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평
96년 한국통신노동조합을 전망한다
- 95년 임투 이후 한국통신노조의 과제
유 덕 상 (한국통신노동조합 위원장)
우리 노동조합이 지난 7월 30일 눈물로 95년 임투를 마감한 이후
어언 7개월이 지났다. 비록 95년 임투는 끝났지만 사실상 우리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임투 이후 정부와 사측은 직권중재를
무기로 계속 우리 노동조합을 옥죄고 있다.
임투에 대한 반성과 평가를 통하여 96년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도
우리 노동조합은 전임자 축소, 조합원 범위 축소, 신인사제도 등
정부와 사측의 노동조합말살이라는 시나리오에 의해 탄압을 겪고
있다. 물론 이 시나리오의 각본은 기관이 썼고 연출은
정보통신부와 사측이다. 이 각본의 핵심은 한국통신에서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하려는 것이다. 실로 가공하고 전율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정부의 노동노동조합말살 정책에서 이 사회의 우상과
거짓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무엇이 민주화란 말인가. 지금
비자금이나 5공 청산이 마치 역사적 과업처럼 과대 홍보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노동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처절하게
탄압받고 있다. 한국통신노조는 물론 최근 민주노총 간부들의
대량 구속은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를
억압하면서 어떻게 역사진보가 이루어지겠는가. 우리는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최근 기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1. 95년 한국통신 임투를 보는 하나의 시각
95년 한국통신노조 임투에 대하여 우리 노동조합 내부에서 현재
활발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여러 사회단체,
운동단체에서도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실로 95년 한국통신
임투는 이 땅의 사회과학 이론가는 물론 실천가들에게 만만찮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과연 이 땅에서 공공부문노동조합이 정부에 맞서 파업투쟁을 할
수 있는가? 파업으로 맞섰을 때 국민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임금 가이드 라인은 결국 철폐될 것인가? 그리고
한국통신 임투 패배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95년 임투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등 그 어느 것 하나 이 땅의 노동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관련되지 않는 질문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본격적인 평가에 앞서 하나의 시각에 주목한다. 95년
한국통신 임투를 실패가 아닌 ‘좌절’로 평가하는 시각이
그것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95년 한국통신 임투는
실패했다기보다 오히려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95년
한국통신 임투가 내적인 요인보다는 오히려 외적 요인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ꡔ한겨레 21ꡕ이
증언하듯이 95년 한국통신노조는 정부와 사측의 사전 탄압에
‘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좌절의 근거는 95년 한국통신
노동조합원들이 실로 자본가 정권과 전쟁을 치르듯 싸웠다는 데
있다. 이 싸움에는 대통령의 ‘국가전복세력’이라는 발언에서
시작하여 국무총리, 검찰총장, 경찰청장, 언론, 안기부, 마침내
군까지 동원되었다. 싸움의 이편에는 종교계를 비롯한 이 땅의
양심세력이 있었지만 자본가 정권의 총체적이고 입체적 탄압을
막기엔 힘이 부쳤던 것이다.
95년 임투를 좌절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문제를
호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전략․전술의 미비,
리더쉽 부족 등 지도부의 투쟁기조와 방침의 오류에 대해서 우리
내부에서 문제점들이 활발히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통신 임투는 정권의 반민주적 속성을 국민에게
폭로하였고 6.27선거에서 민자당을 패퇴케 하였다. 이어 DJ의
신당 창당, 비자금, 5공 청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국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2. 임투 이후 조직상의 문제점과 당면 과제
1)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도전과 조직의 현황
95년 임투 이후 한국통신 노동노동조합 내부에서 민주노조운동을
역류하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일시 침체된 틈을 타고 조합원 속으로 독버섯처럼 파고
들고 있다. 그것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노사협조주의의 대두
㉡ 중앙 지도력에 대한 조직적 반대
㉢ 패배주의
우리가 진정 민주노조운동을 한다면 조직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용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근거없는 비난에 대해서는 늘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되며 사실에 바탕하여 옳고 그름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2) 투쟁보다는 실리적인 운동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에
대하여
최근 한국통신노조 일부에서는 그 동안 민주노조가 투쟁은
열심히 했지만 조합원들에게 실리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현 집행부가 교섭력이 부족하여 조합원의 실리를
외면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옳지 않다.
민주노조운동이 기본적으로 투쟁을 통하여 조합원의 요구를
쟁취하는 노동조합운동이라면 가장 투쟁적인 운동이 가장
실리적인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조합원에게 실리만 제공하면 된다는
견해는 결국 실리를 포장한 ‘노사협조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노사협조주의는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운동의 방향성을
흐리게 할 뿐이다.
3) 중앙의 지도력에 반하여 중앙에서 일탈하려는 경향에
대하여
95년 임투 패배는 중앙집행부의 지도력을 상당히 약화시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조직적으로 반조직활동을 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이러한 반조직적 행위는 정부와 사측의 노골적인 민주노조
파괴공작과 맞물려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사측이
지부장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조합원들을 분열시키려는
공작을 기관 차원에서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다.
정부와 사측은 중앙집행부를 고립시키기 위해서 갖은 공작을
전개하고 있다. 지방과 지부의 애로사항을 들어준다는 핑계로
중앙본부의 지시와 정책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경각심을 잃을 때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민주노조는 세우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4) 패배주의는 민주노조 최대의 적이다
95년 임투의 좌절은 우리 노동조합에 인적, 물적으로 많은
손실을 가져왔다. 특히 40여 명에 달하는 해고자의 발생으로
노동조합의 힘이 상당히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적,
물적 손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의식의 문제이다.
패배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95년 임투 실패는 ‘결국 해도
안되더라’는 패배주의를 만들었다. 그리고 정부와 사측은
의도적으로 이것을 더욱 조장하여 노동조합을 분열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패배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모든 운동은 침체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세계운동사는 이와같은 역사적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금은 섣부른 패배주의도 어설픈
낙관주의도 배격해야 한다. 패배주의는 민주노조 운동의 최대의
적이다. 오직 과학적이고 체계있는 싸움을 준비하고
노동조합간부들의 결의를 높여나갈 때 우리의 승리는
담보된다.
3. 96년 투쟁에 대한 전망
1) 114 분할, 유지보수 분할 등 한국통신 분할론이 총선 후에
다시 대두될 것이다.
한국통신 분할론이 얼마전 일간지에 대두되자 노동조합은 즉시
비상 전국 지부장회의를 소집하여, 사장으로부터 분할은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는 않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며
노동조합을 배제한 움직임에 쐐기를 박은 바 있다. 한국통신
분할 시나리오는 정부와 공사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진행 중이고
지난 국정감사에서 사장이 이를 확인한 바 있다.
노동조합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되긴 하지만 통신분할은
노동조합의 무력화만 확인되면 언제든지 가시화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통신 분할은 공기업인 한국통신을 공중분해하여
재벌들에게 민족통신을 넘기려는 것과 다름 없다. 노동조합의
대응을 마련하기 위하여 국내외 사례연구(NTT 파견 등)와 더불어
각종 사회단체와 연대하여 투쟁할 필요가 있다.
2) 한국통신 민영화는 여전히 고용불안과 재벌의 한국통신 지분
참여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 해 나온 정부보고서나 KDI보고서, KT 이해당사자 보고서,
한국통신 노동조합 용역 결과 등에서 보이듯이 한국통신
민영화는 반드시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이다. 우리 노동조합은
재벌 특혜로 이어질 민영화에 반대하며 이를 실질적으로
저지하기 위하여 사회여론을 환기해 나갈 것이다. 노동조합의
용역결과는 96년 초에 발표할 예정이다.
3) 통신개방, 통신사업자율화, 사회경쟁 등 통신산업 구조
변화
특히 시외전화 경쟁은 한국통신 매출액을 현저하게 감소시켜
임금억제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노조 간부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요금차등을 막았으나 경영진의 무기력으로 결국 9%의
요금차등이 허용된 것이다. 이러한 요금차등은 한국통신 전체
종사원의 사기를 현저하게 떨어뜨렸다. 96년 4월말로 예정된
기본통신 개방협상(NGBT)이 진행 중이고 우리 노동조합은
통신개방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사회 여론화 시킬 것이다.
4) 한국통신 규제완화를 위해서는 ‘정투기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통신은 공기업으로서의 규제와 통신사업자로서의 규제 등
2중의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그 중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정투기법)은 악법 중의 악법으로 이
법이 우리 공사에 적용되는 한 한국통신과 한국통신노동조합의
발전은 거의 무망하다고 볼 수 있다. 예산, 인사, 임금, 정원,
업무, 서비스 가격 등 한국통신 업무 거의 모든 부분이 이 법에
묶여 있어 한국통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통신의 규제완화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사측에
기대할 수 없다면 노동조합이 주도권을 갖고 정투기법 해체를
주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회 여론 환기, 언론보도,
국회청원 등이 필요하다.
5) 96년 임투의 의의와 전망
96년 임투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가령 96년 임투가 또 다시 좌절될 것을 예상해 보자.
한국통신에서 노동조합은 실질적으로 말살될 것이 분명하다. 즉
어용이든 민주든 노동조합은 ‘노사협의회’ 수준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강력한 노동조합이 경영을 견제하지 못한다면
한국통신은 실질적으로 분리, 분할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심각한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96년 2월말까지 임금 요구안을 전국 대의원대회에서
확정한 후 교섭을 시작할 것이다. 96년 임투의 기본방향은
교섭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행하되 투쟁시기는 집중한다는
것이다. 96년 임투에서는 우리 노동조합 실정에 맞는 다양한
전략전술을 개발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쟁의전술팀을 별도로
구성 운영할 예정이다.
4. 과학적 운동을 위하여
운동은 과학이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토대(조직력)를 분석하고 분석된 토대 위에서
전략전술을 구사한다면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정확한 내외 정세분석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주도면밀한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실행한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해왔다. 시행착오를 통하여
조직적인 침체와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우리가 얻은 교훈도
많다. 아직 조합원들이 민주노조에 거는 기대가 여전하고
경영진의 무사안일과 무소신이 공사발전을 저해하는 한 조합원과
한국통신 가족들은 민주노조에 대한 소망을 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노동조합에 부여된 사명은 시대적인 것이다. 공기업인
한국통신에서 민주노조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마지막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다. 한국통신 민주노동노동조합운동의
성패는 또한 한국 노동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