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국가보안법에 의해 이적단체구성과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죄로, 지난 10월 16일 보건의 료운동단체인
‘진보의련’에 대한 항소심 2차공판이 열렸읍니다. 피고인
권정기의 최후변 론 내용입니다.
진보의련 사건 최후진술
최종발언
권정기
중세에 종교재판에서 재판관은 갈릴레오에게 물었습니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고 믿는가?” 그리고 지난번 7월 1차
공판 때 재판장님은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독재가 필요하다고 아직도 생각합니까?”
자연과학적 신념과 사회과학적 신념이라는 신념의 종류만이 틀릴
뿐, 똑같이 개인의 신념을 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종교재판을
하는 중세를 야만의 시대라고 한다면, 사상을 재판하는 현대도
똑같이 야만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세 봉건사회가
유한하였듯이, 현대의 자본주의사회도 유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진보의련 운동을 하면서, 보건의료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필요한 만큼 무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보건의료의 분배문제를 넘어서서, 노동자 민중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쥐어야만 노동자 민중이 건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범죄사실’이 되어 저와 우리 회원들은 2001년
10월 경찰청보안대에 체포되어 2박 3일 잠도 못자고 조사를
받았고, 그해 12월부터 2002년 1월까지 한달이 넘게 검찰청에서
다시 조사를 받았고, 1월말에 저와 다른 1인에 대해 공소가
제기되어 2002년 2월부터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1심 재판은
매월 1회 공판이 열렸으며, 2002년 한해를 넘기고 2003년 6월이
되어서야 판결이 났습니다. 재판결과는 이적단체구성과
이적표현물제작배포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첫째, 대한민국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없습니다. 이것을
보장한다고 하는 헌법조항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이른바
반국가단체라는 북한을 현대그룹의 자본가들과 김대중 등과 같은
권력을 가진 자들은 마음대로 드나들고, 소도 주고 쌀도 주고
돈도 주며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자본가와 권력자들에게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만의 아니라 행동의 자유까지 무한히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단체행동의 자유는 자본가와 권력자에게만 무한히 보장되고,
노동자민중에게는 허용되지 아니한다라고 헌법조항을 수정하는
것이 보다 솔직하고 정확할 것입니다.
둘째, 입법ㆍ사법ㆍ행정부로 대표되는 국가기구는 노동자
민중에게 그리고 노동자 민중들의 편에 서려는 사람들에게는
폭력기구일 뿐입니다. 노동자 민중의 건강권과 노동자 민중의
권력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2001년 10월부터 2003년 10월
오늘까지 저는 경찰과 검찰, 그리고 사법부, 즉 국가기구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평화롭게 출근하다가 대로에서 경찰에게 습격을 받아
체포되면서, 일순간 삶 전체가 조각나는 듯한 절망감에
허우적거렸습니다. 자택수색을 마치고 연행되어갈 때, 엄마 뒤로
몸을 숨기고 엄마 허리춤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며 두려운
눈빛으로 무언가 말하려는 듯 내게 눈을 맞추던 5살난 딸.
아내의 흐느낌.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만2년이 넘게 꼬뚜레에 꿰인 소처럼 검찰과 법원이 이리
가라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하면 저리 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합법적 폭행’을 얼마나 더 견디어 내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만든 입법부, 이를 집행하는
행정부, 그리고 법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하고 있는 사법부, 즉
국가기구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폭력기구일 뿐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셋째, 경찰과 검찰, 그리고 사법부는 노동자 민중을 적으로
규정한다고 고백했습니다. 1심에서 재판부는 진보의련을
이적단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적’, 즉 우리가 적을 이롭게
했다면, 이 때 ‘적’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북한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진보의련이 북한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은
경찰도, 검찰도, 그리고 재판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진보의련이 이적단체인 이유는, 노동자 민중의 건강권과 노동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노동자 민중을 이롭게 하자고
주장하는데, 경찰ㆍ검찰ㆍ재판부는 이를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렇다면 진보의련을 이적단체라고
규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적’이란 다름아닌 노동자
민중이다”라고 경찰ㆍ검찰ㆍ재판부가 스스로 실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 민중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끝없는 내전―계급투쟁―을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계급의 조직된 폭력인
국가기구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상입니다.
2003년 10월 16일
서울고등법원 404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