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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노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9호
이원재

법과 노동

노조전임자 문제의 단체교섭 대상성


이 원 재 (변호사)


1. 머리말

정부는 작년말 이래로 정부투자기관을 비롯한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전임자수를 축소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이에 대해 사용자측은 환영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노동계에서는 노동조합 전임자수의 축소가 업무역량의 감소를 초래하며 이는 곧 노동조합 자체의 위축으로 귀결될 것을 우려하여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전임제와 관련하여 최근 대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은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 판결은 노조 전임제가 임의적 교섭사항에 불과하며 중재재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이에 따르면 전임제도의 유지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2. 판결의 내용 및 그 의미

가. 판결요지

이번 판결은 아직 그 전문이 공간되지 않아 사안의 자세한 내용이나 하급심의 판단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형편이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주) 한밭택시 등 대전지역 35개 운수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중재재정결정취소 청구소송의 상고심인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노조 전임제가 노조에 대한 편의제공의 한 형태로서 사용자가 단체협약 등을 통해 승인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임의적 교섭사항에 불과하기에 중재재정의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 중노위가 재심결정을 내린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하였다.

나. 판결의 의미

어떤 사항이 중재재정의 대상으로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곧 그 사항과 관련하여 쟁의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중재는 노동쟁의의 한 절차이기 때문에 중재의 대상은 바로 쟁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교섭사항을 의무적 교섭사항과 임의적 교섭사항으로 나누어 어디에 해당되는가를 판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무적 교섭사항에 대해서는 노동쟁의가 가능하지만 임의적 교섭사항에 대해서는 쟁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판결이 전임제도에 대하여 임의적 교섭사항에 불과하며 중재재정의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판단한 것은 바로 전임제도와 관련한 쟁의를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노동삼권중 어느 하나가 제약되는 경우 노동삼권 전체가 유명무실해진다. 그 제도화된 사례를 단체행동권이 법적으로 제한되는 공무원이나 방위산업체의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거니와, 이는 특정 사항에 관련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임제도와 관련하여 쟁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전임제도의 존폐가 전적으로 사용자의 의사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번 판결은 전임제도의 의의와 근거 그리고 단체교섭 및 쟁의대상사항의 범위라는 두 가지 쟁점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실이나 노동법 이론을 도외시하고 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3. 노동조합 전임제도의 의의와 법적근거

가. 노조 전임제도의 의의

1990년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단체협약에 전임규정을 둔 경우는 전 직종 평균 90퍼센트이고, 전임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 전임자의 급여를 회사에서 지급하도록 하는 규정을 둔 협약은 96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전임제도가 거의 보편화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기업별 노조형태 때문이다. 기업별노조에서 조합의 임원은 동시에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종업원으로서의 지위도 유지하므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사용자와 대립되는 위치에 있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의 전임제도에 해당하는 ‘재적전종제도(在籍專從制度)’를 기업별노조의 특색으로 기업별노조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재정이 빈약하고 업무시간중의 노조활동이 제약되는 기업별 조직체계에서, 그리고 조합원이 아닌 자가 조합활동에 개입하는 것이 차단되어 있는 법제(제3자 개입금지)에서 조합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전임제도가 일반화된 것이다. 이에 반해 산업별 노조가 일반화되어 있는 서구의 경우에는 노조임원이 개별기업의 종업원이라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우리나라와 같은 전임제도는 없으며 다만 개별기업의 종업원대표(독일의 근로자평의원, 영국의 직장위원 등)에게 유급의 상시전임을 제도화하고 있을 뿐이다.

나. 전임자인정의 법적 근거

노조전임자에 대하여는 그동안 노조전임자가 종업원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노동조합업무에 전념하고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점에 관한 논의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에 관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설은 전임제도가 헌법상의 단결권에 포함된 권리이므로 사용자는 이를 승인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하는 이른바 단결권설 그 논거는 ① 재적전임를 취한 기업별 노동조합은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점 ② 다음으로 ‘각국의 단결권은 각국의 단결의 모양에 즉응하여 내용이 채워’져야 하고 헌법 제28조에 의한 ‘단결권 조항이 즉자적으로 현실의 단결활동을 승인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 ③ 그리고 전임제는 기업별 노동조합이라는 단결의 본질적인 기능과 필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 ④ 따라서 재적전임제는 단결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구성한다는 점 등이다.
과 노조전임자를 인정하는냐의 여부는 계약자유의 원칙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협정설 그 논거로 ① 전임제도가 조합활동의 추진에 있어서 남겨진 유일한 길이라거나 또 그것 없이는 단결권이 유지될 수 없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점 ② 이 제도가 사용자의 편의제공인 것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헌법에서 무매개적으로 사적 권리성를 도출할 수 없다는 점 ③ 전임금지에 대해서는 헌법상의 단결권이 아닌 단체교섭 침해문제로 대처할 수 있고, 오히려 그 쪽이 이미 정착하고 있는 이 제도의 존재형식에 맞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로 크게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조는 전임제도의 인정을 사용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 내용은 단체협약에 의해 결정되며 단체협약에 그러한 규정이 없는 경우 노조임원도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견해나 노조전임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협약이나 관행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우가 많음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조합 전임자의 지위가 사용자의 태도 여하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단결활동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으므로 노조전임자는 법적 보호를 충분히 받아야 한다는 견해 등 단결권설의 입장에 선 학설이 많다. 반면 대법원은 이번 판결 이전에도 단체교섭에서 전임요청이 회사에 의해 거부되자, 근로자단체의 간부가 결근을 한 사안(회사의 동의 또는 승인없이 전임한 경우)에서 근로자단체의 간부로서 임금협상의 원활한 진척을 위하여 결근하였다는 사유만으로 이를 무단결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해당 근로자를 해고시킨 것은 부당노동행위가 된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여, 노동조합의 전임요청에 대하여 회사는 이를 승인할 의무가 없음을 전제로 하는 판단을 한 바 있으며, 하급심에서도 「노동조합전임자제도를 둘 것인가의 여부와 노동조합전임자의 인원수, 처우 및 어떠한 자를 어느 기간동안 어떠한 전임개시 및 전임해제절차에 의하여 노동조합 전임자로 종사하게 할 것인가의 여부에 관하여는 노동조합법상 특별한 규정이 없으므로 원칙적으로는 노동조합과 사용자측간의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고 그 협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경우에는 노동조합과 사용자간의 관행에 따라 결정함이 상당하다고 하여 위 협정설에 따른 듯한 판단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기업별 노조가 압도적이며 쉽게 변화될 가능성이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기업별 노조가 갖는 취약성을 고려하면 전임제도는 단결권보장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이며 헌법 제33조와 노동조합법 제1조, 제23조를 근거로 인정되는 권리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전임제도 자체는 단결권의 일환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사용자는 전임자의 수나 근무시간, 근무조건 등에 관해서 별도로 협의를 할 수는 있겠지만 전임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다. 전임제도와 관련한 이번 판결의 문제점

이번 판결은 전임제도 자체를 사용자의 편의제공으로 보아 임의적 교섭사항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노조형태와 결부되어 단결권의 보장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며 헌법과 노동조합법에 의해 인정되는 것이고 단지 사용자가 단체협약 등을 통애 승인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전임자의 수나 근무시간, 근무조건 등에 관하여는 사용자와 별도의 협의를 거쳐야겠지만 이는 사용자측에 전임을 인정할 의무가 있느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이며 두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진지한 검토도 없이 전임제도를 싸잡아 사용자의 편의제공으로 본다면 당연히 사용자는 자신의 이해에 따라 전임자를 둘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이는 결국 사용자의 이익을 해친다고 판단되는 노조의 전임자에 대한 전면부인으로 귀결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불을 보듯 빤하다. 법원은 이번 판결로 노조전임자수의 축소라는 정부의 입장을 한참 앞질러 아예 전임제도의 폐지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4. 임의적 교섭사항의 판단 기준

가. 단체교섭 대상사항 분류의 체계

단체협약의 내용을 규범적 부분, 채무적 부분, 조직적 부분으로 나누어 이에 따라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통상의 기준은 그 법적 근거나 구별기준이 뚜렷하지 않아 이를 근거로 단체교섭이나 쟁의의 가능성·정당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단체교섭 대상을 의무적 교섭사항, 임의적 교섭사항, 금지 교섭사항 등으로 나누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번 판결에서 전임제도를 임의적 교섭사항이라 판단한 것도 이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단체교섭 대상을 위와 같이 나누는 것은 미국 대법원의 삼분적 단체교섭분류체계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의무적 교섭사항은 일방이 그 대상에 대한 교섭제의를 하는 경우 타방이 그 교섭을 거부할 수 없으며, 그 대상에 대한 교섭이 파국에 도달하기 전에는 그 대상에 대한 단체행동 즉 파업이나 직장폐쇄를 실시할 수 없는 교섭대상이다. 임의적 교섭사항은 일방이 그 대상에 대한 교섭제의를 하는 경우 타방이 그 교섭을 합법적을 거부할 수 있으며, 그 대상이 단체협약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 이를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고, 노사간 모두가 동 대상에 대한 단체행동을 할 수 없는 교섭대상이다. 마지막으로 금지 교섭사항은 그 대상에 대한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이 법적으로 금지되며, 그 대상을 규정하는 단체협약은 무효가 되는 교섭사항이다.

나. 교섭사항 분류의 기준

그러나 특정 교섭사항이 위 삼분체계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보통 임금, 근로시간 및 근로조건 등에 관한 사항이 의무적 교섭사항에 속하는 것이지만 ‘임금, 근로시간 및 근로조건 등과의 관련성’의 범위를 확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법원들은 최근에 ‘연관성’, ‘영향성’, ‘균형성’ 등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연관성 기준’은 특정사항이 ‘임금, 근로시간 및 근로조건’과 경영권 중 어느 것과 더욱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가를 판단하여 전자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에는 의무적 교섭사항으로 보는 것이다. ‘영향성 기준’이란 경영권에 관한 결정이 ‘임금, 근로시간 및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친 경우에는 그 영향은 의무적 교섭사항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균형성 기준’은 특정 사항에 대한 단체교섭이 근로자 및 사용자에게 주는 이익을 비교형량하여 근로자의 이익이 더욱 큰 경우에는 의무적 교섭사항에 포함시키는 기준으로 현재 미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준이라 한다.

다. 이번 판결의 문제점

단체교섭대상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노동쟁의의 범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또한 어려운 문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은 여러 가지의 기준이 제시되는 것도 이런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임금, 근로시간 및 근로조건과의 ‘관련성’에 대해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임금, 근로시간 및 근로조건 ‘해당성’만으로 단체교섭대상의 범위를 정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번 판결에서는 전임제에 대한 판단과 함께 조합원의 근무시간중 노조활동이 중재재정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판단하면서 “조합원의 근무시간중 노조활동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근로제공 의무와 배치되므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고, 근로자의 대우에 관해 정한 근로조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종전 단협에 그 사항에 관한 규정이 있어도 당연히 근로조건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그런 인상을 더욱 굳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단체교섭대상의 범위를 협소하게 해석하면 정당한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범위는 지극히 축소되고, 불필요한 노사간의 의견대립과 불법 노동쟁의를 양산하게 된다. 교섭사항의 범위를 둘러싼 다툼이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그 판단기준을 올바로 정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한/노/정/연

1996-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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