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기
걸어서 땅 끝까지 3
강바람 / 노동자
도보여행 10일차 (8월8일)
6시 기상.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웠다. 승촌동은 광주 남구였고
나주와 바로 경계였다. 마을을 나서자마자 바로 나주로 넘어설
수 있었다.
어제 경찰이 알려준 5킬로 단축도로인 49번 지방도로 계속
전진하다 뚝방길로 들어섰다. 지도를 보면서 직선코스를
물어물어 갔다. 영산포를 넘어 영암 방면으로.
지나는 길에 화장실에 가려고 멋들어지게 지은 새 건물로
들어섰다. 나주 노인복지회관이었다. 물 마시고, 씻고. 우리가
얼쩡거리자 관장님이 나오셔서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여행중이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수원이요? 거기서 여길
걸어오셨어요? 어디까지가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그러면서 이리 들어오라고 에어콘 빵빵한 방으로
안내해주시고 차를 주셨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복지회관에서는 나주 노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무료급식이 끝날 즈음
관장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당근 맛있었다~
나주 노인복지회관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관장님은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갖고 계신 특수사목이셨다.
어찌나 친절하시고 달변가신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식사에 녹차에, 인터넷 사용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다시 출발했다.
오늘은 영암성당에서 자고 싶다. 신부님이 추천해주셨다.
저녁이면 이곳에서 재워 주실 텐데 아직 더 걷는다니 영암까지
갈 수 있다면 영암성당으로 가서 숙식을 청하라고.
그리하여 영암까지 강행군하기로 결정! 앞으로 35킬로다.
교회, 절, 마을회관에서 자봤으니 이젠 성당이닷!
날씨는 비가 오다 말다 계속 헷갈리게 만든다. 정말
환장하겠네..
정신없이 걸었다. 어느 순간 친구가 뒤에서 “월출산이닷!!”
아~! 월출산! 월출산이었다. 비구름에 가리워 음기 가득
뿜어내는 신비로운 산의 기운을 느끼며 나는 순간 흠칫 숨이
멎어졌다.
난 그 순간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차 타고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 여길 왔었는데 내가 여길 걸어왔구나! 내가 정말
해냈구나!’ 그 가슴 벅참을 잊지 못한다. 내가 사랑하는
월출산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감격과 내가 해냈다는 감격이
어우러져 날아갈 거 같았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지나가는 차에게 손을 흔들어대며 나와
내 친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중에안 일이지만 내 친구는
너무 감격스러워 울었다고 한다.
도보여행에서 가장 잊지 못할 감격의 순간이었다. 땅 끝을
밟았을 때보다, 그 어떤 순간보다 감격스러웠다..
월출산을 돌아 영암으로 들어섰다. 영암성당을 찾아가니 시간은
이미 8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수녀님들은 무척 놀라신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없었던 듯~ 그래도 잘 자리를
준비해주셨다.
오늘도 무척 피곤한 하루였다. 오늘의 감동을 나누며 친구와
맥주 한캔씩 마시고 잤다~
도보여행 11일차 (8월9일)
밤새 잠을 설쳤다. 성당의 닭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새벽
4시부터 지들 맘대로 울어댔다..
수녀님들이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셨다. 역시나 사택은 깔끔했고
음식도 정갈했다. 수녀님들은 참 순수하셨다. 식사를 하며 가족
얘기며, 수녀가 되신 얘기를 해주시는데 너무 즐거웠다.
비가 계속 온다. 수녀님들은 우리가 월출산에 오른다고 하니까
위험하다시면서 말리신다. 우리도 고민했다. 산 앞에선 오만하면
안되는데.. 나도 지금까진 무조건 강행군이었지만 산 앞에선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산 입구까지 가보고 가서 판단하기로
했다. 천황사 입구로 가기로 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천황사 입구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 산에 오르기로
결정을 했다. 친구의 신발은 다행히 등산화였지만 나는
운동화였다. 밑창이 그리 미끄러운 신발은 아니지만 그래도
월출산은 암릉이다. 거기다 비온 뒤라 바위는 더 미끄러울
것이다. 조금 걱정은 됐지만 여기까지 와서 월출을 밟지 않고 갈
수는 없지 않는가!
월출산은 음기가 강한 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 신비롭다.
영험함까지도 느껴진다. 영암자체가 음기가 강한 고장이라고
한다. 영암성당에서 만난 수녀님들조차도 음기가 강한 고장이라
남성들도 여성적이고 여성들은 드세다고 설명해주셨다.
천황봉에서 김밥과 빵을 먹고 바람재에서 경포대로 하산했다.
무위사로 내려올 계획이었지만 내 신발 때문에 더 긴 산행은
불가능했다. 운동화라 미끄러웠고 특히나 내리막길에서는 발이
마음대로 꺾여서 많이 아팠다. 결국 발등이 계속 꺾여 퉁퉁
부었고 여행마무리여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음 고생 좀 할 뻔
했다. 5시쯤 하산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성전까지 왔다. 오늘은 어디서 일박을 할까 고민하다 눈에
보이는 면사무소로 들어갔다.
면사무소에 들어가 잠자리를 부탁했다. 면사무소 여성직원은
깜짝 놀라며 너무나 친절하게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며 우리의
잠자리를 알아봐주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결국 성전면 천인마을 마을회관에서 우리를 재워주시기로
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발이 많이 아프고 피곤하다. 이젠 일기쓰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
도보여행 12일차 (8월10일)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내린다. 퍼부어대다 멈추고 퍼부어대다
멈추고 종잡을 수가 없다.
배가 고프다. 나가서 밥 먹을 식당부터 찾았다. 이른 아침이라
식당 문 연 곳이 없다. 터미널이 있었지만 식당 문 연 곳이
없네.. 겨우 한 곳 찾아서 김치찌개를 시켰다.
전라도는 밥을 시키면 무조건 밥이 세 공기 나온다. 공기밥
추가란 개념이 없다. 밥 인심이 무쟈게 좋다. 반찬도 푸짐하고
밥도 푸짐하다. 배불리 먹고 또다시 길 떠날 채비를 차렸다.
강진으로 출발!
강진은 여러 번 지나간 고장이다. 남도 여행을 하며 몇 번
지나쳤지만 다산초당, 백련사를 한 번도 다녀가지 못해 이번에
꼭 가리라 다짐했다.
다산초당, 백련사 이정표를 보면 전진했다.
아뿔싸~ 백련사는 산길로 5킬로를 올라가야 한단다.
친구는 나보고 혼자 다녀오란다..
참내.. 혼자 갈수는 있는데 시간이 문제였다. 왕복 2시간 이상을
까먹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오늘 해남에 들어서야 했다.
눈물을 머금고 이번에도 백련사를 포기했다. 백련사는 남도여행
베스트 10에 들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절이라고 한다.
다산초당에 들어섰다. 다산초당은 아시다시피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다. 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보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다산은 유배지에 연못과 약수터, 운치 있는 정자까지 세우고
저술활동에 임했다. 아, 돌에 글씨도 새겼다. 그러니 후세들이
못된 짓을 배우지.. ㅉㅉ
하여간 꽤 볼만했다. 머, 이런 유배지면 살만하다 싶었다.^^
한비야씨가 추천한 55번 지방도로 들어섰다.
음.. 왜 추천하셨을까? 아마 1998년에는 이도로가 비포장이었을
게다.
그리고 풍광도 지금과 달랐을 게지. 물론 지금도 확 트인 평야가
볼만하지만..
길가에 모르는 열매가 달린 나무가 쭈욱 늘어서 있었다.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나무일까?
열매는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너무 궁금했다.
아저씨, 아주머니가 그 나무만 놔두고 다른 나무들을 베어내고
계셨다.
“이 나무가 무어예요?”
“동백나무지. 열매는 동백이고. 머리에 바르는 기름 짜는
동백.”
아하~ 동백. 참내.. 동백을 몰라봤구나..
정말 꽃만 알고 열매는 몰라보니 바보다 바보.
강진 땅도 참 산이 많다. 무슨 월출산 새끼 산 마냥 전부
암릉이다. 참 멋들어졌다. 해남이 가까워지니 도보여행자도
만난다. 혼자 가는 남성 하나, 둘이 가는 여성들!
첨이다. 우리처럼 둘이 가는 여성은. 하긴 우리가 만난
도보여행자는 지금까지 세 팀이었다. 성공회대 학생들까지 세
팀. 자전거 하이킹 팀은 무수히 많이 만났지만 도보여행자는
정말 만날 수가 없었다. 그만큼 힘들단 얘기겠지..
저녁이 깊어진다. 어두워지는데 우리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일 아는 언니가 해남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우리도 해남으로
들어가야 한다.
강진이 꽤 크구나..
어둡지만 강행군이다. 해남으로 가자!
드디어 해남으로 들어섰다. 에구 힘들어.. 해남에 들어서서 첫
마을에서 멈췄다. 해남 북일면 신월리. 마을 구멍가게에서
이장님댁을 찾았다. 이장님을 찾아 마을회관에서 묶기를 청하고
이번에도 오케이~
어머나~ 이번 마을회관은 화장실이 없다. 아니, 밖에 있다.
결정적으로 씻을 수가 없다.
난감했다. 비도 맞았고, 땀도 많이 흘렸다. 도보여행 하면서
샤워를 못한 날은 하루도 없었는데.. 고민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파출소로 가자!
세면도구를 들고 파출소를 찾았다.
근데 이게 머야.. 파출소는 잠겨 있었다. 순찰중이라나..
한참을 기다려도 오질 않고.. 결국 친구가 비상벨을 눌렀다.
“죄송한데요, 언제 오시는지요, 저희가 도보여행중인데요, 비를
많이 맞아서, 혹시 씻을 수 있을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큰일 날 뻔했다. 여기 파출소 경찰관들은 휴가중이시란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다른 파출소에서 와주시기로 했단다. 어찌나
감사한지~
근처 파출소의 경찰관들이 와주셔서 문을 열어주시고 우리는
무사히 샤워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린다. ^^
돌아와서 간만에 보일러를 틀고 뜨끈하게 잤다.
내일은 서울에서 아는 언니가 내려온다.
내가 여전에 오도록 한 언니다. 34기 선배다.
그 언닌 나 땜에 여전에 오게 됐다.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도보여행 13일차 (8월11일)
6시 기상. 아침이면 귀신같이 눈이 떠진다.
물론 알람을 해놓지만 알람소리 이전에 일어나는 날이 더 많다.
몸이 피곤한데도 이상하게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긴장해서인거
같다.
언니는 해남터미널에 7시쯤 도착한다고 했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신월리로 오기로 했다.
나갈 차비를 하고 있는데 이장님이 찾아오셨다. 아침 먹으러
오라신다~
이론이론.. 너무 감사한데.. 언니가 내려오기에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일행이 내려오기에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사양했다. 정말
감사했다.
여행 내내 느끼지만 어쩜 이리 좋은 사람들이 많을까 싶다.
서울이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언니와 북일면 하나로 마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앗! 언니다! “언니~~~!!!” “바람아~~” 감격의 상봉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반가웠다. 서울에서 만났으면 이리 반가웠을까.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부둥켜안고 꺅꺅 소리지르고~ ^^
일단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역시나 반찬이 이십 여 가지나 되는
푸짐한 밥상!
이제 해남반도를 돌아 땅 끝으로 간다.
오늘도 빡센 일정이다. 토말에서 보길도 들어가는 배를 타야하기
때문에 늦어도 7시까지는 토말에 도착해야 한다. 토말까지는
30킬로가 넘는 거리.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 거기다 언니는
초행이기 때문에 잘 걸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다행히
언니는 걱정을 불식시키고 무진장 잘 걸었다. 오히려 우리가
따라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해남 땅에 들어서니 정말 다 왔구나 실감이 난다. 간간히 바다도
보이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근데 길이 참 지랄맞다. 오르락내리락 고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이제 끝났나 싶으면 또다시 고개 길이 시작된다. 정말 끔찍했다.
개인적으로 첫날과 마지막 날이 가장 힘들었다.
만약 일행들이 히치하이킹 하자고 했으면 아마 난 동의했을 텐데
일행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정말 안타까웠다..
무거운 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땅 끝을 향하여 전진!
드디어! 땅끝이 보였다!
땅끝이닷!!!
드디어 땅 끝을 밟은 것이다!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이제 정말 다 왔구나! 이제 정말 끝이네! 이제 정말 해냈네!
기뻤다. 정말 상쾌했다. 그 기분 안 해본 사람들은 정말
모를거다~
우릴 보는 사람들마다 정말 대단하다 입을 벌리셨고 어떤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와서 “정말 대단해요. 같은 여성으로서
정말 자랑스러워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얘기들이 조금
민망스럽긴 했지만 그 상쾌한 기분이란~
보길도 가는 배편을 끊고 그렇게 먹고 싶었던 팥빙수를 먹으러
카페에 들어갔다. 35기 샘들한테 문자를 날려대고~ ^^
신발끈을 풀렀다. 이제 여정은 끝났다.
수원에서 해남 땅 끝까지 13일간의 대장정은 끝났다!!
후기
이렇게 정리하지 않았다면 도보여행의 소중한 기억들이 가물가물
잊혀 졌을 거 같다.
매일매일 피곤한 몸 상태에서 억지로억지로 쓴 일기가 이
도보여행기를 쓸 수 있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 달여밖에 안지났는데도 언제였나 싶게
가물가물하다.
아직까지 검게 그을린 몸의 자국만이 내가 도보여행을 했구나
실감나게 한다..
처음 시작할 때
걸어서, 내 발로, 내 두 다리로만 땅 끝을 밟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건 나와의 약속이었다.
왜 떠났을까..
그래. 무언가 털고 싶은 것도 있었고, 정리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무작정 해보고도 싶었고, 떠나고도 싶었다.
난 그걸 다 해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정신력이라면 앞으로 무얼 해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난 그런 건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의 내 삶 어딘가에 이 소중한 경험이 녹아나길 바랄
뿐이다...
강바람, 고생했다!
그리고 내 친구. 발에 온통 물집 잡힌 채로 나보다 더
고생스럽게 도보여행을 마친 내 친구야, 정말 고생했다.
사랑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