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현대자동차 임단투 평가서
소리는 요란했다. 그러나 전체가 하나되는 투쟁은 없었다
김 봉 길 / 현대자동차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 정책부장
현대자동차 임단투 요구안 확정과 3대 핵심사항 설정
2003년 현대자동차 임단투는 3월 25일 76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요구안을 확정지으면서 막을 올렸다. 요구안은 항간의 예측을
뛰어 넘는 수준의 상당히 상향되어, 전체 조합원들의 요구를
담아 내고자 노력했던 흔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예년의 경우와 같이 용두사미의 꼴이 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어쨌던 상당히 향상된 요구안으로 올해는
반드시 투쟁으로 만들어지는 임단투가 되겠다는 희망을 가지게도
하였다. 특히 수년에 걸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상여금
800%나 퇴직금누진제, 주당 노동시간 226시간 적용 등이
요구사항에 들어있어 기대를 부풀리게 하였다.
요구안 중 집행부에서 내건 3대 핵심과제로는
1.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40시간 즉각 실시
2. 해외공장 신설 등 자본이동에 대한 노사공동 결정
3.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이었는데 이중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투쟁에 대한
것이 핵심과제에서 비켜나가 있어 아쉬움을 주었다.
그러나 핵심요구안으로 자리잡은 주40시간에 대해서는 당시
만도나 금속노조가 이미 주40시간을 합의한 상태였으며,
전국적으로 합의의 분위기가 자리잡아 나가는 상태에서, 굳이
핵심요구안으로 잡는다는 것은 결국 생색내기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또한 자본이동에 대한 노사공동결정이라는 것은 현재 진행되는
사측의 구조조정을 막아내려는 시도는 없이 단지 선언되고 있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낳고 있다. 이후 연구소
이전문제와 2공장 경차이관 문제, 그리고 공작사업부의 엔진물량
이관에 대한 문제가 터졌을 때 노동조합 차원에서 전혀 손을
쓰지 못하였고, 오직 당해 사업부가 주관하는 투쟁으로만
진행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는 상황을 맞기도 하였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문제를 보면, 임단투요구안을 확정지은 3월
25일은, 이미 아산공장에서 아킬레스건 절단사고라는 전대미문의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여 아산지부에서는 파업투쟁이
진행중이었다. 당시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마련이 더욱 시급한
것이라는 상황인식 아래, 조직화의 요구가 거세어지는 상태였다.
그리고 3월 28일 아산하청노조가 출범하였고 4월 16일에
설립보고대회가 개최된다. 그런데 요구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면서, 시대적
조류를 읽지 못하고 스스로 갇혀 버리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식칼테러와 아산 하청노조의 태동
3월 19일 아산공장에서는 월차를 사용하려고 예약하는
노동자에게 욕설과 함께 폭력을 휘두르고 그것도 모자라 병원에
입원중인 노동자를 찾아가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잘라버리는
잔인한 사건이 벌어진다. 이로 인하여 아산공장에서는
즉각적으로 라인의 대의원을 중심으로 원․하청이 동시에
진행하는 파업투쟁이 힘차게 벌어지게 된다. 당시 파업투쟁은
자발적인 원․하청 연대파업으로써 이와 같은 전체
노동자들의 힘찬 계급투쟁은, 03임단투로 연결될 수 있는 절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본조 집행부는 물론이거니와
아산지부에서조차 이것을 방관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원청노조 집행부들의 방관을 무릅쓰고 라인에서는
원청 대의원을 중심으로 한 현장의 투쟁이 강력하게 벌어져
사측은 물론이거니와 전국적인 관심이 폭발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등에 업고 3월 28일 전격적인
사내하청노조가 탄생하게 된다. 하청노조는 일단 원청노조의
방관 속에서 소속을 ‘민주노총 금속노조충남지부 현대자동차
아산지부 사내하청지회’로 하게된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
사측의 가공할 탄압과 원청노조의 방관이 어우러져 투쟁지도부가
구속, 수배, 해고 등을 당하며 와해위기까지 맞게된다. 특히
현자본조에서는 임단투 핵심요구안에 비정규직 특별요구안을
상정해 놓고도, 전체 비정규직의 절실한 요구를 등에 업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초반의 지지부진한 임단투 진행상황, 그에 따른 조합원의 원성
고조
3월 25일 76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임단투 요구안 확정
4월 4일 요구안 발송
4월 10, 11일 임단투 승리를 위한 대의원 수련회
4월 18, 19, 25, 26 소위원 수련회
그리고 4월 18일 상견례
4월 24일 2차 협상에서 사측의 경영설명회를 듣고 난 이후
4월 29일, 5월 2일 임단투 출정식
5월 7일 5차 본교섭
5월 13일 6차 본교섭...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것이 아니라, 사측의 작전에 말려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집행부는, 그 어떤 상황의 변화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사측의 의도에 그대로 끌려가는 그야말로 힘빠진
협상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결국 약 한달 간의 협상에서 어떤
상황도 연출하지 못하자 조합원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지금 협상은 진행 중인가?”
“협상을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왜 그 잘난 선전도 옳게 안하지?”
이러한 조합원의 불만의 목소리는 임단협이 힘빠진 상태로
끌려가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할 것이다. 특히 협상을 하면서
한번도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측의 전술전략에
말려 끌려가는 인상을 풍김으로써, 과연 이번 임단협에서 투쟁을
통한 쟁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인지에 전 조합원들의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 기간 중에 노동조합의 유인물은
민투위에서 진행한 근골격계 투쟁을 깎아 내리고자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노동안전위원회 소식’이라는 유인물과
임단투속보 2호, 7호, 11호, 15호 등에 여러 차례에 걸쳐
근골격계에 대한 기사를 실으면서, 자신들이 주관한 근골격계에
대한 합동검진에 문제가 없음을 피력하였다.
또한 임단협 시기에 투쟁을 통해 산별노조를 건설하자는
민투위의 제안에, “임단투 시 투쟁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산별을 추진하겠다”던 지난해 11월의 산별 연기의 변도
무색하게,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병행하여 산별가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전체 유인물을 거의 도배를 하다시피
하였다. 산별에 대한 선전만으로 일관하며 아예 임단투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결국 임단투의 전술전략 수립과 협상에서의 전략적 선점을
위하여 구성된 임단투 기획단은 말 그대로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지지부진한 임단협은 곧바로 이어지는 산별전환투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 아래 6월 13일 전격적으로 협상결렬을
선언하게 된다. 협상을 진행한지 두 달 여 만이었고, 본교섭
16차, 실무교섭 6차를 진행하며 9개 조항만이 통과된 협상의
지지부진함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임단투 기간 중에 사측에 요구하여 실시된 노사합동 체육대회
아래 글은 바로 노동조합이 전 조합원 체육대회를 치르면서,
그의 변으로 늘어놓은 유인물 내용이다.
“노조주관 사업부대의원회 주최 03임단투 승리를 위한 전
조합원 체육대회”
“제16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 확정하였던 사항”
“집행부, 사측에 요구 울산공장 조합원 1인당 2만원 확보,
노조예산에서 1인당 3천원 부담하여 진행키로”
“울산공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본부가 전체 조합원의
체육대회 및 수련회를 진행하고 있고, 지금은 5공장으로 통합된
(구)정공노조도 매년 전체 조합원 체육대회를 실시하여 노동조합
단결의 기운을 높여 온 것과 관련하여, 현장의 요구와 집행부
검토를 거쳐 회사에 요구하게 된 것”
“이번 체육대회는 노사합동 행사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주최하고
조합원이 주체가 되는 노동조합 행사”
“더구나 비정규직 노동자도 함께 진행하여 이번 임단투에서
서로간의 이질감을 없애고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하는 03년 투쟁을 만들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그야말로 궁색함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다.
처음 사업계획을 잡으면서 가졌던 집행부의 체육대회에 대한
저의는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 공장에서는
체육대회의 상품이나 경기 이야기에만 몰입되면서, 당시 무엇
때문에 협상이 지지부진한지에 대한 조합원들의 분석과 의견들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다 막혀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었다.
분명한 것은 노사합동 행사가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각 공장별
준비는 사측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그야말로
노사합동 체육대회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변질되어 갔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도 함께 하는 체육대회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하는 03투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것은
말뿐, 이어지는 산별투표가 끝난 후에는 정규직만의 임단투로
흘러가면서 기획의 의도가 완전히 빗겨나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아산, 차량투입 비율에 따른 전면총파업과 사측의 도발
이런 와중에 아산에서는 수출물량에 대한 차량투입비율을
재조정하자는 사측의 제의가 들어왔다. 수출물량은 어차피
현장의 노동강도 강화와 직결된 중요한 협상이었다. 현장에서는,
사측이 그렇게도 주장하던 연동생산체계의 일환으로 이것을
받아들였고, 쉽게 내주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렇게 불거진 문제는 일단 사측이 토요일 철야근무 때만 차량을
1:1로 투입하자는 안을 내면서 협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협상을 진행하면서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일부
대의원들이 “투입비율이 당장 UPH 조정이라든지 피치 조정이
없는 상태에서는 현장의 노동강도 강화에 직결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대립의 상황을 맞게되었다. 협상 자체가 공전되던 중
집행부에서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여기에 반발한 대의원들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렇게 되자 정작 현장을 다독이고 일을 추진해야할
대의원들이 빠진 상태에서 집행부는 토요일 철야 시 수출차량의
1:1 투입을 합의하고 만다.
문제는 이렇게라도 합의된 사항을 안고 다시 생산을 위해서
투입된 차량들이 월요일 정규 조업시간에 라인에 걸려있는
생산차량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 되면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논의는 결론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라인은 가동되고 월요일이 되면서 별 생각 없이 투입된
수출차량의 1:1 투입사항은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인 곳은 현장의 조합원들이었다.
조합원들은 그렇치 않아도 힘든 데 월요일부터 1:1 차량이 걸린
것을 보고 즉각 반발하게 된다. 결국 트림라인부터 시작된
자발적인 작업거부투쟁은 자연스레 전공장 파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고자 라인 대의원들이 모여 논의한 결과
UPH DOWN이나 공피치 운영 등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사측과 협상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측에서는
“이미 집행부와 합의된 상황이므로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는
말로 협상하러 간 대의원들을 무색케 만들었다. 결국 사측이
만든 파업수순에 의해 파업으로 돌입한 아산지부는 전체적인
총파업을 다음날까지 지속하게 된다. 사측은 오히려 이를 반기듯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일관하였고 이어진 투쟁의 모든 책임을
물어, 파업주동자라는 올가미로 징계위를 꾸리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5명의 동지가 해고를 당하였고, 17명의 동지가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당하였으며, 5명의 동지가 고소고발을
당하여 경찰 측의 3차례의 출두요구에도 응하지 않자
체포전담반이 구성되었다. 그러던 중 아산민투위 의장인 김종범
동지가 자택에서 체포되는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아산지부 집행부나 본조
집행부는 어떤 조치도 없었고, 일방적이고도 안하무인격인
사측의 독주만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임단투
말미에, 민투위에서 적극적으로 아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집행부에서 마지막 협상카드로 아산문제를 들고
나와, 사측으로부터 “2차 재심 때 선처하겠다”는 말로써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 선처라는 것이 가리키는 것은 징계
최소화였다. 이것은 민투위가 바라는 징계무효화가 아닌
것으로써, 이후에 사측에서는 똥 누러 갈 때 마음과 똥 누고
나서의 마음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평상시가 아니라 바로 첨예하게 사측과 대치하고
있던, 투쟁의 시기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장의
투쟁을 책임지고 이를 독려해야 할 집행부에서 모르쇠로 일관,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최저치를 보인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그런대로 선전한
산별투표
집행부는 임단투를 시작하면서 초반의 기조를 투쟁으로 잡는
것이 아니라 산별가입을 원칙으로 잡았다. 이러한 원칙 속에서
처음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것을 방관하며 산별에 대한 선전에 온
힘을 쏟았다. 지난해 산별을 추진하면서 선전에 대한 비판들을
각계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올해의 산별추진은 선전에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하면서 공청회다, 토론회다, 조합원 교육이다,
대 시민 홍보다 하는 것들을 줄기차게 추진하였다.
이로 인하여 조합원들은 “임단투는 차후고 먼저 산별부터 해야
할 사항인가보다”는 비관 혹은 비판을 하게 된다. 결국 사측에
요구하여 실시된 체육대회, 끝간데 없이 행해지는 사측의
구조조정에 대한 무대책, 그리고 전술전략의 부재로 말미암아
수동적으로 끌려만 가는 협상 등에 조합원들은 식상했다. 그래서
비록 집행부가 6월 13일 사측의 지연전술에 제동을 걸고
협상결렬을 선언하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와도, 이것은 6월 26일
산별투표로 가기 위한 제스쳐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서 6월 16일
77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쟁발결의와 쟁대위를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6월 24일 실시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의 찬성율을 보여 전체적으로 충격을
주었었다. 재적대비 약 54%의 찬성율은 전체 조합원들이 무엇
때문에 쟁의행위를 하는지 몰랐던 상황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투표는 각
선거구별로 하고 개표는 사업부 단위로 합쳐서 하던 관행을 깨고
선거구별 개표를 추진하면서 부서장들의 목숨을 건 부결 선동과
동정표 모으기가 주효했다고 판단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논란으로 이어질 것인데 전체가 하나된
마음으로 투쟁을 준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나마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의미에서 요식적이지만 찬성에 찍어준다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부터 사측의 벽에 부딪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틀 후에 치뤄진 산별전환 찬반투표에서는 그 전날 나온
위원장의 긴급호소문에 힘입었는지, 혹은 조합원 스스로도
쟁의행위 찬반투표의 결과에 놀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동안
집행부에서 실시하였던 교육이나 홍보가 주효했던지 간에 투표자
대비 62.05%의 찬성율을 나타내었다. 이는 과반수도 겨우 넘을
것이라는 그동안의 항간의 예측을 훨씬 뛰어 넘는 것으로써,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의기소침해진 집행부를 그나마 위로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집행부에서 나도는 말은
‘다음에 하면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찬의 말도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산별건설의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책임은 어떤
형태로라도 져야할 것이다.
산별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대충하다보면 건설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던 그 감동 그대로를 이어
받아 전체 조합원들의 일치된 열의와 결의로써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지는 아무렇게나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노동조합은 투쟁을 통하여 완성되어지는
조직체이다. 자본과의 관계에서 싸우지 않고 획득되어지는 것은
없다. 노동조합은 투쟁을 훌륭히 치뤄냈을 때만이 절대적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체 금속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투쟁을 만들고 이러한 투쟁을 통하여 하나됨을
느꼈을 때 전체의 결의로써 만들어지는 산별만이 진정한
우리들의 산별인 것이다. 이러한 산별로의 큰길에 단위노조의
집합체인 지금의 금속노조가 전체 16만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의미하게 치러진 산별전환 투표가
찬성으로 가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쟁의행위 기간 중에 행해진 구조조정에 불구경만 한 집행부
집행부는 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용납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번 임단투에서 분명히 하며, 해외투자에 따른 노사공동결정을
핵심조항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집행부의 의지는
사측의 도발로 인하여 허망하게 날아가 버렸다. 쟁의행위 기간
중에 행해진 공작사업부의 물량이관 문제, 2공장사업부의
경차이관, 그리고 울산연구소 이전문제 등 사측의 구조조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대비한 집행부의
대응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였고, 사측의 구조조정을
막아내는데 있어 집행부의 의지가 과연 있는 것인지를 의심케
하였다.
공작사업부는 5월 12일 본관 앞에서 대의원 텐트농성에
돌입하면서 당시 지지부진을 겪고 있던 협상에 일침을 가하였다.
대의원 철야농성으로 시작된 공작사업부 투쟁은 잔업과
특근거부투쟁으로 이어지면서, 엔진부족으로 인해 울산공장 전
생산공장이 멈추어졌다. 그 투쟁의 발단은 사측이 일방적으로
대의원회와의 약속을 어기고 물량을 빼돌리면서 발생하였다.
변속기 부분은 지난 18차 노사공동위원회에서 대체차종 및 신
사양 생산 시 울산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합의하고도, 파워택에서
40만대의 변속기를 생산하려 하였다. 또한 KM170라인의 단종에
따른 대체 차종인 신 소형A/T 설비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2005년 1월 양산계획이었으나, 사측은 일방적으로 2007년 1월로
연기하여 기아자동차로 이관하려 하였던 것이다.
또한 2공장의 경차이관은 어차피 사측이 일방적으로
경희오토라는 회사에 이관코자 한데서 비롯되었다. 물량을
외주화하겠다는 것에 대해 사측의 주장은 “경차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채산성이 맞지 않는 것을 다른
사업체로 이관한다고 채산성이 바로 잡아 지지는 않는다.
대우에서 생산되는 티코가 실제 채산성이 맞지 않아 많은 애로를
겪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상황을
중소기업으로 떠넘기는 짓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사측은
일방적으로 외주화를 진행하면서 노동조합에서는 그냥 불구경만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2공장
생산계획 투쟁이다. 회사측은 2001년과 지난해, 2차례에 걸쳐
합의된 “신차(JM)투입에 대해 승용2공장대의원회와 협의 및
합의 없는 5공장과의 공동생산과 일방적인 생산계획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5공장과의 공동생산을 합의했고,
차체무빙파트 외주화의 백지화를 추진하여 약속위반에 대한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투쟁이 격화되면서 4월 30일
2공장대의원회의 본관로비 점거투쟁 등 적극적인 투쟁과 함께
2차 노사공동위원회에서 사측의 공개사과와 함께 2공장의
요구사항을 쟁취하는 성과를 올렸던 것이다.
이러한 사측의 구조조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 넓게
진행되고 있지만 집행부에서는 임단투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수방관하는 자세를 보였다. 때문에 보다 못한 당해 사업부
대의원회에서 투쟁을 박고 나가고, 이를 집행부에서 수습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는 바로 집행부
요구안에 나와있는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안 자체를 무색케 하는
것으로, 어렵게 따낸 단협을 앞으로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지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데 족했다.
가속도가 붙은 임단협, 그러나 일정에 매달린 졸속 임단협
우려
전반적으로 지지부진하던 협상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결렬선언 후
실시된 산별전환 찬반투표가 부결되고 나서, 결렬 18일째인
7월1일부로 협상이 재개되었다. 이번에는 실질적인 협상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재개되자마자 7월 4일 일괄제시안을
던지라는 집행부의 요구로써 급가속이 붙게 되었다. 이것은
집행부든 사측이든 이번 협상을 7월말 하기휴가 이전에
마무리한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7월 4일 본협상에서
제시된 사측의 안은 그야말로 전체 조합원은 물론이거니와
협상에 탄력을 붙여 가자는 집행부에게도 실망 그 자체였다.
이러함에도 쟁의대책위원회 회의에서는 투쟁수위를 높이기보다는
당초 투쟁수위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분노의 표출이 별 효과를
못 보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면서 7월 9일 진행된 주야 각
중앙집회에서 사무장과 위원장은 발언을 통하여 휴가 전 타결에
대한 의지를 확실하게 표출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받아 안고
현장에서는 어쨌든 휴가 전에 끝날 것이라는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흐르면서 시간에 쫓긴 졸속합의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지게 되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쟁대위에서는 7월 15,
16일을 전조합원 울산 총력집결투쟁으로 잡았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지부와 본부 조합원들을 한 곳에 모아 전체의 결의를
새롭게 한다는 의미였었다. 그러나 이러한 울산 총력결의대회는
단지 15, 16일이 우기로 인하여 비가 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11일 중앙쟁대위에서 급거 연기된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투쟁에 대한
의지가 없다”느니, “휴가 전 타결이 안되는 조건에서 무리하게
전체 조합원을 모은다는 것은 안팎으로 비난의 화살을 맞을 것이
확실하므로 안하는 것”이라는 등의 예측을 불러 들였다. 이러한
와중에 21일부터는 투쟁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계속해서 3시간
파업을 고수하던 쟁대위에서 1일 6시간 파업을 때리고, 전조합원
집결투쟁이 실시되는 6월 23, 24일은 주야간을 분리하여 각각
전면파업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23일은 야간조만 전면파업,
24일은 주간조만 전면파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이러한 파업의 일정들은 공세적 입장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수세적 입장의 고수라는 의미를 지닌다. 23, 24일의
주야간 분리 파업은 당시 사측이 어떤 상황에라도 하루 중에 단
1분이라도 라인을 가동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라인을 가동하지 않을 시 이것은
전면총파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입장으로서, 당시 노조의
파업에 강경 자세를 가지던 정권의 눈치를 보는 그야말로 수세적
파업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당시
기아자동차 노동조합과의 연대투쟁을 박아 놓고 있던 조합에서
가져갈 가장 저자세적인 파업이랄 수 있었다.
이러저러한 상황을 등에 업고 전조합원 울산집결투쟁은 무사히
치뤄졌지만 그 흔한 가투조차 박지 못하면서, 집행부가 밝혔고
조합원이 원했던 휴가 전 타결은 물 건너가고 휴가 후
협상재개라는 상황을 간직한 채 여름 휴가에 돌입하였다.
휴가 중에 매달린 사측의 조합원 방문, 그리고 찬성에 대한
종용
휴가 중 사측은 본관은 물론이거니와 각 사업부 관리자들을
총동원하여 출근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이것은 지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사측의 경험, 즉 각 사업부 혹은 각 부서별로
관리자들이 조합원을 설득하는 작업이 주효했다는 것에
착안하였다. 휴가기간 중에도 매일 같이 출근하여 당시
조합원들이 즐겨 찾던 관성해수욕장과 봉길해수욕장을 돌아가며
방문, 휴가를 즐기던 조합원들에게 휴가 후 실시될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 찬성해줄 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결국 이러한
설득작업은 주효하여 8월 4일 휴가를 끝내고 첫 출근한
조합원들에게 즉각적인 협상재개라는 상황이 다가오게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길게 시간끌기만을 되풀이하여 임단투에 식상해
있던 조합원들에게 금방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주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측의 움직임은, 노동조합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진행됨으로 이것이 노사간의 치열한 대립의
현장인지 아니면 노사화합적 분위기 연출인지를 의심케
만들었다. 또한 관리자들은 조합원의 집으로까지 찾아가거나
전화질을 해 휴가 후 임단투 타결을 종용하면서 전체 조합원들을
압박해 갔었다.
마라톤 협상, 그리고 타결
이러한 움직임들을 등에 업고 휴가 후 곧 바로 재개된 8월 4일의
협상에서 사측은 실질적인 안을 던졌고, 다음날인 5일 마라톤
협상으로 이어지면서 급격히 타결의 분위기로 몰고 갔었다.
이러한 움직임의 한가운데에는 그동안 협상의 추이만 지켜보던
정권에서 각 언론을 통하여 현대차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서, 국민들에게 현자노조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해 갔었고 한술 더 떠 8월 3일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발표함으로써 노사양측을 실질적으로 압박해 왔다.
특히 긴급조정권이 발동될 시 사측보다는 노측에 악영향을 더
많이 끼친다는 것이 명약관화한 상태에서 이전까지 핵심적인
조항을 비켜만 가던 사측이 휴가가 끝나고 바로 열린 협상에서
실질적인 제시안을 내놓으며 협상은 급진전되었고, 5일의
협상에서는 그 전날 제시된 안에 얼마씩을 더 보태어 준다는
것으로 귀착되면서 마라톤 협상으로 이어졌다.
8월 5일 제시된 사측안
임금 : 기본급 98,000원 인상
성과급 : 경영목표 성과급 200%
목표달성 격려금 100%
생산성 향상 일시금 100만원
의장 콘베어 수당 : 12,500원 인상
장기근속자 예우 조항 인상
주40시간 9월 1일부 전격시행
사내하청 처우관련
기본급 : 73,000원인상
근속수당, 유해수당, 고열수당 신설 및 통상급화
설, 추석 귀향비 : 각 10만원지급
하기휴가비 : 15만원지급
성과급 : 경영목표 성과급 200%
목표달성 격려금 100%
생산성 향상 일시금 50만원
이러한 제시는 일단 조합원들에게 지난달 현대중공업의 타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기에 비교하여 상당히 수긍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쟁점이 되었던 주5일 근무제가
9월부터 전격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제시되면서 잠정합의가
결정적인 것으로 되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사측의 일방적인 투입에 항의하여
파업투쟁을 벌였던 아산동지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실제 지난
7월 23, 24일 울산집중투쟁 시 각 사업부 대의원회는
물론이거니와 공소위, 그리고 각 현장조직이 이구동성으로
주창한 것이 아산문제였었다. 논란을 거듭하던 아산문제는
마지막으로 전체 징계동지들의 고소고발, 가압류, 징계 철회를
기본으로 2차 징계심의에서 선처하겠다는 것으로써 합의에
이른다. 그러나 선처라는 것이 이후 징계 최소화라는 것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들의 일관된 주장은 전체
징계동지들의 징계 및 고소고발, 가압류 철회였지만 지금의 사측
입장이라는 것은 징계최소화를 이야기하며, 고소고발은
철회하지만 핵심적인 동지 3-5명의 징계는 불가피하다는 망발을
일삼는 다. 결국 사측의 말 바꾸기에 농락당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단협 보다는 임금, 실종된 소중한 요구안들
올 임단협 또한 애초의 우려와 같이 용두사미꼴로 마무리되었다.
처음 임단협 요구안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사측과의 일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집행부에서 보여준 투쟁회피가 올 임단협에서 분명히
만회되고, 지난 투쟁의 오류로 인하여 급격히 축소되었던
노동조합의 권위가 전국에서 되살아 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본 결과 우리의 우려는 현실화되었다.
초반부터의 지지부진한 협상, 여기에 아무런 대책 없이 끌려만
가는 집행부, 산별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협상이 진척될 리
없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조합원들로부터 협상이 진행되고
있느냐는 자조 섞인 질문, 그리고 당연시하게 도출된 쟁의행위
찬반결과, 그리고 반드시 가야만 할 산별이 투쟁의 실종에 의해
초래된 부결. 이러한 와중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진행되었던
사측의 구조조정에 손 한번 못쓰고 보고만 있었던 집행부,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임단투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새로이 건설되는 비정규직노조에 비판적인 시각 외에는
그 어느 것도 함께 할 수 없었던 집행부.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개되어 급속도로 진척되었던 임단협에서 사측의 일정에
의해 끌려만 갔던 협상.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이라는 변수
앞에 대책도 없이 허물어져 버린 협상.
아쉬운 것은 우리가 분명히, 그리고 반드시 따내어야 할 것들의
실종이다.
상여금 800% 명문화는 성과급 100%와 맞바꾸어졌고,
퇴직금누진제 또한 장기근속자 예우 확대와 맞바꾸어졌으며, 월
노동시간 226시간 확정 등은 아예 이야기도 못해보고
끝나버렸다.
그러나 또 다시 가야할 노동해방의 대장정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보수어용언론에 의해 찢기워진
우리의 자존심이다.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 보수언론은
집중적으로 현대차 합의안을 놓고 설왕설래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주40시간의 전격적인 합의였으며, 다른 하나는 임금을
턱없이 부풀린 것이다. 주40시간은 현재 노동계와 자본간의
마지막 줄다리기가 한창인데, 실질 임금 삭감 없는 주40시간
합의가 현대자동차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보수언론에 의해 전국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현대차의 노사합의 때문에 다른
기업들이 다 죽는다는 논조인 것이다. 이러한 공격에 힘을
싣고자 내세운 것이 현대차 노동자들의 수령임금액이다.
현대자동차 14-5년차 조합원들의 임금이 5400만원으로
부풀려지면서 전국의 노동자들의 힘을 완전히 빠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들의
노동시간을 면밀히 살펴보는 노력이 없는 그야말로 언론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우리들은 1주일 당 50시간의 노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일상화 되다시피한 토요일
철야특근까지 합치면 전체적으로 64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전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비교해서도 가장
상위층에 속하는 노동시간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직시도 없이
그냥 다른 사업장의 임금과 비교한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인데
하물며 통계적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그중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의 임금을 비교했다는 것은 참으로 소아병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언론의 횡포에는 어떠한 것이 되든 노동조합
차원에서 분명한 반격을 필요로 한다.
임단투가 끝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산별도 물 건너갔고, 투쟁다운 투쟁도 한번
못해보았으며, 상여금 800%와 퇴직금누진제 등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과연 우리가 앞으로 어떤 투쟁으로
다가가야 할 지를 되묻는 작업에서부터 활동이 다시 재개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해방의 큰 산이 단지 03임단투에 달린 것은 아니다. 이러한
오류들을 평가하고 바로 잡으며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는 데서
우리들의 활동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어떻게 투쟁을 열어가고
쟁취할 것인지 그것은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걸어 본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