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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5년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81호
김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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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5년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김 명 록

현대자본주의연구팀장/경제학박사과정




1. 국민의 정부, 잃어버린 5년?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 80년대는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10년이었다. 그러기에 그 암울했고 고통스러웠던 시대를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80년대는 살인적인 물가상승, 높은 실업률, 기업의 도산, 임금동결의 시대였고, 저성장 또는 마이너스성장의 시대였다. 70년대를 휩쓴 세계적 공황과 경기침체로 인하여 전후시대를 이끌었던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1)은 막을 내리고, 대처리즘 또는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들어섰다. 그리고 외채위기를 겪게되는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에게 금융자유화, 고금리정책, 민영화 등으로 요약되는 IMF의 안정화프로그램을 강요하게 되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이 불러온 결과가 바로 고통스러웠던 ‘잃어버린 10년’이었던 것이다. 일인당 경제성장률이 0%였던 브라질은 그래도 행복한 경우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나라는 10%, 또는 20%이상의 성장률 감소를 경험하였다.

자, 이제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자. 국민의 정부 5년은 과연 우리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5년’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난 5년간의 민중의 생활과 현재의 상태를 살펴보고 난 뒤 내릴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IMF와 국민의 정부의 경제정책을 분석하여 그것의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평가를 위한 객관적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외환위기의 발발과 여기에 대한 정부정책들,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서 현재 민중의 생활을 순서대로 정리하고자 한다.



2.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

70년대 이후는 기본적으로 장기불황의 시대였다. 그 이후 세계경제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80년대의 일본의 성장과 90년대 미국의 이른바 ‘신경제’현상2)이었다. 신경제현상으로 미국의 경제가 성장일로를 걷기 시작할 때, 한국경제 역시 여기에 반응을 보이면서 경기상승국면을 타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수출의 호조에 힘입어 반도체와 철강,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에서 설비투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자본에 기초하여 설비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 김영삼 정권의 야심찬 해외금융자유화 조치와 겹치면서 값싼 해외자금을 단기로 빌려서 설비투자를 증가시킨 것이다. 그 과정은 아래 표에서 관찰된다.


<표1> 90년대의 GDP성장, 해외자본수지 및 장단기 자본채무비중

 

93년

94년

95년

96년

실질GDP 성장율

5.8

8.6

8.9

7.1

설비투자 증가율

-0.1

23.6

15.8

8.3

장기자본수지(억달러, 괄호안은 %)

33.0(82.3)

36.7(31.6)

64.7(37.1)

98.3(42.3)

단기자본수지(억달러, 괄호안은 %)

19.3(36.8)

79.4(68.4)

109.5(62.9)

133.9(57.7)

출처: 김준일, 민스티의 금융불안정성가설을 통해 본 한국자본주의의 금융취약성, 2000, 고려대 석사논문.


즉, 94년부터 단기부채에 의존한 급속한 설비투자와 이를 기반으로 한 성장기조는 결국 설비투자의 결과물들인 상품들을 원활하게 판매하지 못함으로써 후퇴국면으로 치닫게 된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상품의 과잉생산, 자본과잉의 결과였다. 그래서 반도체산업과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한 과잉공급에 의한 가치파괴현상이 나타나면서 이윤율의 심대한 하강을 초래3)하게 된다. 이에 대한 해외투자자본의 대응은 신용의 중단, 말하자면 부채의 상환 및 추가대부의 중단이었고 이것이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것이다. 경기상승국면에서의 과도한 설비투자 증가와 투자자본금을 해외에서 빌려왔기 때문에 산업공황의 형태가 외환위기로 표출된 것이다.

이처럼 공황의 원인이 자본의 과잉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자본측의 대응은 자본과잉을 해소하는 것, 그럼으로써 이윤율을 회복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공황 이전의 자본주의에서 공황에 대한 총자본의 대응은 그냥 ‘살릴 놈은 살리고 죽일 놈은 죽인다’는 방식이었다. 이 때는 오늘날과 같은 국가에 의한 전면적인 대응이 없었다. 국가는 자본의 정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체제전복적인 정치적 변동을 제거하는 일에만 신경을 썼던 것이다. 경쟁력이 약하거나 대규모 생존자금의 동원이 불가능한 중소자본의 몰락과 대자본의 질서재편으로 자본의 과잉을 해소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당시 파괴적이었지만 단기적으로 상황이 종결되는 형태로 공황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1929년 이후의 상황은 달랐다. 빠르게 회복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침체정도가 너무 심각하여, 공황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체제자체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직감하게 되었고, 그 결과 양차 대전 이후부터 국가의 경제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개입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케인즈적인 경제정책이 확대재정정책과 확대통화정책의 이름으로 실시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50년에서 70년까지의 성장률은 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이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뒷면에는 급작스런 경기후퇴를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있었던 것이다. 공황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은 부실한 자본에게까지 은행신용을 제공하는 방식과 부실한 자본이 만들어낸 상품조차 구매되도록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공황은 이전과 같이 갑작스럽게 왔다가 과잉자본을 정리하여 신속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름시름 후퇴하는 침체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장기불황의 지속으로 케인즈주의 정책이 의문시되고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낮은 이자율로 피해를 봤던 채권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장기불황을 끝장내기 위해서 국가는 긴축통화정책을 취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불황을 더 가혹한 위기로 치유하겠다는 전략이다. 먼저 부실기업을 잔존시키는 정책 대신 과감하게 청산시키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기업들을 압박하기 위한 고금리/통화긴축을 실시한다. 동시에 자본의 이윤창출기회와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서 국제적 이동의 자유와 경쟁에서 제외되었던 공기업의 민영화를 단행한다. 마지막으로 과잉자본의 정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특히 한국의 경우 회수되지 않은 공적자금을 전국민이 상환해야 한다)을 민중들에게 돌리는 한편 정리해고, 실업, 노동강도의 강화로 인한 육체적인 손상, 임금삭감 등으로 노동에 대한 착취를 극한까지 몰고간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과잉자본을 과감하게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1929년 이전시기의 공황에 대한 자본의 ‘자유방임적’ 대응과정과 유사하여 신자유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에 의해 그 폭력적인 정리과정이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자유주의와 차이가 있음을 기억하자. 여하튼 이런 신자유주의정책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그리고 80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도 나타났으며, 유령과 같이 전지구 구석구석을 떠돌고 있다.



3. 국민의 정부의 경제정책의 내용과 성격규정

앞에서 신자유주의의 경제정책의 핵심을 1) 위기의 원인이었던 과잉자본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2) 무한한 이윤추구를 위해서 자본의 이동을 자유화하는 한편 자본활동영역을 넓혀주고, 3)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사회화 또는 민중들에게 부담시키고 노동계급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국민의 정부 5년을 되돌아본다면, 국민의 정부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의 정책 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12월을 떠올려보자. 환율의 급등과 주식시장의 붕괴, IMF라는 이상한 이름의 국제기구가 한국사회를 뒤흔든 기억이 난다. IMF는 국제간의 거래에 사용되는 기축통화인 달러가 부족해진 국가에 잠시 구제금융을 지급해주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IMF가 요구한 것은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라 한 국민국가전체의 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IMF가 구제금융을 던져주면서 요구한 것은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단기적인 외환보유고의 회복을 위한 고금리/긴축통화정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인 구조조정이었다.

단기적인 고금리는 공황기에 자본이 더욱더 요구하게 되는 은행신용을 줄임으로서 형성된다. 곧 그것의 배후에는 신용체계의 붕괴4)에도 불구하고 신용경색으로 몰고 가는 국가의 통화긴축정책이 있는 것이었다. 결국 자본이 요구하는 신용을 경색시킴으로써 부실자본을 붕괴시키는 도구로서 이용되는 것이 고금리정책인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고금리는 국제투기자본에게 높은 이자율을 제공해줌으로서 이들의 국외유출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렇듯 고금리정책은 한국산업자본의 목줄을 틀어쥐면서 국제채권자들에게 놓은 수익을 남겨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고금리 및 긴축통화정책의 결과와 더불어 국민의 정부는 장기적인 구조조정계획으로서 4대 부문개혁안을 내놓게 된다. 이러한 구조조정계획은 1997년 말 종금사 대거 퇴출에서 시작된 구조조정방안의 결정판으로서 이듬해인 1998년 6월 55개 기업과 5개 은행의 퇴출조치로 연결되면서 대량실업을 양산시키게 된다. 4대  부문개혁을 요약하면, 1) 기업부문개혁안으로써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기업경영투명성을 회복시키고 재무구조를 개선하여 건실한 기업구조를 만든다는 계획이고, 2) 금융부문개혁안으로써 부실금융기관을 퇴출시키고 우량은행간의 합병을 추진하며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건전성과 업무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계획이고, 3)공공부문개혁안으로써, 부실의 온상으로 생각한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동시에 대규모 인력감축을 단행하여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한 4)노동부문개혁안으로써, 노사협조 강화와 노동유연화 제고 및 노동조건 개선을 추구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계획은 우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과잉을 퇴출/합병/해외매각 등의 방식으로 정리 또는 합리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금융산업에서의 구조조정과정의 결과를 보면, 아래와 같다.


<표2> 97년에서 2001년까지의 금융기관 구조조정실태

 

‘97말

퇴출

합병

신설

‘01년12월

‘97.관련

종사자수

‘98.관련

종사자수

‘99.관련

종사자수

‘01.관련

종사자수

‘97 대비

‘01증가율

은 행

  33

5

  8

-

20

259,524

178,186

172,482

153,089

-약39%

종금사

  30

22

  6

1

  3

3,646

1,289

934

293

-92%

증권사

  36

6

  1

17

46

26,771

22,355

32,005

35,761

+33.6%

그외

1,973

414

134

28

1453

 

 

 

 

 

합계

2,072개사

447개사

149개사

46개사

1,522개사

317,623명

241,041명

239,115명

218,726명

-31.2%

* 그 외에는 투신사, 생보사, 손보사, 상호저축은행, 신협 등이 포함됨.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음.

**표는 금융감독원의 ‘최근 금융산업발전의 현황 및 특징’을 참고한 것임.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구조조정의 과정은 과잉상태의 은행자본과 제2금융권자본을 정리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약 10만 명의 노동자들이 구조조정과 합리화의 이름으로 직장을 잃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금융부문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런 산업자본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경우 부실채권이 발생하게 되는데, 제1차 구조조정시기 동안 100조에 이르는 채권발행을 통해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고(32.5조원), 인수은행에 증자를 지원하고(19조원), 부실은행의 예금을 대신지급(14조원)하는 한편, 기업구조조정을 지원(10조원)하고 실업기금을 확보(10조원)하는 계획안을 세워 실행하였다(김성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책의 결과와 전망). 이것의 의미는 기업과 금융부문에서 사적이윤추구를 위해서 끌어들인 부채를 그 기업의 오너도 아니고 돈을 빌려준 은행과 관련도 없는 국민일반들이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 곧 부채를 사회화함으로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즉, 구조조정의 과정을 자본의 합리화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합리화에 요구되는 비용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킴으로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다. 현재 위에서 말한 제1차 구조조정에서의 공적자금 100조원 이외에도 제2차 구조조정에서 5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여되었고, 이중 회수율은 지극히 낮아서 국민들에 대한 압박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적인 예로 내년 1인당 과세금액이 300만원이 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기업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만들겠다던 정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기업중심의 소유권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나오고 있다. 공황기에는 자본의 자산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자본간 합병이나 거대자본의 중소자본의 인수가 손쉬워진다는 점을 이용하여 대기업의 자산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5) 이런 과정은 국내 독점자본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외국자본의 국내 산업자본 및 금융자본에 대한 소유권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제일은행인데,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5조7천억 원을 쏟아부어 제일은행의 주식 51%를 인수하였다가 이것을 해외자본유치라는 명목으로 뉴브리지캐피달에 5천억원을 받고 팔아버린다. 구입가격의 1/10의 가격으로 판매한 것이다. 또한 외국인의 한국주식소유한도가 철폐된 이후, 외국인들은 한국주식시장 보유비율이 97년 14.6%에서 약 35.5%로 증가되었다. 이것은 자본시장이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성향으로 인한 불안정성에 노출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본자유화의 결과가 제2, 3의 외환위기를 초래하였다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교훈과, 한국의 외환위기는 자유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90년대 초반의 자유화로부터 시작된 위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국제적 자유화가 자본의 운동영역의 확장을 야기한 것이라고 한다면, 공기업 민영화는 국가의 기관산업에까지 자본의 이윤추구의 영역으로 확장한다는 의미에서 비슷하다. 2001년 12월까지 공기업 6개가 민영화되었으며, 2002년 현재 5개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 또한 61개 공기업자회사 중 19개가 이미 민영화 및 통폐합되었으며 나머지 42개 중 36개 역시 추진중에 있다. 또한 정부당국은 이 당시까지 매년 인력감축계획을 초과달성하였으며, 2001년에는 23,006명을 정리해고시켰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미 공기업의 민영화는 대세인 것처럼 이데올로기로 퍼져있지만, 이것의 논리는 정당화될 수 없다. 민영화를 통해서 효율성을 증진시키자는 논리가 핵심인데, 비효율성의 근거가 왜 공기업이기 때문에 발생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공기업을 유지한 채 효율성을 담보할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이 반드시 민영화되어 이윤의 대상이 되어야만 효율적인가? 사적 자본의 효율성과 사회전체의 효율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윤이 형성되지 않으면 생산을 중단하는 자본의 속성은 국민들과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기를 공급중단하는 사태로까지 치닫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철도요금의 증가를 포함한 각종 공공요금의 인상은 민영화의 필연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곧 서민들의 생계비용증가와 해당 노동자들의 실업, 그것이 민영화의 결과인 것이다.



4. 국민의 정부 5년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는 ‘감동적인’ 것이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면 국난은 해결되고 새롭게 도약하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부분은 그 당시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었다. 뒤이어 실시되는 구조조정, 그리고 정리해고 되는 노동자들, 거리의 노숙자들에게도 “당신들이 참으면, 기업의 수익성이 좋아지고, 경제가 건실해지며, 건실해진 경제가 다시 고용을 창출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다시 고용될 것”이라는 눈물어린 호소가 나왔다. 외형상 1998년과 2000년의 경기후퇴를 제외하면 거시경제지표는 성장률을 그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였으며, 이윤율에서도 상당한 회복률을 보였다. 우선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거시경제지표의 회복과 노동자들의 생활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성장률의 상승과 기업가동율의 증가로 인하여 전체노동자들의 취업률은 증가하였지만, 생활상의 개선은 기대하기 힘들다. 왜 그런가? 우리는 급격히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현상의 심화, 그리고 비정규직의 증대는 전체노동자의 실질임금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오히려 경기상승의 결과로 노동자의 생활이 개선되었는가를 묻기 이전에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감소로부터 경기상승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즉, 노동자가 생산해낸 잉여가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분을 상대적으로 하락시켜 잉여가치율을 증가시키고 이것으로 인하여 이윤율이 개선되고, 이것이 다시 기업의 활동을 촉진시켜 전체 산업의 성장률이 상승한다는 논리를 가져와야 하지 않을까?

잉여가치율을 추정한 결과는 이것을 뒷받침해준다. 90%(93년), 96%(94년), 101%(95), 109(96), 118(97), 180(98), 147(99), 151(2000년), 136(2001년)으로써, 외환위기 직후의 시기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공격이 가장 폭력적인 형태로 관철된 결과 잉여가치율이 가장 높게 나온다. 그런 뒤에도 그 이전과 달리 높은 수준의 잉여가치율이 나온다. 높은 잉여가치율은 노동시간을 연장시키거나 노동강도를 강화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그에 비례하여 증대하지 않을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외환위기이후의 경험을 수치로서 보여준 것이다.


“1998년에도 노동강도 강화현상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되는 경향을 보였다 … 작업속도는 증가되고 작업인원은 감소되었다. 이를 두고 마른수건 짜기라고 한다 … 1인당 작업량은 급격히 증가하여 현대자동차에서는 예전에 10명이 하던 일을 2명, 심지어는 한 명이 해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조선, 철도 등의 작업장에서는 노동강도가 바로 사망재해와 직결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대부분의 공장들에서 요통, 디스크탈출증과 같은 근골격계질환이 증가되는 경향을 보인다(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조선업종연구팀, 「근골격계질환과 노동운동과의 역학관계」,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78호).”


이렇게 작업장에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도를 증가시키는 동시에 자본을 합리화한 결과, 이윤율6)은 97년 22%에서, 98년에는 위기 중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29%로 증가하는 양상이 벌어진다. 그리고 외형상 한국자본주의의 성장은 다시 시작된다.7) 이것이 전형적인 자본의 대응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의 재조직화 및 그것의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과 노동에 대한 공격으로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국가가 배후에서 조정하는 것, 그럼으로써 자본이 무한한 확장과 새로운 축적의 동력을 형성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외환위기 이후에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다. 취업을 하기 위한 의욕마저 포기한 실망실업자와 불안정노동자, 전체 노동자의 52.3%를 차지하는 임시직과 계약직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60%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지금 해고의 고통을 감수하면 곧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는 김대중대통령의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고, 한국자본주의는 전세계를 휘젓는 국제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은신처가 되었다. 재벌은 해체가 아니라 더욱 몸짓을 불렸고, 주택가격의 상승은 서민들의 생계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자, 이제 평가해보자. 과연 지난 5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잃어버린 5년’인가? 아니면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5년이었는가?

한/노/정/연


1) 사실 케인즈적인 확대재정정책 그리고 관리통화제도에서의 확대통화정책이 전후 장기호황을 이끌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대량생산체제의 성립으로 인한 생산의 증가와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대중의 소비능력의 부족으로부터 과잉생산/과잉설비가 발생하여 1929년 대공황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것에 대한 해결로서 유효수요를 증대시키는 케인즈적인 정책들 특히 뉴딜정책들이 나왔지만 그것이 효과에 대한 평가는 주류경제학자들조차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전후의 호황은 전쟁동안 과잉자본의 파괴, 전쟁중과 그후 노동자계급 패배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2) 이것이 생산방식의 혁신등에 의한 새로운 경제질서의 확립이나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세계경제를 지배해온 저이윤율로 인하여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못한 세계적 유휴자본이 미국의 금융시장으로 유입되었고, 그 결과 금융자산의 가치상승으로 인한 소비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기업공개제도가 발달된 미국적 특수성이 주식시장의 상승을 IT산업에서의 투자증가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IT산업에서 실현되리라고 믿었던 미래의 이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실현되자 급격하게 아래로 치닫게 되는 이른바 ‘반짝 호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로써, 신주발행과 자사주매입과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항상적 과잉수요는 미국의 고주가의 원천이었는데, 고주가의 붕괴가 엔론사의 우리사주였던 엔론사의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거지로 만들었던 것처럼 미국의 경제를 위태롭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3) 일반적으로 이윤율의 저하는 산노동(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에 대한 죽은노동(고정자본, 기계 및 원료)의 비율적 증가로 인하여 산노동으로부터 아무리 잉여가치가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죽은 노동의 증가분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곧 산노동의 자연적 한계는 하루 24시간이고, 결코 부가가치의 전체를 자본이 가져갈 수 없는 한계 때문에 그러하다. 여기서는 이윤율저하의 원인으로 생산된 잉여가치의 상대적 저하와 상품의 과잉공급에 의한 이윤실현의 애로, 이 둘을 모두 생각하고 있다. 전자는 기술적인 측면이 강하고 장기적인 추세와 관련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후자는 주기적인 것으로서 자본간 경쟁과 설비투자의 증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은행신용으로 인한 과잉투자/과잉설비와 그것의 결과로서의 상품의 과잉공급, 다시 그것의 결과로서의 가치실현의 곤란으로 인한 이윤율하락현상을 말한다. 추세로서의 장기적인 이윤율저하는 관찰된 이윤율을 가동율로 조정해줌으로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사이크). 모든 이윤율의 저하를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부터 설명하려고 한다면,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 갑자기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시키는 기술혁신과정이 존재해야 하는데 사실 기술혁신의 과정과 생산설비를 도입하는 것은 장기적이 경향으로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3) 일반적으로 이윤율의 저하는 산노동(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에 대한 죽은노동(고정자본, 기계 및 원료)의 비율적 증가로 인하여 산노동으로부터 아무리 잉여가치가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죽은 노동의 증가분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곧 산노동의 자연적 한계는 하루 24시간이고, 결코 부가가치의 전체를 자본이 가져갈 수 없는 한계 때문에 그러하다. 여기서는 이윤율저하의 원인으로 생산된 잉여가치의 상대적 저하와 상품의 과잉공급에 의한 이윤실현의 애로, 이 둘을 모두 생각하고 있다. 전자는 기술적인 측면이 강하고 장기적인 추세와 관련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후자는 주기적인 것으로서 자본간 경쟁과 설비투자의 증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은행신용으로 인한 과잉투자/과잉설비와 그것의 결과로서의 상품의 과잉공급, 다시 그것의 결과로서의 가치실현의 곤란으로 인한 이윤율하락현상을 말한다. 추세로서의 장기적인 이윤율저하는 관찰된 이윤율을 가동율로 조정해줌으로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사이크). 모든 이윤율의 저하를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부터 설명하려고 한다면,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 갑자기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시키는 기술혁신과정이 존재해야 하는데 사실 기술혁신의 과정과 생산설비를 도입하는 것은 장기적이 경향으로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외환위기발생과정의 설명에서는 신용과 경쟁을 매개로 한 과도한 경기상승과 이로 인한 상품의 과잉공급,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 상품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녹아있다.


4) 신용제도는 화폐를 대신하여 기업의 결제수단과 투자자금으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각종 어음, 수표, 당좌대월, 채권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경험하였듯이 공황기에는 기업이 장래에 이것을 갚을 수 있을지 의문스런 상황을 발생시키면서 어음이나 수표 등의 화폐적 기능을 마비시키면서 오로지 결제를 현금으로 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발생하는 현금에 대한 수요증가에도 불구하고 현금공급을 증가시키지 않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긴축통화정책의 한측면이다. 한국의 경우 98년의 자본파괴가 너무 심각하여 98년 하반기부터 고금리정책에서 저금리정책으로 선회하게 된다.


5) 표를 보자. 현장에서 미래를 79호 재인용.

5) 표를 보자. 현장에서 미래를 79호 재인용.

 

자산총액(비중)

자산증가율

1997.4

2001.4

3대 그룹

112.9(32.4)

169.2(38.6)

49.8

5대 그룹

202.0(57.9)

258.9(59.1)

28.2

30대 그룹

348.4(100)

437.8(100)

25.7

 

 

자산총액(비중)

자산증가율

1997.4

2001.4

3대 그룹

112.9(32.4)

169.2(38.6)

49.8

5대 그룹

202.0(57.9)

258.9(59.1)

28.2

30대 그룹

348.4(100)

437.8(100)

25.7

 

주: 3대그룹은 삼성, 엘지, 에스케이. 5대그룹은 여기에 현대와 대우가 포함됨.

주: 3대그룹은 삼성, 엘지, 에스케이. 5대그룹은 여기에 현대와 대우가 포함됨.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30대 그룹에서 차지하는 3대그룹의 비중이 32.4%에서 38.6%로 증가되었다는 사실과 거대그룹전체의 자산총액이 외환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과정에서 오히려 증가되었다는 사실. 곧 정부의 재벌에 대한 정리작업이 재벌의 합리화와 거대화를 초래하였다는 사실을 반증한 것임.


6) 잉여가치율은 노동자의 힘(18호)에서 참고하였으며, 이윤율은 여기에 자본스톡의 크기를 구한 데이터를 추가하여 구한 것임. 이것과 관련하여 미국의 호황을 주식을 중심으로 한 자산가치의 증가, 그리고 비정규직의 증가로부터 발생하는 잉여가치율(착취율)의 증가를 결부시켜 설명하는 모즐리의 견해가 일정정도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7) 여기에서 단기적으로 중요한 변수는 가계소비이다. 신용카드는 전체소비를 증가시키지는 못 하지만, 그럼에도 비례의 소비액을 당겨서 실현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경기상승을 초래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2001년이후의 성장에는 이런 동력이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지속될 수 없는 현상으로서, 오히려 그것 자체로부터 더욱 심각한 경기후퇴 및 공황이 초래될 수 있다.


2002-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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