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골격계 투쟁, 혼란을 넘어 세상을 엎자!
김 인 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장
근골격계 직업병을 고리로 한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현장에서는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전술과 그 준비에 대한 많은 논란과 고민이 돌출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자본의 흐름도 만만치는 않아 법적인 개입부터
시작하여 각 단사별로 진행되는 조사사업과 검진 방해,
집단요양을 준비하고 있는 현장 노동자들을 회유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고, 한편으로 합리적 노사 문화를
내세우며 이 투쟁의 확산을 막고 근골문제와 노동강도의 문제를
자본의 통제하에 두려는 책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18일 민주노총 주최의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확대를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많은 현장 활동가들은 논란이 되던
근골사업의 쟁점들을 토론하고 하반기 이 투쟁의 전국화를 위한
민주노총의 대책을 촉구하였으며, 이에 따라 최근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본부’의 구성을 결의하였다. 지금, 자본에 맞서
98년 IMF 이후로 지속적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를 막아낼 적극적인 전술로서의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현장에서 죽어가고 골병들어
가는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막아내고 신자유주의를 분쇄하기
위한 전국적인 흐름의 투쟁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이러한
투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기 진행된 조사 및 투쟁과정상의
쟁점들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불명확한 입장과 안일한 태도는 이 문제를 자본의 포섭에 두게
하는 것이며,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살맛나는
일터는 더욱 요원한 일이 되는 것이다.
1. 자본과의 전면전! ‘노사공동’은 없다!
근골격계 투쟁의 가장 중대한 교란 요인은 투쟁의 시작 전에
확립되어지는 노사공동프로그램 합의이다. 이미 주지하다시피
근골격계 직업병의 근본원인은 노동강도의 강화와 현장통제이다.
또한 자본은 이 문제를 포섭하기 위한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 노사공동의 프로그램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사가 합의해야 할 것은 최종적으로
작업환경(개별 및 집단)의 변화와 노동강도의 완화이다. 진단과
평가의 방법을 굳이 합의할 필요가 없으며 투쟁주체의 관점에서
진단과 평가를 진행하고 이것에 근거한 합의만이 의미가 있다.
노사공동프로그램의 함정은 원인, 설문, 검진, 현장조사, 질환자
관리, 작업환경 개선, 현장작업환경 개선단위 등 모든 것이 일괄
합의된다는 것이며, 전 과정의 합의는 후 과정의 합의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므로 인해 역동적이고 탄력적인 현장 투쟁 및 활동을
제약하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자본의 핵심을 파고들어야할 이
투쟁을 기존 노동조합의 산안활동처럼 민원 해결사업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매우 높다.
대공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노사공동 사업에 의한
근골격계 투쟁은 이미 그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노사
공동으로 조사와 검진이 이루어진 H사나 노동부 명령에 의한
임시건강진단을 노사합의로 진행한 D사의 경우 근골격계
질환자에 대한 확인이후에는 이들의 자유로운 요양조차 제한
받고 있다. 요양을 위해 노동자를 현장에서 빼는 것은 근골격계
직업병의 규모로 봤을 때 자본의 생산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당장 치료받아야 할 요양대상자인 노동자들이
휴업상태로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근무 중에 치료를 한다거나
라인별로 적정인원을 배치하여 돌아가며 요양에 들어간다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노사공동프로그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준비되지 못하고 철저히 공유되지 못한 사업은 노조의 ‘회사
봐주기’에 의해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노조 중심으로
근골격계 질환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P사의 경우 집단요양
전에 사측과의 합의를 통해 원래 계획되어 있던 인원의 일부만이
실제적인 요양에 들어가고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는 추가 검사를
한 후 결정하기로 하였으며 근골격계 직업병의 대책에 대해서도
인간공학적 개선에 대한 일부 합의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노사공동프로그램에 의해 산재처리를 할 것인지 공상처리를
할 것인지조차 노사가 ‘합의’하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H사의 경우에는 당장 치료가 필요한 요양대상자들을 모아 놓고
산재처리를 할 것인지 아니면 공상처리를 할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실제로 58명의
산재요양대상자중 10명을 공상으로 처리하기로 하였다. 이는
명백한 산재은폐이다. 또한 근골격계 직업병이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점점 치료가 불가능한 퇴행성 변화를 동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회적인 치료에 그치기
마련인 공상치료는 노동자들이 아플 때 언제든지 쉴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근골격계 직업병의 예방을 위한 작업환경 개선에
있다. H사의 경우에 근골격계 직업병의 실제적인 원인이 되는
집단적 작업환경(노동시간, 물량, 고용형태, 신공정 도입,
다기능화 등)의 개선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태로 개별적 노동환경(중량물, 작업자세, 공구 등)의 개선에만
합의하고 있다. 이러한 국소적인 합의는 아픈 노동자들이 쉬고
난 후 통증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작업에 다시 복귀하였을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을 간과하는 것이다.
또한 사측에게 ‘우리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대비책을 충분히
세웠다’는 어설픈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의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일부의 원인들을
개선한다고 하여 직업병의 행렬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측중심의 근골격계 질환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K사의
경우 요양이 필요한 노동자들이 개별적인 치료를 받으며 여전히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비용을 사측에서 부담한다고는 하나
결국 노동자들은 직업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산재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으며 스트레칭이나 운동 등의 미온적 대처로 만족하고
있다. 실제로 구조조정이후 강화된 노동강도와 비정규직의
전폭적인 도입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자본에 의해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K사의 경우
실제로 채용 전 신체검사에서도 근골격계에 대한 검진을
진행하고 있으나 이는 건강한 노동자만을 고용하기 위한 ‘사전
거르기 작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위의 의견에 대해 ‘노동조합의 조직성격상
최종적으로는 노사합의가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려하는
것은 노사공동프로그램이 제도화를 허울로 투쟁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공동프로그램이 없다하여도 투쟁의 성과로
국면마다 합의의 성과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근골격계 직업병을 매개로 한 노동강도 강화
저지투쟁에서 원칙적으로 노사 합의란 있을 수 없다. 이 투쟁은
근본적으로 자본 대 노동의 전선을 긋게 되는 것이며 자본이
가지고 있는 현장의 통제력을 노동자가 가져가겠다는 적극적인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에 노사가 합의를 한다는 것은, 투쟁의
근본적인 목적을 망각한 것이며 기존의 산안사업처럼 물타기와
제도화로 그치고 현장 노동자들은 더 이상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2.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사회적 치료가 필요하다.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검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그
분류기준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사업장 검진인 일반건강검진과 특수건강검진의 분류형태를
도입하는 경우가 일부에서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기존의
검진체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분류방식이다.
일반검진의 경우 정상자를 A, 요주의자를 B, 요관찰자를 C,
유소견자를 D로 구분하고 있으며 요관찰자의 경우 운동 및 생활
습관 변경 등의 건강관리를 권하고 요주의자의 경우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고려하게 하여 추적관찰이 가능하게 하며 유소견자의
경우 적극적인 치료를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혈압,
당뇨, 간질환 등의 만성병과 관련된 개인적 치료에 대한 것이다.
특히 특수건강검진의 경우에는 과거 B등급의 판정이 있었으나
이의 관리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면서 B등급으로의 분류는
사라졌다. 즉, 이전의 특수검진에서 판정을 하던 의사들이
정상은 아니면서 유소견으로 등급을 주기를 주저하는 경우에 B
등급 판정을 하였다. B로 판정을 할 경우 직업성인지
비직업성인지에 대한 판단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악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문제가 되어 특수검진에서 B등급은
없어졌다. 이러한 구분은 의학적 치료중심의 기준이다. D로
판정된 경우에는 병원을 방문하여 더 검사를 하고 확진을 받은
후 적절한 의학적 치료를 받고 작업전환을 하라는 것이다. C의
경우는 아직 질병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위험하니 개인이
정기적으로 추적검사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수치에 의한 기계적인 구분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며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현 등급체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삶을 실제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의 일반검진이나 특수검진 체계로서의 증상자
및 유소견자의 구분은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의
치료권을 제한하는 조처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 중독성 질환이나
재해성 질환과는 달리 만성적이고 누적된 손상에 의해 발생하는
근골격계 직업병의 특성상 이러한 엄격한 기준에 의한 질환자의
구분과 이에 따른 사후대책의 적용은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노동과정 자체에 그
원인이 있는 근골격계 직업병과 같은 작업관련성 질환은 다른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실제로 노동부 명령에 의해 임시건강진단을 시행한 한 사업장의
경우 검진대상자를 A, B, C, D의 네 등급으로 분류하였으며
증상이 있고 심지어 질환명도 있는 B, C 등급 조합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D 등급을 받고 입원한
환자들도 사내 재활센터 통원치료를 강요받고 있다. 이는
근골격계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를 낙인을 찍어 자본의 관리하에
두는 것이다. 물리치료실 사용이나 잔업·특근 등이 자본에 의해
엄격히 감시받고 있다. 또한 실제로 질병명이 있는 B, C의 경우
의학적으로 치료할 만한 질병이 없다는 이유로 ‘환자’가
아니라는 반대의 낙인을 찍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이유에 의해 발생하는 근골격계 직업병의 특성상 의학적
치료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하는 등의 의학적 치료뿐만이 아닌 노동환경과
노동과정의 개선을 통한 사회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암암리에 무시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건강검진상의 분류체계와는 다른 기준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환자’와 ‘환자가 아닌
자’로만 나눌 수 있다. 즉 하나의 진단명이라도 나오는
노동자들의 경우 휴업 중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진단명을 붙일 수 있는 노동자인데 쉬면서 치료를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검진결과 진단명이 불명료한 경우나 증상이 심하지 않아
질환의 가능성이 낮은 경우, 본인은 증상을 호소하나 명백한
진단명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의학적으로는 환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잠재적 환자군이며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작업환경개선대상자로 분류하는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는
주관적인 증상이 있으나 간헐적이고 의학적인 치료가 시급히
필요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노동조건에서 방치될 경우 멀지 않은
시기에 ‘요양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합한 ‘치료’는 현재의 노동환경을 시급히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력을 확충하고 물량을 감축하는
한편 라인속도를 줄이고 휴게시간을 확보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일상적인 태업투쟁을 진행하는 한편 태업투쟁의
전술로서의 물리치료실 이용이나 체력단련 등을 배치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치료’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가혹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직업병의 ‘잠재적
환자군’이다. 따라서 사회적 의미의 치료는 현장 전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3. 자본의 이데올로기, ‘근무 중 치료’는 환상이다
근골격계 직업병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장시간 노동과 빠른
라인속도, 이에 따른 빠른 반복 작업, 그리고 현장통제와 신공정
도입, 고용불안정 같은 것으로 인한 직무스트레스이다. 따라서
가장 일차적인 치료는 작업장에서 이러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원인이 되는 균을 찾아 죽이는 약을
먹고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먹지 않게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신종 전염병인 근골격계 직업병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노동과정으로부터 환자를 일단 빼내는 것이 일차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치료 대상자를 휴업 치료와 근무 중 치료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정확한 구분은 치료가 필요한
대상자와 치료가 필요 없는 대상자로 구분하는 것이다. 근무 중
치료를 하라는 것은 마치 전염병이 창궐하는 지역에 들어가서
오염된 물과 음식을 먹으면서 적당히 손 씻고, 세수를 잘 하면
전염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근무 중 치료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근거로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꼼꼼히 살펴보면 병의
근본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이며 또한 그 동안
진행되어온 공상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근무 중 치료를 통해 작업과 괴리되지 않게 함으로써 비교적
경미한 질환자의 작업 복귀를 수월하게 한다는 논리의 배경에는
근골격계 직업병이 휴식을 취한다고 하여 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업 복귀를 더디게 한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얼마나 휴업치료를 할 경우에 복귀가 얼마나(!) 더
어려워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유추하는 것은 자본가 집단이 오랫동안 노동자에게 바가지 씌워
온 책임논리인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되뇌이는 것에
불과하다.
근골격계 직업병과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근무 중 치료 제도를
도입하면 조기 발견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조기 발견이라는 것은
노동자가 아프다고 느낄 때 아프다고 바로 얘기하고 적당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현장의 분위기가 마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근무 중 치료는 공상 신청하면 다 들어주고 사내
의료기관도 있는데 그걸 왜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냐는 자본의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자본의 통제가 절대적인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자율적 의지에 의한 치료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근무 중 치료를 결정하는 주체가 과연 누군지에 대한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노사합의에 의해서 시행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과연 아플 때 아프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내 물리치료실이 있는 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인터뷰는 이러한 근무 중 치료에 대한 문제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4년 전에 사내 물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만만치
않더라구요. 왜냐하면 그날 사고자가 많으면 못갑니다, 못
가죠... 결근자가 한 명 있으면 조장이 한명이 땜방해야 하니깐
사실적으로 못 가는거죠. 물론 무시하고 가면 되긴 되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지 현실적으로 어렵죠. 눈치가 보이거든요...
사실 자리를 비게 되면 다른 사람들 화장실도 급한데 화장실
보내줘야 되는데 못 보내주니깐... 반원들한테 미안하죠.
근무 중 치료의 결정은 결국, 산재 요양을 돌입할 수 없는
수많은 진입장벽을 회사에게 설치해주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현재 산재보상제도에 포함되는 요양이 아니기 때문에
산재 은폐의 가장 훌륭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미 노사가 합의까지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근무 중 치료를 주장하는 주체들의 경우 일정기간 근무
중 치료를 해서 치료가 되지 않을 경우 산재요양으로 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이고
이상적인 희망일 뿐이다. 자본이 노리는 것은 치료가 되든
안되든 산재 요양으로 돌입하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노사 합의로 말이다. 다음의 예를
살펴보면 근무 중 치료라는 것이 실제적으로 노동자들의
산재요양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손목이 아파도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으면 나중에 산재
내기가 힘들잖아요. 보통 보면 산재 내기가 힘들잖아요,
회사에서 안해주고… 그러니깐 일반치료 병원진료카드가
작성되어 있으면 '저번에 아픈 사람인데 왜 산재처리를 하느냐'
그렇게 말합니다. 통상 관례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어요. 주변
동료들도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구요. 근골격계 직업병 말고
다른 것들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근무 중 치료를 하면 작업환경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인가? 이론적으로 구성해보면, 일정 수 이상의 근무 중 치료자
발생 → 작업환경 문제점 평가 → 개선 실행이라는 과정이
작업환경 개선 효과를 유발하는 기전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근무 중 치료자 수를 줄이거나 늘지 않도록 한다면,
작업환경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역관계를 만들 수 없다면
불가능하게 된다. 특히 일정한 라인에서 동시에 근무 중
치료자가 회사의 관리체계를 극복하고 발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노 갈등과 회사의 통제, 관리자의 위계 등으로
오히려 근무 중 치료가 적정 수로 통제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근무 중 치료를 시행했었던 D 사의 경우 기간의 근골격계
사업 평가서는 근무 중 치료로 인하여 생긴 문제들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제일 심각하게 발생한 것은 근무 중 치료방법에 대한
이견들이었다 … 근무 중 치료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됐고,
1개월 후 재평가를 통해 요양신청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근무 중 치료를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간에 불신이 서서히 발생하게
되었다. 근무 중 치료자들은 작업과 치료를 동시에 진행해서 큰
효과도 없는 것과 치료를 받지 않는 조합원들의 따가운
시선속에서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며 치료를 했고, 또한 처음
실시하는 치료라 사측의 눈치도 보아야 했다. 치료를 받지 않는
조합원들은 근무 중 치료자가 아프다면서 잔업특근을 하며 일을
많이 할 수 있느냐며 불만을 토로했고, 또 근무 중 치료가
자신들이 보기에는 명확한 기준도 없이 아프다면 모두 선정되어
환자가 아닐 수 있다는 불만도 많았다.
결국 근무 중 치료는 현재와 같이 자본의 노동에 대한 통제가
극에 달해있는 사회에서는 원칙적이고 주관적인 희망의 표현일
뿐이다. 그것의 본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자본은 이 이론을
이용하여 골병에 걸려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며 현장의 노동자들은 그러한 통제와
구조조정하에서 더 이상은 아파도 아프다고 얘기 할 수 없게 될
뿐이다. 근무 중 치료는 본질적으로는 생산성 유지를 위해
치료·보상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통제하는
도구이다. 즉 회복을 위하여 휴업치료에 돌입하는 인력은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생산력 차질로 나타나고 따라서 근무 중
치료는 노동 능력이 남아있는 한 최대한 일을 시키고자 하는
자본의 이해관계를 현실화시키는 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대규모 집단요양투쟁은 근골격계 직업병문제를 사회화시키고,
이를 통해 현장 투쟁력 복원, 노동강도 완화, 현장 통제력
쟁취로 나아가고자 하는 전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의
성과를 성급하게 근무 중 치료 등 노사공동관리 체계로 매듭짓는
것은 근본적 해결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다. 또한
“휴업치료가 능사는 아니다”는 식의 논리는 “파업은 곧 노사
모두의 파국”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투쟁의
의의를 깎아내리고 투쟁력을 분산시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된다.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들은 무조건 휴업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자본의 상황을 봐주거나 생산량을
걱정해주는 것이 노동의 고민거리는 아니지 않는가? 질병이 있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치료권을 자본의 상황을 적당히 봐주느라
제한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의학적인
질병이 나오지는 않지만 증상이 있는 노동자들은 근무 중
치료라는 자본의 관리가 아닌 작업환경 개선이라는 노동자들의
현장 통제와 감시 속에서 치료 되고 예방될 수 있는 것이다.
4. 이제 현장에서 노동자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자!
노동강도 평가방안은 육체적 작업강도에 대한 생의학적 접근과
집단적 노동환경의 변화와 노동강도 강화기전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으로 나눌 수 있다. 노동강도 평가를 전자로 국한시키거나,
이것이 실제 현장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노동강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이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노동강도’라는 것이 자본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분명히 할 것은 노동강도 평가는 전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한 과정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강도 평가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일각에서는 생의학적인 접근결과 크게 유의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즉 노동자들이 겪는 육체적인 작업강도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중량물을 들고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지는 노동강도
강화보다는 고용불안과 노동자간의 경쟁조장, 현장통제를 통한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강화에 더 큰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을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물론 심각할 정도의 중량물을 취급하거나
절대적으로 노동시간이 긴 경우에서는 생의학적인 접근 역시
강한 노동강도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현 시기 산업구조와
노동조건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회학적 접근을 통한
노동자들의 주관적인 인식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물론 일각에서는 집단적 노동환경의 변화와 노동강도 강화기전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역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으로 곡해되고 평가절하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오해이다. 전사회적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한
집단적 노동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는 모든
사업장에서 상당히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방식은 업종, 사업장
규모, 자본(사측)의 특성 등에 따라 매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집단적 노동환경의 변화와 노동강도 강화기전에 대한 평가는
설문지, 심층면접조사, 사업장 자료(임단협자료, 작업환경측정,
검진자료, 산재관련자료, 조합소식지, 자본의 단기/중기적
차원에서 사적과정에 대한 분석, 자본의 현장통제 이데올로기
변화 등) 분석 등의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현장의 노동강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강화되었는지에 대해 일반적인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특수한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도 밝혀져야만 현장은 보다 구체적인
투쟁의 목표를 정확히 설정할 수 있고, 그에 대한 투쟁을
배치함으로써 현장의 노동강도를 실질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D사의 경우 IMF 이후 물량이 감축됨에 따라 감원이
진행되고, 그 후 물량은 예전수준을 회복하였으나 인원 충원없이
줄어든 인원으로 회복된 물량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노동강도가
급격히 강화되는 일반적인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그 과정에서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한 라인
변경이라는 개별 사업장 수준의 독특한 상황이 있었고,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이로 인한 노동강도의 강화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노동강도 평가과정에서 이러한 라인 변경과
현장통제 등 생산과정 변화가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얼마나 강화시키는지에 대한 평가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또한 S중공업의 경우 강화된 현장통제로 노동자들간의
경쟁심리를 자극하면서 절대적인 노동강도 뿐만이 아닌 상대적인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 이는 정규직인원을 대폭 줄이고
비정규직을 충원하면서 외주·하청을 증가시켜 노동자들을
파편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직·반장의 권한을 강화하여
소그룹을 통한 통제가 이루어지게 하였다. 또한 2인 1조 작업을
1인 1조 작업으로 바꿈으로서 실제적인 물량의 증가를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시켰다.
한 식품사업장의 경우에는 저임금의 숙련된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휴일이 감소하는 한편 작업속도와 라인속도가
빨라지면서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번 더 강조하지만, 노동강도의 평가와 적정 노동량의 결정은
노자간의 모순과 작업현장에서 잉여가치의 생성과정으로
파악하여야 하며, 따라서 평가의 주체는 현장의 노동자들이다.
전체의 평가과정이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노동강도를 완화시키고 노동자들의 현장통제력을 쟁취하자!
지금까지 근골격계 투쟁의 성과하에서 최근의 쟁점들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러한 쟁점들을 평가하는 것은 투쟁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물론 각
단사의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다양한 변이를 취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들은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투쟁은 IMF 이후 신자유주의의 살인적인 구조조정에
무기력하게만 당하고 있던 노동자 계급이 자본에 대한 적극적인
전선을 긋고 전면전을 선언하는 투쟁이어야 한다. 따라서 쟁점이
되는 노사공동프로그램의 문제나 검진자의 분류 문제, 근무 중
치료에 대한 입장 및 노동강도 평가에 대한 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최근에 논쟁이 되는 주제들의 대부분은 자본이 이
문제를 자신들의 체계 내로 포섭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와
노력에 이용당할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이
투쟁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약화되고 기존의 산안사업처럼
자본과의 ‘거래’에 사용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이제 핵심은 분명해 졌다. 이 투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임하는가에 따라 지금까지의 논쟁은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노동자가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며 자본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98년 이후 5년여의 세월에 걸친 무기력을 떨치기
위한 투쟁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칙들을 가지고 그 동안의
통제과 굴종의 사슬을 끊고 노동자가 현장의 주인이 되기 위한
반격을 준비하고 투쟁에 나서자.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