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을 위한 연금 대(對) 노령을 위한 연금
정부는 왜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금융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위한 기초를 마련해주고 이를 통해 경제를 지탱하는 동시에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정부의 부담(정책적, 재정적)을 줄이자는 데 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새로운 듯이 이야기하는 문제의 ‘퇴직연금제도’는 경제구조와 사회보장정책의 신자유주의적인 마무리를 위한 명백한 움직임에 불과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기업연금도입을 위한 퇴직금제도 개혁 논의가 2001년 7월부터 노사정위원회 경사소위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이래 정부와 싱크탱크, 그리고 각종 언론들은 퇴직금제도가 없어지고 기업연금제도가 금방이라도 도입될 듯이 신문지상에 흘려왔다. 심지어 정부 부처간에 갈등양상으로까지 비춰질 만큼 앞다투어 도입 취지와 방식, 그리고 시기를 언론에 발표해왔다. 그간 보도의 주된 내용은 증시부양이라는 취지를 강조하는 재경부의 입장이 두드러졌다. 한편 최근 노동부는 그 이름을 퇴직연금제도라 칭하고, 그간의 재경부의 노골적인 발언을 포장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자의 노후생활보장을 위한 ‘사회정책’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것이 그 형식적인 명분이다.
그러나 그 발표 내용을 보면, 본질적으로 이전에 제시되었던 기업연금제도방안1)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최근 정부가 퇴직연금제도를 제시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 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를 짚어야 한다. 먼저 정부가 퇴직연금제도로 이름을 바꾸어 발표하면서 겨냥한 것은 무엇인가와 기업연금제도의 전제조건인 공적연금의 축소, 즉 국민연금제도의 개혁과 어떻게 내용적, 시기적으로 연동되는 가이다.
헐값 흥정
먼저 퇴직연금제도안은 적립식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노동계의 반발을 체제 내로 포섭하려는 헐값 흥정에 불과하다.
노동부가 제출한 퇴직연금제도안의 내용2)은 ▲5인 미만 사업장과 비정규직에 확대적용 ▲기존 퇴직금과 동일한 가치를 보장 ▲이직 시 연금의 이전성 확보3) 한다는 것이다. 도입절차와 관련하여 ▲과도기적으로 현행 퇴직금 제도와 기업연금제도 사이에 선택하도록 하고 ▲기업연금의 도입은 확정기여형과 확정급여형을 동시에 인정4)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한다는 내용을 제외하면 이전의 내용과 달라진 것이 없다. 과도기적으로 현행 퇴직금 제도와 기업연금제도 사이에 노동자들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연금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려는 형식적인 조치일 뿐이다. 또한 확정기여형과 확정급여형을 동시에 인정한다는 것은 겉으론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합리적인 조치인 듯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연금에 대한 선택권을 늘려 투자위험을 노동자들이 전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확정기여형 도입에 대한 반대논리를 상대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게다가 기금의 적립과 금융투자활용이라는 점에서는 확정기여형이나 확정급여형 모두 동일하다. 투자위험이나 주식시장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확정기여형과 확정급여형 사이에 차이는 점차 줄어든다고 보아야 한다. 확정급여형의 경우 급여가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통상 주식투자보다는 안정적인 채권투자를 선호하여 투자위험이 적다고 하겠지만, 채권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경우에야 확정급여형 역시도 투자위임 등을 통해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넓게 본다면 제도형태가 투자위험이나 주식시장투자와 맺는 관계성, 즉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 사이에 차이는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외부전문기관(보험사나 투신사 등)에 위탁운용을 의무화한 것은 현행 퇴직금 제도를 적립시스템으로 전화하여 연기금을 금융적으로 활용하려는 조치의 일환이다. 그리고 연금의 이전성 확보 문제의 경우, 결과적으로는 확정급여형이 아닌 확정기여형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확정급여형의 경우 연수와 직급 등 고려사항이 상대적으로 복잡하여 통상 연금의 이전에 따른 행정비용이 크기 때문에 연금의 이전성과 확정급여형은 이질적인 관계에 놓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내용과 달라진 점은 5인 미만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확대적용 방안이다. 그런데 적용대상의 확대는 그간 증시부양용 기업연금도입이라는 취지에 반발해 왔던 노동계를 겨냥하여 추가한 포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적립식 기업연금제도(다른 이름의 퇴직연금제도)와 내용적으로든 형식적으로든 확정기여형 자체를 배제한 상태에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을 확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노동부의 용역보고서(2001)에 따르면, 제도도입에 대한 저항을 줄이기 정책목표를 현행퇴직금제도를 보완하는 형식을 제안하였다. 즉 영세사업장의 경우 1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기업연금의 적용을 강제할 경우 “사업주에게 비현실적”일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정책, 즉 확정기여형 연금과 유사한 서구의 “개인저축계정(IRA)을 제안”한 바 있다.5) 결국 그 용역보고서에 준하여 본다면, 이번에 노동부가 전 사업장에 적용하고 확정기여형과 확정급여형을 병행한다는 조치란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에게는 연금의 이전성이 가능한 개인저축에 다름 아닌 IRA의 적용을 염두에 두었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DJ 정권에서 제출되었던 내용과 다르지도 않을 뿐더러, 결국 정부가 이야기하는 퇴직연금제도안은 ‘적립식’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노동계의 반발을 체제 내로 포섭하려는 헐값 흥정에 불과하다. 반면 그 효과는 노동계로 하여금 혼선을 주는 카드가 될 수 있다.6) 정부가 일괄적으로 제시한 노동정책들을 노동계는 사안별로 분리해서 접근하는 대처가 긴요하다.
공적연금의 축소를 통해 성장?
이에 덧붙여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은 국민연금의 개악과 조응하는 측면도 아울러 지닌다. 오히려 지금의 시기에서 기업연금도입은 공적연금의 축소를 위한 기초가 되고 있으며 거꾸로 공적연금의 축소 없이는 기업연금제도 도입과 관련한 논의 자체가 무색한 시기가 되었다. 지난 4월1일 프레스센타에서 열린 급여율 인하방안을 내용으로 하는 공청회에서는 부르주아지들의 연금개혁의 구상과 심지어 그 처리순서까지 엿볼 수 있던 기회였다. 잠시 사족을 달자면 이 공청회 자리에서 연구단은 인구노령화에 따른 부담율 증가가 예상됨으로 현재의 경제성장, 고용규모, 계속적인 출산율 하락 등의 조건으로 해서 향후 70년! 이후에 지출액의 2배에 해당하는 기금을 적립하자고 제안하였다.7) 이를 위해 보험료는 올리고 급여율은 낮추어야 한다는 요지의 내용에 3개 대안을 놓고 선택해보라는 식의 재정추계와 재정안정화 방안이 주된 발제 내용이었다. 곳곳에서 70년이라는 무리한 기간설정, 경제활동인구에 대한 소극적 가정, 무리한 출산율 감소 가정8) 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재정추계는 신뢰성이 높다는 말로 일관하는가 하면 한계가 있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다, 심지어 설사 재정추계의 조건과 결과가 미흡하더라도 ‘점쟁이한테 물어 볼 수는 없지 않느냐’며 논의를 희화화하는 등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그런데 이날 패널과 몇몇 관계자들이 개진한 내용 가운데 다수는 이 날 공청회의 윤곽이 기업연금도입 및 3층 모델 도입을 위한 중요한 수순을 강하게 포함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연금의 민영화를 위한 단계적 조치를 위한 기업연금도입이나 기초연금 도입은 당일의 공청회와는 무관하다며 분리하여 논의하길 거듭 강조하던 일부 주최 측 논자들에 비한다면, 오히려 이들 신자유주의자들은 양심적이었다. 골자는 이렇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확정되어야 기업연금의 소득대체율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하는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연금기금의 규모를 규정하는 것으로 3층 모델과 이를 통한 연기금의 금융화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축소된 공적연금 부분만큼을 사적연금으로 대체하는 것일 뿐 아니라, 퇴직소득에서 차지하는 사적연금의 비중이 그만큼 커진다. 뿐만 아니라 3층 모델은 그간 국민연금과 퇴직금에 대한 기여를 이중부담으로 주장해오던 경영계에게는 추가적으로 이익이 된다. 즉 기존 기업연금제도에서는 기존 퇴직금제도에는 없는 투자수익을 감안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연금의 도입은 정부에게는 공적연금의 비중을 줄임으로써 동시에 국민연금에 대한 재정적 부담과 노동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경영계에게는 기여부담을 경감시키는 이해가 걸려 있다.
노동자․민중을 위한 ‘안정된 노후소득보장’ 방안인가
정부의 방침이 노동자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금번 국민연금 공청회로 연금체계 전반과 적립식 기업연금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밟아 가는 정부와 자본의 의도를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지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금융부문의 집적/집중 저지, 공사연금 시스템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의 저지, 리스크를 개인화하는 조치를 저지).
먼저 노동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는 금융의 집적과 집중을 매개한다는 점에서 기업연금제도를 비판해야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성장둔화와 자본과잉 상태에서 금융부문의 공격적인 시장개척을 전개하는 특징을 띤다. 또한 지구화라는 맥락에서 금융시장의 지배가 등장하는데, 그 중심에는 금융부문에서의 집적과 집중을 특징으로 하는 거대 금융콘쩨른이 존재한다. 오늘날 금융의 집적과 집중의 제 형태로 우리는 방카슈랑스(상업은행과 보험사 사이의 합병과 자본참가), 투자은행의 확장(또는 수수료와 유가증권거래에서 시차 차익을 추구하는 투자은행의 운동), 기관투자가(보험사, 투자기금, 연금기금)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연기금의 경우는 부과방식에서 적립식으로의 개혁이라는 연금제도 개혁을 통해서 기관투자가 그룹 전체에게 매력적인 전망을 열어주게 된다(투자규모 면에서 보험사의 지위를 압박하는 계기까지 이르렀다).9) 퇴직금 제도의 경우라면, 관행상 적립되지 않고 장부상 기재만으로 처리돼오던 기존의 회계방식으로부터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을 통해 완전히 사전적립되고 사외적립되는 것은 금융부문에게 새로운 장을 마련하는 계기이다. 즉 연기금은 오늘날 금융부문의 특징인 집적과 집중을 추동하는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이 같은 조치는 축차적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식 방카슈랑스인 보험업법 개정이 그것인데, 작년 남한이 월드컵 열기로 도배질 되던 무렵, 정부는 6.16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였다. 당시 도입배경으로 제시한 것이 민간의료보험과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을 전제로 한 보험시장 활성화 마련이었다. 정부가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한 것은 해외 자본에 대한 보험업 신규진입 규제, 가격경쟁과 상품경쟁에 대한 규제, 금융산업내의 겸업화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는 시장자유화를 통해 금융자본들이 침투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10) 금융의 집적과 집중을 위한 제도적 기반의 마련을 위해 보험업법 개정이라는 금융시장자유화 조치를 단행한 이후에 정부는 기업연금을 도입하는 수순을 밟아 가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전략은 국내재벌, 보험사, 초민족적 금융자본 사이에 경쟁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데, 그 궁극적 결과는 민중의 생계기반인 임금을 자본시장에 끌어들여 기생적인 금융자본의 이익을 창출함으로써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 생존의 위기로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연금을 비롯해 개인연금의 시장규모를 규정하는 하나의 요소는 공적연금의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다. 보험업법 개정 이후에 추진된 것은 공적연금규모의 축소를 단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금번의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으로 제출된 국민연금 급여율의 인하(소득대체율 인하)와 보험료율의 인상은 공적연금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것으로 3층 연금 제도로의 전환과 맥이 닿아 있다. 전체 연금제도 내에서 공적연금의 규모를 축소하는 형태로 구획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업연금과 개인연금 시장의 규모를 규정하는 절차적인 의미를 지닌다. 정부의 재정부담 경감과 70년 이후까지 내다보는 ‘탁월한’ 예견능력을 동원해 증시를 부양할 사회보장자본을 형성하는가 하면, 동시에 보다 자유로운 금융투자가 가능한 사적연금의 규모까지 보장할 수 있는 조치이기에 정부로써는 놓칠 수 없는 개혁사안이 되었다. 그러나 사적 연금의 특성상 소득재분배의 성격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단지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 상품이 새로이 등장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에게는 삶이 보다 피폐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금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 조처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공사연금 시스템 변화의 최종 결정판이 될 것이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궁극적인 기업연금제도의 내용은 확정기여형 연금이다. 이는 연금급여가 투자이익에 연동되는 것을 말하는데, 핵심적으로는 투자이익과 함께 손실 또한 노동자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소득재분배를 지향하는 (기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정도는 일단 별도로 하자) 공적연금의 축소를 통해 개인저축의 성격을 지니는 사적연금의 증대는 노동자들의 소득기간 동안의 불평등을 노후에 재생산하도록 할 것이다. 더구나 연기금을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려는 지금에는 퇴직금과 채권/주식의 수익간에 직접적인 관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적립식 연금 시스템의 구축과 확대의 순효과는 경제위기의 리스크를 증대시키고 결국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또한 자본화 방식은 공적연금의 혜택을 줄이고 고소득자들은 더 많은 혜택을 보는 불평등한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정부의 기업연금제도 도입은 자본의 위기를 사적연기금 부양을 통해 리스크를 개별화하는 형태로 노동자에게 위기를 전가하는 금융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위에서 본 것처럼 정부와 자본이 기업연금을 도입하려는 절차는 보험업법 개정, 국민연금 수급율 인하(소득대체율 인하), 그리고 기업연금 및 사적연금 활성화로 정리된다. 이러한 조치의 목적은 자본의 위기를 개별 노동자의 위기로 전화시킴으로써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금융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노령연금과 관련된 논의는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 현재 기업연금의 동향은 공적연금의 축소와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몇 가지 대응의 원칙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크게 연기금의 금융화에 조응하는 방식에 반대하고 노후소득보장의 본래 내용을 회복하는 원칙으로 포괄된다.
먼저 국민연금수급율 인하(소득대체율 인하)를 저지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하 정도에 따라 기업연금/개인연금의 시장규모가 규정되는 개혁의 결정판이 될 것이기 때문에, 보다 공적소득보장 성격이 높은 국민연금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지금 수준에서는 기업연금제도 논의 자체와 현행의 퇴직금 제도를 단협사안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과 연동되어 이루어지는 것은 경영계에게 자신들의 이중부담(국민연금과 퇴직금에 대한 이중부담)의 빌미가 되고 있다. 그러나 퇴직금 문제는 엄연히 단협 사안인 이연임금의 문제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금융의 이해로 결속되는 적립식을 반대해야 한다. 기업연금도입이 국내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계기로 본다면 이는 오산이다. 연기금의 적립과 자본화는 보다 높은 수익을 찾아 이동할 뿐이지 국적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네 번째, 장기적으로는 작업장 수준에서의 노후소득보장기금에 대한 문제(현재의 퇴직금제도)를 노동자간 연대의 성격에서 ‘발본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네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장기적으로 현재의 공적연금제도의 강화와 연결시켜내야 한다.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퇴직 후 안정적인 소득 보장이다. 연기금의 금융적 활용 비판 측면 외에도 제도설계와 관련하여 그것이 국민연금이든, 퇴직금이든 안정된 퇴직소득의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 오늘날 자본과 국가는 퇴직소득을 누가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의 문제를 놓고 이를 개인화하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화 전략 또는 사회보장의 시장화는 자본의 축적위기와 깊이 연동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행 퇴직금 제도와 국민연금제도틀 내에서 구획되는 재정방식의 문제나 제도 설계상의 문제(사회보험이든 부과방식의 수당식 연금이든)에서 비롯된 해법인양 축소시키고 있다. 이른바 인구노령화론을 가져와 마치 공적연금의 재정불안정의 문제가 세대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처럼 이야기하여 기업연금제도의 증대와 공적연금제도의 축소를 논하는 논리와 전제 모두를 배격해내야 한다. 노동자의 노후소득보장의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공식적 퇴출을 의미하는 퇴직과 관련된 자본의 이해와 일차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계급투쟁의 사안임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강조하건대 퇴직소득보장의 위기는 인구노령화나 노동자들의 세대간 갈등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며, 오늘날 일차적으로는 자본의 축적위기 및 경제성장둔화(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실업증가와 임금삭감)에서 비롯된 계급투쟁의 문제다.
이제 정부는 기업연금제도 도입의 의제를 놓고 노동계에게 적용율 확대라는 카드를 내보였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자체로 받을 수 있는 카드도 아니며 보증수표도 되지 못한다. 노동계는 여타의 노무현 정권의 여러 노동정책들 사이에서 교환하는 식의 일괄타결이 아닌 사안별로 분리해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국민연금과 퇴직금의 틀과 전제의 한계들을 버리고 “안정된 민중의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계급적인 의제를 발본적으로 제기해 들어가는 것이 시급하다.
1) 이전의 기업연금제도 방안에 대해서는 한국노동연구원, ꡔ퇴직금제도 개선방안ꡕ, 2001. 12.과 최원탁, “기업연금제도 도입, 개인소유권 증진이라는 화려하나 우울한 유혹”,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2002. 4/5호를 참조.
2) “기업연금 출발부터 삐걱”, ꡔ한겨레ꡕ, 2003.3. 14(금), 3면; “노조에 책임 물으려면 힘의 실체 인정해야”, ꡔ한겨레ꡕ, 2003. 3. 25. 17면 참조..
3) 즉 이직 시 연금가치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해당 기업이 가입한 보험회사나 투신사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4) 확정기여형은 연금의 기여액만 정해져 있고 투자에 따른 손실과 이에 따른 연금급여 손실은 노동자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방식이다. 확정급여형은 연금급여액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으로 통상 채권투자를 선호하지만, 채권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경우에는 사실상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게 된다.
5) 노동부, ꡔ퇴직금 제도 개선방안ꡕ, 한국노동연구원, 2001. 12, p. 246.
6) 이 발표가 있자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통해 ‘5인 미만 사업장과 비정규직에 적용 확대’를 두고 검토할만 하다고 논평하였다. 새정부가 노동정책들(산별교섭과 관련한 제도 정비, 주5일제 근무 문제 등)을 일괄적으로 타결하려고 할 것이고 보면, 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대응은 기업연금문제를 분리해서 의제화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늘상 그러하듯이 정부는 노동계로서는 환영할 법한 전 사업장 적용 하나만 가지고도 퇴직금 제도를 폐지하고 기업연금을 강제화 한 이후에도 몇 년은 끌 것이다. 노동계의 긴요한 대처가 요구된다.
7) 국민연금발전위원회,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에 관한 공청회」, 보건복지부 공청회자료 03-01,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20층), 2003년 4월 1일(화). 국민연금발전위원회는 이 달 안에 발전방안을 심의∙확정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보고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은 5월 중 정부안을 최종 확정한 뒤 국회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낼 계획이다. “국민연금재정안정 공청회 이견만 확인 차장 예고”, ꡔ한겨레ꡕ, 2003. 4. 2.(수), 14면.
8)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된 것은 좋은 일인데,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불행한 일로만 둔갑시킨다. 그러나 출산율이 감소해서 노인인구에 대한 취업노동자층의 부양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아동청소년에 대한 부담은 줄기 때문에 취업노동자층의 총부담은 상쇄된다. 인구 노령화론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김미원, “신자유주의 연금제도 개혁안 비판”, ꡔ진보평론ꡕ, 2003년(근간)을 참조.
9) FranCois Chesnais, “금융지배적인 세계적 축적 체계의 출현”, ꡔ한국사회에 주는 충고ꡕ, 삼인, 1998., Griffith-Johnes, Stephany, 1998, Global capital flows, Macmillan press LTD, 1998., 리샤르 파르네티, “글로벌 금융의 발흥에 있어서 앵글로 색슨계 연기금과 뮤추얼 펀드의 역할”, ꡔ금융의 세계화ꡕ 한울, 2002., Hans Blommestein, Impact of institutional investors on financial markets, Institutional investors in the new financial landscape, OECD, 1998. 참조.
10) 정지영, 윤여협, “보험업법 개정 저지투쟁”, ꡔ사회진보연대ꡕ 7∙8월호, 2002. 참조. 개정 내용의 하나로 뮤추얼 펀드의 설립자본금 기준이 4억원에서 1억원으로 설립기준을 완화함으로써 군소 뮤추얼 펀드들이 난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