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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장악하는 여수지역 노동자들

현장에서 미래를  제80호
김승환

현장을 장악하는 여수지역 노동자들
여수지역건설노동조합 총파업투쟁의 의미와 성과


김 승 환
경기서부지역건설노조 오산화성지부추진위원회 현장사업팀장





1. 서론
총파업 55일이라는 긴 투쟁을 마치면서 아직도 현장복귀투쟁이 진행중에 있지만 간단히 파업투쟁에 대하여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역건설노동조합이라는 조건과 비정규직이라는 조건 그리고 13년만에 진행된 준비되지 못한 파업이라는 조건 등이 파업투쟁에 어떻게 작용하였으며, 이것을 파업지도부는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작성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노조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현장을 조직하고 현장의 힘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있다.
특히 이번 여수지역 건설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지역 건설노동조합운동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건설노동자 흔히 노가다라 불리는 노동자들이 약 100년간 이어져온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불안정한 고용구조인 다단계하도급 구조는 현장의 건설노동자를 개별화, 파편화, 분절화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일하는 노예로서 부려먹기 쉬운 구조로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건설자본이 자신의 이윤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는 구조에서 발생한 파업투쟁이기 때문에 더욱 연구해볼 가치와 이것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낼 필요가 있다는 절박한 의미가 있다.
약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건설노동자들의 조직화사업은 약 10년 전부터 시작하였으나 건설노동자들의 이동성, 다단계하도급구조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점, 건설자본의 현장장악력 등에 밀려 실질적으로 조직화사업이 더디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런 실정에서 전국의 지역노조는 현장조직사업을 통해서 현장진입에 성공하였지만 현장 내에서 조직화와 투쟁사업이 아직도 미진한 상태에서 여수지역건설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현장사업에 대한 전망과 지역노조사업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매우 소중한 투쟁이었다.
이것에 대하여 섬세하게 살펴봄으로서 이후 불안정노동자들의 조직화사업과 투쟁사업을 진행하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아직도 척박한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근로기준법에도 못 미치는 상태에 있지만 현장을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따라 여수지역건설노동자들이 만들어낸 현장장악의 성과는 모든 건설노동자들이 함께 공유하고 지역건설노동조합의 조직사업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2. 여수건설노동자들의 상태와 현황 그리고 투쟁
2002년 7월 17일 여수지역 건설노동조합은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4월부터 지역 내 여천 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전문건설업체들에게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공문발송부터 파업투쟁은 예고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건설업체들은 노조의 요청에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이에 노조는 쟁의행위를 결의하였다. 쟁의행위를 결의 할 때까지 8차에 걸친 교섭공문을 보냈으나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던 업체들은 노조가 파업에 돌입해서야 교섭에 응하였다. 쟁의돌입이전에 노동부 중재가 있었지만 업체들은 노동부마저 무시하였다.
여기에서 여천산단과 여수지역건설노동조합의 현황과 관계에 대하여 설명이 필요하다. 여천산단은 석유화학공업단지로서 대규모 플랜트시설을 갖추고 있다. 약 15개사가 원청(발주처)을 형성하고 있으며 건설관련업종은 용접, 배관, 제관, 비계, 탱크, 기계, 보온, 전기, 토목 등의 업체가 상주하고 있다. 15개 원청사 아래 하청사가 약 80여 개 있으면서 전문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모두 위의 업종에 포함되어 있다. 여천산단은 석유, 화학,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원청노동자가 있는데 이들은 주로 관리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생산직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플랜트 시설을 제조하고, 보수하는 비정규직 건설노동자가 있다. 이렇게 3종류의 노동자가 상존하고 있으면서 여천산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석유화학공업은 플랜트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현장이 플랜트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실상 플랜트를 시공, 보수하는 건설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으면 여천산단은 사실상 마비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가스나 석유 등이 보관되기 때문에 작업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장은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기능공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을 보조하는 조공이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숙련도에 대하여 원청은 시험을 실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능공을 관리, 통제하고 있다.
석유화학공업은 유럽에서는 공해산업으로 불리우면서 유치를 꺼리고 있는 실정을 보더라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공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제조업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다. 이런 여건에서 약 20~30년간 여천산단 내에서 일해온 건설노동자들은 원청사 직원들의 무시와 괄시를 받아 왔던 것이다. 일례로 원청직원들은 건설노동자가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하게 막아왔을 정도로 심한 무시와 모욕을 당하며 일해왔다.
그리고 건설업의 특성으로 원청에서 하청으로 도급이 되고 다시 다른 하청으로 도급이 되면서 항상적으로 중간착취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하청업자들은 현장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 고용보험과 세금 등의 명목으로 일정금액을 공제한 후 원청에서 임금을 지급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노동부에 주, 월차 수당지급관련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조사한 결과 실제로 세금과 보험료를 낸 사업주는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여천산단의 구조 속에서 건설노동자들은 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단체협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주요한 내용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것을 골자로 한다. 주차, 월차, 연차수당을 지급할 것과 하루 8시간 노동과 주 44시간 노동을 요구한 것이다. 가족이 상을 당하면 하루라도 유급휴가를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조합원의 조합비 원천징수를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단체협약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결국 80여 개 사측이 대표단을 구성하고 단체협상을 진행하였다. 8월 7일에 단체협상은 마무리되었다. 잠정합의안이 나오고 대표업체는 모두 단체협상안에 합의를 하였다. 단협에 합의하기 얼마 전에 기존에 대표단을 구성한 업체는 주로 현장에 조합원이 있는 곳과 기계배관업체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당시에 기계배관업에 종사하는 조합원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체협약이 체결되는 시점에서 전기작업을 하는 조합원이 가입하면서 계전업체를 대상으로 한 단체협약이 진행되었다. 결국 기계배관조합원들은 전기조합원들의 단체협약도 함께 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단체협약은 체결되었지만 임금협상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으로 인하여 협상을 현장에 복귀하면서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파업을 지속하면서 협상을 할 것인가를 놓고 찬반투표가 진행되었다.
투표결과 파업을 지속하면서 협상을 진행하자는 견해가 53%가 나왔기 때문에 파업은 지속된다. 하지만 사측의 협상지연으로 인하여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기간이 지속되면 사측에 의도대로 조합이 사실상 무력화될 소지가 발생하면서 지도부는 현장복귀결정을 내리게 된다.
현장에 복귀하기 위해서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경찰과 대치하면서 연행자가 발생하였고, 이 가운데 지도부가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현장복귀투쟁이 구속자와 연행자 석방투쟁으로 진행되었고 임금협상은 사측의 지연전술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계전업체와의 단협도 사측의 지연전술로 진행이 더디게 되었다. 사측이 지속적인 지연전술로 파업대오의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내부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었다. 조합원가운데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많아지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돌면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지도부는 파업대오를 추스르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지도부 단식, 삭발이었다. 단식투쟁과 삭발투쟁으로 흐트러진 대오를 다시 정비하였고, 파업으로 인하여 지역경제가 흔들린다는 등의 악성루머가 여수지역을 돌고 있는 점에 대하여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오전에 파업집회를 진행하였고, 오후에는 각 지역별로 홍보물을 나누어주면서 시민들에게 파업의 정당성과 사측의 파업파괴술책에 대하여 집중 홍보하였다.
대시민 선전전이 일정정도의 효과를 거두는 시점에서 태풍이 강타하여 지역에 대민지원을 하였다. 파업조합원들이 태풍피해지역에 대민지원을 하면서 여론을 조직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런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와 교섭에 임하였으나 사측의 교묘한 지연전술이 지속되었다. 이에 지도부는 노, 사, 정 간담회를 통하여 현장에 복귀하려 하였다. 하지만 노, 사, 정 간담회에서 사측은 합의문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간담회가 무산되었다.
파업 50일을 맞이하면서 총파업 문화제를 통하여 내부동력을 추스르는 작업을 하였고, 9월 8일 대의원대회를 통하여 평화적 현장복귀에 대하여 결의하고 9월 9일 잠정합의안에 대하여 찬반투표를 가지게 되었다. 찬반투표 결과는 92%찬성이라는 압도적 결과가 나왔고 현장복귀만 남게 되었다.
사측은 임금협상에서 처음에 최저임금으로 5만 6천원을 제시하였다가 5만 8천원 그리고 6만원을 제시한 이후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였다. 그리고 현장에 복귀하는 날은 7만원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사측은 여전히 임금문제를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면서 협상에 기만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이 파업을 푸는 시점까지의 경과이다.


3. 건설노동자의 새로운 역사의 출발
파업은 끝났지만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지 재 파업을 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에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파업투쟁을 통하여 얻은 성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성과를 다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성과를 남기고 있다. 지금 현재는 현장진입투쟁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현장진입투쟁을 통하여 만들어진 성과가 더욱 많다.
첫째로, 지역건설노동조합에서 현장을 대상으로 단체협약을 쟁취하였다는 점이다. 이미 각 지역에서는 단체협약투쟁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번에 여수에서 진행한 단체협약은 조합원이 있는 현장에 모두 적용되는 것으로 단체협약을 쟁취하였다는 것이다. 단체협약쟁취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단체협약의 내용인데, 지금까지 받지 못한 주차, 월차수당을 공식적으로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합비를 원천 징수 할 수 있도록 단협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모든 내용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근로기준법보다 업그레이드된 내용은 경조사 유급휴가 1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근로기준법보다 나은 내용은 경조사 유급휴가 하루를 따낸 것이 전부다.
두 번째로, 55일간의 파업투쟁이 가능하다는 실례를 만들었다. 건설현장의 특성상 이동율이 높고, 단기간 작업하는 특성으로 인하여 조직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55일간 파업대오가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되었다는 점이 매우 큰 성과이다. 이 점은 다른 지역에서 매우 유의해서 보아야 할 지점이다. 파업대오가 유지되는 과정은 지도부의 매우 많은 고심이 있었다는 것이고 조합원의 의식고양과정이 함께 맞물리면서 진행되었다.
세 번째, 조합원들의 의식이 고양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파업이 노동자에게 학교라는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단지 파업을 경험하면서 얻은 의식고양이 아니라 현장복귀투쟁을 진행하면서 현장에서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과 단결력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업대오로 집회에 결합 할 때는 지도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조합원이 투쟁의 소극적 주체였지만 실천투쟁을 통해서 적극적 주체로 형성되었고, 현장복귀 후 업체들과 임금협상을 하면서 내부의 자연발생적 토론이 진행되면서 스스로 현장의 주인으로 서고 있었다. 사측과 일대 일로 만나더라도 자신의 요구를 정식화하지는 못할지라도 조합원으로서의 공동체적 사고에 기반한 실천을 진행하고 있다.
네 번째, 파업투쟁이 진행되면서 조합원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파업돌입시점에 파업찬반투표에 나온 조합원은 600명이었는데 하루에 100명씩 가입하였다. 조합원은 약 3천명까지 증가하였다. 여수지역 전체 건설노동자가 약 5천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많은 조직화에 성공하였다는 점이다. 더구나 매일 집회참가자수도 평균 1500명을 유지하면서 지도부의 통제를 일사불란하게 따랐다는 것이다.
다섯째, 지역 내 연대투쟁을 선봉에서 몸으로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마침 원청사 노조에서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업장이 있었는데 연대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지역의 사회, 시민단체들이 함께 지역 공대위를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지역시민들의 여론도 홍보, 선전을 통하여 조직하는데 성공하였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4. 무엇으로 현장을 장악할 것인가?
먼저 우리가 상황에 대한 판단을 추적해보아야 할 것은 투쟁국면이 전환되는 시기이다. 그 가운데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이 나왔으나 전기분회가 협상을 진행하는 부분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조합은 어떤 대처를 하였는가에 대하여 분석의 의미가 있다.
조합원들은 잠정합의안이 나왔을 때 분위기가 충천하였던 상황에서 전기분회 단협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전기분회가 결성되어 조합에 가입된 만큼 전기분회 단협도 중요하다는 노동자적 계급성을 보였다. 더구나 단협은 마무리되었으나 임금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았지만 임금은 IMF 이후 가장 많이 인상되어 있었기 때문에 임금협상은 현장에 복귀하면서 해소될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전기분회의 단협투쟁에 함께 하겠다는 결의는 매우 의미있는 결정이었다.
두 번째로 전기업체의 단체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의도적인 지연전술을 사측이 구사하는 것을 간파하고 현장에 복귀하는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사측이 협상을 지연시키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지역경제가 파탄나고 있는 원인이 노조의 파업 때문이라고 악선동을 하면서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조합원들은 이런 사측의 의도에 현장으로 복귀하는 투쟁으로 전술을 바꾼 것이다.
전기업체와 배관업체들은 한통속이 되어 강력해진 노동조합의 단결력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 현장복귀를 가로막는 전술로 대응하였으나 이러한 사측의 시도는 결국 실패하였다. 현실적으로 현장복귀를 가로막는 것은 성공하였으나 단결력을 무너뜨리는데는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조합은 사측의 요구대로 파업을 공식적으로 풀고 현장에 복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조합원들이 들어오는 것을 콘테이너까지 동원하면서 정문을 막았다. 이로 인하여 조합원들의 단결력은 더욱 배가되었고 각 현장정문에서 출근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시민들의 여론은 모두 노동조합의 투쟁에 박수를 보내는 형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세 번째로, 현장복귀를 시도하면서 각 현장에서 하청업체들과 임금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터무니없는 임금을 제시하는 현장에 대해서는 과감한 방식으로 대응하였고, 사측이 회유하면서 성과급을 운운하면서 내부의 단결을 저해하는 안을 제시하는 것에 대하여 조합원 스스로가 이것을 폭로하면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현상들은 사측의 노조 무력화기도에 적극적인 대응이었고, 노조 집행부의 지침을 그대로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자신들의 위상과 입지를 세워나가게 되었고 비조합원과 파업 미참여 조합원들에게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5. 마치며
여수지역 건설노동조합의 투쟁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현장복귀를 시도하면서 지속적인 출근투쟁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조합원들의 의지와 열기는 현장복귀가 이루어진 곳의 사례를 볼 때 이미 현장을 장악한 당당한 노동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 사측의 노조 파괴책동은 계속되고 있지만 현장의 주체가 바로 자신이고 노동자라는 사실을 이미 투쟁에 참여한 모든 조합원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건설현장에도 파업투쟁이 가능하다는 점과 파업투쟁으로 현장은 바뀌었다는 것이다. 투쟁의 전과정에 참여한 여수노조 지도부가 정리하였다면 더욱 잘 정리하였을 것을 잠깐 참여한 필자가 마무리되지 않은 투쟁을 좀더 널리 알리고 싶은 욕구가 이 글을 쓴 원동력이다. 다양한 전술의 등장과 조합원들의 투쟁의 의지는 지역노동조합 운동의 기폭제가 되길 기원한다. 한/노/정/연

2002-10-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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