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연재-기획 > 목록보기 > 글읽기

 
공간의 모순과 공간적 실천

현장에서 미래를  제9호
조명래

기획 1

자본이냐 노동이냐(8)


자본간 경쟁이 국경을 넘어 격화되면서, 국내 독점자본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총자본의 공세가 거세어지고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 자본의 신경영전략 등으로 드러나는 자본합리화 공세는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과 ‘자본 축적의 효율성’ 그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노동자의 생활과 노동을 새롭게 재편하려 하고 있다. 자본의 이러한 공세 앞에서 노동자는 ‘자본 축적의 논리에 전면적으로 순응하느냐’, 아니면 ‘미래 사회의 새로운 삶의 대안’을 찾아 투쟁하느냐의 양자택일에 직면해 있다. 이 양자택일의 문제는 단지 생산현장에만 국한되어지지 않고, 노동자를 둘러 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기되고 있다. 법적․제도적 측면만이 아니라 가치관․문화․습관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세계만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이 양자택일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자본이냐 노동이냐’.
이 기획은 생산현장에서의 노․자간 대립을 둘러 싼 쟁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둘러 싼 모든 영역에서 자본관계에 의해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 보이고, 노동자의 눈으로 세계와 미래를 재구성하고자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 여덟번째 내용으로 ‘공간의 모순과 공간적 실천’이라는 주제로 조명래 교수의 글을 실었다. 필자는 자본주의 규정력이 재생산되고 전개되며 그 모순 또한 발생하는 주된 영역으로 공간을 규정짓는다. 이러한 모순의 극복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계급중심성을 갖추면서도 생활공간내 계급주체의 정치세력화에 근거한 공간운동의 조건과 형태를 갖춘 새로운 계급운동을 제기한다.

공간의 모순과 공간적 실천


조 명 래 (단국대 교수, 도시사회학)


1. 공간의 시대, 공간의 힘

공간이란 용어를 자주 대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말의 생경함에 다소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공간이란 말은 어느 까페 이름을 연상할 정도로 친근한 것일 뿐아니라, ‘우주 공간’을 연상하리 만큼 무한함에 대한 노스텔지를 자극하기도 한다. 공간에 대한 이러한 상념은 옳은 것이다. 공간은 열려 있는 커다란 용기로써 모든 것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어디론가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막연한 낭만기를 없애고 공간의 현실성을 천착해 본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공간임을 알게 될 것이며, 또한 이에 따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결코 별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은 공간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공간에 담기며 또한 공간에 의해 규정된다. 푸른 강이 있고 넓은 들이 있는 곳에 들어서면 우리는 대자연이란 공간의 품에 안긴다. 도시로 돌아 와, 네온사인이 화려한 거리를 걷는다면, 사람․자동차․상품․불빛․소리 등으로 구성된 인조자연의 공간 속으로 빠져든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의미․상상․이야기 등으로 구성된 가상의 공간 속으로 자유스러운 유영을 하게 된다. 공간의 이같은 속성은 인간이 꾸려왔던 ‘사회’란 말 보다도 더 본질적이고 포괄적이다. 삶의 전반이 공간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공간에 의해 제약되는 특성을 주목한다면 인간은 ‘공간적 동물’이라 부를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공간을 끝없이 재구성하는 역사에 다름아니다. 인간의 원초적 삶은 자연이 설정했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물자의 생산을 늘이고 교역을 확대해 감에 따라 흐름과 관계의 망들이 광역으로 구축되는 단계에 이르면, 자연률에 근거한 공간은 잉여의 생산과 배분을 둘러싼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체제’의 공간으로 바뀐다. 국민국가의 배타적인 영토 구축은 이러한 체제공간의 완성으로 구현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공간은 국민국가의 경계마저 넘어 지구 전체를 하나의 범주로 묶어내면서 그 스스로를 더욱 밀도높게 재편해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공간의 성질 또한 급격히 변하고 있다. 현재 지배적인 공간은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소통기술의 사용으로 근대적인 물질성과 사회성이 해체되면서 담론, 의미, 상징, 기호 등으로 채워지는 공간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사이버 공간(cyber space)’이다. 사이버 공간은 디지탈 정보 네트웍을 통해 형성된 가상적 관계가 마치 현실과 같은 규정력을 행사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전통적인 억압과 적대를 구성했던 ‘단단한 그 모든 것이 녹여져 가상의 유동적인(즉, 자유로운) 형태로 재구성된다’. 사이버 공간은 ‘재현된 공간’이지만, 이 공간의 출현을 통해 가상이 일상의 실제 과정을 규정하는 사회, 즉 ‘사이버 사회(cyber society)’가 출현하고 있다.
어쨋든 일상의 주요 부분은 가상공간에서 경험되는 듯한 삶으로 점차 채워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욱 공간적인 것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공간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차원적인 물적 구성물 속에서 살았던 전통사회와는 달리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영상, 광고, 신호체계, 색깔, 형태, 언어, 담론들이 다차원적으로 엮어지는 구성, 즉 공간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추구한다. 이러한 공간은 시각적이고, 이미지적이며, 담론적인 상품을 소비하는 활동들을 매개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소비재는 과거의 물질적 결핍을 충족시키는 재화보다 정체성, 의미, 미학적 실천의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재화들로 주로 구성된다. 미학성을 표방하는 상품들은 이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 전반을 기호적이고, 상징적이며, 담론적인 것으로 포장한다. 공간은 이 전체를 담아내는 틀이 되기 때문에, 가상공간이 현실공간에 준하는 경험성과 규정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호적, 미학적 상품의 소비를 매개로 하여 공간이 형성된 만큼, 그 가상성이 거두어지면 밑바닥에는 결국 상품을 둘러싼 돈, 권력, 착취, 갈등 등만 남게 된다. 자본주의의 도래 이래 공간은 축적을 위한 다양한 기제를 장치하는 틀로서 작용해 왔다. 그러기에 모든 단위공간은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결합된 견고한 물적토대를 가지고 있을 뿐아니라, 이 토대는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이념적, 문화적, 정치적, 담론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단위 공간은 하나의 유물론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같은 공간구성에서 볼 때, 가상공간은 공간의 상부구조가 과도하게 팽창되어 형성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여하튼, 자본주의하의 공간은 자본에 의해 규정되는 구조를 내부화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의 규정력이 항상적으로 관철된다. 물론 그 구체적인 작용방식과 모순의 표현방식은 공간에 따라 다르다. 후기 자본주의하에서 자본은 그 구체적인 형태인 상품의 성격을 보다 고도화하기 위해 온갖 기호와 미학적 자료를 동원하여 포장한다. 이 결과, 상품이 담고 있는 ‘잉여생산을 둘러싼 착취성, 억압성, 배제성’이 신비화될 뿐아니라, 상품 생산과 소비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와 그 공간성이 ‘가상화’되고 있다.
요컨대, 오늘날의 삶은 공간적인 것이 아닌 게 없다. 그 공간은 사이버 공간과 같이 신비화된 된 것(가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공간의 질료는 근본적으로 자본의 힘을 잉태한 상품이다. 따라서 비록 재현과 담론의 공간으로 존재하더라도 공간은 결국 자본의 논리와 힘을 궁극적으로 반영한다.

2. 자본과 도시공간

자본은 공간의 순한 얼굴을 통해 일상을 치밀히 파고 든다. 그것은 상품을 매개로 하여 개인의 욕망세계 뿐아니라 일상 삶이 전개되는 사회 영역 전반을 침투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자본은 전통적으로 생산 현장의 장악을 통해 착취성과 억압성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이젠 가족이나 공동체와 같은 생활영역을 장악하면서 이를 달성하고자 한다. 생활영역에 대한 자본의 공세는 일상과정에 상품이란 마취제를 주입시켜 그 사용자로 하여금 일시적 해방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관철된다. 편리한 생활의 도구를 쓰게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지탱하는 가부장적인 굴레로부터 여성들이 해방되는 듯한 감을 불어 넣는다. 또한 소득을 높혀주어 노동자로 하여금 자동차를 구입케 하고 휴가를 떠날 수 있게끔 함으로써 그들에게 생산현장에서 겪는 긴박한 통제로부터의 해방감을 허용한다. 하지만 이 해방은 모두 ‘상품소비’를 매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에 의해, 자본을 지탱하는 체제에 의해, 자본의 힘을 강제하는 권력에 의해, ‘생활세계가 식민화’되는 상태에서 허용된다. 생활세계의 식민화는 공간의 식민화를 의미한다.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가장 광범위하게 형성된 공간이 도시이다. 카스텔(Castells)에 의하면, 도시는 생산의 현장이라기 보다 재생산의 현장인 만큼, 그 공간의 성격은 노동의 재생산과 관련된 사회적 모순과 갈등에 의해 특징지워진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생산영역 보다 재생산의 영역이 보다 중요한 위기 발생원이 된다. 복합소재로 구성되는 상품의 가치를 실현시켜야 하는 문제, 특별잉여가치 창출을 위한 새로운 기술과 인력이 사회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 문제, 위기가 만연하는 축적체제 자체를 안정시켜가야 하는 문제 등의 이유로 고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재생산 영역이 자본에 의한 새로운 통제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자본과 노동이 만나는 생산현장이 자본주의적 갈등의 발원지이지만, 재생산 문제가 전면화되는 단계에서는 생활세계가 보다 중요하고 보편화된 모순과 갈등의 발생 영역이 된다. 도시는 바로 이같은 현상이 전면화된 대표적인 공간이다.
재생산 영역에서 자본의 침투가 미치는 가장 미세한 공간은 도시 주체들의 사적 욕망과 정체성이 작용하는 공간이다. 개인의 정체성은 전통사회에서는 주로 공동체 규범과 질서에 의해 규정되었다면, 산업사회에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결정되었다. 하지만 상품의 기호적, 미학적 소비가 보편화되는 후기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정체성은 상품소비 관계에 의해 보다 의미있게 규정받는다. 자본의 화신으로써 상품이 가하는 끝없는 자극은 개체의 단일적인 정체성을 쪼갤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리비도적인 자아마저 일깨워 자본의 거대한 움직임에 추종받도록 만든다.
정체성의 공간을 벗어난 지점에 위치한 일차적 공간은 재생산 관계의 원형이 간직되는 가족의 삶이 있는 공간이다. 전통적으로 가정은 전인격적인 인간관계가 재생산되는 장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가정이란 공간은 상품화된 도구들의 사용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가족관계(재생산 관계)에 상품소비관계가 깊히 각인되어 있다. 다시말해 가족성원의 재생산이 상품소비관계를 매개로 함에 따라 가족성원의 관계가 이에 걸맞게 심대하게 재편되어 가고 있다. 이것의 단적인 예가 여성 노동력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현상이다. 즉, 상승하는 상품소비력을 보충하기 위해 주부들이 자유임노동자로 바뀌어지는 추세에서 ‘가족관계의 상품화’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부의 자유임노동자화는 부부관계에서 남편에 대한 경제․사회적 종속을 벗어나게 할 뿐아니라, 주부가 전담하던 자녀 양육과 같은 재생산을 상품화된 노동(예, 유료 탁아)의 구매를 통해 실현시킴으로써 가족성원들을 ‘상품화된 인성’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이런 현상의 가속화는 전통적인 재생산 단위였던 가족관계가 급속히 해체되는 것으로 집약되어 드러나고 있다.
가족단위의 재생산을 수행하는 물리적 공간단위는 주택이다. 주택은 본래 ‘주거’라는 사용가치를 지닌 공간이였지만,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이윤과 축적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의 과도한 상품성은 재생산의 위기와 이에 따른 계급갈등의 주요 원천이 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집합적 소비재’(즉 복지재)의 공급이란 이름으로 주택의 탈상품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주택의 탈상품화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기획’(예, 정당정책)에 의해 일시적으로 유지될 뿐, 자본주의 체제하의 주택은 자본축적의 주요한 기능을 근본적으로 수행한다 (그래서 하비는 주택을 ‘의사 자본’이라 칭함). 우리의 도시들이 직면하고 있는 주택 문제의 본질은 바로 주택의 과도한 상품성에 있다.
도시 공간을 메우는 주요 공공시설들은 도시민의 생활 편익을 돕는 명목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공원, 도로, 교통, 여가시설, 병원, 학교, 행정기관 등이 그렇다. 자본주의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이같은 시설들은 노동자층을 사회적으로 재생산해내는 상이한 기능들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본축적의 심화는 노동력 재생산의 조건과 과정의 고도화를 필요로 한다. 높은 임금, 적당한 여가와 휴식, 인격적인 대우 등은 고품질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모두 필수불가결한 요건들이다. 하지만 이같은 요건을 충족시키는 활동 그 자체는 직접적인 이윤창출의 대상이 아님으로, 사적 자본가에 의해 직접 관리되지 않고, 국가에 의해 투자․관리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관리의 방식은 거시적인 계급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복지재의 공급은 자본주의의 조직성(즉 독점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관리하지만, 신흥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자본가도, 국가도 아닌 ‘방임적 시장 메카니즘’에 맡겨진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메카니즘은 그 수혜자를 경제적 지불 능력에 따라 철저히 가려낸다. 그러기에 자본가가 직접 관장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재의 사회적 배분은 근본적으로 자본논리를 충실히 따르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우리의 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도시 물적 시설의 이같은 기능은 거기에 담기는 인간관계나 질서 또한 그에 걸맞게 편성지운다. 인구의 과도한 집적에 따라, 도시에는 생산과 배분 활동을 둘러싼 복잡하면서도 유기적인 분업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관계가 거대해지면 해질수록,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위적인 기제의 작동이 불가능해지는 대신에 추상적인 ‘시장 메카니즘’과 같은 것이 조절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짐멜(Gimmel)은 비인간적인 규모의 메트로폴리스는 개별 도시거주자로 하여금 이에 적응할 수 있는 독특한 도시적 인성(urban personality)을 형성시킨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이같은 인성들이 집합화된 도시사회의 거대한 인간관계는 ‘화폐’의 통용에 의해 조절된다고 한다. 인간관계의 화폐화는 개별 인격체의 질적 가치나 존재론적 유일성을 평준화시켜 철저한 양적 개념과 탈인간적인 실체로 설정되게 한다. 화폐적인 평균 규범과 관계에 흡수되지 못하는 인구층은 룸펜프로레타리아와 같은 계층으로 주변화되면서 사회적 평균규범을 침범하는 일탈자로 전락된다. 오늘날 도시에서 발생하는 패륜적인 범죄들은(예, 지존파 사건) 모두 인간관계의 상품화가 심화됨으로써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들인 것이다.
도시의 일상관계나 시민사회의 활동들이 상품․자본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는 것과 더불어 도시공간의 상부구조적 질서라 할 수 있는 도시정치도 유사한 계급적 현상을 띄게 된다. 미시적 생활영역으로부터 거시적 제도영역 전반에 자본논리가 관철됨에 따라 도시사회의 각 부문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은 기본적으로 계급적 모순을 그 근본 요인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모순의 출현을 봉쇄하거나, 다양한 담론과 이데올로기로 포장하고 유화시키는 기제의 하나가 곧 ‘자본논리에 추동되는 지방정치(local politics)’이다. 지방자치란 제도의 실시는 그 동안 제도권 밖에 머물던 지역 자본가(전형적으로 ‘지역유지’)들을 제도 영역으로 끌어 들여 그들의 계급적 이익에 따른 지방통제를 합법적으로 구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장악하에 있는 도시정부의 다양한 정책들은 공공의 탈을 쓰면서 도시적 계급관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도시정책의 영역들, 이를테면 토지, 복지, 주택, 교육, 의료 등의 영역에서 시장논리(예, 민관협동, 민영화, 가격자율화 등)가 보다 강화되고 있는 것은 자본의 논리가 궁극적으로 관철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도시란 공간은 오랜 된 역사를 담고 있다. 역사를 통해 도시는 항상 소비와 재생산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특화되어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오늘날에 와서 도시공간은 상품가치를 실현하는 장으로 더욱 밀도 높게 재구성되고 있다. 그 재구성은 자본의 화신으로써 상품의 성격과 기능이 바뀐 것에 걸맞게 공간의 내포적 깊이가 심화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상적으로 도시란 공간은 개별주체의 삶이 전개되는 생활의 현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현장이 상품․자본의 논리에 의해 침윤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성이 거대하면서도 틈이 좁아지는 자본의 투망에 빈틈없이 걸려 들고 있음을 뜻한다.

3. 공간의 해방: 생활세계 복원을 위한 복합적 운동

자본주의의 힘은 공간을 통해 관철된다. 다양한 공간 중에서 자본의 규정력은 특히 재생산이 영위되는 공간의 고도화를 통해 관철된다. 하지만 자본은 그 스스로의 분신인 상품의 형태와 기능을 더욱 추상화하여 이의 소비관계를 통해 환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 착취성과 억압성을 쉽게 은폐시킨다. 이를테면 사이버 공간은 담론, 기호, 상징의 자유로운 구성을 허용함으로써 공간의 참여자로 하여금 물적 세계에서 경험되는 구속으로부터 해방의 출구를 제공해준다. 문제는 이같은 공간의 작용방식 뒤에는 미시적인 육체의 욕망세계로부터 거시적인 생활세계 전반이 자본의 가치실현을 위한 미세한 망이 되어 깔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순은 여기에 있다. 정체성, 가족관계, 도시시민생활, 도시정치 그 모든 영역에서 자본논리가 예리하게 파고 들기 때문에 해방적 실천은 우선 이같은 공간 모순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 실천적 계급주체는 생산영역에서 보다 재생산영역에서 보다 의미있게 설정되어야 한다. 생활세계가 전개되는 공간의 모순은 복합적이고 다중적이다. 거기에는 가부장적인 관계, 관료제도의 통제, 인습적인 편향, 집단간 비이성적인 대결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그 모순을 일의적으로 하나의 요인로 환원해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또한 소비사회에 접어들면서 상품소비관계가 개별화․담론화․미학화됨에 따라 일상인들이 재생산의 모순을 감지하고 이를 실천의 조건으로 판단하는 것은 더욱 힘든다.
생활세계의 공간이 담지하고 있는 모순의 이같은 추상성 때문에, 재생산 영역에서 추구되어야할 실천은 생산영역에서 전개되는 계급중심적 방식과 다른 것을 요구한다. 생활세계에서 발생하는 모순은 다양하고 다지점적일 뿐만 아니라 비연속적인 속성을 갖는다. 따라서 실천전략은 이에 걸맞게 다양한 쟁점을 개별적이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분산적이고 파편화된 방식을 활용하여야 한다. 환경운동, 주택운동, 세금인하운동, 청원운동, 여권신장운동 등, 이른바 ‘신사회운동’의 다양한 형태가 구체적인 운동방식들의 예가 될 수 있다.
생활세계의 모순에 항거하는 운동은 다원적이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운동들이 무매개적이고 무비판적이라면 결국 사회적 구호에 불과할 뿐아니라 종국에는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활용되거나 악용되게 된다. 그래서 형태적으로 다양한 생활세계의 운동을 허용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이 항상 강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두가지 단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첫번째는 개별 운동과 실천들간의 연대이다. 이 연대를 효과적으로 꾸려내기 위한 방안으로는 유사한 운동들간의 연대를 추구하는 ‘부문적 접근’과 단위 지역내에 있는 다양한 운동세력들간의 연대를 추구하는 ‘공간적 접근’이 있을 수 있다. 그 어느 방법이 보다 효과적인지는 생활세계의 모순의 성격과 대항운동의 조직 역량에 달려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간적 접근이 보다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생활세계의 모순들은 생활의 복합적인 과정이 전개되는 지역공동체란 구체적인 공간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방식 또한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간적 전략이 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두번째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생활세계의 복합적인 운동에 대한 참여 주체를 설정하는 것과 장기적으로 중심계급을 설정하는 것이다. 초기 단계에는 개별 쟁점에 직접 관련된 집단을 해당 운동의 주체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진정한 운동주체는 생활세계가 공공영역으로 확대된 ‘시민사회’의 주체, 즉 ‘시민(citizens)’이어야 한다. 다시말해 생활영역의 운동 주체는 집단이기주의에 물든 세력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주체적 권리와 정치적 자의식을 추구하는 세력이어야 한다. 주체가 이렇게 설정된다면 흔히 우려하는 시민운동의 개량성은 미연에 방지될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이란 여전히 계급화된 주체가 아니다. 생활세계의 모순이 자본주의의 계급적 모순에서 기인함으로 이에 대응하는 운동은 궁극적으로 계급운동이 되어야 한다. 다시말해 생활세계의 운동이 복합적이고 단절적이라도 이를 전체로 매개해내고 전략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중심운동인 계급운동이 항상 강구되어야 한다. 흔히 노동운동이 계급운동의 한 유형으로 간주되지만,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은 매개적이고 선도적이며 중심적인 운동으로써 보다 하나의 부문운동으로만 기능해왔다. 계급운동이 파편화된 운동을 구심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운동과의 제휴와 연대가 절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계급운동은 또한 공간운동으로써 형태와 기능을 띄어야 한다. 한편 계급운동이 실천운동에서 주도성을 갖기 위해서는 제도 정치권 내에서 정당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 즉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활동이 그 예가 되겠다. 하지만 공간운동으로써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정당활동의 지방별 자율성이 절대보장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규정력은 재생산이 전개되는 공간을 통해 작용할 뿐아니라, 그 모순 또한 그 영역에서 주로 발생한다. 모순에 대한 저항적 실천은 일상인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계급중심성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계급운동과 달리 새로운 계급운동은 공간운동으로써의 조건과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생활 공간내에서 계급적 주체의 정치세력화가 절대 필요하다. 문제는 진보세력들이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이다. 한/노/정/연

1996-03-20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