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철 의/ 연구위원
민주노조의 구성상 특징과 조직발전방향
1. 구성상 특징
생소한 주제라서 깊이 생각하지는 못하였다. 단편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급히 써서 잘못된 부분도 있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으리라 판단한다. 즉시 바로
잡아주시기를 바란다. 구성상의 특징이나 조직발전전망과 같은
포괄적인 주제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안되므로 문제의식을
가졌던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부족한 부분을
토론에서 보완해주시기 바란다.
1) 민주노조의 성격규정
남한 사회에서 민주노조라 하면 다음의 것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 전체 노동자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계급성)
- 조직운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민주성)
- 자본과 권력에 대한 분명한 투쟁의지로서의(투쟁성)
- 자본과 권력에 대한 자주적인 운영이나 의지를
말하는(자주성)
- 이 사회의 근복적인 변혁을 지향하는(변혁성)
- 다른 변혁운동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연대성)
이는 물론 일반화된 개념이기는 하나 실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즉 민주노조가 위와 같은 덕목을 갖추지
않거나 실천하지 않을 경우 민주노조라고 부를 수 없다고 본다.
같은 사업장이나 현장 내 비정규직의 가입을 받지 않는 경우
계급적 단결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총회나 대의원 대회를
형식화시켜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고 사회적
합의주의를 주장하며 투쟁성을 사실상 부정하기도 한다.
조합주의에 빠져서 근본적인 변혁을 거부하는 등 비록
민주노총에 소속된 민주노조라 해도 무늬만 민주노조인 경우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2) 남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성에 따른 특수한 조건을 갖게
되었다
즉 노조의 운영이나 조직발전 전망도 이러한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어용세력에 대하여 투쟁해온 역사
권력과 자본에 기생하는 어용노조와 이들의 총본산인 한국노총의
어용적 행태에 반대하고 이들이 뿌려놓은 잘못된 풍토를 바꾸려
투쟁해온 과정이 있다. 이런 조건은 아직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최근 민주노조운동에서 한국노총의 어용성을 과소평가하고
개혁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혹은 연대투쟁을
강조하거나 서로간의 체면 때문에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거나
한국노총을 약화시키려는 노력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한국노총의 반노동자적인 행태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신선대, 우암부두에서 운송하역노조 지부건설시 방해와
테러
- 철도 직선제투쟁에서 개입과 깡패를 동원한 폭력사태 3차례
- 주5일제 법제화 관련한 노동조건 개악(주휴일 무급화, 월차,
생리휴가 폐지 등) 합의 시도
- 복수노조 금지조항 폐지유예에 합의(전임자 축소와 맞바꿈)
- 변형근로시간제(탄력적근로제, 근로자파견법 등 노동법 개악에
합의) 등
이것이 이른바 박종근 위원장 체제 이후 개혁적 행보를 걸어
왔다는 한국노총의 실체이다. 개혁적 포장을 한 뒤 이런 짓을
하기 때문에 사실은 더욱 위험한 것이다. 노골적인 어용시절보다
더욱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기회주의적인 한국노총인 것이다.
(2) 쟁취한 것이 아닌 주어진 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
“민주노동조합은 쟁취하였으나 조합원 자격은 그냥 주어졌다.”
남한 민주노조운동은 이런 역설을 할 수 있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건설하였지만 많은 조합원들은 이 투쟁의 성과에
무임승차하였다. 따라서 조직노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이 주어진 노동조합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투쟁에 소극적이거나 방관하던 조합원, 회사측에 장악되어 있는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이나 민주주의에 항상적으로
도전한다. 집행부는 민주파가, 현장이나 대의원은 회사가 장악한
조건에서 치러지는 많은 사업장 내의 총회나 대의원 대회는
형식만의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있다.
투쟁에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의결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들까지
인준투표에 참여하여 가결을 시키거나 회사측 조합원이 일정한
비율에 이르러 고착화되어 민주노조운동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3) 기업별 노조로서의 특징
남한의 노조운동은 80년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치하에서 형식만의
산별노조체계에서 기업별노조체계로 강제 개편 당하였다. 이에
따라 민주노조운동도 기업별노조체계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부정적인 면으로는,
-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약하고 종업원 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점
- 본격적인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경제적인 요구에
머무는 점
- 조합원 수가 많은 대기업 노조가 운동의 중심이 되어
미조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못하는
점을 들 수 있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 직선제 선거, 파업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찬반투표 및 합의안에
대한 인준투표 등 직접 민주주의 정착
- 지노협 건설 및 전노협 건설, 그리고 산별연맹, 민주노총
건설에서 나타난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단결의식
- 현장조직운동 및 현장투쟁의 전통과 작업장 투쟁의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최근에 산별노조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업별노조체계에서 갖게된 강점을 무시하고 산별노조의 강점만
강조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남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성이나 특수성을 무시하는 것일 뿐 아니라 기업별노조에서
지켜온 직접민주주의 기풍의 훼손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기업별노조=저품질 운동, 산업별노조=고품질 운동’이라는
식의 저급한 논리로 기업별노조와 산업별노조를 정형화시키는
논리는 문제라고 본다.
3) 구성상의 특징
민주노총 산하 단위노조들의 경우 규약상 다음과 같은
의결기관들을 가지고 있다.
(1) 조합원 총회
대부분의 민주노조에서 규약상 최고의결기관으로 두고 있다.
위원장 등 임원의 선거 및 소환, 규약의 개정, 쟁의행위의 결정
및 합의사항의 인준 등 가장 중요한 안건을 다루고 있다.
총회민주주의는 직선제 선거와 더불어 남한의 민주노조운동을
지켜온 중요한 전통이라 판단한다. 아직도 어용사업장들에서는
직선제 선거제도의 쟁취가 노조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요구로
되어 있다.
단위노조에서 총회는 어떤 식으로든지 가능하지만(예컨대
조종사노조 같은 경우는 일주일에 걸쳐 찬반투표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연합단체나 지역노조에 이르면 이 또한 만만치
않은 문제가 된다. 총연맹이나 규모가 큰 산별연맹의 경우
총회를 소집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정세가 아니고는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민주노조를 건설할 때 엄중한
탄압과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직선제 선거제도를 쟁취했던 만큼
연합단체나 총연맹도 과감히 직선제를 실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처음 가는 길은 가보지 않고는 어떤 난관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단위노조나 연합단체를 막론하고 조합원총회가
형식화되거나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파업찬반투표는 조합원총회에서 결정하지만 파업 등 쟁의행위의
종료는 사실상 위원장이나 소수 지도부의 독단적 결정에 따르는
일이 많아졌다. 합의안에 대한 인준투표를 하기는 하지만
형식화되기가 쉽고 총회에서 이를 뒤집는다고 해도 쟁의는
사실상 끝나버리기가 쉬운 것이다. 많은 경우 회사측과 집행부가
가결운동을 하고 현장조직과 어용세력이 부결운동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직접민주주의도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관철된다. 조합원들은
일년에 한두 차례 총회에 참석할 뿐 일상적인 조합운영에서
배제된다. 조직규모가 큰 대기업 노조나 철도, 발전산업,
한국통신 등 전국에 걸친 네트워크 사업장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런 경우는 노동조합의 의사결정과 집행이 사실상 집행부 등
소수 지도부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선거나
임단협 투쟁시기 외에 조합원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때가
언제 있는가?
작업장이나 현장을 사실상 회사측에 빼앗긴 경우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총회나 대의원대회는 집행부의 결정을 뒤집거나
투쟁기금 사용을 동결시키거나 하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혹은
회사측이나 어용세력이 방해하여 아예 총회를 봉쇄하기도
한다.
결국 현장을 노동조합이, 혹은 현장조직이 장악하기 위한 계획과
실천을 내와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사실상 노동조합
집행부에 집중된 권한을 현장에 이관하는 제도적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및 1980년대 일본 국철노조는 단위지부에
협약체결권을 주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현안에
대하여 지부에서 독자적인 투쟁을 하고 현장관리자와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국철노조는 이 같은 방침을
운동방침으로 삼아 현장간부들을 교육하고 모범적인 현장협약을
모아 단체협약으로 체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런 방침은
많게는 30여 만, 적게는 20여 만명에 이르는 거대조직인
국철노조가 현장을 장악하는 강력한 조직력을 갖게 만들었다.
1980년대 중반 국철 사측은 국철노조 무력화에 앞서 현장협약을
무시하며 도발을 시작하였고 일본 민주노조운동의 최후 보루인
국철노조를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
(2) 대의원대회
대의원대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느냐 여부도 결국은 현장을 누가
장악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총회나 대의원대회 결의를
충실히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반노동자적인 것이라고 할
때 민주주의의 실천이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측이
총회는 극력 방해하면서도 대의원대회의 소집을 방관한다면 그
대의원대회는 회사측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의원대회는 조합원총회보다 더 회사측에 장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의원 선거에서 총회보다
회사측의 뜻이 관철되기 쉬운 까닭이다.
많은 경우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집행부의 의지에 이끌린다.
민주파 대의원이 다수인 경우라 하더라도 집행부안이 부결되는
경우가 적고 결국 관철되는 일이 많다. 정보의 제한적인 공급,
대의원대회 의장을 위원장이 맡는 일, 회의준비를 집행부가 하는
일, 선전홍보수단의 독점과 같은 조건 때문에 특별한 경우
외(직권조인, 대세에 어긋나는 잠정합의 등) 대의원대회에서
집행부의 뜻과 다른 결의안을 쟁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집행부안이 관철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입안→집행위원회
의결→대의원대회 의결→조합원총회 의결과 같은 과정을 통해
하향식으로 관철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향식의 설득과
일방적인 선전선동이 이루어진다. 이 또한 조합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 된다.
남한 민주노조운동의 경우 대부분 대의원대회 의장을 위원장이
겸임하고 있다. 단위노조, 산별연맹, 지역본부, 민주노총이 다
그렇다. 조합원수가 일정규모에 이르러 관료주의가 발생하기
쉬운 규모라면 의결과 집행을 분리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특별히 비상한 시기에는 비대위나 쟁의대책위 같은 전권기구도
설치되는데 일상적인 대회까지 위원장이 주도하는 것은
조합민주주의를 형식화시키기 십상이다. 적어도
정기대의원대회만큼은 의결과 집행을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의결과 집행을 분리할 수 없는 작은
규모의 노동조합은 대부분 조합원총회로 안건을 처리하면
된다.
대의원의 선출도 대부분 단위노조 대의원대회에서 파견대의원
형태로 선출하고 있다. 단위노조 지도부를 당연직
파견대의원으로 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총회를 열지
못하더라도 연합단체나 총연맹의 대의원을 현장에서 직선으로
선출한다면 대의원대회의 구성을 좀더 민주적으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회의준비도 부실해서 대회 당일 안건을 알리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에 안건을 공개하기도 하나 미리 안건을 배포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조직배포나 우편을 통해 배포해서라도
안건을 사전에 공개해야 할 것으로 본다.
(3) 중앙위원회, 집행위원회, 운영위원회 기타
전국적인 규모의 노동조합이나 연합단체일 경우 중앙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다. 중규모 노조의 경우 운영위원회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회의기관들은 잘못 운영하면 과두제 형태로 전락할
염려가 있다. 중앙위원들의 배정이 대의원대회에서 선출하기는
하지만 연합단체의 경우 가맹조직 대표, 단위노조의 경우
지방본부나 지부의 대표가 사실상 전권을 가지고 선출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몇몇 대표들과 조율(?)을
마치면 무난히 그들의 입장을 관철할 수 있게 된다.
4) 현장조직의 문제
많은 경우 현장조직들도 민주노조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어
있다. 유력한 현장조직의 경우 집행부에 성원을 파견하는가 하면
집행부를 대중적으로 견제하여 조합 내 민주주의를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동조합만으로 뭔가 충족이 되지 않으니까 현장조직운동이
발생하였다. 즉 노조가 어용일 때는 노동조합을 민주화시키기
위해서 노민추 같은 현장조직의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또한
민주노조라 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활동하기
어려우니까 현장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남한에서
민주노조는 임단투 외에 다른 활동을 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전투적인 노조일수록, 회사측과 대립이 심한 노조일수록―즉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에 충실한 노조일수록―활동이 불안정하게
된다. 또한 조합원의 직접적인 요구와 현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다보면 중장기적인 활동전망을 갖거나 목적의식적인
활동을 하는 데 한계를 갖게 된다. 예컨대 비정규직이나
연관업체 노동자를 조직하고자 해도 당장은 안되는 일이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현장조직은 집행부보다 안정적이고
목적의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현장조직의 경우, 현안문제에 매달려 중장기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활동하지 못하고 조합원이나 집행부를
독려하거나 비판하는데 집중하는 경향을 본다.
최근 평의회운동이나 전국적으로 단일한 현장조직을 만들자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이 또한 필요해서 하는 주장이라고 본다.
그러나 각각 다른 조건에서 출발한 현장조직들을 하나의
조직만으로 포괄할 수는 없다고 본다. 뭔가 중심이 되는
투쟁과제나 활동의 주제를 놓고 현장조직들을 묶어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비정규직이나 미조직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활동의 중심을 두거나,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중요한 과제(현장투쟁의 강화, 혹은 노동자 교육의 강화 등)를
중심에 놓고 현장조직들을 묶어 세우는 것은 어떨까? 현실의
필요에서 출발하지 않은 관념적인 주장으로 현장조직들을 묶어낼
수는 없다고 본다. 특히 투쟁의 과제나 활동전망을 중심에 놓지
않은 조직형식만의 주장은 일부에서만 관철되거나 아예
논쟁만으로 끝날 위험이 많다고 생각한다.
5) 미조직, 비정규직노동자의 문제
남한 민주노조운동의 최대의 약점은 비정규직, 미조직노동자들을
방치하는 데 있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임무로 하는
노동조합이 지금처럼 비정규직, 미조직노동자들을 방치하고
있다면 이를 두고 더 이상 민주노조운동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남한의 1,300만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이미 과반수를 넘은
지 오래다. 한국노총에 속해 있거나 노동조합이 없는
미조직노동자 수는 더욱 압도적이다. 민주노총으로 포괄된
노동자 수는 5퍼센트 미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국통신계약직 등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으로 이제
비정규직노조운동이 민주노조운동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방침은 세우지만 실천은 없거나 부족하고, 예산이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이다.
민주노총이나 산별연맹, 혹은 산별노조들의 경우 그래도
비정규직운동을 지원하고자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위노조들의 경우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에 갇혀
있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가입을
거부하거나(한국통신노조), 비정규직을 정규직 고용안정의
안전판으로 쓰거나(현대자동차노조의 예), 구사대가 되어
비정규직노조를 탄압하는 등(대우캐리어노조의 예) 반노동자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은 대부분 고립되고 분산된다.
비정규직노조운동은 인력과 재정이 어려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며 겨우 조직을 지탱하고 있다. 훈련된 조직활동가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비정규직노조를 묶어 세우려는 모범적
실천은 보이지 않는다.
미조직사업장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노총에 속해있는 노동조합의
민주화는 순전히 그 사업장의 활동가나 노동자들에게 맡겨져
있다. 노동조합이 아예 없는 현장에서도 그 사업장 노동자들의
자생성에 의존할 뿐 목적의식적인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남한의
경우 노동자들의 투쟁시 파괴력이 큰 전력, 철도, 체신, 항만 등
국가기간산업들은 오랜 시간 한국노총 및 어용노조의 그늘아래
민주노조 운동의 불모지였다. 한국노총의 개혁적 행보이래
민주노조운동은 이 같은 미조직사업장 혹은 어용노조사업장들의
민주화투쟁 지원사업을 사실상 버려왔다. 최근 들어서는
어용사업장과 함께 뭔가를 자꾸만 해보려는 흐름이 본격화되어
뭐가 옳고 그른 지도 헷갈리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2000년
공공부문연대투쟁, 전국공공부문노조협의회의 움직임 등이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을 계속 방치한다면 “노동자계급 총단결”이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에 비추어 민주노조의 정체성을 의심받게 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미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거나
이들을 조직하려는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기는커녕 정규직
조합원들의 이기주의나 편협한 우월감 뒤에 숨어 “조합원의
정서가 그렇다”, “총회나 대의원대회에서 가결한 것을 따른 것
뿐”이라는 식은 좋게 말하여 대중추수주의이고 나쁘게 말하면
운동을 포기한 이익단체의 간부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6) 민주노조운동 내 어용집행부의 문제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경우 한국통신, 서울지하철노조 등의
어용집행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2002년 민주노총
총파업기간 중 노사평화선언(서울지하철노조),
직권조인(서울지하철, 한국통신계약직노조) 및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가입거부 등 반노동자적 행태를 보여왔다.
이들은 걸핏하면 맹비납부를 거부하거나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 등 각급 회의를 보이콧하여 유회시키거나 하는 등의
행위로 연맹을 약화시키고 운영을 파행으로 이끌었다. 문제는 이
같은 조직들을 연맹이 적절하게 제압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는
연맹의 물적 기반이 취약하기도 하고 기업별노조운동의 악영향
아래 규모가 큰 단위노조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또한 탄압이 강한 남한 민주노조운동에서
민주노조운동이 그만큼 불안정한 조건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 정권과 자본에 맞서 사활을 건 투쟁을
벌였던 노조들이 정부와 자본의 집중적인 탄압에 무력화되거나
사실상 어용화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노동자적인
행위를 벌이는 노조 집행부에 대하여 단호히 처리하는 기풍을
세워왔으면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한다. 또
연맹이라는 조직형식으로 보아 단위노조 전체를 징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는 하지만 이 또한 문제라고 본다.
말썽을 일으킨 집행부는 징계하고 조합원이나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는 민주파는 보호하는 규약을 만들어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판단한다. 노동법이나 노동부의 판정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합법주의가 이 같은 조항의 신설을 막는 근본원인이 아닐까?
7) 민주노조운동 내 합법주의
지나치게 제도언론을 중시한다든지 사회적 합의와 같은 부분은
접어두기로 하고 운동 내의 합법주의적인 경향에 대하여
언급하기로 한다.
가장 치열한 비정규직 투쟁이나 정리해고사업장의 투쟁조차
회사나 법원이 쳐놓은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최근에 정권과
자본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탄압이 이른바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같은 법적 대응이다. 또한 유력한 집회장소에는 여지없이
회사측이 집회신고를 내놓거나 집회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한다. 이를 어기면 어김없이 벌금형이다. 보통 1건당 50만원씩의
벌금을 부과하는데 많은 경우(사측과 이 부분에 대하여 합의안을
쟁취하지 못할 경우) 이 벌금을 순전히 개인이 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집회장소를 찾지 못해 거리를 떠돌거나 1인 시위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크게 보면 파업투쟁에서 찬반투표를 하게 강제하는 것,
직권중재나 조정행위, 냉각기간의 문제 등 노동관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노동자들의 투쟁을 법적 테두리에
가둬 두고자 하는 것들이다. 가장 전투적인 노동조합들도 대부분
쟁의발생신고, 찬반투표, 냉각기간 등을 거쳐 파업에 돌입하며
파업날짜는 항상 미리 예고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권이나
사측은 물량의 조절, 비상시 수급계획 등 대비를 하게 되며
노동자 투쟁의 승산은 적어지게 된다.
제3자 개입금지 등 대표적인 노동악법들은 대부분 이를
의도적으로 어기거나 불가피하게 어겨서 이를 폐지하였다.
합법이라는 미명아래 금지된 혹은 제한된 노동악법들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돈도 없고
절박한 처지에 몰린 비정규직이나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이를
부담시킬게 아니라 총연맹이나 산별연맹, 혹은 대기업 노조들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투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2. 조직발전 전망을 생각한다
1)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과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산별노조 건설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금속, 보건의료,
과학기술, 자동차운전학원 등 크고 작은 산별노조가 이미
건설되었고 건설과정에 있거나 건설을 논의하고 있는 조직들도
적지 않다.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로서 노동자들이 계급적 단결을 통해 그들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산업별노동조합의 건설이 가장 유력한 방안이다.
그러나 누구나 동의하고 있듯이 “산별노조의 건설이 만능은
아닌 것이며 이를 통해 현재 나타나는 민주노조운동의 여러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산별노조 건설이나 건설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의 사례를
들어보면,
“17만명 중 3만명 결의. 자동차, 조선 등 핵심사업장들의
미참여, 창립대회 전날까지도 구성못한 임원진, 민주노총 최대
산별연맹의 결의에 따라 출범하는 ‘산별노조’의 창립대회라
하기에는 실망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산별노조의 상과 연맹 내 정파의
비타협적인 주장이 겹치면서 증폭된 소모적 논쟁의 당연한
결과였다. 기대감과 우려가 뒤섞인 채, 논의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대의원’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표출되기도
하고 그로 인한 ‘오기’가 교차하면서 금속노조는 출범했다.”
김승호 금속노조 정책연구국장, 「금속노조 건설과정과
현황」, ꡔ공공연맹 제1기 산별학교
자료집ꡕ.
단편적인 인용이기는 하지만 누가 보아도 구성원들 사이의
충분한 토론과 동의과정이 부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준비과정도 부족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별 투쟁보다 산별교섭틀을 강조하는 경향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병원에 종사하고 있는 인원은 약 30만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중 보건의료노조가 조직하고 있는 노동자는
4만 정도, 한국노총 산하의 의료산업연맹은 약 8천을 조직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병원협회 가입병원
514개사의 30% 정도인 150개사에 노조가 조직되어 있다. 따라서
1사 1표의 의결구조에서 병원협회가 사용자단체로 나서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할 사항은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대규모
병원노조의 경우 대부분이 보건의료노조에 소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박태주, 「산업별 단체교섭에 대한 단상」,
ꡔ노동사회ꡕ 2002년 8월호.
보건의료노조가 산업별 교섭을 할 상대가 없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병원노동자들은 단결하여 있는데 사용자들이
개별화되어 있다면 오히려 개별 병원자본들과의 투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병원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나 산별 파업이 지속되고 위력을
발휘한다면 병원자본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에 조응하는 교섭틀을
만들어낼 것이다. 요컨대 산업별 투쟁의 결과로 산업별 교섭이
생기는 것이고 그 교섭에서 요구를 관철하느냐 여부는 투쟁력의
정도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산업별 교섭을 요구하고
투쟁한다고 하여 산업별 교섭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교섭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관철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2) 따라서 목적의식적인 공동투쟁, 연대투쟁 혹은 동맹파업 등을
통해 순리대로 산업별노조를 건설해 가는 것이다
공동투쟁이나 연대투쟁, 동맹파업만으로 산업별노조가
건설되지는 않는다. 또한 조직형식만을 놓고 아래로부터 위로,
혹은 위로부터 아래로 충분한 논의와 절차를 거쳤다고 하여
산별노조를 건설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언제나
투쟁을 중심에 놓고 산별노조 건설을 사고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94년 전지협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의 약칭이다. 1994년 3월
16일 창립되었으며 민철노련으로 발전하였다가 1999년 민주노총
공공연맹으로 통합해산되었다.
공동파업투쟁을 예로 들어보겠다. 1994년 3월 16일 전지협
창립이 있었고 6월 23, 24, 25일에 걸쳐 철도,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차례로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이때의
파업을 놓고 당시 전지협이나 세 조직의 간부들은 “전지협이
없었더라면 공동파업투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전지협의 건설은 단위사업장노조 혼자
싸우기에는 벅차다고 느껴 적극적으로 연대파업, 혹은
공동파업을 모색하던 당시의 정세와 조건, 그리고 3사 간부들의
필요에 따른 것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투쟁을 전망하고 투쟁을
중심으로 사고하였으므로 전지협은 창립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임에도 공동파업투쟁을 벌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전지협 파업투쟁 뒤 공노대가 만들어졌다. 아마 전지협
파업투쟁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통칭 20만명을 자랑하던
공노대 전국공공부분노동조합대표자회의를 말한다. 출범당시
17만명의 조합원을 포괄했다.
는 투쟁다운 투쟁을 벌이지 못하고 공공연맹 현재 존재하는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맹과는 다른 조직이다. 공노대를 중심으로
건설하였으며 민철노련, 공익노련, 공공연맹 등 3조직이
통합하여 현재의 공공연맹(전국공공운수서비스노동조합연맹)이
만들어졌다.
으로 축소되었다. 공공연맹 또한 의미있는 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하였다.
조직규모는 작지만 자동차운전학원노조, 경기도노조와 같은
소산별노조의 건설사례를 보면 더욱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몇몇
운전학원에서 노조건설투쟁이 성공하자 전국의 운전학원에
노조건설투쟁이 불길처럼 번졌고 매우 쉽게 소산별노조로 뭉칠
수 있었다.
단위노동조합의 투쟁이나 연대투쟁 혹은 공동투쟁이 당시
조건이나 정세의 산물이라고 볼 때 도식적인 산업별노조의
건설경로를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식으로 끝나거나 형식만의
산별노조 건설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공공연맹은 3단계 과정을 거쳐서 공공대산별노조의 완성을
목표로 하며, 단계별 이행과정에서 유사연맹과 통합을 추진하고
공공부문 대표성을 획득해 간다. 공공노조의 1, 2단계
이행과정에서는 업종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가 병존하고
3단계에서는 완성된 형태의 공공산별노조를 출범할 수 있도록
한다.” ꡔ공공연맹 제1기 산별학교 자료집ꡕ,
312쪽.
그러나 공공연맹이 지금과 같은 체질로 산업별노조를 건설한다고
해서 위력적인 산업별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공공연맹은 누구나 지적하고 있듯이 가장 큰 문제점이 조직 내
어용집행부의 문제이다. 그것도 과반수에 가까운 한국통신,
서울지하철노조가 어용집행부라서 맹비납부, 회의불참, 결의한
사업의 미집행 등 조직 내 기풍을 흐리는 일을 밥먹듯이
저지르고 있다. 따라서 공공연맹은 중장기적으로 산별 건설을
기획하고 고민해야 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조직 내 기풍을
쇄신하고 체질을 혁신하는 작업을 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용사업장의 노조민주화세력 지원(서울지하철, 한국통신 등),
미조직사업장의 지원(도시철도, 인천지하철 등)사업 등 조직 내
기풍의 쇄신을 먼저 이루고 그 다음에 산업별노조의 건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당면과제를 이루지 못하고 진행되는
산업별노조의 건설은 그야말로 모래 위에 쌓은 성이 될 것이며
사실상 추진도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3) 기업별노조의 한계는 산업별노조의 건설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기풍의 쇄신과 조직의 노선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기업별노조체계 하에서 쌓여온 여러 가지 모순들은 산업별노조의
건설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별노조의
건설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주장이나 교육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업별노조의 건설은 어떤 부문이나 단위에서는
당장의 문제이다. 즉 운전학원이나 경기도노조, 과기노조 혹은
보건의료노조, 금속산업노조들은 이미 산업별노조가 건설되어
있거나 건설중에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대산업별노조의
건설은 아직도 요원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산업별노조가 원래
미숙련공들이 주체가 되어 조직하였고 이를 통해 계급적 단결을
실현하였듯이 남한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미조직노동자들을
조직해내느냐의 여부가 진정한 산업별노조를 건설해내느냐 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남한에서 민주노조운동의 당면과제는 기풍과 노선의 문제라고
판단한다. 또한 현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87년이래 엄중한 탄압을 뚫고 지켜온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직권조인이 비일비재하고 총회나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소수의 집행부가 독단적으로 뒤엎는가
하면, 사실상 부결된 내용을 교묘한 작업을 통해 가결을 시켜
내기도 한다. 정권과 자본의 엄중한 탄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적인 기풍을 운동 내에서 스스로
부정하기도 한다.
정부나 자본측은 전혀 합의할 의사도 없고 탄압만 일삼고 있는데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 결과는 언제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로 내몰고(정리해고제 도입), 비정규직을 확대하는가
하면(근로자파견제), 노동강도를 살인적으로 강화시켜
온(변형근로시간제 도입) 것이다. 탄압을 강화하면 맞서 싸우는
투쟁적 기풍을 강화해야 하고 합의가 안되는 분위기면 판을
뒤엎고 싸워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현장강화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가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단투나 총파업투쟁은 물론 현장투쟁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현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산업별노조의
건설은 형식만의 산별 건설, 운동의 상층이 주도해서 만들어가는
산별 건설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내용을 채우면서
당시의 조건과 정세에 맞는 산업별 투쟁을 고민할 때 대중의
동력을 받는 산업별노조의 건설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4) 산업별노조의 건설은 투쟁의 파괴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운수산업에서 활동하는 노조간부라면 이런 꿈을 꿀 것이다.
“철도, 지하철, 항공, 택시, 버스, 화물트럭이 한꺼번에
총파업을 하면 나라가 마비될 것이다. 살아생전 이런 파업을 꼭
한번 조직하거나 보고 싶다.”
따라서 공공대산별이 잘 건설된다고 해도 운수산업의 산별노조는
또 따로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중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차근차근 인적교류나 아니면
공동사업을 벌여 나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조직,
비정규직을 조직하려는 노력을 목적의식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동일산업의 미조직이나 같은 작업장의 비정규직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데 무슨 파업의 위력이 나타나겠는가?
발전산업노조의 38일간 총파업에도 한국전력기술과 같은
연관업체 노동자들이 발전기의 고장을 몽땅 수리하고 있으므로
정작 전등 하나 꺼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운수산업별노조 건설이 당장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철도노조는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지 못한 채 구조조정과 사유화
반대투쟁에 몰려있다. 지하철노조들을 묶어 세울 구심인
서울지하철노조는 어용집행부 아래 노사협조주의와 비민주적인
운영에 내부투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운수산별을 전망하는
간부나 활동가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각 단위노조들의
당면과제를 해결하는데 함께 하는 것이며 지금 현재의 운동에서
산별노조의 정신에 따라 투쟁을 실천하고 노선을 정립해가는
일이 될 것이다.
5) 비정규직 문제: 산별노조를 먼저 만들어놓고 하자?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투쟁기금을 조성키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막상 정규직 중심의
산하노조들이 별로 협조를 하지 않아 조성된 기금은
미미하였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문제가 민주노조운동의 화두가
되었다. 심지어 한국노총에서도 비정규직 조직사업을
당면사업과제로 놓고 있다. 물론 생색내기만이고 실제
협상에서는 비정규직을 희생시켜 주5일제를 쟁취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의 조직문제가 이 정도로 이야기되는 것만
해도 많은 발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실은 당위적인 주장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조직하고자 하는 방침들이 실천에 있어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캠페인형 집회나 투쟁, 투쟁자금을
모아주는 것(한통계약직투쟁), 일시적인 집회를 통한 지원 등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투쟁하는 소수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제외하고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대다수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그러한 지원조차 그림의 떡이 되는
것이다.
정규직노동조합의 목적의식적인 현장실천프로그램이 있지
않고서는 비정규직의 조직화사업은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식당이 좁다고 하여 식당을 따로 쓰게 한다든지,
현장에서의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을 바꿔놓지 않은
상태에서 외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진정한 단결은 구두선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산별연맹이나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데 모범적
실천을 보여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각급 의결기구에서의 배려,
예산과 인력의 배치, 비정규직 투쟁에 책임지고 결합하는 자세
등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내용들일 것이다.
6) 이주노동자, 지역노조의 문제
궁극적으로는 모든 노동자들을 산업별로 조직해내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노조로 조직하는 경로를 밟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는 지역노조 형태가 적합하지 않은가
판단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특정지역(마석, 시화,
안산, 구로공단 등)에 밀집되어 있다. 이런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틀은 아무래도 지역노조 형태가 아닐까 한다.
지역노조로 조직하여 민주노총 지역본부에 편재하였다가
조직형식이 내용을 다 담지 못할 경우 그때 가서 산업별 형태로
재편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아니면 특수한 사정에 따라
산업별 형태대신 지역노조를 계속 지켜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시화, 안산공단처럼 소규모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곳도 지역노조
형태나 산업별 지역노조형태로 편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또한
1~3인 정도가 일하고 있는 업종들―주로 서비스 판매업종―도
초기에는 지역노조 형태로 편재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 같다.
그러나 산업별노조가 관료화의 위험이 있다고 하여 모든
노동자들을 지역노조 형태로 조직하자는 식의 주장은 과도한
것이다. 관료화의 도전은 그것대로 따로 극복할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3. 결론
민주노조운동에서는 기풍과 노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한 민주노조운동의 강점인 현장성과 투쟁성을 어떻게 훼손하지
않고 산업별 조직으로 계승 확대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서
산별노조운동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투쟁이 있고 나서 교섭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위력적인
공동투쟁이나 연대투쟁 혹은 동맹파업을 조직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당시의 조건과 정세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위력적인 투쟁의 틀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96년 파업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서울지하철, 한국통신, 사회보험 등 공공5사투쟁은
각 사업장들의 성격이 판이한데도 “투쟁할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공동투쟁을 조직한 것이었다.
산업별노조가 가장 위력적인 형태의 노조라고 하여도
어용집행부, 기회주의적 집행부를 몽땅 끌어안고 가서는 전혀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진정으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전선의 확대를 고민하고 진짜 싸울
상대를 찾아다니는 것이며 그로 인해 투쟁의 파괴력을 키우기
위해 늘 고민하는 것이다.” 한/노/정/연
1부 토론
1부 토론
김형탁 민주노총부위원장
발제 자료를 사전에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발제
내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토론을 하기보다는 문제제기의 형태로
말씀드리겠다. 앞서 발제된 두 분의 글에 대해서 한 두 가지
정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민주노총이 ‘만주노총’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나도 들었다. ‘만주벌판’은 아무런 방향 없이
투쟁 목표 없이 찢어져서 움직이는 경향을 일컫는 듯 하다.
실제로 그런 경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발제자(이철의)는 관료주의적 경향, 계급타협주의적 작풍이
조합원들로부터의 괴리 현상을 낳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투쟁을 열심히 했는데 아무런 결과도 담보하지 못하는 투쟁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문제제기도 존재한다. 민주노총은 투쟁을
하는데 실제로 노정교섭을 통해서 성과를 쟁취하는 것은
한국노총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이 바라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문제제기이다.
투쟁이 작은 투쟁으로 전락하고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상당하다.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를 잡아먹을 수 있는
호랑이라면 현재 민주노총이 당면하고 있는 모습은 호랑이에게
쥐잡는 훈련만 열심히 시킨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간부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활동하지만, 작은 승리에 만족하고 작은
패배에 치명상을 입고 있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만주노총으로 불리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투쟁을 하지 못해서 괴리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큰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또 김세균 소장님은 민주노총이 의회주의적 정치노선을
뒷받침하는 디딤목이라고 평가하셨다.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기반으로는 민주노총이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행방의 나쁜
결과가 민주노총의 책임인가. 민주노총은 투쟁과 선거운동의
결합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의회주의적 경향이라고 비판하면,
대중투쟁이 활성화되지 못 할 경우 민주노총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두 가지 과정이 결합되는 기획을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문제이지
의회에 진출한다고 해서 그것을 일방적으로 의회주의적
노선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음으로 공공부문 투쟁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다. 심각한 투쟁을
벌이는 지부는 민주노총에 총파업을 요구한다. 중요한 투쟁에
대해 총파업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총파업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공기업
사유화에 대해서는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투쟁하는 사업장과 민주노총이 이를 이끌어가는 전략과 기획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제게 요청했던 토론의 내용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현재
민주노총에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바가 기업별 노조주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 중심이라는 것이다. 연맹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서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있다. 그래서 기업별 노조를
산별노조로,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함께 하는
노조로 나아가려고 한다. 산업별 노조에 대해 교육을 하면서
기업별, 산별노조 장단점 비교하는 자료를 주로 활용한다.
기업별 노조의 장점은 현장성, 민주성이다. 단점만 아니라
장점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을 계승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노조 운동이 전투적, 투쟁적으로 오게 된 장점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기업별 노조의 장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도 직권조인
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관료화된 노조도 다수이다.
그렇다면 현장성과 민주성을 기업별 노조의 장점으로 보아야
하는가. 오히려 한국의 노조운동이 87년 대투쟁을 통해 만들어온
과정 속에서 현장의 조합원과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다음으로 의장과 위원장의 겸임 문제를 살펴보자. 나는 의결과
집행을 분리하는 것이 오히려 관료화를 부추길 수 있는 소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집행단위가 의결단위의 결정을 무시하지 않고
다 따를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다. 위원장이 의장을
맡는 것은 의결단위에 참여하는 동지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는,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분리할 경우, 의결단위가 집행단위를 철저하게 구속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것으로 관료화를 부추길 수 있다.
또 연맹, 총연맹 대의원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문제에 대해서인데
직선 선출이 반드시 민주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민주성과
직선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전주에 들렀는데
대공장의 대의원들을 조합원이 직선으로 선출하였다. 그런데
상집 단위의 결정이 대의원에게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대의원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
이전에 각종의 위원장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급선무로 해결하고 차분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산별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다. 전통적 산업분류표
상의 분류가 희석되고 있을 정도로 산별, 업종간의 벽이 상당히
낮춰지고 있다. 실제로 화학섬유 사업장과 금속연맹 사업장의
하는 일이 정말 다른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동차유리는 화학섬유인가, 금속노조인가. IT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처럼 분류 영역이 흩뜨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통합의 분위기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노조도 그런
통합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산별교섭의 문제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하나는 산별교섭의
법제화에 대한 요구이다. 다른 하나는 산별교섭을 법률로서
담보를 받는다면 내부의 민주성이 담보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투쟁으로 쟁취해야한다. 현재
민주노총에서는 전자를 요구로 하고 있다. 법제화에만
매몰된다면 많은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투쟁을 통해서 산별노조를 만드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순리대로
될 수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일 때의
경험에 비춰보면, 두 군데에서 통일 교섭을 했다. 축협,
증권산업이 그것인데, 통일교섭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은 투쟁
속에서 계기가 생겼다. 축협은 농협과의 통합의 문제에서 축협
중앙회에서 단위 지부들을 지원했다. 증권노조 역시 점심 시간에
개장하는 문제로 증권산업노조가 증권회사 사용자들과 교섭을
했다. 함께 교섭틀을 만들고 임단협에서도 유지되었다. 올해는
증권사의 사정이 힘들다보니 경총과 증권노조가 교섭을 했다.
통일교섭을 쟁취할 수 있는 유리한 계기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조의 합법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측면에서는 동의하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민주노총에서 불법파업을 하고 있다. 냉각기간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판에서의 투쟁과 단위사업장에서의 파업을
동일하게 불법으로 밀고나가야 한다는 것은 무리다. 이 정도의
문제 제기로 토론을 마치겠다.
김승호 사이버노동대학 기획위원장
김영수 동지의 발제문, 이철의 동지의 발제문은 사전에 꼼꼼히
읽어보지 못하고 소장님 발제문은 오늘 아침에 읽었다. 충분히
토의할 수 있는 준비는 못했지만 김 소장님에 대해서는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바탕으로
이야기하겠다.
나는 소장님과 90% 정도 생각이 같다. 그러나 10% 차이가 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차별화를 해 보고자 한다. 우선 전반적으로 볼
때 소장님은 현 시기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신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춘다. 저는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객관 정세를
인식함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통일적으로 연관지어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압축해서 얘기하면 현 정세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전지구화 해 가는 과정 곧 전지구적
자본주의화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또 소장님은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도 노동 유연화라는 한
지점의 중심성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저는 신자유주의를 세
가지 측면의 총체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하나는 제반
생산수단의 자본화를 전면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다.
공기업 사유화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일종의 종획운동이다.
둘째,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상품화한다. 교육과 의료 같은 공적
서비스, 공기와 물, 장기와 성의 상품화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 유연화를 통해 착취의 고도화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총체적으로 바라본다면, 노동의 유연화를 중요시하면서도
그것에만 치우치는 경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와 관련해서도 금융의 세계화가 일면적으로 강조되지
않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세계화 과정을 금융자본이
주도한다는 점은 사실로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 과정은
금융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면서 금융 부문뿐 아니라 실물 분야도
전지구적으로 통합된다. 또 상품시장뿐 아니라 생산도 통합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경제의 통합은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족국가간에 위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제3세계의 경제 재식민지화 과정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제
영역만이 재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국가의 구조와 기능 역시
재구성된다. 예컨대 그 동안에는 일정하게 존재해 오던
민족국가의 긍정적 기능 즉 민족 공동체의 보존이라든가
노동자계급에 대한 보호라든가 하는 기능은 점차 소멸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이렇게 하나의 총체적 과정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대응 또한 총체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나온
글을 보면 한노정연은 노동 유연화의 측면에 방점을 두는 것
같은데―그 측면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생산수단의 자본화, 생산물의 상품화, 민족경제의
재식민지화 등과의 관계 속에서 어느 하나를 특권화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주체의 실천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 언급하겠다.
노동운동이 그 동안 변화하는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데 동감하며, 관료화와 개량화의 문제가 심각했다는 데
대해서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심층적인
지점에 대해서도 짚어져야 한다고 본다. 노조 운동이라고 해서
사상성, 이념성을 접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야말로 자본과 정권이 바라마지 않는 것이고 누누이 역설해
온 바다. 우리 노동운동에 그 동안 사상적, 이념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90년대 초반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우리 운동에서
근본변혁에 대한 패배주의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그와 더불어
자본의 세계지배전략이 변화하면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확장이
가속화되고(이것이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 열풍이었다.)
이것을 관철하고자 경제, 정치, 문화 등의 제 영역에서 자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민주화
이행’이라고 잘못 이해해 왔던 것이다. 지난 10년은 민주화
과정이 아니라 자유화 과정이다. 이를 민주화로 착각하면서 우리
운동 내에서 근본 변혁에 대한 지향분만 아니라 민주변혁에 대한
지향마저 포기해 왔다. 사회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공공연하게
변혁하자고 나서는 노조나 노동운동단체를 별로 보지 못해 온
것이 사실 아닌가. 이와 같은 사상과 이념 전반의 패배주의,
청산주의의 문제를 들추어내고 다같이 인정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변혁에 대한 신념과 전망을 회복하는 것, 그것을
재구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비로소 개량화, 관료화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활동가들의 패배주의, 청산주의도 문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 자신에게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대중들 역시 자유화의 혜택(?)을 누렸다. 비록
독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층에 주로 국한되었지만 말이다.
대중에 대해서도 이제 사상적 차원에서 비판, 토론, 대결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히 지도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거칠게 표현하면 대중도 타락해 왔다. 주식투기 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눈감고...
이런 점들을 종합해볼 때 운동의 정체(停滯)를 다각도로 성찰해
봐야 한다. 이철의 동지가 기풍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나는 기풍
가운데 투쟁적 기풍의 문제와 더불어 윤리적 기풍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성찰되어야 한다고 본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말한 바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지고 있는가? 왜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진실되게 밝히고 있는가? 이론과 실천에서 명백히
잘못했을 때 비판, 반성하는 풍토가 있는가? 이런 윤리성이 없이
대중을 사상적으로 설득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변혁노선의 문제와 관련해서 언급하겠다. 한 동안
변혁적 사상, 이념을 청산, 포기하고 운동이 진행되어 왔는데
이제 그것을 회복해야겠지만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운동이 고양되던 시기에 풍미하던 사상과 이념 및 노선을
복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객관적
상황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노동자 대중의 의식적`조직적 역량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하는 주객관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서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창조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첫번째로, 정치운동에서만이 아니라 노조운동에서도 나름의
사상적․이론적인 입장을 가지고 활동하도록 되어야 한다.
지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에 걸친 노동운동의 폭발적
고양기는 투쟁의 선두에 서서 초보적인 선전․선동으로
대중들을 떨쳐나서게 했던 시기로, 노동해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노동해방을 외쳤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이런 수준의 준비로 또다시
운동의 고양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활동가, 지도부,
간부들의 사상․이론적 지평을 넓히고 풍부화하는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대중의 바다를
향해서 자신 있게 나아가야 한다. 교육과 선전의 수준이 한 차원
더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얼마 전 공무원노조 전남본부에서 노동자의 철학에
대해서 강의했는데,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유물론, 주체철학
등의 내용을 요약하여 강의한 적이 있다. 국가기구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이 탄압을 뚫고 공무원노조를 건설하고 있는데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공무원 노조의 간부, 조합원들은 그 정도
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철학과 사상의 수준에서
준비되지 않으면 협소한 자기이익을 넘어서 자신의 계급의
이익과 대의를 위해서 떨쳐나서기 어렵다. 보편적 인간 해방의
투사로, 피억압 민중의 호민관으로 나서는 것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지난 시기 우리 노동운동은 자본과 정권의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는 문제를 주로 고민하는
수준이었다면(노동해방이란 말은 대체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모든 종류의 착취
억압을 철폐하고 인간 일반을 해방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도 일국적 범위를 넘어서 전
지구적 수준에서 인간을 해방하는 문제를 받아안아야 한다.
지금은 정말 전지구적이고 세계사적인 위기 상황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래 가장 크고 심대한 공황이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다.
이 공황을 타개하고자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제국주의 세력들이
제3세계 노동자 민중을 향해 약탈 공세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노골적으로 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위협은
위협에 그치지 않고 실전으로 확대될 것이 뻔하다. 그리고
한반도는 이런 위험의 한 복판에 놓여 있다. 이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총체적이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고찰하고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한다는 각오와 결의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이용호 발전노조 울산화력지부장
집행부에서 참석을 해서 같이 토론하면 좋았을 텐데 일정 때문에
못 나와서 죄송하다. 발전노조 파업이 조합간부만의 활동,
조합원들이 같이 하지 않는 측면이 있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번 파업은 집행부의 의지보다는
조합원의 의지, 조합원들이 같이 했던 파업이라고 본다.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하는 바람에 조합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해고자 복직, 조합원
징계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장의 탄압으로 2기 공투본
결의대회에도 발전노조가 결합하기 힘든 상황이다. 발제에서도
연대, 산별노조 강화하는 것이 논의되었다. 현재 조합원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공공 3사가 파업에 들어갔지만 같이 끝내지
못한 것 때문에 연대에 대해 신뢰를 잃고 연대의식이 취약하게
되었다. 그것을 교육 등을 통해서 강화시켜야 연대활동에 동참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발전할 것이다.
다른 문제를 짚자면, 파업기간 동안에는 공공연맹 쪽에서 교섭을
많이 해주셨는데 마지막에는 총연맹 차원에서 교섭을 했다.
그런데 이호동 위원장과 총연맹이 교섭과정 속에서 공유가 안
되었다. 정부, 언론의 플레이에 당한 것이다. 총연맹에서 협의한
내용을 이호동 위원장에게 알릴 때 언론에서는 이미 합의된
것으로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파업은 투쟁은 민주노총에서 하고, 교섭의
성과는 한국노총이라는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공기업은 한국노총 소속이 많은데 우리 파업의 성과로 우리는
탄압을 받지만, 그 쪽에는 실리적인 것을 주었다. 조합원들은 이
파업을 통해서 나쁜 것을 보게 되었다. 이점이 걱정이다. 해고자
복직, 조합원 징계 해소, 조직복구를 통해서 노동자의 문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발전노조의 현안 문제이다.
플로어 질문
사회당원
민주노총 김형탁님께 질문드리고자 한다. 얼마 전 민교협의
토론회에도 나오셨는데 그때 헷갈리던 부분이 오늘 명확해졌다.
총파업이 남발, 철회되는 문제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제출하기 때문에 하나의 목소리로 모아내는 것이
어렵다는 심정을 토로하셨다. 대중조직 내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모아내는 시기와 지도부가 결단하고
밀어부쳐야 하는 시기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비해 민주노총이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정치방안은 배타적으로
민주노동당 지지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지도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 두 가지가 상충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총파업은
밀어부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 의사수렴을 충분히
하려고 하는지, 어떤 부분을 강력하게 수렴하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금융노조 정치위원장
첫번째 소장님께 질문하고 싶다.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의
폐기를 강하게 말씀하셨다. 현실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노동운동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에 적어도 동조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회주의 폐기 이후의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의회를 통한 정치세력화가 기본이라고 본다.
소장님께서는 변혁적 정치세력 중 어떤 것이 대안이라고
보는가?
다음으로 발전파업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금융노조는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금융노조의 2000년 2차 파업은
발전노조와 비슷했다. 그래서 발전노조에 격려방문을 여러 차례
했다. 당시 금융노조 파업에서는 고용안정도 문제지만 합병을
강제하는 금융자본의 문제도 있었다. 금융노조는 99년부터 IMF의
본질을 폭로하면서 투쟁하고, 법원에 제소도 하여 국제적
관심사로 끌어내기도 했다. 금감위 점거 농성을 하면서 정부가
IMF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하는 것 역시 관치금융이라고
비판했다. 7월에 파업을 통해서 합의를 끌어냈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12월 강제합병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발전파업도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 노총과 같은 내셔널 센터가 현장의 사업장의
문제에 끌려다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나는 것 아닌가. 발제 때
김영수님께서 코사투는 1년 전에 싸움을 기획한다고 말씀하셨다.
전체 노동계급을 위해서 어떤 싸움을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양노총이 연대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민주노조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대중이 타락했다고 하셨는데 그걸 타락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삶의 현장에서 체험한 것으로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면서 이론을 얘기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어용보다 노동조합이 계급적 이익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적 의제로 제대로 된 싸움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들에게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그
희망과 비전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문제가 있더라도
산별노조가 아니면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김형탁
부위원장 의견에 동의한다.
정당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단일 정당에서
힘을 결집해야 한다고 본다. 투쟁의 방식을 미리 계획해서
계급적 이해와 연결시키고 교육하는 투쟁으로 노동조합이
사회세력화를 해야 하지 않는가. 진보진영의 국가발전전략도
중요하다. 자본가들은 그것을 심어주지만, 진보진영은 당장의
유연화 문제만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를 동원해서라도
전략을 가져야 싸우는 사람도 힘이 실려서 싸운다. 아울러서
진보언론을 키우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노동운동 발전할 것이다.
최병윤 서울지하철조합원
김영수 동지에게 질문하고 싶다. 발전노조가 파업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신생노조이다보니 어용적, 기회주의적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파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그들이 현장에 물의를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공공연맹에서 그것에 대한 문제를 대비하지
못했는가. 공공연맹은 투쟁이 끝난 뒤 자신들의 투쟁의 정당성,
이후 재구축에 대한 준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다음으로 김형탁 동지에게 질문하고 싶다. 2기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현장의 활동가로
있는 사람의 압장에서는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산발적
전투에 대해서 총연맹에서 모두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중장기적 조직 발전 과정 속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발제자 토론자 답변
김세균
민주노총이 투쟁을 많이 하는데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이것은 실리주의적 경향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자본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문제는 싸우지 말고 실리를
챙기자는 것으로 큰 투쟁 무용화론이다. 나는 사회적 조합주의를
비판했는데, 그들의 논의는 경제위기 시기에는 임투를 벌이지
말고 협조하자는 것이다. 작은 투쟁하지 말고 큰 투쟁을 하자는
얘기를 하셨는데 모순적이라고 본다. 왜 실리주의적 경향이
생겨나는가. 민주노조 운동이 큰 투쟁을 잘못 조직해왔기
때문이다. 큰 투쟁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주는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큰 투쟁을 잘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목적의식적 정치적 노력과
결합시켜야만 넘어설 수 있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 지지를 정치방침으로 결정하고
있는데 그것을 폐기하지 않는 이상 의회주의 노선을
뒷받침해준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김승호 선생은 조심스럽게 세계화를 총괄적으로 보자는
얘기를 하셨는데 찬성한다. 오늘날 제국주의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반대투쟁과 제국주의
반대투쟁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데,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
제국주의 반대투쟁의 핵심이다. 민족국가간의 위계, 제3세계
재식민지화가 진행된다는 논의에는 찬성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국적 자본뿐 아니라 3세계
내부 자본의 이해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이
3세계 자본을 하위파트너로 편입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적
세계화와 민족국가와의 투쟁이 핵심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자본과
전세계 민중의 투쟁이 핵심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지만 사민주의 대안을 내어놓는 사람은
금융세계화를 핵심으로 둔다. 민주적으로 규제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을 노자관계를 중심으로 본다면
중요한 것은 노동에 대한 공격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뿐
아니라 생산과정의 유연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또 김승호
선생은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패배주의를 돌이켜보고, 대중의
타락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1990년대 패배주의는
80년대 노동운동을 했던 학생출신들이 노동자계급의 일부로
융합되었다기보다는 급진화된 소부르주아적 인텔리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들은 현존 사회주의 몰락을
겪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변화시키면서 떨어져 나갔다. 199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 발전사를 보면, 대중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은
성장, 발전해왔다 또, 대중은 의식적으로 지배이데올로기를
수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의 담지자로서 모순적
존재이다. 노동자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계급이 해체되는 것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락했다는 평가는 노동자계급의
상층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노동자 상층은 포섭되는 반면,
하층은 배제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산별노조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자면, 산별이 아니면
돌파할 길이 없다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교해보자. 전자는 산별노조가 잘 되어 있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계급투쟁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있는 곳은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다. 산별노조와
노동자계급의 투쟁성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은 모든 투쟁이 산별 중심이고 총연맹은 협의체 수준이다.
독일의 노총은 권한이 없고 모든 투쟁은 산별 수준에서
벌어진다. 국가는 중립적 존재로 가정된다. 따라서 산별노조
체계로 간다고 하더라도 전국적 수준의 총연맹에 권한을 주어야
한다.
김승호
동의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타락은 집중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상층에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 조직률이 하강하고 있다. 특권화된 노동자들은 돈 내고 몸
대지 않는다. 사상적으로 많이 무너졌고, 여기에 상층지도부가
함께 했다는 것을 평가하지 않고서는 정치세력화도 산별노조도
희망이 없다.
이철의
관료주의는 기득권과 타성이 결합되는 것이다. 발제문에서
제시한 6가지 덕목, 운영원리 하에 상층지도부가 타성으로 젖는
것을 아래에서 흔들지 못하면 관료주의로 귀결된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흔들어서 타성을 포기하도록 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엎어버려야
한다.
김형탁
현시기 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가 문제는 논의가 길어질
것이기 때문에 차치하고, 배타적 지지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과정은 대의원 대회라는
의결 기구의 과정을 거쳤다.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하려면
대의원대회를 거쳐야 한다. 사회당이 대중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도록 당부하고 싶다.
변화와 혁신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어떤 선거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몇 마디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제를 해야할 것이다. 저희 지도부가 당선된 지 2달이 지났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곧바로 투쟁을
안고 가는 상황이다. 차분하게 투쟁을 기획하고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부에서 여러 가지 공방이 존재한다. 그러한 공방
속에서 변화와 혁신을 어떻게 수행해 나갈 것인가는 지도부의
역량에 달린 것이라고 본다. 책임 있게 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리겠다.
김영수
발전노조 파업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공공연맹에서 고민은
했지만 실질적 기획, 집행에서는 역량의 한계가 있었다. 파업
투쟁을 전개하는 것 자체도 연맹의 역량을 전반적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조건이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