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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제국주의(2)

현장에서 미래를  제86호
남구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2)



남 구 현/ 부소장






2.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성격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원료 공급지와 판매 시장 그리고 과잉 축적된 자본의 투자처로, 요컨대 오로지 자본 가치증식이라는 자본의 자기목적 아래 포섭하였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형태는 이전의 제국주의와  예를 들어 로마나 고대 중국 처럼 타 민족들 (또는 타 국가들) 들에 대한 지배가 자본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경우와 ―구분된다. 세계 시장의 형성은 세계의 자본주의화에 다름 아니며, 이는 곧 주변국가들이 제국주의 중심부 국가들의 가치증식욕구(Kapitalverwertungsinteresse) 아래 포섭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의 제국주의는 ‘자본’ 범주와 관련되지 않았던 이전의 국가간의 지배-종속 관계와 구분된다.1)

다른 사회형태들과 달리 세계 시장의 형성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는 하나의 필수적인 계기였다. 세계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경향은 자본의 개념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다.2) 그리고 시장은 따라서 항상 확장되어야 한다. 내적인 모순은 항상 생산의 외적인 장의 확대에 의해 스스로를 상쇄하려고 시도한다.3)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시장의 확대와 외부 교역의 증대는 봉건적 생산양식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으며, 일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한 이후에는 이 생산양식 자체의 기반이 되었다.4) 자본의 분석에 있어서 외부교역과 세계시장의 개념은  식민지를 포함하여  이미 자본의 개념에 이미 내재적이어서, 민족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자본이 운동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범주가 된다.

세계 시장에서 비자본주의 지역을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중심부 자본의 가치 증식 체제 아래 엮이는 과정에 자본주의 주변부의 나라들은 자본 축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자본 가치증식의 다양한 계기에 내맡겨지게 된다.

본원적 축적기에는 교환에 의해 매개되지 않고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면서 오로지 직접적 폭력에 의지하는 약탈이 착취의 지배적 형태였다. 라틴 아메리카로부터의 약탈적 관계에 기초한 대규모의 화폐 상품(금과 은)의 유입은 상품 유통을 위해 충분한 양의 금이 필요했던 당시에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의 기반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5) 당시의 야만적인 약탈의 대상은 육체와 영혼을 가진 검은색의 황금(흑인 노예)만이 아니라, 오늘날 문명 국가들의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문명을 모르는 야만인이라고 불리웠던 사람들의 문화유산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 아프리카에서의 금과 은의 나라들의 발견, 토착민들을 근거지로부터 뿌리째 뽑아 내기, 노예로 만들기, 그리하여 광산으로 처넣기, 동인도 정복과 약탈의 시작, 아프리카의 검은 피부를 가진 노예 매매를 위한 사냥터로의 전환 등이 자본주의적 생산기의 여명을 특징지우고 있다. 이러한 목가적인 과정들이 본원적 축적의 주된 계기들이다.6) 이후에는 상품교환을 매개로 하지만 부등가 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상업자본주의적인 사취가  물론 이러한 방식은 아직도 자본주의적인 세계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특별 이윤의 원천이 되기는 하지만 ―전자본주의 또는 초기 자본주의  단계의 상업 자본에 전형적인 형태가 된다.7)

산업혁명에 의해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되면서 산업 자본은 주도적인 형태가 되었다. 이제 산업에서의 주도적 위치는 곧 교역에서의 우위를 가져다 주었으며,8) 지구 전체는 정치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서로 경쟁하는 유럽의 제국주의 나라들 간의 전투장이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계 시장이 형성되는데 있어서 전제가 되었으며, 봉건적 잔재의 파괴를 가져 왔던 상품 생산 및 세계 시장에서의 교역의 발전과 이미 형성된 세계 시장의 기초 위에 확장되고 또한 그 자체로서도 세계 시장을 확장하는데 기여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9) 산업 자본이 자신의 지배권을 세계 시장에 확립한 이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비등가 교환 뿐만 아니라 등가 교환을 통해서 가치매개적으로 잉여 이윤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해외 교역에 투하된 자본은 보다 높은 이윤율을 가져다 줄 수 있는데, 왜냐하면 더 낮은 생산력 아래 생산하는 나라들에서 생산된 상품과 경쟁함으로써 보다 발전한 나라는 경쟁국 보다 싼 가격으로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상품을 자기의 가치 이상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새로운 발견을 일반화되기 전에 사용하여 자신의 경쟁자보다 싸게 판매하지만 자신의 상품의 개별적 가치보다는 높게 판매하는, 즉 자신에 의해 사용되는 노동의 특별히 높은 생산력을 잉여노동으로서 가치증식에 활용하는 공장주와 같다.10)


만약 서로 교역을 하는 두 나라가 자본주의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여기에 가치법칙의 수정이 더 요구된다. 나아가서 가치법칙은 그것을 국제적으로 적용하는데 있어서 수정되는데, 세계 시장에서 보다 더 생산적인 나라의 노동은, 보다 더 생산적인 나라가 경쟁을 통해 그 상품의 판매가격을 자신의 가치로 낮추도록 강제되지 않는다면, 보다 강도가 높은 노동으로 계산된다.11)

자본주의 주변부의 나라들은 산업 자본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몇몇 산업 국가의 헤게모니 아래, 즉 서구 산업자본의 맹목적인 가치증식욕구 아래 편재되고, 자본운동 과정의 조건변화에 맞추어 변화되는 중심부 국가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계기에 가능한 여러가지 형태로 세계 시장에 편입되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자본주의적 생산은 가치 생산이 아니라 잉여 가치의 생산에 의해 특징지워지며, 상품 생산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상품생산으로서 화폐와 상품은 단지 자본이 그 안에 포함되어 운동하는 형태들에 불과하다. 자본의 순환과정에서 자본은 일단은 화폐자본으로 등장한다. 자본가는 화폐, 즉 화폐형태의 자본을 가지고 시장에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매한다. 생산과정에서 바로 그 자본(생산수단+노동력)은 생산적 자본으로 기능하며 이를 통해 잉여가치를 잉태하고 있는 상품을 생산한다. 이를 통해 투자된 자본가치는 증식된다. 상품 생산물은 이제 상품자본, 즉 증식된 자본가치의 담지자로서 판매되어야 하는데, 판매되어야 만이 증식된 자본가치는 실현될 수 있다.12) 만약 순환과정에 위치한 자본, 즉 화폐자본과 상품자본의 기능들이 전체 사회적 총자본의 일정한 부분들에 이양되어 고정된다면, 이 자본은 이자 낳는 자본 또는 상업자본으로서 산업자본으로부터 자립한다.13)

이는 발전한 중심부 산업국가들이 주변부 나라들을, 그 나라의 사회구성체를 굳이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하더라도, 화폐 자본가나 상품 자본가로 기능함으로써 시장을 매개로 자신의 가치증식욕구 아래 편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4) 이러한 경우에 (반)식민지 나라들은 일단 원료 제공지나 상품 판매지로서 제국주의 자본의 가치증식욕구 아래 포섭된다. 이전의 사회구조를 자본주의적인 형태로 바꾸지 않고, 식민지 모국이나 제국주의 종주국에서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해 활용되는 주변부 노동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15) 자본 수출 또는 직접 투자는 현지에 일정한 하부 구조(Infrastruktur)가  교통 및 통신수단과 같이 질료적인 것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와 같이 사회적인 것까지 -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16) 이자 따먹는 자본으로서 가치증식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이를 위해 사전에 축적될 것이 요구된다. 채무국이 나아가서 국채와 이자를 지불할 수 있기 위해서는 확대 재생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나라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불 불능상태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1980년대 초반이래 주변부의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상태에 놓여진 바 있다.

한편 1960년대 초반이래 중국 및 쿠바 혁명의 성공에 고무되어 점차 확산되는 민족 해방운동을 막기 위해 미국의 주도 아래 진보를 위한 동맹의  기치를 내걸고 자본주의적 발전이 주변부에서 다소간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자본주의 주변부의 몇몇 나라들은 산업화에 성공하게 되면서,17) 이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주도적인 생산형태가 되었다. 그리하여 중심부 자본이 자신의 가치증식욕구를 자신의 생산물과 주변부 나라들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교환함으로써 관철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하이테크놀로지를 보유하여 기술 독점이 가능하다면 여기에서의 우월한 지위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중심부가 주변부를 포섭해 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상품, 화폐, 자본의 다양한 경제적 형태는 서로 혼합될 수도 있으며, 다양한 축적 조건에 따라 선호되는 형태가 있을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볼 때 서로간에 배타적이지 않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관계를 애초에 부정하는 이론들을 도외시한다면,18) 오늘날의 중심-주변-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은 ― 즉 세계 경제의 중심부 자본의 가치증식욕구 아래의 편재는 ― 최근의 제국주의 분석에서 보통 간과되거나 일방적으로 묘사되고 끝났다.

중심-주변-관계는 제3세계 이론에서는 흔히 남북 문제로 묘사되어왔는데, 이 경우 산업 국가들과 발전 도상국 및 저개발 국가들 사이의 부의 격차가 주로 정치적으로 쟁점화되었다. 제3세계라는 개념은 1955년의 반둥회의 이래 비로소 현실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때 점차 고조되는 동서갈등과 관련하여 저개발 국가들이 동서 양 진영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의 길을 추구할 것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남북 문제는 전통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의 국제 질서 속에서의 자기 주장과 관련한 정치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종의 노조주의적인 집합적 자조 정신(collectiv self-reliance)에 기초한 남남협조, 세계적인 재분배와 보다 정의로운 세계 질서와 같은 것들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19)

그러나 남북 관계가 오직 부자인가 가난한가 하는 부의 양만을 근거로 하여 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힘만을 가지고 설명되어진다면, 그것의 내적인 상관관계는 해명되어질 수 없다. 제3세계의 나라들은 애초에 단일한 세력이 아니었다.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를 취했는가, 아니면 자본주의를 취했는가에 따라 각기 1세계 또는 2세계와 서로 다른 상관관계 속에 놓여져 있었다. 제3세계에 속한 나라들 간의 이해관계의 차이에 따라 비동맹 운동은 기껏해야 비현실적인 도덕적 요청에 그쳤으며, 1세계와 2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힘은 잠재적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20)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제3세계 진영 내부의 분화에 따라 제3세계 개념 자체가 점차 내용을 상실하게 되었고, 제3세계의 종말이 선언된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21) 1세계와 2세계가 3세계를 만들어 내었다면, 3세계는 2세계의 몰락과 함께 그 의미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3세계에 속했던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1세계의 주변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의 전체적인 자본주의화는 중심부 자본에 의한 지구 대부분의 주변화에 다름 아니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2세계의 붕괴와 함께 보다 더 큰 범위에서 모순적인 방식으로 지구적 수준에서 관철되고 있다.

주변부 자본주의론에서는 중심-주변 관계가 그것의 자본주의적 성격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지기는 하였으나, 그것의 자본주의적 착취 양식은 잘못 이해되어지고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프랑크는 중심-주변의 이분법적 틀을 가지고 발전이론적 관점에서 저개발을 설명하려고 하였는데, 아민은 이에서 나아가 저 유명한 저개발의 개발 테제에 대해 가치 이론 및 축적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부등가 교환을 동일한 생산력을 가진 노동에 대한 불평등한 대가로 이해하면서, 이러한 부등가 교환이야말로 발전된 중심부 나라들과 저개발 상태에 있는 주변부 나라들 사이의 불평등의 근원이라고 보았다.22) 동일한 생산력이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윤율이 평균화되지만 잉여가치율이 불평등한 것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가치이전이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테제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아민은 독점 이윤 형태의 특별 이윤에 대해 재차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중심과 주변 간에  불평등 교환이 초래되는 것은 중심부에서 독점의 출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생산력임에도 불구하고 중심과 주변 사이에 임금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독점의 출현이며, 이는 나아가서 왜 저개발 국가가 근대적인 고생산성을 보유한 산업에서 생산된 상품을 수출해도 불평등한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23)


그에 따르면, 해외무역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러한 형태의 특별 이윤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그는 중심부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던 본원적 축적의 메커니즘에 등치하고 있다.24) 동일한 가치끼리 생산물이 교환되는 경우에  물론 여기에서 동일한 가치를 가진 생산물들은 국가들 사이의 생산력 및 노동임금의 차이를 표현하는 불평등한 노동량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형태는 간과되었다. 가치법칙의 관철은 세계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원료, 기술의 독점 등)나 제국주의적인 권력의 행사(불평등 조약, 제국주의 국가들의 헤게모니적 위치의 확보 등)에 의해 수정되어질 수 있으나, 이에 기초하고 있는 특별 이윤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다. 나아가서는 그것의 기반 자체가 거꾸로 생산력의 우월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가치법칙은 지양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수정될 뿐인 것이다.

아민에 따르면 주변부에서의 잉여가치율, 즉 착취율의 증대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다른 반대 경향들, 중심과 주변 사이의 매개 상관관계, 민족국가적으로 조직된 자본의 성격 및 생산력의 국가간 차이는 여기에서 간과되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 브르주아지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직접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오직 하나의 세계체제가 존재할 뿐이다. 아민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이라는 논쟁의 맥락 안에 있는 한, 사태는 매우 단순하다. 아무튼 자본주의는 세계체제가 되었으며, 단순한 ‘민족적 자본주의’의 단순한 병렬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특징인 사회적 적대는 이제 세계적 수준에서 벌어지고 있다. 즉, 적대는 이제 서로 고립된 나라들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가 아니라 세계 부르주아지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존재한다. 이 세계 부르주아지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capitalist mode of production)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자본주의 구성체의 체제(the system of capitalist formations)라는 맥락, 즉 앞으로 살펴 보겠듯이 중심에서의 구성체와 주변에서의 구성체라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25)


그의 주장에 따르면 중심에서의 구성체와 주변에서의 구성체 사이의 관계는 구조적인 종속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는데, 이 관계 아래에서 저개발 국가들은 영속적인 가치 이전에 의해 절대로 이득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저개발은 여기에서 구조적인 복합성(Heterogenitt)에 의해 특징지워지는데, 이는 오로지 구조적인 종속의 결과라고 한다. 그리하여 발전 전략으로서는 세계 시장으로부터의 이탈이 제시되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축적에 대한 분석은 이러한 축적이 중심에 유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저개발 국가들에게 자본을 제공하는 것이 발전된 국가들이 아니라 그것의 반대이다. 이는 왜 저개발 국가들의 발전이 저지되고 있는지, ‘저개발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로부터 주변부 나라들의 발전은 오직 세계시장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에만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26) 이와 같은 발전이론적인 접근법은 60년대 말 이래 당시에 유행하던 근대화론의 반대물로서 발전이론가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십수년간 경제 발전의 장애요인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발전 전략을 둘러싼 논쟁을 야기시킨 바 있다. 세계 시장인가 내수 시장인가, 외부 요인인가 내부 요인인가, 세계 시장에의 결합인가 이탈인가, 균형적 발전인가 불균형적 발전인가, 선성장 후 분배인가 분배와 함께 하는 (또는 분배를 통한) 성장인가 하는 등의 질문을 둘러싼 논쟁들이 그것이다.

독일어권에서는 누구보다도 셍하스(Senghaas)가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여 가공 발전시켰다.27) 아민과 마찬가지로 구조적 종속의 결과로 나타나는 구조적 복합성 등의 범주들을 사용하여 ‘유럽으로부터 배울 것’을 역설하고 있다. 유럽의 나라들은 자급자족적인 발전전략을 구사하여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28) 이렇게 발전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 인권을 보장할 수 있게 해주는 시민 사회를 형성해 나갈 수 있었다29)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등의 범주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비교 요인분석을 하면서 사회경제적인 응집성, 구조적인 균일화, 확장된 내수 시장 등의 개념들을 동원하고 있다. 만약 그가 이야기하듯이 유럽으로부터 배우기가 실제로 이루어져서 유럽의 제국주의를 주변부 국가들이 따라 하여 유럽을 거꾸로 식민지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저개발 문제는 그가 제시한 여러가지 발전 전략이 필요 없이 오래전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멘젤(Menzel)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제3세계의 종말의 사례로서 거론되고 있는 신흥산업국들은 자급자족적 발전전략을 택하지도 않고 자본주의적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근대화론을 거울에 비추고 있는 듯한 반대물30)로서 발전모델 이론과 결합한 종속이론의 변형들은, 학계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킨 것에 비한다면, 애초에 주변부 국가들의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전개과정을 그것의 모순성 속에서 분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31)



3. 제국주의의 형태변화

우리는 중심-주변 관계가 몇몇 유럽 국가들의 최초의 산업혁명이후 전 지구에서 발전되어져 왔고, 이 관계가 기본적으로 중심부 자본의 절대적인 가치증식욕구(Verwertungsimperative)에 의해 규정되어져 왔다는 것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중심에 의한 자본주의 주변부 국가의 종속관계는 중심부 자본의 상이한 가치증식조건에 따라 그리고 중심부 국가들 간의 그때마다의 힘 관계에 따라 상이한 형태를 띤다.

주변부에서의 주권원칙은 상업자본주의의 몰락과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세계체계의 헤게모니적 권력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영국으로 이전되었던 19세기 초 남미에서 최초로 성립되었다. 영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직접 통치아래 식민제국을 착취했던 반면 남미에서는 ‘자유무역’의 모토 아래 그들의 산업생산물을 원료와 교환할 수 있었다. 몇몇의 유럽 국가들이 뒤이은 산업화를 하였고, 세계시장에서 영국의 무제한적인 헤게모니의 쇠퇴와 함께 경쟁 국가들로서 등장했던 1875년 이래,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관계는 지속되었다. 당시는 중무장한 제국주의의 시대였고 전 지구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전쟁터가 되었다. 주권원칙은 제국주의적 열강들에 의해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세계 정치적 분할 정치에 따라 주변부 국가들은 식민지 종주국의 직접적인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제국주의적 분쟁이 당시에 어째서 세계정치적 수준에서 군사적 형태를 취했는지의 원인을 살펴보자면, 우리는 후발 주자들의 경제적 팽창의 필요성이 증대하는 한편에서 영국의 배타적인 독점적 지위가 이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32)

중심부 국가들 사이의 헤게모니적 지위 변화 역시 세계시장차원에서 변화된 가치증식조건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세계적인 제국주의적 팽창이후 가장 많은 식민지를 소유했었고,33) 직접적인 식민지의 착취관계를 토대로 그들의 경제구조를 조정하였던 영국과 프랑스의 선두적인 역할은 2차 대전 이후 축소되었다. 반면 식민지를 적게 소유했었고 이로 인해 세계시장에서 상대적 열악한 조건 하에서 경쟁해야만 했던 독일, 미국 그리고 일본과 같은 후발 주자들은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조건 아래 부상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제국주의 진영 내부의 헤게모니적 권력의 이행과 동시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은 한편에서는 식민지 나라들의 해방운동의 결과로 다른 한편에서는 냉전 체제 아래 사회주의 진영과의 체계경쟁에 고무되어 그들의 정치적 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34) 미국에 의해 선전되었던 민족자결은 유럽국가들의 식민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국 자본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 형식적 주권과 실질적 종속은 원칙이 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국가들의 형식적인 주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는 세계시장과 세계정치에서 선진 산업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이 서로 만나 묶일 수 있는 조건들을 장기적 안목에서 형성해 냈다…의심할 것 없이 지배와 종속의 형태는 대부분 변했다; 포르투갈의 식민정책은 오늘날 특수사례로 작용한다. ‘탈식민지화’ 시대에 ‘비공식적 제국’의 복귀 내지는 선호가 일어나고 있는데, 미국이 남미에서 계속적으로 해온 것이 바로 그러한 사례이다.35)

정치적이고 형식적인 주권원칙과 경제적인 불평등간의 양면성에 대해 디너(Diener)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세계정치에서 그것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세계적인 패권 내지는 지구적 동맹의 우위와 이에 맞는 문명형태 및 교통형태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혼합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보편주의는, 민주주의적 보편주의를 표명하고, 각각의 공동체에게 정당한 참여와 몫을 약속하며, 모든 직접적 형태의 지배, 이를테면 식민지 체제의  지배 형태에 반대하는 한, 양면성을 지닌다. 이렇게 선포된 평등과 정치적 비개입의 민주주의적 형태들은 동시에 이 같은 형태들에 의해서 실질적인 우위- 경제적인-를 달성할 수 있는 나라들에게 유리하다. 이러한 민주적인 형태는 무엇보다도 세계사회의 강자들에게 도움이 된다.36)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화와 함께 일상에서 제국주의 관계의 재생산을 위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경제외적 폭력의 직접적 지배 대신, 생산력의 우위에 기초한 경제적 잠재력에 의한 간접적 지배가 적용되었다. 상품은, 비록 잠재적으로는 여전히 무기에 의해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보다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37) 상품과 함께 ‘자유’시장과 ‘자유’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전 지구로 확대되었다.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 아래에서의 상품, 전함 그리고 성경의 삼위일체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아래에서 ‘코카콜라 식민지화(Coca-colonisation)’, ‘세계경찰’ 그리고 ‘미국식 삶의 방식’의 새로운 경제-정치-이데올로기적 삼위일체로 변화되었다.

제국주의에 의한 군사적 침략은 1991년 걸프전과 그 이후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직도 주변부 국가들을 무릎 꿀리기 위해 강요하는 수단으로써 여전하다. 그러나 군사적 폭력의 사용은 지속적이지 않으며, 국지적으로 사용되고, 정상적인 상황에는 ‘고양이 발톱’처럼 숨겨져 있다. 팍스 게르마니아(Pax Germania)나 팍스 니폰니카(Pax Nipponica)를 형성하려는 새로운 시도는 ― 독일의 헤게모니 아래 유럽연합이 그리고 일본의 헤게모니 아래 범 아시아와 태평양 경제지역이 ―원칙적으로 경제적 권력의 우위에 의존하는데, 이때 화폐신 그 자체 이외에 어떠한 다른 이데올로기적 변색도 하지 않은 채 나타났고, 군사적 수단은 UN군처럼 블루 헬멧을 쓰고 평화적인 외양을 취했다.38) 냉전 종결과 함께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면서 중심부 나라들 사이의 경쟁에서는 경제적인 잠재력이, 즉 적나라한 화폐 내지는 자본권력이 경제적 폭력을 동원하여 경제 또는 무역전쟁의 형태를 통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39)



4. 소결

우리는 여기에서 제국주의를 세계자본주의의 중심과 주변에 위치한 나라들 사이의 ‘관계’로서 규정하였다. 제국주의―(신)식민지―관계로서 제국주의 개념에 따르면 이 관계 자체가 변화되지 않은 채 한 국가가 그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국과 같은 나라는 한편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신식민지적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비록 단초적인 형태이라고는 하더라도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덜 개발된 나라들에 대해서는 마치 제국주의 국가인 양 기능한다. 제국주의―(신)식민지― 관계로서의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은 또한 이제까지의 이론들을 비판할 수 있게 한다. 즉, 종속이론에서처럼 저개발을 주변부국가들이 세계시장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빠져나올 수 있는 일종의 ‘상태’로서 보는 발전론적 관점이나,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사이의 남․북 모순을 마치 부자나라의 도움을 통해 채워야 하는 ‘간격’으로 이해하는 제3세계론이나, 제국주의를 자본주의가 이전에 지나갔던 ‘단계’로서 이해하는 동구맑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이 그것이다.

중심부 국가들이 주변부를 포섭하는 방식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변국가를 약탈하는 경우와 정치 군사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상품판매지 및 원료 공급지로서 주변부를 강제하는 경우, 그리고 상품, 화폐, 자본 등의 경제적 범주를 매개로 하여 제국주의적 관계가 재생산되는 경우가 구분될 수 있다. 본원적 축적단계에서 내부적으로는 폭력적으로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형성되면서 외부적으로는 세계각지에서 교화과정에 의한 대가없이 약탈하는 관계(Raubverhltnis)가 주도적이었다. 이후 상업자본 및 초기자본주의 시기에는 소위 부등가 교환의 형태로 상업자본주의적인 사취에 의한 상품교환(Warenaustausch)이 주도적인 형태로 되었으며, 산업혁명 이래 산업자본이 형성되면서 비로소 산업생산력의 우위는 세계적인 차원의 교역의 주도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이제 등가교환에 의해 가치매개적으로 제국주의적인 초과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자본관계가 세계적인 차원으로 모순적으로 외화되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제국주의 관계는 정치군사적인 폭력과 경제적인 상품, 화폐, 자본 등을 매개로 재생산되며, 어느 범주가 보다 중요하게 되는지는 해당시기의 중심부 자본의 가치증식조건에 의해 기본적으로 규정된다. 이전에는 정치적 지배를 주로 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정치적 독립은 유지하면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경우(신식민지, 비공식적 제국주의)가 일반적이다. 2차대전 이전까지의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 2차대전 이후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그리고 최근 이전의 질서가 균열을 일으키며 팍스 게르마니아(Pax Germania)와 팍스 니포니카(Pax Nipponica)의 지역적 주도권 아래 새로이 형성되는 세계질서 역시 세계적 차원의 가치증식조건의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되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이론 분석은 현실 역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함의를 지닌다.

1) 제국주의적 개입은 중심부 국가 및 주변부 국가의 내부적 계급관계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일찍이 2차대전 종전이래 직접적인 정치적 식민지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후에는 원조자로서 등장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후원자로서 또는 막후의 조종자로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자로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주변부국가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주변국에서도 자본의 자기가치증식은 기본적인 존재조건이 되므로, 직접적이고 정치적인 개입보다는 우월한 생산력을 토대로 간접적이고 경제적인 개입방식이 선호되며, 상품, 화폐, 자본 등의 경제적 범주를 매개로 중심부 국가들의 가치증식욕구가 관철되는 경향이 우세해진다. 제국주의 자본의 가치증식 조건이 기본적으로 침해받지 않는한, 중심부 국가들이 주변부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한편 주변부 나라들 중 일부의 자본주의 발전은 자신보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나라들에 대해 단초적이지만 제국주의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주변부 나라들 중 일부는 이와 같이 세계적인 차원의 제국주의적인 관계를 지양하지 않은 채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 단지 필요로 되는 것은 변화된 조건에 맞추어 새로이 국제 질서를 규율해야 한다는 점이다. WTO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교역질서를 확립하려는 최근의 시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주변부 국가들에서는 동의에 의한 방식보다는 억압적 형태로 계급관계가 재생산되며, 이는 그만큼 직접 생산자계급을 통합해낼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중심부에서는 광범위하게 전 사회적으로 복지를 제공하고 노동자계급을 개량화, 분절화시킴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체제내로 통합해 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반면, 주변부에서의 복지는 주변적, 제한적으로만 주어져 물적인 바탕이 없는 선전적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운동은 쉽게 체제내화되지 않으며, 직접적인 계급대립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부 국가들이 복지국가적 형태보다는 억압적 국가기구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 시작된 민주화과정도 왜 용이하게 진전되지 않는지, 노동자 민중운동은 왜 전투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유는 이와 같이 국내적인 계급관계와 국제적인 제국주의 관계를 동시에 파악함으로써 이해되어질 수 있다.

3) 자본주의 주변부에서는 국가의 억압적 기제에 의한 계급관계의 재생산이 흔히 등장하는 경우이며, 복지국가적 형태는 선진제국에 한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들어와 주변부 몇 나라에서 가능해진 소위 민주화도 제한적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때 주변부에서 흔히 등장하는 파시즘적 정치는, 부르주아지 스스로에 의한 민주주의 원칙의 파기라는 점에서는 중심부에서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후발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파시즘은 제국주의 진영 내에서 우세한 경쟁력을 가졌던 나라들에 대해 상품을 가지고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이 뒤떨어지는 나라들이 경제외적인 팽창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타났다. 따라서 그것은 군사적이고 팽창적이었다. 주변부 나라들에서의 파시즘은 애초부터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력 아래 그들의 이해에 종속되어 나타나, 외부로는 저자세이나 내부로는 강압적인 정치가 일반적이다. 이같이 주변부 나라들에서의 정치 위기는 내부적인 계급모순 뿐 아니라 외부적인 제국주의 모순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4) 제국주의―(신)식민지―관계의 변화에 상응하여 주변부국가는 형태를 달리하며 중심부 국가에 대해 지배-종속관계에 놓여져 있다. 대체로 외부적으로는 종속되고 내부적으로는 강압적인 국가가 지배적인 형태이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위한 물적 토대는 취약하다. 주변부국가들은 그것이 군부의 주도하에 있던 민간정부의 통치하에 있던 간에 민주주의 원칙을 파기한 독재형태의 정치형태를 취하거나 아니면 왜곡된 형태의 민주주의를 가능케 할 뿐이다. 복지국가적 형태의 계급화합적 정치는 찾아보기 힘들며, 동의를 구하는 방식보다는 정치적 억압을 통해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노/정/연


1) 이제까지의 논의를 배경으로 살펴본다면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거대도시의 선진 자본의 절대적인 가치증식욕구(Verwertungsimperativ)에 의해 규정되는 세계시장의 구조화와 경향적으로는 세계적 생산의 구조화로서, 그리고 이로부터 야기되는 정치적 지배형태와 경제적 및 정치적 종속과 생활관계의 형성으로서 파악되어져야 한다. (Claudia von Braunmhl, Weltmarktbewegung des Kapitals, Imperialismus und Staat, in; Claudia von Braunmhl(ed.), Probleme einer materialistischen Staatstheorie, Frankfurt am Main 1973, p.59) 레닌 역시 오늘날의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의 성격에 대해서 비록 이론적으로 정교하게 발전시키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인식하고는 있었다. 식민지 정책과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근의 단계 이전에도, 심지어는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노예제에 기반하고 있었던 로마는 식민지 정책을 수행했으며, 제국주의적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구성체 간의 극단적인 차이를 사상하거나 은폐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일반적’ 고찰들은 피할 수 없이 공허한 상투어나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로마제국과 대영제국’을 비교하는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W.I. Lenin, Der Imperialismus als hchstes Stadium des Kapitalismus, op.cit., p.264)


2) Karl Marx, Grundrisse, op.cit., p.321.


3) K III, p.255.


4) 16세기와 17세기에 교역에 있어서의 지리적 발견과 함께 진행되고 상인자본을 급격히 발전시킨 대혁명들이 봉건적 생산양식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촉진하는데 있어 주된 계기를 이룬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실이 잘못된 관점을 만들어 내었다. 세계시장의 급격한 확대, 유통되는 상품의 증가, 아시아의 생산물과 아메리카의 재화를 빼앗으려는 유럽 나라들 사이의 경쟁, 식민지 체제 등은 생산의 봉건적 속박을 파괴하는데 근본적으로 기여하였다. 그와 함께 근대적인 생산양식이 발전하였다 그리고 16세기와 부분적으로는 17세기에 이르러서도 역시 교역의 급격한 팽창과 새로운 세계시장의 창출은 이전의 생산양식의 쇠퇴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이는 일단 형성된 자본주의적 생산의 토대 위에서는 거꾸로 진행되었다. 세계 시장은 스스로 이 생산양식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K III, p.345)


5) ibid.


6) K l, p.779.


7) ibid., p.780f를 비교하라. 상업적 독점에 기반하여 본원적 축적이 진행되었던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볼 수 있다.


8) ibid, p.782.


9) 상업의 발전은 그 자체만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수립으로 이어질 수 없다. 상업과 상업자본의 발전은 어디에서나 생산을 교환가치 지향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생산의 범위를 넓히고, 규모를 증대시키며, 세계화시킨다. 화폐는 세계화폐가 된다. 상업은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기존에 존재하던 사용가치 지향적인 생산 조직을 어느 정도는 해체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상업이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데 어느 정도 작용하는지는 일단은 기존의 생산양식의 견고성과 내적인 구성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체의 과정이 어디로 발전해 나갈지, 즉 낡은 생산양식의 자리에 어떠한 새로운 생산양식이 자리를 잡을지는 상업에 달려있지 않고, 도리어 낡은 이전의 생산양식의 성격 자체에 달려 있다. 고대에는 상업의 영향과 상인자본의 발전은 - 출발점에 따라서는 가부장적이고 직접 생존수단을 생산하는 노예제를 잉여가치를 생산을 지향하는 생산체제로 바꾸는 경우가 있기는 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항시 노예경제로 귀결되었다. 근대 세계에서는 이와 달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발전해 나간다. 이로부터 우리는 이러한 결과들이 상업자본의 발전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상황이 작용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 III, p.344)


10) ibid., p.247f.


11) K I, p.584.


12) K II, p.32ff.


13) K III, p.278ff를 참조하라.


14) 그것은 [자본주의적인 상품생산은] 언뜻 보기에 일단은 생산양식을 건드리지 않고 생산물의 판매를 주된 이해관계로 만든다. 이는 중국, 인도 그리고 아랍인과 같은 민족들에 대해 자본주의적인 세계무역이 준 영향의 일차적인 결과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 이차적으로 근간을 건드리는 경우에는 모든 형태의 상품생산을 파괴하는데, 그것이 생산자의 자기 노동에 근거하든지 또는 단순한 잉여 생산물의 판매에 근거하든지 간에 모두 해당된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은 일단은 상품생산을 일반화하며, 이에서 나아가 점차로 모든 상품생산을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으로 변화시킨다. (K II, p.41f) 우리는 마찬가지의 과정을 이전의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적 중심 국가에 의해 포섭되는 과정에 볼 수 있었다.


15) 다른 한편 식민지에 투하된 자본과 관련하여, 이 자본은 보다 높은 이윤율을 가져 올 수 있다. 노예나 쿨리 등의 사용, 즉 노동의 착취를 통해서. (K III, p.248)


16) 이러한 이유로 영국 자본의 해외 직접투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나타날 수 있었다. 홉슨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산업이 정치적 경계선에 의해 제약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나라들 사이의 경제적 교류는 대부분 상업적인 상품의 교환에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에 자본을 투자하는 관례들이 매우 많아져서, 영국의 부유층과 정치적으로 권력이 센 계급들은 그들의 수입의 보다 많은 부분을 영국의 외부에 투자한 자본으로부터 획득하고 있다. (J.A. Hobson, Imperialism, London 1902, p.357)


17) 케네디가 ‘진보를 위한 동맹’의 기치를 내걸고, 1960년대 이래 증대하는 ‘근대화’(요즈음에는 ‘서구화’ 개념으로 대치되었다)에 관한 저작들에 의해 후발 주자들의 개발 과정에 사회 문화적인 차원이 강조되는 한편, 제3세계의 분쟁지역에서 ‘폭동 저지’를 위해 사회과학이 기능화 되는 것을 60년대에는 광범위하게 볼 수 있다. 미국의 정책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개발 민족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운동의 확산은  베트남과 아프리카의 포르트갈 식민지에서의 해방 전쟁을 예외로 하고 -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운동의 역사적 패배와 제3세계에서의 권위주의적인 군사 정권들의 줄지은 등장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Thomas Hurtienne, Peripherer Kapitalismus und autozentrierte Entwicklung - Zur Kritik des Erklrungsansatzes von Dieter Senghaas, in: Prokla Heft 44, 1981, p.105)


18) 예를 들어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반제국주의적이며 평화주의적이어서 순수한 자본주의 세계는 제국주의적인 동력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아니다 [될 수 없다](Joseph A. Schumpeter, Zur Soziologie der Imperialismen, in: ders., Aufstze zur Soziologie, Tbingen 1953, p.123)는 견해를 제출하였다.  그는 일단 제국주의를 주어진 경계를 넘어 폭력적으로 팽창하는 국가의 맹목적인 경향(ibid., p.74) 또는 어떤 특정한 목표지향적인 경계가 없이 폭력적으로 팽창하려는 맹목적인 경향, 즉 전쟁을 하려는 반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충동적 성향(ibid., p.118)으로 다양한 사회구성체의 역사 사회적인 특성이 간과된 채 규정하는 한편, 역사상의 전쟁적인 민족들, 즉 고대의 군사화된 이집트, 페르시아, 아시리아 등을 절대주의 국가와 함께 제국주의의 사례로서 거론하고 있다. 여기에서 고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사례인 로마와 중국은 제외되는데, 아마도 이 나라들은 그가 예를 든 전쟁적인 민족들이나 오늘날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전쟁적이지 않고 오히려 문화적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본질은 자유무역이며, 이론의 여지없이 자유무역에 있어서는 어떠한 계급도 폭력적인 팽창 그 자체에 관심이 없다. 모든 민족들의 상품과 사람들은 외국에서도 마치 정치적으로 자신의 영토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자유무역은 물론 단순한 관세 면제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자유 국가의 원료 및 식량은 그것이 외국에 있어도 마치 자신의 영토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민족들이 취할 수 있게 된다.(ibid., p.128) 이와 같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개념 정의를 내린 후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필연적 단계로서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의 생활형태는 제국주의적 성향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살펴 보았듯이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 경제의 이해관계는 그것의 상층에 있어서까지 제국주의적인 지향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ibid., p.139) 그가 쓴 이 글이 처음 나온 1919년 전후의 현실 역사는 하필이면 바로 그 반대의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의 논의는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19) 이에 대해서는 Dieter Nohlen/Franz Nuscheler, Ende der Dritten Welt?, in: dies.(ed.), Handbuch der Dritten Welt Bd.1, Bonn 1992을 참조하라.


20) 1992년 8월 2일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비동맹국 정상회담에서는 가난한 나라들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지배하려고 하는 콧대 높은 서구의 국가들을 격렬히 비난하였다. 그러나 비동맹 운동을 통해 외채문제 등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는 공동의 해법에 대해서는 모든 나라들이 회의적이었다. Sddeutsche Zeitung, 3. August 1992를 참조하라.


21) 문제는 이미 의미론에서 시작하고 있다. 동서 진영의 해체와 ‘제2세계’의 몰락과 함께 ‘제3세계’의 개념은 무의미해졌다. 두개의 대한 가운데 하나가 붕괴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양극체제에 기반하고 있었던 모든 정치 조직들은  예컨대 비동맹 운동이나 77 그룹과 같은 조직들은  의미를 상실하는 한편, 발전론적 관점에서 해법으로 제시되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제3의 길 역시 쓸모 없게 되었다. 성공적인 체제와 패망한 체제 사이에 제3의 길은 있을 수 없다. (Ulrich Menzel, Das Ende der Dritten Welt und das Scheitern der groen Theorie, Frankfurt am Main 1992, p.7f) 그러나 멘쩰은 제3세계의 개념적 문제에서 출발하여 너무 멀리 나아가서, 이 불완전한 개념으로 포착하려고 시도했던 원래의 현실 모순들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22) Samir Amin, Accumulation on a World Scale, New York 1974, p.23, 56f.


23) ibid., p.123.


24) ibid., p.88f.


25) ibid., p.23.


26) ibid., p.136.


27)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Dieter Senghaas, Peripherer Kapitalismus. Analyse ber Abhngigkeit und Unterentwicklung, Frankfurt am Main 1974; ders., Weltwirtschaftsordnung und Entwicklungspolitik. Pldoyer fr Dissoziation, Frankfurt am Main 1977; ders. (ed.), Kapitalistische Weltkonomie, Frankfurt am Main 1979.


28)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Dieter Seenghaas, Von Europa lernen. Entwicklungsgeschichtliche Betrachtungen, Frankfurt am Main 1982; Ulrich Menzel/Dieter Senghaas, Europas Entwicklung und die Dritte Welt. Eine Bestandsaufnahme, op.cit.


29) Ulrich Menzel, Das Ende der Dritten Welt und das Scheitern der groen Theorie, op.cit., p.12.


30) Andreas Boeckh, Entwicklungstheorien: Eine Rckschau, in: Dieter Nohlen/Franz Nuscheler (ed.), op.cit., p.113.


3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인용을 참조할 것. 생하스와 멘쩰이 그들의 마지막 글에서 자기 중심적 발전에 대한 지구적 이론의 역사적 상대화를 완성시켰을 때, 이는 필연적으로 주변부 자본주의론에 대한 지구적 이론을 같은 방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자본주의적 발전과정이 그들의 원래적인 이념형적 모델로부터 현저하게 이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저자들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제3세계에 속한 나라들 사이에 역사적인 출발 조건, 도달한 발전 정도와 구체적인 발전 경로와 관련하여 존재하는 거대한 차이들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이미 본인이 설명하려고 시도했듯이, 모순들로부터 눈을 돌리고 양극화된 이분법 속에 희망적 관측에 빠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엉성한 이분법적 사고 체계 속에서 오늘날의 대다수의 자본주의적인 개발 도상국과 비자본주의적 개발 도상국들은 구분되지 않은 채 얼버무려졌고, 그것의 모순적인 발전 동학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Thomas Hurtienne, Peripherer Kapitalismus und autozentrierte Entwicklung ― Zur Kritik des Erklrungsansatzes von Dieter Senghaas, op.cit., p.131.)


32) 디너(Diner)는 19세기 말부터의 제국주의는 더 이상 경제적인 원인으로부터가 아닌 권력정치에 의해 동기유발 되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즉 국가들 세계에서 권력과 권력균형의 정치적 차원의 계속적이고 독자적인 정치적 논리가 중요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폴레옹 패전의 결과로 유럽의 세력균형이 재건된 이후, 존재하며 동시에 물리적으로 부재한 요소의 정치적 역할은 영국의 자유무역정책을 통해 추상적이고 경제적인 지배로 변화하게 된다. 국제적 지배는 최종적으로 경제적 형태를 띤다. 소위 제국주의 절정기인 19세기 말에서야 비로소 식민지와 해외 영토확장의 중요성이 증가하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경제적 이해라는 좁은 의미가 아닌, 권력정치적 이해로 동기화 되었다. 이는 이제까지 중요한 주도분야의 생산우위를 통해 자유무역을 기초로 한 영국의 우위에 의존한 국제적 지배가 당시 위기로 빠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생된 영토 식민정책은 광범위하고 식민지 영토내로 깊숙이 확장되는 경제적 팽창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행하는 권력정치적 세력균형계산과 또한 보호주의적 우위에 의해 작동되는 정치의 구상화의 산물이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것은 - 반대되는 수사학에도 불구하고 - 무조건적으로 경제적 목적합리성에 근거하지 않는다. (Dan Diner, op.cit., p.339f)  베러(Wehler)는 이것을 경제 역사적인 무지에 근거한다고 비판했다. 상이한 국가들에서 (미국, 벨기에, 독일, 프랑스) 산업혁명의 성공적인 발현과 그것과 함께 세계시장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영국의 독점지위의 쇠퇴, 동시에 후발산업국들이 겪어야만 했던 산업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성장문제들- 이것은 반대로 광범위한 정치적 결과들을 갖는 변화된 경제적 상황에 근거한다. 란데스(Davis S. Landes) 역시 제국주의의 원인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제일 중요한 요소를 독점에서 경쟁으로의 이동으로 보았다. (Hans-Ulrich Wehrer (ed.), Imperialismus, op.cit., p.17)


33) 1914년에 전 세계 식민지 지역의 거의 반이 영국의 수중에 있었다. 7천4백9십만 평방킬로미터 (지구 전체의 55.9%) 가운데 3천3백오십만이 영국, 천7백4십만이 러시아, 천6십만이 프랑스, 2백9십만이 독일, 3십만이 미국 그리고 3십만이 일본의 것이었다. 한편 1876년에는 독일과 미국 그리고 일본은 식민지가 없었으며, 영국은 2천2백5십만 평방킬로미터, 러시아는 천7백만, 프랑스는 9십만의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W.I. Lenin,  Der Imperialismus als hchstes Stadium des Kapitalismus, op.cit., p.262)


34) Tilman Evers, op.cit., p.106f를 비교하시오.


35) Hans-Ulrich Wehler (ed.), op.cit., p.29.


36) Dan Diner, op.cit., p.347. 그는 계속해서 제국주의의 두 가지 형태를 구별했다. 말하자면, 하나는 세계시장의 무정치적(politikfrei)이고 시민사회(civil society)에 의존된 교환의 형태를 띄는 제국주의(영국과 미국), 다른 하나는 침략적이며 폭력적 형태를 띠는 제국주의(일본, 독일). (ibid., p.347ff) 그는 형태차이의 원인을 상이한 가치증식조건에서 찾지 않고, 이 차이의 원인이 경제적인 것에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두 형태들간의 대립을 단순히 상이한 정치적 문화로만 간주했어야만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서구적이고, 세계시장의 보편주의에 의존하며, 본질적으로 추상적 교환형태를 띠는, 비공식적 확장과 대륙적이고 폭력적인 독일제국주의의 팽창 사이의 대립은 생산 방법에 기인되지 않는다. 양쪽 모두에게 있어 자본적 헌법에 기초한 사회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러나 동시에 두 가지 상이한 시민문화(civic cultures) ― 자본주의내에서 두가지로 상이한 종류의 정치적 형태가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다른 성격의 정치적 형태를 도덕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로부터 볼 때 완전한 차이가 보인다. 이에 따르면 독일의 대서양 통합은 단순히 동맹정치적인 과정만은 아녔다. 다른 정치적 문화, 즉 서구적 문명화로서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문화로의 세계시장적으로 둘러싸고 진행된 통합이 문제이다. (ibid., p.357) 서구적 문명화로서 미국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문화가 주변부 국가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2차 대전 이후 세계역사를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것이 주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37) 상품은, 즉 상품형태로 나타나는 자본은, 현존사회주의 국가로 침투하던 당시 서구자본이 사용하였던 기적의 무기였다. 현존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하는 과정에 제국주의는 이빨도 보이지 않았고, 한 방의 탄약도 쏘지 않았다.


38) 네 개의 무장된 정치적 집단을 비무장화했었던 캄보디아의 평화군의 대표는 우습게도 일본인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군은 2차 대전 동안 군사적 폭력으로 전체 인도차이나 합병을 시도했었다. 현재 일본의 생산품은 이미 캄보디아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전술한 것 같이 군사적 행동 없이 말이다. 군사적 제국주의와 정치적, 경제적 제국주의 사이의 차이를 우리가 인정한다면, 군사적 방식 이외의 제국주의도 제국주의임을 인식한 필요가 있다.


39) Illi unum consilium habent et virtutem et protestatem suam bestiae tradunt. Et ne guis possit emere aut vendere, nisi qui habet characterem aut nomen bestiae, aut numerum nominis ejus. (Apokalypse, K I, p.101에서 인용)


2003-04-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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