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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대노동자선전포고와 이간질

현장에서 미래를  제90호
이은영

노무현 대통령의 대노동자선전포고와 이간질



이 은 영

교육기획실






지난 18일 노무현 대통령은 또 하나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9․11 테러’에 대한 복수라는 이름하에 시작된 제국주의 전쟁이 무차별 학살과 파괴의 단계를 지나 이제 후속작업을 둘러싼 자본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정부의 추가파병 언급에 대해 전국적인 반대의사가 표명되고 있는 때에 발표된 이번 선전포고는 노동자를 향해 퍼부어진 것이다.

그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한국은 쟁의와 파업이 많고, 생산성 향상 수준을 앞지르는 임금인상이 되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점은 고쳐주겠다. 목표는 매년 절반씩 줄여가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익과 사회민주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지만, 노조가 귀족화, 권력화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느끼는 가장 심각한 부분은 소수의 대기업 노동자 권익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의 방향이 중소기업 또는 영세기업 노동자들의 권익을 다 포섭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이 문제는 어떡하든 바로 잡아 온건하고 합리적이면서도 모든 노동자들의 권익을 함께 포괄해 나가고 그런 가운데 노사 간에 대화와 타협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노사 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우선 노사문제는 스스로 푼다는 생각을 가져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바깥으로 뛰어나와 기업 경영을 혼란하게 하는 경우는 막겠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정책에 있어서 영국 대처 수상 이상으로 과격하고 단호하게 정책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9월 18일 일간신문 종합)


노무현 대통령이 중소․벤처 자본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나온 선전포고는 그동안 계속되어온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과 같은 맥락으로 과히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벌한 의지를 담고 있다. 9월 초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 신노사관계 로드맵’으로 전쟁의 밑그림을 그려놓은 정부와 자본은 타국의 유혈전쟁을 본보기로 삼아 자국내 자본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하려는 전쟁놀이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이다.



‘고쳐주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크게 두 가지의 내용으로 정리될 수 있다. ‘생산성 향상 수준을 앞지르는 임금인상을 고쳐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의 권익을 포섭해내겠다’는 것과 함께 ‘대화와 타협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노사문화를 만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선전포고라는 강수와 함께 노동자 내부를 이간질하여 손 안대고 코 풀겠다는 심사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봇물처럼 터져나오자 위협을 느낀 자본은 조직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에게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여 ‘분배된 파이’를 나누도록 강제하려는 것이다.

대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소규모 자본은 언제나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자본간에 이루어지는 이전투구 속에서 소자본은 끊임없이 자신의 몰락을 방어하기 위해 국가에 볼멘 소리로 ‘기업하기 어렵다’고 투정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여 자신의 몫을 챙기려 한다.


2001년을 정점으로 하락하였던 실업률이 상승하는 가운데 자본측의 통계에 따르면 실업자는 78만 명을 넘어섰고 전국 어음부도율 또한 증가하고 있다.1) 특히 청년실업률은 6.9%를 넘어서 전체 실업률의 2배가 넘는다. 이렇듯 실업자의 계속적인 증가는 자본에게는 풍부한 노동력을 ‘싼 값에 제때에’ 공급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여기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대기업 노동자(노동조합)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꺾어놓겠다는 것이 자본의 이해이다.


그렇다면 자본이 말하는 해결책이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자신의 임금을 깎고 노동조건의 하락을 감수하여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임금을 나눠주고 약간의 노동조건을 개선시켜 주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두번째 목표가 드러난다. 대기업 노동자의 투쟁을 ‘과격하고 단호하게’ 탄압해 자본의 요구에 순종하는 ‘온건한’ 노예로 ‘고쳐’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쳐야’하는 것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대공장 노동자가 아니라 중소자본의 형성 - 도산이라는 순환으로 자본의 무능력을 증명하고 있는 자본주의, 이 사회 구조이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자본의 대표자들은 틈만나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자본가들에게 노동운동에 대한 비난을 일삼아왔다. 지난 보도들을 살펴보자.


“협력업체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두 배, 세 배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뭉쳐서 노동운동을 앞장서 밀고나가고 있지만 노동자간 격차가 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말로만 격차를 해소하자고 한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고려해야 하는데 (노조 지도부는) 대책없이 강경투쟁만 한다. 때문에 정부로선 법과 힘으로 밀어붙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8월 13일자 경향/매일경제 종합)


“정규직 보호를 약화시키면 모든 근로자가 함께 하향 평준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돈을 주는 주머니는 똑같다. 인건비는 한정되어 있는데, 정규직을 과보호하고 과다 지급하니까 비정규직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 박용성 상의회장(조선일보 기획특집 2003.9월)


자본은 미조직 비정규직의 요구를 받아안는 척 하면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 나아가 노동운동으로 화살을 돌려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고자 한다.

사태는 분명하다. 이러한 발언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투쟁의 성과로 이어져온 성과물들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임과 동시에 노동자계급 내부를 분할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폭발적으로 전개해 온 노동운동의 발전 속에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갖는 의미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지점에서 노동자 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면서 전체 노동자의 투쟁의 기준점 혹은 지표를 형성해 왔던 데 있다. 그것은 대기업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만의 요구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노동계급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더욱 나가야 하는 투쟁의 시작을 보여준 것이다.

비록 대기업 노동조합의 투쟁이 고용유지와 임금을 둘러싼 투쟁으로 머무르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이것이 곧 노동운동의 귀족화, 권력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권의 ‘노동운동의 귀족화, 권력화’라는 악선동은 하루 이틀 계속된 것은 아니다. 자본의 위기, 그리고 노동자의 강력한 투쟁에 직면하면서 ‘대타협’이라는 악수 뒤에 보여준 행태들 속에서 확인된다. 전교조 NEIS 투쟁, 철도투쟁, 그리고 화물연대 투쟁 등에서 정부는 노사간의 자율교섭을 외치면서 공권력을 투입하고, 합의 이후에는 노동자에 대한 구속․체포 영장 발부와 함께 계약해지, 손배청구 등 여러가지 형태로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

제2, 제3의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운동의 귀족화, 권력화에 저항하는 투쟁이 아니라 여전히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착취구조를 유지 강화하고자 하는 자본에 맞선 투쟁이요, 사회에 대한 선전포고이다.



노자가 함께 할 수 있는 문화란 없다

노동운동의 중심지형이 변해 왔다고 한다. 제조부문 대공장에서 공공부문으로 그리고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로 투쟁의 핵심주체가 옮겨져 왔다는 것이다. 가장 치열한 투쟁양상을 보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은 패배를 경험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장기간 계속된 투쟁 속에서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보여준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배타적이고 방관자적인 태도는 노동자의 것이 아니다. 자본이 떠들어대는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이해차이는 노동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자본간의 투쟁이 강제한 현상의 한 측면일 뿐이며 단지 자본의 악의에 찬 선동에 맞선 적극적인 대항전선을 현실화하지 못했던 때문이다.

자본이 추구하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노동운동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의 입맛에 맞는 노사관계란 이라크에서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대리전을 치룰 새로운 땅에서와 같이 노동자에게는 죽음일 뿐이다.

더불어 노동운동 내부에서 제기되는 ‘노동운동의 귀족화, 관료화’에 대한 지적은 자본의 표현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이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 경계하고 극복해야 하는 문제이며 따라서 노동운동 내에서의 비판과 치열한 투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는 것이다.

이제 자본의 협박과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침묵 속에서 다시 과감하게 일어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이상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에 매몰되는 양상으로 조직되어는 안 된다. 대기업․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의 현장을 넘어 지역적, 전국적 차원의 의식적인 연대의 틀을 형성하려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운동이 자본의 허무맹랑한 선전선동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노동조합 운동이 보여준 오류와 한계를 극복해 가는 새로운 운동으로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시기 과거의 투쟁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 맡겨진 역할일 것이다.


노동자의 독자성은 자본에 대한 노동자 이해의 독자성,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투쟁에서 다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비록 그 한걸음이 더디고 힘들어도 거대한 투쟁의 함성이 ‘대공장―정규직’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아산에서 울산에서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자본의 더러운 사탕발림과 선전포고에 대해 습관처럼 뱉어내는 한마디로 시작하자. 에이 C8!! 

한/노/정/연


1) <참고> 2003년 8월 고용동향                                     (단위: 천명, %, %p)

1) <참고> 2003년 8월 고용동향                                     (단위: 천명, %, %p)

구분

2002.8

2003.7

2003.8

 

동월비

 

동월비

 

동월비

경제활동인구

취업자

22,223

2.2

22,456

-0.3

22,126

-0.4

실업자

691

-11.1

781

18.5

756

9.4

실업률

3.0

 

3.4

 

3.3

 

비경제활동인구

14,098

-0.2

14,128

2.4

14,508

2.9

구분

2002.8

2003.7

2003.8

 

동월비

 

동월비

 

동월비

경제활동인구

취업자

22,223

2.2

22,456

-0.3

22,126

-0.4

실업자

691

-11.1

781

18.5

756

9.4

실업률

3.0

 

3.4

 

3.3

 

비경제활동인구

14,098

-0.2

14,128

2.4

14,508

2.9

    연합뉴스 2003.8.18일자. 실업률은 구직활동을 포기한 인구 즉, 비경제활동인구를 제외한 인원에 대한 비율이다. 15세 이상인구 37,390천명 중에서 14백만명이 더 이상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3-09-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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