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돈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돈
권두언
조 돈 희
노동자의 힘, 울해협 의장
7월 20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사업장은 노조 사무국장의
노조창립기념품 선정과정에서 금품수수(배임수재)로 인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전국으로 일파만파 번져나가고 특히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역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해댔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중심지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128일 투쟁으로 한국 노동자계급의 자존심을 사수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90년 골리앗투쟁으로 전국 노동자들의 정치총파업의 중심에 서
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92년 임단협을 직권조인한 위원장과 지도부를 투쟁으로 탄핵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93년 현총련총파업의 중심이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94년 선상점거파업으로 전국전선을 사수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95년 이후 자본의 현장통제에 숨통이 막혀있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과 이 숨통을 뚫기 위해 투쟁하는 현중 선진노동자들
노조간부의 금품수수사건이 사실로 확인된 후 현대중공업 공장
안에서 소위 민주적 양심세력들은 머리를 들지 못하고
조합원들과 눈 마주치기를 두려워했다. 반면에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그 반대세력들은 노조사무실을 점거하고 위원장 등
임원들을 반감금상태로 가두어놓고 ‘즉각 총사퇴’ 압박을
가했다.
과거 ‘민주파’들이 배신한 지도부를 몰아내는 과정과
흡사했다. 자본과 노동자의 힘의 관계가 역전된 상황을 단면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도둑질한 집행부, 조합비의 막대한 손실을 입게 한 집행부가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그동안 십수년 헤쳐모여를 거듭하며 집행부를 장악해 온
부류들은 이제 관료화되었다.”
소위 현중 민주노조 집행부를 넘어 현중 전체 선진노동자들을
향한 비난이 퍼부어졌고 이들은 할말을 잃었다. 아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현중은 7월 23일 위원장이 총사퇴를 표명했고, 보궐선거 후
현장복귀할 것을 약속하면서 일단 상황은 진정되었으며, 김임식
전 위원장이 선관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경찰과 검찰의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현중노조 운영위는 집행부의 ‘진상조사단 구성’을 통한
추가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기각했다. 따라서 현 집행부가 자체조사를 추진중이며,
회계감사결과보고를 남겨두고 있다. 각각의 세력은 9월 11일
치러질 보궐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반성과 혁신!
이 글을 쓰는 나는 현대중공업 해고자이다.
나는 지난 1999년 금속산업연맹선거에서 혁신을 기치로 내건
위원장후보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혁신되었다기보다는 더욱 더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
그 속에 내가 있다. 그런 내가 ‘민주노조운동의 반성과 혁신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가?’라면서 ‘너는 혁신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묻는다면, ‘그렇다면 그 자격을 가진 자는
누구일까?’로 되물어질 것이다.
우리 노동조합운동사에서 94년 포항제철노조는 노조간부가 돈의
유혹에 빠져 노조가 망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노조간부들이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조직은 도덕성에 대한 치명상을 입게 된다. 도덕성에
대한 조직의 치명상은 그 조직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 제동장치가 되게 된다.
이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동지들이 고민에 빠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은 사람을 잘 써야한다’면서
‘사람이 문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 사람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조직의
흥망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조직의 주요직책을
맡는 것으로써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가진 자들로부터의 억압과
착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돈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며 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있는가?’가 관건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강적, 돈과 성적 유혹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나의 고백과 다짐
나는 간혹 ‘나는 진정 돈과 성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가?’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나 또한 진정 돈과 성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나를 확인하곤 한다. 나는 그 이유를
모순투성이인 자본주의 사회로 돌리곤 하지만 결국 그건 나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내가 진정으로 이 몹쓸 놈의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하기 위한
운동의 길에 들어서 있을 때 나는 진정 돈과 성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고로 나는 아직 진정한 반(反)자본주의자가 아님을 확인한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현중 노조간부의 금품수수 사건이 터지면서 제기된
“헤쳐모여를 거듭하며 십수년간 집행부를 장악해온 부류들은
이제 관료화되었다”는 비난이 비난으로 들리지 않았다.
현중 민주노조를 투쟁으로 지켜온 투사들을 매장하기 위한
악선동이라는 대응만으로 그 목소리를 소홀히 넘겨선 안 된다.
오히려 그 목소리를 비판적으로 수렴하여 다시 대중 속에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르주아계급과 노동자계급이 달라야 할 것은
부르주아 정치집단은 중앙정부를 집권하기 위해서만이 존재한다.
국민, 국민 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국민은 가진 자들을 중심에
놓고있을 뿐 노동자 민중은 오로지 자신에게 표를 던지게 하는
유권자로써의 국민일 뿐이다.
그들이 집권하는 순간 노동자 민중은 항상 국가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대상이 되어왔음이 이를 증명해 왔다. 지금도 보라,
그들의 행태를! 오로지 집권야욕에만 불타있지 않은가? 똑같은
놈들끼리 온갖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서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모습을 …
그러나 우리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목소리가 노동자들의 입에서 나온 지 오래 전이다.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계급과 달라야 할 것은 진짜 대중 속에서
그들의 고통과 함께 하면서 고통스런 현실을 투쟁으로!
투쟁으로! 극복하기 위해 조직과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노동자계급의 도덕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8월 10일)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