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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민중을 가로 막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93호
이재영


현시기 정세인식과

노동자 민중 운동진영의 대응


민주노동당 ∙ 무엇이 민중을 가로 막는가

노동자의힘 ∙ 현 정세와 2004년 노동자 민중운동의 과제



무엇이 민중을 가로 막는가

이 재 영/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운동권’이 내놓는 정세분석 글은 오랜 관습을 따르는데, ‘자본주의 세계체제 위기’가 어쩌고 하는 거창한 경제분석으로 시작하여, ‘민중의 격렬한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으니 단결투쟁하자’는 비장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돋보이는 전통이다. 지난 십 수년 간 이 같은 정세분석이 끊이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세계체제 위기’는 단지 예상되었을 뿐이고, 민중투쟁은 낭자한 ‘민중투쟁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중에 밀착되어 있을수록, 정세 추동 임무를 크게 질수록 이런 정세분석에는 심드렁할 수밖에 없고, 민주노동당 역시 대학원생들의 파국론 리포트에는 별 개의치 않아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민주노동당의 여러 논객과 기관들은 공식 비공식 통로를 통해 비상한 정세관을 내놓고 있다. 과연 정국은 1987년 여름을 회상시킬만큼 요동쳤다. 그리고 다시금 범상한 겨울로 침잠하고 있다. 무엇이 2003년에 1987년을 재연시켰는가? 왜 민중은 머뭇거리고 있는가?



1. 세 가지 지진


요즘 건물은 어지간한 지진에는 무너지지 않는다. 엄청나게 강한 진도의 지진이 닥치거나, 중심파니 표면파니, P파니 S파니 하는 것들이 시공간적으로 중첩될 때에만 내진 설계가 된 현대식 건물이 손상을 입는다. 19세기식 분석법에 따르자면, 2003년 한국 자본주의는 적어도 세 가지의 지진파를 동시에 맞고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장기 불황에 따른 민생 파탄, 산발하는 대중투쟁, 정치적 무정부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① 경기 침체와 민생 파탄

경기(景氣)야 고양과 침체를 되풀이하게 마련이지만, 현재의 경기 침체는 아래 두 가지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첫째, 과거의 경기 침체가 소비 축소 등을 통해 가구 내 조정이 가능했던 데 비해, 현재의 경기 침체는 장기실업 등에 따른 생계 수단 상실, 가정 파탄,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등 대단히 심각한 양상을 띤다. 유교 국가군의 전형이었던 한국의 자살․이혼․출산 지표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북유럽 국가군의 지표를 넘어선 것은 근래의 경기 침체가 단순한 경기 순환을 넘어 민생 파탄을 빚고, 민중의 개인적 저항 또는 소극적 회피로 인해 사회시스템의 붕괴로 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부동산 투기 열기, 부유층의 명품 유행 등 비교 대상이 노골적으로 부각됨에 따라 민중의 상대적 상실감이 폭증하고 체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래의 표들은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사상 초유로 벌어졌고, 빈곤층의 돈을 빼앗아 부유층으로 넘기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최근 동력이며, 이에 따라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민중 불만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표 1> 1997년 이후 지니계수 변화와 불평등 체제의 고착

  *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0에 가까울수록 평등



<표 2> 계층별 자산 부채 증감 추이(1997년 대비 2002년)1)

            최하층                                       최상층


            최하층                                       최상층


<표 3> 자본주의가 연상시키는 주도적 이미지(%)

 

1996

2003

변화

물질적 풍요

31.2

26.8

-4.4

경제성장

20.6

16.4

-4.2

생존경쟁

12.7

17.3

+4.6

빈부격차

14.6

22.2

+7.6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삼성경제연구소, 한국리서치 공동연구. 2003. 4.



② 산발하는 대중투쟁

어떤 이는 2003년을 1987년의 가두투쟁과 비교하고, 어떤 이는 1991년의 연쇄 분신을 회상한다. 반노동정책에 저항하는 분신과 민주노총의 총파업 시도,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농민 시위, 철거에 맞선 노점상․철거민의 격렬한 투쟁 등 대중조직의 투쟁이 연이어지고, 부안 군민들은 정부 정책을 물리력으로 저지하기에 이르렀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되짚어 보면, 파업건수가 과거보다 월등히 많은 것도 아니고, 가을이면 상경하던 농민대오의 규모도 유사하다. 부안에서의 ‘사태’는 안면도, 굴업도에서도 있었다. 요컨대, 현재의 대중투쟁이 물량에 있어 지난 몇 년과 확연히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03년 정국을 이끈 투쟁의 기원은 많은 함의를 던져 준다.

첫째, 분신 또는 투쟁 참여자들이 대중조직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1991년의 분신 등 과거 투쟁의 많은 경우, 탄압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저항이나 개인적 각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나, 2003년 투쟁의 주체들은 기본 대중조직의 구성원이며, 부안의 경우에도 주요 대중조직들과 굳건한 연계를 맺고 있다. 이는 소강상태에 빠졌던 조직력이 최저점을 지나 서서히 회복되고 있으며, 대중조직이 투쟁의 계기와 동력을 아우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비작위적이다.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기획하여 내리박은 투쟁이 아니라, 일선조직 지도자들의 비명에 상급조직이 끌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조직 대중의 경제적 조건과 사회심리 상태가 격렬한 투쟁 이외의 답을 찾지 못하는 국면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대중 요구를 조직적․합리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심각한 괴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2003년 민중투쟁은 우연적인 공시성(共時性) 이상의 연대, 단일한 정치 행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③ 정치적 무정부 상태

수준 높은 정치평론가가 아니라도 한국 정치가 근래 보기 드문 혼란 상태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도대체 누가 대통령인지, 어느 당이 집권당인지, 내년 이맘때 쯤 누가 이 나라를 경영하고 있을지를 모를 정도라면, 한국 정치는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최초의 혼란은 대선용 동거정당의 용도가 다 하였으므로, 집권유지용 또는 총선용으로 보수정치권을 재편해야 하는 필요로부터 시작되었다. 연이은 불법정치자금 폭로 경쟁은 기성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임과 위기 양상2)으로 비화하고 있다. 노무현의 신임투표 제안과 각 당의 양심선언 등 일련의 타개책이 계속됨에도, 국민은 그에 전혀 호응치 않고 있다. 어쨌거나, 기성 정치세력 어느 누구도 민생 파탄을 완화하거나 정치적으로 무마하거나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세는 국정 전반을 기획하거나 주도하는 정당과 정치세력이 없는 무정부 상태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최신 발전태인 그리고 ‘6월 항쟁의 계승자’로까지 자임되는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이 같은 위기가 발생한 것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공멸을 자초할 정도로까지 비화된 보수정당 및 언론의 드잡이질과 국민의 국정 불신임은 제도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권위를 부여할 수 없는 상황 즉, 투표율의 지속적인 저하로부터 예견돼왔다.


<표 4> 각급 선거 투표율의 경향적 저하

 

투표율 (연도)

투표율 (연도)

투표율 (연도)

투표율 (연도)

하락률

대 선

89 (87)

82 (92)

81 (97)

71 (02)

18%

총 선

76 (88)

71 (92)

64 (96)

57 (00)

19%

지방선거

68 (95)

52 (98)

48 (02)

 

20%


한국 부르주아정치의 진정한 위기 원인은 이합집산 과정에서의 과도적 혼란이나, 끊임없이 재연될 것이 뻔한 정경유착에 있지 않다. 한국 부르주아정치의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를 지속시키고, 국민을 현혹하거나 동원할 비젼(vision)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난 대선 당시 가장 뜨거웠던 이슈인 ‘행정수도 이전’은 ‘군부독재 퇴진, 문민정부 수립, 수평적 정권교체’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하위 아젠다였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모토인 ‘동북아 경제중심’ - 물류와 금융 중심 정책에 중화학공업 독점체인 한국 대자본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고, 민중에게는 IMF 때처럼 희생을 감수할 용의가 전무하다.

한국 사회를 덮친 여러 개의 지진파는 단 한 곳의 진앙,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바를 제시․설득하지 못하는 부르주아정치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2. 1987년 담론과의 결별, 평등사회를 향하여


정치 경제적 위기와 대중투쟁이 중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세의 상승이 지체되고 있는 것은 대중 행동이 고양되지 못함, 더욱 정확하게는 민중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① 세 개의 장벽

민중이, 산적한 불만과 체제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세 차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민중투쟁의 양상이 80년대와 같이 가두에서의 격렬함보다는 조직적 위세를 통해 의사를 전달․관철하는 단계로 이행한 가운데, 그 조직적 한계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농민회총연맹 등 각 계층의 대중조직이 구성되기는 하였지만, 그 동원력은 미약하기 그지 없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동원력은 노조 조직율이 12%에 그친다는 절대 수치를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500인 이상 사업장의 조직율이 60%에 이른다는 지표는 ‘민주노조운동’을 통한 조직화가 이미 포화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조직 질의 문제이고, 100:85이던 1987년의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민주노조운동의 발전과 동시대적으로 100:60으로 심화된 현실이다. 공동 행동을 낳을 수 없는 근로조건 및 사회심리의 심각한 격차는 ‘총파업’을 맹동에도 미치지 못하는 ‘선언’으로 격하시켜 왔고, 2003년 정국에 임한 대중조직들은 ‘합리적 반편향’으로 귀결하였다.

둘째, 정치적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사회적 변동은 언제나 믿음직한 배후를 전제로 한다. 김영삼 퇴출에 연이은 부마항쟁 발생, 광주항쟁에서의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구호, 1980년 ‘서울의 봄’과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학생 지도부의 정치적 진로는 우리 사회에서의 대중행동이 언제나 명확한 정치적 목적과 출로에 입각하여 조직되었음을 웅변한다. 반면, 노동자 민중의 경제사회적 파탄에 의해 조성된 2003년의 위기는 여전히 지역주의에 호소하고 있는 한나라당 등에 의해서는 수용될 수 없었고, 민주노동당은 대안으로 부각되기는커녕 정치세력으로 제대로 형성되지도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셋째, 파국을 두려워하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내재화한 대중 이데올로기의 사슬 때문이다. 각종 조사3)에 따르면 조직 대중은 자기 조직이 주장하는 바, 이념과 정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가장 선진적이라 추정할 수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의식에 있어서조차 한국노총 조합원이나 비조합원과의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조직화 여부를 떠나 최대 다수의 대중은 자본주의 체제를 선호할뿐더러, 그것과 개인의 운명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 이데올로기 상태가 적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기 제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장의 담벼락을 넘지 못하는 대중의식, 그리고 그러한 관행을 조장하고 영웅시하는 작풍(실용적이든 전투적이든)과 반정치주의가 2003년, 민중의 정치적 주저함을 낳은 근원이다.

지배적이지 않은 사회집단이 사회에 개입하는 수준은 문제 제기, 정책 제시, 권력 분담, 지배 대체로 나눌 수 있다. 앞의 두 가지는 몰계급적 시민단체나 언론의 몫이고, 조직적 민중행동은 언제나 권력 향배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민중운동은 권력을 분담하거나 전담할 수 있는가? 또, 그것을 이끌어낼 정당성이나 물리력을 보유하고 있는가?

방패는 분명히 녹슬었지만, 창을 벼리지 못했다면 전쟁에 나설 수 없다. 파국은 파국일 뿐, 전쟁이나 승리가 아니다. 목소리 높은 투쟁 구호가 아무런 위협도 주지 못하는 허장성세로 치부되고, 대중들에게는 ‘양치기의 거짓말’로 비추어지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민중운동이 공세기 슬로건의 반복과 전투적인 전술형태에 집착하며, 주기적인 역량 손실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공세를 위해서는 진지를 확보하고 무기를 다듬는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2004년 총선이 그를 위한 중대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② 노무현의 등장, 1987년 체제의 종결

1987년 이래의 십 수 년은 6월의 가두에서 제시된 이슈의 제도화와 보완의 시기였다. 1987년에 제기된 ‘민주화’는 이후 한국 사회의 지배담론으로 기능하며, 단계적이나 완고하게 발전하였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경제성장에 버금가는 민주주의 가속성장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성숙은 자본통제력 이완에 따른 경제위기, 민주화된 환경 아래에서 새롭게 조성된 다양한 민중 요구에 대한 부조응이라는 난국에 부딪치고 있다. 노무현의 집권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집단이 새로운 지배담론을 형성하지 못한 가운데 민주주의 우위를 이미지 선호로 대체한 나름의 묘수였으나, 결국 1987년 체제의 조기 종결을 불러오고 있을 뿐이다.

2004년은, 1992년에 확립된 보수 양당 체제가 붕괴되는 시점이며, 이는 1987년에 시작되어 1992년까지 계속된 부르주아 지배 정치의 이완과 재편 국면으로의 복귀이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도전 세력에게 또 한 번의 호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운동은 1997년 총파업을 통해 1987년 체제의 위기를 경고하였고, 두 차례의 대통령선거 참여를 거치며 정치적으로 독립해왔다. 하지만 민중운동은, 2003년 정국 대응이 보여주듯 자기 이익 극대화에 나서기에도 힘겨운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2004년 이후 수 년 간 지속될 재편 국면에서 민중운동이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짜고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개혁이 필요하다.


③ 평등을 이야기하자

첫째, 운동권연합이 아니라 계급동맹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권이 강력히 추진 중인 시장개방 정책은 중소자영업 영역을 거대한 외국 자본이 장악하게 하고,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농업 말살을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다양한 모습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중간계층들을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쫒아내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노동자로부터 중간계층으로의 이탈로를 봉쇄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영세한 자영업자, 농민들은 사회보험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이 조속히 개선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극악화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사회안전망으로부터의 배제는 사회에 대한 도전과 조직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직된 민중운동은 투쟁에 나서고 있는 소외 계층과의 적극적인 동맹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단체를 나열한 길고 긴 이름의 연대체, 집회 때 이름 빌려주는 품앗이 단체로 민중을 껴안을 수는 없다. 민중운동은, 하는 일은 없고 말은 많은 ‘연대 지원 전문단체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대중조직과 진보정당으로 분화 발전하고, 명실상부한 계급동맹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둘째, 계급동맹의 요체는 단호한 정치적 태도이다. 집회에 참여하는 인원이 유인물에 이름 넣은 수백 개의 단체들보다 적은 것은 물리적 미약함 때문이 아니라, 각 단체가 그 명분과는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각 단체의 수장들이 국면마다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탈, 정책적 망각과 정치적 나약함이야말로 계급동맹과 연대전선이 굳건히 형성되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이다. 역사상, 정치적으로 통일돼 있지 않은 연합전선 따위는 존재한 적 없다. ‘반한나라당’이니, ‘반부패연합’이니 하는 최근의 운동권 ‘설(說)’은 자유주의 첩자들이 준동하는 선거철이 다가왔음을 예보할 뿐이다. 신자유주의가 부르주아 지배집단 전체의 교시로 일반화된 1997년 이후,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진전은 노동자 민중의 이해에서 분리되었으며,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이행자인 노무현 정부의 국정 기조는 양자의 충돌이 더욱 격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블룸버그 통신이 지지하고, 헤리티지 재단의 공증을 받은 반민중 정권이 분명하지 않은가. 따라서 노무현 정권에 의탁적이거나 단호하지 못한 정치적 태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신자유주의에 수탈당하는 민중에 대한 범죄에 다름 아니다.

셋째, 부르주아민주주의 과제가 1987~1997을 통해 상당히 해소되었다면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그 대안으로 채택하는 데 반대한다면, 민중운동은 한국 사회의 새 비젼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지지를 획득하여야 한다. 먼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민주화의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의 전형적 병폐인 계층 분화가 심화되고, 교육에서조차 부의 대물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가부장적 국가가 민주화에 의해 퇴조하고 자본가로서의 국가의 역할이 노골화된 데 따른 것이다. 즉,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성숙이 노동자 민중의 권익 향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민중에게 준 것은 동반 투신할 높은 빌딩과 값싼 독극물  뿐이었다. 민주주주와 경제력에 못 미치는 행복지수, 폴란드 터어키에도 뒤지는 OECD 최저 수준의 사회복지 예산 비율4), 의료․교육․주거 중심으로 형성되는 국민 요구는 이제 우리 사회가 바라보아야 하는 미래가 사회경제적 평등5)과 민중 복리임을 역설한다. 그것을 무엇이라 칭하든 자유주의나 민족주의 아닌, 평등 가치로의 시대적 전환이 다가오고 있다.


“당신이 만지는 강 속의 물은 흘러간 마지막인 동시에 흘러 들어오는 최초의 것이다. ‘현재’란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


1) 상위 소득계층의 자산은 증가하고 부채는 축소되고 있으며, 하위 계층에서는 부채가 증가하고 자산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1997년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회생이 저소득계층에서 고소득계층으로의 가치 이전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조사기관이나 시기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가 있지만, 평소 35% 가량이던 무당층이 최근에는 50%에 이르고 있다.


3) 정영태(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여러 리포트를 참조하라.


4) GDP 대비 사회복지비 비율. 스웨덴 33%, 프랑스 30%, 그리스 22%, 미국 15%, 한국 7% (한국은 1999년 기준, 이외는 1995년 기준)


5) 한국의 서민은 부자들보다 소득 대비 1.5배의 세금을 내고, 같은 세금을 냈을 때 유럽 국민의 절반밖에 안 되는 복지 혜택을 받는다.


2003-1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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