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련 사건과 국가보안법
박 용 범
서울대 법학부4년
한노정연 ꡔ자본론ꡕ 수요반
보건의료단체도 이적단체라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 9일 일본 방문 중 일본 공산당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 말이 비록 진심일지 모르겠으나
현행의 국가보안법 아래에서는 결국 위선이나 기만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판결이 최근에 나왔다.
지난 8일 서울지법 형사재판부는(재판장 황찬원)은 보건의료의
공공성 확보를 목표로 활동을 한 진보적 보건의료단체를
보건의료단체로서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단체로
인정한 놀라운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진보와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운동연합’(이하 진보의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이
단체에서 활동했던 권정기(전 일산보건 소장, 전 대표),
이상이(제주의대 교수, 회원) 두 명에게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 등의 혐의로 각각 징역 1년, 자격 정지
1년, 집행유예 2년과 징역 10개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은 다시금 우리 법원의 사고가 냉전,
반공의식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과 함께 21세기 ‘참여정부’의
시대에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의 반인권, 반민주의
악법이 민중의 정당한 생존권 확보와 사회 진보를 위한 투쟁의
발목을 잡을 것임을 일깨워 준다.
이번 판결의 부당성
이 사건은 재작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당시 사회주의 혁명을 선동하는 사상학습을 진행하고, 1,300
여종에 달하는 이적 문건을 제작, 배포하였다는 혐의로 진보의련
회원 8명을 연행하고 이중 네 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
하지만 당시 진보의련은 조직 내부의 문제로 이미 활동을 멈춘
상태로 이 사건은 정권 말기마다 되풀이되어온 수구세력의
도발에 의한 무모한 조작사건으로 여겨졌다. 결국 재판부 역시
두 번의 구속영장 신청을 잇달아 기각함으로써 이 사건은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구성혐의에 대한 구속 수사의 관행을
파기한 최초의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재판부가 두 번이나 구속 영장을 기각한 이
사건을 불구속 상태에서 계속 수사하여 작년 1월 30일 권정기,
이상이 2인에 대해 공소장이 발부했으며, 올해 6월 4일 재판부가
이 두 명에게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이 구태의연한 코메디 극은
갑자기 비극으로 돌변해 다시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재판부의 판결에 따르면 진보의련은 우리 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로 규정하고 회칙에 보건의료의 사회화와
반자본 진보노선을 명확히 하는 등 ‘사회주의 혁명의 수행을
통하여 부르주아 현정권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을
수립한 후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추구’하였으므로 이적단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먼저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국가의 정책과 이념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견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냐고, 왜 국가가 개인의 사상을 함부로 재단하여 법적
처벌의 근거로 삼으려고 하느냐고 말이다. 아니면 회원 30명에
실제 활동인원 10여명의 공개단체의 사상과 활동이 적어도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일으킨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결국 이러한 판결문은 국가보안법이 국민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마저
위태롭게 하는 악법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앞서 과연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대상이나마 제대로 파악하였는지도
극히 의문이다. 실제 진보의련 구성원들 사이에는 사회변혁의
방향에 대한 통일된 합의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회칙 어디에서도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도 않고, 재판부가
주장하는 혁명 노선과 조직 노선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재판부는 보건의료의 사회화와 반자본 진보 노선이라는 회칙을
들어 진보의련이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이적 단체라
판단하고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보건의료를 향유할 수 있게
하자는 ‘보건의료의 사회화’라는 주장이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곧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건의료가 소수의
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법원이 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반자본 진보 노선’에
관하여는, 우리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국민의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해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 나을지 자본의 논리에
반하는 길을 따르는 것이 더 나을지 재판부에게 되묻고 싶다.
오히려 진보의련이 주장해 왔던 공공의료의 강화, 의료보험
통합, 의료보험료 인상 반대, 의료보험 본인 부담 인하 등은
모든 민중의 생존권이 냉혹한 경쟁의 논리에 맡겨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민중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더욱 그
중요성이 커져가고 있는 것들로서 사실 현 정부의 보건 의료
정책의 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밖에도 이상이 씨의 경우 1998년 5월 집권여당에 의료정책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진보의련의 활동에 사실상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 2000년부터 활동을 정리하고 2002년 초
해산한 단체에 대해 2003년 6월 들어 이적 판결을 내렸다는 점,
80년대 후반에 발표된 글들을 모아놓은 자료집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의 제작, 배포 혐의를 적용했다는 점
등을 놓고 볼 때, 과연 우리의 재판부가 권력의 자유로운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스스로가 내세우는 재판부의
존립근거마저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사건은 사회의 모순의 해결과 진보를 위해 투쟁하는
일꾼들을 ‘빨갱이’로 몰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던 과거의
악습이 다시 반복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보건의료의 기회조차 평등하게 돌아오지 않는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에 대해 국가보안법이라는 반인권,
반민주의 악법을 휘두른 이번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지닌 인권
유린적 구조에 대한 재판부의 무관심, 과거 재판부가 민주화
과정에서 해왔던 역할에 대한 무반성, 재판부의 시대착오적
냉전의식과 레드 콤플렉스, 권의주의를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변해가는 정세와 재판부의 초지일관
최근 NEIS 논란, 5․18 한총련 시위 이후 한총련에 대해
달려진 정부의 태도, 경제 자유구역법 논란, 업무 복귀 명령권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에 대한 검토, 경찰청장의 최루탄 사용
발언 등등을 놓고서 노 대통령이 취임 100일 만에 그나마
개혁적이고 탈권위적이던 그간의 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때맞춰 나온
진보의련에 대한 이적 판결 역시 최근의 뒤바뀐 정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의문에 답하려면 우선 법원이 언제 국가보안법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적이 있었는가를 따져 보아야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판단으로는, 우리 재판부야말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시종 초지일관한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변화하는 정세에 대응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고 본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중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 가장 논란이
많고 이번 진보의련 사건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국가보안법 7조
1항, 5항에 대해 1990년 한정합헌판결(89 헌가 113호)을
내림으로써 일찍이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을 잠재운 바 있다.
그리고 1991년 국가보안법 개정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는 7조에 한정하여 말하자면,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한 여섯 차례의 계속된 위헌 소송에서 합헌, 한정 합헌
또는 각하 판결로 일관하였다. 한편 헌법 재판소는 국가보안법
7조 1항, 5항에 대해 한정합헌 결정을 내린 90년의 그 판결에서
5항의 이적표현물의 이적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실질적으로
해악을 줄만한 위험성’이라는 법리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1992년 3월 31일 판결(90도 2033)에서 5항의 이적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당시의 이회창 대법관이 제시한 ‘구체적이고
가능한 위험’이라는 법리를 뒤로 한 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면 이적표현물이라는, 애매하고 법관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다분한 법리를 채택하였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상의
이적성을 법관의 주관적인 느낌에 의존하는 이러한 고무줄
잣대를 통해 자의적으로 평가해왔으며 이번 진보의련 사건의
판결문 역시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라는 표현을 명시함으로써
법관의 주관적 느낌이 이적표현물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현재 재판부의 태도는 이 땅에서 진보를 바라는 세력은
누구나 국가보안법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재판부의 이러한 태도로 비추어 볼 때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김대중 정권 때와 같은 공안 정국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만이 대안이다!
지난해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혀 수구 세력의 색깔 공세에
시달린 바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은 문명국가의
수치스러운 제도”이며 “오랫동안 남용돼서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것을 폐지하지 않고서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다.(오마이 뉴스 2002년 2월 20일). 그러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5월 1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간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주장과는 달리 대체입법을 제정하겠다는 변화된
태도를 보여 이를 각 일간지가 크게 보도한 바 있다.(프레시안
2002년 5월 14일). 강금실 법무부 장관 역시 판사, 변호사 시절
국가보안법 7조가 위헌이라는 소신을 밝혔었다. 그러나 법무장관
취임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는 종래의 소신과는 달리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개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북한
핵문제 등 여전히 남북대결 상황이 현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사정을 두루두루 고려해야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국보법을 함부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한겨레21.
2003년04월04일 제453호), “국보법 폐지론이 원칙적으로는 나올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폐지론이 실익이 없다. 논쟁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국가보안법 기결수가 12명이고, 미결수가
스물 몇 명이다”(오마이뉴스 2003년 4월 9일). 등의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강금실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 가는
것이다. 핵심은 국가보안법 수감자가 몇 명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상 이번 진보의련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진보적인 사회운동 세력들이 언제든지 법관의
자의에 의해 재판정에 설 수 있으며, 그때마다 한 인간의 사상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현존하는 이상 비록 직접 그 법에 의해 처벌되지 않더라도
사상에 대한 무의식적인 통제와 자기 검열의 메커니즘이 확산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것은 인간의 내면을 황폐화시키게
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 법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지나치게 다의적이라 근대 형법의 기본 원리인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도 아니고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더라도 현행형법이 국가보안법의 기능을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리고 유엔 인권위원회가
국가보안법의 단계적 폐지를 권고했기 때문은 더욱 아니며,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 혹은 적으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의 헌법적 근거였던 헌법 제3조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島嶼)로 한다”라는 조항이 남북
관계의 진전과 함께 사문화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사상과 양심을
법으로 재단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어떠한 정치체와도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보안법은 48년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을 본받아 제정된 이래로 민중의 저항을 억누르고
친미, 반공, 반통일의 정당성 없는 지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악법이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대체 입법이나 일부
독소조항에 대한 폐지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전면적인 폐지만이
대안이다.
노무현 정권은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역사적인 요청에 대해
분명하게 답하여야한다. 노무현 정권이 이에 답하려 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와 민중이 답할 수밖에 없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