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동문화일꾼들은 이슬만 먹고 산다?
박선봉 / 전 민주노총 문화국장
모두가 힘든 세상이다. 날로 늘어가는 노숙자들은 추운 겨울이
힘들고, 난데없는 기생충 때문에 김치마저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극빈층도 힘들고, 이제는 쌀시장마저도 개방될 위기에 처해 있는
농민들도 힘들고, 똑 같은 노동을 하지만 반쪽짜리 인생을
살아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힘들고, 항상적인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는 정규직 노동자도 힘들고, 이 땅에 사는 모든
민중들이 힘들다.
노동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힘들다. 산더미처럼 싸이는
일에 이리저리 채이고,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에
비해 보잘 것 없는 활동비로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박탈감에
겨울이 춥기만 하다.
노동문화일꾼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공연비라도
받으니까 조금 났겠지 싶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가수들이야 한 사람이니까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밴드나 단체는 몇 배로 더 힘들다. 밴드들이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그나마 공연이 많은 ‘꽃다지’ 성원들이 한 달에 활동비로
30만원을 받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기껏해야 1주일에 한두 번 하는 공연으로 받는
돈으로 일곱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한다. 사무실 운영비에, 각종
세금, 게다가 항상 적자인 콘서트와 음반제작도 해야 한다.
그들의 소원은 50만원 받아 보는 거라고 한다.
노동문화일꾼들은 이슬만 먹고 살라고 한다. 동지들끼리 무슨
돈을 받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공연비는 의례
적게 책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니 자기들은 그
정도에 섭외했다고 심지어는 자랑을 하기도 한다.
투쟁이 급박할 때는, 지불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장기투쟁
사업장 같은 경우는, 정말로 여유가 없어서 공연비를 적게 줄
수도, 못 줄 수도 있다. 그런 걸 가지고 문제 삼는 문화일꾼들은
없다. 그러나 막상 투쟁이 끝나고, 지불능력이 있을 때는 부르지
않는다. 이제는 여유가 있으니 조합원들을 현혹할 수 있는
대중가수를 비싼 돈 들여 부른다.
노동문화일꾼들이 대중가수에 비해 기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 안달하는 제도권 기획자들도
많다. 극히 제한적인 공연밖에 할 수 없는 투쟁 때는 이러저러한
토를 달아서 공연을 섭외하고, 정작 편하고 다양하게 공연을 할
수 있는 자리에는 이들을 부르지 않는다. 그러면서 걔들은 항상
그런 노래 밖에 못 부르느니, 기량이 떨어지느니, 다양성이
없느니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들에게 문화일꾼들은 일회용
젓가락에 불과하다. 필요할 때는 없어서 난리치지만 그 다음에는
똥친 막대기 취급이다.
노동자문화는 문화일꾼 몇 명이 끙끙거리며 짊어지고 간다고 될
게 아니다. 노동조합이, 간부들이,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이 함께
나누어지고 가야 할 소중한 것이다. 잘 못 다루면 부서지게
마련이고, 한번 부서지면 다시 만들기도 힘들다. 그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의 경우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노동자문화는 과거의 역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노동자문화가 없어진 것과 똑 같이 그에 발맞춰 그들 나라에
노동운동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문화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생활방식과 의식적 기초다. 이를
버리는 것은 한순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문화를 만들고 키워나가는 일을 그만 둘 때
노동자는 좀 더 빨리 자본의 요구에 순응하는 계급이 되어갈
것이다. 자신의 문화를 갖지 못한 계급은 타 계급에 종속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