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된 비판, 굴복을 강요하는 비판
예를 들어 현재 한국에 난무하는 조폭들이 조직화 수준과 폭력적 잔인함에 있어서 미국의 갱단을 닮아간다고 하자. 이에 대해 어떤 ‘정의로운’ 범죄 사회학자가 미국 갱단의 악랄함을 비판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약탈하는 것을 목놓아 비판한다. 그리고 한국 조폭이 미국 갱단을 닮아 가는 것에 대해서 심히 우려를 표명한다고 하자. 악랄해져 가는 조폭에 대한 그의 비판과 용기에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미국식 갱단을 유럽식 마피아와 비교 분석하면서, 유럽식 마피아가 미국식 갱단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서 한국의 폭력조직을 마피아식으로 바꾸자고 한다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각국의 폭력조직은 잔혹함과 그 규모 그리고 민중을 강탈하는 정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폭력조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폭력조직의 피상적인 차이에 매몰되어 덜 잔인한 폭력조직을 찬미하는 범죄학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문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두려워하는 혹은 근본적인 문제를 은폐하려는 지식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9월 12일 개최한 포럼에서 발표한 이찬근 교수의 글이 이와 유사한 논리로 전개되어 있다. 「미국식자본주의, 우리의 대안인가: 분식회계 사건으로 본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인가」가 그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글이 소위 진보라는 이름을 걸친 쁘띠 부르주아의 이해를 대변하는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글이 노동운동을 배회하며, 노동운동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면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를 찬미하는 것이 그것이다. 금융중심의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하면서, 개량적 자본주의를 끌어들이는 것이 그들의 수법이다. 결국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 포섭되어 반항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이론이다. 이찬근씨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도 결국 이런 식으로 굴절되고 있다.
자본주의 본질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다
이찬근씨는 위 글에서 미국식 회계부정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현 미국식 자본주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금권자본주의의 실상이라는 편에서 엔론으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기업들의 회계부정에 대해, 간략히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회계부정을 미국식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진단하고, 그 기점을 신자유주의의 일반적인 기준인 70년대로 지적한다. 그 이후 진행된 일련의 변화의 핵심은 주주 중심의 그리고 금융중심의 자본주의로의 재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결과로 거품 발생 및 붕괴가 일어나며, 이 과정에서 분식회계가 발생한 것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현재의 거품 붕괴와 회계부정의 원인이 바로 현 미국식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징이라는 것이다.1) 반면에 유럽형 혹은 라인형 시장경제―자본주의―는 그렇지 않으며, 더 나아가 유럽식 자본주의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2)
“분식회계를 잉태한 구조
․미국경제의 금융투기화와 금융자본의 산업자본지배
․IT 신경제론에 의한 주식 버블 유도
․경영자의 주주이익 극대화 포획
․스톡옵션: 재무회계에서는 주석으로 처리, 세무회계에선 비용처리
․먹이사슬구조: 회계감사법인 컨설팅 겸업, 증권분석가의 이해충돌 이사에게도 스톡옵션지급, 정치권 자금지원과 로비관행”3)
유럽의 분식회계 스캔들 사례
|
회사명 |
발생연도 |
사업분야 |
스캔들 내용 |
경과 |
은행 |
크레딧 리요네 |
1996년 |
은행 |
부실채권 축소 |
검찰조사 |
테크놀로지 기업 |
르노&호스피 |
2002년 |
음성인식 S/W |
해외자회사와의 위장거래를 통한 매출 과대계상(3.7억달러) |
파산 |
EM, TV |
2001년 |
방송/미디어 |
매출과대계상 |
경영권 상실 |
콤로드 |
2001년 |
차량항법기술 |
가공회사와의 위장거래를 통한 매출과대계상 |
주가폭락 |
미국내 상장사 |
텔레포니카 |
2001년 |
통신 |
영업권 손실 부당처리 |
혐의 |
프랑스텔레콤 |
2001년 |
통신 |
영업권 손실 부당처리 |
혐의 |
지멘스 |
2001년 |
통신장비 |
영업권 손실 부당처리 |
혐의 |
아홀드 |
2001년 |
식품유통 |
영업권 손실 부당처리 |
혐의 |
스테이지코치 |
2001년 |
운송 |
미국자회사 손익 과대계상 |
주가하락 |
비방디 유니버설 |
2002년 |
영상/출판/미디어 |
BSkyB그룹의 지분처분시 15억 유로 과대계상 |
COB 조사중 |
통신관련회사 |
도이체텔레콤 |
1996년 |
통신 |
수십억 달러의 부동산 과대평가 |
혐의 |
에릭슨 |
1999년 |
통신장비 |
매출 과대계상, 컨설팅 비용 회계처리 의혹 |
세무당국
조사 |
알카텔 |
2001년 |
통신장비 |
분식회계 |
혐의 |
기업지배구조관련 |
필립스 |
2000년 |
전자 |
분스트라 전임회장의 내부자거래(2건) |
검찰조사 |
ABB |
2001년 |
엔지니어링 |
전임 회장에 대한 불법 연금 및 퇴직수당 지급 |
수령액
절반 반납 |
홀심 |
2000년 |
시멘트 |
슈미트하이니 전임회장의 내부자거래 |
스페인당국
조사 |
기타 |
클럽 하우스, |
2001년 |
골프클럽하우스 |
9,000만 파운드 자산 과대계상 |
DTI 조사중 |
위키스 |
2001년 |
DIY체인 |
분식회계 |
혐의 |
* 자료: Dow Jones Interactive, 삼성경제연구소 재인용
미국의 회계부정이 신자유주의, 금융자유화와 함께 극심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정도가 현재 유럽에 비해 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회계부정이 현 미국식 자본주의의 특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신용경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주장이다. 자본주의 신용경제 자체의 본성이 바로 회계부정 등의 사기를 그 본성으로 하고 있다. 그가 찬탄하고 있는 현재 유럽(라인형) 국가들도 회계부정을 지속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유럽의 분식회계에 대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통해서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위의 표를 보라.
이렇게 볼 때, 미국과 유럽은 50보 100보이며,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회계부정 등의 사기는 자본주의 신용경제의 본성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경제는 신용제도(금융제도)를 토대로 해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돈을 빌려 사업하는 자본주의 신용제도에서는 투기와 그에 따른 사기가 불가피하다.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도박에 가까운 투자도 한다. 반면에 손실이 발생하면 자신은 최대한 피해와 책임을 면하려고 한다. 이런 점을 맑스와 레닌의 주장을 통해서 살펴보자.
“주식회사에 있어 매우 흔한 대차대조표 사기의 이와 같은 전형적인 실례는 주식회사의 이사회가 왜 개별 사업가보다도 훨씬 부담 없이 위험한 거래에 기꺼이 뛰어드는 가를 설명해준다.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현대적 기업은 일반 주주의 눈으로 미심쩍은 사업을 은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투기가 실패했을 경우에도 적시에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주된 이해관계자가 투기 실패의 결과를 떠맡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다. 반면 개별 기업간 매사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 대차대조표를 해독할 수 없도록 만드는 가장 간단한 따라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합병함으로써 하나의 사업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 제도가 다양한―합법적 및 비합법적―목적에 유용한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며, 이를 사용하지 않는 대회사는 예외에 속할 정도이다.”4)
“다른 한편에서는 주식회사는 새로운 금융귀족을 재생산하고 발기인이나 투기가나 명목만의 임원의 형태로 새로운 종류의 기생층을 재생산하며, 회사창립이나 주식거래와 관련된 투기와 사기의 제도전체를 재생산한다.”5)
어떤 식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다
이찬근씨의 자본주의 신용제도에 대한 오해는, 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잘못된 주장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경제위기가 자본주의의 경제법칙상 필연적인 동시에 주기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무지하거나 이를 은폐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이런 경제위기를 단지 금융, 혹은 금융적 투기라는 피상적인 문제로 치부하려고 든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주기적인 과잉생산과 과잉생산위기를 단지, 무개념적인 버블(거품)과 버블붕괴(거품붕괴)라는 용어로 대체해서 사용하는 것이다.6) 그는 앞서 IT신경제론에 의해서 주식버블이 유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IT신경제론에 의해 촉발된 주식버블(금융투기)이 파괴적인 ‘파장’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7) 요컨대 현 미국경제의 위기를 모든 자본주의의 구조적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IT신경제론․ 금융투기 그리고 미국식 자본주의에 국한된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먼저 그의 말대로 단지 버블이 현 금융중심의 미국식자본주의에 의한 금융투기의 결과라고 한다면, 현 금융중심의 미국식자본주의가 구조화되지 않았던 이전의 버블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825년 이래로 현재의 위기까지 대략 10년을 주기로 지속적인 버블(과잉생산)과 버블붕괴(과잉생산위기)를 겪어 오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특히 그가 긍정적으로 주장하는 전후경제체제 기간 동안에 벌어진 과잉생산위기와 그 체제를 종결시킨 70년대 초의 과잉생산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8) 실제로는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법칙상 주기적이며 필연적이다. 따라는 경제위기를 낳는 것은 금융투기라는 피상적인 요인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자체다. 때문에 경제위기는 어떤 식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모든 성숙한 자본주의 자체에 필연적이다.
그는 현재 미국의 버블 붕괴와 회계 부정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가 찬미해 마지않는 라인형 유럽경제는 도대체 어떤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가? 현재 유럽도 그 주기적이고 필연적인 과잉생산위기와 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다. 라인형 본토 모델을 가지고 있는 독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유럽자본주의에서도 과잉생산위기(버블붕괴)와 그에 따른 주가폭락(버블붕괴)이 이루어지고 있다.9) 따라서 현재 미국의 버블을 주가버블 등의 금융적이고 투기적인 것으로만, 그리고 이것을 현 미국식 자본주의만의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착각이 아닐 수 없다.10) 또한 유럽식 혹은 라인(독일)형 자본주의가 찬미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어떤 식의 자본주의든 노동계급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다.
부언하자면 미국의 과잉생산위기(버블붕괴)는 그나마 1990년대 중반이후 4%대의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을 수반하였다. 그런데 독일은 93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이래로 99년까지 1~2% 대의 낮은 성장을 기록했을 뿐인데도 과잉생산위기(버블붕괴)에 봉착을 한 것이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 이처럼 낮은 성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과잉생산위기(버블붕괴)를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바로 이 낮은 성장이 적은 투기와 사기를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생산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과잉생산위기를 수반하고, 투기와 사기를 만연시킨다. 이것은 자본주의 신용제도에 내재하는 이중성에 기반하고 있다.11) 성장을 하면, 위기와 사기 및 투기가 심화되고, 위기와 사기 및 투기가 적으면 침체와 실업이 증대된다. 우라질 자본주의가 아닌가? 라인형이라고 하는 독일 및 유럽자본주의의 저성장과 경제위기 그리고 높은 실업률은 결코 노동계급의 대안이 아니다.
몰계급적 분석과 반노동자적인 소부르주아 대안
이찬근씨의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피상적 비판은 기본적으로 그의 몰계급적 분석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런 분석의 바탕에는 그의 소부르주아적 관점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는 자본주의는 없고 단지 피상적인 자유경쟁과 독점만이 있다. 그리고 자본가와 노동계급은 없고, 주주, 종업원, 소비자라는 몰계급적인 자유로운 주체들만이 있다. 따라서 지배피지배라는 계급 대립은 없으며, 따라서 노동자도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주체로 상정되고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투쟁과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언(voice)을 함으로써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투쟁은 배제되고 대화와 타협을 주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자신과 같은 지식소상인들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런 그의 논리를 직업 살펴보자.
“미국은 초창기부터 자유방임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했다.
․이는 문제가 있으면, 바로 exit(다른 선택을 찾아서 떠나라: 인용자)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업이 맘에 들지 않으며, 주주, 종업원, 소비자는 바로 exit을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비효율적 자원 배분이 개선된다는 사고 방식이다 … 완전 경쟁상황이라면 exit option(선택권: 인용자)을 선택한 주주, 종업원, 소비자는 항상 다른 기업을 찾을 수 있으나, 오늘날 같이 독과점 체제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 따라서 독과점 체제에 상존하는 비효율화, 부실화의 여지를 축소하려면 새로운 압박 메커니즘이 필요하며, 이는 voice(발언) 메커니즘일 것임”
그는 현대 자본주의를 독과점체제로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exit 옵션이 없어서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자유경쟁이 만연했던 1873년12) 이전의 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의 삶이 비참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는 문제는 자본주의자체가 아니라 완전경쟁이냐 독점이냐라는 피상적인 구분만을 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커다란 문제는 독과점체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비효율화와 부실화로 규정하고 있다. 즉,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체제인 자본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본주의 강화론에 다름 아니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해결책으로 제시한 수단이 바로 목청을 높여 발언하는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투쟁이 아니라 발언권을 높여라? 참으로 강단의 지식인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딱 그런 관념적 해결책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의 이런 주장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한편, 자신과 같은 지식 소상인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즉 그의 이론은 반노동자적이며 반동적 소부르주아적 주장이다.
“그러나 exit option의 활성화로 인한 양극화는 전체 한국사회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킴으로써 기득권층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 못할 것임 … exit option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voice option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13)
“이상의 각 부문별 voice mechanism의 강화는 이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사회적 중간층(social middle class)의 형성을 통해서 크게 뒷받침되고 전체적인 정합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14)
이찬근씨는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자 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효율화시키려고 하며, ‘기득권층’에게도 유리한 방향으로 개편할 뿐이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치, 기업(감사위원회 등), 언론, 대학 등에서 활동할 그와 같은 지식소상인 세력을 포함한 소부르주아를 키울 것을 노골적으로 강변하고 있다. 요컨대 몰락하는 중산층을 재건하겠다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이런 소부르주아적 주장은 동시에 반노동자적이며, 그리하여 노동계급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특구도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육성을 염두에 둬야 하고, 노동계는 유치업종의 성격에 따라서는 노동권을 일부 양보하는 융통성을 보여야 함. 즉, 전통 제조업분야의 외자진출에 대해서는 국내업체와 동일한 수준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해야 하나, 우리로선 skill 축적이 아쉬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는 예외를 적용할 수 있음.”15)
그는 국가경쟁력논리로 노동계급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지지하고 있다. 반노동자적인 경제특구16)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노동계급이 노동권을 양보하라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의 주장이 노동계급을 탄압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사실 그의 반노동계급적 주장은 금융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또 다른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경쟁력 논리에 노동자들을 종속시킬 것을, 그리고 노동강도 강화를 선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은 바로 개량적 사이비 노동자당의 역할을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자료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조치를 취한다고 무조건 금융인들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의 경쟁금융기관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구조조정, 리엔지니어링, 합리화를 완수했다. 미국이나 서유럽의 은행지점을 방문해보면 카운터 건너편에 재래식 유니폼을 입고 안아 있는 여직원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들은 모두 강도 높은 재훈련을 받았고 이제는 다기능 세일즈 상담자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존의 여수신 업무 외에도 재산관리 조언, 법률 및 조세 상담, 보험상품 소개 등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제 금융인들은 강한 경쟁력 마인드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경쟁력은 자본측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경쟁력은 오늘날 세계화라는 변화된 세계에서 노동자의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자신의 회사에서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실패한다면 자신이 실직하는 것은 물론 자식들에게 번영된 사회를 물려줄 수 없게 된다 … 이 잔혹한 세계화 시대에 구조조정을 피할 길은 없다.”17)
마치며: 이론적 작업에도 노동계급이 주체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찬근씨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겠다는 정의로운(?) 그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반노동자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대안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국식이 아니라 다른 어떤 식의 자본주의 예컨대 독일식의 자본주의를 그 대안으로 주장한다. 한마디로 개량주의적 관점에서의 비판이다. 그리하여 모든 개량주의적 비판이 그렇듯 반노동자적인 주장을 은밀히 혹은 노골적으로 주장에 이른다. 즉, 그는 자본주의의 효율화를 위해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노동사회연구소 주최로 발표되었던 이찬근씨의 글을 중심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비판적인’ 지식인의 상당수는 실제로는 개량적이며, 체제유지적이다. 노동계급은 왜곡된 비판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어떤 비판은 바로 노동계급의 올바른 투쟁을 막고 그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위한 사이비 비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여러분도 더 이상 강단이나 학계 혹은 연구소의 ‘권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비판적’․‘진보적’ 지식인에 대해서도 다시 뜯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지식인은 기본적으로 쁘띠 부르주아 성향을 가진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비판이 정말 타당한지 그리고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는 개량적인 글은 아닌지 스스로 뜯어보고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노동자 여러분들이 이론적 비판가로서 지식인들을 압박하고 견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노동계급을 위한 이론의 창조자로 노동자들 여러분들이 스스로 서야 할 것이다.
1) 이찬근, 「미국식 자본주의, 우리의 대안인가: 분식회계 사건으로 본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2002.9.12., pp.27~3.
2) “라인형: 은행중심의 금융시스템(은행은 기업의 전략적 투자자). 장기적인 네트워크 관계. 종업원, 경영자, 국가의 이해도 자본가 이상으로 중요하다. 경영자가 신념을 갖고 기업특수자산을 키워 나갈 수 있다. 강력 노조, 정리해고의 최소화 직업훈련 중시. 경영자는 종업원의 대표로서 보수에 집착하지 않음. 내부자적 관계에 의한 장기적 신용평가. life cycle이 길고 안정적인 기술/산업, middle-tech에 유리함, 총체적인 합의를 요하는 시스템으로서 변화의 수용이 늦다. 대기업-중소기업간 유기적 발전이 가능하다. 국민적 합의에 의한 국가전략산업의 육성이 가능하다.” 이찬근, 상동, p.27.
3) p.13.
4) 레닌, 남상일 역, ꡔ제국주의론ꡕ, p.81.
5) 칼 맑스, 김수행 역, ꡔ자본론ꡕ 3권, p.539.
6) “천박하다기보다 무의미하면서도 그럴 듯하게 들리는 주장중에, ‘거품붕괴론’ 혹은 ‘거품 해소론’이란 것이 있습니다 … 그건 도대체 이 거품의 정체가 뭐며, 왜 생겼던 것이고 왜 터지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것이지요 … 여기서 말하는 ‘거품’이란 투기의 격화를 반영한 주식, 채권 ,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그러한 현상을 ‘거품’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빌어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왜 거품이 발생하는가’, 즉 ‘왜 투기가 극대화되는가’를 설명(해야: 인용자)하는 것이지요.” 채만수, ꡔ노동자 교양경제학ꡕ, 현장에서 미래를, 2002, p.209.
7) “90년대 신경제론 대두. 그린스펀의 진두지휘, … 주가버블의 파장. 다우존스는 95년 이후 4년간 3배로 폭등(82년부터는 6배). 기업부문의 과잉부채-과잉투자. 가계부문의 과잉부채-과잉소비”, 이찬근, 상동, p.12.
8) 물론 그는 단지 이것이 석유위기 혹은 닉슨쇼크 때문이라고 언급함으로써 본질적인 과잉생산위기에 대해서 지나치고 있다. 이찬근, 상동, p.10.
9) “유럽지역 경제 역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긴급 회동한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은 올 EU지역 경제성장률을 미국(2.2%)의 절반도 안되는 1% 이하로 전망했다. 기업실적 부진과 재정적자 확대, 고실업률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란 진단이다. 독일의 DAX가 23일 4.69% 폭락, 5년 6개월만의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유럽증시가 연일 급락세를 면치 못하는 것도 이런 경제상황의 반영이다. 실제 유로존(유로 사용 12개국)의 양대 축인 프랑스와 독일의 경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독일의 올 2분기 최종 판매(국내총생산에서 재고와 순무역을 제한 나머지는 전 분기 대비 1.9% 감소했다. 프랑스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성장률도 전 분기 대비 0.5% 증가에 그쳐 당초 예상치인 0.6%를 밑돌았다. 낮은 성장률 속에 실업률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7월 중 실업률은 3년 6개월만의 최고수준인 9.9%를 기록했고 프랑스도 2년만의 최고치인 9.0%를 나타냈다.” 정대인, 「유럽, 재정적자, 高실업률 ‘몸살’ … 올 성장률 1%이하 전망」, ꡔ한국경제신ꡕ, 2002.9.25.
10) “6. 문제의 핵심은 금융. 금융투기화(증권화) … 무게중심의 자본시장 이동(직접금융화) … 급기야 철저한 규제완화로.” 이찬근, 상동, p.14.
11) “따라서 신용제도는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형성을 촉진하는데 … 동시에 신용은 이 모순의 격렬한 폭발―즉 공황―을 촉진하고 이리하여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들을 강화한다. 신용제도에 내재하는 이중적 성격―즉,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동기(즉 타인노동의 착취에 의한 치부)를 가장 순수하고 가장 거대한 도박과 사기의 제도로까지 발전시키고 사회적 부를 수탈하는 소수의 수를 점점 제한한다는 성격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생산양식으로의 이행형태를 구성한다는 성격”, 칼 맑스, 상동, pp.542~543.
12) “이상과 같은 독점체 역사의 주요 단계를 총괄하면 다음과 같다. (1) 1860~70년대: 자유경쟁이 절정에 달한 단계. 독점체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동의 맹아에 불과했다. (2) 1873년 공황 이후: 카르텔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아직 예외적인 것에 불과했다 …” 레닌, 남상일 역, ꡔ제국주의론ꡕ, p.49.
13) 이찬근, 상동, p.23.
14) 이찬근, 상동, p.25.
15) 이찬근, 상동, p.29.
16) “(민주노총 2002.10.10. 성명서) … 경제특구는 외국자본과 여기에 편승한 국내자본에게 파견근로자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하고 월차․생리휴가를 박탈하며 장애인 고령자 의무고용 제한도 면제받는 등 사실상 노동권을 말살하는 ‘노예특구’이다. 경제특구는 노동권 말살에 머물지 않고 외국자본에 대한 조세권을 포기하고 교육․서비스․의료분야를 외국자본에게 개방하며 농지전용․공장설립 등 토지 난개발로 환경파괴를 부를 위험한 '식민특구'로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또한 경제특구는 헌법상 기본권인 근로권과 평등권 등을 침해하고 있어 ‘위헌특구’임이 명백하다 …” http://www.nodong.org
17) 이찬근, 「김대중 정부 3년: 평가와 대안(경제/금융)」, 민주노동당 당정책 보기, 20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