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패권을 위한 부시의 전쟁
이 정 구
민주노동당 강남갑지구당 부위원장
월간 ꡔ다함께ꡕ 기자
부시와 그 주변의 전쟁광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
공격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전쟁 발발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전쟁계획도 더욱 구체화되어 대규모 공습 뒤에 지상군 파견까지
검토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와의 연관이나
탄저균 소동의 배후 세력이 이라크라는 것을 밝히려 했지만 이런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그러자 부통령 딕 체니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 의심의
여지가 없다. 후세인이 우리의 친구들, 우리의 동맹국들 그리고
우리에게 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축적하고 있다는 점도 불을
보듯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생길 위험이 그렇지 않을 때의 위험보다 더 크다”고
덧붙였다.
부시는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량살상무기의 보유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미국 무기통제담당차관 존 볼튼은 미국이
무기사찰에 관심이 없고 원하는 것은 “바그다드의 정권
교체”라고 못박았다. 그래서 이라크가 유엔 무기사찰단을 다시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미국은 이 결정이 사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유엔 무기사찰단장 스콧
리터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미 해병대 중위 출신으로 미 국방부에서 일했던
인물이다. 그는 어렸을 때 “엄마를 위해 빨갱이를 때려잡자”는
문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리터는 미국 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에서 뒷걸음질치고 있다면서 사찰단을 사임했을 정도로
백악관의 전쟁광들 사이에서조차 도가 지나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스콧 리터의 연설문은 ꡔ다함께ꡕ 16호(2002년
9월호)에 실려 있다.
프랑스의 대통령 시라크와 독일 총리 슈뢰더가 부시와 그의 푸들
강아지 토니 블레어의 이라크 전쟁 계획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자
미국은 “이라크가 1991년의 유엔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으로도
군사행동을 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계획이 유엔의 승인을 얻는 데는 유엔
상임이사국에 대한 미국의 협박과 회유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설사 유엔의 승인을 얻는다 하더라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성격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1991년 유엔의
이름으로 행한 제2차 걸프전과 뒤이어 13년째 지속되고 있는
유엔의 경제제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석유를 위한 전쟁
1991년 1~2월 제2차 걸프전은 민간인을 포함해 20만명의
이라크인들을 죽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 아버지 조지 부시가
석유에 대한 지배력을 지키고 일본․독일 등 다른
서방열강들에 미국의 맹주권을 확인시키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었다.
아버지 부시는 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웠지만 미국이 수호할
민주주의가 쿠웨이트에는 없었다. 쿠웨이트 알 사바 왕가의
전제는 끔찍했고, 미국의 걸프지역 최대 동맹자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의 전제 역시 지독했다.
제2차 걸프전은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성격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제2차 걸프전은
동유럽 혁명이 열어 놓은 좀더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제국주의간
경쟁의 시기를 배경으로 할 때에만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
부시와 그 측근들이 추동한 걸프만에서의 전쟁 드라이브는
미국의 세계적인 정치적․군사적 주도권을 재천명하는
수단이었다. 소련이 세계 무대에서 후퇴하여 온갖 국내 위기로
내부 균열을 겪고 있는 상황을 틈타, 미국은 걸프만 위기를
세계경제의 안정이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한다는
점을 세계의 지배계급들에게 입증해 보이는 데 이용하려
했다.”
둘째 이유는 석유의 공급과 가격에 대한 지배 때문이었다.
석유는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전략적인 상품이다. 서방 제국주의
자본가들에게는 사병들과 민간인들이 걸프전에서 흘린 피 한
방울보다 석유 한 방울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중동의 유전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석유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추출비용은 가장 싸다. 중동산 원유 1배럴당
생산비는 미국산 원유 1배럴당 생산비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이윤율은 베네수엘라산 석유 이윤율의 3배,
미국산 석유 이윤율의 무려 6배다. 미국은 자신의 값싼
석유공급원을 보호하고 석유무역을 지배하는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이라크의 석유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세계 석유공급의 11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미 1945년에
미 국무부는 석유가 “역사적으로 다른 어떤 상품보다도 미국의
대외관계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1999년 ꡔ뉴욕 타임스ꡕ의 토마스 프리드먼은 좀더
현대적인 언어로 이를 나타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맥도널드는
맥도널 더글러스 없이는 번성할 수 없다 … 그리고 실리콘
밸리의 기술이 번영할 수 있도록 세계를 안정시켜 주는 보이지
않는 주먹을 미국 육군, 공군, 해군 그리고 해병대라
부른다.”
이라크 침공 자체도 매우 유혈낭자한 결과를 낳았지만 1990년
8월 6일부터 시작된 유엔의 이라크 민중에 대한 은밀한 전쟁은
이라크인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다.
전직 유엔 이라크 인도주의 조정관 데니스 핼러데이는 “우리는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 중이다. 경제제재는 그만큼 간단하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불법이며 부도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지배자들은 유엔의 경제제재가 어린이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라크를 방문한 기자들은 누구나
병원에 가장 기본적인 의약품도 없으며, 마취제도 없고,
의료장비에 필요한 예비부품들도 없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어린이, 노약자, 임산부들이 주된 희생자가 됐다.
유엔 경제제재위원회가 금지한 물품에는 유아식, 쌀, 셔츠,
아동복, 위생타월, 담요도 포함돼 있다. 유엔 아동기금은 유엔의
경제제재로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굶주림과 예방가능한
질병으로 죽었다고 보도했다. 클린턴 집권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996년 TV에 출연하여 경제제재 결과로
50만명의 어린이가 죽은 것에 대해 “우리는 그 희생이 치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제재 외에도 미국과 영국 공군은 이라크 남부와 북부 지역에
비행금지선을 그어 놓고 일상적으로 폭격을 가하고 있다.
ꡔ워싱턴 포스트ꡕ는 1년에 10억 달러가 들어가는
이런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일상사”가 됐다고 지적했다.
ꡔ월스트리트 저널ꡕ은 이틀에 한번 꼴로 이루어진
공중폭격으로 “군사적 목표물이란 게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미국의 한 관리는 “우리는 마지막 남은
헛간을 향해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런 유엔이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유엔은 지금까지 미국이 자행한 사악한 전쟁에 대한 도덕적
외피만을 제공했다. 유엔안보리의 면모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러시아의 푸틴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본받아 체첸
민족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 영국은 아직도
북아일랜드를 지배하고 있고, 장쩌민은 천안문 학살의 주범이며,
프랑스는 알제리 유린에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런 세계적
약탈자와 테러리스트들이 우글거리는 유엔이 부시의 이라크
공격을 저지시킬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사담 후세인, 바그다드의 악마인가?
지금은 악의 축 가운데 하나로 묘사되고 있는 사담 후세인은
오사마 빈 라덴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훈련시키고 후원해 준
인물이었다. 이라크에서 후세인의 등장과 권력 장악은 미국의
중동정책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획득했지만 아랍
민족주의 운동의 도전을 항상 받아 왔다.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면서 시작된 중동 위기는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졌다. 중동에서 반제운동이 일었고, 그 여파로
1958년 이라크에서는 민족주의자 압둘 카람 카심 준장이 친서방
왕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했다. 카심 정권은 토지개혁을
공약하는 한편, 서방열강들과 협상을 벌여 석유 이윤을 더 많이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서방 제국주의 세력들은 이라크에서 바트당, 즉
아랍사회주의부흥당을 앞세워 카심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다.
사담 후세인이 처음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1959년 카심
암살사건에 가담했다 실패하고 외국으로 도피했을 때였다.
1963년 2월 바트당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카심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았다. 집권한 바트당은 이라크공산당원과 노동조합
투사 수천명을 살해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쿠웨이트 지부는 바트당의 집권과 반대파
학살을 은밀하게 지원했다. 당시 CIA의 중동 책임자 제임스
크리치필드는 “우리는 군사 쿠데타를 커다란 승리로 여긴다”고
말했다.
1979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친미 국왕 팔레비가 축출되고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호메이니가 권력을 장악했다. 이란
혁명은 중동의 석유 지배에 대한 미국의 능력과 패권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슬람주의 혁명이 이란 국경선을 넘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된다면 미국으로서는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미국은 지역 패권을 추구하던 이라크의
후세인을 부추겨 이란과 전쟁을 벌이게 했다.
1980년 9월 이란과 이라크 전쟁(제1차 걸프전)이 벌어지자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다. 1982년 미국은 이라크를 “테러
지원국”에서 빼주었다. 1983년 전쟁이 고조되고 있을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중동에 특사를 파견하여 후세인과
만나게 했는데, 그 때 특사가 바로 지금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스펠드다. 이 회담으로 미국과 이라크의 외교관계가 복원됐다.
나중에 럼스펠드는 “우리 둘 다 중동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라크와 관계를 맺는 것이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이라크에게 온갖 무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독가스 제조기술까지 전수해 주었다. 또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은 탄저균을 포함해 17건의 세균배양기술을
이라크에게 수출했다. 후세인이 미국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과
독가스로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들을 학살했지만 미국은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1990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자신의 패권을 위해
희생양을 찾던 미국은 후세인을 우방에서 졸지에 악마로
둔갑시켰다. 제2차 걸프전에서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었음에도 후세인 없는 중동지역이 더 큰 불안정에 빠질 것을
우려해 권좌에서 밀어내지는 않았다.
미국의 중동정책이 민주주의나 자유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 뒤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도 입증됐다.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가 후세인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미국은
팔장만 낀 채 도와주지 않았다. 북부의 쿠르드족이 분리독립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미국의 태도는 시아파의 반란 때와
마찬가지였다.
북부의 쿠르드족이 분리독립을 하게 된다면 이라크 북부와
맞대고 있는 터키가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 터키 지배자들은
국내에 있는 쿠르드족을 체계적으로 탄압하고 있었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이자 이라크 비행금지구역을 정찰하는 전투기들이
발진할 수 있는 공군기지를 미국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미국은
그런 터키가 쿠르드족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길 바라지 않았다.
당시 부시의 국가안보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솔직히
나는 그런 반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구상한 전후
[이라크] 정부는 군사 정부였다”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은
레이건 정부관리의 말처럼 “개자식이었다. 그러나 그
때[1980년대]는 우리가 키우는 개자식이었다.”
미국을 패퇴시킬 수 있을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공격하기 쉬운 아프가니스탄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에 이라크를 표적으로 삼았다. 12년에 걸친
경제제재와 계속된 폭격으로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군사력
차이는 제2차 걸프전 때보다 더 벌어졌다. 더욱이 미국의
군사력은 다른 경쟁 제국주의 국가와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미국의 군사력은 서방 전체의 군사력 중 36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다. 그래서 부시의 세계 패권 장악 노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과연 부시의 광기어린 전쟁놀음을 중단시킬 수
있는지에 의문을 느낀다.
세 가지 점에서 부시의 전쟁 노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첫째는 강대국 사이의 결속이 이전만 같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1991년 제2차 걸프전에서 유엔의 외피를 쓰고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1999년 발칸 전쟁 때는 나토의 깃발 아래 군사
행동을 했다. 지난 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에는 동맹국들의
지원과 결속력이 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근 9개월 동안 이라크 전쟁을 준비했지만 자기 계급으로부터도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는 이라크 공격이 이 세계를 더
큰 불안정과 위기로 빠뜨릴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부시가
추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이 성과는 없이 오히려 세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고, 아리엘 샤론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에 항의하는
인티파다(봉기)가 계속되고 있다. 남미에서는 콜롬비아 군부를
지원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플랜 콜롬비아가
지역분쟁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이라크를 공격하든 아니면 영국과
이스라엘 등 몇몇 동맹국들만으로 공격하든 이라크 전쟁은
강대국들의 갈등과 반목이 더 커질 것이다. 이는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강대국 사이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중동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전통적인 친미 국가들조차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유엔의 이름으로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을 지지했다). 이것은 부시가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둘째 문제와 연관이 있다.
중동에서 반미 감정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고조되고 있고,
카이로, 바그다드, 예멘 등 중동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반미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전후 미국의 중동 억압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민중의 저항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노골적으로 지지할 수 없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중동은 격변의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셋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반전운동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선진국과 제3세계 모두에서 광범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제국주의는 알 카에다의 군사적 공격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시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중적인
반전운동이다.
1999년 미국 심장부인 시애틀에서 벌어진 반자본주의 운동은
날이 갈수록 세를 더해 왔다. 그리고 이윤을 위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개인들과 집단들을 반자본주의 기치
아래 모이게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벌어지자 반자본주의
운동은 곧장 반전운동으로 전환됐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세계의 주요 도시들에서 자본과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자주 목격했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반전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1991년 제2차 걸프전과 1999년 발칸
전쟁과 비교해 볼 때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앞의 두
전쟁에서 유엔의 이름과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명분 때문에
제국주의 전쟁에 지지를 보내거나 침묵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미국의 사악한 전쟁에 반대하고 나섰다.
1960년대 말 미국은 지금의 이라크보다 더 후진적이었던
베트남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1979년 이란에서도 쫓겨났다. 이런
사례는 미국이 무너뜨리기 힘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준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반전운동이 부시의
전쟁 노력을 중단시킬 유일한 힘이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지지를 나타냈다. 더욱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해 오자 한국 국방부는 먼저 미국에게
군사적 지원을 할 의향을 드러냈다. 김대중 정부가 지금까지
보인 친미적 태도로 봐서, 또 한국 자본주의의 석유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로 봐서 김대중 정부는 부시의 이라크 공격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국내 산업체가 원료 및
동력으로 사용하는 수입 석유의 75퍼센트가 중동 국가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지난 1991년 걸프전 때 대통령이던 노태우는 3억 1천만 달러를
지원하고 군대(군 의료진)를 파병하여 미국의 전쟁을 지지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의 김대중은 노태우 정부가 군 의료진
선발대를 현지조사단으로 보내는 것이 명백한 헌법
위반이었음에도 정부에 협조하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이번에도 미국은 한국 정부에게 많은 전비 부담금과 군대 파병을
요청할 것이고 김대중 정부는 이 요청에 순순히 응할 것이다.
우리는 사태가 이렇게 되지 않도록 거대한 반전운동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석유를 위한 전쟁, 이윤을 위한 전쟁에 쏟아붓는
돈을 사회복지재원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자. 부시의 더러운
전쟁에 총알받이가 되지 않도록 파병에 반대하자. 국제적으로나
국내에서 많은 반전 시위들이 계획돼 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반전 집회에 참여하도록 설득하자.
독일 총리 슈뢰더는 1999년 발칸 전쟁에 적극 참전했지만
이번에는 독일 내 반전 분위기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이견을 보이는 서방열강
지도자들의 말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대중적
반전운동이 진정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해 군사적 승리를 거둔다면 다음 번 표적은 악의 축 가운데
하나인 북한이 될 수도 있다. 석유와 패권을 위한 부시의 전쟁
노력은 시작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