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국가화’라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선 일본제국주의** [편집자 주] 이 글은 필자인
야마우치 케이타 씨께서 직접 한글로 집필해 보내 주신
것입니다. 외국인이 한글로 집필한 글이기 때문에, 편집실에서
다소 교열을 보았지만, 아무래도 표현상 어색한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귀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야마우치 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야마우치 케이타
도쿄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한일관계사
지난 6월 6일 유사법제가 제156회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이어 제출된 유사법제를 반대하는 운동은,
이라크 침략전쟁을 거치면서, 1년 반 가까이 진행되어 왔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인지 아직은 진지한 총화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는 나 또한 짙은 무력감에 휩싸이면서 이
글을 써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첫 방일에 맞춘 유사법제 통과
소식에 분노를 가지고 접했던 사람들에게.
유사법제의 내용
먼저 예비 지식으로 유사법제의 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이번에 통과된 것은 ‘무력공격사태법안’ 및 자위대법, 그리고
안전보장회의설치법의 개악안으로서 이 세가지 법안을 가리켜
‘유사법제’라 부른다. 그 중에서도 ‘무력공격사태법안’이
핵심이며, 그에 따른 정부와 자위대의 권한 강화를 후자의
개악안들이 뒷받침하는 관계이다. 아래에서는 표기의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 세 가지 법안을 특히 구별하지 않고 유사법제라
일컫는다.
유사법제의 기본적 문제는 지금까지 없었던 전시 법체계를
세우는 데에 있다. 물론 자위대나 주일미군이 존재해 왔고, 또한
이미 해외 파병도 하긴 했지만, 헌법이 전시를 예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예컨대 전시에 있어서의 정부와 국민의 관계 등을
규율하는 포괄적인 법체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유사법제는 전쟁국가화의 결정적인 이정표이다.
그리고 그 본질은 제국주의 국가에 걸맞게 본국을 침략의
출격거점․병참기지로 만들고, 그 수행에 대한 저항에
계급적 탄압을 가하는 데에 있다. 저항을 탄압하지 않으면
웬만한 출격거점이 될 수 없음은 그 전쟁의 계급적 속성에서부터
불가피하다.
구체적으로는 군수물자 조달을 위시해 온갖 전쟁 협조를
국민들에게 요구하며, 물자 보관 명령에 위반하면 처벌된다.
정부가 지정하는 ‘공공’ 단체 또한 전쟁에 대한 협조가
의무화된다. 협조를 거부하는 노동자는 직무명령 위반으로
해고된다. 또 자위대의 행동을 ‘무법화’한다 (애당초부터
자위대의 행동에 특별한 제한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을 제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군사 논리가 그대로
‘법’=폭력이 된다고 파악해야 된다). 그리고
집회․시위도 ‘공공의 복지’에 반하는 것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 전쟁의 형태가 변했기 때문에 제2차 대전 전의
국가총동원법과 같은 강제노동을 노리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계급성에서부터 비롯되는 계급적 탄압의 측면은 일관되게
존재한다. 이 점은 앞으로 1년 정도에 걸쳐 정비하기로 한
‘국민보호법제’, 즉 국민통제법 속에 한층 더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출격거점화의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이제 국가의
‘민주주의적’ 분업도 배제된다. 국회가 거의 관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수 각료들조차 배제한 안전보장회의를 중심으로
수상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동시에 방위청 장관이나 군인들의
발언권이 강화된다. 미국조차 부시가 이라크 개전 권한을 의회에
요구한 것은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유사법제는 수상 자신이
의장을 맡는 안전보장회의에 수상이 자문하고 답신을 받으며,
그리하여 수상이 스스로 본부장을 맡는 무력공격사태대책본부가
집행하는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독자적인 판단들도 모두
다 배제된다.
이로써 유사법제는 평화주의는 물론이며 기본적 인권과
주권재민이라는 헌법의 3대 원칙을 온통 짓밟는 내용이다.
유사법제의 입법 배경
그렇다면 지금 왜 유사법제인가?
엔고를 약속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자본의
해외진출이 대규모로 전개됨에 따라 이를 자체의 군사력으로
보호하려는 충동이 일본 독점자본 사이에서 강화되었다 (일본의
대외채권 잔고는 세계 제1위로 약 1조 달러라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즉 세계화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1990년대
전쟁국가화가 추진되어 온 것이다. 그 전략은 미․일 안보
조약을 축으로 한 해외 파병의 항상화(恒常化)이다. 그 방향성은
1997년에 미․일 안보 신(新)가이드라인으로
정식화(定式化)되었고, 그 이후는 이 신가이드라인의 구체화가
정치 일정에 올랐다. 그 첫번째가 1999년의 주변사태법(미군의
후방지원을 구실로 삼은 해외파병법)이며, 그것을 뒷받침할 국내
태세 정비로서 유사법제가 떠오르는 것은 불가피했다.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을 계기로 뜻밖에 전시파병이 실현되어
사실상의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전쟁국가화 드라이브를 가속화 시켰지만 유사법제의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때문에 유사법제는 갑자기 나온 것도 하물며
우경화 분위기로부터 승화된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신
가이드라인 체제 완성을 향하는 제2단계로서의 유사법제이며,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참전은 단지 더더욱 긴박한
현실과제로서 유사법제를 부각시켰음에 불과하다 (이 부분은
헌법학자인 와타나베 오사무(渡邊治) 히토츠바시대학 교수가
상세히 논하고 있다).
그래서 유사법제는 겉으로 보면 ‘일본 유사’, 즉 일본 영토에
대한 공격을 상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력공격사태가
예측되는 사태”를 포함하고 있다. 즉 실제 공격이 없더라도
“예측되는 사태”라고 선언하고 유사법제를 발동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수출된 자본이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한 해외파병인
이상 당연한 사기(詐欺)이다.
게다가 지배계급은 미․일 안보를 축으로 한 전쟁정책에서
기나긴 공황 국면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3월 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을 때 언론은 “전통적인
수단은 다 썼다”고 했지만, 또 한 가지의 전통적 수단이 남아
있는 것이다. 바로 전쟁이다. 4월 말에는 20년 전 수준까지
주가가 하락했지만, 전후 이라크의 이권 쟁탈전에 일본이
끼어들기 시작하자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여 유사법제의 통과,
이라크특별조치법(후술)의 등장을 거치면서 겨우 두 달만에 25%
이상이나 올랐다! 엔고도 계속되고 있다. 다름 아니라 국내외
자본가들이 일본의 전쟁국가화를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보다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이미 세계 제3위의 군사비를 자랑하는 (그만큼
부후화(腐朽化)된) 일본 역시 미국과 같은 군산복합체화 및 전쟁
상태의 항상화에서 그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잠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할 것이다.
운동진영의 대응
테러대책특별조치법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 자위대가
참전하자 다음 과제로서 유사법제 저지가 부상되었다. 그러나
운동진영은 (중심적인 조직 주체가 달랐다는 이유도 있지만)
연속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법안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서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해공 항만 20개 노조들이 중심이
되어 지난해 봄에 조직한 대중집회에는 최대 6만여 명이
모여들어 주변사태법 반대투쟁(최대 5만여 명) 이래의 고양을
이뤄냈다. 이때 국회에서 유사법제는 계속 심의되었지만 가을
임시국회에서 거의 심의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운동이
저조해졌다. 그리고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시민운동을 주축으로
한 이라크 반전운동이 고양되는(최대 5만여 명) 속에서 유사법제
반대는 뒤로 물러서게 되었으며, 다시 6만 명 규모의 집회를
이뤄내지 못했다 (유사법제 반대의 마지막 대규모집회는 5월
23일의 3만여 명). 대규모 집회 흐름은 이런 대로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다 작은 반대활동들도 광범하고 끈질기게 전개된 것
또한 사실이다.
20개의 노조들이 앞장 선 반대운동의 전개는 통일적인 투쟁을
벌이기에 어려움이 많은 현 상황에 있어서는 주변사태법
반대운동을 이어받는 전진이라 평가할 수 있다. 정당들이
앞장서지 못하고 시민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가운데서 그래도
노동자계급의 대중성을 담보하려는 최대한 노력의 도달점이 20개
노조들의 투쟁일 것이다. 그러나 토론의 장을 창출하고 전반적인
국가 재편에 반격할 통일전선으로의 발전에 대해서는 큰 한계를
안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반전이라는 과제만 보더라도,
여기에는 유사법제 반대와 더불어 때때로 이라크 반전도 내걸긴
하지만 그 관계는 이론적으로 심화되지 못했다. 하물며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 포위망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거나 기껏해야 ‘똑같이 우경화해 가는 위험한
흐름이다’ 하는 정도의 인식들이 일반적이며, 그러한 인식은
1년 반 가까운 운동을 통해서 거의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나빠졌다. ‘납치’ 캠페인을 비롯한 조작 선전들도 거셌지만,
무엇보다도 조선‘문제’를 통해서 도리어 적들의 의도에 반해
사람들을 의식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운동 속에 미약했다.
국내 재편과 관련해서는 유사법제와 노동법제 개악과의 연관도
거의 공유되지 못했다. 사실 노동법제뿐만 아니라 언론규제
3법안(5월 23일 통과, 이미 충분히 정부 캠페인의 선전기구로
화하고 있는 언론을 가일층 통제하는 법률로서 정확하게는
정보통제법이라 불러야 한다)이나 국립대학 법인화(대학을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두고 자본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국책대학으로의 전환), 형법 개악(공모죄의 신설. 국제적
조직범죄방지조약 비준을 구실로 삼고 있다.
공동정범(共同正犯)과는 달리 어떤 범죄의 실행착수를 전제하지
않고 중형을 과하는, 근대형법의
객관주의․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근저에서부터
부정하는 어마어마한 치안법) 등을 위시해 이번 국회에는 중대한
악법들이 많이 상정되어 있다. 상정된 법안이 아니라도
교육기본법 개악이나 파탄 난 은행을 국유화하기 등 중대한
정치과제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이에
한일자유무역협정(FTA) 책동을 덧붙이면 보다 생생한 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태는 단순한 우경화가 아니라 세계화에
있어서의 국가 재편, 보다 정확하게는 제국주의 본국에 있어서의
계급적이고 전반적인 재편이며 바로 파쇼화 과정에 다름이
아니다. 그리고 이 계급적 운동의 결절점은 헌법 개악이다.
그것은 마치 기성사실로 포위해서 함락시키는 듯한
이미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거의 통합적으로 제기되지 못했다. 그러한
문제제기를 정치적 입장 차이를 가지고 들어와 운동을
분열시키는 것으로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따라서 그
실천으로서의 통일전선 구축이 현실과제로 떠오르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유사법제와 노동, 유사법제와 대학, 유사법제와
○○라는 식으로 자기 과제와 유사법제를 결합시키는 데에
그쳤다. 이는 유사법제에 대한 계급적 인식의 불충분함을
반영하고 있다. 즉, 부르주아민주주의 틀 속에서도 예상되는
사태이긴 하지만, 유사법제는 파쇼적 성격을 짙게 담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대운동이 민주주의운동으로서 성립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을 일궈낼 계기 또한 내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점을 파악하여 반격의 축으로 삼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유사법제는 헌법의 3대 원칙 모두에 배치되는 것이며, 더군다나
정세를 보면 이제 ‘헌법위반’이 아니라 ‘헌법파괴’임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평화헌법옹호’ 관념을 떠나
유사법제를 매개로 한 개헌저지통일전선 구축은
주․객관적으로 가능했고 필요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계급정당, 즉 전위당의 존재에 관한
문제이며, 섣불리 평가할 수만은 없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공산당의 입장에 대해 극히 간단하게 후술하겠다.
유사법제와 오키나와․한국
운동진영의 대응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주지하는 것처럼 주한미군 문제를 매개로 오키나와와 한국의
운동들이 연대하고 있는데, 오키나와․한국과 유사법제
반대가 어떠한 연관을 맺을 수 있었는가?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일단 오키나와는 반기지 투쟁, 한국은 여중생살인사건에서
비롯되는 투쟁으로 한정하겠다.
유사법제가 상정되자 오키나와의 운동진영에서는 “일본
전국토의 오키나와화”라는 시각이 명확히 제기되었다. 너무나
많은 기지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지 속에 오키나와가
있다”고 하는 오키나와에서 아시아 침략의 출격거점임을 강제
당하는 것이 주민에 대해서도 얼마나 피해를 주는 것인지를,
“오키나와에 일본국 헌법은 없다”고 하는 그 동안의 고발을
바탕으로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것은 오키나와로 눈을
돌림으로써 반기지 투쟁에 대한 연대의 저조함을 떨치고 1995년
이래의 고양을 이어받아 다시 반기지 투쟁을 활성화할 계기였다.
또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측되는 사태’를 구실로
해외파병을 뒷받침하는 유사법제의 이미지를 아주 쉽게 그릴 수
있으므로 유사법제 반대에도 결정적으로 유의미했다. 더불어
동아시아에서의 미군의 재편 및 기능강화를 반영한 기지이전
문제도 있기 때문에 유사법제 입법의 배경과 국제정세를
생생하게 파악할 수도 있었다. 바로 이런 저런 상상을 할 필요도
없이 유사법제의 현실은 오키나와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사법제 반대운동 속에서 오키나와가 거론되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기껏해야 제2차 대전에서의 오키나와
전(戰)의 비극, 즉 일본군이 주민들에게 자살을 강제한
것으로부터 “군대는 민중을 지키지 않는다”는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언급되는 정도였다.
주한미군 살인사건과 관련해서는, 우선 이 대중적인 힘이
조선(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를 막아내는 최대 억지력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조선(한국)전쟁마저 상정하는 유사법제를
일본의 운동진영이 반대하기 위해서는 한․일연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연관을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것은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5월호 권두언에서
채만수 소장이 결론 부분에서 강조했던 바를 일본측에서 고민한
것이다. 한․일연대 운동을 맡는 부분들이 유사법제
반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이 운동
속에서 널리 공감대를 이루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아직 ‘한․일연대’ 이슈 정도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또 오키나와와 한국의 투쟁이 공통으로 제기하는 근본적 문제는
바로 군대란 계급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기서부터 그러한 군대를 가진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따라
‘자위’의 의미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개인과
국가 사이의 긴장관계로부터 “군대는 민중을 지키지 않는다”는
애매한 일반론을 도출할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피해를 주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는 군대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계급성에
닥칠 계기는 있었다. 제국주의 본국에 있어서의 유사법제에 대한
계급적 관점은 한마디로 ‘자위’의 성격 문제로 수렴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운동진영은 이 문제를 소홀히 넘어가고
말았다. 이 ‘자위’의 문제에서 자신의 발판을 한치도 확인하지
못했던 것은 운동에게 치명적인 후유증을 주었다.
KEDO의 중유 공급 중지 이후, 조선에 대한 도발이 가속화 하는
속에서 “북조선이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캠페인에
전혀 대항할 수 없게 되면서, 방위청 장관의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하는 시점을 공격 착수로 간주한다”거나 “선제공격 능력을
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에 대해서도 유효한 반격을 못할
정도까지 운동진영은 무장해제 되었다. 제국주의의 ‘자위’
개념을 거부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유사’도 ‘예측되는
사태’도 무분별하고 무제한한 확대해석을 가능케 하고 만
것이다. 바로 1년 전 유사법제가 상정되었을 때에는 정부도
“무력공격을 당할 가능성은 만(萬)의 만의 만의 일”이라고
답변하고 있었는데, 이제 조선을 국민적인 가상적국으로
부상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중요한 문제제기가 있긴
했지만 이론적인 연관을 맺지 못한 채 법안이 통과되기에 이르고
말았다.
일본공산당의 입장
마지막으로 일본공산당의 입장에 대해 아주 간단히 언급하겠다.
이 문제를 간략하게나마 포괄적으로 논하는 것은 솔직히 필자의
능력을 넘는다.
현재 일본공산당은 그 민족주의와 의회주의를 최후적으로
완성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수년 전부터 자위대 활용론이나
천황제 허용을 내세우는 등 어이없는 상태에 있는데, 먼저
유사법제 반대운동을 거치면서 드러난 문제점을 제시하겠다.
우선 현 정세를 ‘헌법 개악으로의 길’로 포착하지 않고 ‘헌법
위반의 악법들이 잇달아 나온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들에
있어서는 유사법제도 새로운 국가 재편이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탈계급적으로 존중하는 헌법에 대한 어줍지 않은 괘씸한 위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을 궁극적으로는 미국이 밀어붙인 것으로
파악하는 바람에 일본 독점자본의 독자적 이해라는 측면을
경시한다.
개헌 정세로 파악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개헌 저지’든
‘민중연대’든 ‘반제국주의’든) 통일전선을 지향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들은 전위당으로서의 의지도 능력도 없음이
노정되었다.
그들은 대미종속론의 입장에서 ‘미국의 전쟁에 말려들’
유사법제 반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걸었다. ‘미․일
제국주의가 이해를 같이하는’ 침략전쟁이라는 관점은 없다.
또 ‘말려든다’론 때문에 운동 초기에는 해외침략의 출격거점
확보에 유사법제의 목적이 있음을 간파할 수 없어
‘일본유사’를 상정한 국가총동원법적인 이미지를 유포했다.
그것은 자위대가 인도양에 파병되어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게
하고, 나중에는 이라크전 반대와 유사법제 반대가 결합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을 만들었다.
일본의 전쟁이 아니니까 반대한다는 이러한 논의로부터는
필연적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대조선 정책에서는 정부 입장과 겹치는 부분들이
많아 운동의 무장해제에 가담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일본공산당은 11월에 강령 개정을
예정하고 있다. 강령 개정을 위한 논의가 6월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진행되었는데, 거기에서는 제국주의에 대해서 “그
어떤 나라의 정책과 행동에 침략성이 체계적으로 나타날 경우
‘제국주의’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규정이
주어졌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지배는 분명히 제국주의적인
지배이지만, 미국이 장래 안보조약 폐기를 받아들였을 경우에는
미국이 독점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제국주의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미․일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패배에서 다시 일어설 전망까지 논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만 말하자면, 이라크전쟁 반대투쟁을 철저히
되돌아보는 것이 필수적인 작업이다. 국회를 40일간이나
연장시키면서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가능케 하는
이라크특별조치법이 6월 13일에 상정되었으며 7월 4일에
중의원을 통과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들은 많지만,
놀랍게도 이 이라크 파병이 재빨리 유사법제를 발동시킬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논점은 전무하다. 이제 명실공히
침략군이 되는 자위대에 반격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하며, 그렇게
되면 그것을 빌미로 삼아 유사체제로 이행하는 것이 이제
법적으로 가능하다.
유사체제 하에서 조선에 대한 도발과 경제봉쇄(만경봉호
사건으로 이미 시작되었다)가 발동되는 것 같은 사태는
상상하기에도 무섭다. 지금 유사법제를 거부하는 운동이
제창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라크 파병 저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현 정세에서는 이라크 파병이 헌법위반이라든지 UN 결의의
근거가 없다든지 하는 비판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자유로울 수 없다”(F.
엥겔스)는 명제를 명기해서 이 무거운 작업을 진행하는 속에만
전망이 있다(2003년 7월6일 씀).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