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산업노동조합의 현장은 지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발전산업노동조합의 38일간의
파업투쟁을 기억하는가?
윤 영 생/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해고노동자
2002년 2월 25일 파업의 깃발을 당당하게 내리꽂으며
시작되어졌던 공공3사의 파업이 자발적인, 자생적인 정치파업의
내용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에서, 정치적
총파업으로 상승, 전화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치적인
관료집단의 굴욕적인 노정합의서에 의해 차단되어진 4월 2일
이후, 발전산업노동조합의 그 파업투쟁은 고스란히 5,600여 발전
노동자의 생존권을 향해 비수가 되어 자본의 총체적인 공격으로
바뀌어 발전소 현장을 유린하고 있다.
발전 노동자들의 ‘원초적이고 거침없는’ 첫 번째 공격, 그
뒤를 잇는 회사와 정부의 총체적인 반격. 예정되어지고 당연한
순서이기도 한 공격과 반격, 이 반격을 격퇴할 수 있는 정치적,
조직적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발전 노동자의 생존권은 그
운명의 명암이 교차할 것이다.
투쟁을 통하여 조직을 확대하고 조직력의 강화로 투쟁력을
담보해 낼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근거는 투쟁과
협상을 분리하고, 원칙과 실리를 분리하는 기회주의적인
관료들에 의해서 무참하게 짓밟히고 짓이겨져 나가고 있는 현장,
그 모습들이 발전산업노동조합의 현재 모습이고 남한 사회의
노동계급의 현실의 모습은 아닐까?
그렇다면 파업기간 중에 경이로움과 찬사에 어린 눈길로
보여졌던 강고한 조직력, 노동계급의 전체적인 요구를 가지고
싸워 나갔던 발전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적인 행동은 어디로
갔는가? 누가 반백년 어용의 굴레 속에서 길들여지고,
사육되어졌던 공공부문의 노동자가 노동계급으로서의 자신의
현실 존재를 확인하고, 노동자계급으로의 진군을 위한 걸음을
떼어놓고자 하는데 과연 누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가?
파업기간 보여주었던 현장 조합원과 지도부들 간의 신뢰에
기초한 강고한 파업대오는 노동조합의 조직력, 투쟁력으로
축적되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타오르던 투쟁이 급격하게
꺼져버리면서 현장에서는 회사와 정부, 자본의 민주파
활동가들에 대한 징계, 구속, 해고를 통해 현장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기회주의자들을 내세워 노조말살을 획책하면서 한때
격렬한 투쟁에 동참했던 현장 내 노동자들은 또 다시 침묵과
패배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발전산업노동조합의 태생적인 한계인 어용지부 위원장들의
반동적인 행동은 파업기간 중에 지부장들의 파업파괴 행위로,
그리고 파업종료 후 회사복귀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수습대책위원회라는 조직적인 형식을 가지고 자본의 계획적인
노조무력화를 위한 세력화 시도에 선봉대 역할을 자청하여
수행하였고, 산업별 노동조합이 가지는 힘을 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을 통하여 노동자들을 내부적으로 분리,
고립화시키려는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조직적으로
‘산하조직 설립신고’를 통하여 산업별 노동조합이 가지는 힘을
파괴하고, 더 직접적으로는 산업별 노동조합을 탈퇴하기 위한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이 조합원의 자생적인 힘과 그나마 남아있던
활동가들에 의하여 거부당하자 이제는 직접적으로 현장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되어 활동가들의 안이한 대처, 이 틈을 비집고
정권과 자본은 노조 내 협조주의자들을 내세운 기업별 노조로의
전환 움직임 등 노조파괴공세를 강화하고, 현장에서의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하여 총체적이고, 구체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공격은 민주파 조합 간부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해고뿐만
아니라 일반 조합원들에 대한 급여 가압류, 파업을 통하여 이제
막 노동자의 계급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선진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 협박을, 지부별 노사화합선언을 전제로 하는 지부별
노사간담회를 통하여 노동조합의 체계를 부정하고 해고된 조합
간부들을 개별적으로 복직을 미끼로 노사화합선언에 동원하여
현장의 조합원들과 분리시키고, 노동조합의 원천적인 힘을
봉쇄하기 위하여 발전소 핵심 운전 인력의 간부화를 위한 5직급
4등급제의 막가파식 추진, 나아가 발전산업노동조합의 간부들을
자본의 입맛에 맞게끔 교체하기 위한 주도 면밀한 시도, 이러한
모든 전 방위적인 공격은 발전산업을 사유화하기 위한 일관된
자본의 탐욕적인 욕구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현상화되어 그 본질적인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
노동자의 적들에 대한 투쟁을 회피하고 본질적인 적들과의
일전을 약속하는 노조 관료, 일부 활동가들의 근거 없는 의지는
현장에서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래고, 이론이나 사상, 정치적
대안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에서 확인 할 수밖에 없는
자본가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는 지도력의 부재로 인하여
올바르게 수용되어 조직화되지 못하고, 투쟁의 동력으로
자리잡아야 할 부분이 노조말살책동의 일환인 노조무용론,
노사협조주의에 쉽게 왜곡되어 노출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현장의 모습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동조합의 간부, 활동가들이 ‘흐물흐물한
평화주의’를 표방하면 할수록 그만큼 기회주의자들,
노사화합주의자들, 어용세력들은 기고만장해질 수밖에 없고,
사태를 관망하며 우물쭈물하는 하는 사이에 수동성, 투쟁의지의
결여는 계급적으로 각성해 들어가고 있는 현장의 선진
조합원들의 신뢰를 가장 크게 파괴하며, 이는 곧 노동조합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가장 큰 핵심적인 요인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이다.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지고, 왜곡되어진
조합원의 정서를 이야기하면서 조합의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의 근거로서 제출하고 있는 조합 간부들의 결론은 무엇일
수밖에 없는가 ?
현실은 언제나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에게 냉엄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에서 고개를 돌릴 때 자신이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기회주의적인 관료들의 품으로 도망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현상적인 적들과 끊임없이 투쟁을 통하여 본질적인 적들에 대한
파악을 체화시켜나갈 수 있는 현장에서 미래를 준비해 나갈 때
노동자의 미래는 보랏빛 환상이 아니라 현실의 힘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 축으로는 일상적인 사업장 투쟁을 통해
현장의 조직력을 장악하여 현장투쟁동력을 축적해야 한다.
투쟁의 동력은 상층노조간부의 교섭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 사업장에서의 현장 조직 및 사업장 투쟁을 통해
탄생되며, 그 힘이 상층노조간부의 올바른 지도력과 결합될 때
강화된다.
하지만 개별 사업장만의 고립 분산적 투쟁으로는 회사 및 정부,
자본의 분할 통치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고립 분산적 투쟁을
극복하고 미래의 전망을 가지고 지도력을 확대 할 수 있는
조직적인 틀과 활동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냉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이 땅의 노동자로 우뚝 설 수 있는
발전산업노동자로서의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 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