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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 운동의 평가와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87호
원영수


반세계화, 반전투쟁의 전개와 성격, 그리고 주체


원 영 수 ∙ 반세계화 운동: 평가와 전망

이 해 영 ∙ 미-이라크 전후 세계질서, 북핵위기 그리고 반전평화 운동

유 영 주 ∙ 반전평화와 반제-반세계화 투쟁



반세계화운동: 평가와 전망

원 영 수/ 국제기획실장






반세계화 운동1)의 서막 - 시애틀 전투

1999년 11월30일, 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세계화 시위는 새로운 세기적 투쟁과 운동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새로운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려 했던 WTO 각료회의는 시위대의 포위로 개막식도 치르지 못한 채, 회기를 하루 더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주도하는 국제기구회의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팀스터와거북이의만남”으로표현되는 시애틀전투는 미국노총 AFL-CIO의 대규모 동원으로 미국 운동사상 70년대 베트남 반전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물론, 90년대 후반 멕시코 사파티스타 봉기, 실업과 사회적 배제에 반대하는 유로마치투쟁, MAI(다자간 투자협정) 반대투쟁, 유럽차원의 EU-G8에 맞선 대항정상회의 등이 시애틀투쟁의 전사를 이룬다.

그러나 이들 투쟁이 NGO류의 시민운동, 노조 및 좌파정당 등 소수 활동가들의 소규모 상징적 캠페인에 가까웠던 반면, 시애틀 전투를 계기로 반세계화 운동은 문자 그대로 전지구적인 운동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시애틀에 이어 미국의 워싱턴(2000.4), 체코 프라하(2000.9), 이탈리아 제노바(2001.6), 바르셀로나(2002.6) 등 연이은 대규모 국제적 동원투쟁은 새로운 투쟁의 전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0년 출범한 세계사회포럼은 반세계화 저항주체들이 만나서 대안을 토론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으면서, 반세계화 투쟁의 또다른 축을 형성하게 됨으로써, 반세계화 투쟁은 진일보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반세계화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제국주의 공세의 주체들에 대한 국제적 동원타격투쟁과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토론과 논쟁의 공간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 양대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반세계화 운동의 양상과 특징: 운동들의 운동

신자유주의 공세는 전후 호황의 종결과 함께 나타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역공세로 시작되었고, 중심부 제국주의 국가들의 비호아래 국제금융기구(IFIs)와 초국적 독점자본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는 세계은행/IMF, WTO 등의 국제금융기구만이 아니라, 1995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현재 추진중인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등의 지역협정 등을 통해 보완되고 있다. 초국적 독점자본의 초과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제국주의 공세에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이 바로 반세계화 운동이다.

시애틀전투 이후 투쟁의 확산과정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반세계화 운동의 가장 일차적인 특징은 아래로부터의 폭발적 동원력이다. 이는 국가사회주의의 해체 이후 야기된 정치적 공백을 아래로부터의 반세계화 투쟁이 돌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반세계화 투쟁이 경제투쟁의 외관을 넘어 본질적으로 정치투쟁이며, 그 정치적 잠재력의 현실화가 운동에 내재한 목표임을 의미한다.

반세계화 투쟁의 또다른 특징은 광범위한 포괄성이다. 반세계화 운동은 초기의 무역-투자문제를 뛰어넘어, 노동권과 환경, 민주주의, 여성과 성적 소수자, 원주민과 문화, 종 다양성, 식량안보 등의 총체적 이슈를 포괄하며, 그 만큼 다양한 주체들과 그들의 활동을 포괄한다. 이는 기존의 계급적 모순 외에 민중의 삶 모든 영역과 부문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저항의 전면적 표출이다.

그리고 이 반세계화 운동은 이른바 지도자없는 원심적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적 동원에 참가한 다수의 활동가들은 위로부터의 위계적 권위주의에 대항한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과 탈중심성의 현상을 뛰어넘는 구심적 수렴성이 반세계화 운동의 본질적 중요성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이슈와 주체들이 공동의 적에 대한 공동의 투쟁으로 결집되기 때문이다. 아직은 운동의 초기단계인 점과 20세기 역사적 사회주의 프로젝트의 실패 등으로 인한 주체의 파편화가 극복되지 못한 점 때문에, 섣부르게 화학적 결합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어쨌든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의 투쟁과 공동의 미래와 대안을 놓고 직접 부딪히며 실천 속에서 공유할 기회를 누적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21세기 전세계 민중운동의 구심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구심력으로 인해, 반세계화 운동을 “운동들의 운동”(movement of movements)라고 하는 것이다.2)



반세계화 운동의 쟁점 ― 변증법적 진화의 메커니즘

반세계화 운동의 폭발력은 이 투쟁에 참여한 주체마저 놀라게 할 정도였다. 이 투쟁의 주역으로 참여한 활동가들도 이 투쟁의 전체적 상과 전망 내놓기를 주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폭과 범위가 갖는 포괄성과 주체 및 주제의 다양성 속에서 여러가지 쟁점들이 다양한 수준에서 제출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선정적인 쟁점은 바로 폭력의 문제였다. 시애틀에서 무정부주의 그룹에 의해 채택된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투쟁전술은 엄청난 논쟁을 촉발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본질적으로 기업화된 NGO 활동가들의 본능적 거부감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소심함 때문이었다. 투쟁이 계속되면서 정부와 경찰의 폭력은 더욱 노골화되었고, 2001년 제노바에서는 청년 활동가 칼를로 줄리아니가 살해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폭력논쟁은 도덕적 문제에서 실천과 투쟁의 문제로 발전되었으며, 비록 비폭력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술적 다양성의 이름으로 일방적 폭력매도가 동지들의 심장을 겨누지는 않게 되었다.

반세계화 운동에서 또다른 쟁점은 바로 주체의 문제, 또는 이른바 NGO의 문제이다. 운동의 초기과정에서 이슈중심의 캠페인 조직인 일부 기업형 NGO들은 반세계화 논리개발과 공간창출, 재정문제 등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지만, 운동 자체가 대중적-계급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안팎에서 강력한 비판을 받게되었다. 이들 NGO들의 반정치주의, 반위계주의는 한편에서 운동의 민주적 성격을 명확히 하는 데 기여했지만, 운동의 지도력과 책임성의 문제는 방기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은연중에 제도좌파에게 공작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기업형 NGO들이 실천적 주도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지만, 민중운동의 주도력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면서, 반세계화 운동의 주체로서 사회운동(social movement)이 일반화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운동의 성격과 목표에 관한 것으로, 반자본주의적 지향의 문제였다. 적지 않은 NGO들은 반기업 개혁노선으로 자신을 정식화했지만, 실질적 투쟁의 현장에서 반세계화는 곧 반자본주의임을 명확히 하는 흐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대항개념으로서의 지역화(localization)를 대안으로 제시하던 NGO류의 흐름이 퇴조하는 대신, 보다 근본적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의 상과 의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토론과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 성과와 가능성, ‘대안적 세계는 가능하다!’

투기자본규제를 위한 토빈세 부과를 슬로건으로 유럽의 반세계화 운동을 주도하는 프랑스의 ATTAC(투자과세 시민연합)과 진보적 신문 “르몽드 디를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의 제안으로 출범한 세계사회포럼(World Socal Forum: WSF)은 신자유주의 지배엘리트가 주도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kic Forum: WEF)에 대한 대당으로 설정되었으며, 브라질 노동자당(PT)이 집권한 지역인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리게 되었다.

2001년의 1차 포럼은 1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안적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슬로건 아래 대규모 국제행사로 진행되었고, 2002년에는 1차포럼의 성공에 힘입어, 123개국의 공식대표단 12,000여명을 포함하여 모두 6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여, 652개의 워크샵과 27개의 전체회의를 가졌다. 2차 세계사회포럼은 포럼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조하는 한편, 당면한 제국주의 전쟁공세에 맞서 반전-반제투쟁의 기조를 반세계화 운동과 결합하였다. 또한 전술적으로는 사회포럼을 한편으로 지역별, 국가별로, 다른 한편으로는 주제별 포럼으로 확산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2003년 1월에 열린 제3차 세계사회포럼은 한단계 더 도약하여, 전세계 156개국 5,717개 조직과 단체를 대표한 20,763명의 대표단, 청년캠프의 2만5천여명 등 약 10만여명 이상이 참여함으로써 사회포럼운동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가운데, 임박한 이라크 전쟁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민중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임박한 이라크 전쟁반대의 기조 속에서, 격동하는 남미정세를 반영하여 아르헨티나의 피케테로스, 비아 캄페시나를 중심으로 한 전세계 농민운동, 반자본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변혁적 좌파세력 등은 본질적으로 전쟁이 제국주의/자본주의의 본질적 측면임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제국주의 공세를 주도하는 민중의 적에 대한 저항과 반대를 핵심으로 하는 세계사회포럼은 아주 짧지만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한 축을 형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비록 “대안적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아주 온건한 슬로건이 공통의 분모일 뿐이지만, 사회포럼의 폭발적 발전과 확산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제국주의 공세에 대한 반자본주의적 대안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증명하는 셈이다.



새로운 국제사회운동네트워크와 정당배제원칙의 딜레마

3차에 걸친 세계사회포럼 과정 속에서, 포럼의 공식적 체계와 “헌장”이 갖는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조직적 노력이 진행되었다. 브라질의 CUT/MST와 프랑스 ATTAC, 세계여성행진 등의 그룹이 제출한 사회운동네크워크 제안이 세계사회운동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포럼이 단순히 모였다가 흩어지는 일회성 행사를 탈피하여, 사회운동들의 정보교환과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사무국의 구성을 통해, 일정한 조직적 틀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러나 사무국 구성은 일차적으로 브라질 사회운동에게 위임되었으며, 앞으로 6~10개월 시기에 다양한 차원의 토론과 의견수렴을 통하여 새로운 조직구도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열린 공간”으로서의 사회포럼의 기본 성격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합의가 존재하지만, 정부와 정당 배제의 원칙은 여러 수준에서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받았다. 1차포럼 때부터 프랑스 사회당을 비롯한 제도좌파의 개입시도가 정당배제 원칙의 근거로 제시되었지만, 이것이 변혁지향적 비제도좌파의 공식적 참여를 막는 기제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일종의 정치적 타협을 통해, 사회운동의 명의로 변혁적 좌파정당의 포럼참가는 가능하지만, 유럽사회포럼의 경우와 같이 비제도적 좌파세력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존재하기에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특히, 조직위를 비롯한 주도세력의 경우 암묵적으로 제도정치권, 즉 브라질 PT(WSF)와 히우그란데두술 주정부, 이탈리아 DS(ESF)와 피렌체 시정부 등의 실무적-물리적 지원에 상당히 의존하였고, 결과적으로 이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반면 비제도적 좌파의 경우, 적극적인 참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주변화 되는 경향 때문에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비제도 좌파의 경우도 일정한 내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문제제기에만 그치고, 구조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주체적 조건 창출을 위한 노력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9․11테러와 국제적 공안정국

― 반세계화 운동의 반전운동으로 성장․전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에 대한 알카에다의 테러공격은 공세적 국면을 주도하던 반세계화 운동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그해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는 시애틀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었기에, 따라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반세계화 운동내 각세력의 응집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9.11 테러가 특히 미국과 서유럽의 반세계화 운동에 미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다.

더욱이 테러에 대한 무차별적 보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공습은 부시정권의 광란이었지만, 전세계 노동자․민중운동은 이를 대중적으로 저지할 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으며, 급속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극히 상징적인 일부 NGO의 항의행동과, WTO 반대 국제행동이 조직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도전은 응전을 부르는 법이다. 9․11 테러는 심각한 정치적 타격과 함께 투쟁력의 급속한 감소를 가져왔지만, 대다수 활동가들 사이에서 반세계화 투쟁이 반제국주의-반전투쟁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 결과, 2002년 1월 브라질에서 열린 제2차 세계사회포럼은 포럼자체의 전반적 계급화 분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의 슬로건과 함께 “제국주의 반대, 전쟁반대”의 슬로건을 주슬로건으로 제출하였다.

이후 부시-블레어의 전쟁공세의 가속화에 맞서, 2002년 6월의 바르셀로나 동원은 반세계화투쟁의 부활을 알렸고, 그 뿐 아니라, 2002년 4월 베네수엘라의 쿠데타에 대한 역쿠데타,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의 총파업과 영국의 공공부문 및 소방노동자 파업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투쟁동력을 고양시켰고, 특히 11월의 유럽사회포럼은 좌파의 주도로 올해 2월의 국제반전투쟁의 날을 제기함으로써 반세계화 투쟁의 반전투쟁으로의 전화를 주도하였다.

2002년 런던과 피렌체의 반전투쟁 고양은 2003년 2월 15일의 사상최대 국제적 반전투쟁으로 연결되었고, 비록 영미 제국주의의 이라크 전쟁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저항의 축으로 기능하였다. 이런 면에서, “운동의 운동”이라고 불리는 반세계화 운동은 모든 부문운동의 국제적 결집점으로서 그 역할을 다시 한번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일국운동과 국제운동

반세계화 운동은 일차적으로 국제금융기구들을 대상으로 한 투쟁이었기에 막대한 국제적 파급력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각국의 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각종 국제회의가 열린 국가는 그 동안 고립분산적으로 존재했던 활동가들과 운동을 한데 모으고,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상대적으로 무기력했던 각국의 운동을 자극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의 하위파트너 역할에 만족했던 유럽의 노동조합들이 변하고 있다. 작년 4월 노동법개정에 반대하는 이탈리아 노동조합의 30만 로마시위, 5월의 스페인 총파업과 그리스 총파업, 지난 7월 영국 공공부문 파업 등은 한편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역학에 자극받은 투쟁임과 동시에 위축당한 반세계화 운동이 새로운 공세를 준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투쟁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호주에서 진행되는 좌파들의 정치적 통합 프로젝트 또한 반세계화 투쟁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압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 결과 초기에 반세계화 운동을 일부 NGO들의 캠페인으로 폄하했던 비제도적 좌파세력 역시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페루 등 남미지역에서의 노동자-민중투쟁 역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반대투쟁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무기력했던 노동자-민중운동은 도움의 손길을 자처했던 바로 그 세계은행과 IMF가 경제위기와 실업, 빈곤의 주범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강고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국제적 동원-타격투쟁은 일국적 수준의 투쟁을 총화하는 계기이자, 이후 투쟁의 고양과 확산의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2001년 12월의 아르헨티나 봉기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의 총체적 파산을 의미함과 동시에, 페케테로스 실업자운동, 바리오 주민회의운동, 노동자 공장점거운동 등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촉발하였다. 이와 같은 투쟁들은 남미 수준의 FTAA 반대운동, 반세계화 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인식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적 투쟁의 일국적 투쟁과의 유기적 결합의 전형을 창출하고 있다.



반세계화투쟁의 전망과 과제

전체적으로 보아 반세계화 운동은 9․11의 충격을 돌파하고, 전세계적 차원의 반전-반제국주의투쟁으로 확장하여, 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공세에 대항하는 유일한 대항축을 구축하였다. 비록 이라크 침략전이 조기에 종결됨에 따라, 국제적 반전운동도 소강국면에 들어갔지만, 반세계화 투쟁은 동원력을 재정비함과 동시에 일국운동과의 유기적 연관을 더욱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자면, 반세계화 운동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반자본주의적 지향을 강화함으로써, 운동 자체의 정치적 발전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제도좌파의 파산으로 창출되는 정치적 공백 속에, 노동자․민중세력의 정치세력화가 긴급한 정치적 과제로 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세계화 운동은 이를 강화하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반세계화 운동 자체는 최근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주어진 정치경제적 역관계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상호작용 가운데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보장된 미래는 없으며, 반세계화 운동의 성장과정 자체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비제도적 좌파의 과제는 주체형성의 관점에서 대중적 반세계화투쟁과 정치세력화의 과제를 정치적으로, 또 창조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반세계화 운동의 변증법적 발전과정 내에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분화와 그에 따른 논쟁과 사상투쟁을 촉발할 것이며, 이는 새로운 주체형성 과정에 다름 아니다. 

한/노/정/연


1) 반세계화 운동(anti-globalization movement)은 가장 일반적인 용어이지만, 전지구적 정의운동(golbal justice movement) 또는 전지구적 정의와 연대운동(global justice and solidarity movement) 등으로도 불리지만, 명백한 합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이름 자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함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반세계화 운동(반지구화 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2) 반세계화 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이에 대한 이론화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는 이론화의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일정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선도적인 시도들 가운데 하나가 신사회운동론(new social movement theory)의 틀에 입각한 이론화인데, 이는 기존의 구좌파적 계급운동과 달리, 문화 및 정체성(identitiy)를 강조한 1960-70년대의 신사회운동의 연장선에서 반세계화 운동을 파악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반세계화 운동의 주체들에게서 표현되는 반권위주의, 반위계주의, 반정치주의, 문화 및 정체성 중심주의, 원심적-수평적 네트워크 조직론 등의 현상에 주목하는 것이지만, 반세계화 운동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현재 반세계화 운동의 정치적 지도력이 일부 NGO들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하에서 분산되어 있지만, 실천적 투쟁의 누적과 주체형성 과정을 통해 형성될 정치적 지도력의 상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또한 반세계화 운동의 구심적 수렴 메카니즘이 신사회운동의 토대가 되었던 개인주의적 파편화를 극복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점도 놓치고 있다.


2003-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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