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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을 위한 수순 밟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91호
정옥순

이라크 파병을 위한 수순 밟기
-국익이 마치 전체 노동자 민중의 이해인 것처럼 떠드는 거짓말을 집어치워라!-



정 옥 순
노동자의 힘 정책선전국장






터키의 이라크 파병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슬람 국가로서 파병이 결정난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슬람 과도정부는 터키­쿠르드 전쟁 시 3만 명을 살해한 경험이 있는 ‘인접국 터키의 파병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할 것’이라며 터키 파병을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파병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일부 국가들이 이를 계기로 파병을 위한 수순 밟기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추가 파병 수순 밟기
지난 9월 3~4일 서울에서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4차 회의’에서 미국은 한국에 폴란드형 사단 수준의 파병 요청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반대의사를 개인적으로 밝히기도 했지만, 노무현의 경우 별다른 의견을 내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현은 ‘파병 문제는 북핵과 연계되어 판단해야 한다’며 그동안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권은 파병 수순을 밟아 가는데, 이것이 마치 ‘국익’과 ‘유엔결의’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급기야 1차 파병 때 거론된 비전투병 파병의 명분은 사라져 버렸다. 아예 전투병을 파병한다면 자체 지휘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파견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 위상을 높이고 한국군의 작전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여론을 주무르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 최병렬은 파병과 관련하여 ‘여론을 설득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지도력 문제’로 치부하며 자신은 파병에 대한 적극적인 주장을 돌려 말함으로써 파병반대여론을 비껴가려 하고 있다.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자본진영에서도 노무현 발언 직전에 성명을 통해 ‘국익과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파병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만의 이해로 보자면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노무현 정권과 자본이 구상하는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을 위해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제국주의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기에 ‘국익’이란 더더욱 그들만의 주장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익’이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과연 파병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지배계급이 떠드는 것처럼 노동자 민중의 이해에도 부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국익인가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애써 모른 척 하려 한다.
한편, 비전투병 파병은 허용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현재 이라크 재건을 목적으로 파병된 제마/서희 부대는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총을 들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유엔이 다국적군 파병을 결의하면 사정은 달라지는가? 역시 아니다. 현재 유엔은 이라크 침략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어떠한 국제 조정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유엔은 유명무실하다. 설사 지금은 이라크 파병 결의안에 대해 유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을 비롯한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것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예컨대 이라크 내에서의 그들의 기존 이권을 보장한다고 하면 그들은 언제든지 냄새나는 타협에 이를 수 있다. 그런 속에서 유엔 결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군다나 파병을 결의한 터키의 경우 쿠르드족 소탕을 파병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병이 결정된다면 한국군은 쿠르드족 소탕작전에 동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부시
2003년 3월 20일에 발발한 이라크 침략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종전이후 이라크에서 죽어나간 미군의 수가 전쟁 당시보다 더 많아지고 있으며, 부시 행정부가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는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1991년 걸프전쟁이후 미국은 유엔의 이름으로 이라크에 대한 무기 사찰과 감시를 끊임없이 진행해왔다. 혹시 투명 유리 속에 갇힌 이라크에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몰래(?) 갖다놓았다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평화를 지키고 이라크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침략전쟁을 감행했다. 여기에 바로 미국이 그토록 숨기고 싶었을 전쟁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미 군산복합체의 후원을 등에 업고 당선된 부시었기에 그들의 이윤 창출에 봉사해야하는 당연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가시인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의 석유를 중심으로 한 중동재편을 위해, 전쟁을 통한 질서재편이라는 폭력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또한 이라크 등 몇몇 국가의 유로화 석유 결재가 미국 경제에 미칠 경제적 파장을 감안했을 때도, 이를 제압할 선제공격은 최소한 그들에게만큼은 지상 최대의 명분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라크 공격의 이유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면서 부시의 인기는 날마다 떨어지고 있다.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되지 않을까 하는 국내 여론과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심리적 공황상태는 부시로 하여금 더욱 수렁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것은 2004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부시로서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부시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 파병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요청을 받은 세계 각 국은 부시에게 손을 선뜻 내밀지 않고 있다. 이라크 침략 전부터 이해 대립을 보여 왔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경우 파병은 고사하고라도 10월 4일 제출한 미국의 이라크 파병 수정 결의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 서로간의 전쟁은 아니지만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고립을 방관하고 있는 것은, 그들간의 위기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시의 빈손 외교는 국내 동원을 늘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으며 이랬을 때 부시의 정치적 위기는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터키의 파병 승인이 부시의 숨통을 트이게는 했으나, 이라크 과도 정부의 거부에 직면해 있으니 이 조차도 만만치는 않는 상황이다.


파병 반대 투쟁을 넘어 반제․반전․반세계화 투쟁을 벌여내자!
이미 한승수 주미대사의 ‘무조건 파병론’과 노무현의 ‘파병-북핵연계론’은 파병이 암묵적으로 기정 사실화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절차 밟기와 시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감행한다면 부시는 이라크 수렁에서 잠시 목을 뺄 수 있겠지만, 노무현은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 민중이 부시의 파병 요구, 즉 노무현의 파병 결정을 저지한다면 그것은 부시와 노무현에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힐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파병 문제는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존재하는 정세 위에 놓여 있다. 따라서 파병 반대 투쟁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반대 투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라크 파병이 한반도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상은 모순이다. 오랜 기간 무기 사찰을 받아 온 이라크는 ‘핵무기가 없다고 해도 부시행정부가 있다고 주장’해 침략전쟁을 감행했는데, 북한이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한 마당에 부시에게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이 보다 더 좋은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따라서 이 투쟁은 단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반대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의 이라크 점령 반대, 즉 세계적 차원의 전쟁 반대 투쟁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이 투쟁의 최선두에 지배계급만의 ‘국익’ 논쟁이나 협소한 ‘민족’ 범위를 넘어 전 세계적 차원의 노동자 민중의 연대투쟁, 공동투쟁이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 민중들의 제국주의 반대 투쟁으로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 민중은 이라크 침략 전쟁의 본질이 지구적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는 자본 사이의 긴장 때문이며, 이것의 정치․군사적 긴장이 전쟁으로 표현된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수탈자 자본간의 긴장은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로 인한 무한 착취와 억압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그 갈등과 긴장 또한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 민중은, 파병 반대 투쟁을 넘어 지구적 수준의 자본의 위기에 파열구를 내기 위해 전 세계 노동자 민중과 함께 반제․반전․반세계화 투쟁으로, 자신의 투쟁영역을 확대해 가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2003-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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