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여기에 실린 글은 2003년 9월1일, 8월18일 디지틀 말에 실린 마종인의 뉴스 촌평입니다.
친미 비판 없는 친일 비판은 기만
“친일파가 그대로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자손손 호강하고... 결국 해방된 것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 친일파야. 일제라는 상전이 떠나가고 친일파가 상전이 된 거지. 독립? 난 우리나라가 독립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
난 오로지 한 생각밖에 없어. 친일파 청산. 우리 민족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민족 화해나 통일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그저 구호에만 그칠 수밖에 없을 거야.
나는 이제 이 운동 자체가 제2의 독립운동이라 생각해. 일제로부터 벗어나는 게 제1의 독립운동이었다면 친일파로부터 벗어나는 게 오늘의 독립운동이라는 거지. ... 내 소원? 첫째도 둘째도 친일파 청산이야.”(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국치’와 ‘광복’, 그리고 ‘건국기념일’이 함께 있는 8월. 이 달엔 금년에도 ‘친일파 청산’의 요구가 크게 터져 나왔다. 위 인용문은 그러한 요구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인터뷰의 한 토막인데, 1945년 8월의 ‘해방’은 “친일파의 해방”일 뿐이라는 그의 규정이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이러한 ‘친일파 청산’의 염원이 금년엔 8월 14일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제안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모아져 있는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은 이것이 ‘친일파 청산’을 위한 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진 않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 예로, 여기 “디지털 말”에 실린 한 기사는 이 법안의 현재 상태를 “여의도 하늘을 떠다니는 법안”으로 묘사하고 있거니와, 이런 목소리도 들린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정의와 역사정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친일 세력의 방해공작은 최근에도 있다. 지난 14대 국회에서 ‘민족정통성 회복 특별법’이 ... 제출됐다가 폐기된 것이 그것이다. 그때도 과반의석을 훨씬 넘는 의원들이 법안 제출 전에 서명했지만 ... 처리되지 못한 채 회기가 끝나 폐기되고 말았다. ... 법사위와 관련 상임위가 법안 상정이나 토론절차를 사보타지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의 후예들이 국회의원들을 억누르는 압력수단을 어떻게 갖고 있단 말인가. 그게 과연 무엇인가.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언론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일제 때의 행적으로 친일시비를 받으면서도 정치적 사회적 지배세력으로 굳건히 뿌리내린 거대 보수신문들이 이번에는 또 어떻게 작용하는지 똑똑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김재홍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그런데 여기에서 감히 말하자면, ‘친일반민족 진상규명법’ 등이 입법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일제 때의 행적으로 친일시비를 받으면서도 정치적 사회적 지배세력으로 굳건히 뿌리내린 거대 보수신문들”의 모종의 작용 때문만이 아니다.
감히 더 말하자면, 현재의 우리 사회의 성격에서 보면, 만의 하나 어찌어찌 해서 설령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입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우리 사회에 정의와 역사정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오늘날 진정으로 극복, 청산되어야 할 자들에게 시대의 면죄부를 주는 게 될 것이다.
지금 ‘친일파’를 규탄하고 그 ‘청산’을 요구하는 주장의 대부분은 이 문제와 관련된 핵심적 의의, 배경, 원인, 과제를 모두 비켜 가거나, 심지어 은폐하고 은폐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친미’의 문제이다.
‘친미’야말로 저들 ‘친일파’들로 하여금 이 사회를 지배하게 한 것이고, 그 진상 규명과 청산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원인, 배경이 아닌가! 그리고 진정으로 극복해야 할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 우리 시대의 ‘친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오늘날 저들 친미파들, 오직 이런저런 친미행각을 통해서만 그 빛나는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저들의 손으로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다만 덧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저들, ‘오늘의 친일파’를 정당화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앞에 언급한 “여의도 하늘을 떠다니는 법안”이란 기사의 필자는 쓰고 있다. 지난 8월16일 저녁에 방영된 KBS1의 ‘한국사회를 말한다’가 끝나자마자 이를 통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 친일행적을 본 중학생 아들이 “아버지, 중앙일보는 친일 안 했어요?”라는 ‘촌철살인의 외마디 질문’을 했다고.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은 이런 것 아니었을까?
“얘야, 지금 친미하고 있지 않니.”
[추기]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언론’ 자체가 아니다. 그에 의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자신들이 늘상 저지르는 범죄와 비리의 폭로’일 뿐이다. ■
아하, ‘개혁적 정치인’이란 게 그렇군요!
수시로 신문 지면과 TV 화면을 메우는 가장 뜨거운,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으레 판에 박은 듯 그게 그것이고 그만큼 역겨워서 대강 지나쳐버리는 기사 중의 하나는 내로라 하는 거물들의 ‘정치자금’과 관련한 것이다. 최근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 재벌 총수의 투신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과 그 후폭풍의 하나로서의 권노갑 씨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어지러운 정치자금 보도의 세세한 내용에는 선뜻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8월 16일 <동아일보>의 한 기사가 강하게 눈길을 끄는데, “정치 그게 이렇군요, 민주당 2000년 총선 지원금”이라는 제목의, 사실상 한 면 전체를 차지하다시피 한 기사가 그것이다.
이 기사는 우선, “정치 그게 이렇군요”라는 기사의 제목 혹은 의도에 걸맞게 부르주아 정치의 본질을 사실상 까발리고 있다.
그것이 까발리고 있는 부르주아 정치의 본질이란, ‘부르주아 대의정치(代議政治)란 다름 아니라 거짓으로 가득 찬 음험한 금권정치, 혹은 돈의 지배’라는 사실이다.
기사를 놓친 사람들을 위해서 여기에 요약하자면, 주요 내용은 이렇다.
“민주당 후보들이 2000년 총선을 앞둔 1월 1일부터 그해 5월 3일까지의 지구당 수입 지출 명세를 선관위에 신고한 바에 따르면 중앙당이 225개 지역구에 내려보낸 지원금은 ... 후보 1인당 평균 1억5000만원이었다.”
“2억원 이상의 ‘고액 지원금’을 받은 후보는 91명에 이르렀고, 그 대상은 주로 박빙의 접전을 치른 수도권과 영남 지역의 ‘꿈나무’들이었다.”
“그러나 이는 공식 예금계좌를 통해 지원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실세 라인 등을 통해 비공식 지원된 규모까지 포함하면 지원총액은 이보다 훨씬” 많아서, 각 후보에게 “지원된 중앙당 지원금의 총규모는 최소 7억원에서 10억원 정도였다.”
“비공식 지원금”은 “당내 실세들이 제공했으며 출처가 비공식적이니만큼 회계장부에는 기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 돈들을 어디에 썼나? 들어보자.
“정당연설회가 한번 열릴 경우 청중동원비는 평균 5000만원이다.”
“정당연설회나 합동연설회에 참석하면 3만원씩 준다. ... 돈은 유세가 끝나고 돌아와서 어두컴컴하게 커튼을 쳐놓고 준다. 유권자가 지구당 사무실에 와봐야 확실하게 우리 표가 된다.”
“청중동원비보다 큰 돈은 조직관리비다. 공조직 관리에만도 4억5000만원이 들어가고 향우회 등 사조직에 투입된 돈도 만만치 않다. ... 실제 선거에 들어간 돈은 모두 10억원 가량 될 것이다.”
이 정도로도 부르주아 대의정치를 ‘금권정치, 혹은 돈의 지배’로 규정하는 데에, 그것도 실제와 선관위 신고액이 얼마나 다른가를 상기하면, 그리고 그들이 태연히 ‘민의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을 ‘거짓으로 가득 찬 음험한 금권정치, 혹은 돈의 지배’로 규정하는 데에 별 이의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는 필시 이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위 얘기들은 ‘중앙당 지원금’만이고, 어떻든 본인이나 관계자들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30억을 쓰고도 떨어졌다”는 푸념, 보도도 심심지 않게 접하지 않는가.
* * *
그런데, 문제의 기사의 백미는 사실은 금권정치의 일반적인 현실을 까발린 데에 있지 않다.
백미는 사실은 “16대총선 당시 민주당 중앙당 지원금 순위”라는 표 속에 나열되어 있는 91명의 명단이다. 이는 ‘중앙선관위’의 자료에 입각하여 2억원 이상(물론 ‘신고된 공식 후원금’만을 말한다)의 ‘고액 지원금’을 받은 예의 ‘꿈나무들’의 명단인데 ...
보라!
그 꿈나무들에는 모, 모 하는, 옛 민정당이나 심지어 공화당의 묵은 쓰레기에서부터 ‘민주인사’, ‘386 정치인’, ‘개혁적 정치인’들의 기라성 같은 이름들이 함께 총망라되어 있다!
오늘날 ‘정치개혁’, ‘개혁정치’를 떠들며 ‘(개혁)신당’이 어쩌구 하는 자들을, 아니 “그래도 그에게서는 희망을 보고 싶다”고 생각되는 정치인이 있거든, 저 ‘꿈나무들의 명단’에서 찾아 보라. 필시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니.
아하, ‘개혁적 정치인’이란 게 그렇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