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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선거

현장에서 미래를  제82호
김상태

부르주아사회에서의 선거


김상태․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선거
송태수․대선정국과 보수(제도)정당의 이합집산
유영주․민주적-계급적 운동진영의 2002 대선 투쟁 평가


이제 16대 대선이 불과 1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노무현과 이회창 등 보수정당의 기세 싸움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 유세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가 ‘누굴 찍을 것인지’로 관심을 집중시킬 때일수록 우리는 이 사회에서 ‘선거’란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를 느낍니다. 선거는 2년 걸러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합니다. 매번의 선거에서 드러나는 양상은 다를 지라도 면면히 흐르는 본질적 원리를 찾아나가는 심정으로 이번 특집을 기획했습니다.
투표행위 이전에 갖추어야 할 노동자 정치의식에 기여할 수 있는 지면이길 기대해 봅니다.

특집 : 부르주아사회에서의 선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선거
김 상 태/ 연구위원





선거시기이다. 그것도 대통령을 뽑는 선거시기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시기이다. 누군가 그러한 관심이 별로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어쨌든 상황은 굴러 내리는 바위처럼 끝없이 밀려갈 뿐이다. 물론 우리도 이 소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나 그래왔듯 선거는 변혁운동 진영에 만만치 않은 풍파를 일으켜 왔으며 이 번 선거 또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선거를 하나의 전술적 지형이나 계기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 전술적 지형이 줄 곧 전략적 목표를 뒤엎거나 망각하게 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반복되는 감염에 무슨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새삼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1. 1848년 프랑스에서 생긴 일
1848년 2월에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발생했다. 민중의 시위와 항쟁으로 왕을 폐위시키고 왕정을 폐지 시켰으니 굉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의미에서 보자면 한국의 4․19 혁명이나 5월 광주항쟁 혹은 87년 6월 민주화 투쟁보다 훨씬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실제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소용돌이의 대략은 우리도 충분히 추측할 수가 있다. 온갖 정치 세력과 인물들이 정치 무대 위로 등장했고 무엇보다 성인 남자의 보통 선거제가 처음으로 그리고 전격적으로 채택되었다. 70년대 이후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다가 92년에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했던 우리이고 보면 이 때 채택된 보통선거의 의미도 우리에겐 남다르게 다가오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 선거를 통해 의원들이 선출되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그해 12월 프랑스 제2공화국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이것이 당시 프랑스에서 생긴 일이자 보통 선거로 대통령이 탄생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15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이 사건이 현재, 특히 한국사회의 현재와 무척 닮았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당선된 대통령이 다름 아닌 루이 나폴레옹이라는 의외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 유사성들은 깊이 음미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루이 나폴레옹은 유명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곧 나폴레옹 1세의 조카로서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국외로 추방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권토중래를 꿈꾸고 심지어는 쿠데타를 기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시간 내내 그는 그저 천덕꾸러기에 불과했었다. 다시 말해 아무도 그가 대통령이 되거나 프랑스 정계의 주요한 인물이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혁명의 소용돌이와 보통선거의 와중에서 의원으로 등장하더니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루이 나폴레옹은 당시 보수파들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 그들은 질서당이라는 새로운 당을 창당했는데 그 구성원들은 부르봉 왕가, 혁명으로 폐위된 루이 필립왕 그리고 교회의 지지자들이었다. 이들이 공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 혹은 투쟁하는 민중들의 세력 앞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내세울 만한 적당한 인물이 없었고 그리하여 이 신참내기 루이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루이에게는 나폴레옹 1세라는 전설적인 기억이 각인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먼저 박근혜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박근혜라는 개인이 어떤 성격의 인물이건 그 이름 속에는 박정희라는 기억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정치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그녀이건만 정치적 상황이 교묘하게 변화하는 와중에 갑자기 그 이름만으로 부상했던 그녀이기도 했다. 루이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였다. 루이에게 나폴레옹 1세의 기억을 제거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박근혜만이 아니다. 가령 지금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명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이회창도 예외가 아니다. 일개 법관이었던 그가 여당의 총재이자 그 당의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게 될 것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총재직과 대통령 후보직을 거머쥐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두 말할 필요 없이 보수세력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루이 시대의 질서당의 행보와 별로 다른 것이 아니다. 당시의 또 지금의 한나라당은 한국 사회를 수십 년간 지배해온 보수세력의 아성이었지만 김영삼 이후 내세울 만한 적절한 인물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한 나라당과 보수세력이 전술과 의지가 작동했으며 그것은 곧 새로운 인물 이회창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물론 150년 전의 역사를 현재와 맹목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올바른 일도 아니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선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반추하는 데 있어서 이는 여전히 유효하고 기억할 만한 역사이다. 요지인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란 그 사회의 근간이 재생산되는 전제하에서는 언제나 장난이나 게임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신문이나 티브이 또 수많은 정부 홍보물은 올바른 선거를 통해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선거라는 최대 판돈이 걸린 도박에서 그 판돈을 싹쓸이하려는 제 세력들의 협잡일 뿐이다. 최소한 그 선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행되는 한 이 협잡은 절대로 피해갈 수가 없다.


2.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선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선거에 몰두하고 때론 열광하는 이유는 또 다른 측면일 것이다. 확실히 그 자체로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러한 대중들의 관심은 다름 아니라 자신들의 착취자를 골라내는 관심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당연한 모습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주식투자나 주식 열풍 같은 것이 이와 비슷한 예라 할 수 있다. 주식투자는 통계적으로 보나 논리적으로 보나 보통의 대중으로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여기에 끊임없는 관심과 열정을 투사한다. 왜 그러한가. 그것 말고는 환상이라도 꿈꿀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이나 통로도 없기 때문이다. 생산력이 한없이 발전하고 국민소득과 생활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 하는 데도 한국 사회의 모든 사람은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산다. 비정규직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엿한 기업의 과장이나 부장이라 해도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해야하며 무언가 대책을 세우려고 한다. 따라서 이렇게 내몰린 대중이 주식이라는 환상을 기웃거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선거도 이와 똑 같다. 자본주의 사회는 일반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거의 확실하게 거세해 버린 사회이다. 참으로 선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이 때의 선거는 언제나 주식투자를 통해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환상과 동일한 것이다. 정치와 관련하여 눈에 보이는 단 하나의 그리고 거대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환상이 그것이다. 이 행위를 통해 대중이 느끼는 승리의 희열과 패배의 절망감을 생각해 보면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백만장자의 환상보다 더 커다란 것일 지도 모른다. 지난 선거에서 김대중을 지지했던 사람들, 지금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그 예이다. 당사자들은 그들이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냉철한 토론을 거쳤을 때 그들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의 선거란 궁핍과 거세에 의해 조장된 일종의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선거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무엇 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선거가 협잡이라고 했을 때 그 협잡의 이면을 추동하고 있는 제 세력의 움직임이 있다. 나아가 그 세력의 움직임을 더 근본에서 규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이 드러나는 지점이 선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선거는 협잡일 망정 지배세력과 자본주의의 구조 자신이 내어놓은 맨살의 지형이며 따라서 우선 우리에게 사태를 진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그 지형은 노동자․민중이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투쟁과 선전을 배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수많은 민중봉기와 혁명이 지배계급 자신들이 내어놓은 공간과 협잡 위에서 발생했다. 어렵게 예를 찾을 것 없이 그 유명한 프랑스 혁명만 돌아보아도 된다. 프랑스 혁명은 다름 아니라 루이 16세가 소집한 삼부회, 곧 루이 16세가 세금을 더 걷어들이기 위해 지어낸 협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또 한국 사회의 87년 6월 투쟁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호헌이라는 협잡을 중요한 계기로 포함하고 있다. 선거 또한 지배 세력이 자신을 재정비하려는 그리고 비켜 갈 수 없는 협잡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선거는 그 협잡과 환상 속에서 노동자․민중이 지배계급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전술을 구사할 수 잇는 유력한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냉정하게 사태를 분석하고 그 분석 하에 올바른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각종의 선전, 진행되고 있는 투쟁의 재배치 및 강화 그리고 잠재되어 있는 투쟁의 고리를 붙잡아 다시 일으키는 전술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술들이 어떤 효과나 의미를 가져올 수 있는지는 미리 예측할 수 없다. 특히 겉으로 드러난 후보에 대한 관심이나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에 비추어 우리의 전술들은 아주 작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우리의 투쟁을 과소 평가한다면 그것은 실상 역사적 문맹, 혹은 건망증 환자나 다름없는 태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민중의 전진도 급격하고 단속적이었으며 그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은 수많은 투쟁과 집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겨우 몇 년 전에 다름 아니라 한 나라당의 노동법과 국가 보안 법 날치기 통과라는, 평소에는 밥먹듯 일어나는 계기를 통해 96~97 총파업을 경험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마치 맨 땅에서 마그마가 치솟듯 폭발하는 유럽과 세계 도처의 노동자 투쟁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그런 말을 하고 있다면 이를 역사적 문맹이나 건망증 환자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웅크린 스프링처럼 순간에 떨쳐 일어날 준비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선거 전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란 기묘한 이중성의 결합이며 이는 근본적으로 체제 자체의 모순이 현상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그것은 협잡인 동시에 본질의 일면이며 지배계급의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며 노동자 민중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것이다. 나아가 이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 특히 표면적인 환상을 넘어 이면의 정세를 파악하고 그 환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넘어서는 것은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3. 맺음말
앞서 선거는 노동자․민중에게 하나의 전술이면서도 언제나 그것 이상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왔다고 말했다. 때때로 우리는 이 소용돌이에 대한 우리의 무능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운동의 과정이 이러한 절망감을 종종 가져다주는 것은 그야 말로 병가지상사라 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늦거나 반복되어도 여전히 기다리며 동시에 스프링처럼 떨쳐 일어날 준비를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차분하고 냉철한 투시와 반성이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하고 또 그렇게 실천할 것이다. 한/노/정/연

2002-12-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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