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토론회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
영국, 독일, 프랑스의 비교
정병기/ 연구기획실장
이 글은 지난 1월 18일 연구소 제70차 월례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1. 들어가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는 언제나 양극단이 존재했던 것처럼
‘제3의 길’을 둘러싼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따라서
지구화 시대로 표현되는 오늘날의 세계질서에서도 또 다른
‘제3의 길’ 논쟁이 일어난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제3의 길’ 논쟁이 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체제(system)’와 관련된 용법으로 전개되었다면, 오늘날의
그것은 최소국가와 복지국가 사이에서 대부분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의 ‘국가 개입 대안’을 두고 전개된다.* 이 글은
서울대학교 학제간 연구 프로젝트로 김수행, 안삼환, 홍태영과
공동으로 연구하여 2003년 3월에 발간할 단행본의 결론 논문을
일부 보완한 글이다.
Hirscher & Sturm(2001), p.9.
물론 각 국이 취하는 ‘제3의 길’의 구체적인 주장과 내용이
동일하지는 않다.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이 기든스(A.
Giddens)의 논리에 입각하여 중간층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치의 한 지류로 빠져들어 간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길은
‘전통 사민주의’ 노선―2차대전 이후의 사민주의 노선으로서
근로자에 기반한 국민정당―에 중간층 강조 전략을 결합하려는
시도였다.
이 글의 목적은 영국, 독일, 프랑스의 ‘제3의 길’이 갖는
일반성과 특수성을 정리하고 비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먼저
좌파정당들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창당 당시와 이후 변화과정으로
나누어 살펴 본 다음, 복지국가의 전개 과정을 포함한 전후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과 보수당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치를 비교
정리한다. 그리고 3개국의 ‘제3의 길’ 이념과 좌파정부
정책들을 천착한 후, 결론적으로 유럽사민주의 진영이 추구해온
‘제3의 길’이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 정치에 휩쓸려 갔음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2. 좌파정당들의 역사적 발전 과정
‘제3의 길’의 주역이 되는 3개국 정당들은 모두 사민주의
정당들로 묶을 수 있지만, 당명은 동일하지 않다. 영국의
노동당(Labour Party)과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당(사민당 SPD)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당(사회당 PS)이 그것이다.
당명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은 그들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드러나는 건설이념과 목적 및 변천과정의 특수성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성들도 전후(戰後) 자본주의 내에서
계급정당의 틀을 벗고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민정당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획득된 ‘사민주의’라는
공통성 속에서 대부분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먼저 3개국 좌파정당들의 변화과정을 단계별로 비교하면 <표
1>과 같고, 이를 다시 그림으로 표시하면 <그림 1>과 같다.
<표 1> 좌파정당들의 변천 과정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프랑스 사회당
창당 과정
∙1900, 노동대표위원회: 영국노총(TUC) 주도에
독립노동당, 사회민주동맹, 페이비언 협회가 참여
∙1906, 노동당으로 개명
∙1875,사회주의노동자당(SAP): 라쌀의
전독일노동자연맹(ADAV)과 맑스주의적사민주의노동자(SDAP)이
통합
∙1891, 사민당으로 개명
∙1905, ‘인터내셔널 프랑스지회(SFIO):
맑스․블랑키즘적 사회당(PSdF)과 개혁주의적
사회당(PSF)이 통합
∙1969~74, 사회당으로 개명 후 사회주의자들 통합
창당 이념과
목적
노동조합의 이익을 국회에서 대변
라쌀의 국가사회주의와 맑스주의의 절충(사회주의적 목표와
의회주의적 실천)
개혁적 사회주의와 블랑키즘 및 맑스주의의 병존
주요
노선변화
과정
①1918, 생산․분배․교환수단의 사회화와
산업민주주의(당헌 4조)
② 1950년대, 수정주의(산업민주주의 포기)와 케인즈주의로
국민정당화
③ 1970년대 후반, 케인즈주의까지 포기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
노정
① 1891, 에어푸르트 강령으로 맑스주의 강화
② 1890년대~1차대전(수정주의 논쟁), 맑스주의 포기와
라쌀주의 복귀; 공산주의자 분리
③ 1959, 고데스베르크 강령으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화
① 1920, 혁명적 사회주의자 분리로 개혁주의적 사회주의로
잔존
② 1969~74, 급진공화파들까지 통합하여 당내 정파 재편,
1970년대는 좌파와 중도파가 주류
③ 1978, 공산당과 결별, 우파세력 강화, 좌파도 우선회
최종 노선 변화와
제3의 길
∙1994, 블레어의 ‘신노동당’ 노선 등장
∙1995, 당헌4조 폐지, 현대적 경제정당화
∙1997, 노동당 집권
∙1989, 베를린 강령으로 현대화 노선 강화
∙1998, ‘신중도’ 노선 등장, 녹색당과 연정구성
∙1999, 블레어-쉬뢰더 성명으로 현대적 경제정당화
∙1991, 전통 사회주의 이념 포기하고
다원주의화(국민정당화)
∙1997, ‘쇄신좌파’ 노선 등장, 공산당 및 녹색당과
연정구성
1) 노동자 계급정당의 창당과 이념 및 목적
3개국중 사민주의 계급정당이 가장 먼저 등장한 국가는
독일이다. 라쌀주의적 전독일노동자연맹(ADAV)과 맑스주의적
사민주의노동자당(SDAP)이 합당하여 사회주의노동자당(SAP)이
창당된 것이 1875년이었다. 그후 1891년 에어푸르트(Erfurt)
전당대회를 통해 독일 사민주의 정당은 오늘날의 이름인
사민당(SPD)으로 개명하였다. 영국과 독일에서 사민주의 정당이
창당된 것은 독일보다 약 25~30년 뒤늦은 1900년과
1905년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사민주의 정당들도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현재의 당명을 갖게 되었다. 영국은 독일과
유사하게 6년 뒤에 개명이 이루어졌지만, 프랑스 사회당은 오랜
통합과 분열의 역사를 거쳐 1969년에야 오늘날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그림 1> 독일 사민당,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의 강령과
자기이해 변천
창당 당시의 이념과 목적도 창당 배경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영국 노동당이 노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과
달리, 독일 사민당과 프랑스 사회당은 노조운동과는 별개로
독자적 노동자정치운동의 성과물로 탄생하였다. 물론 독일
사민당과 프랑스 사회당도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속성에 따라
창당 이후 노조와의 관계가 긴밀해졌음은 당연하다.
영국 노동당은 영국노총 TUC에 의해 ‘노동조합이 대표하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의회에서 대변’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당되었다. 노동당의 창당에는 물론 기존 노동자계급정당인
독립노동당과 맑스주의적 사회민주동맹 맑스주의자 하인드만이
1881년 결성한 ‘민주연합(Democratic Federation)’이 1884년
개명한 조직으로, 이후 ‘영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Great Britain)’으로 성장했다. Pearce & Stewart(2002),
p.240.
, 그리고 사회주의적 지식인들의 모임인 페이비언 협회도
참여했다. 그러나 노동당내 조직구조와 의사결정구조에는 최근의
변화가 있기까지 단체당원제와 블록투표제에 의해 노조의
권한(약 7/8)이 강력하게 보장되어 왔다.
프랑스 사회당과 독일 사민당의 창당에는 노조의 영향력이
작용하지 못한 반면, 맑스주의자들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컸다.
특히 독일 사민당에서 맑스주의자들의 역할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라쌀주의자들과 대등한 것이었다. 때문에 창당
이념은 맑스주의적 이념과 라쌀주의적 실천의 절충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면밀히 관찰하면, 강력적 이념에
있어서도 맑스주의적 혁명성이 제대로 표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당의 모태가 되는 사회주의 정당이 출현하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 영국 노동당 창당과 비슷하지만, 출현
방식으로는 독일 사민당과 유사하게 기존 두 정당이 통합하는
형태였다. 혁명적 세력으로 분류되는 맑스주의자 쥘 게드(J.
Guesde)와 블랑키스트 바이양(E. Vaillant)이 이끌던 ‘프랑스의
사회주의당(PSdF)’과, 라쌀주의와 유사하게 공화국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적 사회주의자인 조레스(J.
Jaurès)가 이끌던 ‘프랑스 사회주의당(PSF)’이
통합하여 탄생한 ‘인터내셔널 프랑스지회(SFIO)’가 그것이다.
그러나 PSdF 내에 두 계파가 존재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프랑스
사회당은 세 입장의 절충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현대적 국민정당으로의 변천 과정
세 정당 모두 전반적인 우선회 현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창당한
지 약 20년이 지난 후 세 나라의 좌파진영에서는 공통적으로
좌파들의 강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것은 각 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배경과 창당이념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회 진출을 통한 정치적 수단에 의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표에 머물렀던 영국 노동당의 1차 노선 변화는
1918년 전당대회에서 당헌 4조의 채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생산․분배․교환 수단의 사회화와 기업경영에서의
산업민주주의를 당의 강령적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이후
사회화의 현실적 형태인 ‘국유화’가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복지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노동당의 최종적인
강령 목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급진적 노선 변화는 당시
영국 인민들의 의식변화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노동당은 약 5년 후인 1923년 191석을 얻어 자유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기도 했으며, 1929년에는 악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제1당이 되는 데 성공했다.
노동당의 2차 주요 노선변화는 세 차례 총선에서 패배한
1950년대였다. 영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인 이 시기에는
케인즈식의 재정금융정책으로 소득증대와 완전고용 및
소득재분배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이 노동당의 지도부와
이론가들 사이에 팽배했었다. 그래서 독일 수정주의가 독일
자본의 번영기에 등장했던 것과 같이, 국유화나 계획화 및
산업민주주의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수정주의와, 노동당은 더
이상 노동조합의 정당이 아니라 국민의 정당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이 시기에 크게 대두했다. 영국 노동당이 자본주의
질서를 극복하려는 계급정당 영역을 벗어나 자본주의 질서를
인정하는 탈계급적인 국민정당 영역으로 이동해간 것이다(<그림
1> 참조).
세 번째 주요 노선변화는 케인즈주의적 신념까지 포기하는
1970년대 후반의 변화이다. 1973년 야당 시절의 노동당은
국민기업청 설립을 통한 국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정책 강령 그러나 이 정책 강령은 윌슨 당수와 우파 의원들의
기피로 1974년의 선거 강령에서 희석되었다. 국민기업청도
노동당 집권후 1975년의 산업법에 의해 신설되었지만 그 역할은
정책 강령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 더욱이 1976년 12월
IMF로부터 파운드화 안정을 위한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국민기업청과 계획협정에 관한 관심은 사라져 버렸다.
고세훈(1999), pp.366~384 참조.
을 발표하는 등 일시적 좌선회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6년 캘러한(J. Callaghan) 노동당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전후해 임금 억제와 재정지출 삭감 등을 실시함으로써 처음으로
신자유주의적 경향으로 전환하였다. 김수행(2000)과 Foote(1997)
참조.
노동당의 최종 노선변화는 1994년 블레어 당수의 취임으로
시작된 ‘신노동당’ 노선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노동당
노선은 블레어가 ‘유일한 제3의 길’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대체로 보수당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계급정치’가 아닌 ‘국민정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신노동당 노선은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전통사민주의 노선을
완전히 탈피하였다. Hobsbaum, et al.(1981) 참조.
197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 경향 시작이 IMF 구제금융에 따른
외부적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면, 1990년대 신노동당 노선의
신자유주의는 집권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1995년 당헌
4조의 폐지는 이러한 노선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영국 노동당의 현대적 국민정당화는 독일 사민당과 같은
‘현대적 경제정당화’에 다름 아니었다.
라쌀주의와 맑스주의의 동거로 시작된 독일 사민당의 1차
노선변화는 1891년 에어푸르트(Erfurt) 강령에서 나타났다. 독일
사민당은 창당 시기가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보다 20여년
앞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1차 노선변화도 그만큼 빨랐다. 1차
노선변화의 시기는 사회주의자탄압법이 실패로 드러나고
경제침체에 따른 노동자 생활의 악화를 배경으로 맑스주의자들의
세력이 강화된 데에서 비롯되었다.
에어푸르트 강령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대안과 혁명적
노동자운동이라는 투쟁목표를 제시하면서 노동자계급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를 명확히
제기하였다. 물론 이 강령도 실천 강령에서는 라쌀주의를 그대로
답습했고, 박호성(1994), pp.63~64; Oncken(1923), p.526.
이념 부분에서도 변형된 맑스주의 Schmid(1973), p.280.
로 현상했다는 지적이 있다. 맑스주의적 정당으로 건설된
사민주의노동자당 강령에서부터 이미 라쌀주의의 영향은
근본적으로 나타났으며, 현대 사민당에 이르기까지 라쌀주의의
의미는 실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강령적인 면에서도 결코
포기되지 않고 있다. 독일 사민주의 정치의 변화는 맑스주의의
전통에서 혁명적 성격을 수정해 온 결과가 아니라, 라쌀의
전통에 맑스주의를 이론적으로 접목하려던 과정이 실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병기(2002) 참조.
그렇지만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고타(Gotha) 강령에 비해서는
분명 좌선회의 모습을 띤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곧 이어 시작되어 1차대전까지 이어지는 수정주의 논쟁을
계기로 독일 사민당은 의회주의적 계급정당의 길을 노정하게
된다. 수정주의 논쟁 이후의 사민당은 라쌀주의가 담보하고 있던
온건한 혁명성조차 상실해 간 것이다. 이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탈당하게 되는 계기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 대륙의 혁명 열기가 사민당 내에서는
수정주의를 강화시킨 반면, 사회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을
강화하여 사민당과 결별하고 독자적 정당을 꾸리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영국에서는 노동당 내의 좌파
세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편 1950년대 영국 노동당의 국민정당화 시작과 대비되는 독일
사민당의 변화는 같은 시기인 1959년 고데스베르크(Godesberg)
강령에서 나타났다. 이 강령에서 선언되고 1960년대 중후반
연정참가로 완성된 국민정당 노선은 근본적으로 계급관을 포기한
것으로서 자본주의 질서의 유지를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질서를 수용하는 한도에서나마 당시에는 아직
사민당이 친근로자적 이념과 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의 속성조차 포기한 것은 1989년
베를린 강령과 블레어-쉬뢰더 성명을 통해서였다. 당의 사회적
기반을 중간층으로 이동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정책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중도’와 ‘제3의 길’로 수용되는
현대적 국민정당은 영국 ‘신노동당’ 노선과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민족적 경쟁정당’이자 시장
원리를 신봉하는 ‘현대적 경제정당’을 일컫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의 1차 노선변화는 영국 노동당과 같은 시기인
1차대전을 전후하여 일어났으며, 당시의 혁명적 열기는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공산당의 분리 창당으로
작용하였다. 1920년 투르(Tours) 전당대회를 통해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분리해 나가고, 개혁적 세력만이 블룸(L.
Blum)을 중심으로 SFIO에 남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조레스와
블룸의 노선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좌파로부터는 공산주의 세력과 구별짓고 우파로부터는 공화주의
세력과 구별짓게 되었다. 특히 조레스적 관점에서 본다면,
프랑스 사회당의 목적은 무계급사회가 아닌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1920년
이후의 프랑스 사회당은 계급정당의 정체성을 갖지 않았거나
매우 약하게 띠었다고 할 수 있다. Bergounioux & Manin(1989)
참조.
프랑스 사회당의 2차 노선변화는 1920년대의 분열과 오랜 정체
기간을 거쳐 사회주의가 프랑스 정치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는
1970년대에 일어났다. 1969년 알포르빌(Alfortville) 전당대회를
통해 기존의 SFIO가 사회당으로 탈바꿈한 것이 그 전조였다. 이
사회당은 1971년 에피네(Epinay) 전당대회를 거쳐 1974년에는
다양한 사회주의 정당들을 통합하고 중도파를 이끄는 미테랑(F.
Mitterrand)을 중심으로 커다란 성격 변화를 겪게 되었다.
새로운 통합 사회당의 정파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테랑의
중도파 외에, 좌파로는 슈벤느망(J. P. Chevènement)을
중심으로 한 맑스주의 연구집단 CERES(Centre d’études,
de recherches et d’éducations socialistes)가 있었고,
우파로는 제3공화국 급진공화당(Parti Radical) 세력을 이끌던
로카르(M. Rocard)의 급진공화파가 있었다. 통합 이후에도
사회당은 일정한 기간 동안 개혁적 사회주의 노선이 주류를
형성했지만, CERES 그룹의 주도 아래 유로코뮤니즘적
공산당―1976년 프랑스 공산당도 22차 전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폐기하였다(에티엔 발리바르(1988)
참조)―과 연합하여 ‘공동강령’을 채택하기도
했다(Claudin(1978), pp.65~67).
일부 평자들이 에피네 전당대회를 사회주의에 대한 급진주의의
승리로 평가할 정도로 급진공화파의 합류는 1920년이래 사회당
노선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Portelli(1988).
대외적으로도 사회당은 공산주의와 급진공화주의 사이에서
후자에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사회당내
세력관계의 변화는 물론 세 정파간 연합의 결과였다. 그러나
당권을 장악한 미테랑은 사회주의자이기 이전에
공화주의자였으며, 당은 그에게 권력의 장악과 행사를 위한
도구였다. ‘인간의 권리에 기반한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미테랑 계파의 중심 가치는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결합, 특권의 해소 등이었다. Bergounioux & Grunberg(1992),
p.259.
이러한 변화는 사회당이 공산당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얻은
1978년 선거를 계기로 나타나는 3차 노선변경에 직접
반영되었다. 좌파진영 대변에 위기를 느끼게 된 사회당 내에서는
공산당과 연대를 주도했던 좌파인 CERES 그룹이 약화되고 우파인
로카르 집단이 강화되었다. 로카르는 공산당과의 공동강령이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며 중앙집중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반자코뱅적이고, 지방분권적, 자주관리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경제정책적으로는 긴축정책, 인플레이션 억제, 유럽과
세계에 대한 개방화를 주장하였다. Rocard(1979), p.117이하.
그러나 사회주의 개념의 수정은 우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슈벤느망도 1984년 ‘현대 공화국(République
moderne)’이라는 새로운 정치집단을 만들고 CERES 그룹 명칭을
‘사회주의와 공화국(Socialisme et République)’으로
변경하였다. 이어 1987년 릴(Lille) 당대회에서의 슈벤느망의
주장에서 나타났듯이, 이들에게도 이제는 사회주의가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고 현재적․현실적으로는 공화국만이 쟁점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공화국과 사회주의의 연관성과 관련된
슈벤느망의 주장도 공화국의 확대를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는 조레스 이래 지속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좌우를 막론한 당내 정파들의 전반적 우선회는 1991년 이후의
최종적 노선변화를 예고했다.
1991년 임시 당대회에서 채택된 당 기획안은 10년 동안을
주도했던 기존 원칙과의 단절을 명확히 했다. ‘민주주의적
사회주의 도덕과 방법’이라는 텍스트의 한 절에서 사회주의는
하나의 ‘도덕’ 혹은 하나의 ‘방법’으로서 정의되었다. 곧,
하나의 제시된 길로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 평등, 사회적
정의, 연대, 관용, 책임 등 다양한 가치들을 배제하지 않는
다원주의성을 띠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이 1995년
이후 ‘현대적 경제정당화’의 의미에서 현대적 국민정당화의
길을 완성했고, 독일 사민당도 블레어-쉬뢰더 성명을 계기로
영국 노동당의 뒤를 밟아간 것과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국민정당화의 시기는 빨랐지만 최종적인 노선변화에 있어서도
친근로자성을 유지하는 국민정당 노선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그림 1>에 나타난 세 정당의 위치를 참조).
3. 전후 유럽 자본주의 발전과 신자유주의 정치
신자유주의가 좌파정권의 경험에 대한 반작용과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세계적 공황의 산물이라면, ‘제3의 길’은
좌파정당의 지속적인 수정주의 맥락 속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세계공황이라는 자본주의 발전과 그에 대한 반작용인
신자유주의 정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후복구시기 이후 1970/80년대 세계경제공황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 발전과 이 시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치의 전개에
대해 살펴본다.
1) 전후 자본주의 발전의 위기
전후복구와 고도성장으로 상징되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유럽
자본주의는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복지국가라는 사회안전망
구축과도 연결된다. 그것은 혼합경제와 조합주의(corporatism)
및 완전고용 정책과 복지국가 수립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했다.
그러나 고도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도 1960년대 후반부터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 첫째가 자본축적 또는 경제적
확대재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테두리로서의 ‘자본주의
사회’가 위기를 겪게 되었다는 점이다. 1965년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베트남 전쟁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전체에서 거대한
반전운동을 야기했고, 그에 따라 군수산업이나 자본주의 체제의
윤리성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포드주의적
생산체계에서 무미건조한 단순작업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무단결근이나 태업으로 소외감을 표현하게 되었다. 다양한 고급
소비재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생활수준은 비참하다는 인식 때문에 노동자들의 소외감은 더욱
커졌다. 그들은 대폭적인 임금 인상과 작업환경의 개선 및
사회복지제도 확충을 주장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환경오염 방지시설을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지식인과 학생들의
요구도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하여 68운동의 반권위주의 운동을
대표하는 각종 신사회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둘째, 국제통화제도가 세계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가 점차 쇠퇴해 가는
가운데, 세계통화로서의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동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브레튼 우즈 체제를 지탱한
고정환율제도는 무너지고 변동환율체제가 도입되었는데, 도입
초기에는 국제거래의 불안정성과 투기성이 두드러졌다.
셋째, 1972/73년의 세계적인 투기적 활황이 1974/75년의
세계공황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1974/75년
공황에 대해서는 김수행(1986), 4부 참조.
세계 각국은 1970/71년에 경기후퇴를 경험했으며, 유럽
국가들도 이 경기후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금융의 확장정책을
취했다.
넷째,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국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OPEC은 대이스라엘 규제를 위해 석유수출을 억제하고 석유가격을
인상하였다. 석유가격 인상은 세계적 투기에 의한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겼을 뿐 아니라 국가간․산업간 불균등발전을
야기하며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았다. 유럽 내에서도 국가들간
불균등발전이 야기되어 유럽공동체의 통합노력이 좌초하고
이른바 유럽경화증을 우려할 정도였다.
다섯째, 선진국 기업들은 유가 상승에 따른 원가 상승을
제품가격 인상으로 보상하려고 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더욱 심화되었고,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974년 봄부터 재정금융긴축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1차
산품, 토지, 건물, 주식 등에 대한 투기가 산업생산의 축소
때문에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말미암아
투기가 대규모로 몰락하게 되었다. 투기의 파탄은 상업자본의
파탄을 의미할 뿐 아니라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파탄도
의미했다. 특히 영국의 경우, 1970년대의 위기는 매우 심각하여
노동당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담보로 하는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세계 경제공황은 공업생산 저하율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래 가장 심각했으나 물가는 여전히 상승하고
있었다는 점에 큰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자본의 과잉(이것은
낮은 이윤율과 낮은 설비가동률로 나타난다)과 인구의
과잉(이것은 실업의 존재와 증가라는 형태를 띤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히 관리통화제도에 의해)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더욱 악화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1970년대와 1980년 초반의 경제공황은 더 이상
케인즈주의적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로 받아들여졌다. 그
해결책으로 보수주의 진영은 자유주의 논리를 근간으로
통화주의와 공급위주 정책을 부활시킨 반면, 사민주의 진영은
케인즈주의를 포기한 채 대안 부재에 허덕이며 신자유주의
정치의 도래를 보고 있어야만 했다.
2) 좌파 정권의 경험과 신자유주의 정치의 전개
1970년대 초중반을 넘어서면서 영국 노동당정부와 독일
적황연정의 사회경제정책은 이미 신자유주의적 선회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는 1962년부터 1976년까지
우파연정이 지속되다가 1970년대 후반에는 좌우를 포함하는
범연립정부가 들어서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이
영국과 독일에서 확고한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정치의
시기였다면, 프랑스에서는 동거정부를 경험하기는 하지만
좌파정부가 지속되었으며 1995년과 1997년 2년간에 걸쳐서야
우파의 헤게모니가 작동하였다(<표 2> 참조).
<표 2> 정권교체와 정부구성
영국
독일
프랑스(제5공화국)
1945~1955 노동당
1955~1964 보수당
1964~1970 노동당
1970~1974 보수당
1974~1979 노동당
1979~1997 보수당
1997~현재 노동당
1945~1949 연합군정
1949~1966 기민/기사연, 자민당
1966~1969 기민/기사연, 사민당(대연정)
1969~1982 사민당, 자민당
1982~1998 기민/기사연, 자민당
1998~현재 사민당, 동맹90/녹색당
1959~1962 범연정
1962~1976 우파연정
1976~1981 범연정
1981~1986 좌파정부(사회당)
*1981~1984 공산당 포함
1986~1988 동거정부(대통령 미테랑)
1988~1993 좌파정부(사회당)
1993~1995 동거정부(대통령 미테랑)
1995~1997 우파연정
1997~2002 동거정부(대통령 시락)
2002~현재 우파연정
1974년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노동조합의 지지에
의해 당선된 영국 노동당 정부는 노사관계법 폐지, 노동자들과
저소득층을 위한 분배정책 강화, 사회보장제도 개선을 실시했다.
그러나 국민경제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민간기업을
국유화하거나,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장래 계획을 조정하거나
산업의 현대화를 위해 정부 투자를 증대시키는 것 등 경제구조를
재편하거나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 근본적인 정책은 실시하지
않았다. 윌슨 수상의 뒤를 이은 캘러헌(J. Callaghan)
노동당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임금 인상 억제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함으로써 수출 증진과 실업 축소를 달성하려고
했다. 1976년 12월에는 IMF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사회보장
지출의 삭감, 임금 상승의 억제, 긴축통화정책까지
추구되었는데, 이것은 사실상 노동당 정부가 스스로 추진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캘러헌 정부의 실정으로 1979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대처와 그
후임으로 1990년부터 7년간 통치한 메이저(J. Major)의 보수당
정부는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고 공평하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원리와, “시장의 실패보다는 정부의 실패가 더욱 큰
문제다”라는 신자유주의 사상에 의거해 세계에서 가장 철저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Feigenbaum, Henig and
Hamnett(1998), 제3장 참조.
대처와 메이저는 긴축적인 재정금융정책, 규제 철폐와
시장주의의 광범한 도입,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공기업의 사유화
등을 거의 완수했다.
보수당은 1979~97년의 18년 집권 기간중 시장의 자유로운 기능,
기업경영자의 권위, 국가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기업활동의 강화,
완전고용보다는 인플레이션 억제, 기업의 신뢰 회복 등에 역점을
두면서 노동조합을 ‘내부의 적’으로 간주했다. 대처 정부는
1980년과 1982년의 고용법을 통해 클로즈드 숍(closed shop)을
금지하고, 노조에게 노조 행위로 말미암은 기업이나 타인의 손실
배상 의무를 지도록 했으며, 2차적 쟁의 행위인 지원파업과
동정파업을 불법화했다.
한편, 1966년 대연정을 통해 연정에 참여한 이후 1969년
선거에서 승리한 독일 사민당은 제1당으로서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하였다. 독일 사민당도 집권 초기에는 영국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지지 기반인 노동계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1970년대 초반까지 시도되었던
‘협주행동(Konzertierte Aktion)’을 통한 조합주의적
사회경제정책 결정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자민당이 경제정책을 주도해 나가게 되면서 세계 경제위기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신보수주의 헤게모니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물론 독일에서 민영화 재개 1980년대 민영화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일정하게 자리잡은 1950년대 말의 제2차 민영화 이후
사민당 집권기 동안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것은
기민연/기사연 헤게모니가 다시 작동하는 1983년부터였다. 이
때부터 1998년까지 지속된 기민연/기사연-자민당 연정의
사회정책은 연대원칙(Solidaritätsprinzip)보다
보조원칙(Subsidiaritätsprinzip)을 강조하고
목적원칙(Finalitätsprinzip)보다
인과원칙(Kausalitätsprinzip)을 강조했다. 시장매개적인
소득안정에 중점을 두면서, 동일한 문제일지라도 원인이 다르면
달리 취급하는 시장경제적 조정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조원칙이란 ‘자구에 대한 원조(Hilfe zur Selbsthilfe)’를
보장하고 국가를 ‘최후의 결손보정(letzter
Ausfallbürge)’ 기구로 보는 ‘후생과 구제의
원칙(Fürsorgeprinzip)’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장매개적인
소득안정에 중점을 두는 반면, 연대원칙은 상호 원조의 공급과
양육 등 ‘보호와 부양의 원칙(Versorgungsprinzip)’을 말한다.
인과원칙은 동일한 문제일지라도 원인이 다르면 달리 취급한다는
원칙으로 보조원칙과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적 조정을 근거지우는
반면, 목적원칙은 원인과 무관하게 곤궁 상태의 해결을
필수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Hickel(1984), pp. XI~XIII;
정병기(2001), p.301 참조.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이러한 정책 전환은
구체적으로 이윤추구의 보장, 사회보장권의 제한, 노동조합
이익대표권의 제한, 사회정책과 가족정책의 사회화 축소와
민영화를 내용으로 하였다. Eichner(1986), p.90.
노사자율교섭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노사관계 개입이 극도로
자제되는 독일에서도 1980년대에는 하나의 중대한 개입이
있었다. 그것은 1984년 금속 부문 전체에 걸쳐 일어난
주35시간제 투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연방노동청이 직접
파업지역이 아닌 ‘차가운 직장폐쇄’ 지역의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해석을 내린 것이다. Hemmer,
Milert and Schmitz(1990), p.432.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를 둘러싼 노동조합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영국이나 독일에서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유럽 전반의 우경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1976년 이후의 범연립을 거쳐 1980년대에도
사회당 중심의 좌파정부가 구성되었다. 1970년대에 사회당은
국유화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적 기획으로 당내 좌파뿐만
아니라 공산당을 비롯한 외부 좌파들도 포괄하는 광범한 연대를
통해 좌우 대립구도를 명확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 기획의 실행도 집권 후에는 정권초기(1981~1983)에
한정되었다. 1982년 7월에 이미 임금과 가격의 동결이라는
정책을 수립하면서 선회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다가, 1983년
미테랑이 정부의 과도한 개입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책 전환이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1983년은 조스팽(L. Jospin)의 ‘제3의 길’이 태동된 시기로서
그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조스팽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Fondation Copernic(2001),
p.5 참조.
1983년과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미테랑은 “중간적 길(voie
médiane)”이 “사회 전체의 조화를 복원하기 위해”
가능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경쟁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을
재건”하기 위해 공공부문과 사적부문의 공존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혼합경제사회”의 형성을 주장했다. Le Monde, 4
janvier 1983; Libération, 10 mai 1984.
그에 따라 1984년 수상이 된 미테랑 계열의 파비우스(L.
Fabious)도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현대화된
사회주의(socialisme moderne)’를 주창했다. 1984년 “현대화와
사회진보에 관한 대회(Convention sur la modernisation et le
progrès social)”에서 파비우스 수상은 “혼합경제”는
“국가의 개입과 임노동자 및 시민들의 대항권력에 의해
정정되는 시장 경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Le Poing et la
Rose, n° 111, novembre 1984).
미테랑 사회당 정권의 우경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동거정부를 거쳐 1988년 미테랑의 대통령 재선과 함께 수상에
취임한 사람은 당내 우파의 수장인 로카르였다. “시장 경제
내에서의 연대사회”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로카르의 정책은
공공적자 감축, 임금인상 완화, 생산적 투자 촉진, 공공부문
개혁, 자유와 안전의 균형 및 교육 투자였다. Bergounioux &
Grunberg(1992), p.455.
로카르는 기존의 프랑스 사회당이 사고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혁의 주체를 국가 중심에서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확대하려 했다. 당내 좌파와 공산당은 로카르의 우경화 노선에
제동을 걸려 했지만, 1990년 수상 교체 이후에도 로카르의
노선은 사실상 지속되었다.
두 차례의 동거정부를 거쳐 1995년에 등장하여 2년 동안 지속된
우파정권은 짧은 기간이나마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민영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우파정권의 시락(J. Chirac) 대통령은 특히 유럽단일통화 출범
일정을 지키기 위해 공공지출을 억제하고자 했으며, 쥐페(A.
Juppé) 총리는 그에 따라 1995년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과감한 복지비 삭감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우파에 의해
추진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치들 중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부담금 경감과 간접세를 통한 재원 조달, 정부 재정적자 감소를
위한 긴축 정책 및 민영화 정책 등은 이전 좌파정부의
정책에서도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파비우스-시락-로카르로 이어지는 좌-우-좌의 정부 정책은
일정한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Théret(1991); B.
Jobert & Théret(1994).
그러나 사회보장제도 감축과 공공부문 개혁을 비롯한 우파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프랑스 노동자들의 대응은 기성노조
일부의 친정부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모범적인 대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95년 11/12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3주 이상의
파업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안을 후퇴시키고 프랑스 노동자
연대의 승리라는 평가를 낳았다. 홍태영(1996)과 홍태영(1997)
참조.
4. ‘제3의 길’의 표방이념과 최근 좌파정부 정책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 및 프랑스 사회당의 ‘제3의 길’
이념과 그에 따른 최근 좌파정부들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새로운 극복 대안이라기보다 그 정치의 또다른 변형이라는
공통점을 노정하면서, 구체적 정책에서 일정한 차이점들을
드러냈다. 이 장에서는 세 정당이 주장하는 ‘제3의 길’의
표방이념을 살펴보고, 그들의 최근 정부정책을 비교 고찰한다.
1) ‘제3의 길’의 표방이념: 급진중도(신노동당), 신중도,
쇄신좌파
3개국 좌파정당의 노선이 표방하는 이념의 형식은 각기 다르다.
영국 노동당은 기든스의 논리를 수용하여 ‘급진중도’ 또는
‘신노동당’이라 칭하고, 독일 사민당은 ‘신중도’를
주창하며, 프랑스 사회당은 ‘쇄신좌파’를 자처한다.
영국 노동당이 보는 ‘제3의 길’은 복지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전략으로서, 사회민주주의가 취해야 할
새로운 대안이다. 그에 따라 노동당은 권리는 반드시 책임을
수반한다는 의미에서 ‘포지티브 복지’ 또는 ‘새로운
혼합경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을 의미하는 ‘신노동당’ 이념은
1995년 개정된 당헌 4조에 잘 나타난다. 즉, 노동당은 ‘민주적
사회주의당’으로서, “권력과 부의 기회가 소수의 손에 있지
않고 다수의 손에 있”으며, “권리를 향유하면서도 의무를
수행하고”, “연대와 관용과 존경의 정신으로 자유롭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Pearce &
Stewart(2002), p.569.
이 때 ‘신노동당’이 규정하는 사회적 정의는 상당한 수의
시민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가리키며, 사회적 정의가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해서는 안된다. 평등이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각자가 자기의 잠재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실질적 기회, 시민적 책임,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노동당’의 강조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초극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특수한’ 정치철학을 형성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만약 경기가 나빠져 실업률이 상승한다면,
조세나 재정적자의 증가를 반대하는 ‘제3의 길’ 노선은 힘을
잃고, 결국 전통적인 좌파 정책(국유화나 재정적자 증가에 의한
경기부양책)이나 우파 정책(건전재정의 유지로 실업을
증가시키는 정책)으로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은 매우 애매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좌파보다는 우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평등’에
대해 ‘제3의 길’은 기회의 평등이나 개인의 책임을
중시함으로써,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을 사실상 인정한다.
‘지구화’에 대해서도 불가역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야기하는 온갖 폐해를 시정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구화와 타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신중도’로 불리는 독일 사민당의 ‘제3의 길’은 1989년
베를린 강령에서 시작되어 1999년 블레어-쉬뢰더 성명으로
완성된다. 우선 베를린 강령은 ‘사회적 정의’를 “재산과 소득
및 권력의 분배에서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 강령에서 언급되는 ‘사회적 정의’도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목표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추상적
규범으로만 제시된 것이었다. 따라서 영국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그 ‘정의’가 요구하는 ‘더 많은 평등’도 엄격히 결과적
평등의 개념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기회와 출발의 평등으로
전환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말 집권기에 평화정당의 성격을 획득한 이후 경제적
분배와 평등을 넘어 탈물질주의적 가치들로 무장한 현대 사회의
새로운 문제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측면에서 이
강령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강령의
문제점은 경제적 사안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들에 있어서조차
경쟁 및 시장의 개념과 타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통일 이후 1990년대에는 이러한 정의 개념에 대한
언급조차 줄어들다가 1998년 연방의회선거 당시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Jun(2000), p.1518.
추상적 규범으로 제시된 ‘민주적 사회주의’가 정책적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일정한 모순을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블레어-쉬뢰더 성명은 베를린 강령과 현실 정부정책간의
괴리를 후자에 맞추는 방향으로 해소한 것으로서 ‘현대적
경제정당’화로의 노선변화를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현대적 사민주의자들’은 ‘제3의 길’로 포장된 ‘신중도’를
“21세기를 위한 현대적 통치”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그 실질적
내용은 경제적 지구화를 옹호하고, 재정안정과
조세부담경감이라는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며,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라인
자본주의(rheinischer Kapitalismus)’도 거부하고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으로부터 사민당을
단절시켜 내고자 하는 것이다. Mahnkopf(2000), pp.489~491.
독일 사민당과 적녹연정의 ‘제3의 길’은 명백히 고전적
분배정책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곧 분배의 결과가 아니라, 부
자체의 증가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도 증가한다는 이른바
‘엘리베이트 효과’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Dörre(1999),
p.10.
그 전략은 성장과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경제력과 시장의 역할에 의지하고 그 강화와 확장을 위해 또
다른 형태의 물신화된 “권력환상(Machtillusion)” Narr(1999),
p.374.
으로 현상한다.
한편 조스팽 사회당 정권에 의한 복지국가의 개혁은 상당부분
1984년 이래 사회당이 추진해 온 복지국가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당내 다수 중도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미테랑 계열의 조스팽은 사회당의 좌우 편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중간적인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당 자체가 이미 상당부분 우경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중도의 길 역시 우경화된 중도였음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사회당이 표방하는 ‘쇄신좌파’는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당내 우파들이 주장해온 공화주의 강조를 좇아간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당의 정체성은 사회주의적 조치를
통해 유지되기보다는 ‘공화주의적 연대’를 통해 재형성되고
있었고, 조스팽 정부의 정책에서도 그 점은 지속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통적
사회주의의 맥락을 덜 벗어났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공화주의’라는 프랑스식 개혁 사회주의의
가치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무지개 연정의
구체적인 정책은 공산당의 연정참여라는 요소를 차치하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의 수렴이라는 보다 넓은 범주의 일반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곧 부유층에 대한 세금 증가를 비롯한 소득
불평등 감소 정책이 전통적 좌파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이 인정되지만, 기업의 사회적 부담금을 낮추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연장선상에 놓인 조치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Daniel(2001) 참조.
2) 최근 좌파정부 정책: ‘현대적 좌파’ 주도 신자유주의
기획
3개국 좌파정부간의 상대적 차이를 보면, 영국과 독일이
유사성을 보이는 반면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좌파적 차별성을
띠었다. 블레어-쉬뢰더 공동성명 이후 영국과 독일의 좌파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원리를 더욱 수용해 간 반면, 프랑스 무지개
연정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실업해소와 소외층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조스팽 총리의 말처럼 프랑스 사회당은 ‘사회주의의
장점 부활’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 좌파민주당 출신의 달레마(M. D’Alema) 총리는
조스팽을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표방이념에서 이미 드러난 것처럼, 이러한 상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 좌파정부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정치를
이어받음으로써 ‘현대적 좌파’ 국민정당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기획이라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현대적 좌파’란 노동자계급적 정파성을 가진 정당이라는
고전적 의미가 아니라, 케인즈주의까지 포기한 국민정당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신자유주의적 보수정당에 대한 상대적 좌파의
의미이다.
정책기조를 중심으로 3개국 좌파정당들의 전략상 지지층과 최근
좌파정부의 정책을 비교하면 <표 3>과 같다.
<표 3> 영국, 독일, 프랑스의 좌파정부정책 비교
영국
독일
프랑스
총리
블레어(T. Blair)
쉬뢰더(G. Schröder)
조스팽(L. Jospin)
정부구성
노동당(1997 ~ 현재)
사민당, 녹색당
(1997 ~ 현재)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1997 ~ 2002)
경제정책
탈규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
시장경제 보장틀내 국가개입
사회정책
‘노동을 위한 복지’
'근로를 촉진하는 국가'
소외층 강조, 노동시간단축 통한 실업해결
전략상 지지층
중간층 중심
전통 사회주의 지지자와 중간층 연합
유럽정책
성장과 고용
연대와 고용
노조참여 여부
배제
'고용 협정' 활용: 의사결정 참여 불가
'사회협약' 시도
경제정책에서 영국과 독일의 좌파정부는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강조하는 탈규제 정책을 대폭 수용하는 유사성을 보이는
반면, 프랑스 좌파정부는 국가개입을 일정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이러한 차별성도 크게 보면 시장경제의 틀 내에서
허용되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를 무시하면,
전체적으로 탈규제, 민영화, 조세인하를 중심으로 하고 사회정책
면에서 재정적자 해소와 연결된 복지제도의 효율화와 감축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3개국 정부가 모두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정책적으로 3개국의 좌파정부들은 각자 상이한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영국 노동당정부는 ‘노동을 위한 복지’를
주장하고, 독일 적녹연정은 ‘근로를 촉진하는 국가’를
추구했다면, 프랑스 무지개 연정은 어느 정도 전통 사회주의적
정책을 지속하고자 했다. 사회정책에 있어서는 특히 공산당
참여라는 연정구성 요소가 중요하게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신노동당’은 복지수혜자들이 ‘앉아서 복지 급부를 계속 받을
수는 없게’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일자리를 찾도록
촉구했다. 그 구체적 정책의 하나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인
뉴딜(New Deal)을 도입하고 교육과 훈련을 크게 강조했다.
김승택(2002) 참조.
‘복지로부터 근로로’라는 원칙 때문에 ‘신노동당’은
‘교육과 훈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동당
정부는 또한 진찰이나 수술 등 일정한 분야를 영리적 민간
의료기관에 맡기는 방식으로 보건의료제도의 공사협조체제를
확대해 왔다.
2기 노동당정부의 정책은 관민협력체제의 강화를 지속하는 등
1기의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도
적극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 쉬뢰더 총리는 적녹연정의 정책 목표와 관련해 ‘개혁과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 및 사회적 통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지켜온
복지국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정
절약을 비롯한 복지국가의 감축은 지속되어 왔을 뿐 아니라,
적녹연정의 핵심적 사회정책의 하나인 고용창출정책은
임시노동과 비정규직 노동에 집중되었다.
‘개혁, 정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노동시장 개혁과
경제회생’에 중점을 둔다는 2기 적녹연정의 정책기조도 1기의
사회경제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재정정책과
관련해서는 긴축정책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Koalitionsvertrag von Oktober 2002: Erneuerung,
Gerechtigkeit, Nachhaltigkeit für ein wirtschaftlich
starkes, soziales und ökologisches Deutschland.
Für eine lebendige Demokratie.
프랑스의 경우는 신자유주의적 방식과 더불어 공화주의적 연대의
강조를 통한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을 동반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 왔다. ‘최소적응수당’과 ‘포괄적
의료보험제도’ 그리고 ‘반소외법’의 제정은 공화주의적
연대라는 시각에서 프랑스 영토 내에 존재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건강한 삶을 보장해 주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그와 맞물려 존재하는 ‘고용 장려금제도’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스며들어 있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이 제도를 통해 확보되는 것은 광범한
저임금 노동자층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부분의
재정은 기존의 보험제도와 달리 조세 부과에 의해 충당하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영국적 보편주의 원칙의 강화로 볼 수 있다.
즉 사회보험의 형태가 고용주의 부담에 기반하고 있다면, 최근
최소생계 원칙의 강화는 기업주의 부담을 감소시키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동시에 그 부담을 국민 전체에게 부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프랑스 복지국가가 평등주의 원칙에
기반하여 분배의 문제에 집중하였다면, 최근의 개혁은 연대라는
이름으로 국민적 부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영국과 독일의 사회경제정책은 사회구성원의
생활보장과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정의라는 원칙을 버리고
일하는 자의 근로 여건을 보장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원칙으로 전환되었다.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악조건의 일자리까지
강제하고 ‘복지에서 근로를’ 촉진하며 공급측을 위한 탈규제를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경제정책은 복지자본주의적 결과들도 파괴하지 않는
정도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보다 큰 범주에서는 탈규제와
신자유주의의 틀 내에서 보수주의와 흥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당의 전략상 지지층과 경제정책 및 유럽정책에 있어서도
영국과 독일이 유사함을 보이는 반면, 프랑스는 일정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영국과 독일의 노선이 중간층에 치중된 것에 반해,
프랑스 사회당은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좌파 지지층을 기반으로
중간층과 연합한다는 입장이다. 구노동당과 구사민당이 국가,
집단주의, 누진세를 바탕으로 노동자계급 혹은 근로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신노동당과 현대 사민당은
시장, 개인, 낮은 조세를 정책적 바탕으로 하고 미디어 매개와
인물 상징의 선거전술을 통해 유권자의 표를 최대한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유럽정책에서도 프랑스는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 국가들과 더불어
독일과 영국의 유럽연합 주도를 경계하며 ‘성장과 고용’ 대신
‘연대와 고용’이라는 보다 진보적인 안을 내놓았다.
사회정책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산당의 영향이 일정하게 작용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좌파정부의 정치스타일 면에서 영국 노동당정부는 노조의
강력한 영향력이라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노조의 정책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고자 한다. 반면 프랑스의
무지개연정은 전통적인 사회협약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이러한 차이는 노동당과 사회당의 대노조 정책의
역사적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신보수주의 정권 하에서
노조가 대응해 온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 영국 대처정부 하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무력해진 것과 달리,
프랑스의 여러 노조들은 쥐페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항해 성공적인 투쟁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회협정도 경제 위기와 같은 상황에서는 또다시 동원의 기제로
작동했던 경험과 마찬가지로 최근 좌파연정에서도
정책결정기구로 운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독일 적녹연정의 대노조 정책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협주행동’의 경험을 살려 프랑스처럼 노사정간 새로운
고용협정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중도’ 노선의
고용협정은 프랑스의 사회협정이나 적황연정의 ‘협주행동’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협의기제에 불과했다. 적녹연정은
처음부터 고용협정의 협의 사항을 정책에 반영한다는 의지를
갖지 않은 채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정책적
동원기제를 구상했던 것이다.
결국, 독일 사민당과 프랑스 사회당이 추구하는 ‘제3의 길’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독일의 ‘일자리와 교육과 경쟁력을 위한
동맹’이나 프랑스의 사회협정도 노동과 산업의 경쟁력을 위한
생산성 협정으로서 공급측 조합주의(supply-side corporatism)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국가 개입의 측면에서
직접 개입을 피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이 협의기제를 통해 간접
개입은 확대함으로써 경쟁력뿐만 아니라 제반 분배조건도
개선하려는 조합주의적 사회통치(corporatist social
governance)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5. 맺으며
영국, 독일, 프랑스의 사민주의적 좌파정당들이 모두 창당
당시에는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정체성을 가졌었다. 그러나
노조가 자신의 정치적 대변을 위해 만든 정당인 영국 노동당은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확보하고 향상시킨다는 의미에 한정된 계급정당이었다. 독일의
사민당도 처음부터 혁명적 사회주의와 구별되는 국가사회주의적
전통을 가졌다는 점에서 영국 노동당과 유사하다. 프랑스
사회당에서도 공화주의적 성격을 띤 개혁주의적 사회주의파가
창당 때부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공산당의 분리 건설
이후에는 주도 세력이 되었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
정당 모두 탈계급적인 ‘국민정당화’의 가능성을 배태했다고 할
수 있다.
‘제3의 길’은 1970년대의 복지국가 위기와 세계 경제공황에
대한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치의 헤게모니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사민주의 정당들이 취한 대안부재의 선택이자 지속적인
우선회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복지국가의
토대가 위협받고 이를 계기로 자본의 세계화와 대노동 공세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강화되고 있었음에도, 사민주의
정당들은 좌파적 대안을 구상하지 못한 채 또다른 중도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은 자본의 세계화 흐름에 대해
현상타파적이 아니라 현상추수적이라는 점에서 보수당의
신자유주의를 계승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도 계급정당과 국민정당 사이에서 선택된 ‘제3의
길’이었던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을 넘어 부르주아적
국민정당과의 또다른 ‘제3의 길’인 ‘현대적 경제정당화’를
선택함으로써 역시 우파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어받았다.
특히 블레어-쉬뢰더 공동성명 이후 두 정당의 차이점은 더욱
줄어들어, 대미관계 등 대외정책상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반면, 프랑스 사회당은 공산당과의 끊임없는 경쟁으로 인해
국민정당화의 길은 빨랐지만, 최종적 노선변화에서도 ‘현대적
경제정당’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으며 아직도 상대적으로
친근로자성과 공산당과의 연대가능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좌파가 실행하는 정책들도 신자유주의적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데, 그것은 공산당에 대한 구별 강제와
공화주의 사상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특히
사회당이 주장해온 공화주의적 연대는 소외계층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역시 현상추수적으로 변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개량주의적 믿음이라는
단점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정당들의 현상추수적 모습은 좌파적 대안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집권을 위해 전념하는 선거정당의 양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영국의 ‘신노동당’이 구노동당의 ‘계급투쟁’이
‘권력투쟁’으로 변질하다가 급기야 당권을 장악한
‘국민정치파’의 ‘득표경쟁’으로 전락한 것이라면, 독일의
‘신중도’는 ‘현대 사민주의자’들에 의해 인물 중심 중간층
정당으로 변해 간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찍부터 국민정당을 강조했던 프랑스
사회당은 오히려 1980년대 초반부터 미테랑의 집권수단으로
기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제3의 길’은 여러 측면에서 나라별로 상이하게
나타났지만, 역사적 동시성의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이념의 수준이나 획기적 정책의 고안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기존의 좌파적 정체성을 상실해 간 길이라는
일반성을 띠었다. 뿐만 아니라 발전적 중도를 표방하는 ‘제3의
길’은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지위에 처한 사람들과 새롭고도
지구적인 인간의 문제들을 외면한 채, 득표 제고에 도움이 되는
이슈들만을 추구하는 득표전략을 목적과 전도하는 오류를
공통적으로 범해 왔다. 결과적으로 ‘제3의 길’로 포장된 유럽
사민주의의 최근 노선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합리화의 수혜자들과
사회적 신흥계층들과 같은 새로운 ‘지구화 계급’을 위한
것이며, ‘아래로부터 위로의 재분배’를 통해 사각지대나
사회저변층들을 더욱 벼랑으로 몰고 가는 기획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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