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 영/ 연구위원․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미-이라크 전후 세계질서, 북핵위기 그리고 반전평화 운동
미-이라크전이 단기전으로 종결되었다. ‘우리’에겐 어쩌면
가장 원치 않았던 상황이 아닐까 싶다. 특히
반전평화진영으로서는 그래도 전쟁이 좀 더 길어질 경우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유리해지지 않을까 하는 다분히 막연한
희망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튼 미국이
설정했던 전쟁의 목표 즉 ‘정권교체’가 완료되었고, 이 점에서
미국이 ‘승리’했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승리가 중동의 평화로 이어지고 그래서 우리가 과거보다 좀 더
평화로운 세계에 살 수 있을까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로써
한반도의 핵위기가 해결되고 우리 모두 ‘자연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도 마찬가지 의문이다. 우리가 향후 예상되는
전후질서의 성격과 북핵문제의 전개방향에 더욱 예민한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향후
예상되는 국제질서의 변화추이부터 따져보자.
첫째, 가장 먼저 우려되는 것으로 이라크의 ‘발칸화’를 들 수
있다. 이라크에 대한 정권교체와 더불어 이제부터 이라크가
안정과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 보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그와는 반대로 세계는 이라크발(發) 갈등과 분쟁의 신시대로
돌입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미국의 이라크전 의도가
이스라엘 극우 리쿠드당을 중심으로 한 중동 새판짜기에 있는 한
전쟁은 이제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현 중동을 지탱해 온 ‘세력균형’을 미국의 군사력에 기초해
강제재편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추구하고자 할 때, 제2,
제3의 이라크전은 불가피하다. 시라아와 이란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둘째, 향후 유엔의 무력화, 공동화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사실 2차대전후의 국제역관계 즉 미소 양국에 의한
핵쌍점(雙占)과 안보리 5국에 의한 정치적 과점(寡占)에 기초한
유엔의 구조는 1990년대 소련 붕괴와 걸프전이후 위기에 봉착한
지 오래이다. 탈냉전기 미국의 정치, 군사적 독점구조와 2차대전
당시의 역관계의 표현에 불과한 유엔 안보리와의 갈등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미국으로서 안보리는 냉전의 유물에 불과하다.
이라크전 와중에서 당시까지 국방성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대표적 강경매파 리챠드 펄이 이라크와 함께
유엔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조롱했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면 되겠다. 마찬가지 각종의 국제법 등 국제규범은 미국의
사실적 지배력을 견제하기에 너무나 미미하다.
셋째, 이 내적인 이유야 어떠하건 파리-베를린-모스크바가
‘평화의 축’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향후
세계질서가 미국 대 비미권(非美圈), 다시 비미권은 친미 대
반미로 재편된다고 할 때, 이들 3국이 과연 미국의 전횡에 대한
힘있는 견제세력이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사실 미국의
독주는 유럽의 무기력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리고 이 사정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군사적 드라이브에 바탕하는 한 크게 변경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번 전쟁이 미래 에너지 자원의
선점을 통해 한편으로 유럽연합을,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볼 때, 양자의 연대가능성은
향후의 세계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넷째, 이번 전쟁이 사상 유례없는 전지구적 평화운동을
촉발시켰고, 또 이것이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구체적인
전술구사에까지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덕적 영향력에 기반한 국제반전운동이 미국의 군사력까지
제어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 광범위한
전지구적 반전평화운동이 미국의 정치변동을 가져올 수 있고, 또
그런 한에 있어 국제NGO에 의한 국제평화외교의 가능성마저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사실 이 평화운동이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이다.
다섯째, 알려진 것처럼 이번 전쟁은 미 국방성의, 그 중에서도
국방성에 또아리를 튼 ‘신보수주의자(neocon)’ 의 전쟁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라크전쟁은 이들 신보수에 의해 10년이 넘게
준비되고 기획된 전쟁이었다. 오직 1930년대 히틀러의
전쟁외교에서만 그 역사적 전례를 찾아 볼 수 있는 일방주의적,
제국주의적 신보수세력이, 9.11에 이어 이번 전쟁을 통해 입지를
결정적으로 강화시킨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반다자주의, 반유엔,
반국제법에 입각한 이들의 세계관은 분명 전통적 미국외교의
단순 연장에서 파악되기 어렵다. 다분히 ‘보수혁명적’
관점에서 일체의 절차 정당성을 무시한, 군사력을 통한 ‘미국의
세기’를 이들이 추구하는 한 세계평화는 요원하다. 파시즘의
변종이라 할 이 미국 신보수주의를 견제하는 과제는 이후 함께
풀어야 할 21세기 전지구적 문제라 부를만 하다.
여섯째, 지난 1990년대 미국에 의해 이식된 신자유주의는
세계도처에서 새로운 분쟁과 갈등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이는
다시 광범위한 반미정서를 확산시켰고, 또 반세계화 운동을
촉발시켰다. 신보수주의자들의 일방주의 외교가 곧바로
신자유주의와 등치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정치군사적 상부구조의 구축으로 귀결될
때, 지금의 신보수주의는 사실상 ‘무장한 신자유주의’라
부를만 하다. 그래서 향후의 세계정치경제는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에서 신보수주의적 무한전쟁으로 이행하거나 아니면
2가지가 혼합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향후 정세가 위에서 언급한 경향 내지 추이에서
자유롭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한반도 핵위기는 여전히
상존한다. 사실 우리가 이라크전에 긴급한 관심과 반대를 촉구한
것도,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라크와 북한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내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 특히 미 국방성 신보수주의자들은 북핵문제에도
이라크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이는 달리 말해 한반도에 제2차
한국전이 발발함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있어 후세인과 김정일은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은 제거되어야만 하는 ‘독재자’이자
‘악의 축’일 뿐이다. 따라서 미국의 목표는 ‘정권교체’이며,
이런 점에서 이라크와 북한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대표적
신보수 이론가 윌리엄 크리스톨이 주장하는 것처럼 양자가 처한
환경과 조건은 ‘다르다’.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더라도 조건이
다르다면 다른 수단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흔히 한국내
진보진영이 빠지기 쉬운 오류 가운데 하나는 부시 및
신보수파들을 간단히 ‘정신병자’ 정도로 취급하는 관점이다.
물론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전통적 국제관계의 프리즘으로 볼
때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을 ‘내재적’
관점에서 관찰할 때, 상황은 사뭇 다르게 보인다. 무엇보다 이들
신보수파들이 ‘현실주의자’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고전적 명제를 되풀이 하지 않더라도, 정치에
의해 규정되는 목표를 전쟁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달성할 수
있다면 신보수파들이라 하더라도 이를 마다할 아무런 논리적
근거는 없다. 그런 점에서 과거 1999년 3월 북한의 대포동II
미사일 발사를 놓고 벌어진 위기상황에서 미국내에서 1994년에
이어 재차 북폭론이 재기되었을 때, 현재 국방성 부장관이자
신보수파의 대표격인 울포위츠가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북폭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 오히려 북폭에 반대했다는 점을
상기해 둘 필요가 있다. 다음 두 번째로 현재 소위 온건파로
알려진 국무부 부장관 아미티지가 제출한 ‘아미티지
보고서’이다. 울포위츠는 당시 이 아미티지 위원회의
위원이었다. 알려진 것처럼 이 보고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경우, 미국은 북미관계정상화를 포함한 최대한의 보상을
권고하고 있었다. 단 북한이 소위 ‘금지선’을 넘어갈 경우
선제공격을 포함한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이렇게 본다면 적어도 북핵문제만을 놓고 볼 때,
미국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구분은 대단히 상대적이며, 그 구분선
역시 선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를 염두에 두면서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북핵문제
인식을 살펴보자.
첫째, 북한은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이는 그 무기의 질과 무관하게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사실의
문제이다. 이들이 비판하는 것은 과거 클린턴 당시 북한과의
제네바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협상 그 자체는 아니다. 그리고 이 오류는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일단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이라크모델을 북핵문제에 적용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제약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둘째, 100만이 넘는 북한의 지상병력이다. 마찬가지 신보수파
계열의 프레데릭 케이건이 고통스럽게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 미육군이 보유한 10개 현역 보병사단중 8개 사단이
보스니아, 아프간 그리고 걸프지역에 파병중이다. 아울러
미해군이 가지고 있는 12개 항모전투단 가운데 5개는 이미
파병중이며, 3개는 유지보수중이고, 또 1개는 배치준비중인
상태에서 현재 동원가능한 항모는 3개 밖에 없다. 이라크전이
끝나더라도, 미군 2개사단을 장기주둔시킬 경우, 휴식 및
예비사단 등을 고려할 때 실제 6개사단이 필요하다. 즉 현 미
지상군의 병력으로 더 이상의 가용병력이 없다. 이는 사실
미국이 2개의 전쟁을 수행할 병력이 절대 부족하다는 말이다.
유일한 절대 군사강국 미국의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고민이다.
셋째, 지정학적 조건으로 북한에게는 이라크에게는 없는
중국이라는 핵보유 역내후견인이 있다. 물론 중국이
무조건적으로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진 않는다.
그렇지만 북핵이 일본의 핵무장으로 나아가 남한의 핵무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중국이 압록강에서 미군과 얼굴을 맞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중국으로서는 남북한 공히 비핵국가로 남는 현재의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넷째, 미국의 동맹국인 남한과 일본이 전쟁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이다. 특히 미국의 ‘동맹국’ 남한이 전쟁에 반대하는
상황은 미국으로서는 상당히 큰 부담으로 제기된다.
다섯째, ‘자발적 인질’로서 주한 미군이다. 개전 초기 북의
집중 공격시 이들의 목숨을 보장할 방도가 없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미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는 다분히 국내 반미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이기도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주한 미군
전력의 감축은 이미 부시 자신이 집권 초 언급한 바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이라는 역내 패권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아시아의 주둔미군의 전력을 현대화하고 강화할
내적 필요성을 갖고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이 보기에도 이러한 조건하에서 현실적으로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할 때, 북핵문제는 비군사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평화적’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때 ‘맞춤형 봉쇄’ 또는 ‘공격적
봉쇄’, 경제제재, 심리전, 대량살상무기 반출 차단 등을 통한
‘정권교체’가, 전적으로 실패한 정책에 불과한 클린턴식의
‘개입’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권고된다. 이상이 북핵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신보수주의자들의 기본적인 태도이자,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담긴 의미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조건에서라면 북핵위기는 중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위기의 지속을 통해 미국은 한편으로
북한을 강도 높게 압박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남한을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핵문제보다 높은 전략적
비중을 갖는 중국견제를 위해서도 북핵위기는 활용도가 매우
높은 사안이다.
아무튼 미국 매파의 상황인식이 이렇다고 할 때, 그간 국내에
알려진 각종의 전쟁위기 시나리오는 어쩌면 대단히 과장된
남북한 동시 협박용일지 모른다. 나아가 신보수주의자들의
이러한 관점은 최근 한국의 이라크파병과는 무관한,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근거를 갖고 논의해 온 사안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정부가 주장하고 싶어하듯이 파병에 따른 외교적
성과라기보다, 미국 매파가 상당한 일관성을 보이면서
형성시켜온 자기입장이라는 말이다.
전후 국제질서하에서 다방면적, 전지구적인 군사적 긴장은
불가피하다. 9․11테러에 이어 이라크전으로 또다시
세력확장에 성공한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이 북핵문제를 놓고
파월, CIA등 전통주의자 진영과 치열한 헤게모니 경쟁을 보일
전망이다. 물론 양자간에 그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양자 모두 일정한 액센트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라크문제와는 달리 국방성 매파 역시 국무성 주도하 협상을
애써 못 본채하거나 관망하는 듯이 보이는 것도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남한의 반전평화운동의 과제는 어디에
있는가.
첫째, 남한정부의 공식적 반전입장은 전쟁 억지를 위한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확고한 반전정책을 견인하고
이를 강화시킬 과제가 제기된다.
둘째, 위기의 지속을 통한 미국의 동아시아 헤게모니 강화시도에
맞서, 반전평화운동은 한 층 업그레이드된 동아시아 평화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특히 포스트 북핵위기 까지를
내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노무현정부의 ‘평화번영’ 정책과 미 신보수파의
정권교체론은 양립불가능하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자신들의 대북정책의 하위 종속변수로 편입시키기를 원한다.
소위 ‘한미공조론’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요구를 노무현정부가
거부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바로 여기가 반전평화운동의 또
다른 개입지점으로 된다. 반전평화운동은 부단히 한반도
긴장완화와 이를 위한 대북화해 조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북폭등과 같은 열전형 위기 격화 가능성이 실제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국 신보수파가 북한의 ‘정권교체’와
‘해방’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사실
요원하다. 미국은 오히려 첨단무기 구매를 통한 대북 억지와
긴장유지를 요구할 것이고 이 때 긴장완화와 군축을 요구하는
대중적 반전여론을 형성할 항상적 준비와 계획이 요구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SOFA개정, 전시작전권 문제 등 이미 제기된
구체적 이슈들을 부단히 쟁점화, 공론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사실 평화운동은 서구의 경우 신사회운동의 쟁점이었다.
전통적 노동운동의 영역은 아니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평화운동을 소 닭 보듯 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한국평화운동이 보여준 저간의 지정체 현상을 극복하고 그
대중적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운동의 적극적
개입은 필수적이다. 평화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반전평화운동은 한국 노동운동에 새로운 도전이다.
“평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가 없이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