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논쟁-쟁점 > 목록보기 > 글읽기

 
호주제, 왜 난리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89호
고은광순

긴/급/점/검

호주제, 왜 난리인가?
여성을 이등인간으로 못박아온 못된 도구, 호주제를 해부한다


고은광순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의모임 운영위원, 개혁국민정당 서초갑지구 위원장
http://antihoju.jinbo.net koe unks1 @ hotmail.com





호주는 집안의 주인?
지난 4월 종묘 앞에서 ‘정통가족제도수호 범국민연합 시민사회단체’ 할아버지들은 호주제폐지 움직임에 반대하여 삭발을 하셨다고 한다. 아니, 일제시대에도 몸의 터럭 하나도 모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인데 어찌 머리를 깎겠느냐며 저항하던 할아버지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절박하게 했을까. 잠깐 그들의 성명서를 들여다보자.

“… 정부와 급진사회단체는 정체를 밝혀라. 호주제폐지 주장자들의 논리는 공산도배들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가정을 … 지배복종 및 투쟁관계로 파악하며, 한국문화의 바탕인 가정과 가족을 해체하여, 우리 가족제도를 북한과 같게 만드는 것을 획책하고 … 북한 가족제도를 한국에 이식하는 과정 … 한국문화의 토대를 북한 체제와 맞게 한꺼번에 바꾸는 공산혁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 … 이는 자손만대에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 …”

물론 저렇게 ‘엄청난 절규’에 대하여 한국사회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박홍총장이래 ‘빨간색 칠하기’는 그다지 약효가 없는 모양이다. 우선 한가지 말씀드린다면, 호주제는 지구촌 전체를 통틀어서 한국에만 남아있다. 일본, 중국, 싱가폴, 미국, 영국, 프랑스... 어디에도 호주제는 없다. 북한뿐이랴. 일제시대에도 저항하지 않았던 유림들이, 군사독재정권시대에도 꼼짝 않던 유림들이 양성평등이야기만 나오면 저렇듯 흥분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어느 나라나 국가가 국민에게 발행하는 신분증명이 있다. 국민의 출생, 사망을 기본적으로 국가가 파악하고 있어야 교육, 세금, 사회보장, 투표 등등의 공적행위에 자격과 권리, 의무 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나라들은 이것을 개인단위로 만들며 이것을 일인일적(一人一籍), 혹은 개인별신분등기라고 말한다. 한국은 이것을 개인단위로 하지 않고 가족단위로 만들었다. 이것을 호적(戶籍)이라 하며 이에 따라 하나의 호적에 등재된 사람을 법적으로 ‘가족’이라고 정의한다. 여럿이 한데 묶여 있으므로 행정상 색인자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를 호주(戶主)라 한다. 호주는 호적의 색인자, 혹은 기준자라는 뜻이며 이를 ‘집안의 주인’으로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다.
여럿을 한꺼번에 묶어 놓았으므로 호주가 사망하면 필연적으로 또 다른 색인자가 필요한데(호주승계) 일제는 자기나라의 호적편제방식을 식민지 조선에 이식하면서 남성위주로 순서매김을 하여 어린 아들, 어린 남동생, 바람피워 낳은 아들이 법률혼의 아내와 딸들보다 우선적으로 호주상속을 받도록 하였다. 조선에 없던 이러한 시스템은 일제의 행정상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모든 남성은 모든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법감정을 조장하여 이후 여성의 인권은 더욱 낮아졌으며 이러한 남성중심의 시스템은 ‘남자는 씨, 여자는 밭’이라는 무지를 널리 퍼뜨려왔다.

일본은 이미 1800년대에 서방문물을 수입하면서 국민등기(출생, 결혼, 사망 등의 신분행위를 일일이 신고하게 하는)를 호주 중심으로 만들었고, 조선강점이후 징병, 징세, 독립군 색출을 비롯하여 식민지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이를 조선에 이식했다. 1947년 패전이후 일본은 ‘개혁’의 차원으로 호주제를 폐지하고 3세대 동적(同籍)을 금지하여 부부와 미혼의 자녀만으로 구성하는 부부공동대표제를 택했다.

민법 984조<개정 ‘90. 1. 13>는 호주승계의 순서를 1. 피승계인의 직계비속남자(아들, 손자, 증손자..) 2. 피승계인의 가족인 직계비속여자(딸, 손녀, 증손녀...) 3. 피승계인의 처...로 정해 놓았다. 결혼한 여성이 출가외인이 되어 법적으로 ’가족‘에서 제외되는 것은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남한에만 남아있는 ’남성중심의 신분등기법(호주제)‘ 때문에 발생하는 대단히 이상스러운 문화다.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을 아내의 동의 없이도 호적에 올리고 그 아들에게 호주승계 1순위를 주는 것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대단히 이상스러운 제도이다.
호주승계에 있어 아들, 손자, 미혼의 딸, 손녀보다 하위에 있는 기혼여성은 법의 행간에서 ‘남자의 씨를 받아 대를 이어야할 의무가 있는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부가입적(夫家入籍), 부가입적(父家入籍)을 골자로 하는 남성중심의 신분등기제는 현재 유림들에 의해 가장 강력히 지지되고 있는데 그들은 결혼한 여성(아내, 며느리)은 ‘피’가 섞이지 않았으며 성씨가 다르기 때문에 호주승계에서 후순위에 위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므로 씨가 중요하고 따라서 남자의 혈통은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부계혈통시스템, 호주제 수호 이유이다.
그러나 콩, 팥 등의 씨앗은 암술이 생산한 난핵과 수술이 생산한 정핵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인간도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남성이 씨앗을, 여성이 밭을 상징한다고 하는 생각은 대단히 원시적인 무지에서 기인한다. 그러니까 글의 처음에서 말했던 할아버지들의 흥분은 스스로의 무지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 역시 남자만 씨가 있다는 무식을 기초로 하고 있으니 할아버지들의 무지만을 탓할 수도 없다.

가부장제는 부가입적(夫家入籍), 부가입적(父家入籍)을 골자로 하는 호주제를 통해 여성을 외부적으로는 남성의 집이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고, 내용적으로는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강제해왔다. 여성은 남자의 ‘피’만 인정하는 부계혈통제 속에서 철저히 왕따 당하는 이중구조 속에 소모품으로서 존재해 왔던 것이다.


‘부계혈통제’는 어떤 문제점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민법781조(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에서 보듯 대한민국 법률은 ‘부계혈통제’를 강제하고 있으며 다만 엄마가 외국인과 결혼했거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에만 엄마의 성과 본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은 앞서 말했듯 ‘남자는 씨, 여자는 밭’이라는 무지에 근거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무지를 존속시키는 역할도 충실히 해왔다. ‘아들 밝힘증’, ‘일년 여아낙태 삼만 명으로 인한 인간 생태계의 심각한 파괴’―2010년이 되면 25%의 남성이 배우자를 못 찾게 된다, 94년 인구문제연구소 보고― 등의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따지고 보면 바로 한국사회의 잘못된 부계혈통중심이 법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자, 정자의 수정을 통해 비로소 23쌍, 46개(n+n=2n)의 염색체를 갖는 새 생명이 태어나므로 엄마, 아빠의 유전자는 똑같이 반씩 새 생명에게 전수된다. 우리의 조상은 위로 올라갈수록 많아지므로 외줄기 혈통이나 외줄기 가문이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성씨가 혈통을 드러내는 기호라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부계혈통제는 끊임없이 섞여드는 모성, 여성성을 부정해야만 성립하는, 여성을 ‘도구’, ‘소모품’으로 정의해야만 성립하는, 대단히 폭력적인 시스템이다.
‘남자는 씨, 여자는 밭’이라는 말은 ‘권력을 가진 거짓말’이지만 부계혈통제는 법으로 보장되어 전국민에게 ‘집단최면’을 걸고 있다. 족보, 가문, 고추낳아 대잇기, 종중, 혈통 등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거짓개념이다.
호주제폐지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계혈통제 사회에서 종손, 3대 독자, 큰아들, 외아들, 맏상주 등의 이유로 어려서부터 ‘소중한 존재’로 길들여져 왔으며 그 긍지가 내면화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남자라고 해서 더 특별날 것 없으며 양성 모두가 소중하다는 평등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자존심을 상하여 분노하고는 한다.
현재 시중에 존재하는 족보의 대부분은 식민강점기에 새로이 만들어졌다. 왕조의 권력독점구조를 혁명으로 타파하지 못한 채 식민강점기를 맞았고 양반의 위세가 사라지자 자기 조상이 지배계급(왕, 영의정, 좌의정...)이었던 척 하는 비굴한 허위의식으로 부계혈통위주의 가짜족보가 수없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해방이후에도 30년이 넘는 군사독재 때문에 우리에게는 평등, 공정, 합리, 정의 등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체적으로 공유할 기회가 없었다. 봉건적인 가부장제 속에서 학연, 혈연, 지연에 의지하면서 차별은 당연시하고 불의에는 둔감한 미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까지도 대량생산되고 있다. 상하의 위계질서, 수직구조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젖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쌍방향의 수평적 민주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잘못된 그릇(가부장적 호주제)에 담긴 잘못된 내용(‘일부’ 남성들의 미성숙한 시민의식)은 한국의 진보를 막는 대단히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도 호주제 우려
유엔인권이사회는 1999년 10월 29일 제1802차 회의에서 호주제와 관련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원회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고 강화시키는 (한국의)법률과 관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특히 여성의 지위를 종속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호주제는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가부장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태아성감별 관행, 둘째와 셋째로 태어나는 아동 중에 남아의 불균형한 비율, 위험한 낙태가 명백히 초래한 높은 모성사망률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위원회는 남녀가 이 규약에 명시된 모든 권리들을 동등하게 향유할 권리와 법의 동등한 보호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규약 3조와 26조-를 이행하지 못한 정부의 실패가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로 인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2001년 5월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위원회(이하 사회권위원회)도 부계혈통만 인정하는 호주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여아 낙태 등 한국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한국 정부에 이를 시정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채택하였다.
1979년에 만들어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가 제정한 여성에관한모든차별철폐협약(The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CEDAW)은 16조 g항에서 가족의 성(자녀의 성)을 정할 때에 여성의 성도 평등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부계성을 강제하는 것이 여성에 관한 차별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을 국제사회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1984년 몇 개의 조항을 유보한 채로 협약을 비준하였는데 현재는 이 조항(16조 g항)만이 유보된 채로 남아있으며 유엔은 한국정부에 유보철회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외국의 성씨 문화
1997년 3.8 여성대회에서 ‘부모성 함께 쓰기’가 선언된 이래 한국의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는 부계혈통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부모성 함께 쓰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서양여성들도 남편 성으로 바꾸고 있으니 성을 바꾸지 않는 한국여성은 그녀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국의 여성들이 결혼 후 남편의 성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강제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바꾸지 않거나, 섞어 쓰거나, 결혼과 동시에 부부가 가족의 성을 새로이 만들어 쓰는 등 대단히 자유로운 성씨 운용체제를 가지고 있다(아버지의 성을 따라야만 등록이 인정되는 것은 성차별에 해당한다고 판결-노스 캐롤라이나 주/ 아버지의 성으로 가족 성을 정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독일 1994년).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의모임에서는 2000년 가을 미국 워싱턴 주 북부의 작은 도시 벨링햄에 있는 워싱턴주립대학의 남녀학생 123명(여자 60명, 남자 63명)을 대상으로 <결혼 후 남편 성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미국인의 의식조사>를 실시하였다. 결혼 후에도 성씨를 바꾸지 않은 여성에 대해 89%가 좋아 보인다,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응답했다. 전체의 63.4%가 결혼 후 성을 바꾸지 않거나(여), 성을 바꾸지 않는 아내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남)고 기꺼이 서명했다.

스페인 문화권에서 부부는 원칙적으로 별성(別姓)이며 자녀는 부모의 성을 1성, 2성으로 하여 모두 사용하고 자녀가 성년에 달한 경우 자기의 성의 순서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 독일, 러시아 등은 부모에게 선택권을 주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은 부모의 합의가 제출되지 않을 경우 엄마의 성을 자녀에게 줄 것을 규정하고 있다. 호주(濠洲)는 만 18세가 되면 누구의 허락 없이 새로이 성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며 폴란드는 부모가 혼인 체결시에 자녀를 모의 성으로 할 것을 선언한 경우에는 그대로 이행된다. 중국의 경우 자녀의 성은 부, 모 어느 쪽으로도 쓸 수 있으며 일본은 부부 동성을 강제하지만 남편 쪽으로 통일할 것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대부분의 나라가 부모의 협의에 의한 자녀 성 선택제를 채용하고 있으며 어느 나라도 부계성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지 않다. 부계혈통제를 법으로 강제하고, 보호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며 성씨가 혈통을 드러내는 소중한 기호인 것처럼 강박감을 갖고 있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지난 19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3.8여성대회에서 ‘부모성 함께 쓰기’가 선언되었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남성에게서만 ‘가족의 뿌리, 혈통’을 찾으려는 그간의 전통과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널리 인식시키는 데에 대단히 효과적인 운동이며 일회적 이벤트로 끝날 것이라는 처음의 우려를 깨고 열린 의식을 가진 남녀들에 의해 꾸준히 가속도를 받아 확산되고 있는 소중한 ‘양성평등 가꾸기 노력’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은?
호주제문제의 본질은 앞에서 말했듯이 결혼한 여성을 남성에 종속되도록 강제하는 부가입적(夫家入籍), 모성과 모계혈통을 부정하고 부의 성과 본만을 쓰고 부의 호적에 입적할 것을 강제하는 부가입적(父家入籍), 즉 부계혈통 시스템의 강제에 있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러한 남성 우선 호주제를 폐지하여 부계혈통제를 부모양계혈통제로 바꾸어야 한다.
부계혈통위주의 호주제는 지구촌에서 한국밖에 없는 신분등기제이므로 폐지 이후에 모델이 없을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여성개발원의 장영아 연구원은 연구서 [호적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1996]에서 호주제폐지 이후의 대안으로 ①가족별편제, ②주민등록과의 일원화, ③개인별신분등기제(一人一籍)을 제시하였다.
가족별편제는 부가입적(夫家入籍)과 부가입적(父家入籍)의 문제는 해소할 수 있지만 사별, 이혼, 재혼, 독신의 삶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정상’의 범위로 포용해내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어 보이지만 개인별신분등기는 앞서가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신분등기로서 기준자나 가족성원의 신분행위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현행 호주제의 문제를 단박에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개인별신분등기를 실시하면?
가구단위의 신분등기(호적)가 아니므로 호주도 필요 없고 출생한 아기는 부, 모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게 된다. 출생등록을 할 때 부모의 이름을 모두 기록하고 출생시기와 장소를 기재한다.(미국의 경우 출생했을 때 받는 번호는 취업 무렵 사회보장 아이디 카드번호로 대체되며 사진이나 생년월일, 주소 등은 증명서에 기재되지 않는다.) 또한 혼인과 더불어 두 사람이 혼인 등을 할 때 배우자는 남편 혹은 아내 쪽으로 편입하지 않는다. 결혼이 남성 혹은 여성의 집안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정서적으로 성숙한 남녀가 양가에서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아울러 부모와 배우자, 자녀를 곁들여 기록하게 될 것이므로 ‘콩가루집안’이 되지도 않을 것이고 단계별 공개를 하면 사생활도 충분히 보장될 것이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호주제, 부계혈통제가 폐지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부가입적(夫家入籍), 부가입적(父家入籍)이 사라지면 비로소 헌법이 보장한 양성평등한 남녀관계, 부부관계, 부모관계가 될 것이며 남자만 씨를 가졌다는 전근대적이고도 끈질긴 무지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성씨가 혈통을 드러내는 기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들낳아 대잇기’의 강박감이 사라지며 여아낙태들의 야만적 범죄행위가 사라질 것이다. 사별, 이혼, 재혼, 독신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구성원들이 ‘비정상’으로 분류되어 손가락질을 당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약육강식이나 위계질서 등의 수직구조에 의한 미숙하고 강압적인 질서보다 수평적이고 상호존중 하는 성숙한 사회정의에 대한 관념이 확산될 것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을 일이 없어지며 한국여성의 사회권한척도(GEM)가 향상되고 부패지수를 낮추어 명실공히 선진국, 개발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

가부장제를 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부모성 함께 쓰기를 통해 부계혈통제가 생물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바르지 않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항렬에 따른 돌림자 역시 여성을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다.) 조상은 위로 올라갈수록 많아지며 그 뿌리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결혼은 양가로부터의 경제적, 정서적, 법적 독립이므로 주체적으로 시작하고 재산은 부부공동등기로 한다. 제례문화, 명절문화는 죽은 자에 대한 집착, 집중으로부터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양성평등한 축제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삶으로 편견을 조장하지 말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의 성차별적 성역과 금기를 깨 나가야 한다.


현재의 상황
지난 5월 27일 호주제 폐지안이 입법발의 되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법사위원 15명 중 5명 정도만이 분명하게 폐지찬성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 소속 법사위원인 최병국 의원은 “가문과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바로 호주제”라며 “호주제는 전통이고 역사의 침전물이므로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민족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하게 호주제폐지운동을 비판하고 있다. 가문과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려면 근친상간이 최고일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동성동본 혼인은 ‘상피 붙는 것’이라며 눈을 부릅뜬다. 그들이 이와 같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직도 남자만 씨가 있고 여자는 밭일뿐이라는 무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남자만 씨가 있다는 권력을 가진 거짓말은 국민에게 집단최면을 걸어 ‘아들밝힘증’에 걸리게 하고, 최병국, 주진우 의원 등 권력을 가진 자의 몸을 빌어 ‘남자만이 주인공인 민족사 수호’에 나서게 한다. 그들의 ‘민족’에, 그들의 ‘인간’에 여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제 가을에 호주제폐지에 관한 정부안이 나올 예정이며 다시 가을 국회에 회부될 것이다. 그 때를 맞추어 그간 호주제폐지에 주력해 왔던 여성단체, 종교단체, 시민단체, 개혁적 정당, 개인 등이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려고 한다.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호주제가 폐지되고 양성평등한 제도와 문화가 정착되면 우리는 두 배의 에너지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2003-07-20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