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노무현 정권의 ‘우경화’가 아니다
오 세 철
연세대교수 / 이사
우리는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권의 성격을 놓고 토론을
하는데 6개월 내지 1년을 보내고 밑으로부터의 계급투쟁이
격화되는 시점에 이르러 그 전까지 그 정권에 기대를 걸었던
환상을 접고 다시 한번 투쟁의 대오를 정비해 온 관성을 지니고
있다. 군부 파시즘으로부터 민간정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민주적이고 개혁적
틀의 구축으로 이해하면서 형식으로서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에 희망을 걸곤 하였다. 신자유주의 관철이 한국 사회에서
가속화되면서 자본의 합리화 과정은 민주적(?) 형식의 외피를
쓰고 진행되고 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은 더욱 더
요원해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자본과
자본가 권력에 맞서는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의 성과를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선거 등을 포함한)에 가두고 민중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동원과 지역감정 그리고 세대 사이의 갈등을
활용하면서 신자유주의정권의 틀을 완성해가고 있다.
우리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민주화를 위한 몇몇 개혁조치로
1년을 견디다가 그 효과가 죽어들면서 반노동자적 본질을
드러내어 퇴진요구에 직면하였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지 4개월을 경과하면서 역대 정권보다는
빠르게 정권차원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권력기반의
취약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지배관철의 완성이라는 역사적 조건하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 파병, NEIS 강행, 철도노조에 대한 공권력 행사 등 집권
이후 진행되는 일련의 사태를 보고 노무현 정권의 “우경화”로
진단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이는 노무현 정권의 좌익적
성격을 전제할 때 가능한 분석이다.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의 입장에서 볼 때 노 정권은 친북,
좌익정권으로 묘사된다. 극우 보수세력의 집단화 경향은 이러한
가치판단에 근거하여 강화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노 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라크 파병과 방미를 통한
친미 정권의 모습, 노동계급과 민중에 대한 강경책을 통한
반노(反勞, 친노가 아닌) 정권의 모습으로 극우세력의 공세는
약화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세는 노무현 정권 내내 발목을
잡고 노 정권의 반노동자적 본질을 드러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노 정권에게 비판적 지지의 입장을 가진 이른바
민주세력에게는 “우경화”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은 과거의 노무현, 대선 당시의 선거공약, 노사모와 386
세대의 기반 등을 근거로 보수세력과 선을 그으며 최초의
정책기조의 변화는 미국을 포함한 초국적 자본의 요구, 세계화를
향한 글로벌 스탠다드의 준수에 따르는 필연적 합리화 과정이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 이해하면서 노동계급의
인내와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보면 선거
이후나 지금이나 노동계급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 금년 2월
13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노무현은
시장원리, 글로벌 스탠다드, 대화와 타협, 법․원칙 중시
등을 기조로 말하였고 그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차이를
확대 해석하는 사람들은 대화와 타협에서 법․원칙 중시로
노동정책의 기조가 바뀌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노조에게
확실히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뜻”이라는 철도파업에 대한 대응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고 “사회통합적 노사관계”가 허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8월 15일 발표한다는 신노사문화에 대한
입장발표에서 이른바 네덜란드형 노사합의주의 모형이 선보일
것으로 보이나 사회적 합의주의조차 한국에서는 실현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계급투쟁의 피나는 역사
그리고 노동계급의 정치가 전제되었을 때 북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합의주의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파괴되고
있고 노동계급의 투쟁의 성과로 남아 있었던 산업민주주의적
실천은 역사적 유물이 되었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형식적
합의틀, 노사협조주의의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통한
전투성․투쟁성의 약화, 관료화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말살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적 “사회적 합의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지배관철을 위한 필수조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4개월 밖에 안된 노무현 정권이 사회적 합의주의도
아닌 신자유주의 정권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면서도 김대중
정권과는 다른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인가?
여전히 호남을 기반으로 하지만 지역구도를 넘어서는 지역통합적
형태를 보인다는 점, 더욱 중요하게는 세대간의 대립구도를 통한
젊은 세대의 정서와 열망에 부응한다는 점 등이다. 같은
신자유주의 친자본 세력이지만 한나라당의 기반은 40대 중반
이상을 기반으로, 노무현 정권은 2․30대, 40대 초반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세대간의 갈등이 정치적 동원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이들의 정치적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정치개혁세력의
상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민중주의의 세대기반의 차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을 통합시키는 이데올로기는 자율주의와 민족주의이다.
자발성, 창조성, 자주성은 젊은 세대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기성세대와 대립하는 지점이며 이는 권위주의, 산업주의에
대항했던 반문화운동의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자주성에 기반한
민족주의와도 상통한다. 이들 특성은 계급적 본질과는 떨어져
있는 세대적, 문화적, 정치적 특성이기 때문에
보수․진보와 구별 없이 넘나들고 21세기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포섭된다. 노동계급과 민중의 이중성, 즉 생산자와
소비자로의 이중성은 자기분열을 낳고 노동계급의 분열을
가속화시킨다. 여기에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연결되었을 때 파시스트적 열광으로 전화될 수도 있다.
경제성장, 소비의 동력인 젊은 세대는
향락주의․사치주의의 주체이기도 하고 신용경제 파탄의
주역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권으로서의 본질로부터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노동계급과 민중의 저항과 투쟁을 체제내화 시키고
억압하면서도 그 계급적 힘을 세대적인 문화정치를 통하여
희석시키고 분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토대와
상부구조의 급격한 괴리는 더 급격한 파국을 가져올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문화적 상징조작으로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잠재울 수 없다. 노동계급은
신자유주의적 본질을 지닌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성․친자본적 성격에 대한 투쟁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단결을 가로막는 문화정치의 몰계급성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문화헤게모니 쟁취에 앞장서야 하고 스스로 자본주의
소비문화로의 포섭을 혁파하는 혁명적 주체로서 무장되어야
한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