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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쌍둥이의 위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81호
Fred Magd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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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쌍둥이 위기*

경제위기와 환경위기1)


Fred Magdoff





역사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인간의 행위에 의해 초래된 환경의 악화만이 아니라 경제적 침체와 붕괴의 예를 수없이 보여 주었다. 하지만 투자와 부의 축적을 향한 끊임없는 충동이라는 자본주의의 중심적 특성이야말로 끝없는 경제 및 환경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경제위기 초래 경향

물론 산업순환상의 전형적인 부침이 있어서, 경기후퇴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불안하고 불안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또한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파괴한다. 나아가, 1990년대 후반에 그랬던 것처럼 성장이 영원할 것처럼 보일 때에는 때때로 거품처럼 부푼 도취감도 존재한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 경험한 것처럼, 때로는 장기간의 침체 역시 존재한다. 최근에 이 지면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가들이 성장의 일반적인 둔화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그리하여 이윤창출의 기회를 줄임에 따라서 지난 25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해 왔다.1) 전통적인 재화들을 생산하는 산업들의 시장이 효율적으로 생산된 상품들로 포화상태에 다다름에 따라 소매 및 (금융을 포함한) 서비스 경제 부문으로 투자가 이동해 왔다. 1980년 이전에도 미국 경제에서 그 상대적 중요성이 증대하고는 있었지만, 서비스 부문이 특히 급속히 증대한 것은 그 이후 자본가들이―패스트푸드 판매점이나 컴퓨터를 이용한 영업 및 의료기록 처리 등등―이윤이 있을 만한 새로운 곳들을 찾으면서부터였다. 어떤 회사들은 이윤을 거의 혹은 전혀 생산하지 못하는 경향 역시 증대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진한 로비활동을 통해서 사유화된 전력시장과 같은―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그 ‘제품’을 매매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려고 시도해 왔다. 엔론(Enron)2)과 같이 투기적으로(financially) 운영되는 많은 회사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사업과 관련하여 공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인 “자산이 가볍다”(asset-light)는 것을 자랑하기까지 한다. 목표는 ―투기 및 주식거래를 통해― 무(無)에서 이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생산적인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속에서의 자본축적의 충동이 끝없는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 하고, (도박의 다른 표현일 뿐인) 투기를 하게 하고, 공공연한 사기―엔론, 제록스(Xerox), 월드컴(WorldCom), 그리고 글로벌코로씽(Global Crossing)을 지적하는 것3)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를 치게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생태위기

경제위기로의 경향이 자본주의에 고유한 성격이지만, 그 역시 무자비한 이윤추구에 기인하는, 두번째로 근본적인 현대적 위기 형태가 있다. 즉,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생태위기가 그것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리고 유기체들과 물이나 흙, 공기라고 하는 물질적 측면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호작용과 교환이 온전할 때 환경은 가장 온전한 것이다. (물이나 흙, 대기 속의 물질들 사이에서도 물론 교환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로 대부분의 자연적 체계는 효율적으로, 한 유기체에서 다른 유기체로(후자는 전자를 영양물로 이용한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유기체로라는 식으로, 영양소와 물을 순환시키고 있고, 태양광을 이용하여 녹색식물에서 생성된 에너지가 잔잔히 흐르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연적 체계는 생명의 존속을 돕는 고품질의 공기와 물을 생산한다. 결론적으로, 거대한 양의 크고 작은 유기체들이 모든 생태적 틈새들(일부는 이들 유기체들이 창출한다)을 메우고 있고, 낭비되는 자원은 거의 없다.

하지만, 19세기 중엽에 맑스는 그가 “물질대사의 균열(metabolic rift)”이라고 부른,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한, 영양소의 자연적 순환의 파괴를 지적했다. 초기 산업화에 의해 창출되어 증대해 가던 인구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음식물들이 도시로 공급됨에 따라서 토양은 영양소가 고갈되어 갔고, 음식 배설물의 찌꺼기들―주로 인간의 오물과 폐기물―은 강물들을 오염시켰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보았을 때 자본주의와 자연과의 모든 상호작용을 특징짓는 바의 이러한 “물질대사의 균열”에서 기인하는 생태문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훨씬 더 심각하다.4)

모든 것에 우선하는 목표로서의 이윤을 추구함에 따라서 환경에 대한 역효과는 필연적이다. 물과 공기 그리고 토양의 오염은 이윤 창출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조직된 생산체제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교환의 논리 하에서는 경영자로 하여금 환경에 최소한의 충격을 주는 방법을 찾도록 고무하거나 강제하는 내재적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제품의 가공 생산에 유용한 것으로 판명된 새로운 화학물질들은, 그것들이 인간이나 기타 생물들에게 해를 끼치는지 여부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도 없이 일상적으로 생산에 도입된다. 공장식 농장(factory farms)의 과밀하고 비위생적인 조건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의 먹이에 첨가되는 항생물질의 오용은 또 다른 예이다. 이 오용이 병원체의 항생물질 내성을 증대시켰다. 나아가서, 미국이나 다른 곳에서 자동차 중심의 사회가 발전시킨 생활방식도 환경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때로 방대한 교외지역이 “거대도시(megatropolis)”로 병합되면서 부분적으로 주거지역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여러 교외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한 통근에 의한 연료의 낭비는 교외화와 관련한 얘기의 일부일 뿐이다. 단지 승용차로만 갈 수 있는 대형 쇼핑센터에서의 장보기나 어린이들을 학교나 놀이터로 데려가는 일들이 모두 상당히 원거리의 교통편을 요구한다. 이러한 것들이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나 금속을 고갈시키는가 하면, 유해가스의 배출이 환경파괴를 초래하고 있다.



이들 위기는 자본주의의 붕괴로 끝날 것인가?

좌파 중에는, 경제위기나 환경위기, 혹은 그 양자가 너무나도 현저하고 심각해져서 (자본주의) 체제가 저절로 붕괴될 것이라고 믿는 점쟁이들이 있다. 장래의 발전을 예언한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거듭거듭 발생하는 위기를 맞아 끈질긴 재생력이 있음을 증명해 왔다. 체제에 심각한 도전이 발생하여 통상적인 통제수단이 작동하지 않을 때 파시즘은 언제고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제1세계”의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대부분의 정보원(情報源)이란 것이 자본주의를 위한 선전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중심부의 나라들에서는 파시즘이 거의 필요치 않았다. 노동자들은 너무나 자주 체제 속에서의 자신들의 위치와 거대한 부의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침체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계급투쟁에는 부침이 있어서, 미국과 기타 부국들의 노동자계급은 때때로 임금 및 수당의 인상이나 사회보장, 실업보험 등등과 같은 의미 있는 승리를 쟁취하기도 하고 다시 그 성과를 잠식당하기도 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마지막 25년은 자본이―바람직하지 못한 저속 성장과 낮은 이윤의 문제에 대응하여―수행한 계급전쟁이 특징적인데, 이를 통해서 자본은 한편에서 노동자를 위한 임금이나 수당의 새로운 증대를 저지하면서 대체로 성공적으로 많은 노동자와 중산층의 소득을 역전시켜 왔다. 저축대부조합들(the savings and loan)의 파산, 1997~1998년의 아시아 위기, 거의 항구적인 제3세계 외채위기 등등―주요한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자본의 대표자들은 고통이 대중들에게 확산되는 반면에 자본은 최소한의 고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독물과 기타 유해 화학물질에 의한 토지와 공기, 물의 오염, 거대한 수림 면적의 파괴, 재생 불능 자원의 고갈, 그리고 많은 생물의 멸종 등과 같은 환경문제를 둘러싼 투쟁은 계급투쟁과 유사하게 부침을 겪고 있다. 때때로 심지어 자본의 대표자들까지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건강이나 지구의 장기적인 안녕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 염려하여 동원될 때에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쌍둥이 위기의 하나인 환경 손상을 정화하는 데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모든 노력은 자본에 의해서 이루어져, 언제고 가능하면 일반세수(一般稅收)를 이용함으로써 그러한 정화 비용을 사회화한다.

우리는 현재 미국에서 자본이 환경의 회복을 늦추거나 역전시키려 하고 있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서른 세 곳의 “수퍼펀드(Superfund)” 현장 가운데 약 절반에 대해서 연방정부가 그 정화비용을 전혀 지원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최근의 발표는 그러한 역습의 가장 중요한 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하수처리장 건설과 같이, 환경 훼손을 다루려는 일부의 노력은 그 비용이 각 지방과 주 정부, 그리고 연방정부의 일반세수에서 지불되고 있지만, 거대한 수퍼펀드는 화학 및 석유 산업에 부과되는 세금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1980년 뉴욕 버팔로 인근인 러브캐널(Love Canal)에서 발견된 전면적인 건강 재앙에 이어 전국적으로 발견된 불법행위에 대응하여 창설되었던 것인데, 러브캐널은 유독 폐기물로 매립되어 있었고, 그 위에 집단주거 시설이 건설되어 있었다. 펜실베니아 출신 상원의원 존 하인츠(John Heinz)가 당시에 표현한 것처럼, “러브캐널에 살던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내쫓겼다. 펜실베니아의 핏스톤(Pittston) 사람들은 시안화물(=청산가리) 가스를 들이쉬는 두려움 속에서 수일 동안을 살았다. 펜실베니아 영스빌(Youngsville)에서는 PCB 오염물질이 그 도시의 상수원에서 약 100야드 지점의 토양으로 스며들었다. 미국 전역에는 수천 곳의 러브캐널, 핏스톤, 영스빌이 있다.” 하지만, 1995년에는 대자본의 역습이 성공하여 수퍼펀드 세금이 폐지되었다. 펀드는 그 후 수년 더 일반세수에 의해서 유지되었지만, 지금은 거의 소진되어 있다. 오염 현장의 정화를 둘러싼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의회는 지금 문제의 산업에 수퍼펀드 세금을 다시 부과할 것인지, 아니면 수퍼펀드에 일반세수를 지출할 것인지 논쟁하고 있고, 환경보호국(U.S.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은―부분적으로 방침을 바꿔서―세른 세 곳 현장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유독산업폐기물은 계속 많은 사람들을 죽일 것인가? 유독 쓰레기는 계속 빈민 거주지 인근에 버려질 것인가? 항생제에 대한 병원체들의 새로운 내성은 계속 증대될 것인가? 토양의 불모화는 식품 재배 비용을 더욱 증대시킬 것인가? 지구 온난화는 결국 기후 유형의 변화와 저지대 범람을 초래할 것인가? 일부 유전저 변형 유기물이나 새로운 공업용 화학물질의 방출이 예기치 못한 심각한 생태 훼손을 초래할 것인가? 대기권 상층의 오존층의 고갈은 더 많은 피부암을 유발할 것인가? 이들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태 황폐화 및 기타 생태 황폐화의 누적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본주의가 자동적으로 붕괴될 위기를 유발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거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악영향을 받을 것이고, 환경문제는 자본주의 자체의 즉각적인 위기로 전화되지 않은 채 악화될 것이며, 자본주의는 계속 그 비용을 사회화하고 문제를 항구화시킬 것이라는 것이 보다 예상 가능한 미래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생물계는 (대량의 그리고 극히 급속한 멸종, 지구 온난화 효과의 누적 등등)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고, 그 반면에서 자본은 상당 기간 동안 이러한 파괴의 한 가운데에서―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 파괴의 결과로―계속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 위기나 환경위기가 자본주의 체제를 저절로 붕괴시킬 것이라는 환상은, 이들 쌍둥이 현상이 어떻게 바로 그 체제의 심장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는가에 대한 비판적 평가 및 교육의 필요성을 흐리고 있다. 그것은 또한 이들 위기를 맞아 자본주의가 보여준 회복력을 무시하고 있다. 진리는,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내적 모순으로 붕괴되어 사멸하기를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인도적이고 민주적이며 환경적으로 건전한 사회주의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일대 부분을 포괄하는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한/노/정/연


번역/노동과환경연구팀


* 출처: ꡔMonthly Reviewꡕ, Volume 54, Number4,  September 2002.


1) 이 글의 필자 Fred Magdoff와 함께 ꡔ먼슬리 리뷰ꡕ 편집부가 쓴 “자본주의의 새 얼굴: 성장둔화, 과잉자본, 산적한 부채”(Monthly Review, Vol. 53 No. 11, 2002년 4월호)를 가리키는 것으로,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79호, 2002년 8/9월호에 번역문이 실려 있다.


2) 1990년대 후반 미국의 대호황기에 세계 최대의 에너지 거래회사로 급성장했다가 2001년 12월 2일에 파산한 회사. 그 파산으로 권력과의 검은 유착이나 거대한 회계부정 등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일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나 노동운동가들이 극찬해 마지않는 ‘종업원주식소유제’(ESOP)로 1만2천여 노동자들의 저축과 퇴직금이 증발해버려 사회문제로 되었다.―(역자)


3) 모두 거대한 투기와 공공연한 사기 끝에 최근 파산했거나 파산에 임박한 회사들이다.―(역자)


4) 이 문제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는 Fred Magdoff, John Bellamy Foster 및 Frederick Buttel 등이 편집한 Hungry for Profit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00) 속의, John Bellamy Foster 및 Fred Magdoff의 “Liebig, Marx, and the Depletion of Soil Fertility: Relevance for Today's Agriculture”를 참조할 것.


2002-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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