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 저항, 그리고 미 제국주의
채 만 수
소 장
미 제국주의의 이라크 침략은 개전 3주만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후세인 정권이
붕괴됨으로써 전쟁의 양상이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언론은 대체로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것으로 보도하고
있고, 미국의 대통령 부시도 “전쟁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면서도 ‘승리’를 선언했다. 전쟁 상대였던 이라크의
정권이 붕괴되고 미․영 연합군이 사실상 전국의 모든
도시를 점령․장악한 사실만을 보면, 특히 그러한 장면만을
내보내고 있는 TV 등의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전쟁에서의
미국(과 영국)의 승리는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은 끝난 것일까? 미 제국주의의 승리로 끝난
것일까?
애초 미국은 이라크의 이른바 ‘대량살상무기’의
보유․개발과 “후세인의 독재로부터의 이라크 인민의
해방”을 전쟁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리고는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 등이 세운 이른바 “충격과 공포” 작전, 그러니까
후세인의 거처와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대량의 ‘정밀 폭격’,
소위 ‘외과적인 폭격’을 통해서 단기간에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면, 이라크 인민이 자신들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선전이었다.
그러나 개전을 하고 미․영 제국주의 군대가 진격해
들어가면서 부딪힌 것은, 그들이 시아파의 반 후세인적인 반역의
기운이 충만한 도시라고 장담했던 바스라 등 남부의
도시들에서조차, ‘꽃을 던지며 환영하는 인민’이 아니라
‘총을 들고 저항하는 민병대’였다. 점령 지역에서조차 “굿
사담”(사담 후세인이 좋다)을 외치며 미국에 대해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ꡔ동아일보ꡕ 2003. 3. 28).
요르단 등에 나가 있던 이라크 사람들은 물론 아랍 각국에서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우겠다는 젊은이들이 바그다드로
몰려들었다. ‘해방군으로서 환영받을 것’이라는 자기 최면에
취해 있던 전장의 병사들과 워싱톤의 전쟁광들은 당황했고, 개전
일주일여만에 그들은 작전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새로운 작전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과
사격이었고, 열화우라늄탄․집속탄 등 ‘대량살상무기’를
쏟아 붓는 것이었다. 외신에 의하면, 개전 21일째이고 미군이
바그다드를 사실상 함락시켰다고 발표한 4월 9일 현재 폭격기는
3만 번 이상 출격했고, 2만 발 이상의 고성능 폭탄이 대도시의
시장과 주거지를 가리지 않고 투하되었다. 국제적십자사는
폭격에 의한 민간인 사망자 수의 집계를 포기했고, 폭격이 한창
벌어지던 당시 바그다드의 병원에는 1시간에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밀려들어 왔지만, 의약품이나 시설의 부족으로 제대로
치료조차 할 수 없었다.
미국과 영국 등의 TV나 기타 보도는, 따라서 사실상 그것을
그대로 중계하던 국내의 보도는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의한
참상은 외면한 채 밤하늘의 섬광 등 게임 같은 장면만이
방영․보도되거나, 부상한 이라크 어린이를 미군이
어루만지며 치료해주는, 연출된 장면들만이
반영․보도되었다. 시장이나 주거지에서 발생한 대량
살상은 카타르 도하에 자리잡은 미군사령부나 워싱톤의 선전기구
등에 의해서 이라크 측의 미사일 오발로 조작되었다가, 미군에
배속되지 않고 바그다드에서 취재 중이던 외신기자들이나 아랍
측의 알자지라 방송 등에 의해서 미군 측의 기만이 폭로되곤
했다.
바그다드의 국영 TV 방송국이나 알자지라 방송, 공보처 건물,
그리고 외신기자들이 머물던 팔레스타인 호텔 등에 대한 미군의
폭격은, 결코 뜻하지 않은 오폭도 우연적인 것도 아니고, 미군에
의한 그러한 대량 파괴․살육이 폭로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면밀히 계산된 것이었다.
바그다드는 그렇게 함락되었다. 이라크의 저항이 예상외로
미약했던 게 아니라, 이라크 군과 민간의 저항은 “예상보다
강해서” 미군들은 놀랐고,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가 그럴
것으로 생각했던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털어놓아야
했다(ꡔ연합뉴스ꡕ 2003. 3. 28.). 바그다드와 기타
대도시의 함락은 오직 무차별적인 대량 폭격과 살육에 의한
것이다. 도무지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압도적인 군사력, 최첨단의
대량살상무기를 무차별적으로 쏟아 부은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인민들은 결코, 일부에서 연출되어 TV나 신문
등에 보도되고 있는 대로 ‘후세인 정권의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환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미 제국주의의
침략이 이라크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것임을 간파하고 있으며,
예상되는 노예화에, 석유 등 자원의 약탈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 제국주의의 이라크 침략은 2001년의 9․11 사태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하물며 후세인의 독재 때문에
감행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1958년 7월 혁명 이후
이라크가, 그리고 최근에는 후세인 정권이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그 석유자원을 자주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라크를 힘으로 제압함으로써 석유자원에
대한 지배를 회복하고, 감히 미 제국주의에 도전하면 어떤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가를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되어 왔음은
체니 현 미 부통령, 럼스펠드 현 미 국방장관, 월포위츠 현 미
국방부 부장관, 펄 전 미 국방정책위원장 등등의 전쟁광들이
10여 년 전부터 작성해온 전쟁계획서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이라크 전쟁, 10년 전부터 준비됐다. ‘군사력에 의한
세계지배 주장한 7개 문서”, 2003. 3. 12.;
Bernard Weiner, “How to Swagger and Bully Your Way to
Disaster: Bush’s Foreign Adventurism”,
March 6, 2003
참조). 그들이 주장․획책하는 것은 하나 같이, 쏘련이라는
강력한 견제 세력이 해체된 틈을 타 “미국의 이해관계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국제관계의 재편성, 미국의 이해에
방해가 되는 국가의 무장해제와 체제․정권 교체, 그를
위한 일방적인 선제공격이다.
사실 국제법상의 ‘주권국가’에 대해서 미국이 체제․정권
교체를 요구하고 그것을 군사력 등으로 밀어 부친 것은 이라크가
처음이 아니다. 금년 1월 27일자 미 ꡔ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ꡕ 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은 이미
과테말라, 칠레,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그레나다 등에서
성공적으로 정권을 전복시킨 바 있고, 쿠바에서도 시도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미국은 경제
제재, 외교적 압력, 무역 봉쇄, 그리고 해당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현지 세력에 대한 지원 등을 이용해 왔다. 그리고
또한 폭격과 군사적 침략도 역시 이용해 왔다.
이 신문은 미국이 수행한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잔혹한 ‘정권
교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의미심장한 것은 그 신문을
포함한 기타 미 제국주의의 선전도구들이, 이라크와 후세인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유고슬라비아 정부와 그 대통령이었던
밀로세비치를 ‘악마화’(demonize)하기 위해서 벌였던 거짓말의
일부를 폭로하고 있는 점이다.
1999년 미국의 선전도구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발칸 반도 전쟁은
밀로세비치의 독재와 비(非)세르비아계 인민에 대한
대량학살(이른바 ‘민족청소’)을 멈추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선전을 퍼부어댐으로써 동유럽의 식민지화라는 미국과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진짜 목표를 은폐하는데 성공하였고, 진보적
대중의 상당 부분조차 이러한 선전을 진실로 믿도록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4년 전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공격이 초읽기를
하고 있을 때, 미국과 서유럽의 언론은, 따라서 한국의 언론도,
그러한 선전 공세의 일환으로 세르비아인들을 야수(野獸)처럼,
그리고 밀로세비치는 히틀러처럼 묘사했는데, ꡔ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ꡕ는 이번의 기사에서 밀로세비치가 결코
독재자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 기사에 의하면, “밀로세비치는 결코 국내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억압하지 않았다.” “사실, 1996년 지방선거 이후
야당들은 전국의 주요 도시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독립적인 라디오 및 TV 방송국들은 방송을 계속하고 있었고,
야당 성향의 일간지 및 주간지가 발행되고 있었다.”(이상, John
Catalinotto, “YUGOSLAVIA : Washington’s history of
‘regime change’”, Feb. 13, 2003 참조).
미국의 이라크 침략 역시 그러한 기만과 거짓말로 치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4년 전 유고슬라비아 침공 때와 다른 점은, 이라크
인민이나 아랍의 인민뿐만이 아니라, 이제 전 세계의 모든
진보적인 인민들이 미국의 그러한 기만과 그에 숨겨진 야욕을
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4년 전에 단지 수만 명만이
미국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그것도 거의 반절은
유고슬라비아 이민자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전 세계에 걸쳐서
수백만, 아니 수천만 명이 반미․반전 시위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반전 시위자들은 아직 집중화된
조직․지휘․기획 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서도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다양한 사상․이념 노선으로
나뉘어져 있으면서도 반미․반제․반전에서 일치하고
있으며, 갈수록 대규모화․전투화되어 가고 있다. 이는
거듭되는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을 통해서 미 제국주의가 갈수록
많은 자신의 매장인들을 양성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의 이라크 침공은 미 제국주의가 탐욕 때문에 벌인
결정적인 자기함정이 될 공산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의 침공은 이라크 인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아랍 인민,
나아가 이슬람을 믿는 수억 인민에게 깊은 좌절감과 분노를
심어주었고, 따라서 전쟁에서의 당장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저항과 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야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 반미․반제 정책을
취하고 있는 국가들을 공격, 그 정권을 전복시키고, 그리하여
그들 국가를 자신의 새로운 식민지로 편제시키고 싶고, 또
이번의 전격적인 ‘승리’로 그러한 유혹을 많이 받겠지만, 다른
한편에서 이번의 이라크 침공은 그렇지 않아도 팽배해 있던 아랍
인민들 사이의 반미감정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 등 친미․괴뢰 정권들의 안정을 위협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태의 추이는 두고 볼 일이지만, ‘민주
도미노’라는 이름으로 반미 정권들을 전복시키려는 미국의
공작과 친미․괴뢰 정권을 전복시키고 민족 자주적인
정권을 세우려는 아랍 인민들의 투쟁이 격돌하면서 아랍 지역에
정치적 대격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라크의 팔레스타인화가 그러한 대격변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은 지금 이라크 인민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고, 그 분노를 구조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최소한 6개월
이상의 군정(軍政)과 친미괴뢰 정권의 수립을 꾀하고 있고,
석유에 대한 지배권은 물론 ‘전후 복구’ 사업과 관련한 이권을
둘러싸고 제국주의 열강간에, 그리고 독점자본간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전리품의 분배를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간, 독점자본간의 전쟁인데, 이러한 모든 것이 이라크
인민의 이해에 반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임은 새삼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수탈 및 약탈에 대한 이라크 및 아랍 인민의 저항과
투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이라크와, 나아가
아랍 지역 일반이 반미․반제 게릴라 전장화되면서, 과거
베트남이 그랬던 것처럼, 아랍 전역이 미 제국주의의 죽음의
수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번의 이라크 침공은 미
제국주의가 추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과거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에 걸친 베트남 전쟁 때와 달리 이제 미국은,
그 군사력을 제외하고는, 결코 당시와 같은 압도적인 강국이
아니라 상대적인 강국일 뿐이기 때문이고, 미국이 대적해야 하는
범 아랍, 범 이슬람의 규모는 베트남이 비교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미․반제․반전의 규모나 정치적 성격 역시
베트남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어쩌면 우리는 역사상의 마지막 제국이
추락하는 장관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 또한 이 역사적 과정에
참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