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발전소 매각반대 현장투쟁 보고
김 선 진
한국발전산업노조 홍보실장
들어가며
역사적인 공공부문 3개 노조(발전, 철도, 가스노조)
동맹파업투쟁을 선도하며, 김대중 정권의 국가기간산업
사유화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38일 동안 전국을 무대로
파업투쟁을 전개했던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이하
‘발전노조’)는 정부와 민주노총의 노정합의파동(2002. 4.
2)으로 인해 ‘발전소 매각 방침 철회’를 끝내 관철시키지
못하고 현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복귀이후 발전노동자들은
정부와 회사측으로부터 ‘백화점식 노조탄압’이라 불릴 만큼
악랄한 현장탄압을 겪으면서도 ‘현장복원’과 ‘민주노조
사수투쟁’으로 맞섰다.
그러나 산업자원부는 발전노조 파업투쟁 기간 중 ‘국민의
80%이상의 발전소 매각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2002년 7월
15일 발전 5사 중 남동발전(주)를 ‘우선매각 대상사’로
일방적으로 선정한데 이어. 밀어붙이기식 매각정책을 여전히
강행하고 있다. 발전노조는 파업투쟁이후 1년 만에 또다시
‘남동발전 실사저지투쟁’의 깃발을 올리고 가혹한 현장탄압을
뚫고 다시 일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파업이후 남동발전 매각강행 과정
산자부와 한전은 2002년 9월 13일 ‘남동발전(주) 민영화
세부추진계획(안)’을 확정하고, 2002년 10월8일
투자의향서(LOI) 제출요청 공고를 실시해 모두 14개 업체(국내
6사, 국외 8사)로부터 투자의향서를 받았다. 그러나 주요업체인
엔론, 미란트 등은 자국 내에서 회계부정사건과 그 영향으로
해외진출사업에 나설 여력이 없어 참여하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입찰제의요청서(RFP)를 배포하고 국내외 투자자에
대한 순회설명회를 개최하면서 발전소 매각에 열을 올렸다.
입찰자를 되도록 많이 모으기 위해 산업자원부가 기울인 노력은
거의 필사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2003년 1월 1차 입찰제안서 접수마감 결과 응찰자가
4개업체(포스코, SK(주), J-파워(일본),
한국종합에너지-말레이시아 파워콤 컨소시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자부는 평가 후 쇼트 리스트(후보 명단)를 확정
통보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응찰자 모두에게 기회를
주었으며, 경쟁 없이 예선(?)을 통과한 입찰자들이 발전소
현장실사를 강행한 것이다. 산업자원부는 2월 26일까지 실사를
진행하고, 2003년 4월1일 최종 입찰서를 다시 받아 최종계약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당초 3월 25일로 발표했다가 연기
발표를 함) 또 최종계약(지분 34~51% 매각)으로 경영권을
매각하게 되면, 후속작업으로 나머지 지분에 대한
기업공개(IPO)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앞두고 있다.
남동발전 실사저지 투쟁은 다시 시작되다
산자부의 지시에 의해 한전은 입찰에 참여한 4개 업체들의
재빠른 현장실사를 위해 2개조로 나누어 이른바 데이터룸
실사(자료실사)에 이어 발전소 현장실사를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시켰다. 자산가치 2조 7천 억원, 당기순이익 2,450
억원(2003. 12 기준)에 이르는 남동발전(주)에 대한 방대한
자료목록을 불과 1주일만에 모처의 데이터룸에서 먼저 검토한
포스코와 SK(주)는 2003년 2월 10일 분당복합화력(SK)과
영흥화력(포스코)에 대한 현장실사를 강행했고 일주일 뒤 일본의
J-POWER와 한국종합에너지-말레이시아 파워콤 컨소시엄이 그
뒤를 따랐다.
발전노조는 ‘발전매각저지 선봉대’를 조직하고 ‘발전노조
해복투’와 더불어 각각 실사현장으로 급파하여 남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현장조합원과 결합하여 실사저지투쟁을 전개했다.
발전노조의 남동본부에서는 이보다 앞서 파업투쟁이후
본부집행부의 협조주의적 행태에 따라 5개사 중 우선매각
대상사로 선정된 주요한 원인이라고 판단한 현장조합원들에 의해
본부장에 대한 불신임투표총회를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
본부장에 대한 ‘불신임이 가결’되었고, 투쟁을 이끌 집행부를
선출하는 등 조직정비를 마친 상태였다.(2003. 1.23) 그러나
우려의 시각 또한 있었다. 파업투쟁이후 회사측의 가혹한
현장탄압으로 조합원들은 중식집회 참석조차 꺼리는 위축된
현장정서를 극복하고 실사저지투쟁까지 전개해야만 했던 힘겨운
상황이었다. 발전노조는 ‘발전매각저지 투쟁상황실’을
설치하고 철야농성에 돌입하면서 실사저지투쟁 전개상황을
실시간에 가까운 속보체계로 운용될 수 있도록 각지부
상황실로부터 중앙상황실로의 보고를 집중시켰고, 홈페이지를
통해 실사저지 투쟁속보를 전파했다.
온 몸으로 맞선 남동실사 저지투쟁!
입찰사들의 실사가 어디부터 진행될지 모르는 철저한 보안 속에
감행된 발전소 현장실사는 2003년 2월10일 영흥화력과
분당복합화력을 시작으로 2월26일의 무주양수발전소를 끝으로
17일 동안 전개되었다. 한편 남동발전 회사측은 입찰 4개 사가
6개 발전소에 대한 각각의 현장실사를 무리 없이 진행되도록
‘시설물 보호’라는 미명아래 공권력 투입까지 요청한
상태였기에 실사가 강행될 해당지부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뿐 아니라 회사측은 사내공문을 통해 조합원들이
실사저지투쟁에 결합할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성
공문을 남발하는가 하면, 실사 전날 밤부터 발전소 정문은
바리케이트로 봉쇄되었고 회사간부 전원을 새벽부터 출근시켜
실사단을 안내할 만반의 준비는 물론, 실사가 진행되는 날에는
조합원들에게 출근하지 말라는 어처구니없는 조치까지 내놓았다.
또한 경찰병력도 이른 새벽부터 출동해 정문을 장악하고 발전소
곳곳에 미리 배치되어 있었다.
*사진: 조합원이 실사단을 태운
차량 밑으로 들어가 출입을 저지하고 있다.
2월 12일 영흥화력지부 실사저지투쟁 중에서
어렵게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실사가 예정된 발전소에는
‘발전매각저지 선봉대’와 ‘발전해복투’가 합세하여
현장투쟁을 조직했다. 그리고 각 지부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지부집행간부들이 앞장서서 출근선전전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실사저지대오로 합류하여 함께 투쟁할 것을 독려하며 이후의
실사저지에 대비했다. 그러나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생존권
사수’와 실사단을 발전소에 한발자국도 들여놓지 않겠다는
조합원들은 하나하나 정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조합원
대오보다 10배수가 넘는 공권력에 대해 온 몸을 던지는 투혼이
실사저지투쟁 현장에 달아올랐다. 2월12일 영흥화력지부에서는
실사단을 실은 버스 밑으로 돌진하며 실사단 진입을 막는가
하면, 2월19일 삼천포화력지부에서는 남동본부 최대지부라는
자존심을 건 끈질긴 실사저지에 나선 결과, 헬기까지 동원한
입체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발전소 진입에 실패한 실사단은
삼천포항에서 빌린 유람선을 타고 바다를 통해 들어와야만 했다.
남동발전 실사저지투쟁 일지
2월10일(월) 영흥화력지부(포스코), 분당복합화력지부(SK)
2월12일(수) 영흥화력지부(SK), 영동화력지부(포스코)
2월14일(금) 분당복합화력지부(포스코), 영동화력지부(SK)
2월17일(월) 여수화력지부(포스코), 영동화력지부(J-POWER),
무주양수지부(SK)
분당복합화력지부(한국종합에너지-말레이지아 파워콤
컨소시엄)
2월19일(수) 삼천포화력지부(SK, 포스코),
분당복합화력지부(J-POWER),
영흥화력지부(한국종합에너지-말레이지아 파워콤
컨소시엄)
2월21일(금) 여수화력지부(SK), 무주양수지부(포스코),
영흥화력지부(J-POWER),
영동화력지부(한국종합에너지-말레이지아 파워콤
컨소시엄)
2월24일(월)삼천포화력지부(한국종합에너지-말레이지아 파워콤
컨소시엄, J-POWER)
무주양수지부(J-POWER)
2월26일(수) 무주양수지부(한국종합에너지-말레이지아 파워콤
컨소시엄)
여수화력지부(한국종합에너지-말레이지아 파워콤
컨소시엄, J-POWER)
현장투쟁이 거듭될수록 사기가 솟구치다!
파업투쟁이후 무자비한 현장탄압으로 현장동력은 급속히
하락했고, 실사저지투쟁을 전개해야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롭게 선출된 남동본부
집행간부들(본부장 신종승)과 ‘발전매각저지 선봉대’는 각
지부를 순회하며 출근선전전, 중식집회, 지부간담회 등을 통해
현장 상황을 점검하며 ‘발전노조해복투’까지 가세한
실사저지투쟁을 조직했다. 회사간부들까지 총동원되어
강행되었던 실사저지투쟁에 대한 우려는 실사가 거듭될수록
조합원들은 오히려 투쟁현장에 적극 참여하는 자신감으로
표출되며 활기찬 현장으로 복원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여기에는 이전 파업투쟁 이후 대부분 집행유예 상태인
산별중앙집행부의 재구속을 불사한 결의는 물론
본부․지부집행간부, 발전매각저지 선봉대,
발전해복투의선도적 투쟁 또한 빼놓을 수 없었고, 조합원들의
신뢰를 획득하기에충분했다.- 회사측은 실사저지와 관련
업무방해 등으로 분당 9명, 영흥 15명, 삼천포 14명, 영동 10명,
무주 5명의 고소권을 남발함) 그리고 조합원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회사간부들의 작태였다.
*사진: 전경들의 저지선을 뚫는 삼천포지부 조합원들, 2.19
정문을 쇠사슬로 감고 결사적으로 항거하는 조합원들을 짓밟는
전경들과 함께 동원된 회사간부들이 앞다투어 조합원을 유린한
것이다. 입으로는 ‘우리도 속으로는 매각을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다’던 회사간부들의 작태는 조합원들에게 배신감을 넘는
분노로 촉발되었던 것이다. 가압류, 손배소, 서약서 강요,
개별감사, 4차 징계 등으로 현장을 초토화시켰다고 생각했던
사측이 조합원들의 강력한 저항의 불씨가 결코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실사저지투쟁의 성과와 발전노조의 과제
발전노조는 또다시 전국적으로 산재된 발전소 현장을 무대로
남동발전 실사저지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공권력의 비호아래
감행된 입찰사들의 발전소 현장실사를 무력화시키는 전면적
투쟁으로 확전시키지 못한 아쉬움을 남겨야만 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에게는 현장동력이 살아나며 자신감이 붙고,
조직력이 복원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무엇보다 커다란 성과라
할 수 있다. 남동본부 조합원들은 이전 본부집행부의 투쟁을
회피한 협조주의적 관행으로 인해 남동발전이 우선매각 대상사로
선정된 주요한 원인으로 판단하고 본부장 불신임을 통해 새로운
본부집행부를 출범시켰을 뿐만 아니라, 연이은 남동실사
저지투쟁에 자발적으로 적극 결합하는 역동적인 조직복원의
전기를 창출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성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실사저지가 한창이던 2월14일 발견된 회사측의
‘인력재배치 구조조정’ 관련 문서를 입수하고 현장투쟁을 통해
철회시킨 것이다. 현장탄압, 개별회유․협박, 기업별노조
설립을 통한 산별탈퇴 기도, 4차 징계 등의 명백한 본질이
남동매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었으며,
‘인원감축 구조조정 계획’까지 은밀히 추진한 회사측의
전방위적인 도발의 실체를 확연히 드러낸 투쟁이었다는 것이다.
3월로 접어들며 남동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5개 발전회사
전체적인 ‘인력감축 구조조정 계획’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새로운 투쟁과제로 부상했다.
발전노조는 5개 본부로 구성된 소산별노조이다. 지난 2.25
‘발전소 매각 철회’의 기치를 내걸고 38일간 총파업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5,600 조합원들의 역동적인
투쟁의지가 충천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파업투쟁
1년이 지난 발전노조의 현실은 남동발전 실사저지투쟁을
남동본부만의 외로운 투쟁으로 전개되어야만 하는 뼈아픈 현실
또한 경험하게 된 투쟁이다. 2003년 1월의 발전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남동발전매각이 남동만의 문제가 아닌
발전노동자 전체의 문제임을 선언하며, 남동발전을 필두로 한
발전매각이 전면 백지화될 때까지 파업의 배수진을 친 총력
투쟁에 돌입 할 것을 결의’했지만 결의를 뛰어넘는 실체적
조직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실사저지투쟁이 한창이던
2월16일, ‘국가 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손배가압류 분쇄,
두산재벌규탄 전국 노동자대회’의 기치가 올랐지만 대회는
행진을 끝으로 마무리되어야 했고, 2기 공투본의 조직력 또한
투쟁동력으로 결집되지 못한 것이다. 자본과 정권의 분리 책동에
여전히 실질적 대응을 할 수 없는 현주소를 여실히 표출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발전노조 또한 내외부적 철저한 반성과 비판적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며, 본부를 규합하는 현장조직력 복원을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하면서 ‘발전매각 저지투쟁’을
완수해야하는 절명적 과제를 안고 이후의 투쟁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