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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2002년 대선 투쟁 평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82호
유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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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2002 대선 투쟁 평가

‘공투본-실천단’ 전술을 중심으로

유 영 주/ 전 노동해방대선실천단 사무기획국장


1)

1. 들어가며

2002년 대선 투쟁은 과거에 비해 여러 측면에서 다른 조건에서 시작되었다. 97년 대선은 외환위기에 따른 자본의 위기를 노동에 전가하는 신자유주의 공세가 이제 막 공격의 칼을 벼리고 있는 시기에 치러졌다. 2002년 대선은 지난 5년간 가속화되어온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의 안착화와 이를 집행할 지배세력의 안정적 권력재편이라는 성격을 띠고 진행되고 있다. 97년 대선은 96~97 총파업투쟁 이후 아래로부터 요구된 정치조직 건설의 흐름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97년 대선 시기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의 실천은 민주노총의 대통령 후보 결정과 함께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1)로 모아졌고 선거 후에는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이에 비해 2002년 대선은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 세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각각 2004년 총선을 내다보며 대선 목표를 설정하고, 후보를 낸 상태에서 대선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맞는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실천은 매우 역동적인 양상을 보였다. ‘노동자의힘’은 9월 17일, 하반기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을 분리하지 않고 공동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건설을 제안하였다. 7월에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선거투쟁 중심의 ‘2002 대선 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범추)’가 무산된 바 있어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사회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공투본 결성을 위한 예비모임을 구성함으로써 공투본은 하반기 정세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2) 공투본 예비모임은 10월 2일 1차 모임이래 7차례 진행되었으나 10월 23일 노동자의힘이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를 둘러싸고 공투본 제안철회를 결정한 6차 예비모임을 기점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한편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대선 실천은 크게 합법정당 활동과 대중투쟁으로 돌파한다는 입장, 그리고 공투본 전술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대선이 끝난 후 보다 대중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겠지만 합법정당으로의 대응이나 대중투쟁 중심의 대응에 비해 공투본 전술 중심의 대응은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주체적 조건과 상태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공투본에 대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이해가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면서, 그리고 이 전술을 수행한 주체의 역량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공투본-공선본-실천단’으로 표현된 정치방침은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속하는 모든 정치세력의 계급적 태도를 확인해 주었을 뿐 아니라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전술 수립과 운용 과정, 운동력의 크기, 정치활동 방식과 경향 등을 대중적으로 드러내주었다. 



2. ‘공투본-실천단’ 전술 제안의 배경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은 여름을 경과하면서 각 단체별로 하반기 투쟁방향과 대선 정치방침을 제출하였다. 민주노동자연대는 8월 10일 임시총회에서 ‘민중경선’과 ‘노동자․민중후보’ 방침을, 사회진보연대는 8월 23~24일 활동가수련회를 통해 ‘대선공동투쟁본부’ 제안을, 노동자의힘은 9월 14일 총회를 통해 ‘공투본-공선본-실천단’ 방침을, 사회당은 독자후보 입장을 견지한 가운데 10월 27일 전당대회에서 ‘사회주의대통령’을 결정했다. 부산노동자민중회의, 광주실천연대, 전주현장연대 등 단체들도 제각기 의결 단위 또는 개인의 이름으로 입장을 결정하고 제출하였다.

이들 정치세력 중 올 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활동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주체들은 9월 중 세 차례에 걸친 간담회를 거쳐 공동의 활동을 준비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9월 17일 노동자의힘 명의로 ‘공투본’을 공개적으로 제안하였고3) 9월 26일 노동해방대선실천단 준비회의를 거쳐 본격적인 대선 투쟁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8월 24~25일 열린 활동가수련회4) 공동주최 조직들의 활동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다. 이 단체들은 올 해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치적 재조직화와 상반기 공공파업 투쟁 및 하반기 대선 투쟁을 중심으로 실천해왔다. 정치적 재조직화와 관련해서는 1월부터 공동토론회, 5월 광주 혁명정신계승투쟁, 8월 활동가수련회 등의 공동활동을 전개하였다. 수련회 이후 9월경에는 계급정당 건설 방식을 둘러싼 논쟁과 함께 ‘활동가정치조직 기획위원회’를 추진하는 흐름과 ‘사회주의정치연합’을 주장하는 흐름으로 갈라졌다. 대선 투쟁 관련해서는 ‘공투본-실천단’의 큰 흐름속에서 적극적 활동, 소극적 활동, 개입 반대의 경향이 드러났었고, 공투본 전술 반대 입장과 함께 ‘신자유주의 분쇄 노동자 민중 전선강화를 위한 투쟁연대’ 활동도 전개되었다.

한편 공투본 전술 주체들이 하반기 대선 정치방침 결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지금까지 추진해온 정치적 재조직화 사업과 대선 대응을 분리해서 사고한 점이다. 이는 그동안 주로 선거연합을 통해 선거에 개입한 뒤 선거가 끝나면 실천의 성과도 별반 얻지 못하면서 이합집산을 거듭했던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선거 공간에 적극 개입해서 투쟁하되 선거 대응 결과 여부가 활동가정치조직 건설로 표현되어온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조직적 결집과 단결의 흐름을 규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5)

또한 ‘공투본-실천단’ 방침으로 선거 공간에 적극 개입하기로 한 문제의식의 배경에는 조합주의적 산별과 실리주의 운동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 현장활동과 노동운동의 혁신을 제기함으로써 대중적이고 계급적인 정치 주체를 형성한다는 의지가 깔려 있었다. 더불어 실천을 통해 노동자 정치운동의 방향을 던지지 않는 한 의회주의 정치세력화를 넘어서는 노동자 계급정치운동의 전망을 열어내기가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하반기 정치방침의 목표를 제시하고 노동자․민중운동 진영 전체에게 공투본-공선본 결성을 제안함으로써 무너진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복구해 나갈 것을 호소하였고, 이 투쟁의 대중적 계급적 정치 실천의 주체로 서기 위해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을 조직하기에 이른 것이다.6)



3. ‘공투본-실천단’ 전술의 의의와 논점

‘공투본-실천단’ 전술의 의의는 첫째, 실리주의 노동운동과 의회주의 정치활동을 넘는 노동자계급 정치운동으로서의 실질적인 정치 행동을 대중적으로 약속했다는 점, 둘째,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을 분리하지 않고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의 공동의 실천을 통해 약화된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 강화를 꾀하고자 했다는 점, 셋째,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공동활동을 기초로 전술 행동 주체의 대중적 계급적 결집을 추진했다는 점 등이다.7)

‘공투본-실천단’ 정치방침의 목표는 2002 대선 정국이 지배계급 내부의 정쟁과 경쟁으로만 독점되는 것을 저지하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에 계급투쟁전선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선거주의적 대응 경향이나 선거에는 대응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넘어 노동자․민중운동 진영 전체가 공동투쟁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전술적 위치를 분명히 하였다.

정치방침은 일반적으로 정치전술 방침과 조직전술 방침으로 나눌 수 있다. 정치전술 방침 차원에서 볼 때 ‘공투본-실천단’ 전술은 선거를 통해 신자유주의 권력의 재편과 안착화에 맞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반신자유주의 정치투쟁전선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특히 대선의 정치적 위치에 대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묶어 세움으로써 대대적 반격을 구축해 내는 교두보를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적 분노를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또 다시 반동적인 신자유주의 집단에게 무력하게 권력을 헌납할 것인가’의 선택 지점이라 바라보았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 하반기 투쟁의 정치적 요구를 모아 공세적으로 공동의 반신자유주의 정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 정치전술의 핵심이었다.

조직전술 방침의 대전제는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공투본-공선본’ 건설을 제안하는 것과 동시에 그 물질적 기반이자 주체적 조직화의 차원으로 ‘노동해방대선실천단’ 건설을 제안하였다. ‘공투본-공선본’을 통해 하반기 노동자․민중의 대중투쟁을 수행함과 동시에 민중경선 성사로 후보를 선출, 이 후보가 반신자유주의 노동자․민중후보의 성격을 갖고 대선 투쟁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 기조로 하였다. 정치방침 결정 주체만의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운동 진영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설정되었고, 동시에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간 선거연합적 질을 넘는 대중적 계급적 결집에 기초한 실천 방침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노동자․민중운동 진영 전체 차원의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 구축을 위한 책임있는 활동과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과의 정치적, 조직적 연대 차원의 책임을 공히 갖는 결정이었다.

공투본 전술에서 볼 때 노동자 민중후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객관 정세와 주체적 조건을 고려하건데 독자후보 입장이나 대중투쟁으로 돌파하자는 입장은 몰정세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라고 판단했고, 대선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의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것을 목표로 후보 전술을 펼치겠다는 것이었다.8)

한편 민중경선은 하반기 대중투쟁의 한 양식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제기되었다.9) 뚜렷한 현실 대중투쟁이 전개되지 않는 가운데 선거주의로 치닫는 대선 정국에서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방향과 사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치기획이었다. 민중경선의 제기는 보편타당한 전술이 아니라 정세 인식의 산물이다. 전술 운용 주체가 현실을 좌지우지할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면 선거라는 사안을 맞아 대중투쟁만으로 돌파할 수도 있고 선거 자체에만 치중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객관적 정세와 투쟁의 목표, 주체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일반적 원리로부터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공투본-실천단’ 주체가 올 하반기에 세운 정치투쟁의 목표는 주지한 바와 같이 약화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은 실리주의 경향에 휩쓸려 있고, 정치운동은 선거주의 경향에 경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곳에서 계급대중의 투쟁은 예고되었지만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설치를 위해 투쟁하는 흐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 역시 대안적인 정치운동의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정세 판단으로부터 현실에서 왜곡되어 흐르는 제반 경향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의 결합을 설정한 것이고, 그 조직적 형태로 공투본-공선본을 제기한 것이다. 사회당의 독자후보 입장은 독자후보 전술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정세와 주체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전술이어서 문제인 것이다. 정치세력은 공선본에서 정당하게 경쟁하고 계급대중을 주체적으로 참여케 함으로써 설정한 투쟁목표 달성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된다는 문제인식이었다.

공투본 전술의 의미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예비모임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공투본-실천단’ 전술을 둘러싼 오해와 왜곡이 불거졌다. 온라인 공간에 올라온 엽기성 글을 제외하더라도 연일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 중 ‘공투본-실천단’ 전술에 대한 가장 왜곡된 악선동은 공투본이 범추와 다를 바 없다는 것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중경선을 추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앞의 것은 주로 ‘대중투쟁으로 정면돌파’ 입장과10) 연결된 것이었고, 뒤의 것은 ‘독자후보 출마’ 주장과11)과 연동된 것이었다. 이외에도 왜곡된 주장은 해당 국면마다 스펙트럼을 달리 하면서 여러 논점을 형성하였다.



4. ‘공투본-실천단’ 전술의 실패

‘공투본-실천단’ 전술 주체 중 가장 커다란 영향을 가진 단체는 노동자의힘이었다. 9월 14일 열린 노동자의힘 임시총회에서는 1안을 결정했지만 3안의 견해와 팽팽히 맞선 바 있다.12) 따라서 최종적으로 확인된 노동자의힘 내부 상황만 본다면 결정된 방침이 차지하는 지위나 규정력이 매우 불안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 달 후인 10월 12일 노동자의힘 정기총회에서는 대선 방침 수정안이 제출되었다. 공투본 결성의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예비모임 즉각 철회를 요지로 하는 1안과 후보 선출을 요지로 하는 2안이 제출되었다. 모두 과반수가 안 되어 부결됨으로써 원안이 유효한 것으로 결정되었으나 1안이 과반수에 가까운 지지를 얻었고, 원안의 연장에 있던 2안도 부결되는 상황에 이름으로써 9월 14일 결정한 ‘공투본-실천단’ 전술을 힘있게 집행하기 어려운 현실을 맞고 있었다.

공투본 6차 예비모임을 앞둔 10월 20일 노동자의힘 중앙위원회에서는 우격다짐 끝에 후보를 결정하는 데까지는 갔지만 10월 23일 있을 6차 예비모임에서 공투본 결성의 전제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공투본 제안을 철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밖으로는 민주노동당에게 공을 넘기고 안으로는 공투본이 무산되더라도 현장 활동가의 움직임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상의 공투본 제안 철회 선언이었다.13) 이 입장이 발표될 즈음 노동자의힘, 사회진보연대 등 주요 단체 내부적으로나,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활동에서나 기운은 이미 한 풀 꺾인 상태였다.

이로부터 최근 전술 실패의 원인을 ‘주체 역량의 한계’로 돌리는 평가가 제출되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공투본-실천단 전술 기조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는 매우 편의적이고 형식적인 평가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절대적 차원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역량을 하나로 집중하지 못한 점을 문제삼아야 한다는 노동자의힘 중앙집행위원회의 평가는 타당하다.14)

스스로 결정한 ‘공투본-실천단’ 정치방침의 대중적, 정치적, 계급적 의의의 내적 소통과 결의를 높여내지 못한 결정적 원인은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협소한 정치활동 관념과 방식에 있다. 선거라는 사안이어서가 아니라 하반기 정세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대선 정치방침을 결정하고, 결정에 따라 정치 행동과 조직화에 나설 것임을 명확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과 의혹, 소극적 대응, 대기적 관망의 모습을 갖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었다.

협소한 정치활동의 관념과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짚을 수 있다. 첫째, 선거투쟁, 선거 시기 투쟁, 선거개입 투쟁 등에 대해 역사적으로 쌓여온 피해의식과 거부 때문이다. 역대 대선 투쟁의 개입에서 좌파 운동진영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긍정적인 성과를 얻은 적이 거의 없다. ‘선거 전 선거연합과 선거 후 조직분리’를 거듭하면서 조직적 손실과 후유증도 많았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올해 대선 대응 논의 초기에도 부정적인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피해 가거나 적당히 하자는 수세적인 입장이 팽배했다.

둘째, 노동조합 중심의 활동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장활동의 경향이다. 현장 활동 주체들은 현장의 조건을 근거로 좀처럼 실천에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선거 사안과는 별개로 정치방침을 결정한 주체들이 현장을 움직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의 문제가 있다. 정치투쟁 주체가 특정한 정치방침을 결정했을 때 주체로서 책임있는 실천을 수행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공투본 전술 기조에는 전반적으로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현장활동 주체의 움직임은 미약했다. 이러한 양상은 전국적이고 계급적인 정치투쟁 기획의 부재와 이에 동반한 실리적 전망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의 확산이 그 근저에 깔려있다. 전국적이고 계급적인 정치투쟁 기획의 부재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약화와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운동의 재생산과 분리되어 실리주의, 조합주의에 경도된 현장운동의 조건에서 전국적이고 계급적인 정치기획이었던 ‘공투본-실천단’ 활동을 단시간 안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15) 공투본-실천단 실천 평가로부터, 비단 공투본 전술 평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실에 만연한 조합적 산별주의와 실리주의 노동운동의 경향,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폭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장활동의 상태는 심각하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16)

셋째, 진보정당 및 의회주의적 정치세력에 대한 반정립 경향을 들 수 있다.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은 한국 사회 진보정당이 갖는 국민적, 사회적 수준의 의의조차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운동의 역사적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으로 결집된 세력과 주체, 그리고 그 운동 흐름에 대해 대결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뚜렷한 정당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정당성은 반정립으로서의 정당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현실을 움직일만한 실력이 안 된다는 자조적 평가의 이면에는 계급적 정치 주체로서의 능동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구성된 정체성이 아니라 의회주의 정치세력화 반대를 통해 구성된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정서가 작용하고 있다.17) 이것이 진보정당 및 의회주의적 정치의 흐름을 넘어서는 계급적 정치 주체로서의 정치활동을 큰 흐름으로 형성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핵심 원인이며, ‘공투본-실천단’ 전술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주요한 요인이다. 공투본 제안 철회 후 노동자의힘은 이 문제를 두고 반정립의 정당성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였다.18)



5. 공투본 제안 철회 결정

‘민중경선’, ‘민주노총 정치방침의 변경’과 함께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가 공투본 결성의 전제 조건이었던 것은 사실이다.19) 그러나 공투본 전술의 핵심은 하반기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의 결합으로 공동투쟁의 돌파구를 여는 것이었다. 또한, 계급대중 경선을 통해 노동자․민중 스스로가 정치와 사상 논쟁의 경험을 획득하는 것, 주체적인 행동을 통해 노동자 민중후보를 만들어내는 것, 이 과정에서 계급적 정치적 주체의 결집과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하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상층 협상에서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 제기함으로써 대중적 정당성과 공분을 획득하는 전술은 절대적으로 정당하나 이를 전제로 공투본 제안을 철회한 것은 하나를 얻되 열을 잃는 잘못된 결정이었다.20)

공투본은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힘에 의해 만드는 조직이 아니라 상층 협상으로, 즉 위로부터 만드는 조직이었다. 협상이기 때문에 한편의 요구가 100% 관철되는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투본-실천단’ 주체의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는 전술이 분명했어야 한다. 세 가지 전제조건 중 어느 것을 얻어내고 어느 것을 양보할 것인가, 그로부터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일관된 기조를 갖고 있어야 했다. 노동자의힘이 9월 14일 결정한 공투본 전술 기조로 보자면, 즉 공투본 결성 성사를 중요하게 놓고 본다면 ‘민중경선’을 반드시 끌어내는 것이 일순위, ‘민주노총 정치방침 변경’이 이순위,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는 삼순위라 할 수 있다. 초기 토론 과정에서는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를 기술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의사 개진도 있었다.

예비모임에 결합한 노동자의힘과 사회진보연대 참가 주체들은 여섯 차례 예비모임이 전행되는 과정에서 미흡하기는 하나 ‘경선 실행’과 ‘민주노총 방침 유보’를 끌어냈다. 그런데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21) 그러나 협상 진행 과정으로 미뤄볼 때 민주노동당의 태도에 대한 대중적 공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맞추어져야지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에 대한 입장을 관철하는 것이 절대화되는 방향으로 치닫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조건에서 두 단체의 협상 주체들이 6차 예비모임에서 공투본 제안 철회와 철수를 결정한 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두 주체가 공동의 행보를 취한 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왜냐 하면 협상 주체가 예비모임에서 협상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힘있는 활동과 후보를 세우는 것이 절대적인 전제였는데 안타깝게도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조직화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후보를 세워내지도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22) 따라서 공투본 제안 철회와 철수의 원죄는 노동해방대선실천단과 경선 후보를 힘있게 세워내지 못한 ‘공투본-실천단’ 전술 주체 모두에게로 돌려져야 하며 이는 결코 환원론이 아니다.



6. 노동해방대선실천단 총회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은 공투본의 대중투쟁을 강제하는 물리력인 동시에 자신의 후보를 세워 민중경선을 성사시킴으로써 노동자 민중후보를 세워내는 임무를 부여받았었다. ‘공투본-실천단’ 주체들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문, 현장, 지역의 대중적이고 계급적인 주체간 정치적 결사를 꾀하였다.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은 ‘민중의 해방은 민중의 힘으로’,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치적 계급적 결집과 반제반신자유주의 전국 전선 구축’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런데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에 있어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제기가 그 자체로 익숙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다른 전술 운용에서는 단체가 가입하는 공동투쟁기구의 형식이 일반적이었던데 비해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은 개인의 결의를 기초로 하는 개별가입 방식을 가졌다. 총회를 최고결정 기구로 두고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주된 방침과 방향을 총회에서 결정하게 하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결정이었다. 첫째,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대중적 정치적 결집 과정에 모든 주체가 똑같은 조건에서 가입함으로써 단체별 규정을 넘어서는 실천 주체로 서게 된다는 점, 둘째, 노동자 대중을 대상화하여 지지, 지원, 지도하는 차원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 스스로가 자신의 정치적 방향과 방침을 결정하는 정치 주체로 등장케 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23)

9월 14일 노동자의힘 총회 결정 내용 중 ‘10000인 대선실천단’으로 제기된 배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기조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노선과 방침을 내고 동의를 구하고 이끌어 가는 활동에는 익숙하지만 노동자 대중 스스로가 정치활동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공간의 기획자, 조력자로서 활동하는 것을 낯설게 받아들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공투본-실천단’ 전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주체들 안으로도 단일하고 충분하게 소통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결과적으로 이 취지를 살리는 대중적 계급적 결집을 이루지 못했다. 초기 공투본 전술에 동의한 단체, 단위, 주체 중심으로 조직화가 이루어졌고 그나마 단체, 단위의 내부 주체들의 적극성도 많은 편차를 보였다. 공투본 전술을 둘러싼 운동 주체들의 혁신적 정치활동보다 기존 정파 차원의 종파주의, 가족주의가 더 규정력을 갖는 모습을 보였고, 대중적, 계급적 정치활동보다 방어적, 수세적 활동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노동해방대선실천단으로의 초기 주체 결집의 미진함은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과의 정치적 긴장 관계 형성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함께 결의한 주체와 주체 상호간에도 커다란 불신을 초래했다. 결정적인 것은 진행중인 상층 협상을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강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이 자신의 후보를 조기에 가시화하고, 민중경선을 더욱 강도 높게 선전․선동하고, 초기 가입 주체의 최소한의 기반만 마련했더라도 공투본 전술 국면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투본-실천단’ 주체는 대중적 결집도, 후보를 세우지도, 강력한 대중투쟁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결국 상층협상 결렬에 따른 공투본의 무산은 역으로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존립근거를 위협했다. 이윽고 노동해방실천단은 총회에서 스스로를 해소하는 결정을 하였다.

총회에서는 4인 명의로 ‘1) 후보의 법적 등록형식의 문제는 공투본 결성의 전제조건일 수 없었다. 2) 공투본 후보 및 민중경선 문제 등 변화된 조건에 따른 주요정치방침은 노동해방대선실천단 총회에서 결정될 사안임을 확인하고, 6차 예비모임 과정에서 노동자의힘에 의해 이 총회의 권한이 침해되었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평가안이 제출되었다. 2항과 관련, 총회 권한 침해 판단은 정치적으로는 타당한 지적이지만 논리적으로는 모순된다.24) 노동해방대선실천단 총회에 대한 성격 규정 문제는 전술 운용과정 전체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주지하듯이 공투본 예비모임 상층 협상 결합 주체는 처음부터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이 아니었다. 공투본 전술에 나선 주체들이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을 세워내지 못한 것, 후보를 세워내지 못한 것, 공투본의 대중투쟁 주체로 서지 못한 것에서 이미 공투본의 무산은 예고되었다. 따라서 노동자의힘이 총회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것이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그로부터 공투본 제안 철회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의힘으로 몰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공투본 제안 이후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호응하지 않을 때, 즉 마지막까지 제기했지만 ‘공투본-실천단’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 세력이 동의하지 않아서 공투본 결성이 안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그 경우 대중적 공분을 기초로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총회를 통해 향후 투쟁을 결정하고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25)

그런데 3, 4차 예비모임이 전개되면서 이 염려는 해소되었다. 사회당이 불참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투본 결성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이윽고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가 제기되면서 예비모임 국면이 한 차례 바뀌었다. 이 현안이 급격하게 부상하자 공투본 결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노동해방대선실천단 총회에서 이 문제를 결정한다는 취지를 살리려면 6차 예비모임이 있기 전에 총회를 소집했어야 했다. 일정상 상층 협상을 노동해방대선실천단 총회 이후로 더 연장시킬 수도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총회 소집을 제기하지 않았고 총회를 소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10월 26일 총회는 전술 실패의 책임을 묻고 향후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전술 운용의 주된 주체들은 이 자리에서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을 굳건하게 세워내지 못한 점,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를 들어 공투본을 철회한 점, 실천단의 후보를 세워내지 못한 점 등에 대해 진정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노동자의힘은 평가와 계획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사회진보연대는 공투본 철수와 총회 권한 침해를 골자로 하는 평가안만을 제출했다. 노동해방대선실천단 중앙사무처는 향후 계획을 제출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질 수 없었다.



7. 정리하며

2002년 선거를 통해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 지배블럭간에 보수 대 개혁세력의 대결 양상을 보인 점이다. 선거 후에도 신자유주의 지배블럭 내에서 이러한 대결 구도가 지속될지 여부는 단정할 수 없지만 한국 사회 정치와 정책 담론에 대한 보수 대 개혁의 정책적 차이가 과거에 비해 뚜렷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문민정부에서 시작되어 국민정부 시절에 더욱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재편을 약화시키거나, 또는 이를 다소간이라도 완화시킬 것이라고 예상되지는 안는다.

이와 함께 선거 결과에 따라 변화를 겪게 되겠지만 진보정당운동 세력은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가운데 권력과 제도권 내에서 뚜렷한 입지를 갖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서게 될 것이다. 다만 진보정당운동 세력은 이번 대선 후 2004년 총선을 맞는 과정에서 국민정당으로 갈 것인지, 사민주의 정당으로 발전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한바탕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다.

한국 사회 정치지형 속에서 이미 선거는 일상화된 정치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2004년 총선이 저만치 와있고 2007년이면 또 대선을 만나야 한다. 지자체-총선-대선이라는 정치기제는 본질적으로 지배계급의 위로부터의 권력의 재생산 기능을 한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치적, 조직적 대응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대안 형성을 위해 투쟁해야 하며 이에 대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필요성이 의회전술의 수행을 위한 독자적 주체를 형성하는 문제로 접근되어서는 곤란하다. 노동자 계급정치의 주체적 관점에서 선거, 의회전술 문제를 다루어야 하며, 대중정치, 계급정치의 형성과 발전을 전제로 선거와 의회전술 원칙을 세워야 한다. 대중운동, 계급운동과 독립된 선거운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술’로서의 의미를 갖고 대중운동, 계급운동의 주체 형성 과정에서 구체적 정세와 주체적 조건을 고려한 정치활동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2002년 대선 시기 ‘공투본-실천단’ 전술을 둘러싸고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경향과 실력 이 대중적으로 객관화되었다.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은 대선 시기 보여준 정치활동에 대한 평가를 기초로 실질적인 정치조직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운동력을 재형성해 나가야 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정치활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공투본-실천단’의 전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계급적 결집과 반제반신자유주의 전국 전선 구축’, ‘민중의 해방은 민중의 힘으로’라는 기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은 환골탈태의 자세로 계급 대중에게 다가설 준비를 해야 한다. 노조를 넘어 지역과 전국 차원에서, 총파업 전술 및 대중투쟁에서, 선거와 의회전술 투쟁에서, 나아가 일상적인 정치활동과 현장활동에서 대중적이고 계급적인 정치를 기획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한/노/정/연


* 이 대선 평가글은 민주적 계급적 운동진영의 실천을 중심으로 작성하였다. 여기서 민주적 계급적 운동진영이라 함은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변혁운동 지향을 갖는 운동세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다.


1) 97년 8월 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진전을 위한 연대’(정치연대)를 구성하고 대선 대응에 나섰다. 당시 정치연대는 노동자계급이 현실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사회적 주체로 나서는 것을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궁극적 목표를 위한 전제라고 밝히고 97년 대선투쟁을 전술적 계기로 삼아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구축하고,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96․97년 노동자의 총파업을 잇는 정치 투쟁으로 이해하였다. 정치연대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쟁취 등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후보, 사퇴하지 않는 후보, 공동선거기구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입장을 가지고 국민승리21과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10월 26일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이라는 공동선거기구를 구성하였다. 국민승리21은 민주노총이 대통령 후보를 내고, 여기에 전국연합, 진정연, 정치연대 등이 결합하여 구성된 공동선대본의 위상이었으나 ‘일어나라 코리아’ 등 국민후보 경향의 선거 활동으로 치달으면서 정치연대는 탈퇴하였다. 국민승리21은 선거 이후 합법정당 건설로 이어졌다.


2) 10월 2일 공투본 1차 모임에는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힘이 참석하였다. 1차 모임 주체들은 이 모임을 예비모임으로 규정하고, 사회당과 전국연합에 참여를 요청하기로 하였으며, 10월 4일 2차 예비모임에는 전국연합이 참석했고, 사회당은 불참 입장을 밝혔다. 10월 8일 3차 예비모임은 사회당의 불참이 공식 확인된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사회당의 불참 선언은 공투본 결성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했다. 민주노총은 사회당이 참가하지 않을 경우 후보단일화가 안 되므로 공투본의 의의가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3차 예비모임 이후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전국연합 대의원대회, 노동자의힘 총회, 사회진보연대 총회 등의 일정이 이어져 있는 점을 고려, 각 정치세력의 논의 결과에 따라 다시 판단하기로 하였고 4차 예비모임에서는 공투본 결성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3) 간담회에 결합해온 주체들은 공투본 제안 방식을 동의하는 개인 연서로 제안할 것인지, 단체 연서로 할 것인지 함께 검토하였고 결과 노동자의 힘이 제안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4) 활동가 수련회는 지난 8월 24일~25일 모두 7개 단체가 주최와 참관하는 방식으로 250여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진행하였다. 사상, 이념적 과제, 노동운동 혁신 과제, 활동가정치조직 건설 과제 등의 주제를 토론하고 향후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5) 우리는 일관되게 조직문제와 선거 대응은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졌다. 그리고 이는 과정적으로 그와 같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선 방침과 조직문제는 어떤 수준에서든 상호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 둘이 서로 발전적․상승적 관계로 배치될 수 있기를 의도했으며 기대했다(노동자의 힘. ‘중앙집행위원회 평가 초안’ 중에서).


6)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은 스스로 다음 네 가지 과제와 역할을 부여하였다.

6)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은 스스로 다음 네 가지 과제와 역할을 부여하였다.

   “첫째, 지배계급과 자본에 의해 분열․분리되어 있는 노동자 민중을 정치적․계급적으로 단결시키고, 반제․반신자유주의 전국투쟁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전국적 정치기획과 투쟁계획을 제출하겠습니다. 둘째, 지난 ‘범추’의 무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선거를 투쟁과 분리하고 단지 후보 선출의 문제로만 바라보거나 득표 전략으로 사고하는 행위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출하겠습니다. 셋째,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제도 정치권으로의 진출로 바라보며, 세계와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포기하고 단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권력의 일부분을 얻으려는 행위로 제한하는 경향을 폭로하고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 직접 정치의 주체로 서나가는 실천을 하겠습니다. 넷째, 민족문제, 남북문제를 우선시 또는 절대화함으로써 노동자 민중이 나아갈 정치적 명확성을 흐리고 지배계급과의 연대까지를 전술적으로 받아들이는 세력을 비판하고 제대로 된 반제․반미 투쟁을 노동자 민중의 투쟁 과제로 정식화하겠습니다”(노동해방대선실천단 가입 제안서 중에서).


7) “노동자의 힘이 제안한 ‘공투본안’의 핵심은 1)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의 복원과 2) 노동자계급의 ‘정치화’를 가로막고 있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대한 실질적 철회, 그리고 3) ‘대선’을 계기로 한 계급대중의 ‘정치화’를 위한 조직적 단초를 형성해 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체 계급 전선으로 보면 기간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노동자계급’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장의 실리주의와 합의주의(타협주의)를 ‘대중 투쟁’이 아니라 역으로 대선이라는 계기를 통한 ‘정치화’로 돌파하고자 한 것이다.”(노동자의 힘, ‘우리의 제안과 공투본을 둘러싼 모든 의혹에 답한다.’ 10월 18일).


8) 97년 대선의 경우, 전국연합과 진보정치연합은 국민후보 방침을 결정하였고 민주노총 역시 그 흐름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96․97 총파업 평가에 있어 막강한 투쟁력을 발휘했으나 교섭력과 정치력의 한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 과제와 목표를 ‘98년 지자제선거 대거 진출, 98~99년 정당건설, 2000년 국회 원내 진출’로 맞추었다. 후보 명칭에서도 노동자 민중후보가 아니라 전국연합과 진보정치연합이 제안한 국민후보로 결정되었다. 결국 97년 대선 전술은  96․97년 총파업을 펼친 노동자 대중투쟁의 연장선이 아니라 국민후보 전술로 귀결되었고 그 배경에는 이미 잘 알려진대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이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들 민족주의 경향 및 민주노동당은 ‘2004년 원내 교두보 확보, 2008년 교섭단체 구성, 2012년 집권’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출하고 있다.


9) 공투본 예비모임에 결합한 노동자의 힘, 사회진보연대 주체는 민중경선의 일정과 방식 등에 대한 세부 기획을 제출했다. 공투본 논쟁과 함께 민중경선에 대한 논쟁도 불거졌지만 이 즈음 정세에서 민중경선이 갖는 위치와 의미는 매우 중차대 하였다.

9) 공투본 예비모임에 결합한 노동자의 힘, 사회진보연대 주체는 민중경선의 일정과 방식 등에 대한 세부 기획을 제출했다. 공투본 논쟁과 함께 민중경선에 대한 논쟁도 불거졌지만 이 즈음 정세에서 민중경선이 갖는 위치와 의미는 매우 중차대 하였다.

   “실천단은 이번 대선 투쟁을 전개할 후보는 국민후보 또는 특정 정치세력의 후보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후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민중후보는 노농빈학 계급대중의 민중경선을 통해 선출해야 합니다. 따라서 민중경선은 무차별 국민경선과 다릅니다. 실천단은 60만 민주노총 조합원, 30만 농민과 빈민, 학생, 단체 대중 등 100만 민중경선을 기획하여 공투본의 공선본이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민중경선은 모든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체험의 장이며, 이념과 노선을 건강하게 논의하는 경쟁과 실천 공간입니다. 실천단의 후보도 이 경선에 참여하여 대중의 검증을 받을 것입니다”(‘노동해방대선실천단 13문 13답’ 중에서).


10) 노동 계급에게 선거란 기존의 가치 전복을 위한 유효한 전술 중 하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전술을 어떻게 구사할 것 인가이고, 이에 따라 계급투쟁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부르주아 개량주의자들과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쁘띠들의 선거 전술에는 관심이 없다. 문제는 운동세력으로부터 제출된 전술이다. 이들 세력이 진행하고 있는 공동투쟁본부 구성과 이에 따른 공동선거본부 배치는 기실 온갖 정략과 술수가 결집된 반노동자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이합집산의 자기 합리화 전술이다(노동자 민중회의, ‘기만과 변절을 넘어’, 10월 13일).


11)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힘이 제안한 공동투쟁본부는 기존의 무산된 범추를 얼굴만 달리해 기사회생시키고 있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당연히 환영할만한 제안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후보 선출을 마치고 대선 마차를 굴리고 있다. 그쪽에서 보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별로 손해볼 것이 없다. 마차를 좀 더 모양새 있게 꾸미느냐, 아니면 그냥 이대로 굴리느냐의 차이밖에 없기 때문이다”(최광은, ‘민중경선 거부, 실질적인 공투본을 만들자’, 10월 9일).


12) 9월 14일 열린 노동자의 힘 총회에 올라온 대선 방침안은 세 가지였다. (1안)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진영 전체를 포괄하는 ‘전국공동투쟁본부’와 그 산하에 ‘공동선거대책본부’를 두어 대선 국면에 적극 대응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안, (2안) 계급적 좌파진영 중심으로 ‘공동선거투쟁본부’를 결성하여 독자후보 전술을 포함하여 대선 국면에 적극 대응하고 대선 이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적극 추진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안. (3안) 대선 시기 사업으로 노동자 민중투쟁의 계급적 정치적 투쟁에 집중하고 선거를 중심으로 사업하거나 후보전술을 고려하지 않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안.


13) “우리의 고민은 단 한 가지다. 민주노동당이 당적 등록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하여 그 귀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분명한 상황에서 대선 투쟁을 대중투쟁으로 돌파하자는 주장을 더 이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놔두고라도, 우리만이라도 우리의 원칙을 지키면서 나아간다는 것은 대중에 대한 기만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기만이기도 하다. 먼저 대중이 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역시 우리의 독자적 힘으로 이를 끌고 나가기 어렵다.” (노동자의 힘 기관지, ‘공투본의 운명을 민주노동당만의 결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 10월 22일)


14) “이번 방침은 단지 노동자의힘 ‘내부 역량’에 의해서만 성립되거나 무산될 수 있는 그러한 성격의 방침이 아니다. 노동자의힘 내부 역량이 제안의 성립과 무산에 끼치는 영향은 처음부터 일정한 제약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다만 노동자의힘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체 투쟁전선을 강화하고 운동진영 내에서 제안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과 역량은 이미 갖고 있다고 본 것이며 이 점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즉 절대적 차원의 역량이 문제였던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내부 역량을 하나로 집중하지 못한 것을 문제삼아야 하며 여기에는 지도력의 문제와 함께 내부 의견 차이가 있다. 만약 이것까지를 모두 내부 역량이라는 잣대로만 해석한다면 사실 우리는 이번과 같은 정치활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 밖에 내릴 수 없다.”(노동자의힘, ‘중앙집행위원회 평가 초안’ 중에서)


15) 노동자의힘은 노동해방대선실천단 발족식 날짜에 발간한 기관지에서 이미 현장 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결의를 촉구한 바 있다. “전국적 정치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고, 현장을 작은 골방으로 만들고 제한하는 일련의 태도는 현장에 기초한 전국적 정치기획의 부재와 주체역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방기하는 것일 뿐이다.” (‘노동해방실천단을 조직합시다!’ 10월 6일, 노동자의힘 기관지)


16) “정치적 전망의 부재와 지배권력의 우위에 따른 실리주의․대중주의의 확대는 반정립으로서의 좌파운동, 현장운동의 정체성을 자연스레 형성시켜 왔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노조민주화추진위(노민추) 운동일 것이다. 어용에 맞서 엄청난 탄압을 뚫고 투쟁하고, 엄청난 결의로 버텨나가지만, 결국 노조를 장악한 이후의 성과물은 미약하다. 또한 대공장․전국적 사업장의 경우, 전투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조직 중심주의, 현장주의적 경향은 벗어나기 어려운 객관적 현실이 되어 있다. 사업장, 그리고 현안에 대해서는 세상을 꿰뚫고 미래를 내다보지만, 현안을 넘어서는 투쟁을 조직하는데 있어서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총파업을 외치고,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하는 지도부를 규탄하지만, 총파업이 자신의 현장을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물론 현장은 매우 열악하다. 현안을 넘어서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만으로 고립되기도 하며, 그나마 형성되어 온 대중적 토대를 잃기도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송유나, ‘2002년 공투본과 실천단 무산을 돌아보며’)


17) “97년 이후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소위 ‘국민파’라는 이름이 다양한 형태로 부상해 오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실리적 경향이 합법정당 운동과 조우해 온 과정에서, 현장은 반정립 즉 anti 세력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하게 된다. 반국민파, 반민주노총(지도부), 반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이 확고해졌으며, 이 반정립의 테제가 현실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규정해 왔다. 물론 열악한 현실, 조직적 열세, 자본과 권력의 협공에서 맞서야 하는 이 힘겨운 전투상황에서 반정립은 어찌 보면 가장 손쉬우며,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송유나, ‘2002년 공투본과 실천단 무산을 돌아보며’ 중에서)


18) “학생대오는 상대적으로 비계급적 대중을 상대하지만 현장 세력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그 강도와 활동의 양태가 다르게 내면화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현장세력이 이번 노동해방대선실천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를 ‘비관’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훨씬 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현재 민주노동당-민주노총의 밀월관계가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에 의해 얼마나 강하게 ‘계급적’으로 부정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힘, ‘공투본 제안 철회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해산에 대한 노동자의 힘의 입장’, 10월 30일)


19) 노동자의힘이 제안한 공투본(안)에 따르면 공투본 결성의 주요 전제조건으로 ‘계급대중 경선’, ‘민주노총 정치방침 변경’,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 등을 거론했다.


20) “노동자의힘은 지난 9월 17일 대외적으로 제안한 공투본(공선본 포함) 구성에 대하여 6차례에 걸친 예비모임을 진행한 결과,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상당히 퇴색했다는 판단아래 불가피하게 제안을 철회한다―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퇴색했다함은, 첫째 민중경선의 의미와 목적이 논의 과정에서 축소, 조정되었으며, 둘째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변경 역시 최소 수준에서만 진전되었고, 셋째 마지막 쟁점이 되었던 공투본 후보의 법적 등록 자격 문제가 끝내 해결되지 못했음을 이른다―노동자의힘은 공투본 논의가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 데에 대해 전체 노동자와 민중운동 진영에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심정을 전달하며, 특히 우리의 제안에 동의하고 이를 관철시킬 것을 기대한 현장활동가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사과 드린다.―노동자의힘은 이후에도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정치적, 계급적 단결과 반제반신자유주의 전국투쟁전선을 형성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6차 예비모임에서의 노동자의 힘 입장. 10월 23일)

20) “노동자의힘은 지난 9월 17일 대외적으로 제안한 공투본(공선본 포함) 구성에 대하여 6차례에 걸친 예비모임을 진행한 결과,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상당히 퇴색했다는 판단아래 불가피하게 제안을 철회한다―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퇴색했다함은, 첫째 민중경선의 의미와 목적이 논의 과정에서 축소, 조정되었으며, 둘째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변경 역시 최소 수준에서만 진전되었고, 셋째 마지막 쟁점이 되었던 공투본 후보의 법적 등록 자격 문제가 끝내 해결되지 못했음을 이른다―노동자의힘은 공투본 논의가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 데에 대해 전체 노동자와 민중운동 진영에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심정을 전달하며, 특히 우리의 제안에 동의하고 이를 관철시킬 것을 기대한 현장활동가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사과 드린다.―노동자의힘은 이후에도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정치적, 계급적 단결과 반제반신자유주의 전국투쟁전선을 형성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6차 예비모임에서의 노동자의 힘 입장. 10월 23일)

   반면, 사회진보연대는 “기존 조직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이것은 모두가 ‘합의’한 바 있는 ‘공투본 후보여야 한다’는 점의 실내용을 밝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것이 공투본 출발의 전제라기보다는 공투본 건설 후 대중적 논의의 과정, 경선의 과정 속에서 실현시켜 나가자는 의미에서 ‘후보선출 후 공투본 내에서 결정한다’는 입장을 제출하였다. ―후보 등록 문제에 대한 합의가 불투명하고, 이에 따라 민중경선을 통한 후보의 자격, 역할, 등록문제 등―공투본 후보의 실내용―이 대중적으로 논의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판단한다.―따라서 공투본 논의의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향후 사회진보연대는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을 통해 공투본 건설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형성과 신자유주의의 반동적 권력재편 분쇄를 위해 투쟁해 나가고자 한다(6차 예비모임에서의 사회진보연대의 입장, 10월23일)


21) 민주노동당의 태도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그러한 태도를 고집할수록 그것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더 많은 문제제기와 비판을 했어야 했다. 후보의 법적 등록 문제를 관철시키는 것은 전제이기도 하고 상식이기도 하고 목표이기도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2)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후보는 총회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은 후보를 세워내지 못했다. 중앙사무처가 후보 추대를 위한 내부 입후보 절차와 방안을 마련해서 그 과정을 밟게 한다는 결정을 한 바 있고, 비공식적으로도 후보를 세우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후보문제 역시 노동해방대선실천단의 손을 떠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후보를 총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말도 반만 맞는 말이다.


23) 노동자의힘은 대중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기조를 고수하면서 대선실천단의 결정에 우선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태도를 결정하였다. “첫째, 출발은 노동자의힘으로부터 하지만, 과정과 끝은 (가칭)대선실천단을 통해서 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우리는 (가칭)대선실천단에 대한 개입을 위해 당연히 내부적 토론과 의사결정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결정과 (가칭)대선실천단의 결정이 충돌할 경우 (가칭)대선실천단의 결정에 우리 또한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둘째, 이는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우리의 대원칙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대중이 단지 부름에 불려나온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라는 것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단지 대중 추수로 기울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활동이 요구된다.”(‘노동자의힘 대선방침 해설’)


24) “더욱이 노힘의 이 같은 행위는 노동해방실천단 활동의 전제였던 대선실천단 총회의 권한을 사실상 무시․박탈했다는 점에서 앞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평가의 지점을 남긴다. 주지하다시피 공투본 후보 및 민중경선 문제 등 변화된 조건에 따른 주요정치방침은 분명 10월 26일 예정된 실천단 총회에서 결정되어야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노힘은 ‘후보의 등록형식문제’를 공투본 결성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끝내 공투본을 무산시켰다. 대선실천단 총회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박탈한 것이다.” (이현대, 임필수, 이상훈, 박준도, ‘공투본 무산에 대한 평가안’ 10월 26일)


25) “하반기 공투본 건설 제안은 유실되어서는 안될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을 사수, 확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투쟁기구입니다. 따라서 하반기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은 공투본을 통해 선거중심의 흐름을 대중투쟁 중심의 흐름으로 바꾸어내야 합니다. 실천단은 공투본 건설이 반드시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설령 무산되더라도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과 함께 이 투쟁을 끝까지 책임져 나갈 것입니다.” (노동해방대선실천단 13문 13답 중에서)


2002-12-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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