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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시위를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84호
변정필



제국주의와 전쟁


‘반전시위’를 ‘반제국주의 투쟁’으로․변정필
군수산업과 전쟁을 위한 전쟁․채만수
한반도 위기와 동북아 정세․박영균
현 세계 자본주의 경제현황과 전쟁․김두한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이어, 이라크 침공을 사실상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포함, 전 세계 진보세력은 2월 15일 동시다발 전쟁반대 집회를 열었고, 그 숫자가 무려 천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집회는 수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현장 노동자는 더욱 드물었습니다. 한반도가 위기의 핵심에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쟁문제에 대해 노동자는 긴장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쟁 발생의 본질적 원인, 제국주의 패권 미국의 의도, 또다른 제국주의 독일과 프랑스의 노림수 등이 파헤쳐지지 않은 채 진행되는 전쟁반대투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됩니다.
이런 문제인식하에 이번호 특집을 ‘제국주의와 전쟁’으로 잡았습니다. 각 글마다 자본주의에서 전쟁발생의 본질적 원인을 명쾌하게 정리하면서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정세, 정치, 경제 현상을 비교적 풍부하게 분석하고 있어서 특히, 현장활동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반전시위’를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변 정 필/ 국제기획실





God bless you, God bless the America!
(신이여 당신에게 축복을, 미국에 축복을!)

부시 대통령이 항상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God bless you, God bless the America!
(신이여 당신에게 축복을, 그리고 미국에 축복을!)

9․11테러를 ‘악(惡)’의 공격으로, 그리하여 선(善)인 미국이 단결해 악을 무찔러야만 하는 계기로 착각하고 있는 부시 정권은, 미국이야말로 신이 강복하는 축복의 땅이며, 테러리스트를 만들어 낸 아프가니스탄은 저주받아 마땅한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은 실제로 선(善)인 미국에 의해서 저주받은 땅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테러와의 전쟁”에서 첫 번째 희생양이어야만 했던 테러리스트 탈레반 정권아래의 아프가니스탄 민중은 숨죽이며 아무소리 못하고 죽어갔고, 미국의 노동자․민중은 이 학살에 대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라크 민중은 미국 앞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노동자․민중도 미제국주의가 침략전쟁을 통해 한 나라의 민중을 무참히 살해하도록 용인할 것인지, 아니면 제국주의 전쟁을 저지하고 세계를 흔들었던 역사의 주체로 다시 설 것인지의 기로에 섰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이유는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대량살상무기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며, 이라크 민중을 억압적인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1월 28일 국정연설 당시 부시는 “폭력이 승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로 미국의 민중, 세계의 민중을 선(善)으로 인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위선으로 부시는 ‘석유’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늘 해왔던 대로 이라크 민중을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그 선두에 서있는 나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불행히도(?) 14일에는 부시편을 들었던 한스블릭스 유엔무기사찰단 단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밝혀 부시 행정부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가 미국에게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패권을 믿을 뿐이다. 그리고 전쟁을 향한 시간은 조금씩 더 가까워져 가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학살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 10년간의 경제봉쇄조치로 이미 수많은 이라크 민중이 저항도 못해보고 살해당했다. 유니세프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미국의 대 이라크 경제봉쇄조치로 인한 의약품부족과 영양실조로 10년 간 10만 명 이상의 영아가 죽었고, 같은 기간동안 성인사망은 통계를 내는 곳마다 다르긴 하지만 90만에서 120만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 약 50만 명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약 300만 명에 이르는 인구가 영양결핍으로 구호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00만 명의 난민도 발생할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라크 전체 인구가 약 2,400만명이니까 네 명중 한 명이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 심지어는 목숨을 위협받는 공격에 직면한다는 얘기고, 설사 운이 좋아 이 ‘네명 중 한명’에 들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절대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미국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2002년 10월, 사담 후세인 제거를 위한 군사행동을 미 상원에서 결의함으로써,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제2의 “테러와의 전쟁”, “악의 축”을 제거하는 성전(?)을 준비하였다.
이미, 이라크를 자극하기 위한 낮은 수준에서의 전쟁은 8월부터 시작되었다. 공군기지 및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은 계속 진행되어 왔고, 민간인의 피해도 심각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부시 정권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라크를 계속 자극하고, 사찰단을 파견하면서 “마지막 기회”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부시 정권은 이라크가 공습과 사찰단의 발언에 발끈하면서 ‘덤벼들기’를 기대하고 있고,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론이 부시에 대한 지지로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는 유엔무기사찰단을 받아들이는 등 수세적인 대응을 하며, 미국이 기대하는 ‘발끈’하는 반응은 아직 없다. 경제봉쇄조치를 통해서 이라크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실패한 미국은 더 조급해지고 있다.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제국주의의 더러운 이해관계
1) 중동 재편을 통한 석유 지배권 확보
미국이 전 세계의 비난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민중의 삶을 처참히 파괴할 이 전쟁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바로 ‘석유’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이제 웬만한 부르주아 신문에서도 다루고 있다. 갈수록 석유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일년동안 소비하는 석유의 양은 약 72억 배럴인데, 이중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은 세계 석유생산의 25%를 소비하고 있으며, 15%를 수입해서 쓰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의 유전은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발굴된 것이어서 대부분이 노화되어 있고, 반면 중동지역의 유전은 알려진 것만 따져도 세계생산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이 수치는 중앙, 라틴아메리카의 9%, 북아메리카 6%, 서유럽 2%와 비교한다면 엄청난 수치이다. 이 중동지역 중에서도 전 세계 석유생산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곳이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 매장량 중 25%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 동안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했고 사회적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전개발로 인한 이익은 대부분 국내에 투자되기보다는 국외투자로 이어졌다. 이 수치는 외국자금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들어오는 투자금액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사우디 왕가 내부에서의 분열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배계급 내에서의 분열은 민중의 혁명적 저항이 발생하기 직전에 일어나는 징후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국정권으로써는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사우디왕가에 기대할 수만은 없었다. 여기에 덧붙여, 9․11테러의 배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테러리스트들이 개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신할 만한 석유공급원을 찾아야 하는 긴박함이 미국에게 있었던 것이다. <체니보고서>로 알려진 <국가 에너지 정책보고서>에서는 2000년 현재, 미국에서 소비된 석유의 절반이 수입석유였으며 2020년이 되면 그 비율이 3분의 2가 될 것이라며, 걸프지역의 석유자원에 대한 접근권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지목된 것이 사우디아라비아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석유를 보유하고 있는 이라크였다. 이라크는 약 1,120억 배럴의 석유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산유량 중 10.8%를 차지하고 있다. 후세인 현 대통령을 축출한 후, 대량살상무기 파기 등을 통해 국제사회의 질서를 회복하고 국내적으로는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이라크 전쟁의 공식적인 이유이지만, 사실 이라크의 유전이 미국의 수중에 떨어진다는 것은 중동지역 전체를 재편하기 위한 계획의 서곡일 뿐이다.
미국내 강경파들은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운 후 시리아, 이란 등 반미정권의 교체를 노리고 있다. 즉,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이라크에 친미정권이 세워질 경우 이란의 개혁파들에게 힘을 실어 주게되고, 시리아에 대해서는 레바논 내 과격파 단체인 헤즈볼라, 시아파 게릴라에 대한 지원중단압력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사우디에 대한 석유의존도를 낮추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약화를 통해 사우디의 유가 조절력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원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면서 이스라엘의 안보도 강화할 수 있다. 즉 중동지역에서 반미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부시 정권이 노리고 있는 것은 단지 이라크 내에 있는 석유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라크를 장악함으로써 주위의 국가를 견제하고 중동지역을 재편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로써 이라크를 주목했던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할 수 있는 유리한 기지로써 이라크를 주목했다고 할 수 있다.

2) 제국주의간의 분열: 프랑스와 독일은 왜 전쟁에 적극적이지 않는가?
그런데, 이라크 전쟁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은 미제국주의 뿐만이 아니다. 유럽지역에서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강대국들은 부시정권의 이라크 공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은 계속 사찰단의 일정을 연기하면서 공격의 시점을 늦추어 왔다.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국주의 세력간의 이전투구는 각기 나름의 계산을 넣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세계 석유산업은 1, 2위 미국회사, 3, 4위 영국회사, 그 다음이 프랑스 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1972년 이라크 석유회사를 후세인이 국영화시키기 이전에는 미국과 영국회사가 이라크 석유 지배권의 75%를 차지했는데, 국영화가 진행되고 이들 회사와 이라크 정부사이에 사이가 나빠지면서, 후세인 정권은 미국과 영국 회사들을 석유개발에서 배제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라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과 손을 잡고, 이라크에서 가장 전망 좋은 유전의 개발권을 나누어주었고, 이 세 나라는 경제제재가 풀릴 때를 대비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노력해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01년 <세계에너지전망>보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후세인이 외국기업에게 개발을 허용한 석유자원의 규모는 440억 배럴로,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유럽최대의 산유국)의 석유매장량을 합친 것과 같은 규모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이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사찰기한을 계속 연장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후 신정부를 이끌어가기로 워싱턴과 약속이 된 이라크 반체제 세력(INC: 이라크 국민평의회: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반체제세력들의 연합기구)은 후세인 타도에 협조하지 않는 나라들의 석유기업에 대해서는 전쟁 전의 모든 석유관련 계약을 파기할 것이라 경고하고 나섰다. INC는 “모든 기존 계약을 재검토 할 것”이라며 “신정부의 승인이 나지 않은 과거 후세인과의 계약은 무효가 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무효화된 계약의 대부분이 미국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프랑스, 독일 등이 우려하는 것이다. 아메드 찰라비 INC 의장은 미국이 이라크 유전개발을 위한 컨소시엄을 주도할 것이고 미국은 이라크 석유자원에 큰 지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유럽 내에서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지지가 양분되어 있다. 이 상황은 석유에 대한 주도권 외에도 유럽 내에서의 주도권 싸움과도 연관되어 있다. 영국, 스페인 등 미국의 노선에 충실한 국가와 미국의 지원을 절실히 바라는 동유럽국가들은 이라크전쟁을 지지하고 있지만,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라크전쟁을 반대하고 있다. 이라크 전을 계기로 미국과의 연합을 통해 프랑스와 독일 등의 대륙세를 견지하려는 영국과, 대륙 국가인 프랑스, 독일의 헤게모니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은 굳이 이라크를 공격하기보다는 리비아, 이란, 이라크 사이에서 거간꾼 역할을 하면서 떡고물을 먹고 싶어 할 수도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에 소극적인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는 경기침체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조건에서 전쟁에 참여할 경우, 경기부양의 효과를 얻기보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패권들이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척하는) 이유는 이라크 민중이 겪게될 고통 때문도 아니고,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제국주의간의 이익이 충돌하면서 전쟁찬성이냐, 전쟁반대냐를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부수적으로, 미국은 유럽내의 헤게모니 싸움을 통해, 다시 한번 패권에 도전하는 유럽 헤게모니의 성장을 내부적인 분열을 통해 약화시키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의 저항은 끝내 미국의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2월 12일 J. 데니스 해스터트 공화당 하원의장은 최근 프랑스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상품인 생수와 와인에 대한 수입금지 조처를 검토할 것을 의회에 제안했으며, 독일에 대해서는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압박을 넣고 있다. 던컨 헌터 공화당 하원 국방위원장은 “독일의 자유를 위해 희생된 미국인에 대해 독일인들은 감사의 눈물이 너무 빨리 말라버렸다”면서 “7만 1천명에 달하는 독일주둔 미군을 감축하려는 부시행정부의 계획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워너 공화당 의원은 “미 의회가 나토의 재정 지원 삭감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제국주의간의 각축 이면에서 어느 정도 지분이 확보된다면,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에 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전 세계 민중들의 저항
지금 전 세계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민중들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침략 전쟁 때 9․11테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계 운동진영, 특히 미국의 운동진영은 저항을 조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세계의 민중들은 ‘전쟁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거리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 이들의 외침이다.
90년대 소련의 붕괴는 미국의 유일 헤게모니와 군국주의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시기 이후 전 세계 노동운동 진영은 퇴보를 거듭해왔으며,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노동자 계급에게 잊혀진 용어가 되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자기모순을 심화시키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었고, 노동자 계급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공격에 대해 탄식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수많은 투쟁들이 IMF, 세계은행, WTO 등에 대항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다. 99년 시애틀 투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투쟁이 아니었다. 각 지역의 투쟁이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되면서, 시애틀 투쟁은 반세계화 투쟁의 정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시애틀 투쟁부터 큰 파고를 그리기 시작한 반세계화 투쟁은 9․11테러 이후 위기를 맞는 듯했다. 미 제국주의의 일방주의적 태도에 대해 노동자 계급은 분노했지만 침묵했고, 각 국에서는 ‘테러방지법’을 통해 사회변혁을 이야기하는 세력을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며,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반세계화 투쟁이 9․11이후 위기에 봉착했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고,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한숨 섞인 견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계속 전진했다. 우리는 2001년 1월 브라질에서 6만여 명이 참여한 제2회 사회포럼을 통해 희망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반세계화 투쟁은 반전운동과 만나게 된다. 미국에서는 지난 4월 20일 미국 전역에서 10만 명이 모여 반전집회를 진행,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보여준 것을 계기로 반전운동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반전투쟁의 불길은 영국 런던에서 작년 9월 40만 반전시위, 지난 11월 유럽사회포럼에서 100만 명의 반전시위로 확장되었고, 유럽사회포럼에서 제안한 국제투쟁의 날인 2003년 2월 15일에는 전 세계 천만 명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규모로 불어났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투쟁이 단지 선진국의 이름있는 몇 곳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작은 나라들에서도, 비록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반전시위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마저도 지난 15일 2백만 명이 길거리로 나오면서 영국 내 반전여론에 한풀 꺾여 이라크 사찰기간 연장을 수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블레어 영국총리는 15일 노동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유엔무기사찰단의 사찰기간을 연장할 것이며 유엔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발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시의 푸들’이라고 불리며 “미국은 유엔 결의가 없어도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며, 영국도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블레어였다. 그러나, 부시는 2월 18일, 대 이라크전쟁을 계속 강행할 것이며, 이라크전쟁 반대투쟁의 규모에 개의치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중의 행동은 시애틀, 멜버른, 프라하, 지노아, 피렌체를 경과하면서 미제국주의 반대로 이어졌다. 99년 시애틀의 성과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었다. 9․11이후 미국의 전쟁공세는 미국의 석유전쟁에 대한 반대, 이를 넘어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대, 그리고 미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대로 확장되어가며, 대중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물론 ‘반전’의 구호 안에는 단순한 평화주의부터 무정부주의까지, 사회개혁을 바라는 세력에서부터 사회변혁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세력이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모여 반전을 이야기하며 대안을 함께 논의해 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반전투쟁에서 서로의 차이를 부각시키며 투쟁을 발목잡는 것이 아니라, 미국반대, 미제국주의 침략반대를 명확히 하고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 시도를 좌절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열려진 투쟁의 공간에서 다양한 지향을 가진 운동이 함께 대안을 위한 논의와 투쟁을 어떻게 진행해 갈 것 인가이다.


‘제국주의반대’를 명확히 하는 ‘반전’만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
우리는, ‘미선이, 효순이’를 부르짖으며 광화문 앞에서 했던 촛불시위를 기억한다. 여기저기 ‘미국반대’라는 피켓을 볼 수 있었고, 광화문 앞은 수십 만개의 촛불로 뒤덮였지만, 아직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제 ‘미선이, 효순이’ 투쟁은 아무런 실질적 성과도 없이, 단지 노무현 정권이 당선되기에 유리한 조건만을 형성해 주고 나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다. 지난 촛불 시위에 참여했던 수십만이 보여주는 ‘미국반대투쟁’은 ‘미제국주의 반대투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SOFA 개정을 요구하는 순간, 그 요구는 이미 미군 주둔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이었고, 이 요구는 ‘미국반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일부 운동진영에서 미군철수를 요구했지만, 그 요구도 마찬가지로 미군철수를 넘어서 미제국주의 반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민족주의적 요구로 주저앉고 말았다. 대중의 자발적 감성에 호소하는 민족주의적 ‘반미’가 부르주아 언론의 ‘순수성’ 공세와 ‘평화’의 요구에 얼마나 취약할 수밖에 없는가를 그대로 보여 주었고, 네티즌의 자발성도 그런 언론의 공세에 갇혀서 촛불은 사그러 들었다.
그리고, 2․15 국제투쟁의 날에 맞추어 한국에서도 ‘이라크 공격반대, 한반도 전쟁위협반대 2․15 국제공동반전평화대행진’을 진행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종묘까지 이어진 이날 행진에는 약 5천여 명이 참여하면서, 세계적인 반전투쟁에 보조를 맞추었다. 이라크전쟁을 온몸으로 막기 위한 인간방패의 출정식도 진행되었다. ‘전쟁반대’라는 구호로 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투쟁을 진행한 것은 한국에서는 낯선 풍경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반전’이라는 구호아래 모였다는데 고무받은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장의 노동자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시기는 ‘전쟁반대, 미제국주의 반대’를 명확히 걸고 투쟁을 해야 할 시점이다. 몇몇 사람들은 지금의 전쟁반대투쟁이 단순히 평화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투쟁을 회피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우리의 사안과는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집회에 나가야 할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반전투쟁’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전 세계 민중의 들불같은 투쟁으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실제로 막아내는 것이야말로, 소련 붕괴 이후 유일 헤게모니였던 미 제국주의의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2월 15일 전 세계적으로 천만 명이 모인 그 시위에서 전쟁을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변혁적 전망을 만들어가기 위한 정세를 열어가고 있다. 이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2월 15일 집회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평화’의 구호 뒤로 반전의 구호가 숨어버렸다는 것이다. ‘평화’라는 구호 안으로 ‘반전’이 숨어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의 전쟁은 필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 경쟁과 이윤확보를 위한 치열한 싸움의 산물로써 제국주의 전쟁이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기관차는 바로 자본주의의 탐욕을 동력으로 굴러간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바로 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시도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준에서 ‘반전운동’이 진행된다면, 설사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민중의 투쟁으로 저지한다고 해도, 그 성과는 프랑스, 독일 등의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국주의라는 기관차는 바퀴가 있어야만 굴러간다. 그 바퀴는 바로 아직 제국주의의 지위를 갖지 못하지만 그것을 열망하는 각국의 정권들이다. 각국의 협력자들이 있어야만 제국주의의 바퀴는 굴러간다. 이 바퀴를 멈추지 않으면 제국주의 기관차는 계속해서 전 세계 민중들의 삶을 파탄내면서 굴러다닐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부시처럼 신에 기대어 신의 가호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중의 투쟁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저지해 놓고 이 성과를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가 가져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민중은 스스로의 힘을 투쟁 속에서 확인하고, 그 힘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저지하는 길밖에 없다. ‘반전시위’를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진행하는 것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한/노/정/연

2003-0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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