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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쓴 자본주의와 투옥(2)

현장에서 미래를  제93호
리차드 보젤

기획번역 2

다시 쓴 자본주의와 투옥(2)

리차드 보젤/ 사회주의 이론연구가

* 지난 내용 요약

이 글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감옥의 연관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오르고 내림에 따라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비율도 그에 따라서 오르고 내리게 됩니다. 소수 인종들은 인종차별의 존재와 함께 불안전한 경제적 지위로 인해 훨씬 더 감옥에 많이 그리고 쉽게 들어가게 됩니다. 미국에서 소수 인종과 죄수들은 모두 산업 예비군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계급적 모순 그리고 인종적 모순이 중첩하는 미국의 감옥에서 6~70년대에 많은 투쟁들이 있었습니다. 군부대 투입에 따른 학살로까지 이어진 이러한 투쟁들의 여파로 국가는 새로운, 더욱 가혹한 정책을 선보이게 됩니다. 바로 슈퍼맥스입니다.




슈퍼맥스 교도소
슈퍼맥스는 “가장 최고로 안전한(super-maximum)” 투옥을 의미하는 교정당국의 약자이다. 미국 법무성의 부대변인인 체이스 리벨란드는 슈퍼맥스 교도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감금 시설 내의 고도로 구속적이며 고도의 보호 능력을 지닌 주거 공간. 흉악범죄자나 반복적인 폭력 행위를 하는 죄수, 탈출을 꾀하는 자나 감금 시설로부터 탈출했던 자, 혹은 교정 시설 내에서 소요를 일으키거나 소요를 선동하려고 기도한 자들을 일반 죄수들로부터 또한 서로 서로 격리시킬 수 있는 완전한 감금 시설”

슈퍼맥스의 광범위한 사용은 최근의 현상이다. 교도소의 관리들은 전통적으로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는 재소자들을 격리시켜왔다. 하지만 70년대와 80년대에 이러한 “감옥 안의 감옥”에 대한 법적 규제 노력으로 인해 관리들은 그것의 사용이 제한 당하게 되었다. 새롭게 지어진 또는 개조된 시설인 슈퍼맥스 감옥은 재소자들을 감옥내의 프로그램들과 운동, 직원, 그리고 다른 재소자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제한시키는 고도의 고립적인 투옥을 위해 고안되고 건설된 것이다. 슈퍼맥스 감옥은 격리의 실행에 대한 법적 제한을 효과적으로 철폐시킨다. 그리고 이 시설에서는 모든 재소자들이 사실상 독방 감금 하에 있게 되므로 개인을 제어하는 제도적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슈퍼맥스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교도소의 관료들이 배운 교훈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치의식화된 재소자들에 의해 감옥 시스템이 위협받는 일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6~70년대에도 “떼어놓기” 정책은 존재했다. 문제 재소자로 한번 인식당하면 각 지역으로 흩어져서 다른 주에 있는 교도소로 분산되었다. 혹은 그들의 단결을 막기 위해 연방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물론 많은 경우 그러한 결과는 정치의식화된 재소자가 새로운 곳에서도 다른 이들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 것이었다. 슈퍼팩스는 이러한 위협에 대해 모든 선동가들과 다른 “말썽꾸러기”들을 모조리 고도의 감금 시설에 가둠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말썽꾸러기”들을 슈퍼맥스에 고립시킴으로써 생긴 또 하나의 이점은 그들을 6~70년대 위력을 떨친 조지 잭슨의 영향력처럼 바람직하지 않는 외부 세력과 접촉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데 있다. 동시에 슈퍼맥스는 지난 급진적 시기(6~70년대)의 정치적 봉기로부터 배운 두번째 교훈을 나타내준다. 그것은 바로 조직화된 재소자들에 대한 살상무기의 사용이나 그에 따른 정치적 악영향 모두가 지난 25년간 최소화되었다는 것이다.

슈퍼맥스 안에서의 생활은 엄격하다. 재소자들은 보통 좁은 독방에서 인간과 거의 접촉하지 않거나 혹은 전혀 접촉하지 않은 채 홀로 하루에 23시간을 보낸다. 감방과 샤워실문은 제어센터에서 원격으로 조종된다.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샤워실로의 정기적 이동조차 없애기 위해 독방 안에 미리 프로그래밍된 샤워 시설을 설치한다. 의료와 종교 그리고 상담 서비스들은 감방 창문 너머로 제한되며 혹은 CC 카메라를 통해 이루어진다. 음식과 세탁물은 안전한 출입구를 통해서 전달되는데 이마저도 죄수들을 진압할 용도의 가스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만이 접근한다. 그런데 슈퍼맥스는 사생활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재소자들은 카메라나 감청 장치를 통해 계속적으로 감시당하며 내부 통신망을 통해 지시를 받게 된다.

독방 안에서의 활동은 소유물에 대한 엄격한 제한에 의해 제약받는다. 그리고 독방 외부에서의 활동은 극히 드물다. 재소자들은 속박된 채 이동하며 적어도 두 명의 경비병으로부터 호송된다. 재소자들은 일주일에 3시간에서 7시간정도 봉쇄된 장소에서 혼자 운동할 수 있으며, 한달에 기껏해야 한번, 승인된 사람에 한해 면회를 허가 받는다. 외부 세계와의 의사 교환은 교도소별로 다양하지만, 제한적이며 철저하게 감시당한다.
슈퍼맥스의 재소자들은 사회 복귀 훈련에도 거의 참여할 수 없다. 훈련 프로그램이나 교육 기회에 대한 접근은 제한되며 오직 텔레비전이나 편지를 통한 것만이 허용된다. 감옥을 담당하는 목사나 승인받은 성직자 혹은 자원봉사자들이 창살 너머에서 종교적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종교서적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제도적 폭력의 사용은 슈퍼맥스 안에서 항상 존재하는 위협이다. 속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고 재소자들을 감방에서 들락날락 이동시키는 것은 “정기적인 일과”로 간주된다. 또 다른 무력은 자해행위를 미연에 방지한다거나 호전적이고 반항적인 재소자들을 제압한다는 명목으로 감옥의 관료들에 의해 임의로 사용된다.

슈퍼맥스의 가장 나쁜 점 중의 하나는 죄수에 대한 격리 조치가 독단적이라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죄수들에 대한 분리 조치가 반드시 적법 절차에 의해 정당화되고 또 시행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슈퍼맥스 시설로 죄수를 넣고 빼고 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관료들에게 있으며 따라서 전적으로 그들의 임의적인 재량에 달려있다.
재소자들에 대한 또한 슈퍼맥스에서의 장기간 투옥에 의한 재소자들의 충격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 이 문제점에 대한 리벨란드의 입장은 교묘하게 사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인간 관계를 제한한 채, 생산적 행위를 거의 하지 못하고 개인에 대한 최대한의 통제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하루에 23시간 동안 재소자들을 독방에 격리시키는 것이 주는 충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사실을 알아보면, 독방 감금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연구는 이미 150년 전부터 존재했다. 미국 대법원은 1890년에 독방 감금은 정신 의학에 기반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독방 감금의 충격에 대한 리벨란드의 입장은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선다. ― 그것은 뻔뻔스럽게 허위정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격리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재소자 그들 스스로의 명백하고 또렷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11년 동안의 징역 기간동안 8년 6개월을 독방에서 보낸 조지 잭슨은, 솔레다드 교도소의 악명높은 MAX ROW 징벌 독방의 영향에 대해 명쾌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정신의 논리적 기능을 파괴하고 사람의 사고는 완전히 파편화된다.
소음, 좁은 통로로 스팀이 올라오는 소리, 창살 너머로 들리는 절망에 찬 소리, 벽과 철제 그릇과 볼트로 고정된 베게의 금속성 소리, 철로 만든 개수대와 화장실의 공허한 소리
인간의 냄새, 내동댕이쳐진 인간 쓰레기, 씻지 않은 몸, 썩은 음식,
백인 죄수는 이곳을 벗어날 때 그의 삶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다. 흑인은 MAX ROW를 걸어서는 나갈 수 없다. 영구차에 실려 가거나 혹은 돼지들의 발을 핥아야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잭슨의 묘사가 뒷날 스튜어트 그라시안 박사의 독방 감금의 효과를 증명하는 정신의학적 연구 결과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을 보면 대단히 놀랍다. 정신병리학적 증상 중의 하나는 지각 능력의 변화이다. 그라시안은 독방 감금 하에 있는 죄수의 소리와 냄새에 언급을 인용하고 있다.

“당신은 소음―배수 시스템―에 예민해질 것이다. 윗층에 있는 누군가가 화장실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물은 파이프를 통해 맹렬히 내려간다. ― 이것은 매우 시끄러우며 당신의 신경을 자극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 나는 큰소리로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식사 ―나는 그들이 무엇을 주든지 먹어야만 했다. 이제 나는 그 냄새들을 견딜 수가 없다.―고기―내가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은 빵이다. … 화장실에서 나오는 숨쉬기조차 힘들며 퀴퀴하고 끔찍한 냄새, 이 악취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라시안은 재소자들은 단지 그들이 독방에 있을 때만 위와 같은 증상을 보임을 밝혔다. 그는 계속해서 다른 증상들에 대해 서술한다. 정서 불안, 사고 장애,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생각의 교란, 충동제어의 곤란 등이 그것이다. 그라시안의 연구는 단기간의 독방감금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연구 대상은 11일에서 10달까지였으며 평균적인 격리기간은 2달이었다. 그리고 죄수들은 법에 의해 15일마다 적어도 24시간 동안 격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에 슈퍼맥스에 머무르는 길이는 불확정적인 것으로 어떤 재소자들은 그들의 징역 기간 전부를 독방 감금 상태에서 보내게 된다.

이러한 재소자들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 장기간 동안의 격리의 충격은 어떠할까? 다시 한번 리벨란드는 대답을 회피한다.

“어떤 개인이 그러한 시설에서 3달 동안, 1년간, 3년간, 5년간, 혹은 그 이상 있는다고 해서 잠재적인 부정적 결과가 더욱 커지겠습니까? 격리가 확장되면 정상적인 생리현상이 없어지고, 통제하는 환경이 재소자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습니까? 그러한 사실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라시안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연구는 현재 투옥되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우리는 조지 잭슨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는 MAX ROW의 생존자로서 예리한 내부자의 시각을 보여준다. 정치적 활동가이든 혹은 ‘부서진 사람들’이건 간에 그들은 끝장이 났다. 그는 부연설명을 해준다.

“‘부서진 사람들’은 너무나도 피해를 많이 받아서 이제 다시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그들이 감옥에 들어갈 때만 해도 아직 괜찮았던 모든 것들이, 검은 식민지의 경험이라는 파괴적 결과 후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그들이 처음 감옥에 들어갈 때만 해도 되살릴 수 있었던 것들이, 그들이 감옥을 떠날 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 수용소는 형제애를 극도로 끌어내거나 혹은 그것을 완전히 파괴시킨다. 하지만 어떠한 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이는 없다. 그 누구도 이곳을 정상인 상태로 떠나지는 못한다.

감옥 관료들은 독방 감금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다. 리벨란드는 슈퍼맥스의 활용에 대한 저항을 알고 있다.

“교정 관리들 중의 일부 분파나 재소자들 그리고 재소자들의 변호사들이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또 그것을 고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학대가 이루어지기 쉽고 그것 안에 수용된 재소자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리벨란드의 최종보고서를 보면 그는 많은 교정 관리들이 슈퍼맥스의 사용을 유용한 것으로 변호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슈퍼맥스는 재소자들을 통제하려는 목적 때문에 사용되는 것으로 교도소의 관료들은 재소자들에 대한 어떠한 단기-장기간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다.

재소자들에게 해를 끼침에도 불구하고 또한 슈퍼맥스의 힙법성이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의 관료들은 법적인 이의신청에 미리 대비하고 있으며 슈퍼맥스의 사용은 점점 더 넓어지고 더 커지고 있다. 1997년에는 전국적으로 적어도 57개의 슈퍼맥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텍사스주에서만 16개가 운영된다), 적어도 10개가 넘는 교도소들이 슈퍼맥스 시설을 건설하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와 교도소의 관료들은 교훈을 아주 잘 배웠다. ― 미국의 교도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억압의 현재 수준은 1960년대나 70년대 일어났던 것과 유사한 어떠한 대규모의 감옥 소요도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현재의 감옥 문제
슈퍼맥스의 광범위한 사용에도 불구하고, “로봇감옥”이라고 불리는 발전에도 불구하고, 보호감호와 집행유예를 통한 “기술적 교정”의 열렬한 채택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감옥 문제는 급속도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그 위기는 경제와 정치 양자 모두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현재의 대량 투옥 사태는 지난 25년간의 국내 산업 축소에 따른 것이며 그 충격을 소수인종에게 불균등하게 부담지운데 따른 사회적 경제적 결과이다.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존재했던 실업률과 투옥률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이전의 감옥 연구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 현재의 감옥 시스템은 너무도 많은 산업예비군을 비축하고 있어서 실제로 공식 실업률을 낮추고 있다. 나는 1983년에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미국의 감옥 문제는 더욱 더 악화될 것이다.” 나는 이 압제기구의 최근의 이러한 변화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감옥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현재의 각종 지표들은 지난 20년간 피하려 노력했던 만성적 불황이 닥쳐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 불황은 예전의 자본주의의 경제 위축처럼 새로운 죄수들을 양산해낼 것이며, 현재 포화상태에 있거나 거의 다다른 시스템에 더 많은 죄수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대량 투옥사태와 교정 과정에 지출되는 경제적 비용은 이미 압도적이며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정도이다. 교도소 건설과 유지, 행정 기술의 발전에 따를 비용절감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비용은 정부 내에서도 계속해서 논란이 될 정도로 과도하다. 경제가 위축되고 세입액이 줄어듦에 따라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점점 더 적자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감옥들은 이미 예산삭감의 표적이 되어왔다. 또한 정치적 위기 또한 존재한다. 지난 20년간 많은 비용을 감수하는 팽창적인 교도소 정책으로 인해 유예되었던 것들이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 감옥 문제는 다시금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퍼맥스는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을 독방에 감금하여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것은 일반적인 대량 투옥 형태보다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슈퍼맥스의 폐쇄는 광범위한 교도소 봉기를 촉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썽꾸러기”들을 일반 죄수들 틈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시위와 저항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미국 죄수들의 목소리는 다시 한번 힘차게 울릴 것이다. ― 이것은 1971년 아티카에서 선포되었던 “억압받는 자들의 분노를 담은 선언” 의 메아리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부와 대결하는 동안 아티카의 죄수들은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 그것은 30년 전에 행해졌던 요청이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재소자들을 돕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무척 많다.

교도소 개혁은 중요한 정치적 이슈이다. 변혁적 활동가들(Revolutionaries)은 반드시 어떻게든 죄수들과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재소자들이 그들이 왜 철창 안에 갇혀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이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슈퍼맥스를 중단시키는 데에는 계획 하의 법정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슈퍼맥스에 대해 법적 소송을 진행시켜야 하며, 슈퍼맥스 정책을 추진했으며 그것에 대해 이제까지 어떠한 도전도 받지 않았던 국가에 대한 행동(action)을 시작해야 한다. 슈퍼맥스를 끝장내는 것은 단지 한 개별 죄수를 극도의 억압적 환경에서 구출해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옥 시스템 전체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 될 것이다.

교도소 프로젝트는 슈퍼맥스에 대항한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또한 시스템에 대한 다른 방식의 도전을 위해 조직화를 하고 돈을 모으는 방식으로 성립될 수도 있다. 이러한 교도소 프로젝트에서는 투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특히 흑인과 라틴계 사람들 중에서도 반드시 대표자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함에도 국가가 그만둬버린, 죄수들의 사회복귀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역에서의 감옥 프로젝트는 주립 교소도, 연방 교도소 개혁 운동 그룹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연대 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이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인터넷은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다. 경험을 공유하고 노력들을 통합하는 것은 운동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도소 개혁은 항상 변혁적이어야 한다. ― 교도소 운동을 함에 있어 우리는 미국에서의 자본주의와 투옥간의 관계에 대해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계급에 특히, 소수 인종들에게 파괴적인 충격을 주고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혁명적 의식은 시스템에 의해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진정한 희망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사실에 대한 조지 잭슨의 증언은 이를 상기하는데 중요하다. ―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그의 어린 시절에 지녔던 범죄적 심성을 고백하면서 그가 법을 어기게 된 과정과 가벼운 형량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한다. 그는 감화를 위해 일년이라는 기간동안 감옥에서 지내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 잭슨은 설명한다.

“그때는 1960년이었다. 나는 18살이었다. 나는 그 때 이후로 계속해서 이곳에서 살고 있다. 내가 감옥에 들어왔을 때 나는 맑스와 엥겔스, 트로츠키, 그리고 모택동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구원하였다. 처음 4년 동안 나는 오로지 경제학과 군사 이론만 공부하였다. 나는 검은 게릴라들을 만났고, 조지 “빅레이크” 루이스와 제임스 카, W. 놀렌, 빌 크리스마스, 토니 깁슨,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 정말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우리는 흑인들의 범죄적 심성을 흑인들의 혁명적 의식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조지 잭슨은 그의 자서전을 다음과 같은 구절로서 끝맺음을 한다. 이것은 잭슨 이전에 감옥 문제를 변혁적 관점에서 저항하고 있었던 어느 재소자가 그에게 써 준 것이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황폐함 없이는 봄의 따뜻함과 광채가 있을 수 없다!
억압과 고통은 나의 정신을 단련시키고 그것을 강철로 만들 것이다!
민중에게 힘을! (Power to the People!)”


다시 쓴 자본주의와 투옥(2)

<<역자의 글>>

요즘 들어 우리 나라에도 사회 범죄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러한 범죄들이 결코 자본주의의 위기와 무관치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미국의 교도소의 현실에 대해 깜짝 놀라진 않으셨나요? 그리고 미처 우리가 알지 못했던 투쟁들,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극단적인 폭압에도 불구하고 펼쳐졌던 투쟁들을 알게 되면서 많은 감동을 받지는 않으셨나요?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다음은 12월 17일자 한겨레 신문의 ‘왜냐면’에 실린 백철현 님의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기획번역 2
“강금실 법무부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장관님이 관장하는 법무부 산하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 중인 노동자 백철현입니다. … 이곳 영등포 구치소는 징벌방, 독거방, 소방, 대방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징벌방과 독거방은 0.78평, 소방은 2.78평에 평균 8명, 대방은 4.7평에 평균 15명 수감자가 수용되어 있습니다. 소방은 1인당 약 0.35평, 대방은 0.32평 정도의 거주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방이 좁다보니, 밤에 팔, 다리를 제대로 뻗을 수 없어 움추려서 칼잠을 자야 합니다. 이곳 영등포 구치소는 196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바닥은 마룻바닥이라 겨울이 되면 난방이 되지 않습니다. 수돗물도 나오지 않아 한겨울에도 찬물로 세수하고 설거지를 합니다. 저녁 8시면 의무적으로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것도 정말 고역입니다. 수감자들은 저녁 9시 뉴스라도 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뉴스 시청마저 제한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0.78평의 독거방에서 고독과 싸우면서 수감생활을 하는 수감자가 적지 않습니다. 또한 사소한 잘못을 범해도 면회와 편지가 일절 제한되는 ‘감옥 안 감옥’인 징벌방에 한달 여씩 수감되어 있는 수감자도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수갑을 채워서 손도 쓰지 못한 채 밥을 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면회 등 다른 생활도 인권을 고려치 않는 수준입니다. 면회 시간은 7분으로 제한되어 있어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지도 못한 채 만남이 안타깝게 끝나고 맙니다. 한 주당 운동시간은 135분에 불과합니다. 주 1회 주어지는 목욕시간은 겨우 10분입니다. 게다가 당장 죽음이 임박하지 않는 한 몸이 아파도 치료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 한/노/정/연

기획번역 2


번역 : 김경근/ 국제기획실 자원활동가

2003-1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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