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대중을 ‘대선 투쟁’과 결합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향해 나아가자 |
고 민 택/노동자의힘 정책위원장 |
1. 노․농투쟁의 정치적 상승의 계기로서의 공투본과 ‘민중 경선’
1) 현 시점에서의 노동-자본 대립관계와 대통령선거
대선을 둘러싸고 부르주아 정치권에서의 이합집산과 병풍, 비리 등 온갖 추잡한 정치비방과 폭로전이 난무하고, 운동진영에서 대선전술을 둘러싼 논쟁과 움직임이 한참인 가운데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의 완성과 이를 전 사회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자본의 전략, 이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정중동(靜中動)’의 형태를 띠고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5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주5일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 경제특구법안, 공무원조합법안에 대한 정부안을 확정하고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등 시장개방 흐름이 급속하게 진행되어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주5일제 도입 관련 법안은 무늬만 주5일이고 실제로는 임금 저하, 연월차와 생리휴가 및 공휴일을 줄이는 것에 덧붙여 탄력근로제를 확대하여 더욱 철저하게 노동을 유연화 하고자 하는 ‘노동법 개악’이다. 경제 특구법안은 한마디로 외국 자본의 이윤추구 활동을 위해 노동법에 보장된 월차․생리․휴일수당을 없애고 파견노동을 허용하여 외국자본의 입맛대로 노동자를 부려먹는 것을 정부가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며, 교육․서비스․의료분야까지 무차별 개방하는 ‘자본이익 보장법’이다. 공무원조합법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도 안되고, 교섭체결권도 없고, 단체행동권도 없는, 오로지 지배와 통치에 편하게 공무원을 길들이려는 의도로 도입되는 ‘공무원노예법’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권 말기에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무리수(?)를 강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만큼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공황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자본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밖에 없는 ‘자본의 위기’가 그만큼 절박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항상 자본은 자신의 위기를 ‘노동자․민중의 위기’로 전가시키면서 극복하여 왔듯이 현재의 악법제정 움직임도 그러한 위기를 지연시키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집단과 한나라당, 민주당 등이 이러한 법 제․개정을 연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입맛에 완전히 맞아떨어지도록 더 ‘개악’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한편 위와 같은 ‘민생파탄 악법’ 추진 기도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도 준비되고 진행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과 한국노총 제조연대로 구성된 ‘제조부문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10월27일 ‘근기법 개악저지 및 노동시간단축 완전쟁취를 위한 전국 제조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또 발전 가스 철도 등에 전력노조가 가세해 10월 10일 출범한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를 위한 2기 공동투쟁본부도 같은 날 ‘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공공부문 노동자 결의대회’를 연다. 이들 노조는 각각 근로기준법 개악안과 사유화법안 통과시 고용과 근로조건에 심각한 타격을 입기 때문에 하반기 투쟁에 조직의 명운을 건다는 각오이다. 가스공사노조는 가스공사 민영화법안 통과시 총파업을 하겠다는 쟁의행위를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서 가결시켜 놓은 상태이다. 공무원노조는 행정자치부 장관실 점거 농성을 전개한데 이어 17일 전국간부 결의대회를 열었으며, 정부의 ‘공무원조합법’ 국회통과를 앞두고 11월4~5일 상경투쟁을 펼칠 계획이다. 이에 따라 10월말~11월초에 걸친 이들 세 부문의 총력투쟁은 전국노동자대회(11월10일)와 민중대회(12월1일)를 앞둔 노동운동진영 하반기투쟁의 성패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상반기 마늘 투쟁에 이어 쌀시장 개방 반대투쟁을 전개해 온 농민의 투쟁은 ‘100인 100일 걷기투쟁’을 전개하면서 11월13일 30만명의 농민이 집결하는 전국농민대회를 전개할 예정이다.
위와 같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의 ‘안정화, 일상화’ 기도와 이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올 하반기에 입법제정시도가 설사 차기 정권 이후로 넘겨진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전선의 성격과 대립의 실체를 여전히 유지시킬 것이며, 대립관계의 격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바로 이러한 과정의 한가운데에 대통령선거가 놓여 있다. 따라서 우리가 대통령 선거에 대응하는 핵심 원칙은 이러한 전선을 확장하고 시기 집중을 넘어 투쟁의 초점을 집중시키는 데에 있으며, 그에 맞는 ‘투쟁 주체의 형성과 결집’을 가장 우선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닌 진보정당의 ‘득표력 향상’이나, 특정 이념의 ‘정치세력화’ 시기로 대선을 사고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선거운동의 기조로 설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단순한 ‘립써비스’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들며, 그 자체의 목표 달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공투본-계급대중 경선의 의미
우리가 전체 민중진영에게 ‘전국공동투쟁본부의 건설-공동선거기구를 통한 민중경선’을 대선방침으로 내놓은 것은 이 방안이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확장과 정치적 집중’ 그리고 이를 위한 ‘투쟁주체의 형성과 결집’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안의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운동진영이 이보다 더 유력한 방안을 제시한다면 얼마든지 우리의 방침을 철회할 용의가 있음을 밝혀둔다.
이러한 제안의 원칙은 이미 노동자의 힘을 비롯하여 민주노총, 전국연합, 민주노동당 등 6개 단체가 참여하여 진행된 4차례의 예비모임에서 ‘2002민중연대투쟁 강화와 대선투쟁승리를 위한 전국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한발짝 실현의 행보를 내딛고 있다. 예비모임에서는 ‘공투본은 민중운동진영의 투쟁대오가 참가하는 하반기 대중투쟁기구이며 동시에 공동선거 대응기구의 위상을 갖는다’고 하고 그 역할로서 △하반기 투쟁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전국적인 공동투쟁을 적극적으로 기획하는 단위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을 결합하는 단위 △후보를 선출하고 공동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는 단위 △하반기 노동자․민중 투쟁과 대선투쟁을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한시적인 조직으로 현재 민중연대투쟁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민중연대(준)와 상호협조적 관계를 설정한다는 규정을 하였다.
사실 제 세력이 위와 같은 합의에 도달했던 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자본과 정권의 제반 악법 제정 기도 및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투쟁이 달아오르고 있는 계급대립의 객관적 조건이 작용하고 있다. 일부 운동진영이 제기하듯 공투본은 ‘화해할 수 없는 사상과 이념지향 세력간의 불안한 동거’도 아니오, 일부 운동진영의 ‘변절과 기만’의 모습도 아니며, 운동진영 상층지도부만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 철저하게 대중투쟁이 강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것의 진전 여부에 따라 그것의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과정은 ‘객관적 조건’을 넘어 ‘주체적 강화’로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현재 진행되는 제반 투쟁의 흐름을 ‘전국공투본의 투쟁주체’로서 세워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대선 대응에서 범민중진영의 결집을 ‘후보단일화’로서만 파악하거나, 그 연장선에서 ‘공투본’을 단지 민중진영 내부의 ‘경선기구’ 혹은 ‘후보단일화협상 기구’(‘범추’는 이러한 기구로서의 성격이었다)로서만 파악하는 일부 진영의 태도는 현실 대중투쟁의 ‘외부’에 존재하는 자신의 조건과 관점의 반영임을 드러내주는 것밖에 안된다. 또한 대선투쟁을 ‘득표활동’으로 치환시켜버리거나, 자본주의체제하에서의 ‘선거’가 지니는 ‘일반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그 자체의 유의미성은 있을지언정 현재의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확장과 정치적 집중을 위해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내오지 못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 본질은 하나이다. 그것은 계급대립관계의 진전과 전선의 성격, 그를 통한 투쟁 주체의 형성과 발전보다는 자기 세력의 확장이 그것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민중 경선’은 대선투쟁을 전개하거나 바라보는 이러한 양 편향을 극복하면서, 대중투쟁의 정치성과 계급성(이는 현재 반신자유주의로 표현되고 있다)을 고양하고, 대중동력의 역동성을 살려나가는 정치적 공간과 마당을 창출하자는 적극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 시기 우리가 제안한 ‘민중 경선’은 단지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처럼 후보를 선출하고 확정하기 위한 절차나 ‘국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포퓰리즘적 정치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지난 87년 대선에서의 백기완 선거운동본부의 활동이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로 한단계 진전시키기 위한 선거운동이자 투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것처럼, 지금 시기 ‘공투본’의 의미와 필요성을 현실화시키자는 운동이다. 그리고 이를 아래로부터 대중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고, 강제해 나가기 위한 운동이다. 따라서 ‘공투본-민중 경선’은 목적과 수단이라는 관계이다. 목적없는 수단은 실용적일 수밖에 없으며, 수단없는 목적은 현실성을 담보할 수 없듯이 이는 분리해서 사고되어서는 안 된다.
3) ‘노동해방실천단’과 그것의 정치적․조직적 의미
위와 같은 대선시기 ‘공투본 건설-민중경선’이라는 정치적 기획과 전술을 현실적으로 관철시키기에는 많은 난관이 존재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 편향이 여전히 민중운동 진영 내에 크고 주도적인 흐름과 정서로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 그 하나이며, 따라서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대중적 힘’이 아직은 미약한 상황이라는 점이 또 다른 하나이다. 또한 ‘계급 정치’의 주체적 역량의 한계와 대중운동의 정치적․계급적 질적 획득의 지체는 이러한 양 편향을 확대재생산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공투본 건설-민중경선’이라는 정치적 기획과 전술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형성하기 위한 운동이자, 조직적 강제력이다. ‘공투본-민중경선’은 운동진영 상층지도부의 협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흐름 속에서만이 온전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즉 노동해방실천단은 공투본-민중경선을 가능케 하기 위한 ‘촉매제’의 성격을 지닌다. 아울러 노동해방실천단은 현재 전선의 성격인 반제․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앞장서서 실현하는 ‘투쟁부대’ 즉 ‘선봉대’이다. 따라서 노동해방실천단을 조직하자는 의미는 지금 정세 속에서 ‘노동의 정치’ ‘계급정치’를 실현하는 ‘정치기획’의 실천부대를 형성하자는 것이며, 그것의 ‘조직적 형상’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 지원 그리고 직접적 당원가입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고 그것을 바꾸자는 얘기도 많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 내용 비판 및 어떻게 주체적으로 그 흐름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문제점은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는 이것이 야기하고 있는 ‘정치의 탈현장화’ ‘현장의 탈정치화’에 있다. 이는 고전적인 당=정치투쟁, 노조=경제투쟁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의한 ‘양날개’에 근거하고 있고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가령 민주노동당이 사회당으로 대체되었다고 해서, 혹은 노동자의 힘으로 대체되면 그 방침은 옳은 것이냐?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잘못 이해하여 ‘개량주의, 사민주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식의 사고는 극복되어야 한다. 우리가 ‘민중의 해방은 민중의 힘으로’라고 천명한 것은 ‘대중정치’의 표현이자, 모든 ‘대리주의’를 배격하자는 것이며,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의 손으로라는 ‘노동의 정치’를 구현하자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꾸는 것은 단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의결을 거쳐서 바꾼다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실제 이를 실현할 정치의 흐름을 형성하고 이를 대중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노동해방실천단은 바로 이러한 흐름을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이것의 향후 조직적 전망은 그것의 형성이 대중의 자발성과 능동성에 기초했듯이 그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여러 난관과 조건에 의해 ‘공투본 건설-민중경선’이 현실속에서 구현되지 못한다 할 지라도 이를 추진했던 ‘노동해방실천단’의 운동은 그 자체로 계승되어 나갈 것이다.
비록 우리의 제안이 기존의 정치적 관념과 질에서 판단하면 많은 우려와 두려움, 아니면 오히려 기대감을 자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우리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출발점’에 서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2. 우리의 제안과 공투본을 둘러싼 모든 의혹에 답한다
1) 왜 그들은 ‘경악’하는가?
지난 9월14일 총회에서 노동자의 힘이 ‘전국공동투쟁본부 건설과 계급대중 경선을 통한 대선 참여 의사’를 밝히자 소위 남한의 진보 진영에서는 한 동안의 소란 끝에 이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 ‘참여 또는 불참’을 선택했다. 우선, 이에 제일 먼저 환영의 뜻을 밝힌 것은 민주노동당의 당내 좌파로 분류되는 세력들이다. 정윤광은 「‘노동자의 힘’ 제안을 적극 환영한다」를, 정종권을 비롯한 6명이 연서명한 「노동자 민중진영의 힘을 결집한 대중투쟁과 대선투쟁 체제를 구축하자」가 발표되었다. 이어 전국연합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민주노총 등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1차 예비모임이 10월2일 열렸다. 그리고 이어 자통협과 전농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반면 가장 먼저 참여를 결정했던 사회당은 한동안의 진통 끝에 끝내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 사회당은 9월15일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가칭)사회주의정치연합’(이하 ‘사회주의연합’) 건설과 더불어 ‘공투본’에 참여한다는 결정을 했으나 이것은 ‘사회주의 연합’에서 대선 후보를 결정한다는 오해(?)에 근거한 것으로, 애초 사회당의 주장인 ‘독자출마’를 전제로 한 수용의사 표명이었다. 사회당은 한 동안의 내부 조율 작업이 있었고 마침내 10월7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기간 좌파 통합의 진행과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선투쟁 지도부의 사퇴와 16개 시․도위원장단으로 구성된 비대위 체계로의 전환을 결정하였다. 이것은 곧 9월15일 중앙위원회 결정을 ‘번복’하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공투본’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월13일 중앙위원회에서 사회당은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소위 계급적 좌파진영 내부에서는 ‘공투본안’이 뜨거운 감자가 되어 떠올랐다. 특히, 사회당의 불참이 확인됨과 동시에 ‘노동자의 힘’이 여전히 이 안을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한 비판과 ‘경악’이 잇따랐다. 데마고기와 인신공격이 난무했고 애초 ‘공투본안’이 가지고 있었던 본 뜻은 사라진 채, 자의적으로 해석된 잣대에 의해 걸레가 되어 갔다. 이 ‘경악’은 그것의 데마고기적 비난과 인식공격성 발언을 제외하면 대충 핵심 논점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중 투쟁 없는 ‘범추’=후보단일화 논의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권영길 현 민주노동당 후보가 될 것이 빤한데 이에 참여하여 들러리가 된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여기서 전자는 ‘대중 투쟁을 통한 대선 돌파’를, 후자는 ‘독자 출마’를 주장하는 입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의혹’과 ‘데마고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입장들은 하나의 진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96-97 총파업 투쟁의 성과를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사회적 합의주의’-‘당/노조의 역할 분담과 양 날개론’에 대한 ‘적대성’과 ‘반정립’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기간 1기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보여주듯이, 그리고 ‘일어나라 코리아’가 보여주듯이 민주노동당의 당권파, 특히 현 대통령 후보 권영길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라는 정치방침을 근거로 노동자계급 대중을 ‘정치적 포로’로 만들어 왔으며 탈계급적인 ‘국민정당화’의 길을 걸어왔다. 따라서 이 ‘반정립’과 ‘적대성’은 역사적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것은 소위 계급적 좌파 진영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기를 생산해 내는 것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그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를 생산하는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폐쇄성을 고집하는 허약한 정체성이다. ‘대중 투쟁’?, 그것은 지난 역사 동안 노동자계급 그 스스로 끊임없이 만들어 온 것이며 ‘독자 출마’?, 그것은 민주노동당에 포로로 잡혀 있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의해 끊임없이 ‘반민주노동당이냐 아니면 친민주노동당이냐’의 선택에 의해 강요되는 ‘환멸’과 노동자계급 정치의 ‘지체’만을 낳을 뿐이다. 이 선택이 이데올로기적이든, 아니면 물리적이든 간에 현실적으로 ‘위협’이 될 때, 노동자대중은 움직이지 않으며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이라는 대계급전선의 분열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힘’은 애초 ‘공투본 제안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것은 노동자의 힘이 좌․우로 동요하거나 의회주의로의 견인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실질적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치를 생산해 내는 정체성’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이다. ; “의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실질적인 비판으로, 현실적인 힘을 가진 비판으로 전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사실, 노동자․민중 운동은 그간 ‘의회주의’를 비판해 왔으나 이를 실천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운동에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운동의 오류를 제거하는 작업은 ‘말’이 아니라 오직 ‘조직적인 힘’으로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번 ‘대선’을 이와 같은 물리적인 비판을 창출함과 동시에 노동자․민중 운동 그 자체로부터 우리의 정치적 전망을 검증받을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2) ‘독자 출마’와 ‘대중 투쟁을 통한 대선 돌파’,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노동자의 힘이 제안한 ‘공투본안’의 핵심은 1)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의 복원과 2)노동자계급의 ‘정치화’를 가로막고 있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대한 실질적 철회, 그리고 3)‘대선’을 계기로 한 계급대중의 ‘정치화’를 위한 조직적 단초를 형성해 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체 계급 전선으로 보면 기간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노동자계급’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장의 실리주의와 합의주의(타협주의)를 ‘대중 투쟁’이 아니라 역으로 대선이라는 계기를 통한 ‘정치화’로 돌파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독자 출마’와 ‘대중 투쟁을 통한 대선 돌파’는 본질적으로 기간 나타난 활동의 결과들이다. 그것은 현재의 계급 상태와 계급투쟁의 현지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첫째 ‘관념화’된 정치를 낳고 있으며 둘째, 자기를 재생산하는 ‘정파적 대립’만을 재생산할 뿐이다.
노동자민중회의의 이성민은 공투본은 좋지만 문제는 공선본이라고 하면서 “민주노동당의 목적은 공투본보다는 공동선거본부를 구성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의 힘 등의 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앞으로 공투본은 공선본을 위한 공투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동단체의 윤웅태는 “노동자․민중 진영은 실질적인 투쟁 단위를 구성하고 단일한 대응 기구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의 결합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이전에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노힘의 ‘공투본안’)은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소부르조아 운동을 하반기 정세의 중심으로 세우려는 시도라 볼 수밖에 없고 결과도 그렇게 드러날 것”이라고 하면서 “‘반신자유주의-반제반전평화’를 계급적 공투체로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중 투쟁을 통한 대선 돌파’(선거에 결합하지 않는 공투본)는 대선 시기라는 현재 국면의 특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있는 계급 대중들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현장으로부터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고양기이고 현장으로부터 투쟁이 조직된다면 당연히 ‘선거’는 ‘투쟁’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선거’는 끊임없이 ‘투쟁’에 의해 종속되도록 배치되고 조직되어야 한다. 이것은 애초 우리가 이전 선거 과정에서 ‘의회주의’를 비판해 온 핵심이기도 하며 이번 ‘공투본안’에서 ‘공선본’을 ‘공투본’ 산하에 배치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민주노동당’의 참여로 인해 결국 ‘경선에서 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그들이 말하는 ‘대중 투쟁을 통한 대선 돌파’의 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선거’ 그 자체에 목을 매는 선거주의적이고 패배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후보가 누가 될 것인가에 있지 않다. 우리는 이 결과에 모든 것을 걸고 있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현재 ‘패배’에 빠져 있는, 그래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제도권 정치의 장에서는 결과적으로 ‘개혁’(?)에 대한 거부와 더 극단적인 ‘극우보수’로 귀결되는 ‘뒤틀림 현상’…”, “투쟁하는 노동자․민중 운동 그 자체로부터 만들어지고 조직되는 ‘대선’이 되지 않”음으로써 “대중들은 여전히 정치적 무관심과 회의, 그리고 차선책으로서의 보수 정당의 품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뒤틀림 현상’(이상, 공투본 제안문)을 다시 ‘전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형식적으로만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규정하고 있는 정치 방침에 의해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지연시키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을 타파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명확하다. 9월8일 있었던 민주노동당의 당대회가 성원 미달로 무산되고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이루어진, 후보선출대회에서도 당원과 지지자 등 2천명만이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현장으로부터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불신’과 ‘회의’의 대상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이 우리의 ‘행복’은 아니다. ‘정파적 대립의 정서’는 ‘민주노동당’을 노동자계급투쟁의 진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악’으로 보는 적대적 대립의 관점을 생산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에 공식적인 지지․지원을 받는 정당이다. 노동자 대중들은 여전히 민주노총의 이 정치방침에 묶여 있다. 그것도 선진 노동자들이 그렇다. 그리고 대부분의 노동자 대중들은 민주노동당조차 ‘급진적(?)’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문제는 그들의 ‘불행’이 아니라 그들도 살고 우리도 사는,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정치화를 이룩해 내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사회당의 ‘독자 출마’와 같은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우리도 사회당 동지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 길을 걸으면서 헌신적으로 투쟁해 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선거주의’적 환상의 확산과 둘째, 정파적 대립의 확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내의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정치’에 대한 반목과 불신이다. 물론 이것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민주노동당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제출한 정치세력화=의회 진출, 96~97년 총파업 투쟁 실패를 노동자당의 의회 진출과 산별 건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조합주의라는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의회주의와 합의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회당이 ‘선거주의’ 또는 ‘의회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주의’란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선거’에 참여했기 때문에 ‘선거주의’인 것이 아니다. ‘선거’가 ‘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선거’만으로 하나의 정치적 행위와 정치적 발전이 결정될 수 있다고 보는 특정한 ‘행위나 관념’이 있을 때 ‘선거주의’이다. 그런데 사회당은 오직 ‘선거’와 ‘의회’를 통해서만 ‘민주노동당’과 분리될 수 있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여기서 ‘선거’는 전술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사회당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지점’이며 최종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간 ‘사회당’의 정체성을 문제시하며 이를 비판해 온 것은 이와 같은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회당은 이번에도 ‘독자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동일하게 민주노동당에 대한 반정립으로서의 ‘선거’ 전술(?)을 결정했다.
그러나 여기서 사회당은 민주노동당과 대립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당이라는 당명으로 이미지화되는 ‘당 인지도’와 ‘당원의 확보’이다. 반면 현장에서는, 특히 대중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여전히 민주노동당과의 형식적 규정에 매여 갈 것이며 노동자 대중들은 이 규정 안에서 형식적인 지지자로 남을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 대중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다. 그것은 형식적으로 묶여 있는, 자율적인 정치적 판단이 없는 무차별적인 대중으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의 분리 정립은 민주노총 내의 민주노동당 분파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들의 독선과 폐쇄성을 더욱더 확고히 하도록 할 것이다. 물론 대중들이 과감하게 떨쳐 나와 제3노총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현재까지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민주노총이 지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를 이어받고 있는 조직이며 ‘투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조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뿐만 아니라 그 역사를 다시 무화(無化)시키는 것이 가지는 노동자 대중 자체의 계급적 분열 효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계급 대중이 있는 곳에서, 투쟁하는 계급들이 있는 곳에서 모든 ‘정치화’는 시작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으로 총화되어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투쟁’과 ‘정치화’의 지점이 현실적으로 어디에 있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물이 없는 곳에는 물고기가 없다. 노동자의 힘이 ‘공투본’ 산하에 ‘공선본’을 두고 대선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현 정세를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즉, 대선 그 자체가 아니라 ‘대선 후보 결정이라는 경선’을 통해서 “현장의 노동자들이 그 스스로 대선 후보를 결정하고 대선 투쟁을 현장 투쟁으로부터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이 형식적인 정치방침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반자본을 지향하는 노동자들에게 그들 스스로 노선의 올바름을 ‘선택’하도록 하는 ‘정치적 자유’를 제공”하고 “노동자 계급의 투쟁 조직, 대중 조직의 실질적인 주체”(이상, 공투본 제안문)로 서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단지 ‘권영길 몸 대주기’(!)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여전히 ‘선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선거주의’의 데마고기에 불과하다.
3) 투쟁을 통해서 대선을 돌파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혹자들은 노동자의 힘의 이번 ‘공투본안’을 보고 ‘선거’ 참여가 마치 기간 우리가 주장해 온 ‘비제도적 투쟁정당’으로부터의 이탈인 것처럼 악선동을 늘어놓기도 한다. 마치 ‘비제도적 투쟁 정당’을 ‘반합 정치 조직론’이라고 규정하는 악선동처럼.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비제도적 투쟁 정당’은 선거 전술을 부정한 적이 없으며 기간 ‘선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누누이 ‘선거 참여’에 대한 우리의 원칙은 제출해 왔다. 첫째, 선거투쟁은 ‘득표’나 ‘당선’ 전략으로서 기획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현장투쟁’에 복무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활성화한다는 원칙하에 기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선거투쟁에서 ‘득표’나 ‘당선’은 목적이 아니며 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정치화’를 통해서 얻어지는 부수적 결과일 뿐이다. 목적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화’와 ‘정치적 주체’로의 조직화이다. 둘째, ‘정당법’에 따라 등록된 ‘의회 정당’과 ‘선거투쟁’은 ‘전술’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이런 원칙하에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따라서 지금의 입장은 결코 ‘이탈’이거나 부르주아적 ‘합종연횡’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이 ‘전술’이기 때문에 민주노동당과의 차별화에 주력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경선 결과에 ‘승패’를 맡기지도 않는다. 이것의 초점은 ‘득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금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당면하고 있는 질곡 상태를 계급적 대의라는 관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력으로 총화시켜 내면서 투쟁 속에서 대선을 돌파하려는 것이다. 적어도 맨 처음 이 제안에 화답했던 민주노동당 내의 좌파는 이를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정윤광과 연서명한 6인의 민주노동당원들도 ‘경선’을 민주노동당이 경선에 참여해야 하며 설사 사회당이 불참하더라도 노동자의 힘이 후보를 낸다면 ‘경선’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물론 ‘공투본안’을 수용한 제 세력들의 입장은 다소간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성민이 이야기한 것처럼 ‘후보 단일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세력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 점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그리고 참여 단체는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곧 결렬을 의미하며 그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안에는 분명 하나의 우려를 자아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선 결과와 상관없이 공동대선투쟁을 전개하는데 핵심이 결국 ‘계급적 좌파’의 단결과 ‘노동자․민중 투쟁의 조직’이라는 점이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애초 제안과 달리, 이성민이 우려하는 것처럼 공투본은 유명무실해질 수 있고 공선본의 기능만을 수행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투쟁’은 대선과 상관없이 일상적이고 항상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실제 대선 시기에 공투본을 제출했을 때, 그것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투쟁’과 ‘선거’를 결합시킬 수 있을 방안을 제출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성민의 ‘공투체’ 건설 제안은 적어도 현 시기에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이 의미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투체든 공투본이든 간에 그것이 ‘후보’를 규정하고 압박하고 ‘투쟁의 현장’으로 강제해 들어갈 것인가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계급적 좌파에게 주어져 있는 임무는 ‘경선 결과’에 대한 우려와 ‘투쟁’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대선 실천단’을 조직하고 이렇게 조직된 ‘실천단’을 통해서 이후 선출될 대선 후보를 강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정치적 차이’와 ‘입장’, 그리고 ‘누가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의 벗인지’가 드러날 것이다. ‘대선 실천단의 경선 후보’는 이 투쟁의 상징으로서 경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투쟁을 통한 대선 돌파’를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동자 계급과 투쟁하는 민중들을 하나의 단일한 투쟁 전선 속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록 입장이 다르더라도 사회당과 노동자민중회의, 기타 제 조직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렇게 대선 투쟁을 돌파해야 한다.
4) 선거투쟁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격’과 노동자계급 정당건설의 ‘초석’을 만들자
우리는 이미 ‘공투본 제안문’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정치적 입장을 밝혔다. ; “우리는 경선 과정에서 노동자․민중들에게 우리의 정치적 전망을 명확히 밝힐 것이다. 그리고 이미 ‘정치’적으로 조직되길 요구받고 있는 계급 투쟁의 질곡 상태를 실천적으로 극복해 가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이번 경선 과정을 통해서 모든 정치적 태도와 선택을 투명하게 드러낼 것이며 이를 통해서 결집된 ‘정치세력’을 모아 ‘노동자 계급 정당’ 건설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 ‘대선’을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한 ‘대대적인 반전’의 계기로 만들어 놓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주체화를 가속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제도’ 밖에서 제도의 경계를 확장하고 투쟁 속에서 노동자․민중을 정치적 주체로 조직하는 대장정의 출발이 될 것으로 우리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를 대선 때면 나타나는 이합집산이거나 ‘정파적인 태도’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파’적인 것은 그들이며 ‘대선’에 대한 무능력과 ‘패배주의’를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투쟁하는 세력이라면 ‘전국연합’과도 함께 할 것이다. 사회당의 이념성은 오직 ‘반조선노동당과 반자본’으로 표현될 뿐이지만 그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이 없는 오직 이념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일 뿐이다. 노동자계급은 계급 대중이 필요로 하는 현실의 투쟁과 실천 속에서 그들 스스로 단련되고 정치적 주체로 조직되는 것이다. 이념이 그 내용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한낱 추상적인 구호로 전락할 뿐이다. 사회당은 좌파통합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대중적으로 천명하였다.
하지만 그 통합이, 그리고 좋게 보든 아니든 노동자의 힘에 대한 적극적 제안의 표현으로 중앙당 권력을 비우고 당사를 준비하는 등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부르주아 정치꾼들의 지분배정과 자리다툼을 통한 협잡에 불과하다. 노동자계급 정당은 그렇게 만들어질 수도 없으며 좌파 통합 또한 그렇게 준비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마음을 다 비운 것’이거나, 그에 응하지 않는 노동자의 힘을 패권적이거나 종파적, 또는 애초 그럴 마음이 없는 것처럼 악선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 또한 현 상태의 질곡을 타파하기 위해 계급적 좌파의 단결이 무엇보다도 중차대한 과제라고 본다. 그래서 좌파 6단체 회의와 좌파 활동가 수련회를 개최했으며 사회당과의 테이블을 만들고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서로의 신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노동자계급 정당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가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두 가지의 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계급투쟁의 지형 속에서 그런 객관적인 임무와 요구가 주어지고 노동자계급 자신들이 ‘투쟁’을 통해서 그런 임무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는 ‘정치화’이며, 다른 하나는 그동안 분열되어 왔던 좌파, 특히 계급적 좌파 세력 내부간에 ‘계급정당’의 상과 운영 원리, 그리고 규약과 이행 노선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물론 이 경우 후자는 근본원리에 대한 통일이며 개별적인 사안들은 이에 근거하여 처리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대선 기간을 이 두 가지 조건을 확보하고 축적하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대선 후보 경선’과 ‘대선 투쟁’을 통해서 조직되는 노동자 대중은 ‘정치화’의 기회로, 그리고 이 와중에서 조직되는 좌파의 제 단체들과의 공동 투쟁과 협력은 ‘계급적 좌파’의 통합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번 공투본을 통한 대선 투쟁에서 민족주의자들, 또는 사민주의자들과 연대를 하지만 이것은 명백하게 조직적 진로에서 달리 한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우리는 한편으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노동자․민중의 공동 투쟁 과제로 받아 안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교두보’로 이번 대선 투쟁을 볼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의 정치적 입장과 차이를 분명히 함으로써 이 공동의 전선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과의 최종적 귀착점은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이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 정당건설을 향한 우리의 투쟁은 비록 현시점에서 입장을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열려 있다.(10.21.)
2부 토론
김윤철 민주노동당 상임정책위원
민주노동당이 큰 그릇이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민노당 내부에 다양한 논의와 세력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릇이 작다기 보다는 단일한 그릇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하다.
쟁점이 되었던 후보자 등록방식 문제와 관련하여서 합법적 대중정당의 현실적 유용성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본다. 공투본의 정당성과 전제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왜 공투본 결성에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하는 민주노동당내 좌파 역시, 민노당 후보등록이라는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권영길 후보가 청와대도 다녀오는 것 등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될 수도 있을 터이긴 하지만, 합법적 대중정당으로서의 제도적 진입이 전체 진보정치세력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진보세력들이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으로 결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다원화, 분화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모든 정치조직들이 비제도적 정당이나 운동정당이 되어야 하는 것도,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로서는 민노당이 합법적 대중정당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힘이 비제도적 정당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간의 변증법적 결합을 모색해 보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민노당에 대해 비제도적 정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다원화되어 있는 사회를 고려하면서 각자의 정체성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선거라는 정치적 장에의 개입을 통하여 사회적 인정투쟁을 벌여왔고, 그 과정에서 그 성과가 어떻든 간에 자신의 역량에 대한 검증을 받고자 하였다. 세력들 간의 연대와 결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각자가 얼마나 사회적 인정을 받았고 검증을 받은 세력인가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노동자의 힘 역시 운동권 내부정치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그 대중들이 누구냐는 문제가 해명되어야 하겠지만―직접 만나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고 자기역량을 검증받기 위한 정치플랜들을 실행하는 것이다.
끝으로 아까 범추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 문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민노당의 패권주의가 전제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민노당 혼자서, 그리고 민노당의 후보 그 자체로 대선정국에 힘있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라는 논의가 내부에서 존재했다. 즉 범추에 대해서도 민노당은 공투본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동일한 선상에서 전체 운동과 함께 할 큰 틀의 구성을 모색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가 타이밍인데, 우리 모두가 타이밍을 계속 놓쳐왔다.
강명수 사회당 정책위원장
현재 본인은 사회당 정책위원장이지만 이 직책을 맡게 된지 불과 며칠밖에 안되어서 아직 노동자의 힘이나 민노당 내부의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한 실정이다. 그래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겉에서 비판을 하기는 쉬운데 안에서 무슨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방식의 비판은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 공투본을 제안해주신 고민택 위원장님도 계신데, 이 글을 쓸 때와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지금은 사회진보연대와 노동자의 힘이 공투본에서 탈퇴하는 상황까지 와있다.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이 글의 뉘앙스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민택 위원장은 글에서 사회당을 의회주의의 경향이 강하다는 것, 공투본에서 빠지는 것 역시 정파이기주의라고 본다.
왜 사회당은 공투본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노선을 가겠다고 천명했는가! 나는 독자노선과 독자후보 전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회당이 지금까지 강령적 수준에서 추구해 온 것은 반조선노동당, 반자본주의이다. 전자는 주체사상 계열, 민족해방계열에 대한 모종의 경계심, 즉 (정부에 대해)비판적 지지로 흘러가는 경향에 대한 비판이다. 사회당은 대통합이 아니라 소연합을 원한다. 민노당이 공투본에 들어오기 때문에 사회당이 반대했다기보다는 민노당 내부의 잠재적이고 현재적인 비판적 지지론자들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사회당 내부에서는 14차 중앙위원회에서 선거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는데, 그 때 가까스로 후보를 내고 선거에 참여한다고 결의하였다. 반드시 독자로 가겠다는 의미는 대통령 선거를 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대선에서 대중투쟁을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 것인가와 관련해서 사회당이 할 일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우선은 무조건적으로 합쳐서 비판적 지지로 나아갈 가능성을 막아야 한다.
당은 대중투쟁과 관련해서 노동자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합법적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공기업사유화를 대중이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위해서, 노동자 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해나가는 일을 하고자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고민택씨가 발표하신 바에 대해서는 단순한 비판으로 논의를 끌기보다는 앞으로 더욱더 발전적인 논의를 기대해 보는 심정이다.
사회자
합법적 공간에서 계급적 대중투쟁 전략으로 이해해달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바로 질문을 받고자 한다. 간단한 질문을 해주시기 바란다.
금융노조 정치위원장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들었다. 이런 얘기들이 신문에 나올 때 현재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의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비제도권이 더 진보적이라고 본다면 더 진보적이라고 판단되는 조직을 덜 진보적인 조직을 끌어내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불가능한지 여쭤보고 싶다.
고민택
그게 가장 핵심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다만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비제도가 더 진보적이고 그렇지 않은 게 덜 진보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제도적 투쟁 정당이라고 해서 의회 진출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아까 민노당에서 진보정당과 비제도정당은 각각의 역할이 있고 변증법적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이후 좀더 공부를 더 해야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민주의 정당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망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역할 분담은 더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고 본다. 현재 한국 사회의 계급역학, 정치지형을 보았을 때 투쟁정당, 운동정당, 노동자계급에 기반을 둔 정당이 필요하다.
또 현재의 상황은 다원화된다고 했는데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 같다. 오히려 양극화되고 있는 상황으로, 노자의 대립이 전면화되고 있다. 정체성, 소수자 등에 대한 논의가 물을 흐려놨는데 명백히 양극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민당은 역할분담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막는 방해자다.
강명수
노자간의 갈등과 대립 현상은 많이 보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87년에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측면은 힐퍼딩이 금융자본론에서 이야기하듯이, 경기가 좋을 때는 임금투쟁이 활성화되고 노동자 투쟁이 활발해진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경기가 나빠질 때는 노동자투쟁이 어렵다. 계급타협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을 하려고 해도 잘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객관적 인식이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당이 현실적으로 현 단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계급정당을 만들기보다는, 계급대중투쟁을 통해서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계급적 갈등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현 단계에서 계급정당, 사회주의 정당을 구상하기 위한 당조직론적인 입장을 과잉 강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로서 사회주의적 운동은 할 수 있다고 본다.
김윤철
다원화, 분화 문제에 대해서는 양극화와는 다른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양극화는 맞다. 다만, 노동부문 내에서도 비정규직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단순히 양극화되었다고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양극화가 정당이나 정치조직 형태의 외화에 있어서도 양극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고려해야 한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지금 현재가 분열인가. 환경, 생태, 여성, 노동 등의 다양한 문제영역이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해나가는 가운데, 연대의 ‘주체’가 형성되어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자유주의의 문제 자체가 다양한 영역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각각의 대응을 단지 분열로 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긴급한 정세적 임무에 대해서는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 이때 공투본의 문제 의식은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러한 건강한 문제의식이 어떻게 이어져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비제도적 정당/제도적 정당 간의 기능적인 역할 분담을 이야기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합법적 대중정당과 비제도적 정당을 지향하는 세력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겠느냐를 이야기한 것이다.
김세균
보수는 단결하는데, 진보는 분열된다고 하셨는데, 보수정당도 싸움을 벌인다.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할 때는 뭉치는 것일 뿐이다. 진보진영이 당 차원에서는 분열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민중전선을 위해서 연합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계급연합정당을 표방한다. 민중연대 전선과 같은 형태의 당이다. 사회당은 민중연대 전선은 함께 하지만 선거연합은 못 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자의 힘은 당은 분리되어야 하는데 민중연대와 선거연합은 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채만수
한국노총에서도 독자정당을 창당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직접 결합했는지 모르겠지만 금융노조에서 오신 분께서 소개해주시면 좋겠다.
금융노조 정치위원장
실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진솔하게 한국노총의 한 사람의 간부로서 고민해왔던 바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다. 배경은 한국노총은 정치방침을 노동자 출신의 의회진출을 정치세력화로 생각해왔다. 정책연합인 것이다. 97년 대선에도 그 방침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보수정당이 너무나 반노동자적이고, 노동자출신 의원의 행보가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도 설득되지 않는다. 민노당의 약진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8월부터 선언하고 위로부터 논의해왔다. 금융노조도 같이 고민을 했다. 한국노총 내의 정치세력이 다 흩어져 있다. 호남은 민주당, 영남은 한나라당, 일부는 민노당을 지지한다. 이런 흩어짐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그 자체로 명분이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일단 하자는 입장인 것 같다. 11월3일 창당을 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갈 것인지는 저 자신도 확신하기 어렵다. 금융노조는 민노당과 결합해서도 활동해왔다. 노동자 정당은 노총의 독자세력화가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독자세력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때 의미가 있다. 궁극적 목표는 민노당과의 통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질적 활동가들을 찾고 있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김형탁
사회당에게 질문 드리고 싶다. 사회주의를 명확하게 표명하셨고, 그 내용으로 반자본주의를 주창했는데, 사회당이 표현하는 사회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내용을 두 가지 강령으로 표명하셨는데, 그 중 하나가 반조선노동당이다. 나는 이것을 국가주의적 사회주의를 원치 않는다고 이해를 했다. 그런데 공투본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민노당에 비판적 지지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표명하는 바와 모순되는 것 같다. 입장을 듣고 싶다.
노동자의 힘은 각각의 단체가 가지고 있는 입장을 통일시키겠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각각의 조직이 가지고 있는 처지와 조건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으면 한다. 그랬다면 같이 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강명수
반조선노동당, 반자본주의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반자본주의는 추상적으로 사회주의의 실천형식이다. 사회당에서 시도하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 반체제적인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변혁하려는 일종의 운동이다. 반조선노동당 노선은 조선노동당의 당과 국가의 이론적 관계에 대한 - 조선노동당의 세계혁명의 완수라는 목적론적 소명의식과 법적 형태로서의 국가의 관계- 철학적 비판과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사회당의 이론적 부분은 위의 이론적 전제로부터 당연히 도출되는 남한에 대한 필연적 독소조항을 비판하면서 현실적으로 남북과의 외교와 관련해서는 좀더 합리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여왔다. 따라서 이 노선은 한 편으로는 철학적인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것이다.
고민택
양보하지 못한 것은 노동자의 힘의 내부 상황 때문이 아니라 민노당의 5년 행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다. 민노당에 대해서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못한 것이다.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주체를 형성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건 책임공방이 아니고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후에 공동투쟁은 같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