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축정비지회의 불신임 투쟁과 공투본 평가*1)
1. 서울지하철에서 지축정비지회가 불신임투쟁을 하게 된 배경
- 99년 10월 총사퇴 총선거에서 배일도 위원장 당선
- 99년 임단협, 노동조합 최초로 잠정합의 - 비대위결성과 논란 끝에 찬반투표 불참결정 -> 조합원 과반수 이상 참여와 가결
- 00년 교섭위원 연서명후 규약에 따른 인준투표 : 찬성 50.08%, 반대 48.17%로 가결
- 01년 임단협 - 잠정합의 부결로 집행부 총사퇴 : 찬성 43.39%, 반대 52.19%로 부결
서울지하철은 99년 이후 3차례의 임단협을 거쳤다. 3차례 모두 노사가 합의한 내용에는 구조조정 수용이 있었고 이에 대해 현장의 간부들은 줄기차게 ‘부결’을 주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잠정합의 총투표의 가결로 구조조정이 수용된 경우도 있었고 2001년과 같이 부결되어 집행간부가 전원 총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합의안 부결, 집행간부 총사퇴로 이어진 02년 선거에서 다시 배일도가 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지하철 현장에서 ‘노사협조주의 반대’투쟁은 많이 정체되어 버린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서울지하철 차량지부 지축정비지회는 올해 7월부터 02년 임단협 교섭 중에 위원장 불신임투쟁을 선언하게 되었다.
02년 임단협 교섭이 한창 진행(7월 중순)중인데 지축정비지회에서는 왜 불신임투쟁을 주장, 실천하게 되었나?
한편(민주파 내부의 의견)에서는 교섭체결 후 인준투표(규약86조:협약의 인준 ① 체결된 협약은 조합원총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② 협약안이 참석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득하지 못할 시에는 규약규정에 따로 정한 경우에도 불구하고 집행위원 이상 전원이 불신임된 것으로 본다)를 통해서 위원장을 불신임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지축정비지회에서는 배일도 위원장이 합의한 후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노동조건이 개악되는 것이고 위원장 불신임도 중요하지만 단협내용이 개악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배일도 위원장은 “합의 방식은 잠정합의로 할 것이고 인준투표는 실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 분명히 했기 때문에 이제는 조합원들의 힘으로 지금까지의 단체협약 개악과 노동조합의 파행적 운영(규약의 일방적 해석과 집행)을 바로잡고 주고받기식의 교섭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원장 불신임 투쟁밖에 없다는 판단속에 불신임투쟁을 선언, 실천하게 되었다.
2. 02년 임단협과 불신임 투쟁의 경과
분명 이번 투쟁은 지회를 넘어 전체 민주진영의 투쟁과제로 확대되지 못한 불신임투쟁이었다. 지축 역시 불신임투쟁이 바로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집행간부회의에 불신임투쟁을 안건으로 상정(7월 11일)하였지만 지축정비 간부28명의 논의과정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날 조합원 분임토의와 소조토론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예: 제동분회의 경우 비밀 무기명 투표, 참석자 31명중 찬성27명 반대4명) 불신임투쟁을 결정했다. 결정은 내렸으나 지회간부들의 절대적 동의는 얻지 못한 상태에서 불신임투쟁본부로 전환하는 한계를 안고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회의 불신임투쟁 결정에 따라 지회조직을 일상체계에서 투쟁본부로 전환하였지만 향후 투쟁의 분명한 입장과 계획,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신임투쟁은 전개된다.
위원장불신임 서명에 지축정비 조합원 82%가 동참하였고 차량지부내의 민주파 대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불신임 투쟁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고 차량지부 대의원회의를 통하여 차량지부 차원의 불신임투쟁을 계획하고 지부 대의원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차량지부 차원의 불신임투쟁으로 안건처리를 못하고 지축정비 불신임투쟁에 대한 지지성명을 제출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4개지부 대의원모임들을 추동하여 논의를 확대시키는 작업들을 계속하였으나 참가자들이 소속지부의 논의의 결론이나 집행성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일부 대의원들의 고민으로 한정되어 버린 형태가 되었다. 4개지부 대의원 모임에서 공유되었던 내용들은 소속지부 대의원의 공감과 지부집행부의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했다.
지축정비 내부에서는 지회를 벗어나 타조직의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면서 조합원총회 소집요구(안건: 위원장불신 건)서명을 받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그 시기 4개지부장들의 공동투쟁본부 결성이 이야기되면서 지회에서는 독자투쟁이냐 아니면 4개 지부와 함께 할 것이냐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는 주장이 있었다. 4개 지부와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서 독자투쟁은 잠시 유보되었는데, 지축은 이후 더욱 계획을 분명히 하지 못하게 되었다.
3. 4개 지부 공투본 결성과 잠정합의안 부결
02년 임단협의 교섭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배일도 위원장은 잠정합의 방식을 고집하고 4개 지부장들은 규약에 따라 연서명 합의와 인준투표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배일도 위원장은 “혼자라도 합의할 것이고 그 방식은 잠정합의로 할 것이며, 인준투표는 없고 찬반투표로 한 뒤, 부결되면 재교섭을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4개 지부 교섭위원들이 최종합의과정에 불참하면서 공동성명서를 제출(4개지부장 명의)하게 되고, 그 여파로 4개 지부 공투본이 결성되었다.
이 시점에는 잠정합의가 만들어지고 조합원 찬반투표가 공고되면서 투표참여 여부가 내부의 첨예한 논란이 되었다. 규약에도 없는 찬반투표는 불참해야 하고 불신임서명을 진행하자는 쪽과 참여하지 않으면 찬성률만 높이는 결과(99년 합의서 투표과정에서 불참선언과 조합원불참을 조직하였지만 조합원 52%의 참여와 참여자의 절대적 찬성이 있었다)를 가져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부결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한편, 공투본 집행회의에서는 투표에 참여하여 부결시킨다는 방향이 결정되었지만 차량지부와 승무지부 일부의 지회만이 적극적으로 부결을 조직, 선전하고 차량지부장을 제외한 3개 지부장들은 아예 현장활동을 하지 않았다. 공투본에 참여한 다수의 지회장들도 “승진(조합원 과반수가 넘는 5,600여명)과 퇴직금 중간정산 때문에 부결이 가능하겠냐?”면서 현장활동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지축정비지회는 투표 공고가 나자마자 천막을 설치하고 5일간의 철야농성과 함께 3호선 역무, 기술조합원들에게 자체 제작한 유인물을 돌리면서 부결투쟁을 나름대로 열심히 벌여냈다. 결과는 부결, 물론 1차 투표의 결과가 50%에 밑도는 49.43%의 찬성이라는 아슬아슬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부결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배일도 위원장은 애초 자신이 주장한 대로 재교섭을 선언했다.
공투본에서는 재교섭을 물리력으로 저지하느냐, 아니면 재교섭 후 또다시 부결투쟁이냐를 놓고 설전을 벌였고, 2차 부결투쟁과 함께 불신임 투표로 가자는 방향으로 결론은 났다. 하지만, 여전히 적극적인 부결투쟁은 조직되거나 실천되지 못했다.
4. 불신임투쟁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향후 과제
◦ 1차 투표가 진행될 때 지축정비와 차량지부장은 부결과 함께 노동조합을 점거하면서 곧바로 불신임투쟁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타 지부의 동의가 되지 않으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축정비지회에서는 4개지부 공투본 결성과 함께 공투본의 투쟁일정에 함께 하고, 지회 단독투쟁의 수위는 조절하면서 지회내부의 조직을 추스리고자 하는 계획이 있기도 하였으나 민주노총 통일선봉대 문제와 관련하여 지회장, 조직부장의 고소고발과 직위해제, 17명의 지회간부들의 감사실 출두(근무지이탈 건: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근무시간중의 교섭참가)가 떨어지면서 지축정비의 독자투쟁이 불가피 해졌다(이 사안에 대해 차량지부와 타 지부의 대중투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작업거부투쟁을 포함한 투쟁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고민 끝에 지회장, 조직부장의 본사농성과 지회장 단식이 함께 진행되었고, 조합원들은 B형 월차(무급휴가)를 내면서 매일 10여명 정도 본사농성에 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한편 차량지부내의 공투본에 참여하는 3명의 지회장들과 지부장, 지부사무국장은 조합 앞마당에 “총사퇴 총선거 실시”의 요구를 걸고 철야농성에 돌입(지축정비 본사농성 다음날)하였으나, 2차 투표가 55.78%의 찬성으로 가결되면서 공투본에서는 기 결정한 바와 같이 가결에 연연하지 말고 불신임 서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차량, 승무중심)과 이후의 상황을 봐 가면서 진행하자는 입장(역무, 기술중심, 하지만 구체적 일정과 내용은 제출하지 않음)의 차이로 불신임 투쟁이 탄력을 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공투본은 해체되어 버렸다.
차량지부는 공투본 참여 지회장(4명), 지부장, 지부사무국장 사퇴를 선언(불신임을 선언하고 향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투쟁한다는 것은 지도부의 책임있는 모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승무, 역무, 기술지부는 사퇴불가로 입장을 정하면서 4개 지부는 마무리 과정조차도 단일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지축정비지회는 공투본이 사실상 해체되면서 지회독자투쟁을 고민하기도 하고,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내부 표결까지 가는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조직력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결국 지축 역시 농성을 접고 9월 1일 약 70여일간의 투쟁을 마무리게 하게 되었다.
◦ 공투본이 출범했지만 지축정비 자체 투쟁의 분명한 입장과 방향이 없음으로 인해 자체 결정과 실천이 번번히 공투본의 회의결과를 기다리다가 공투본의 결정이 계속 유보될 때 지축정비는 독자투쟁도 전개하지 못하고 내부의 갈등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투쟁과정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소조장들의 자체투쟁 결의와 실천이 있었고(분회별 중식선전전, 머리띠 제작과 근무시간 머리띠 착용 등등) 조합원들이 B형 월차를 사용(100여명 참여)하면서 본사로비에서 출근선전전과 중식선전전, 소자보부착 등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투쟁에 조합원들의 적극적 참여와 실천을 보였다. 이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2차 찬반투표가 가결되고 공투본의 투쟁방향이 무기력하게 정리되면서 9월1일 본사에서 개최된 지축정비 투본회의의 과정과 결론은 최악의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회 간부들은(본인을 포함해서) 지금까지의 투쟁에 대한 나름의 성과, 문제점, 극복해야 할 과제 등 평가도 제대로 못한 채 초라한 마무리를 하고 만 것이다.
◦ 지축정비지회 단독의 불신임투쟁결정과 함께 이후의 투쟁방향과 일정들을 준비하지 못한 점, 또한 조합원들과 어떻게 함께 투쟁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지회간부들의 투쟁경험들이 지회를 벗어난 투쟁을 계획하고 지도한 경험이 없었다는 점과 간부들이 선출되고 활동하는 속에서 현장투쟁이나 노동조합 내부의 투쟁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또한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지축정비지회의 활동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였다. 처음부터 조합원들의 토론과 논쟁 그리고 조합원들과 함께 결론을 만들지 못하고 ‘정당한 투쟁’이라는 식으로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가 아닌 투쟁의 대상으로 바라본 점은 향후 반드시 극복해야 할 지하철현장운동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향후 서울지하철노조 민주진영의 과제와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
안일한 사고, 관성적 활동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번 투쟁이 마무리되면서 지회조합원들의 정확한 상태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지회 단독투쟁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노동조합의 정상적 활동조차도 징계대상이 되는 현실에 침묵하는 위원장의 한계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 또한 공조직(노동조합) 투쟁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지부 대의원 모임과 전체 민주파 대의원 모임의 확대와 실천이 요구되었고, 현장조직건설과 실천사업이 제안되고 있다. 실천하는 현장활동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선거철이면 전, 현직 간부들이 250여명씩이나 모이면서 이번과 같이 투쟁이 필요할 때 지하철의 실천가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까지 지하철의 현장투쟁, 사측과의 다양한 투쟁은 공조직 내에서의 투쟁이었고 그만큼 공조직의 보호를 받았다.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어떤 희생(징계와 해고)도 모두 조합비로 해결해 주었고 최소한, 생계의 걱정은 하지 않는 투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제는 이러한 안일함과 관성적 활동을 버리지 않는다면 새로운 희망은 없을 것이다. 공조직을 너머 현장에서 활동할 의지를 갖고 있는 활동가들이 이제 조직적 실천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지회, 지부의 공조직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사고지회(위원장을 지지하는 지회장이 당선된 지회)를 조직하고 활동하는데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이번 투쟁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지부(지회)의 공식조직에서 결정하는 내용을 벗어난 실천을 할 수 있는 사람과 단위들을 조직하고 활동해야한다. 지금까지는 공식조직의 결정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가끔 있어도) 지지하고 동의하는 활동에 우리들은 익숙해 져 있었다. 이제 말로는 민주파라고 하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조직하지 않는 활동가나 전직 간부는 노동조합을 올바로 세워내는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동일한 방향성을 가진 활동가들이 개인적 활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현장조합원들에게 구심점과 희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활동가들의 조직적 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서울지하철에서 99년부터 02년 10월까지 개악된 단협
1999년 개악내용 |
단협개악의 대가 |
- 차량,기술 지정휴무 1개폐지
- 역무 4조3교대에서 3조2교대로 변경
- 승무 17.3dia에서 18dia로 변경
- 정원 1,621명 축소
- 정년 단축 61세를 60세로 변경
- 대학생 학자금 무상에서 융자로 전환
- 탄력적 근로 시간제 도입 |
- 도시철도의 임금과 동일하게 조정
(평균 12%인상 )
- 승진소요년수 3배수 경과자중 명 자동승진
- 퇴직금 중간정산 300억원 2000년 실시
- 특별격려금 95% 지급(기관성과급 부족분)
- 해고자 복직 (조상호,홍순용외 3명) |
2000년 개악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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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미만 직원 퇴직금 단수제 도입
- 정년단축 60세에서 58세로 단축
- 명퇴수당 개악, 조퇴수당 신설
- 개인별 성과급제 도입
(지급은 집단별 성과급으로)
- 정원축소에 따른 조직개편 |
- 해고자복직 (구덕회외 9명)
- 퇴직금 중간정산 500억원 01년에 실시
- 사경력 인정(200인 이상 사업장 70%)
- 기관 성과급 260%로 지급
- 인건비 총액3%이내 인센티브 지급 |
2001년 개악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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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근무수당 지급율 변경 0.84 -> 0.61
- 퇴직금 누진제 폐지(퇴직수당 신설)
- 연월차무급화 및 휴일폐지(12개)
- 3급(과장)승진시 심사승진 50%이하실시 |
- 퇴직금 중간정산 2000억원 02년 실시 |
2002년 개악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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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추가 축소 98명
- 1시간 연장운행 합의
- 총액 3.28%인상
(자연증가분을 총액임금에 포함) |
- 승진소요년수 3배수경과자 04년까지 5600명 승진
- 징계자 호봉 누락분 원상회복
- 퇴직금 중간정산 1000억원 추가출연 |
* 이 글은 개인적 견해와 입장으로 제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