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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파업의 정치적 성격

현장에서 미래를  제9호
손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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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파업의 정치적 성격


손 석 춘 (전 언론노련 정책실장, 한겨레신문 기자)


문화방송 파업의 배경

지난 3월 14일 새벽을 기해 문화방송 노동조합은 전격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조합원 95%(1,963명)가 참가한 찬반투표에서 80.5%(1,577명)의 찬성을 얻어 강력한 대오를 갖추고 시작되었다. 문화방송 노동조합이 이처럼 힘차게 파업투쟁에 들어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노동조합 집행부가 파업에 대해 흔들림 없는 의지를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고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시켜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두루 알다시피 문화방송은 서울 문화방송과 19개 지방 문화방송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에 따라 노동조합 또한 각 방송사 별로 독자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그 서울과 지방 문화방송 노조들의 연대조직인 ‘문화방송노동조합연합’이 이미 2월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파업을 ‘예고’해 왔던 것이다. 비대위는 3년 임기가 끝나는 강성구 사장의 후임과 관련하여 그의 연임이나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진데 이어, 사장을 선출하는 이사회 개최 일주일 전에 이미 강성구 사장이 유임될 경우 즉각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사장의 선임결정을 놓고 곧바로 노동조합이 파업투쟁을 벌이게 되기까지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으나 우선 법적․제도적인 문제점을 들 수 있다. 비록 허울에 지나지 않으나 어쨌든 문화방송은 형식상으로 공영방송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적 소유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방송의 사장은 임기제(3년)이며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이사회를 통해 선출된다. 문화방송 노조가 방문진 이사회를 앞두고 강성구 사장이 연임될 경우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그를 반대한 이유는 강 사장의 경영능력이 지난 3년간 충분히 검증되었다는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강 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93년에 방송사 중 1위였던 문화방송의 시청률은 그의 재임기간 중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저녁 9시 뉴스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한국방송공사의 9시 뉴스보다 압도적으로 시청률이 높았던 문화방송의 뉴스가 완전히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강사장은 보도부문 뿐만 아니라 경영면에서도 ‘무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노조의 판단이다. 노동조합의 이같은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3개 텔레비젼 방송 가운데 문화방송의 흑자규모가 최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뿐만인가. 강성구 사장은 사생활 문제에서도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고 그의 부도덕성에 대한 물증까지 노조에서 확보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3월 13일 방문진은 이사회를 열어 강성구 사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노동조합이 즉각 비상총회를 열어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가 다음날 새벽을 기해 전면파업을 결의한 것은 노조로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화방송이 파업에 돌입하자 그 파문은 곧바로 확산되었다. 13일 방문진 결정 직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은 비상집행위원회를 열고 ‘방송장악음모 저지 비상대책위’를 구성하였으며, 이튿날 방송사노동조합들은 문화방송에 공권력을 투입할 경우 연대파업을 결의했다. 15일에는 방문진 이사중의 한사람인 김병익 이사가 사퇴를 하면서 사장 선출과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방문진이 파업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밝혀 파문이 한층 확산되었다. 16일에는 전국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경실련 등 14개 사회단체가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어 18일에는 이들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문화방송 파업관련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활동에 들어가는 한편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이 문화방송 파업에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파업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가지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왜 방문진은 찬반토론조차 없이 노동조합에서 그토록 반대한 강성구 사장의 연임을 결정한 것일까. 왜 방문진은 파업을 예고하고 사실상 ‘배수진’을 치고 있는 노조를 파업으로 내몰았을까. 바로 이 부분에 문화방송 파업의 정치적 성격이 놓여있다.

문화방송 파업의 정치적 함의

“권력은 TV에서 나온다” - 중국혁명의 긴 장정에서 모택동이 남긴 말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를 빗댄 한 언론학자의 책 제목이다. 물론 그 말은 모택동의 ‘교훈’에 버금갈만한 냉철한 현실인식을 결여하고 있으나 어쨌든 현대사회에서 텔레비젼의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정치학계 일각에서 현대 정치체제의 성격을 미디어크라시(mediacracy)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력과 언론의 이같은 밀접성은 우리에게도 결코 낯선 경험은 아니다. 80년대 한국사회의 지배구조를 일러 ‘권언복합체’라 할 정도로 한국언론은 정치권력과 깊숙히 손잡았던 것이 사실이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일어난 문화방송 파업에서 그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읽어야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물론 모든 파업이 정치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설령 경제주의의 테두리에 머문다하더라도 경제주의적 파업 그 자체도 이미 정치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언론노동조합의 파업에서 그 정치성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문화방송 파업에 담겨있는 정치적 성격은 무엇보다 앞에서 살펴 본 파업의 배경을 되새겨보아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알다시피 문화방송의 사장선임은 방문진에 의해 결정되고 있지만 사실상 방문진은 ‘고무도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언론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우선 방송문화진흥회법으로 뒷받침되어있다. 방문진의 이사는 방송위원회 추천 6인에 국회의장 추천 4인을 합쳐 모두 10명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권력의 과반수 확보는 사실상 ‘보장’되어 있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더구나 방송위원회 역시 형식상 독립기구형태이나 실제로는 공보처의 산하기관이나 다름없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과거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문화방송 사장은 일방적으로 권력에 의해 내정된 뒤 방문진 이사회의 형식적 절차를 거쳤다. 권력자의 주위를 맴돌던 해바라기성 언론계 출신인사가 어느날 갑자기 ‘낙하산’을 타고 사장으로 내려온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저녁 9시가 “땡”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되어 ‘땡전뉴스’라는 풍자가 나돌 정도로 당시 방송뉴스가 전두환 미화작업에 앞장섰던 배경에는 이같은 구조적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었다. 전두환-노태우씨에 의해 ‘발탁’된 인사가 권력의 눈치를 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권력의 앞잡이’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인사가 사장의 자리에 앉아 방송을 좌지우지 하며 뉴스를 ‘통제’해 온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같은 언론통제의 구조가 이른바 ‘문민정부’에 들어서서도 그대로 ‘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물론 청와대와 공보처는 문화방송 파업과 관련하여 “정부의 방송사장 내정은 과거의 일이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물증’이 없을 뿐 권력의 방송통제 구조가 여전하다는 것은 언론계의 ‘상식’에 가깝다. 이는 강성구 사장의 경우에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방문진 이사중의 한사람이었던 김병익씨의 ‘증언’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미 이사회 전에 강성구 사장의 연임이 결정되었으며 6표를 확보했다는 말이 떠돌았고 실제로 그 ‘소문’은 표 수까지 그대로 적중했다. 아울러 방문진 이사회를 전후로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 5명으로 구성된 ‘관계인사대책회의’가 수차례 열렸다는 의혹마저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우리는 최근 방송뉴스들이 “땡전뉴스”에서 이름만 바꿨다는 평을 들을만큼 김영삼 대통령 미화작업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 문화방송 파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김영삼 정권 출범 3주년을 맞은 지난 2월 방송사들은 민망스러울만큼 앞다퉈 권력자에 대한 찬양과 칭송을 늘어놓아 많은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방송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먼산을 바라보며 ‘고뇌에 잠긴 대통령의 표정’이라든가 검은 외투에 붉은 목도리를 둘러 한껏 멋을 부린 대통령이 산책하는 모습 등을 바라보아야 했던 역겨움을 한번쯤은 경험했을 성싶다.
그러나 이는 단지 역겨움이나 실소의 대상일 수 없다.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두 방송사의 편파보도 뒷면에는, 현 시기가 임기가 만료되는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 두 방송사 사장 교체기일 뿐더러 4월총선 국면이라는 두가지 상황요인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장 연임을 노리는 방송사 경영진과 총선을 앞둔 정치권력의 이해관계가 방송 안팎에서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땡김뉴스’란 바로 그것이 화면으로 구체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볼때 우리는 문화방송 파업 투쟁이 표면상으로는 강성구 사장의 연임결정을 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민주언론을 세워보려는 방송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의 연장선 상에 있고 그 투쟁의 한 매듭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민주언론을 세우려는 문화방송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2년 9월 2일부터 10월 21일까지 무려 50일동안에 걸쳐 파업투쟁을 벌였던 경험을 이번 파업에 참가한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파업 투쟁은 크게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파업 과정에서 경찰이 투입되고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구속되면서 노사 양쪽 모두가 파업 종결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한가지 눈여겨 둘 대목은 92년 파업이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재 두 방송사 사장연임이 일단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성격이 짙지만, 연임된 사장들의 임기를 고려할 때 대선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 포석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시사적이다.

문화방송 파업의 의미

무릇 파업이란 언제나 두 세력의 역학관계 속에서 전개되기 마련이다. 파업이 내걸었던 투쟁목표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상대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화방송의 경우 정치권력은 당장 부딪친 총선과 대선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송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고 싶어할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문화방송을 사적 소유구조로 전환하여 노조를 무력화하는 방안이 권력쪽에서 검토되고 있으며 그 의도 아래 이번 파업을 ‘유발’시켰다는 분석마저 나올만큼 현 정권의 방송 장악의지는 분명하다.
비록 그들이 권력은 TV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TV가 권력에 이르는 중요한 ‘무기’라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터이다. 보수야당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언론노동운동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이들이 파업 직후 정부를 비판하는 논평들을 쏟아내고 있거나 국회 상임위를 요청하는 한편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들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기우이길 바라지만 정작 우리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이 문제를 권력교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듯싶다. 문화방송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체 노동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고 특히 앞으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내다볼 때 현재의 투쟁이 어떻게 자리매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노동운동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민주세력들은 그동안 언론으로부터 언제나 부당한 ‘공격’을 받아왔다. 노동운동의 실상이 언론에 의해 언제나 왜곡되어왔고 그것이 노조에 대한 편견을 뿌리깊게 심어줌으로써 조직률의 현저한 저조로 나타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사적 소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탓에 신문보도는 언제나 자본쪽의 논리만 확대해 왔으며 방송의 경우 집권세력의 일방적인 사장 인사권 아래서 그들의 논리만 증폭시켜 왔다. 반면 언론 내부에서 그같은 일방적 논리의 여론화를 견제해 나가야 할 언론노동운동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물적 기반을 비롯한 여러가지 한계로 말미암아 스스로에게 맡겨진 과제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노련이 지난해 말부터 주요 정책과제로 ‘언론개혁연대회의’를 제안하고 나선 것은 바로 이같은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고육지책’이다.
마침 문화방송 파업에 민주노총과 전국연합은 규탄집회나 ‘백만인 서명운동’등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관심’이 아니다. 관심의 수준을 넘어서서 적어도 노동운동에 적대적이지 않은 민주언론을 세워나가려는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그에 토대를 둔 중장기적 구상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만일 문화방송 파업을 계기로 그 논의가 노동운동 진영에서 활성화될 수 있다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전개된 이번 파업은 목전의 성과 여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파업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한/노/정/연

1996-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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