴되어,
이제는 살아있는 사람들 그 자체로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개 생산요소에 불과한 ‘노동력’으로 전락한다. 즉 자연과
인간이 동시에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기업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의 전도현상’이다. 기업의
경쟁력과 이윤증대를 위해 자연을 포함한 온 사회가 그 고유의
건강성을 잃어 버리고 일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두 눈을 꼭 감고 무한정 경쟁만
하게 된다면, 나중에 가서는 우리가 먹고 마실 물도 없고 쉴 수
있는 숲도 없는 ‘사막의 한가운데’ 서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이제는 경쟁을 하지 않고 더불어 살자’는 말을 해 봐야 이미
때는 늦다. 대자연과 우리의 아름다운 인간성 등, 우리 삶의
모든 토대를 파괴하고 나서 어떻게 모두가 잘 살아보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3차원의 전도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최근의
각종 경영혁신 사례 중의 하나를 살펴 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독일 자동차산업의 군살빼기 전략(Lean-Strategy)에서 나온
‘그루펜 아르바이트’(Gruppenarbeit; 소집단노동, 팀작업),
유연생산체제, 저스트 인 타임 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며, 그 과정에서 노사간의 동태적인 힘겨루기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살펴 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현실의 삶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바로 이 현실에 직면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진지한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한 작업이라 여겨진다.
2. 독일 자동차산업에서의 생산혁신 사례
1885년에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발명한 독일에서는 전통적
방식인 수공업적 방식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벤츠자동차
공장에서는 1896년에 70명의 숙련공들이 135대의 자동차를
만들어 내었다. 즉 한 명의 숙련공이 일 년에 약 두 대의
자동차를 손과 머리로 만들어 내었다. 그 뒤 노동자들의 지혜와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과정은 점점 빨라지고 복잡해진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부품이나 자동차의 생산이 급속도로
기계화되고 표준화된다. 그러다가 1920년의 대량해고로 인해
노사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오펠사에서 노동통제를 효율화하기
위해 1924년에 콘베이어 라인을 도입하면서 독일 자동차업계의
생산과정에도 급격한 변화가 불어 닥친다.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으로 오펠사 뤼셀스하임 공장에서는 일
년만에 하루 생산량이 1924년 25대에서 1925년 120대로 4배 이상
늘어 난다. 1936년에는 히틀러가 폭스바겐 공장의 건설을
지시하고, 값싼 자동차를 만들어 국민을 명실공히 대중소비자로
모심과 동시에, 폭스바겐사를 군수산업체로 발전시켜 또다시
세계대전을 준비하게 된다. 전쟁의 과정에서 생산합리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테일러주의적, 포드주의적 작업방식은 더욱
발전된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노동자들이
콘베이어 라인에 저항하는 광법위한 집단행위를 일으킴으로써
약간의 변화를 겪는다. 즉, 노동자들의 무단결근이나 무단조퇴,
태업, 병가율의 증대, 이직률의 증대 등과 같은 직무불만족
지표들이 증대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파업, 농성, 점거 등과
같은 적극적이고 폭발적인 저항도 강하게 나타났다. 1969년
9월의 전국적 파업물결, 1972년의 뮌헨 베엠붸 (BMW) 공장,
1973년 쾰른의 포드 공장, 1975년 폭스바겐의 넥카술름
공장에서의 노동쟁의는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러한
비상상황에 직면하여 독일 정부와 기업가들은 나름대로의 대책을
강구한다. 즉 한편으로는 1972년의
‘직장노동자대표법’(Betriebsverfassungsgesetz)와 1976년의
‘신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을 통해서 노동자의
평화적인 경영참가를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1975년부터 독일 정부와 노조, 기업이 공동으로 ‘노동의
인간화’ 프로젝트(작업과정 자체를 혁신하여 노동만족도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프로젝트)를 구체화시켜, 폭스바겐사
등에서 인간적 작업방식을 실험하게 된다. 이 새로운 방식에서는
노동자들이 한 가지 작업만을 평생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작업을 돌아가며 하게 하고, 콘베이어 라인에 개별적으로 붙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팀으로 나뉘어 고정된
작업대에서 작업하게 되었다. 개별노동자의 자질이 높아지고
작업이 재미있게 되며, 노동자가 일과 직장에 흠뻑 빠지게 되어
결근율이 줄고 노동만족도가 높아지며 동시에 생산성과 품질이
향상된다는 것이 이 새 방식의 강점이라고 선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측이 생산성효과가 의문시된다고 발을 빼는 바람에
잘 진전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자동차산업이 미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어 모두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그
경쟁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보고서들이
1980년대 이후로 많이 나오기 시작한다. 결론은 기술이나 시장,
국가정책, 문화 같은 것보다도 그 특유의 ‘생산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각 나라의 자동차공장 노사들은 ‘일본적
생산방식’ 내지 ‘린 생산방식’(군살빼기 생산방식)을 배우기
위해 일본을 여행하게 된다. 과거 70년대에 노조가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팀작업’을 주장할 때는 반신반의하고 거부까지
하던 독일 자동차업계의 경영자들이 이제는 오히려 ‘팀작업’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게 된 것이다.
독일의 경우 변화의 한 계기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지엠사의 독일 자회사인 오펠자동차사에서 미국 누미공장(지엠과
토요다의 합작사)과 오스트리아 아스펀공장(지엠사 해외공장)의
팀작업(소집단노동) 경험을 실험적으로 도입하면서 주어진다. 그
뒤 독일 자동차산업에서는 일본의 ‘린 생산방식’이 독일식으로
변형된 형태라 할 ‘그루펜 아르바이트’(Gruppenarbeit,
팀작업)가 유행처럼 퍼지게 된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그루펜
아르바이트’ 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살펴
보기로 한다. 우선 독일 자동차산업에서 이 새로운 방식이
얼마나 확산되었는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폭스바겐사의
잘쯔기터 엔진공장에서는 1984년부터, 카셀에 있는 기어, 변속기
공장은 85년부터, 또 엠덴의 승용조립공장은 87년 이래로 그루펜
아르바이트 방식을 도입, 시행하고 있다. 메르체데스-벤츠사의
브레멘 공장(승용조립공장)에서도 84년부터, 그리고 진델핑겐에
있는 승용조립공장과 베를린에 있는 엔진부품 및 엔진조립공장,
또, 바트 홈부르크에 있는 엔진부품공장에선 87년부터 그루펜
아르바이트 방식이 도입되어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또 전적으로
미국의 지엠자본인 오펠사의 보쿰공장 (승용차 생산)에서도 이미
85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했고, 폭스바겐의 자회사격인 아우디사의
잉골슈타트 소재 승용차 공장에서도 86년부터 그루펜 아르바이트
개념의 도입으로 노동과정이 서서히 변화되었다.
그러면 과연 ‘그루펜 아르바이트’의 도입으로 무엇이
변하는가?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개별적 생산직 노동자의
파편화된 작업들을 묶어 하나의 팀과업으로 만든다. 2)
직접생산과 관련된 작업(가공/조립)과 간접생산 작업(보전/수리,
품질검사, 물류 등)을 하나로 묶는다. 3) 감독자의 감독노동이나
근태사항 체크, 신입사원 교육 등도 이 작업팀이 함께 맡는다.
4) 팀 안에서 작업자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다른 작업을
담당한다. 작업은 팀 단위로 할당받기 때문에 어떤 작업자가
결근하더라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5) 작업팀
속에서 나오는 불만은 팀장이 기능장(마이스터)과 직접 상담하여
해결한다. 따라서 노동자평의회나 노조대의원 등이 개입할
공간은 줄어 든다. 6) 이 작업팀은 작업상의 문제해결과 지속적
공정개선(KVP)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예, 1주일에 1시간씩)
팀모임을 가진다. 이러한 새 작업조직은 파편화되고 기계적인
노동을 평생 반복적으로만 수행하던 테일러주의/포드주의적
방식에 비하면 일견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래의 구체적 사례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그루펜 아르바이트’의 도입과 동시에 어느
회사를 막론하고, 노동자들의 결근율을 줄이고, 품질불량을
줄이며,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시간도 유연화시키거나
연장하고자 하며,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원가절감을 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기존의
테일러주의적/포드주의적 작업조직의 ‘유연한’ 변동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구체적 근로조건과 작업태도 및 사고방식 등을 다
함께 ‘생산지향적으로’ 뜯어 고치고자 하는 것이 ‘그루펜
아르바이트’를 통한 생산혁신의 구체적 목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그루펜 아르바이트’ 방식이 처음 도입될 때에는 앞서
요약한 대로, 기존의 관료적이고 경직화된 작업과정을
신축적으로 만들어, 노동을 보다 흥미롭고 다양하게 만들고,
작업자의 부담도 줄이며, 보다 많은 권한과 자율성을 작업자들이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구체적
진행과정에서 많은 변화들이 나오고 있고 그것은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이다.
일례로 벤츠사 만하임 공장의 프레스공정에서 ‘그루펜
아르바이트’ 도입 초에 이뤄진 설문에서도 20명의 노동자는
찬성했고, 10명은 반신반의했으며, 7명은 아주 나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그루펜 아르바이트’ 방식이 진전되면서 갈수록
노동조건이 악화된다. 예컨대 쉬는 시간에 작업이 계속되고, 한
사람이 다루어야 하는 기계대수는 늘어났다. 노동자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새로운 작업설비는 거절되고, 기업이
필요하다고 보는 설비는 재빨리 도입되었다. 동시에 노동자들
내부의 경쟁과 압력은 증대되었다. 95년 초에 다시 이뤄진 한
설문조사에서는 33명 중 8명만이 ‘그루펜 아르바이트’에
만족하고, 12명은 불만족했다. 13명은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33명 중 10명은 오히려 예전의 테일러주의적 작업이 훨씬
낫다는 비판도 했다. 4명은 지금이 낫다고 했고, 18명은
반반이라 했다.
오펠 보쿰 공장에서 ‘그루펜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의견 발표들을 들어 보자. “예전에는 대개 한 가지
작업만 하였는데, 이제는 돌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하게
되었다.” “직무만족이라고? 천만의 말씀. 작업팀 속에서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금방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이제는
작업팀이 작업을 전체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내가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을 할지 더욱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리 조정도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노동조건은 악화되었다.”
“노동자의 숙련향상은 안되고 있다. 작업인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에 시달리기 바쁘다. 사람이 모두 다
출근하여 있으면 다른 데서 빌려 가기 바쁘다. 생산량 채우는
것이 최고 목표이다. 그루펜 아르바이트는 인원절감을 위해
도입된 것같다.” “‘그루펜 아르바이트’ 없이는 임금을 한
단계 더 많이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가 같이
올라갈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럽다.” “예전에는 누가 무슨 일을
하든 신경을 끄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작업통제를 팀 안에서
하게 되니 스트레스 쌓인다.” “팀구성원끼리 잘 지내기란 쉽지
않지만, 작업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합심해서 노력하면
기업측의 악의를 물리칠 수도 있다.” 이와같이 팀작업이란
당사자들에게 실로 모순적인 존재로 다가오고 있고, 나아가
이것을 거꾸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만 하다면 노동자들의
문제의식과 상호연대를 증진시킬 수 있는 매개고리가 될 수도
있다.
또, 오펠사에서는 ‘그루펜 아르바이트’의 정착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결근율 내지 병가율을 줄이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예컨대 1995년 연말까지 병가율이 6.5% 이하, 그
이후 1996년까지 6%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1996년 연말
보너스부터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일간경제신문,
ꡔ한델스블라트ꡕ 1995년 6월 29일).
나아가 독일서는 1967년부터 ‘주 40시간 노동제’가
실시되면서(현재는 주 35시간),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휴일이었는데, 이제는 기업들이 정치가들의 도움을 받아
이 토요일을 다시 ‘일하는 날’로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까지는 대부분의 공장에서 토요일 생산작업은 쉬었다. 물론
시장경기가 아주 좋은 경우 ‘특별조’에 의한 토요작업은
노동자평의회의 동의를 얻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특별조가 아니라, 정상 작업조가 토요일에도 작업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평의회에서는 ‘특별조’ 정도는
양보하겠으나 토요일을 정상적 작업일로 하자는 데는 반대하고
있다.
오펠 보쿰공장의 노동자평의회에 따르면, 이것은 노동자들의
‘시간주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가족생활도 파괴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도 작업하게 되면 일요일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나아가 하청업체는 당연히 일요일 노동을 많이
하게 되는 해악을 초래한다고 맞서고 있다. 반면에 현재
토요노동을 하는 경우에는 특별수당을 더 받게 되는데, 이것이
정상작업일로 되면 회사측에서는 그 수당분만큼 인건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한편 오펠 보쿰공장에서는 1995년 여름, ‘기술적이고
물류상의’ 문제로 말미암아 생산고가 부진하기 때문에
‘특별조’에 의한 추가노동을 시키고자 하였다. 노동자평의회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보쿰공장에 ‘특별조’를 편성하여
추가노동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1995년에 계약이 끝나는
375명의 ‘한시계약’ 노동자들을 정규 노동자로 고용하여
생산을 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맞섰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이것이 추가적인 인건비상승 요인이 되므로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결국에는 1995년 9월 8일, 노동자평의회의
다수파는 기업측의 안에 동의하고 말았다. 사실상 그 한시계약
노동자들도 노동자평의회의 주장에 따라 채용된 사람들이었다.
즉 회사에서 노동자들의 작업량을 극도로 높여가자, 평의회는
기존 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추가적인
고용증대를 통해 생산을 늘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95년 초에
각기 175명(6개월간)과 200명(1년간)의 ‘한시고용’이 이뤄졌던
것이다(일간지, ꡔWestdeutsche Allgemeine
Zeitungꡕ 1995.8.22). 물론 기업측에서는
‘한시적’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평의회의 압력에 밀려 이를
수용했다.
오펠사 보쿰공장에서는 ‘그루펜 아르바이트’가 실시되던
초기인 1992년 4월에는 노동자수가 19,016명이었는데, ‘그루펜
아르바이트’와 더불어 생산합리화가 진전되면서 노동자는 3년
반 만에 약 3천5백명이 줄었고(1995년 9월 현재 15,500명),
앞으로 1998년까지 13,000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이와 같은
인원절감 계획은 생산량증대 계획과 더불어 진행되기 때문에,
실업자의 양산, 고용불안 뿐 아니라, 살아남은 노동자의
노동강도 증대와도 직결된다. 사실상 기업측에서 억제하고자
하는 높은 결근율이나 병가율은 이러한 노동강도의 강화와
무관하지 않다. 강한 노동강도 속에서 지친 노동자들은 37-8세만
되어도 몸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상태를 느끼며, 차라리
조기정년의 상태로 들어가, 연금생활을 하기 원할 정도가
되었다. 쾰른에 있는 포드사에서는 55세가 되면 조기정년에 들어
갈 수 있고, 슈트트가르트의 벤츠사에서도 55세 7개월이 되면
조기정년이 되어,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되는) 비교적 안정된
연금생활을 할 수 있다. 오펠사 경영측은 노동자들에게 병을 준
뒤 (조기정년제의 도입과 같은) 약을 주기는 커녕, 병가율과
보너스를 연결시킴으로써(병가율이 높으면 보너스 감축) 오히려
아픈 몸에 또 매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신기술의 도입과
새로운 작업조직의 도입, 지속적 개선의 결과는 노동자들의
일자리 감축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와같이 기업의 주도아래
진행되는 생산합리화는 노동자들의 내부 분열과 ‘삶의 질’
악화를 동반하고 있다. 반면 오펠사의 주인인 지엠사측에서는
1994년에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고 보고 하고 있다. 즉
1994년에 49억 달러의 이윤을 남겼으며, 1995년 1/4분기에만도
22억 달러라고 하는 사상 최고의 이익을 올렸다고
자랑하였다.
또, 1995년 9월 1일부터 오펠사 뤼셀스하임 공장에서는 새로운
작업시간 모델이 시행된다.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⑴
수요변화에 따라 월요일에서 금요일 사이에 4-5일간 작업한다.
⑵ 하루 작업시간은 7.5시간으로 하며, 주당 노동시간은 최저
30시간, 최고 37.5시간으로 한다. ⑶ 95년 10월 1일부터 ‘주
35시간제’가 시행되므로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여 남거나
모자라는 노동시간은 일 년간에 걸쳐 정산하게 된다. ⑷
초과노동수당은 주당 38.75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
지급한다. ⑸ 단체협약에 의한 휴가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30노동일(6주일)이다. 이것은 시장여건의 변동에 따라
노동시간을 기업 임의로 줄였다 늘였다 하겠다는
것이고(기업측은 이것을 ‘숨쉬는 공장’이라 표현한다), 그것도
초과노동 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독일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이미 1984년에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주 35시간제’를
목표로 파업투쟁을 벌였을 때는 ‘하루 7시간, 주 5일 노동과
자유롭고 긴 주말’을 즐기자는 것이었다.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더불어 최근에 기업에서 도입하고자 하는 주말노동(토요노동
포함)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소망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도에 독일 산업계 전체로 18억 시간의
초과노동(잔업)이 독일 노총 산하 노동자평의회의 동의 하에
행해졌는데, 이것은 약 1백만 명의 실업자를 정규노동자로
구제할 수 있는 일거리였다(오펠 보쿰공장 노동자소식지,
ꡔStandorteꡕ 1995년 5월).
나아가 경영측에서는 여러 생산입지들간에 경쟁을 부추켜
노동자들과 노조의 양보를 얻고자 한다(이것을 파커와 슬로터는
‘톱질하기’ 방식이라 일컫고 있다). 예컨대, 오펠사의
벨기에(안트베르펜) 공장은 새 프레스공장을 증설하면서 노조가
2년간 임금인상을 하지 않겠다면 140명의 새 일자리를 만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를 늘이지 않을 것이라 하여,
마침내 노조의 양보를 얻어 냈다(오펠사 노동자 국제연대
소식지, ꡔInfo Internationalꡕ 1995년 7월 7일).
또 오펠사 스페인 공장인 자라고사에서는 1995년 5월 25일,
마이스터가 노동자들을 불러 놓고 품질이 엉망진창이라며 야단을
친 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공장을 동독의 아이제나흐
공장으로 옮길 것이라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즉각
라인을 정지시키고 5분간 파업을 하였다. 재미있게도 비슷한
시기에 아이제나흐 공장에서는 1,722명의 노동자들이 모두
연대서명을 벌이며, 서독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스페인의
자라고사 공장에서는 코르사 모델 한 대당 이곳보다 120마르크나
더 싸게 만들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을 협박하였다(아이제나흐
공장신문, ꡔ오펠 리포트ꡕ, 4/95). 자본은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지만, 노동자의 이동은 여러가지로
제약되어 있기에, 노동자들이 비록 흩어져 살아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않으면 항상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브레멘의 벤츠공장에서는 1만여 명의 노동자 중 92%에 달하는
압도적 대다수가 회사측이 도입하려는 토요노동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경영측은 ‘특별작업조’를
도입하기 위해 노동자평의회측과 ‘피비린내 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편, 기아자동차의 스포티지를 주문생산하고 있는 오스나브뤽의
카르만사에서도 토요노동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6시간씩 5일간
‘주 30시간’ 노동을 하되, 조금의 임금감축도 없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브레멘공장을 비롯한 여러 개의 벤츠공장에서도 ‘그루펜
아르바이트’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합리화전략인 FIT를 추진하고
있다. FIT란 유연하고(Flexibel), 지적이며(Intelligent),
힘차게(Tatkräftig) 일을 하자는 운동으로,
KVP(개선운동)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작업자세와 사고방식을
성과지향적으로 바꾸려는 구체적 방책이다. 이 FIT 프로젝트에는
그간 몇 년간 약 6백만 마르크가 투입되었는데, 최근에는
경영측이 ‘FIT-2 프로젝트’를 실시하겠다고 들고 나와
노동자들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벤츠사 브레멘공장 노동자
소식지, ꡔKollegen von Daimler Informierenꡕ
1995. 12. 14).
한편, 폭스바겐에서는 ‘역하청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공정개선과 노동생산성의 향상으로 많은 일자리가
없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노사(경영측과 노동자평의회)가
합의한 대로 당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외부
중소업체에 하청화시켰던 공정을 다시 본사 공장 안으로 불러
들이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폭스바겐사의 국내 공장에 소속된
노동자평의회 의원들은 ‘생산입지 유지’를 위한 공장협약에서
회사측으로부터 다음의 약속을 받아 내었다. 즉, 국내
폭스바겐공장에서 설비과잉의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외주생산에
맡겼던 것을 다시 불러 들여(‘역하청화’) 자체생산을 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외주생산에는 독일 오스나브륔의
카르만사, 벨기에의 폭스바겐-포리스트 공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폭스바겐사는 1995년 9월 말, 약 2,000개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역하청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ꡔWelt am Sonntagꡕ 1995.9.24). 단
이렇게 역하청화된 생산공정이 ‘국제경쟁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대전제를 달았다. 즉 경쟁력이 없는 생산이 된다면
이러한 ‘역하청화’는 언제든지 또다시 ‘하청’으로 돌릴 수
있다는 말이다.
폭스바겐은 또, 1993년 말에 ‘주 4일 근무제’(1994년초부터
1995년 말까지 2년간)에 관한 노사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국내
여러 공장에서 일정한 산업평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 협약은
생산합리화로 인한 구조조정의 결과, 3만여 명에 대해
합리화해고가 불가피해지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반발이
심해질 것에 대비, 이들에 대해 일정기간 고용안정을 약속하는
대신 임금감축과 노동시간단축을 이루고자 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로써 폭스바겐은 별로 노동자의 저항을 받지 않고도
계속적으로 생산합리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폭스바겐사에서는 저 유명한 ‘카이젠’(KVP)이 당시에 막
도입되어 실시 중이었고, 따라서 경영측은 생산성향상에 관한
노사합의가 조만간에 닥칠 합리화해고로 인하여 산산조각 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 외에도 저 역사적인 ‘주 4일
근무제’ 협약은 그 자체로서도 생산성향상을 위한 중요
초석이었다. 작업교대제와 노동시간이 그로 인하여 유래없이
유연화되었고, 그 사이에 독일 내 폭스바겐 공장들에서만도 약
150가지의 노동시간 모델이 실시되고 있을 정도로 다양화되었다.
여태껏 일반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 협약의 4조
1항이 가진 특수성인데, 이 조항은 다음과 같다. 즉,
“고용안정을 이루기 위해서 경영상의 이유로 배치전환과 전근
등이 불가피하므로, 모든 소속노동자는 회사측으로부터 부여받은
과업을 두말없이 수행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 4일 근무제’ 협약은 1995년 말에 가서 효력이
끝나고 비슷한 내용의 새 협약이 맺어졌지만, 이 노동력의
유연한 사용에 관한 특허 조항은 그에 관계없이 효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독일 폭스바겐사에서는 총 10만 명의 현장 노동자 중
아직도 3만 명은 주 4일이 아닌, 5일 근무를 하고 있다. 즉 ‘주
4일 근무제’는 폭스바겐사에게는 결코 공장의 군살빼기
합리화를 대신하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군살빼기
합리화를 촉진시키는 하나의 전술로 봄이 마땅하다.
구체적으로는, 이 군살빼기 전략이 전체 폭스바겐 왕국 내에서
‘계층별로 재조직’되었다. 즉 나이많은 노동자, 연수생이나
청년노동자, 핵심노동자 등으로 나누어 차별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94년 5월에는 하노버 근처에 있는 폭스바겐 소형
짐차공장(1500명의 노동자가 일함)에서 생산계획의 변경으로,
8월의 공장 여름휴가 때까지 다시 주 5일제를 일시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경영측의 계획대로 노동시간이 제멋대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도, 생활시간을 미리 계획해야 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독재이다.
1994년 초에 자동차생산이 다시 호황을 이루어 몇몇 공장들에서
다시 노동시간의 연장이 이뤄졌을 때, 노동자들은 또다시
실질임금의 감소가 이뤄지는 데 대해 분노하였다. 이때문에
생산고 예상치가 재빨리 하향조정되었을까? 1994년 8월 29일치
슈피겔지에는 다음의 글이 실렸다. “올해 1월부터 주 4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임금이 눈에 띄게 삭감된 노동자들에게는
자동차 생산고가 늘어 가자, 곧 다시 예전의 ‘주 5일
근무제’로 회귀할 것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이것은 최고경영측의 의도에 맞지 않는 것이었고, 피예히 회장은
오히려 그 낙관적 기대치를 하향조정하고 말았다. 그는 파리에서
새로운 폴로 모델을 전시하는 동안 1994년 하반기에는 폭스바겐
차에 대한 주문이 격감할 것이라고 진단하였던 것이다.” 앞으로
피예히 회장이, 노동자에 적대적인 로페즈 생산합리화 부장과
결별하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에서의 생산구조
재편과 군살빼기 합리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폭스바겐은
유럽에 흩어져 있는 해외공장에서 계속적으로 인원감축을 계획
중이고, 노동강도 강화와 원가절감 운동을 지속시킬
전망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합리화의 과정이나 결과가 결코 평화롭게만
진행되지 않음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 많다. 그 한 예로 우리는
‘그루펜 아르바이트’를 통한 군살빼기 생산방식에 저항한
폭스바겐 브뤼셀공장의 파업을 들 수 있다.
브뤼셀의 폭스바겐 공장에서는 연간 195,000대의 자동차를
5,850명의 노동자들이 생산하고 있었다. 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1994년 공장 여름휴가 뒤에 눈에 띄게 빨라진 라인 속도에
불만이 고조된 상태에서, 경영측에서 1996년까지 850명분의
일자리를 감축하고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기로 결정하자 일거에
일손을 놓았던 것이다. 10일 동안의 파업이 일어난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새로운 재협상도 9시간씩이나
끌다가 중단되어 버렸다. 회사측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는 그동안
엄청난 설비투자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장은 또한 파업으로 인해 생산차질이 난
‘골프’와 ‘파싸트’ 모델 5000대를 브뤼셀이 아닌 다른
공장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한편, 지난 1995년 유럽시장에서 폭스바겐사는 가장 많은
자동차(201만 3천대)를 판매하여, 유럽시장의 16.8%를 차지했다.
2위는 지엠이 차지했는데, 157만대를 팔아 유럽시장의 13.1%를
차지했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127만 8천대를 판매하여 10.6%를
차지하고, 한국자동차업체들은 1994년에 비해 68.5%가 증가한
17만 8,849대를 팔아 시장점유율은 1994년의 0.9%에서 1.5%를
돌파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시장을 둘러싸고도 전세계의
자동차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바로 이러한 경쟁의
논리는 생존 여부를 규정짓고 있기 때문에, 각 나라별, 각
공장별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과 압력을 내면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생산량을 늘리면서도
인원감축과 원가절감, 노동강화를 이룰려는 기업측의 노력은,
인간다운 노동생활과 일반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과 심하게 충돌하고 있어, 기업측의
신경영전략이 그 의도대로 순탄하게 관철되기가 더욱 힘들어
지고 있다.
3. 현장사례들이 주는 의미
우리는 일을 하되, 보람있고 재미있게 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독일 노동자도 마찬가지고 어느 나라 노동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일이 몸에 부치지 않게 편해야 하고, 너무
지루할 정도로 길어서도 안될 것이다. 일이 단조롭게 반복되어도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루펜
아르바이트’(팀작업)에서 선전하고 있는 ‘재미있고 가치로운
노동’이 실제로 그렇게 이뤄지기를 모두는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 자질이 향상되고, 팀작업 구성원들간에 인간적 정을
느끼고, 작업과정을 스스로 조절하며,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그런 ‘그루펜 아르바이트’(팀작업)의 현장은 이
세계의 자동차공장 어디에도 좀처럼 찾아 보기 어렵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범적이라 떠들어 대던 누미사(지엠과 토요다의
합작사)에서는 왜 1994년 8월에, 비록 짧긴 하지만, ‘파업’이
일어났을까?(월간 노동자잡지의 일종, ꡔCirkular
12ꡕ, 2/1995) 이제 이러한 혁신과정의 현장들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차분히 정리해 보자.
1) 범지구적으로 퍼진 다양한 생산입지에 있는 여러 공장들
사이에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런 경쟁의 논리에 사로잡힌 노조나
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를 위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즉 산별교섭이 약화되고 공장별 노사협약이 강화되고
있다. 이것은 지구촌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의식이 강화되고
집단압력이 강화되고 있는 증거이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경쟁의 논리’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주객전도’된 것이다.
2) 현장의 지속적 개선운동은 결국 역설적이게도 인원감축과
노동강도의 강화를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한 공장에
개선제도가 도입되려 할 때, 노조측 사람이 “개선의 결과
인원감축이 불가피하게 되면, 그 개선제안을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가도록 한다”는 규정을 넣을 것을 조건으로 노사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노동자의
지혜’가 자율적인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준다.
또한 이것은 노동자가 객체화되는 ‘주객전도’ 과정에 스스로
묵인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똑똑하게 펼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이 있을 때라야만 자신의 삶에 있어 진정한 주체로
설 수 있음을 일러 준다.
3) 사내외 하청이 증가되면서 고용불안이 커지고 있다. 해고나
불완전고용, 한시계약자가 늘고 있다. 이것은 ‘범지구적으로’
정규노동자와 실업자 내지 불완전고용자 사이에 분열이 심화됨을
뜻한다. 폭스바겐의 ‘재하청화’도 폭스바겐사 입장에서는
고용증대가 가능하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아무런 고용증대
효과가 없다. 즉 기업적 합리성(여기서는 ‘효율과 생산성,
경쟁력과 수익성의 향상’이라 하자)의 증대가 반드시 사회적
합리성의 증대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합리성(여기서는 ‘해고에 대한 불안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라 하자)이 이로 인해 침해받고 있다. 앞에서 말한
‘기업합리성과 사회합리성의 전도’ 현상이 현실에 뚜렷이
나타난다.
4) 노동시간 단축이 이미 대세로 굳어진 이상, 기업에서는
노동시간과 기계가동시간을 분리하여 기계를 24시간 가동하고자
하고, 이에 따라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그런데
이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노동자의 욕구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욕구나 시장여건의 변동에 따라
임의로 조절된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모두가 일을 하는 것인데도,
경쟁력있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삶의 질’을 오히려
악화시켜야만 한다. 앞서 말한 바, ‘수단과 목표의 전도’
현상이 여기서도 관찰된다.
5) 노동자 사이의 연대의식이 약화되고 팀내 집단압력이
강화되어, 스트레스가 증대하고 있다. 이 증대된 노동자의
스트레스는 품질과 생산성향상이라는 기업의 목표에도 해롭게
작용한다. 물론 노동자의 건강한 삶과 건전한 인격형성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6) 노조가 경영합리화 등 기업의 생존을 위한 여러 조치들에
대해 노동자 조직다운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영측과
함께 ‘공동경영자’(Co-Manager)가 되는 것은 노조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금속노조는 1991년 이래로
최근까지 자그마치 135만 명의 조합원을 잃었다. 최근 2년 동안
매달 무려 1만명씩 금속노조를 이탈한 것이다. 동서독 통일
직후인 1991년에 비하면 25.4%의 조합원이 줄어 든
셈이다(일간신문, ꡔNeues Deutschlandꡕ
1995.10.31). 이것은 비단 양적인 측면에서의 ‘노조위기’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질적인 측면이다.
원래 노조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권익향상을 위해
존재하고, 노동자 사이의 온갖 분열과 경쟁을 지양, 단결된
힘으로 모든 형태의 억압과 지배에 맞서서 진실로 살맛나는
세상을 시원하게 열어 제끼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독일 노조가
당면한 위기는 바로 이러한 노조 본래의 사명을 충실히 실천하지
못하고 하나의 ‘위기관리자’ 내지는 일종의 ‘보험회사’로
전락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것 또한 앞서 말한 의미에서
‘수단과 목표의 전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4. 맺음말 - 무엇을 할 것인가?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여러 차원에서 ‘전도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또는 알더라도 무기력하게 순응만 할
것인가? 아니면 전도된 현실을 올곧게 세우기 위하여 개인적,
조직적으로 힘써 노력할 것인가? 냉정히 생각건대, 현실에
순응만 하는 이들은 냉엄한 자본의 생존논리에 희생만 당하는
불쌍한 ‘희생자’의 단계를 넘어, 그 생존의 논리를 같이
만들어 가는 ‘공범자’이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실천에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그것은 순종하는 것도 일종의
공범자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뭔가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이 ‘전도된
현실’ 자체를 다시 바꾸어 세우는 것이 아닌 한, ‘대안’ 이
아니라 또다른 공범자의 한 모습인 ‘위기관리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95년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 제 18차 독일
금속노조대회에서 쯔뷔켈 의장은 정부와 기업, 노조가 “노동을
위한 동맹”(Bündnis für Arbeit)을 맺어야 한다면서,
수백만 명의 실직자가 존재하는 현재의 ‘고용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만일 정부와 기업이 30만명의 신규 일자리를 약속하는 등
고용안정 조치를 취한다면 향후 3년간 임금인상투쟁을
억제하겠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위기관리자’로서
노조가 적극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실상
이러한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우글거리는 고용위기의 상황은
노조가 독일 경제의 구조조정과 생산합리화 과정, 팀작업의 도입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와 협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는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가 보기에 진정한 대안은 이러한 ‘위기관리’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는, 앞서 말한
‘3차원의 전도현상’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에 기초하여
뒤집어진 주체와 객체를 바로 세우고, 수단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기업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의 관계를 올바로 세우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이 ‘3차원의 전도’된 현실을 우리는
‘병든 사회’라 부르고자 한다. 이 ‘병든 사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철저히 분리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자연은 원료나 기계 등
생산수단으로서의 의미만 갖고, 인간은 기업이 원하는
노동능력과 노동의지를 가진 노동력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사회를 지탱하는 지배적 논리는 시장경쟁을 매개로 한
‘일류주의’와 ‘이윤추구’이다. 모든 것이 상품가치로서만
평가되고 그것도 가격경쟁과 품질경쟁이 있는 것만, 따라서 많은
이윤을 갖다 주는 것만 훌륭하고 가치로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바로 이러한 ‘병든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되바꾸지
못하는 논리와 실천은 ‘전도된 현실’의 희생자와 공범자를
동시에 만들어 낸다.
앞서 보았던 팀조직의 잠재적 진보성(노동의 인간화, 민주적
의사결정, 노동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의 극대화 등)도 그 자체로
현실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연관 속에서 더욱
발전될 수도 있고, 오히려 왜곡될 수도 있다. 세계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관계가 우리의 경제행위를 외적으로 규정짓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혁신적인 작업조직과 생산기술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개발되고 적용되는 구체적 현실과 특수한
사회적 관계(노동자가 사용자 아래로 들어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관계, 지배-종속관계) 속에서는 그
혁신성이 오히려 ‘노동생활의 질 악화’로 전환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지배-종속관계,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고 목표와 수단이 전도되며, 기업합리성과 사회합리성이
전도된 관계 자체를 지양하고,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조화-통일관계, 연대-협동관계를 이루어 낼 수 있을
때라야만,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생산기술 및 작업조직도 그
사회적 생산과정 속에서 본래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